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서울 광화문 일대를 10㎞가량 달린 뒤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한다. GPS 지도 위에 나타난 운동 경로가 색다르다. 골목과 도로를 오간 선들이 경복궁을 머리, 종로 일대를 몸통 삼아 강아지 한 마리를 완성했다. 어린이대공원 주변에서는 붕어빵, 남산에서는 하트가 되도록 경로를 설정한다.
#2. 지도에서 1만 원 이하 식당을 찾고, 동네 붕어빵 노점을 제보한다. 사우나 애호가는 마음에 든 목욕탕을 지도에 표시하고,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본 관객은 수백 년 전 인물이 묻힌 왕릉에 찾아가듯 온라인 지도에 댓글을 남긴다.
지도는 본래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보는 것이었다. 특히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을 살아온 세대에게 지도는 출발지와 목적지를 연결하는 실용적인 도구였다. 약도를 그리고, 간판을 확인하고, 가야 할 길을 형광펜으로 표시했다.
최근 디지털 세대가 지도를 사용하는 모습은 조금 다르다. 이들은 가장 빠른 길만 찾지 않는다. 장소에 점을 찍고, 움직인 경로로 그림을 그리고, 다른 이용자와 정보를 채운다. 때로는 지도 리뷰창에서 영화의 뒷이야기까지 이어간다. 지도는 완성된 정보를 읽는 종이가 아니라 취향과 경험을 덧붙이며 가지고 노는 화면이 됐다.

취향을 찍고 함께 채우는 지도
2026년 봄 온라인에서 주목받은 ‘거지맵’은 1만 원 이하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을 모은 지도다. 오래된 분식집과 시장의 백반집, 대학가의 저렴한 식당처럼 일반 맛집 목록에서는 좀처럼 주목받지 못한 장소가 등장한다.
지도에 들어가는 정보는 이용자가 직접 만든다. 식당 이름과 위치뿐 아니라 메뉴, 가격, 혼자 식사할 수 있는지, 어떤 음식을 추천하는지 등을 제보한다. 운영자가 완성한 지도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알고 있는 정보를 조금씩 보태 지도를 함께 만든다.
겨울철 붕어빵과 호떡 등 길거리 음식의 위치를 알려주는 ‘가슴속3천원’도 비슷하다. 노점은 간판이나 정확한 주소가 없고 영업시간도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용자들은 길에서 우연히 발견한 노점의 위치와 메뉴, 최근 영업 여부를 지도에 올린다. 쉽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동네 풍경을 사람들의 제보로 붙잡아 두는 셈이다. ‘두쫀쿠’가 유행일 때는 실시간으로 남은 수량을 확인할 수 있는 지도 ‘두쫀쿠맵’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이 방문한 목욕탕과 사우나를 정리해 공유한다. 시설이 화려한 곳만 찾는 것도 아니다. 물이 좋은 곳, 냉탕과 온탕의 온도가 마음에 드는 곳, 지역 주민의 생활이 묻어나는 오래된 목욕탕 등 각자의 기준으로 장소를 고른다.
과거에도 맛집 수첩과 여행 기록은 있었다. 달라진 점은 개인의 기록이 곧바로 다른 사람의 지도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즐겨찾기는 공개 목록이 되고, 여러 사람이 저장하고 제보한 장소는 하나의 취향 공동체를 만든다.
어떤 사람에게 지도는 저렴한 한 끼를 찾는 장부이고, 누군가에게는 사우나 취향을 모은 도감이다. 지도에 찍힌 점들은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를 넘어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보여준다.

가장 빠른 경로를 버려야 그림이 된다
러닝 인구가 늘면서 지도 위의 선을 이용한 놀이도 확산하고 있다. GPS를 켜고 미리 계획한 길을 달린 뒤 이동 경로로 그림이나 글자를 완성하는 ‘GPS 드로잉’ 또는 ‘러닝 아트’다.
서울에는 어린이대공원 일대를 도는 ‘붕어빵런’, 경복궁과 광화문 주변을 달리는 ‘광화문 강아지런’, 남산 일대를 도는 ‘하트런’ 등이 알려져 있다. 완성된 경로는 운동 기록 앱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다시 공유된다.
이 놀이에서는 짧고 편한 길이 반드시 좋은 길은 아니다. 강아지의 꼬리를 만들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가고, 붕어빵의 지느러미를 그리기 위해 왔던 길을 돌아 가는 식이다. 효율적으로 달리려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우회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선이다.
해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있다. ‘Wandrer’는 익숙한 길이 아닌 가보지 않은 골목을 통과할 때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한다. ‘CityStrides’에서는 자신이 사는 도시의 모든 거리를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 지도에 표시된 좌표를 따라 누군가가 숨겨 놓은 상자나 기록물 등을 찾는 ‘Geocaching’도 있다.

지도 리뷰창에서 취향을 나누다
지도 놀이는 취향과 운동을 넘어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으로도 이어진다. 2026년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한 뒤 지도 앱의 왕릉 리뷰창에는 이례적인 글들이 올라왔다. 관객들은 단종이 묻힌 영월 장릉에 “하늘에서는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식의 위로를 남겼다. 반대로 세조의 광릉과 한명회의 묘역에는 영화 속 인물의 행동을 비판하는 댓글을 달았다.
영화 후기를 영화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기는 대신, 실제 역사적 인물이 묻힌 장소의 지도 리뷰창으로 이동한 것이다. 관객에게 왕릉은 더 이상 문화유산의 위치와 관람시간을 확인하는 장소만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느낀 감정을 전하고, 다른 관객과 과몰입을 이어가는 서사의 연장 공간이 됐다.
이는 최근의 ‘성지순례’ 문화와도 닿아 있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 영상에 등장한 장소를 지도에 저장해 찾아가고, 작품 속 장면과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는다. 자신이 만든 촬영지 지도를 다른 팬과 공유하기도 한다. 화면 속 이야기는 지도 위에 새로운 점을 만들고, 그 점은 다시 사람을 현실의 장소로 움직이게 한다.
과거 종이지도를 펼쳐 여행길에 선을 긋고, 다녀온 곳에 동그라미를 치던 일도 일종의 지도 놀이였다. 세계지도에 압정을 꽂거나 등산지도에 완주한 능선을 표시한 경험도 낯설지 않다. 따라서 지도 놀이를 젊은 세대만의 발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차이는 기록을 공개하고 연결하는 방식에 있다. 예전의 지도는 제작자가 완성해 이용자에게 건네는 정보에 가까웠다. 지금의 지도는 수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점과 선, 사진과 이야기를 더하는 미완성 화면이다. 누군가 만든 경로를 다른 사람이 따라 달리고, 한 사람이 발견한 식당과 목욕탕이 여러 사람의 저장 목록으로 옮겨간다.
지도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거기에 요즘 젊은 세대는 새로운 질문이 던진다. “그곳에 가는 동안 어딘가를 헤매고, 무엇을 발견하며, 누구와 나눌 것인가.” 디지털 세대는 가장 빠른 길을 찾는 대신 재미있는 길을 고르고, 유명한 장소를 검색하는 대신 자신만의 기준으로 점을 찍는행위가 의미있는 여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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