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열일곱 번째 주제는 ‘유럽’이다.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현지에서 느낀 감상 일부를 옮겨 싣는다.
1 ‘밀라노 대성당 아저씨’. 패션의 고장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난 신사분. 대성당을 배경으로 멋들어진 사진이 완성됐다.
2 ‘할리데이비슨 아저씨’. 밀라노를 구경하며 걷던 중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탄 현지인이 눈에 띄었다. 사진 촬영을 하면서 우리는 여행자와 현지인이라는 경계를 넘어 사진작가와 모델로서 교감했다.
3 ‘피렌체 포토그래퍼’. 이탈리아 피렌체 길거리에서 만난 백발의 신사분은 자신도 포토그래퍼라고 했다. 사진을 메일로 보내자 그의 인스타그램에 내가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4 ‘바리 러닝 아저씨’. 이탈리아 바리 해변을 따라 러닝을 하고 계셨다. 건강하고 젊게 사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 ‘프랑코 마제티’. 피렌체 큰 다리 앞에서 만났다. 살짝 타이트한 셔츠 핏과 완벽히 계산된 듯한 바지 핏, 이탤리언 패션의 정석이었다. 촬영을 마친 후, 그가 인스타그램 팔로어 17만 명을 보유한 유명 패션모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6 ‘프랑크푸르트 멋쟁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재즈 패스티벌에서 인파 사이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촬영 제안에 그는 죄송하다며 거절했다. 내 작업물을 보여주자 그는 마음에 들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게 찍는 것은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분과 멀어진 다음 최대한 몰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줌 렌즈를 단 카메라였으니, 그도 어느 정도 인식했을 것이다.
지난 8월 28~29일,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 번째 장례박람회(エンディング産業展)가 열렸다. 엔딩산업전이라고도 하는 일본의 장례박람회는 장례, 매장, 공양, 상속 등 다양한 장례와 종활 산업 등을 소개한다. 이번 박람회에는 약 160개사가 참여했으며, 1만 3318명이라는 역대 최대 방문자가 다녀갔다.
고령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장례 시장은 오히려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29일 도쿄에서 열린 엔딩산업전을 방문해 새로운 장례 문화로서 어떤 것들이 주목받고 있는지 살펴봤다.
고인의 취향을 담다
이번 장례박람회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분야를 불문하고 고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가 마련돼 있다는 점이었다. 먼저 유골함과 관의 디자인이 정말 다양했다. 소재, 디자인, 모양, 크기 등 선택지가 많았다.
올해는 ‘친환경’을 강조한 관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에스지에코그린(SG ECO GREEN)이 선보인 제품은 종이로 만든 것으로 화장할 때에도 검은 연기가 나지 않는 것이 특징이며, 금속·못·나사·경칩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에스지에코그린 담당자는 “친환경 잉크를 사용해 고인의 가족사진 등을 프린트 해 관의 외부를 꾸밀 수 있어 고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으며 최대 250kg까지 적재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는 환경을 고려한 제품들이 주목받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고인의 취향을 반영하기 위한 기술들도 등장했다. 주식회사 abs의 서비스 ‘노아(NOA)’는 고인의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AI가 취향에 맞는 제단을 꾸며 보여준다. 생각하고 있는 예산을 입력하고 고인이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스타일, 생전의 취미, 성격, 꽃의 종류 등을 고르면 이를 반영한 꽃의 제단 디자인 네 가지를 보여준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예산을 조정하거나 색깔을 바꾸는 등 다른 조건을 넣어 디자인할 수 있다.
abs 담당자는 “AI가 만들어준 이미지를 꽃집에 가져가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생각한 것과 다르게 제단이 꾸며져 있거나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서 “지금까지는 장례 회사에서 보여주는 획일화된 장식 중에서 골라야 했다면, 노아는 개인 맞춤형으로 제단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온천욕을 좋아했거나, 좋아하는 향기가 있었다거나 하는 고인의 취향을 반영해 온천수나 입욕제를 넣어 납관 전 주검을 씻기는 탕관(湯灌) 용품도 등장했다. 전용 비누가 붙어있으며 물이 나오면서 동시에 빨아들이는 기술로 침대에서 고인의 몸을 닦을 수 있다.
간호용으로 나온 제품이 있지만, 온천수나 입욕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제품이다. 진심이라는 뜻의 ‘마고코로(まごころ)’를 개발한 재팬토와(ジャパン唐和) 담당자는 “마지막까지 고인이 좋아했던 방식으로 몸을 씻어줄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분골(分骨)’ 유행할 것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장례 문화는 ‘간소화’되는 모습이다. 일본은 집에 불단을 두고 고인을 기리는 풍습이 있는데, 불단은 전체적으로 크기가 작아졌고 피우는 향 대신 작은 화분이나 시들지 않는 꽃 등으로 대체하는 상품들이 눈에 띄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거주하는 집의 크기가 작아졌고, 불단이 차지하는 면적을 줄이는 추세라는 설명이다.
