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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에서 만난 사람] 꿈의 은퇴촌, 캘리포니아 라구나우즈 빌리지를 가다
- 미국은 세계에서 실버타운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독립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독립적인 가족문화 때문일 것이다. 은퇴 후 자식에게 의존하기보다는 내 스스로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시니어들의 의식도 한몫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실버타운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이름난 대규모 은퇴 단지만 3000여 곳, 이 중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작은 해안도시에 있는 라구나우즈 빌리지는 한인들에게는 꿈의 은퇴촌으로 불린다. 365일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 입맛대로 골라 즐길 수 있는 클럽활동,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년 친구들, 무엇보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서로를 ‘아름다운 동행자’라 부르는 이곳,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한인들을 만나봤다. 미스터&미세스 손 “입구를 잘못 들어왔네요. 거기서 기다려요. 미스터 손한테 나가보라고 할게요~” 은퇴촌이라고 만만히 봤다간 낭패다.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총면적은 2100ac(약 250만 평). 라구나우즈 시(市)의 90%를 차지한다. 여의도 전체보다도 크다. 알려준 9번 출입구를 못 찾아 8번 출입구로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9’에서 ‘8’이 멀어봤자 얼마나 멀겠냐 했지만 결국 길을 잃었고 기어이 80세의 주인장을 마중 나오게 만들고 말았다. 나무 그늘 밑에 자동차를 대놓고 5분 정도 기다리자 언덕 위에서 골프카트 한 대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왔다. 흐트러진 흰머리를 단정히 하며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노신사. 미스터 손이었다. GPS를 손에 들고도 길을 잃은 젊은이(?)에게 위로의 말도 잊지 않는다. “여기가 원래 넓어서 찾기가 좀 힘들어요. 하하하.” 손기용(80), 손종숙(75) 부부. 빌리지에서 이들은 미스터&미세스 손으로 불린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와 정반대 쪽에 있는 오하이오에서 40년 넘게 소아과 의사, 병리과 의사로 각각 일하다 은퇴를 했고 6년 전 캘리포니아로 이주,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주민이 됐다. “오래 살았던 오하이오가 익숙하긴 했지만 겨울이 추웠어요. 따뜻한 플로리다로 갈까, 아들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갈까 고민하던 중에 집이 덜컥 팔려버린 거예요. 어디로든 떠나야 했죠. 일단 아들 집과 가까운 이곳 라구나우즈 빌리지에서 월세로 살면서 천천히 결정해보자 했는데, 두 달 만에 집을 샀습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찾던 파라다이스였어요!”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2300ft2(약 65평)의 크기로 거실과 주방, 그리고 두 개의 침실과 화장실이 있는 예쁜 단층집이다. 2011년 당시 80만 달러에 구입했다. 라구나우즈 빌리지에는 손씨 부부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 외에도 콘도와 아파트가 있는데 한인들이 선호하는 어바인이나 플러턴에 비해 주택 가격은 다소 낮은 편이라고.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날씨는 부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여름엔 더워도 습도가 낮아 상쾌했고 겨울엔 눈이 내리지 않아 운전하기가 좋았다. 10분이면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라구나 해변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가 있었다. 인근 플러턴과 어바인에는 한국 식당과 상점이 넘쳐나니 한국 음식이 그리울 틈도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여유 넘치는 빌리지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골프, 수영은 물론이고 젊은 시절부터 취미였던 사교댄스도 더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였죠. 빌리지에는 200개가 넘는 클럽(동호회)이 있어요. 원하면 어떤 클럽이든 가입할 수 있고 직접 만들 수도 있어요. 여기서는 심심할 일이 없어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서로 얼굴도 못 보는걸요. 젊은 시절보다 더 바쁘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합니다.” 남편은 독서와 골프를 즐기고 아내는 하이킹과 합창을 좋아한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부부는 각자 활동하는 클럽이 다르지만 이것만큼은 꼭 같이하자고 정해놓은 세 가지가 있다. 손을 잡고 거니는 저녁 산책, 같은 침대 쓰기, 그리고 벌써 20년을 함께해온 볼륨댄스가 그것이다. 빌리지 안에서 손씨 부부는 춤꾼으로 유명하다. 경력 20년의 수준급 솜씨다. 특히 아내 손종숙씨는 전국 경연에도 참가할 만큼 프로급 댄서다. 어느 해 연말파티에서 백인들도 울고 갈 정도로 멋들어지게 춤을 추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이웃에 사는 한인 부부들이 배움을 자청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세스 손의 댄스교실은 현재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늦은 춤바람으로 열공 중이다. 부부는 라구나우즈에 들어오기를 두고두고 잘한 일이라 여긴다. 아내에 비해 조금은 소극적인 성격인 손기용씨는 이곳에서 동년 친구들과 격 없이 어울리며 사는 재미를 알게 됐다고 한다. 평생 쓰고 싶어도 못 썼던 모국어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저녁은 주로 아내가, 아침은 내가 준비합니다.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매일 아침 볼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요. 우리는 현재 생활에 아주 만족해요. 둘이 있어서 좋고 친구가 많아서 즐겁습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즐거움이지요. 아내와 나는 이곳이 마지막 종착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해야지요. 스트레스가 건강에 제일 안 좋다는데 여긴 그럴 일이 없어요. 이곳에 살고 있는 최고령 한인은 90이 넘은 분이에요. 10년은 문제없겠지요? 하하하.” 라우나우즈의 이장님, 한인회 김일홍 회장 라구나우즈 빌리지에 한인회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98년. 당시 회원은 30명 정도였다. 타향살이 이민자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형님 동생이 되었고 주말이면 다 같이 한집에 모여 바비큐를 먹고 친목을 다졌다. 이후 7명의 한인 회장이 배출되었고 그동안 빌리지의 한인은 700여 가구 1200여 명으로 늘었다. 옛날처럼 오손도손한 분위기는 없어졌지만 한인의 위상은 커졌다. 현재 8대 한인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일홍(79)씨는 초기 한인회가 한인들 간의 친목을 다지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커뮤니티 내 타 인종과의 화합과 클럽활동을 통한 자기계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5년간 이곳에 한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이대로 가면 빌리지의 한인 비율이 전체의 10%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그만큼 커뮤니티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 좋겠습니다. 매년 빌리지 내에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초청해 기념식과 만찬을 열고 있는데 참으로 뿌듯합니다. 4년 전 만든 한국어 클래스도 아주 인기가 좋아요. 얼마 전에는 아리랑 코리안 문화축제를 열었는데 주민들의 호응이 대단했어요.” 라구나우즈 빌리지에는 동호회 활동을 위한 대규모 연회장인 클럽하우스가 10여 개 있다. 소규모 모임을 위한 크고 작은 미팅룸은 예약만 하면 10~20달러(1만~2만원) 선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한인들이 주축이 된 클럽도 20여 개나 된다. 김일홍 회장은 클럽활동을 단순한 여가생활에서 더 발전시키려 애쓰고 있다. “목표를 정하고 도전해보자는 거죠. 그 예로 글사랑모임 클럽에서는 2014년부터 라는 수필집을 발간하고 있어요. 회원들의 필력뿐 아니라 편집이나 사진 실력이 매년 발전하는 것을 보며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김일홍 회장은 라구나우즈에서 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한인회 관련 일은 물론이고 동호회 활동, 관리사무소나 빌리지 내 시설 사용 등 민원 업무도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앞서 만난 손기용씨는 김 회장을 알뜰살뜰한 마을 이장님 같다고 했다. 빌리지 안에서 운전하며 가다가도 아는 얼굴을 만나면 꼭 차를 세우고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다. 짬을 내어 아프거나 홀로된 노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도 살펴야 맘이 편하다. 때로는 라구나우즈 빌리지 가이드가 되어 투어 서비스도 한다. 미국 전역에서 톱 10에 속하는 명성에, 한인이 많이 살다 보니 은퇴자라면 한 번쯤 꿈꾸어보는 라구나우즈 빌리지. 입주 문의는 늘 이어진다. 라구나우즈 빌리지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주택 종류에 따라 3만6000달러(약 3600만원)에서 4만2000달러(약 4200만원)가량의 연수입이 있어야 한다. 일정 금액의 자산도 증명되어야 한다. 월 관리비는 650달러로 골프장, 수영장, 헬스클럽, 클럽하우스 등 빌리지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시설관리, 조경, 가스, 수도, 케이블TV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김 회장은 빌리지 입주는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지만 미리미리 은퇴 계획을 세운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조언한다. “재력이 은퇴생활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죠. 100세 시대에 은퇴하고 20년, 3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인들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경향이 있죠. 지나친 헌신으로 은퇴 후 자신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솔직히 우리 나이가 되면 자식보다 배우자, 친구가 더 소중합니다.” 김 회장은 건강과 재력 외에 성공적인 은퇴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은퇴 후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했다.