또 하나 작아진 것은 유골함이다. 이탈리아의 장인이 빚은 도자기로 유골함을 만드는 이탈리아 회사 FENICETEK 담당자는 “앞으로는 화장 후 여러 개의 작은 유골함에 유골을 나누어 보관하는 형태가 유행할 것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유골 일부는 우주장례식을 하고, 일부는 바다에 뿌리고, 일부는 쥬얼리로 보관하고, 일부는 불단에 두는 등의 장례 문화가 퍼지리란 전망이다.
유골 일부를 넣어 만든 유리 장식품이나 뼈나 머리카락에서 추출한 탄소를 활용해 제작한 보석으로 목걸이, 반지 등으로 만든 쥬얼리 제품이 전시장 곳곳에 있었다. 보석은 머리카락 10g, 뼈 300g으로 제작할 수 있으며, 반려동물의 털이나 유골로도 제작할 수 있다.
‘분골’은 일본의 장례 문화 특성으로도 볼 수 있다. 이철영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고인의 신체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인식과 문화가 있어 분골이 유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악귀가 된다고 생각해 집안에 불단을 두고 매일 기도를 올려 선하게 바꾼다는 문화가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분골의 유행 전망과 더불어 우주장례식, 바다장례식, 수목장례식 등 다양한 형태의 장례 서비스도 눈길을 끌었다. 지난 3월 실시된 ‘묘지 소비자 전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7%가 수목장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의 64.1%가 후계자가 필요 없는 묘를 구입했다고 답한 것으로 보아 향후 우주·바다 장례식 등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우주장 업체인 은하스테이지(銀河ステージ)는 담당자는 “바다 장례식은 한 달에 150건 정도가 진행되며, 우주 장례식은 2년 동안 11건이 진행됐는데 해마다 늘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 장례식은 우주비행, 인공위성, 달 여행, 우주탐험 등 원하는 서비스를 고를 수 있다.
이 외에도 고독사가 일어난 부동산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비롯해, 상속진단사·종활카운셀러·유품정리사와 같은 죽음 관련 직업들이 소개됐다. 또한 올해에도 상속, 종활, 엔딩노트 등 생전에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과 생전장례식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처럼 앞으로도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며, 고인의 취향을 반영해 간소화됐지만 형태는 다양한 장례 문화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문화◇
또 하나의 장례문화로서 전시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 서비스였다. 반려동물을 위한 수의, 유골함, 이동 화장 서비스뿐만 아니라 디지털 앨범, 반려동물용 불단, 기념 액자 등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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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밥 먹여주냐?”
팬심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맞는 말이다.
팬 활동이 밥을 먹여주거나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도움이 되어주진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밥을 먹여주지 않아서’ 지치지 않고
오래가는 에너지를 갖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잘 모른다.
- ‘덕후가 브랜드에게’ 187p
팬(Fan).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이다. 편은지 PD는 ‘연예인이 밥 먹여주냐’는 질타를 한 번쯤 들어봤을 이들의 극성스런 호기심을 수면 위로 올렸다. 예능 프로그램 ‘주접이 풍년’에 이은 신간 ‘덕후가 브랜드에게’는 수치로 설명하기 어려운 팬덤 경제를 파헤친다.
취향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 시대. “특정 관심사에 깊이 빠져 사회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한다”며 무시당하던 빠순이‧빠돌이들은 이제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로 존중받고, 강한 소비력으로 시장 트렌드를 주도한다. 관심 분야에 돈이나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관련 정보와 후기를 활발하게 공유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입문시킨다.
그러나 합리적인 기준을 벗어나면 불매 운동을 감행해 기업의 대형 프로젝트를 뒤집기도 한다. 팬들은 브랜드의 제품 개발과 홍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팬덤의 가치가 곧 기업의 가치’라는 사실을 깨달은 유수의 기업들은 소비자가 주력 제품의 팬이 되길 바라며, 직원 역시 단순한 직원을 넘어 팬으로 만들기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덕후가 브랜드에게’는 주변 산업이나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는 팬덤 문화를 생생한 사례와 함께 분석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팬심을 겨냥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담은 책이다. 가수 겸 방송인 은지원의 팬클럽 회장 출신이자,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덕질로 행복한 삶을 지속하는 ‘주접단’ 집중 조명 예능 프로그램 ‘주접이 풍년’을 제작한 PD로서 얻은 통찰력과 내공을 한데 풀어냈다. 장기적인 불경기와 취향의 다각화라는 어려움을 뚫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픈 기획자나 경영인, ‘덕질’에 빠진 자녀·부모와의 간극을 좁히고자 하는 가족이 참고할 만하다.
대가를 바라는 사랑은 피곤하다
‘덕후가 브랜드에게’ 저자이자, 현재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메인 연출을 맡은 편은지 PD는 오래전부터 팬이 주인공이 되는 날이 올 거라 짐작했다. 좋아하는 마음은 언젠가 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접이 풍년’ 편성 직전에는 ‘그냥 팬도 보기 싫은데, 나이 많은 팬들이 주접떠는 걸 왜 봐야 하나. 당장 중단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굽히지 않았다. 결국 2022년 선보인 신규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파일럿*이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극성팬’이었어요. 가족끼리 외식하러 가선 갈비 굽는 아빠 맞은편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오빠들이 출연하는 라디오 방송을 녹음한 적도 있죠. 아빠가 ‘벌써 저러면 커서 뭐가 되겠냐’고 혀를 끌끌 차셨으니, 완전 ‘불량 초딩’이었네요. 덕질에 진심이라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팬이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해요. 팬의 팬이랄까요?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책까지 출간하게 돼 너무 뿌듯합니다.”
편은지 PD는 ‘주접이 풍년’을 통해 가수 남진, 송가인, 임영웅, 박서진뿐 아니라 아이돌 그룹 신화, 하이라이트, 강사 김미경, 축구선수 손흥민 등 다양한 스타의 팬들을 마주했다. 각자 특성과 문화가 조금씩 다르나, 모두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을 지녔다. 팬들은 ‘최애(가장 아끼는 대상)가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먹을 힘을 준다’고 말한다고.
“적지 않은 비용을 들이고도 합당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스타와 팬의 관계는 특별해요. 송가인 팬클럽 ‘어게인’은 공연 전 서로 모여 응원법과 군무를 연습해요. 큰 가마솥에 족발을 삶거나 어묵탕을 끓여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가수를 홍보하고요. 누가 지시하거나 보상을 주지 않는데도 말이에요. 스타를 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 아버지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죠. 팬 카페 내 악성 댓글 관련 법적 조치, 운영진 자문을 하는 변호사 팬은 수임료를 전혀 받지 않는대요.”
빠르면 50대, 늦어도 60대에는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달려왔던 모든 목표에 대한 결실을 본다.
자식들이 출가하고, 회사에서도 퇴직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나의 모든 역할과 직급이 하루아침에 종료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성취감이 있어야 하지만 심리적인 공허함이 들 수 밖에 없는 시기다.
이럴 때 매주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축제의 장에 주인공으로 참여한다면 어떨까.
- ‘덕후가 브랜드에게’ 236p
으른(어른) 팬덤의 원동력
‘엄마는 왜 임영웅 편의점 알바했던 거 짠해하냐, 나도 했었잖아.’
‘나 3년 했잖아.’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였던 게시글의 제목과 내용이다. 억울한 자녀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왜 전국의 어머니들은 아들을 외면(?)하면서 ‘우리 영웅이’에게 심취하게 된 걸까? 편은지 PD는 ‘스토리가 가진 힘’이 그 원천이라고 말한다.
임영웅은 포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세상의 영웅이 돼라’며 비범한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는 사고로 가족의 곁을 떠났다. 그는 긴 무명 시절로 경제 상황이 어려워져도 군고구마를 팔며 꿈을 이어왔다. 노래를 향한 열정과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애정을 무대로 풀어냈고, 이에 마음이 동한 팬들은 TV조선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 내 모바일 투표에 참여해 임영웅이 최종 1위가 될 수 있게 도왔다.
“유통기한이 지난 시판 고추장은 큰 죄책감 없이 버릴 수 있지만, 대대손손 내려온 비법으로 외할머니가 직접 만든 고추장은 골마지가 껴도 아까워하죠. 겉 부분만 살짝 걷어내고 먹으면 맛은 변함이 없다고 느끼면서요. 감정과 정서를 서로 나눈 팬과 스타는 오죽할까요.”
사실 ‘엄마 팬’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남진, 나훈아 등의 오빠 부대가 있었고,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나 ‘영웅시대’의 임영웅은 좀 더 특별하다. ‘그땐 그랬었지’ 추억하게 하는 과거의 스타와 달리, 당장이라도 20대 청춘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게 한단다.