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쓸지 몰라 난감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평소 좋아하는 운동이나 취미를 준비해놓는 것도 중요해요. 라구나우즈가 최고의 은퇴촌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죠. 이곳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다들 바빠요(웃음).”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많은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포토그래퍼 박성원 작가, 성악가의 꿈을 라구나우즈에서 이루고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소피아 최 회장, 춤을 사랑하는 동호인들을 모아 7년째 고전무용 춤방을 열고 있는 김영옥씨,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가 그리 좋더냐’ 훈남 이수일로 변신한 연극반 채한경씨,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에서 이제는 라구나우즈 미술선생님이 된 이상락씨, 그리고 여전히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배려하며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미스터&미세스 손까지…. 라구나우즈 빌리지가 꿈의 은퇴촌으로 불리는 이유는 기막힌 골프코스와 수영장, 럭셔리한 클럽하우스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여전히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라구나우즈 빌리지가 아름다운 이유다. 라구나우즈 빌리지는?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라구나우즈 빌리지’는 라구나우즈 시 안에 있는 은퇴 마을이다. 현재 1만2736세대, 3만6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빌리지 안에는 5개의 수영장과 36홀의 골프코스, 테니스코트, 도서관, 극장, 우체국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있다. 라구나우즈에 입주하려면 조합(HOA – Home Owner’s Association)에 가입해야 하는데 크게 협동조합(Co-Op)과 상호조합(Mutual)으로 나눠져 있다. 협동조합의 경우는 조합이 소유주로서 입주자는 집이 아닌 조합회원권(Stock Certificate)을 구입하면 된다. 상호조합의 경우는 콘도 내부 수리와 관리를 소유주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 상호조합과 협동조합의 가장 큰 차이는 구입한 집을 임대해줄 때다. 협동조합의 경우는 1년 동안 6개월 이상 임대를 줄 수 없다. 상호조합은 임대에 대한 제약이 없다. 따라서 투자를 위한 임대 목적으로 은퇴촌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는 상호조합 콘도를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라구나우즈에 입주하려면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반드시 55세 이상이어야 하며, 집값은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 -------------------------------- 라구나우즈 빌리지 웹 사이트 lagunawoodsvillage.com 한인회 웹사이트 lagunawoodskac.com
- 2017-07-0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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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에게 더 절실한 멘토를 두자
-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을 알라”라 강조했고 삶의 철학, 지침이 되고 있다. 다른 많은 성현이 자기 성찰을 화두로 삼는 바도 같은 맥락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마음 속은 모른다. 스스로 잘 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모르는 경우도 많을 뿐만 아니라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조셉 루프트와 해링턴 잉햄이 만든 “조해리의 창”에서도 자기를 잘 모르는 영역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는 알지 못하나 다른 사람이 잘 아는 자기가 있고 더 나아가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또 다른 영역이 있다. 숨겨져 있는 재능을 끄집어내는데 다른 사람의 시각이 필요할 때도 있다. 부모의 세심한 관찰로 어릴 때부터 자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집중 키움으로써 세계적 인물로 우뚝 서게 한 사례도 많다. 자기계발의 조력자로서 멘토가 필요하고 근래에 들어 크게 부상하고 있다. 멘토란 명칭은 그리스 이타카 왕국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 출정하면서 왕자의 교육을 친구 멘토에게 부탁했다. 그 친구는 왕자 텔레마커스의 스승, 친구, 상담자 때로는 부모 역할로 왕자를 훌륭하게 성장시켰다. 그 일이 선례가 되어 앞선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보살펴주는 지도자란 의미로 “멘토”란 말이 쓰이게 되었다. 역량, 지식, 지혜, 긍정적 가치관을 고루 갖춘 사람을 멘토, 돕는 일 자체를 멘토링이라 하고 그 상대를 멘티라고 부르게 되었다. 인생 2막을 잘 보내야 성공한 삶이라고 한다. 후반생을 사는 경험과 지혜가 풍부한 시니어지만, 한편으로는 고정관념에 자기도 모르게 사로잡힌 경우도 많이 본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따라 냉정하고도 객관적인 자아를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그런 역할을 하는 멘토를 두면 삶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 필자는 여가활동으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젊은 사진작가 한 분과 꾸준한 교류를 해오고 있다. 평소 촬영한 사진 인화를 위하여 들렸던 사진관의 주인이 당사자다. 어느 날 필자가 촬영한 다육식물의 꽃 사진 한 장을 본 그 주인장은 사진이 좋다며 꽃 사진 공모전에 출품해보라는 권유로 한국사진작가협회 고양지부가 주최한 공모전에 출품했고 작품은 입선되었다. 필자가 사진작가의 길을 가게 되는 출발점 역할을 해주었다. 일상에 만난 인연이 필자의 재능을 계발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렀지만, 인연은 여전히 이어 오고 있다. 사진과 관련한 의문이 있거나 알고 싶은 사항 또는 작품을 만드는 방법, 카메라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필자가 알지 못하고 있는 기술이나 필자가 개선해야 할 점 등을 알려준다. 필자의 사진 생활에 대한 멘토다. 특히 전문가적 일을 할 경우에는 끊임없는 성장이 따라야 한다. 세상의 흐름과 기술은 급변하는 환경을 살고 있다. 자기의 노력도 전제되어야 하지만, 주변에 조력자가 있으면 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자기가 모르는 자기의 또 다른 면이 상존하고 일상의 늪에 빠져 현실에 안주하기에 십상이다. 다른 시선으로 숨겨진 끼를 계발해주고 지도해줄 조력자인 멘토가 큰 힘이 된다. 사람들은 훌륭한 한 분을 자기 인생의 멘토로 삼는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이 스티브 잡스를 멘토로 삼듯이 말이다. 그런 포괄적인 멘토도 필요하나 필자의 경우처럼 하고자 하는 일의 구체적 분야의 멘토를 가까이 두는 것도 실질적 도움이 된다. 특히 아집을 잘 버리지 못하는 후반생을 사는 시니어들에 절실하다.
- 2017-05-1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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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톡사진 전도사' 한국스톡사진작가협회 이석현 회장
- 이석현 회장은 동부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증권맨. 2009년 잠시 은퇴를 했을 땐 코스닥 상장사 대표이사였다.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딸이 미대 진학을 결심하자 딸과 함께 100곳이 넘는 전시회를 보러 다닌 것이 사진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촬영으로 이어졌고, 촬영한 사진이 쌓이면서 다른 동호인들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사진을 팔고 싶다’는 그의 욕구는 ‘스톡사진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될 때까지 독학하도록 만들었다. 지금은 스톡사진 전도사를 자처하며 다양한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스톡사진작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는 시니어들에게 스톡사진을 꼭 추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스톡사진 작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돼줘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여유 있는 은퇴자들에게 딱 맞는 일이죠. 스톡사진 작가로 자리 잡게 되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직업을 가질 수 있어요. 카메라와 노트북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일이고,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으니까요.” 이 회장이 은퇴자들에게 스톡사진을 권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상속이다. “사진가의 지적재산권은 사후 70년간 보장돼요. 예를 들어 정말 잘 팔리는 스테디셀러를 보유했다면 그 혜택은 자녀에게로까지 이어질 수 있어요.” 그는 스톡사진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사진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려야 하는 사진이니까 다를 수밖에 없죠. 예를 들어 취미로 많이 찍으시는 새 사진 같은 것들은 절대 팔리지 않습니다. 파란 하늘의 구름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좋아하는 사진과 시장이 좋아하는 사진은 달라요. 시장의 요구를 파악한 다음 주제에 맞춰 촬영을 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회장은 또 스톡사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키워드라고 말했다. “결국 소비자들이 사진을 보게 되는 계기는 키워드예요. 검색에 대한 결과로 만나게 되니까요. 키워드는 가급적 많이 기재하고, 풍경사진은 시간이나 장소, 날씨까지 반드시 적어야 해요. 그리고 사물에서 연상되는 다양한 감정까지 포함하도록 하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스톡사진 작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스톡사진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것일까? “동북아 3국 중에 스톡사진 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저는 한국에서 유리 아커스 같은 작가가 탄생하면 좋겠어요. 제가 스톡사진 전도사로서 갖고 있는 꿈입니다.”