“KBS2 ‘불후의 명곡’ 녹화장에서 MC 신동엽 씨가 객석을 찾은 어머니 팬들에게 자주 하는 농담이 있어요. ‘아들로서 좋아한다는 거 다 거짓말이죠? 지금 눈빛들이 아주 음흉해요. 전 딱 보면 압니다’라고요. 그러면 다들 자지러지듯 웃죠. 임영웅 씨도 마찬가지로 중장년 팬들을 순간 젊은 시절로 돌아가게 해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는 화법으로 친근함을 더하고, ‘젊게 살고 싶은 분은 저한테 오빠라고 하셔라’라며 너스레를 떠는 매력 덕이 아닐까요.”
‘팬덤=극성’ 공식은 틀렸다
팬들은 스타에게 애끓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그러나 무분별하고 일방적인 태도로 일관하지 않으며, 진정한 응원과 지지로 아티스트의 가치가 성장하길 바란다. ‘주접이 풍년’에서 가수 박서진과 그의 팬클럽 ‘닻별’을 녹화할 때 일이다. 팬들은 박서진이 어린 시절 상처로 상대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며 사진 찍기를 한사코 사양했다. 전국 각지에서 노란 단체복을 입고 달려왔으나 정작 현장에서는 가수가 불편해할까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사진 한 장 찍지 않은 채 그를 보낸 뒤 쓰레기를 줍고, 제작진에게 ‘우리 가수의 고생을 알아주고 주인공으로 불러줘 고맙다’며 간식까지 건넸다고. 이렇듯 팬들은 저마다 성향이 있어 ‘무조건 열광할 거야’라고 성급하게 판단해선 안 된다. 즉각적인 만족을 최우선 가치로 두지 않고, 고차원의 감성적인 배려를 일삼기도 해서다.
“스타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면서 팬들 또한 함께 성장하는 것 같아요. 노년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를 둔 한 스태프가 ‘우리 엄마도 덕질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처음엔 연예인 다 부질없다며 팬 활동에 부정적이었는데, 회차를 거듭할수록 행복해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본인 어머니 또래를 보며 생각이 달라졌다고요. 취미를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또래 집단과의 만남은 여생의 원동력이 돼요. 팬 카페 가입은 계기일 뿐이죠. 팬이라는 건 그만큼 엄청난 일입니다. 제가 기획하는 콘텐츠로 팬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해요.”
1.불 위에 국자를 올리고 거기에 설탕과 소다를 넣어 만든 과자.
3.물기가 있는 축축한 휴지. 손이나 얼굴 또는 아기의 엉덩이를 간편히 닦는 데 많이 쓰인다.
5.손으로 몸을 두드리거나 주물러서 피의 순환을 도와주는 일.
7.빛의 반사를 이용해 물체의 모양을 비추어 보는 물건. 옛날에는 구리나 돌을 매끄럽게 갈아 만들었으나, 지금은 보통 유리 뒤쪽에 아말감을 발라 만든다.
8.지역 생활 애플리케이션. 중고 거래를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2023년 8월 28일 서비스명을 ‘당근’으로 바꿨다.
10.줏대가 없어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잘 흔들리는 성질이나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11.씨름에서 허리와 다리에 둘러 묶어 손잡이로 쓰는 천.
12.지하 철도 위를 달리는 전동차.
14.머리카락이 빠지는 증상.
17.잎이 네 개인 토끼풀.
1.미국의 화폐 단위.
2.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고사리, 도라지, 두릅, 냉이 따위가 있다.
4.식료품, 일용 잡화, 의료품 따위의 가정용품을 갖추어놓고 대량·염가·현금 판매를 원칙으로 하는 큰 소매점.
6.먹고 난 뒤 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
8.말과의 포유류. 말과 비슷한데 몸은 작고 앞머리의 긴 털이 없으며 귀가 길다. 털빛은 대부분 누런 갈색·잿빛 황색·잿빛 흑색이며, 어깨·다리에 짙은 줄무늬가 있다. 병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
9.아랫단으로 갈수록 통이 점점 넓어지는 바지.
13.고려 중기에 만든 한국 최고 탈놀이 가면.
15.머리에 쓰는 물건의 하나. 예의를 차리거나 추위, 더위, 먼지 따위를 막기 위한 것이다.
16.샐러드용 소스의 하나. 달걀노른자, 샐러드유, 식초, 소금, 설탕 따위를 섞어 만든다.
18.자동 제어 장치에 의해 청소를 하는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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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는 시니어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실버 거리가 있다. ‘100년 생활자 연구소’가 전통 있는 상점가에서 지난해부터 운영하는 이색적인 카페 ‘100년 생활 카페’를 찾아가 봤다.
스가모역에 내리면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도로 턱도 없고 가격표도 크게 쓰여 있어 쉽게 읽을 수 있다. 스가모역 바로 앞에서 시작해 780m에 이르는 상점가에는 시니어들을 위한 옷, 건강식품, 가방, 신발, 보조 보행기구 등을 파는 상점 200여 개가 즐비하다. 에도 중기(약 1600년)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상점가다.
100년 넘게 이어진 가게들인 만큼 노인이 접객하니 무엇을 물어봐도 친절하게 잘 가르쳐준다. 다른 곳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다.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고 평일에도 손님이 북적이지만 길거리는 깨끗해서 쇼핑하기에 쾌적하다. 시니어를 위한 온천 여관, 시니어 취향의 음식점, 시니어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라쿠고(落語) 공연 카페, 질병 치유의 파워 스폿, 생전 영정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도 있다.
10대부터 90대까지 즐기는 카페
‘100년 생활 카페’의 간판은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세련된 검은색 건물 입구에 놓여 있었다. 3층에 위치한 카페는 평일인 목요일 오후에도 손님이 가득했다. 오타카 가요(大高香世) 100년 생활자 연구소장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었다.
그녀는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유명 광고회사 하쿠호도(博報堂)에 1990년 마케터로 입사해 전략 수립, 신상품 개발, 신규 사업 론칭을 담당했다. 2023년 하쿠호도에서 ‘100년 생활자 연구소’를 설립했고, 오타카 씨가 초대 소장을 맡았다.
연구소는 100세 시대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소라는 콘셉트로 ‘100년 생활 카페’를 오픈했다. 카페에는 시니어만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젊은이들이 많이 보였다. 오타카 씨가 설명했다.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레트로 붐이 일어나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의 영향이 크다고 보는데요. 옛날 간판이나 광고 디자인과 색상이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는 스가모 상점가 거리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어요. 100년 생활 카페 고객은 고등학생부터 90대까지 다양해요. 단골 고객은 70~80대가 많지만요.”
다시 한번 카페를 둘러보니 활기찬 젊은 직원들이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을 응대하고 있었다. 카페 내부는 짙은 갈색과 주황색을 바탕으로 한 현대식 인테리어여서 밖에서 본 스가모 상점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100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요?
100년 생활자 연구소는 왜 스가모 상점가에 이 카페를 만들었을까? 연구소에서는 20~80대 28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100세까지 살고 싶은가요?’라는 조사를 했다. 그런데 72.2%가 ‘100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유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100세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일본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이 조사 결과에 대해 오타카 소장은 “충격적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연구소는 100세 가까이 살아온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기로 했고, 역사 깊은 스가모 상점가에 100년 생활 카페를 열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100세까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드는 거예요. 인생 100세 시대에 행복한 사람을 많이 만들자는 거죠. 카페에서 함께 커피 마시면서 행복에 대한 답을 찾고,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여러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내고, 그 결과에 대해 연구소에서 발표도 하며 여러 제안도 하려고 합니다.”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카페
오타카 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어떻게 하면 100세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소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노후가 40년 가까이 늘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100세 생활 카페는 앞으로 어떤 카페가 되고자 하는 걸까? 오타카 소장은 이 카페가 “이야기 나누는 장소”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우리는 주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연구원들은 사전에 인터뷰어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된다. 연구원들은 현장에서 고객들과 대화하며 어떤 것을 발견했을까?
“무엇보다 큰 소득은 서로 대화하면서 고객도 연구원도 ‘듣고 보니 내가 자신 있는 분야, 내가 좋아하는 분야는 이런 거였구나!’ 깨닫는다는 거예요. 자기 통찰이 이루어지는 거죠. 삶의 인사이트를 얻는 거고요. 그게 이 카페를 오픈할 때는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발견이에요.”
“고객들 맞은편에는 우리 연구원들이 앉아 있어요. 연구원은 40명 정도인데요. 평소 무언가를 조사하고 컴퓨터 앞에서 자료를 분석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요. 연구소에서 벗어나 이렇게 카페에 오는 고객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저는 70~80대 시니어들이 카페에 오기 위해 멋을 부리는 것도, 이곳에서 타인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년 행복하게 사는 마을 만들기
100년 생활 카페에서는 커피와 음식을 판매한다. 커피는 300엔(약 2500원), 스파게티는 700엔(약 6000원) 정도다. 주변 카페에 비해 무척 저렴한 가격이다. 그래서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그럼에도 100년 생활 카페는 ‘시민들이 부담 없이 들르는 장소’, ‘생각나면 수다 떨다 가는 장소’라는 콘셉트에 충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카페가 아니라, 리빙 랩(Living Lab)으로서 일상의 실험실을 추구한다는 새로운 발상으로 운영하는 카페인 셈이다. “스가모를 기반으로 앞으로 전국에 이런 카페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오타카 소장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100년 생활자 연구소는 두 가지 도전 목표가 있어요. 하나는 카페에 들르는 시니어들에게 스마트폰이나 SNS 활용 방법을 가르쳐드리는 거예요. 스마트폰을 잘 이용할수록 ‘인생 100세 시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조사 결과도 있어서, 디지털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마을과 사회를 위한 모델을 만드는 거예요. 스가모 동네 전체를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한 장소로 생각하고, 지역 주민들과 상점가를 지키는 분들과 함께 100년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 만들기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오타카 소장의 온화한 웃음 뒤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연구소장으로서 야심찬 의지가 엿보였다. 취재를 마치고 스가모 상점가를 걷다 가게를 지키고 있는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모두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창업한 지 394년 된 일본 과자점, 120년 된 녹차 전문점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찰 마당에 놓여 있는 향의 연기를 아픈 부위에 쐬면 통증이 사라진다고 해서 유명한 절 ‘고간지’(高岩寺)도 100년이 넘었다. 시니어 천국이라 불리는 스가모 거리에 이런 카페가 우뚝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척 도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일본인은 100세까지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100세까지 살고 싶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마을을 만들고자 기획된 ‘이야기를 들어주는 카페’라니.