- 2017-04-1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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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진으로 수익 올리는 ‘스톡사진’
- 은퇴한 시니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취미 중 하나는 사진이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70~80년대 장롱 속 깊숙이 모셔두었던 은색 니콘은 지금은 은퇴자가 된 시니어들의 로망이었다. SNS가 발달하면서 사진은 이제 개인 생활을 기록하는 도구가 됐고, 가벼운 외출이나 여행을 할 때 좋은 정보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다 보면 다른 욕구가 생긴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은 사진을 찍고 싶다. 막연한 바람은 아니다. 스톡사진의 세계를 이해하면 그 바람을 이룰 수도 있다. 스톡(stock)사진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평상시 보고 읽는 모든 것의 재료로 사용되는 유료 사진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에 올라가 있는 블로그의 외국인 사진이나 신문 지면광고 속 아름다운 자연 배경, 잡지 기사의 맛있어 보이는 음식 등 우리가 만나는 사진 중 상당수는 유료로 판매하는 것을 사서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금 독자들이 읽고 있는 도 스톡사진 업체와 공식 계약을 맺고 유료 사진을 활용하고 있다. 왜 사진이 팔릴까 보통 팔리는 사진은 갤러리의 액자 속 사진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 팔리는 사진들은 ‘작품’이 아닌 것이 많다. 즉 구매자가 필요로 하는 주제가 있기 때문에 용도에 따라 구매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는 별도의 사진기자를 두고 필요한 사진을 필요할 때마다 촬영해 쓰지만, 모든 사진을 일일이 촬영하는 것은 어렵다. 예를 들어 스테이크 사진이 필요하다고 날고기를 사와 요리를 한다든가, 저 멀리 북아프리카 모로코 사진 한 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사진기자를 비행기에 태워 보내 직접 찍어오게 할 수는 없다. 장소의 제약뿐만 아니라 시간적 제약도 문제가 된다. 여름에 겨울 사진이 필요하다든가, 얼마 전 지진으로 무너진 성당 사진이 필요한데 갖고 있지 않다면 판매용 사진을 사서 써야 한다. 별도의 사진기자가 없는 작은 매체나 개인 역시 저작권법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스톡사진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고사진도 역시 초상권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스톡사진을 쓰는 경우가 많다. 모델과 별도의 계약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사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박’을 친 스타 작가도 적지 않아 스톡사진 업계에서 소위 ‘대박’을 친 대표적인 사진작가는 유리 아커스(Yuri Arcurs)다. 덴마크인인 그는 2005년에 스톡사진을 시작해 연매출 20억원 정도를 올리는 스타 작가가 됐다. 이 밖에 특정 주제의 사진들로 큰돈을 버는 작가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나뭇잎만 전문적으로 찍어 올리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각종 그래프를 일러스트로 창작해 큰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사진은 경제신문이나 주간 경제지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미지다. 스톡사진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사진작가들이 올리는 사진의 주제가 대부분 명확하다. 전문성이 확보되면 사진의 품질을 올리기도 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주제를 소화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유사한 주제를 다룰 경우 그 작가의 작품을 먼저 찾는 ‘단골’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시니어들이 스톡사진 작가라는 직업을 노려볼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니어들은 대부분 은퇴 전까지 특정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일한 전문가들이다. 전문적인 시설이나 장소에 접근하기도 용이하고, 어떤 것들이 가치가 있는지도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또 일반 사진가들은 엄두를 못 내는 촬영 협조도 쉽게 받아낼 수 있다. 스톡사진 작가가 되는 방법은? 스톡사진 작가가 되려면 일종의 심사를 위한 사진 작품집(포트폴리오)을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이는 스톡사진 업체마다 차이가 있는데, 일부 업체의 경우는 작가 등록 과정에서 100장의 사진을 요구하기도 하고, 회원가입만 하면 바로 사진 업로드가 가능한 업체도 있다. 전문가들은 스톡사진 심사용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는 게 좋을지, 업체를 어디로 선정하는 게 자신에게 유리할지 심사숙고하라고 조언한다. 스톡사진 업체는 일반적으로 매크로 사이트와 마이크로 사이트로 나뉜다. 매크로는 독점적 권한을 갖는 사진만 취급하는 업체들인 반면, 마이크로 사이트의 사진들은 다른 업체에서도 볼 수 있다. 작가 입장에선 여러 사이트에 사진을 팔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각 업체의 제도와 약관 등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외국 업체들도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해 일부 스톡사진 사이트는 번역 없이 계약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수익은 계약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매크로 사이트의 경우는 50%까지 수익 배분을 보장해주기도 하지만, 비독점 작가들을 상대로 하는 사이트의 수익 배분은 15%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사진이 판매되는 비용도 제각각이다. 매크로 사이트의 경우 사진 가격은 500달러까지 올라가지만, 마이크로 사이트의 사진가격은 10달러 내외가 일반적이다. 따라서 한 업체를 통해 큰 물고기를 잡을 것인지 여러 업체를 통해 작은 물고기를 많이 잡을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해서 결정할 일이다. 해외에는 여러 업체에 한꺼번에 사진을 올려주는 picWorkflow 같은 프로그램과 각 업체에서의 수익 관리를 도와주는 Stockperformer.com과 같은 사이트가 인기를 끌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나? 어떤 종류의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대표적인 스톡사진 사이트를 둘러보라. 인쇄물의 배경으로 많이 쓰이는 잔디 사진 같은 자연을 소재로 한 사진에서부터 명함을 들고 있는 비즈니스맨, 청진기를 들고 있는 의사 같은 인물사진, 특정 장소와 위치를 보여주는 사진 등 그 종류는 무척 다양하다. 이 중 자신이 자주 접할 수 있는 혹은 자신 있는 분야의 주제를 정한 뒤 기존 작가의 작품들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즉 매체나 광고주, 디자이너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들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고, 배경은 어떻게 처리를 하는지 등을 참고해 작품활동을 해나가라는 조언이다. 사진 촬영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는 사진 구매 고객을 한국인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상당수 스톡사진 업체들은 전 세계의 매체들과 광고기획사, 출판사 등을 고객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한국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 또 인물사진의 경우는 모델이 초상권을 허락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동의서 같은 문서를 반드시 받아놔야 판매가 가능하다. 사진 품질에 대해서는 큰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 광고 제작사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스톡사진 업체들은 고품질의 사진만을 요구하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DSLR 카메라가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의 품질만으로 충분하다. 고객이 원하는 주제가 담겨 있는 사진이라면 명암이나 밝기 등 간단한 보정만으로도 충분히 팔릴 수 있다. 물론 전문가들은 적어도 6개월 정도는 팔리지 않을 것도 각오하고 처음부터 높은 소득을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또 꾸준히 작품을 올리는 것이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비결이라고 귀띔한다.
- 2017-04-1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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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어드바이스] 시니어는 뭐든 잘한다! 배낭여행 베테랑이 되어보자
- 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퇴임 후 예순두 살의 나이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西安)을 잇는 1만2000km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침대에서 죽느니 길에서 죽는 게 낫다”고 말한 그는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여행을 통해 꼼꼼히 기록했다. ‘나이 듦’은 생각하기에 따라 젊음보다 오히려 장점이 많을 수 있다. 속도를 늦춰 살고 여유 있게 세상을 바라보면 된다. 이미 쓴 노트의 페이지는 되돌릴 수 없다. 아직 남아 있는 빈 여백에 새로운 인생 이야기를 쓰는 일, 지금 바로 시작하자. 이 글은 필자의 현장 경험을 가감 없이 반영한 ‘생생 정보’다. 여행지 선택, 어떻게 해야 하나? 전 세계의 유명인들이 망명국으로 선택한 곳은 유럽이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그들이 유럽을 정착지로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럽은 소도시별로 다양한 매력이 있다. 유럽 여행 좀 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여행지를 나라가 아닌 도시로 구분 짓는다. 다양한 ‘인문’을 접할 수 있는 것 이 유럽 여행의 큰 매력이다. 또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편이라서 운치 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어느 계절이 여행하기 좋을까? 여행 갈 때는 좋은 계절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이다. 봄이 가장 좋다. 여름이나 가을도 무난하다. 유럽의 여름은 지중해성 기후라 한국보다 훨씬 뜨겁지만 대신 습도가 낮다. 더우면 바닷가 근처에서 머물며 해수욕을 즐기면 된다. 