대화를 통해 행복의 씨앗을 찾고자 하는 ‘100년 생활 카페’를 뒤로하면서, 나이 들수록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연구소와 카페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시니어가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함께 질문하고 고민하면 해법이 나오지 않을까? 돌아가는 길에 필자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1928년생 유명 셀프 포트레이트 작가, 니시모토 키미코 할머니(@kimiko_nishimoto)입니다. 72세 때 처음으로 카메라를 접하고, 2년 뒤 포토샵을 더한 할머니의 사진. 한 장 한 장 너무 유쾌하지 않나요?
• 아들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사진 수업 들은 것이 계기
• 학원 숙제로 ‘자화상’을 받은 뒤 그 후 셀카의 매력에 빠짐
• 일약 스타로 만든 것은 ‘자학 시리즈’
• 사진 시작 10년여 만에 첫 개인전 개최(82세)
• 88세에는 첫 사진집 출간. 96세가 된 올해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 중!
“나이는 정말로 관계없습니다. 필요한 건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좋은 예겠지요. 죽을 때까지 카메라를 놓을 수 없습니다. 몸져누워도 천장을 찍겠다는 마음입니다!” (브루투스 매거진 인터뷰 중)
에디터 조형애 출처 kimiko_nishimoto 디자인 유영현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셔츠, 철 지난 바지도 얼마든지 멋지게 입을 수 있다. 10년, 20년 뒤를 꿈꾸게 하는 ‘취향 저격’ 멋쟁이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좋다. 취향 앞에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면, 노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김동현 사진작가의 사진과 감상 일부를 옮겨 싣는다. 열여섯 번째 주제는 ‘반소매 티셔츠’다.
1 ‘서병구 교수님’. 내가 인정하는 최고의 멋쟁이. 흰 티셔츠 위에 얇은 니트를 매치해 패션 센스를 드러냈다.
2 ‘인사동 예술가 어머님’. 믹스매치 룩의 진수. 카우보이 모자가 매우 인상적이다.
3 ‘집에서 만난 채명희 어머님’. 스트리트 패션 촬영 인연으로 집에 초대받았다. 옷방만 무려 세 개였다. 어머님이 리폼한 옷 대부분 꽃무늬나 꽃 모양 장식품이 있다. “꽃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4 ‘크롬하츠 아버님’.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아버님. 미국 브랜드 크롬하츠의 액세서리로 멋을 내셨다.
5 ‘ARMY 아버님’. ‘ARMY’ 반소매 티셔츠부터 벙거지 모자까지, 남다른 포스가 느껴진다.
6 ‘찬또배기 어머님’. 6월 첫째 주 주말, 이찬원 콘서트장 앞은 핑크색 옷을 입은 팬들로 가득했다. 젊음과는 또 다른 열정과 설렘을 느끼던 그때 한 어머님이 눈에 들어왔다. 이찬원 티셔츠를 길게 원피스처럼 레이어드해 입으셨다.
7 ‘라이더 부부’. 2022년 여름 처음 만났을 당시 “젊으셨을 때 진짜 멋있었을 같아요”라고 하자 윤정숙 어머님은 “아, 장난 아니었지” 하면서 너스레를 떠셨다. 김진규 아버님의 팔에는 할리데이비슨 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진정한 라이더 같았다. 이듬해 겨울 두 분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계절은 달라졌지만 멋은 그대로였다.
태평하고 안락한 태안(泰安)이다. 지명이 이번 여정의 테마를 말해준다. 수국이 활짝 피어났다.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부드러우면서도 쨍하게 다채로운 색감을 머금었다. 여름꽃과 모래 사구, 끊임없이 이어지는 숲과 해변이 오감을 깨운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름은 뜨겁다. 오랜 시간 파도에 침식되어 켜켜이 쌓인 해안 절벽 아래의 동굴 안에서 태평하게 바라보는 파도는 더위를 잊게 한다.
길 위에서 만난 보랏빛 버베나 물결
태안으로 가는 들판에서 얼핏 보랏빛 꽃물결을 발견한다. 더러는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지만, 도로 옆 들판의 버베나 군락지를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아직 입소문이 덜 난 따끈따끈한 신상 여행지다. 이럴 땐 길 위에서 기분 좋은 득템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버베나 판타지라고 불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태안기업도시 가든스퀘어가 이 지역을 개발하면서 첫 번째로 만든 약 1만 평 규모의 정원이다.
버베나는 여름에 가장 예쁜 꽃이다. 잎과 줄기에 까칠까칠한 털이 덮여 있어서 옷에 잘 붙는다. 버베나 꽃밭을 다녀오면 옷자락 어딘가엔 버베나의 흔적이 남는데 이 또한 혼자만의 즐거움이다. 흔히 한 철 꽃을 보는 것과는 달리 버베나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피어나는 다년초 식물이다. 버베나 꽃물결 속을 걷다 보면 산책로를 따라 야자나무도 식재되어 이국적인 평원의 산책로를 걷는 즐거움도 맛본다. 단아한 동산에 들어앉은 파고라에서 내려다보는 버베나 들판은 잘 꾸며진 수목들과는 비길 수 없는 힐링을 안긴다.
날씨나 빛이 뿌려지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도 신비롭지만 보랏빛 버베나는 푸른 하늘 아래서 더 잘 어울린다.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드넓은 보랏빛 들판이 더없이 몽환적이다. 태안을 향해 달리는 여행자들에게 선물하듯 너른 들판 위에서 우아하게 넘실대는 보랏빛 세상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입장료 무료.
수국이 피었다, 팜카밀레의 수국수국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수국이 소담하게 피었다. 어딜 가나 수국의 탐스러움을 보여주느라 바쁜 계절이다. 태안군 남면에 위치한 팜카밀레는 약 1만 2000평의 부지에 다양한 종류의 허브와 수국이 피어나는 허브 정원이다. 땅을 일구어 무더운 계절에 피워낸 수국 정원에 파묻히고, 은은한 허브 향에 심신 안정을 얻는 공간이다. 수국은 쌍떡잎식물로 6~7월경에 피어나 8월까지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여름꽃이다. 혹시 수국 철을 놓쳤다 해도 사철 끊임없이 피고 지는 갖가지 허브가 정원을 채우며 매력을 발산한다.
수국 정원의 모든 색감은 선명하다. 초록의 싱그러움이 물씬한 여름 색감 그 자체다. 푸르름 속에서 잉크빛 수국이 눈에 들어온다. 울긋불긋한 꽃과 달리 서늘하게 푸르거나 보랏빛을 띤 수국의 느낌이 신비롭다. 수국은 처음 피어날 때는 흰빛을 띠다가 푸르거나 자줏빛으로 변하고 핑크나 붉은색으로 변한다. 이는 토양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는데, 토양이 산성이면 푸른빛 수국이 피어나고 알칼리성이면 붉은빛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팜카밀레는 대체로 푸른빛을 띠는 수국이 많은 편이다.
정원 가득 푸르름을 뿜어내는 청량함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허브 가든은 수국 정원과 라벤더 정원을 비롯해 어린 왕자 정원, 워터 가든 등 10여 개의 테마로 조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메타세쿼이아 수국길은 나무와 꽃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워 누구나 한 번쯤 걷게 된다. 바로 옆의 풍차 전망대에 오르면 정원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방향을 바꾸어 서면 서해안 몽산포 해변도 아스라이 보인다.
꽃길을 호젓하게 거닐고 싶다면 별수국이 피어난 길이 있다. 담벼락 아래 뾰족한 별 모양 겹꽃의 별수국 무리가 꽃길을 이룬 조붓한 산책길이 예쁘다. 정원을 꽉 채운 탐스러운 수국이 키만큼 차올라 숲인 듯싶다가도, 호숫가를 빙 둘러서 나지막이 피어나기도 했다. 수변에 앉아 수국을 바라보며 고요함 속에 빠져보는 평안함이 얼마 만인지. 풍성한 꽃무리를 보며 마음속 깊이 자신을 어루만진다. 자연과 공감하며 꽃과 함께 삶의 여유를 가져보는 아름답고 순수한 시간이다.