가을 단풍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으며, 겨울에는 설경을 감상할 목적이 아니라면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북유럽 쪽의 겨울은 낮이 아주 짧다. 오후 3시쯤 해가 지기 때문에 관광할 시간이 너무 짧다. 겨울 여행은 긴긴 밤 속에서 보내는 날이 많을 수도 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굳이 타지에서 돈 써가면서 고생할 필요는 없다. 비자 등 각 나라별로 주의해야 할 사항 유럽의 많은 나라가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을 맺었다. 솅겐조약은 180일 이내에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는 규정이다. 그래서 솅겐국 내에서 총 체류가 90일을 초과하지 않으면 된다. 한 달 체류는 문제되지 않는다. 참고로 유럽연합(EU)은 회원국 총 28개국에서 영국이 탈퇴(2016년)하면서 27개국이 되었다. 알기 쉽게 권역별로 정리하면, 서유럽권(프랑스, 이탈리아, 몰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독일,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동유럽권(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폴란드, 헝가리), 북유럽권(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발트 3국(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이다. 숙소 구하기와 추천 사이트 소개 여행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숙박이다.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겠지만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독채를 빌려 쓰는 게 좋다. 외국에는 캠핑시설이 엄청 잘되어 있다. 자동차를 렌트해서 여행할 경우 캠핑장을 적극 활용하면 된다. 외국의 시니어들은 값싼 호스텔을 많이 애용한다. 단, 호스텔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휴식을 취하기 힘들다. 숙박기간은 미리 정할 필요가 없다. 일단 며칠 동안 지내보고 더 연장할 것인지는 그때 정해도 늦지 않다. 사람 마음은 늘 바뀌게 마련이다. 또 한 가지, 숙소를 서로 바꿔서 지내는 방법도 있다.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가능하다. 이동을 많이 하지 않으면 경비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추천할 수 있는 대표적 해외숙박사이트 에어비앤비www.airbnb.co.kr 트립어드바이저www.tripadvisor.co.kr 익스피디아www.expedia.co.kr 부킹닷컴www.booking.com 여행 경비 줄이는 방법 우리나라 환율을 기준해서 환율이 낮은 나라를 선택하면 된다. 참고로 동유럽이나 발트 3국은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 피서철의 유명 관광지를 피하는 것도 경비를 아끼는 방법이다. 환율이 낮은 나라라도 피서철에는 여행객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행태가 일상화되어 있어 조심해야 한다. 선진국도 다르지 않다. 신용카드와 현금,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여행 중에 쓸 카드는 미리 만들어가는 게 좋다. 분실이 염려되겠지만 해외 현지인들이 한국에서 만든 카드를 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기 때문에 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비상시에 쓸 현금은 옷 속이나 자신만 아는 비밀스러운 곳에 넣어둔다. 여행 가방은 최대한 간편하게 싸라 여행은 가볍게 해야 한다. 휴식을 하러 떠난 여행지에서 많이 가져간 짐 때문에 이런저런 부담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의 골목들은 한국과 달리 엄청나게 울퉁불퉁하다. 옛것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기에 결코 편한 길이 아니다. 부족한 물품은 현지에서 구입하면 된다. 실제로 의류 등은 한국보다 훨씬 싸다. 최악의 영어 실력, 여행지에서 괜찮을까? 각 나라별 언어를 익힐 시간은 없다. 영어만 할 줄 알면 어디선가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영어 실력이 최악이라면 짧고 간단하게 말하면 된다. 어린아이가 이해할 정도로 쉽게 언어를 구사하면 상대가 충분히 알아듣는다.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현지인들도 영어 실력은 나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 영어를 못한다고 절대 고민하지 말라. 무엇보다 전 세계 공용어인 ‘제스처’가 있으니 여행에 있어 언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해본 적 없는 배낭여행, 어떻게 하나? 모든 일이 숙달되기까지는 누구나 초보 시절을 겪어야 한다. 처음부터 베테랑은 없다. 패키지여행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배낭여행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생하고 돈 많이 쓰는 여행을 왜 하는지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배낭여행의 매력을 백번 설명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그러나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지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방법이 있다. 패키지여행을 자유여행으로 바꾸면 된다. 패키지여행을 가서 가이드 안내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일행들에서 빠져나와 자유여행을 해보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패키지여행 반 자유여행 반으로 구성된 이색적인 여행 프로그램들이 많다. 패키지여행이 온전한 배낭여행보다는 안전성을 보장해주니, 그렇게 몇 번 실행해보라. 어느새 배낭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여행자 보험, 반드시 들어야 하나? 여행자 보험은 3개월을 기준으로 한다. 물건을 잃어버리면 그 지역 경찰서에 가서 확인서를 받아오면 된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험을 청구하면 의외로 황당할 때가 많다. 잃어버린 물건 가격에 상관없이 소정의 액수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물건 변상은 기대 이상으로 박하지만 한 푼도 못 받는 것보다는 낫다. 또 현지에서 몸이 아플 경우 병원에 가는 데 도움을 준다. 강도를 만났을 때 대처법 여행지에서는 가끔 ‘강도’를 만나기도 한다. 특히 치안이 안 좋은 나라에서는 강도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여행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행지의 도둑들은 혼자 행동하지 않고 대부분 두세 명이 함께 움직인다. 이들은 처음에는 ‘여행자’인 척하고 따라 붙는다. 그러고는 경찰이라고 하면서 ‘여권’을 보여달라고 한다. 이럴 때는 재빨리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제복을 입었는지 확인부터 하라. 말대꾸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그들의 허점을 먼저 공략하면 된다. “제복을 입지 않았군요?”라고 말하거나 ‘경찰 증명서’를 보여달라고 하면 그들은 도망가기 바쁘다. 동양인들에게 접근하는 이들은 ‘푼돈’을 뜯으려는 자들이지 사람까지 해치려는 생각은 안 한다. 예방접종주사, 꼭 맞고 가야 하나? 예방접종을 하고 가면 훨씬 안전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방주사 비용은 생각보다 비싸다. 특별히 ‘위험지역’이라는 보도가 없는 나라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여러 지역을 자주 이동하지 않는다면 전염병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아플 때 도움 받는 법 현지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단 젊은 약사가 있는 곳을 선택하라. 나이든 약사는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해서 설명이 어렵다. 현지에서 병원에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픈 곳에 대해 유창한 영어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치료를 안 해주는 병원도 있다. 이럴 때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집 도움을 받아라.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인터넷으로 찾으면 가능하다. 교통수단 이용 방법 여행지에서 이동은 필수다. 인터넷으로 미리 교통 정보를 알아보고 가겠지만 이 방법보다 유용한 것은 현지에 도착해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찾는 것이다. 친절한 가이드가 있는 곳도 있고 달랑 지도 한 장만 주는 곳도 있다. 상황에 따라 가이드에게 질문을 하면 된다. 특히 어려운 지명은 발음이 어려워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으니 메모지에 써서 보여줘라. 그들은 전문가다. “싼 것을 원한다”고 말하면 2클래스를 알아서 척척 끊어줄 것이다. 이런 과정이 익숙해져도 직접 티켓 창구로 가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라. 자동기계를 잘못 이용하면 티켓 값을 순식간에 날릴 수 있다. 티켓을 발부받으면 정확한 날짜에 예약이 되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정확한 날짜가 아닌 ‘이틀 뒤’라는 식으로 말하면 그들의 날짜 계산이 잘못될 수도 있다. 여권을 잊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여행 중에 여권은 생명줄과도 같다. 복사본을 준비해가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여권을 다시 만들어야 할 경우를 대비해 증명사진 두 장 정도는 미리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여권을 잃어버리면 가까운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해야 하는데, 큰 도시의 경찰서는 이런 과정이 훨씬 복잡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작은 파출소를 선택해서 신고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고 후 그 나라의 수도에 있는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면 임시 여권을 만들어준다. 계획했던 여행 날짜만큼 충분히 머물 수 있다. 국세환급금(Tax Refund) 받는 요령은? 여행지에서 특산물을 살때는 ‘Tax Refund’가 표시된 현지 숍에서 사라. 물건을 구매했다고 말하면 영수증을 발급해준다. 말하지 않으면 절대 영수증 발급을 안 해준다. 영수증은 모아놨다가 마지막으로 여행하는 나라 공항에서 제출하면 된다. 대부분은 자국의 영수증만 환급해준다. 다른 나라의 영수증은 ‘Tax Refund’ 바로 옆에 있는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푼돈이라도 아끼면 적지 않은 돈이 된다. 기타 주의해야 할 사항들 여행지에서는 늘 변수가 있다. 이럴 때는 벌어진 상황에 맞춰 계획을 빨리 바꿔야 한다. “끝까지 해볼 테야” 하는 고집이 더 큰 변수를 일으킬 수 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에 한국에 비상연락책을 두어 명 구해놓는다. 현지에서 일이 생기면 필자의 블로그(www.sinhwada.com)에 댓글을 남겨도 된다. 인터넷의 세상은 생각보다 도움이 많이 되고 가깝고 빠르다.
- 2017-02-0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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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하리 창문’으로 재능 끄집어 내기
- ‘조하리 창문’은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자기 발견 방법이다. 앞의 사진처럼 “타인이 아는 나와 타인이 모르는 나” “내가 아는 나와 내가 모르는 나”를 축으로 하여 4개의 창문으로 구분한다. 필자는 이 이론을 취미개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고 실제 경험이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조물주는 인간을 창제할 때 평등을 주었다 한다. 잘할 수 있는 재능, 즉 끼도 마찬가지지 싶다. 어릴 때부터 그 끼를 발견하여 키워온 사람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이 경우는 부모나 학교 선생이 그 재능을 알아보고 키워준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성공 직업의 폭이 좁았다. 대통령이 되거나 판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한때는 군인으로서 장성의 꿈을 꾸기도 했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스포츠맨이나 연예인을 꿈꾸고 그 외에도 자기 나름의 다양한 미래 희망을 이야기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한 준비에 매달려온 지난 날이었다. 그런 결과는 창의성이 가장 뒤처진 나라로 낙인이 찍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뿐만 아니라 은퇴를 한 베이비붐 세대들 또한 날로 늘어나는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어느 조사에서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이 없어서 집안에서 뒹굴뒹굴하게 되어 ‘삼식이’로 부인들의 잔소리를 듣는다 했다. 여가활동을 위한 준비를 못 해서다. 서구인의 경우는 은퇴를 무척이나 즐거워한다. 미리미리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기 인생의 출발점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과연 잘할 수 있는 끼가 없을까? 우리 세대는 전 반생의 삶에서 가족이나 직장을 위하여 매달렸다. 생존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여가생활은 늘 뒷전이었고 자기가 하고 싶은 꿈도 접어두기 예사였다. 그런 세월을 살다 보니 접어둔 꿈 자체도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다. 시니어 세대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꿈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우선은 은퇴로 말미암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수명도 늘어나 그 시간이 길다. 다시 말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직장인으로 살 때 늘 시간에 쫓기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날마다 일요일을 사는 셈이다. 하릴없이 무료하게 보내는 시간은 고통이다. 장수시대에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돈이 없이, 아프면서 오래 사는 것보다 하릴없이 오래는 사는 것이라 한다. 1980년대 초에 인기리에 불렸던 팝송 ‘다니엘 분’의 'Beautiful Sunday' 가사처럼 아름다운 일요일, 기다려지는 그런 일요일이어야 한다. 취미활동이나 평생학습 또는 봉사활동 등의 여가활동이 필요하다. 그런 일 중에서 은퇴자들이 가장 많이 희망하는 분야가 취미활동이다. 그러나 실제는 텔레비전 시청이 1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할 수 있는 취미가 없어서라는 은퇴자도 많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취미개발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다행스럽게 꾸준히 해오고 있는 취미가 있다면 문제가 아니지만, 그렇지 못하면 만들어야 한다. 간혹 “지금 배워서 뭐하려고?”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보내야 할 노후 시간이 너무 길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꼭 해야 할 의무적 시간을 제외한 순수 여가가 상상 이상이다.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또 나이가 들면 신체적 변화로 잠자는 시간도 줄어들어 여가는 더 늘어나는 꼴이어서 더욱 그렇다. 어떻게 취미를 개발할 것인가? 필자는 60살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진작가로 후반생을 활기차게 보내고 있다. 시작 시점에서 환경은 열악했다. 사진 솜씨는 초보자 그대로였고 장비 또한 똑딱이라 부르는 소형 카메라가 전부였다. 처음엔 단순한 취미로 그냥 한번 해보려고 했을 뿐이다. 사진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만난 한 여인이 발견해준 필자의 사진 재능을 믿고 사진작가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 계기를 통하여 삶의 새로운 방향이 열린 셈이다.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로 자신이 모르고 있는 재능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조하리 창문’ 과 같이 ‘스스로는 모르고’ 있으나 다른 사람이 볼 때 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재능을 다른 사람을 통하여 발견해 내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하여 그동안 자주 만나던 동창이나 직장인보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필요해진다. 기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타성에 빠져있게 마련이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보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은 또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어서다. 자기는 모르는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발견하는 ‘조하리 창문’도 이용해볼 만 하다
- 2017-01-1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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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시니어들의 ‘한 달’ 별장 만들기 좋은 도시들❶
- 이유 없이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곳에는 으레 세계적인 부호나 유명한 배우들이 별장을 짓고 살지만 그 도시가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 여행자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 도시에서 한 달 정도만 살면 별장과 다를 바 없다. 이번 호부터 아름답고 특별한 별장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위해 유럽의 멋진 도시들을 골라 시리즈로 소개한다. 글·사진 이신화( 저자, www.sinhwada.com)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소도시 얼마 전 “폴란드에서 사는 것은 어때?”라고 필자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지인이 있다. 평생 ‘일이 내 삶의 전부’라며 살아온 그도 ‘딴 나라’에서 살 생각은 가끔 하나보다. “폴란드는 아닌 것 같아. 체코의 남모라비아 쪽이 더 나아”라고 답변했더니 귓등으로도 들은 척하지 않던 그가 TV의 교양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야 활짝 웃었다. 술 좋아하는 그가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인심 좋은 포도 축제에 홀딱 반한 것이다. 지인이 당장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어떠리. 꿈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삶의 질 차이는 엄청나게 크니까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얻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인이 가고 싶은 나라와 도시가 결정됐을 때 필자가 나서주면 될 일이다. 지인이 홀딱 반한 체코의 모라비아 지방에서 추천하고 싶은 도시는 ‘텔츠(Telc)’다. 필자에게 “체코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텔츠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의 느낌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체코의 대표 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도 자신의 책 에서 “우리나라에서 텔츠보다 아름다운 광장을 가진 도시는 없다”고 말했다. 체코 관광청도 “텔츠는 예술가들과 몽상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랑스럽고 연약한 분위기를 내는 도시다”라고 소개한다. 텔츠는 주관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매력이 있는 도시다. 특히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대도시 프라하보다 물가가 50% 싼 모라비아 지역 모라비아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텔츠는 프라하에서 150km, 브르노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다. 관광객이 90%나 되는 복잡한 대도시 ‘프라하’를 벗어나 모라비아의 가장 큰 도시 ‘브르노’에 도착했을 때 체감하는 것은 ‘물가’다. 과장 없이 50% 정도 물가가 싸다. 쉽게 예를 들면 커피 값이나 와인 한 잔 값이 1유로를 조금 웃돈다. 브르노를 떠나 텔츠 역에 도착해 10여 분 정도 걸어 호르니브라나 문을 들어서면 올드 타운의 자하리아스(Zacharias) 광장이다. 광장 주변에는 엇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삼각형 모양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텔츠는 12세기에 로마네스크 교회의 은신처로 언덕 위(해발 522m)의 늪지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목조 가옥이었으나 1530년에 큰 화재가 났고 당시의 시장이었던 자하리아스 폰 노이하우스의 통치 아래 대대적인 재건축에 들어갔다. 가옥들은 르네상스식 석조물로 바뀌었고 타운을 에워싼 성벽과 인공 연못도 요새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또 한 번 화재가 일어났는데 그때도 같은 방식으로 재건축을 했다. 