몽글몽글 아늑한 시골 감성에 푹 파묻혀 온 마음이 정화된 기분이라면, 이젠 실내 정원에서 쉬어볼 차례다. 다양한 허브차와 아로마오일 족욕도 이곳에서 즐길 만하다. 입구의 애견 동반 가능한 명인 제빵소를 지나, 허브 향 속에서 일상을 벗어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펜션도 정원 중앙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태안 해변길 따라 파도리 해식동굴
한여름에 서늘한 동굴 속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일, 태안에 가면 가능하다.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한 태안 바다엔 파도에 침식되어 거칠고 기기묘묘한 형태로 생겨난 동굴이 있다. 최근 SNS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한 태안 소원면의 파도리 해식동굴이다. 파도리(波濤里)라는 지명은 고려 문종 때 ‘거친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나서면 되돌아올 수도 있다. 파도리 해식동굴에 가려면 물때를 꼭 알아보고 가야 한다.
먼저 파도리 해변을 지나 울퉁불퉁한 갯바위와 뾰족한 암석 위를 걸어가야 한다. 바다를 옆에 두고 지나다 보면 서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푸른 바다와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만난다. 발밑으로 동글동글한 몽돌이 구르고, 몽돌에 부딪히는 물빛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짭조름함을 동반한 바람까지 한여름의 멋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해변 길이다. 10여 분 걷다 보면 숨겨진 듯 나타나는 두 개의 동굴이 보인다.
동굴을 떠받치듯 내려앉은 암석 기둥이 신비롭기만 하다. 문득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 광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 떠오른다. 아득히 오랜 세월을 거친 파도리 해식동굴의 기둥이 가우디 건축의 일부와 비슷하다면 생뚱맞은가. 자연미와 예술성이 느껴진다는 뜻이다. 영겁의 세월을 견디어온 동굴 앞에서 현대인들은 찰나의 사진을 담느라 분주하게 셔터를 누른다.
국내 최대 규모의 모래언덕, 신두리 해안사구
수만 년의 바람과 모래가 만들어낸 자연 그대로의 풍광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 신두리 해안사구 모래언덕은 국제슬로시티 태안의 독특한 생태 명소로 현재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다. 다양한 지형이 섞인 모래밭을 거닐기가 쉽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A, B, C로 나뉜 산책 코스에 모래 구릉을 걷기 편하게 길이 나 있거나 편리한 나무 데크가 준비되어 있다.
유려한 모래언덕을 오르다 보면 군데군데 선명하게 붉은 해당화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모래밭 길은 ‘해당화 동산’, ‘억새골’, ‘순비기 동산’, ‘곰솔 생태숲’ 등으로 각각의 코스가 이어진다. 바람과 햇빛이 강한 곳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의 터전이 해안사구다. 사구 습지와 모래밭을 뒤덮은 풀과 억새 동산을 걸으며 이국적이다 못해 먼 나라의 사막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바람이 불어대는 언덕 위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서해가 거칠 것 없이 탁 트여 고요하다. 신두리 해변은 해무가 짙게 피어오르는 아침 바다의 아련함이 꽤 분위기 있다.
서해가 빨라진다, 태안-보령 간 해저터널과 운여해변
2022년 충남 보령과 태안을 잇는 보령 해저터널이 개통되었다. 여행 귀갓길에 태안 방면의 해저터널 홍보관 전시를 보고, 직접 해저터널을 주행해보는 마무리 코스다. 터널 길이 6.9km 국내 최장, 세계에서 5번째로 긴 해저터널 덕분에 여행길 단축은 물론이고, 바다 밑을 달리는 두근거림을 맛본다. 특히 터널을 달리며 경관조명으로 바닷속 수족관이나 서해안 낙조 등의 감각적인 빛의 표현을 즐길 수 있다. 노을 무렵의 시간이 가능하다면 운여해변 솔숲 방파제의 반영도 챙겨보는 건 덤이다.
명품 브랜드 미우미우 런웨이에 데뷔한 ‘신인 모델’ 후이란 박사(@i_doctor_qin)입니다. 70세인 그녀는 미우미우의 2024 F/W 쇼에 정식 초청받아 캣워크를 했습니다.
• 의사로 평생을 바쁘게 살아온 후이란 박사. “아름다움은 포기”하고 살았다고 인터뷰
• 변화를 이끈 이는 아들(사진 속 남성). 패션에 관심이 많아 스타일링도 도와줌
• 후이란 박사의 옷은 대부분 아들 것. 인스타그램 속 옷도 남성복 다수
“제 패션이요? 자유로워요. 정의되지 않고요. 저는 감히 여러 시도를 해봅니다.” (W매거진 인터뷰 중)
에디터 조형애 출처 i_doctor_qin 디자인 유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