시장이 사망한 뒤 이 도시는 더 이상 개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덕분에 유서 깊은 마을(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될 수 있었다. 텔츠에는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된 85개의 구조물이 있다. 바로크, 로코코 건물이 길게 이어진 유네스코 도시 광장 옆으로는 긴 회랑처럼 한 몸으로 붙어 있는 건축물이 길게 이어져 있다. 한 몸이지만 제각각 모양새와 색깔을 달리한다. 건물의 정면은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분홍색, 하늘색, 노란색, 흰색 등으로 칠해져 있다. 뷔르게하우스(Burgerhaus Nr.15)는 다른 집과 달리 건물에 장식물이 달려 있어 쉽게 눈에 띈다. 또 한 곳은 미하일 베커 시장의 집인 61호 저택이다. 미하엘 베커는 빵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훗날 텔츠 시장에 당선되었다. 그의 집은 스그라피토(sgraffito) 장식으로 1555년에 개축했다. 스그라피토는 텔츠 성에서 일하던 조각가가 개발한 공법으로 ‘긁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석회 반죽을 이용한 작품이나 도자기 제작에 많이 응용된다. 이외 59호, 520호, 522호 저택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광장에는 페스트 종식 기념탑인 성모 마리아의 기둥이 있다. 조각가 다비드 리파트에 의해 1718년에 제작된, 이른바 구름 형식의 바로크 탑. 마리아의 탑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각각 6각형 못이 있다. 13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립된 후 15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개조됐다는 성령성당도 있다. 영화 등 로케이션 현장 ‘텔츠 성’과 종탑 광장 북쪽으로 가면 텔츠 성과 정원이 있다. 고딕 양식의 성은 여느 지역과 달리 소박하다. 14세기, 자하리아스에 의해 지어진 이 성에서는 스그라피토 장식의 벽면과 홀 내의 격자무늬 천장,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다. 1945년까지 리히텐슈타인 포드슈타트슈키 백작이 살았던 이 성이 몰수되자 백작 일가는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현재 성의 예배당에는 자하리아스와 그의 아내, 여러 성인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때때로 음악회가 개최되는 텔츠 성은 영화 촬영지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성 살인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성 뒤에는 16세기에 지어진 성 야곱성당의 종탑(60m)이 있다. 종탑은 멋진 ‘뷰포인트’다. 종탑에 오르면 바로크 양식의 쌍 탑이 두드러진 건물이 눈길을 끈다. 1651~1669년에 제수이트회가 세운 예수회 성당과 대학으로 텔츠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텔츠의 백미는 올드타운을 양 안으로 감싸 안고 있는 울리츠키와 슈테프니츠키 인공 연못. 도시를 복원하면서 만들어진 ‘물의 요새’는 텔츠를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연못 속으로 유영하는 텔츠의 가옥들을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여행정보 교통 정보 프라하 플로렌츠 역에서 매일 2회(13:55, 16:15) 직행버스가 운행된다. 총 2시간 40분 소요. 브루노를 기점으로 찾으면 편하다. 브루노에서는 기차와 버스가 운행된다. 버스는 완행버스처럼 여러 마을에 정차하므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여행 포인트 텔츠 성에서는 각종 이벤트가 펼쳐진다. 다양한 레저도 즐길 수 있다. 정원이나 숲길을 따라 트레킹, 하이킹도 할 수 있다. 여름에는 수영,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이 밖에 산악 바이크, 보트놀이를 할 수 있고 낚시도 가능하다. 기타 정보 메인 광장 주변에 호텔은 물론 펜션 등 숙박업소들이 있다. 직접 만든 수제 와인이 유명하다. 토굴 형태의 와이너리도 방문할 수 있다. 인포메이션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다. 주변 여행지 브루노, 올로모우츠를 비롯해서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의 여행이 쉽다. 알폰스 뮤샤(Alfons Mucha, 1860~1939)의 개막식에서 만난, 체코 문화원에 있는 미하엘라는 미쿨로브스키를 적극 추천한다. 이곳은 알폰스가 오스트리아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다 발길을 멈춘 도시다. 텔츠 안내 사이트 www.telc.eu/, www.discoverczech.com/telc/index.php4
- 2017-01-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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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고록 작업을 완수하다
- 지난 4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자서전을 써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자서전은 필자의 자서전부터 타인의 자서전까지 몇 번 만들어본 경험이 있었다. 그간의 자서전은 당사자를 서너 번 만나 이야기를 듣고 몇 가지 자료와 사진을 받아 책을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자서전 당사자는 이미 고인이 되어 회고록이 되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유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만들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자서전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오산한 것이다. 첫날 유족과의 미팅이 있었다. 미망인과 젊은 두 딸이 참석했다. 주로 이야기를 해 줄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유족들의 기대가 컸다. 아무래도 여자들을 상대하기에는 필자 혼자로는 역부족이고 여자 작가도 동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같은 여자끼리는 터놓고 얘기가 풀리게 되어 있다. 중간에 같이 식사를 하자니 필자 혼자일 때는 불편해했다. 미망인의 입장이나 사연 등 여성들의 민감한 감성도 여자작가라야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동년기자단의 최은주 작가에게 부탁했다. 다행히 수락 받아 함께 참여했다. 최종 목표는 12월15일 1주기 추도식 때 책을 출간하여 고인의 영전에 헌정하는 것으로 했다. 유족 측은 품격 있는 회고록을 만들어야 하므로 진행하다가 안 되면 굳이 추도식에 날짜를 맞추지 말고 연기해서라도 책을 제대로 만들자는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점점 더 12월15일로 목표일자가 굳어졌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대치동에 있는 고인의 회사에 모여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했다. 매주 한 번도 빠짐없이 대치동 언덕길을 올라 회사에 갔다. 처음에는 전철역에서 내려 버스 타고 서너 정거장을 가야 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전철역부터 걸어 다녔다. 위치가 모호해서 삼성역, 선릉역, 대치역에서 각각 30분 정도 소요되었다. 여름을 지나 겨울까지 무려 8개월의 대장정이었다. 늘 바쁘게 활동하던 시니어들이 고정적으로 시간을 정해 놓고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한창 바빠질 때쯤 제의받은 동유럽관광 기회도 포기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20차례의 미팅에 더 해 마지막 달에는 아예 매일 출근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쓰던 컴퓨터도 노후 되어 기능이 떨어져 업그레이드된 컴푸터가 필요했던 차에 고인이 쓰던 컴퓨터를 사용하기도 했다. 회고록 마무리를 위해서는 일주일에 한번으로는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고인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의 몇 배의 활동을 한 거인이다. 명문 전주고등학교 출신으로 유가공분야의 회사를 창업하고 강소기업으로 키운 사람이다. 사회적으로도 재경 전주고총동문회장, 초등학교테니스연맹회장, 화서학회 이사장 등 굵직한 명함만도 여러 개였다. 그러므로 활동 반경에 맞춰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다. 고인의 모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전주까지 내려가야 했고, 화서학회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용문산까지도 갔다 왔다. 대부분의 자서전은 자료 부족으로 애를 먹는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자료가 넘쳐 고민이었다. 일대기를 쓰는 데는 좋은 참고가 되었으나 고인에 대한 추모 글만 80여 편이 들어 와 그대로 다 살릴 경우 500페이지가 넘을 지경이었다. 날이 갈수록 고정적으로 시간을 뺀다는 스트레스와 유족 및 지인들의 기대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최은주 동년기자가 바쁜 와중에도 열심히 해줬다. 처음에는 고인에 대해 어렴풋했으나 윤곽이 잡히자 최은주 동년기자의 필력이 물이 올랐다. 몇 시간 씩 만나 이야기한 것을 녹취해서 집에 가서 다시 들으며 원고를 만드는 엄청난 작업량이었다. 둘의 원고를 하나로 합치는 과정도 어려웠으나 팀워크가 좋아 충돌 없이 잘 해냈다. 초반에 고민하던 고인에 대한 호칭도 일인칭으로 할까 관찰자 입장으로 할까하다가 회장으로 통일했다. 날짜에 쫓겨 마지막 손질은 출판사에 맡겼다. 일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인도 주변에 많이 베풀고 존경 받는 훌륭한 분이었지만, 유족 및 지인들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보람이었다. 그들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최선을 다 했다. 드디어 1주기 추도식에 맞춰 회고록이 나왔다. 모두들 책이 잘 만들어졌다며 만족했다. 300여명의 조문객이 모인 추도식에서 고인의 영정 앞에 책을 헌정하는 순간의 느낌이 숙연하게 온몸을 감쌌다. 제목은 ‘산더미 위에 돌 하나를 더 얹어라’로 했다. 고인이 사업을 이어 받은 딸에게 해준 말이다. 젊은 나이에 회사 운영을 맡았는데 두 자녀를 키우기도 바쁘지만 공부를 더 해 박사학위 과정까지 받게 한 것이다. 한창 뛸 때는 하나 쯤 더해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현재 전국 유명서점에서도 판매 중이다. 유족들을 비롯한 고인 주변 사람들과 인연, 그리고 최은주 동년기자와의 성공적인 팀워크가 보람이다. 앞으로는 그 어떤 사람의 회고록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은 덤이다.
- 2016-12-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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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들의 ‘한 달’ 별장 만들기 좋은 도시들①
- 이유 없이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름다운 곳에는 으레 세계적인 부호나 유명한 배우들이 별장을 짓고 살지만 그 도시가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 여행자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 도시에서 한 달 정도만 살면 별장과 다를 바 없다. 이번 호부터 아름답고 특별한 별장을 꿈꾸는 시니어들을 위해 유럽의 멋진 도시들을 골라 시리즈로 소개한다. 글․사진 이신화( 저자, www.sinhwada.com) 고요함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소도시 얼마 전 “폴란드에서 사는 것은 어때?”라고 필자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지인이 있다. 평생 ‘일이 내 삶의 전부’라며 살아온 그도 ‘딴 나라’에서 살 생각은 가끔 하나보다. 처음에는 “영국이 좋을 것 같아” 했다가 “미얀마, 라오스는 어때?”라며 급선회했다. 그러다 이번에는 폴란드를 묻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는 아닌 것 같아. 체코의 남모라비아 쪽이 더 나아”라고 답변했더니 귓등으로도 들은 척하지 않던 그가 TV의 교양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야 활짝 웃었다. 술 좋아하는 그는 체코 모라비아 지방의 인심 좋은 포도 축제에 홀딱 반한 것이다. 지인이 당장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어떠리. 꿈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삶의 질 차이는 엄청나게 크니까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얻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지인이 가고 싶은 나라와 도시가 결정됐을 때 필자가 나서주면 될 일이다. 지인이 홀딱 반한 체코의 모라비아 지방에서 추천하고 싶은 도시는 ‘텔츠(Telc)’다. 필자에게 “체코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고 묻는다면 단언컨대 텔츠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들의 느낌은 비슷하기 마련이다. 체코의 대표 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도 자신의 책 에서 “우리나라에서 텔츠보다 아름다운 광장을 가진 도시는 없다”고 적었다. 체코 관광청도 “텔츠는 예술가들과 몽상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랑스럽고 연약한 분위기를 내는 도시다”라고 소개한다. 텔츠는 주관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매력이 있는 도시다. 특히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다. 대도시 프라하보다 물가가 50% 싼 모라비아 지역 모라비아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텔츠는 프라하에서 150km, 브르노에서 서쪽으로 약 70km 떨어져 있다. 관광객이 90%나 되는 복잡한 대도시 ‘프라하’를 벗어나 모라비아의 가장 큰 도시 ‘브르노’에 도착했을 때 체감하는 것은 ‘물가’다. 과장 없이 50% 정도 물가가 싸다. 쉽게 예를 들면 커피 값이나 와인 한 잔 값이 1유로를 조금 웃돈다. 브르노를 떠나 텔츠 역에 도착해 10여 분 정도 걸어 호르니브라나 문을 들어서면 올드 타운의 자하리야슈(Zacharias) 광장이다. 광장 주변에는 엇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삼각형 모양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텔츠는 12세기에 로마네스크 교회의 은신처로 언덕 위(해발 522m)의 늪지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목조 가옥이었으나 1530년에 큰 화재가 났고 당시의 시장이었던 자하리야슈 폰 노이하우스의 통치 아래 대대적인 재건축에 들어갔다. 가옥들은 르네상스식 석조물로 바뀌었고 타운을 에워싼 성벽과 인공 연못도 요새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또 한 번 화재가 일어났는데 그때도 같은 방식으로 재건축을 했다. 시장이 사망한 뒤 이 도시는 더 이상 개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덕분에 텔츠는 유서 깊은 마을(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될 수 있었다. 텔츠에는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된 85개의 구조물이 있다. 바로크, 로코코 건물이 길게 이어진 유네스코 도시 광장 옆으로는 긴 회랑처럼 한 몸으로 붙어 있는 건축물이 길게 이어져 있다. 한 몸이지만 제각각 모양새와 색깔을 달리한다. 건물의 정면은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분홍색, 하늘색, 노란색, 흰색 등으로 칠해져 있다. 뷔르게하우스(Burgerhaus Nr.15)는 다른 집과 달리 건물에 장식물이 달려 있어 쉽게 눈에 띈다. 또 한 곳은 미하일 베커 시장의 집인 61호 저택이다. 미하엘 베커는 빵 만드는 사람이었는데 훗날 텔츠 시장에 당선되었다. 그의 집은 즈그라피토(sgraffi to) 장식으로 1555년에 개축했다. 즈그라피토는 텔츠 성에서 일하던 조각가가 개발한 공법으로 ‘긁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석회 반죽을 이용한 작품이나 도자기 제작에 많이 응용된다. 이외 59호, 520호, 522호 저택 등도 눈여겨볼 만하다. 광장에는 페스트 종식 기념탑인 성모 마리아의 기둥이 있다. 조각가 다비드 리파트에 의해 1718년에 제작된, 이른바 구름 형식의 바로크 탑. 마리아의 탑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각각 6각형 못이 있다. 13세기에 로마네스크로 건립된 후 15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개조됐다는 성령성당도 있다. 영화 등 로케이션 현장 ‘텔츠 성’과 종탑 광장 북쪽으로 가면 텔츠 성과 정원이 있다. 고딕 양식의 성은 여느 지역과 달리 소박하다. 14세기, 자하리아슈에 의해 지어진 이 성에서는 즈그라피토 장식의 벽면과 홀 내의 격자무늬 천장,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다. 1945년까지 리히텐슈타인 포드슈타트슈키 백작이 살았던 이 성이 몰수되자 백작 일가는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현재 성의 예배당에는 자하리아슈와 그의 아내, 여러 성인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 때때로 음악회가 개최되는 텔츠 성은 영화 촬영지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성 살인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바토리(Bathory, 2008)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성 뒤에는 16세기에 지어진 성 야곱성당의 종탑(60m)이 있다. 종탑은 멋진 ‘뷰포인트’다. 종탑에 오르면 바로크 양식의 쌍 탑이 두드러진 건물이 눈길을 끈다. 1651~1669년에 제수이트회가 세운 예수회 성당과 대학으로 텔츠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텔츠의 백미는 올드타운을 양 안으로 감싸 안고 있는 울리츠키와 슈테프니츠키 인공 연못. 도시를 복원하면서 만들어진 ‘물의 요새’는 텔츠를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한다. 연못 속으로 유영하는 텔츠의 가옥들을 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Travel Data 교통 정보 프라하 플로렌츠 역에서 매일 2회(13:55, 16:15) 직행버스가 운행된다. 총 2시간 40분 소요. 브루노를 기점으로 찾으면 편하다. 브루노에서는 기차와 버스가 운행된다. 버스는 완행버스처럼 여러 마을에 정차하므로 약 1시간이 소요된다. 여행 포인트 텔츠는 작지만 의외로 즐길 거리가 많아 오래 머물러도 심심하지 않다. 텔츠 성에서는 각종 이벤트가 펼쳐진다. 다양한 레저도 즐길 수 있다. 정원이나 숲길을 따라 트레킹, 하이킹도 할 수 있다. 여름에는 수영,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이 밖에 산악 바이크, 보트놀이를 할 수 있고 낚시도 가능하다. 골프장도 세 곳(www.siskuvmlyn.cz, www.czgolf.cz, www.czgolf.cz/golf-resort-telc)이나 있다. 기타 정보 메인 광장 주변에 호텔은 물론 펜션 등 숙박업소들이 있다. 직접 만든 수제 와인이 유명하다. 토굴 형태의 와이너리도 방문할 수 있다. 인포메이션 직원들이 매우 친절하다. 주변 여행지 브루노, 올로모우츠를 비롯해서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의 여행이 쉽다. 알폰스 뮤샤(Alfons Mucha, 1860~1939)의 개막식에서 만난, 체코 문화원에 있는 미하엘라는 미쿨로브스키를 적극 추천한다. 이곳은 알폰스가 오스트리아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다 발길을 멈춘 도시다. 브루노에서 슬로바키아로 가는 길목에는 포도밭이 많다. 가을 수확 시기에 맞춰 가면 금상첨화다. 텔츠 안내 사이트http://www.telc.eu/, http://www.discoverczech.com/telc/index.php4
- 2016-12-2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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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기자 겸 사진작가 ‘조이스 리’, 용감무쌍한 길 위의 여자
- 파워 블로거이자 미국의 미술 잡지 기자인 조이스 리(Joyce Lee·70)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의 개인 전시회를 가졌다. 그녀는 블로그(‘커피 좋아하세요’)를 시작하면서 사진에 입문하여 미국 곳곳의 자연을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들과 재미있는 이야기로 블로거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60세에 본격적인 기자로 데뷔했다. 그런데 그녀의 전직은 패션 디자이너. 대체 그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강한 제스처와 자그마한 몸, 진한 눈 화장, 쭈뼛쭈뼛 서 있는 머리, 영혼을 빨아들이는 목소리에서는 쉬이 범접할 수 없는 인디언 추장 같으면서 천진스런 어린왕자를 보는 듯했다. “내가 좀 말이 많아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야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렇게 돼버렸어요. 나를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웃음). 그냥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도 있어요.” 조이스 리와의 인터뷰는 꼭 숨바꼭질 같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여전사의 옷자락을 잡고 마냥 헤맸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멈추고 싶은 말들이 오갔다. Art&Culture 매거진 기자로 세 번의 사진 전시회를 가진 조이스 리는 오래전 명동에서 ‘이동희 부틱’을 운영했던 디자이너였다. 나름대로 자리 잡은 전문 디자이너였던 그녀가 미국으로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서른두 살에 낳은 딸이 하나 있어요. 그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 때 막 조기유학 붐이 불었죠. 그때 남편의 형님이 미국에서 살았고, 딸이 유학을 가고 싶다고 해서 보내기로 했어요. 아이를 먼저 보냈는데, 처음에는 나는 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어떻게든 작용을 하기 마련인가보다. 딸의 친구 어머니가 딸에게 충고를 했단다. “그분이 ‘네 엄마가 오든지, 네가 들어가는 게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는 거예요. 바른말을 한 거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식 문제인데, 가게 문 닫고 달려갔어요. 저는 재단사 자격증이 있었던 덕분에 영주권을 얻는 것은 쉬웠죠. 그래서 미국에서도 패션 디자인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미국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조이스 리 부부와 딸은 비장한 각오로 견디며 버텼다. 60세에 시작한 기자로서의 삶 그녀는 2008년 기자로 입사했다. 그때 나이가 미국 나이로 60세였으니 좀 놀랍다. “어느 날 남편의 신장이 멈췄어요. 신장 투석을 일주일에 세 번씩 하면서 남편은 직장을 관두게 됐죠. 그런데 미국에서는 둘이 벌어도 융자를 감당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작은 아파트로 옮겨서 살았죠. 그리고 힘든 시간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으려고 시작한 것이 블로그를 통한 세상과의 소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컴퓨터를 배우고 사진을 시작했습니다. 블로그를 하기 위해서.” 그녀는 다음 블로그의 우수 블로거가 400명이었던 시절에 그 중 한 명으로 뽑힐 만큼 성공적인 블로그 운영을 했다. 하루에 2000명 정도가 다녀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녀의 글을 눈여겨보던 사장이 그녀를 사진기자로 캐스팅했다. “경향신문에 연재되던 안의섭의 라는 만화가 있었어요. 그 네 컷짜리 만화가 정치, 경제, 사회를 다 다뤘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이 여자의 글도 실어보자는 게 잡지사 사장의 의도였다는군요. 그런데 그 의도보다 내가 좀 더 잘했다고 해요(웃음). 하긴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다녔어요. 기자생활을 위해 손톱도 안 기를 정도였거든요.” 그녀는 컴퓨터를 배우고 기자가 된 게 참 잘한 일이라고 거듭 말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써주는 데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는 것이다. “제 첫 번째 라는 책이 나온 게 2012년이었어요. 어느 날 지나가던 사람이 제 책을 들고 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어요. ‘50이 되고 갱년기가 와서 인생이 너무 슬픈데 선생은 60부터 이걸 하셨다니 놀라워요. 제가 60이 되려면 앞으로 10년이 남았는데, 10년을 더 노력하면 무엇인들 안 되겠습니까’라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정신심리학 박사인 김효숙 교수는 조이스 리의 사진을 수천 장 넘게 갖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찍은 사진이 심리치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기자의 시선으로 왜곡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이스 리 사진의 힘일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5일은 일하고 주말에 홀로 미국 대륙의 수천 마일을 오가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연인이 된다. 작은 체구이지만 그녀의 눈빛과 몸짓에서 뜨거운 용트림이 느껴진다. 그 에너지가 견딤의 실체라는 걸 알아채는 데는 얼마 안 걸린다. 20만 번의 셔터 누름, 결국 고장 난 카메라 “닷새 동안 3000마일이 넘는 먼 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다 집에 돌아와 네 시간 정도 잔 후 새벽 3시에 일어나 다시 작업을 시작해 정오까지 마치고 시장을 다녀왔어요.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철인 3종 경기에 나가도 챔피언이 될 거라며 혀를 찼습니다.” 그녀는 다시 태어나면 꼭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 아내가 마음 놓고 여가를 즐기며 쉬엄쉬엄 여행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수없이 다짐한다. 그녀가 사진을 배운 것은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였다. “기자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다룰 줄 알아야 하니까요. 50대 후반의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는데 어찌나 어려운지. 봄여름 학기와 가을겨울 학기 중 네 명의 장학생을 선발해 포토샵을 무료로 가르친다더라고요. 그게 욕심이 나서 열심히 공부했죠. 대상포진이 두 번이나 올 정도로 무리를 했어요.” 카메라 셔터 수명은 대략 15만 번 누르면 고장이 난다고 한다. 그러나 조이스 리의 카메라는 5년 정도 사용하면서 20만 번을 찍었고 결국 셔터는 고장이 나고 말았다. 셔터의 감각을 익히고자 했던 그녀의 집중력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제가 싫어하는 게 왜곡이에요. 그래서 어안렌즈는 아예 구매를 안 했어요. 줌도 잘 안 써요. 그런데 작가라는 이름을 안 쓰는 이유는 아직 카메라를 못 다루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냥 지나가다가 좋으면 찍거든요. 그러니 작가라고 말하지 못하죠.” 그녀는 글쓰기에도 욕심을 부린다. “현재 집필중인데, 2년 후에 소설을 발표할 거예요. 제가 미국 서부의 내셔널 공원을 다 가봤는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 그랜드 티톤이었어요. 그곳에 가면 엘크 떼 수백 마리를 아침에 만날 수 있어요. 저는 엘크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남성성을 좋아해요. 그리고 버펄로, 울창한 숲, 거대한 연못과 그리즐리, 스네이크 리버도 있죠. 그곳에 가면 대자연을 만날 수 있어요. 소설은 그곳에서 일어나는 서정적인 이야기들이에요. 세계에서 최초로 한국어와 영어로 쓰인 인터넷 소설이 될 거예요.” 나의 전생은 ‘인디언’ 역마살을 타고난 여자, 조이스 리는 어느덧 9년차 기자가 됐다. 인터뷰 후 얼마 있다가 잡지가 나오는데 이번에 그녀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인디언 문화다. “요즘 미국 사람들이 자기들 역사는 아니지만 본래 그 땅의 주인공들인 인디언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어요. 저는 이전부터 인디언에 대해 관심이 굉장히 많았는데, 3~4년 후에는 기자의 눈으로 만난 인디언들 얘기를 책으로 쓸 거예요.” 원래 미국의 인디언들은 거의 서부에 있었다고 한다. 동부에는 체로키족이 있었는데 이들이 유럽인을 가장 먼저 만나 백인 중심 인텔리 사회로 편입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서부에는 아직 야생의 문화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녀의 인디언에 대한 관심과 집착은 남다르다. 심지어 과거에 열렸던 조이스 리의 사진전 이름도 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전생에 인디언이었다고 주장한다. “난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들에 대한 알 수 없는 연민이 있거든요. 그리고 언덕에서 붉은 계곡을 내려다볼 때 느끼는 감동 같은, 마음으로 통하는 데자뷔를 느껴요. 그것은 굉장한 희열이에요.” 지금 당장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결국에는 인생을 아름답게 채색해준다면 누구라도 그 험한 세상을 향해 달려갈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손주 시후의 일기를 쓰는 여전사 할머니 영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조이스 리의 딸은 지니프러덕션 L.A. 전산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손주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진짜 못해요. ‘0점’만 받아와요. 그래도 자연에 대한 감수성은 굉장히 좋아요. 이 아이에 대한 이야기, 를 요즘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어요.” 는 할머니의 시선으로 손주의 마음을 그려내는 글이다. 독특한 관점이다. “네가 이렇게 자랐다, 할머니는 네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정말 이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현실을 바라보는 하나의 상상인 거죠. 제 딸이 사춘기에 방황을 했어요. 저는 딸이 형제가 없어서 그렇게 방황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손주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요. 손주가 엄마랑 비밀이 있겠지만 저랑도 비밀이 있으면 좋겠어요. 자기편이 있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잖아요.” 손주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은 항상 밝다. ‘빵점 맞으면 어때. 그리고 설마 영어를 못하겠어? 긍정적 시각으로 미래를 보라 이거야.’ 손주 시후에게 항상 희망을 심어주는 그녀만의 특별 도구다. “손주의 자랑이라면 유머가 풍부한 편이에요. 지금 시대는 먹고사는 걱정이 크지 않기 때문에 즐겁게 사는 게 중요해졌잖아요. 이 아이는 그렇게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손자의 개구쟁이 짓을 절대로 야단 안 쳐요. 어른을 놀려먹으려고 하는 게 아닌 이상은.” 손주가 어렸을 때 밥을 먹다가 먹던 것들을 컵에다 붓고 손가락으로 주무르는 행위를 자주 했다고 한다. 다른 식구들은 “저걸 왜 내버려둬” 하면서 경악했지만 그녀는 “지금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거다, 2년만 지나면 안 한다”라고 말했단다. 그녀는 손주가 촉감을 익히는 중이니 내버려두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손주 시후에게는 언제라도 미소를 지어주는 할머니다. 틀에 갇히지만 않는다면 시니어와 젊은이의 삶은 다르지 않다 이미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는 조이스 리는 멋진 인생을 살고자 하는 시니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야 이놈아 네 나이가 몇이냐?’ 하는 말이에요. 그 말을 해서 얻는 건 경멸밖에 없어요. 안 그래도 요즘 젊은이들은 노인네를 인류의 한 부족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어렵지만 앞으로 함께 나아가면 좋겠어요. 대화를 통해 지혜를 나눠주되 절대 잘난 척하지 말아야 하고, 나이 같은 건 의식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본능처럼 여겨온 삶의 철학, 느낌과 경험을 축적해 체득한 깊은 진심이 묻어났다. 조이스 리는 틀에 갇히는 것을 거부한다. 간절함을 미끼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한숨 쉬어갈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찾았으면 하는 프레임, 그리고 그 안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그녀의 사진처럼 말이다. 그녀가 세상 사람들에게 간절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 by 조이스 리 몬순기에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대지가 거의 바위로 이어져 있는 계곡 때문에 물이 그대로 강물이 되어 내달린다. 이 물의 힘이 수수만년 이어지면서 협곡이 생기고 겹겹의 층 사이를 깎아내어 아름다운 속살을 드러낸 골짜기가 형성되었다. 산타페의 대표적인 건물은 어도비(Adobe)식 흙집으로, 해발 22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인 이 지역의 혹독한 겨울과 뜨거운 여름을 잘 견뎌내도록 지어졌다. 두께가 50센티미터가 넘는 두꺼운 벽이 외부의 온도를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모래언덕 데스밸리. 여름 5월부터 9월까지는 날씨가 섭씨 50-60도를 웃돌므로 피하고 가을 한철 또는 이른 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은 척박한 사막의 땅에도 봄이면 야생화가 만발하고 동물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어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 2016-12-05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