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면 뭘 할 것이냐는 물음에 농담처럼 나오는 흔히 나오는 대답은 ‘닭이라도 튀겨서 먹고 살아야지’다. 은퇴를 준비하는, 혹은 이미 은퇴한 사람들 중에서 외식 창업을 염두에 둬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리에 즐비한, 어딜 가도 쉬이 만날 수 있는 외식 점포들은 그 고민이 얼마나 많이 현실화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외식 점포를
베이비붐세대의 맏형, 1955년생. 그들은 어떻게 살아왔으며 모든 것이 격변하는 2000년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의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맏형으로서 지탱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1955년생의 대표주자를 만나 그들의 삶과 미래를 파악해보기 위해, 먼저 그 첫 주자로 진수희 前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봤다. 새누리당의 브레인인 여의도연구소
이태리어로 쓰인 파스타 메뉴를 시키면 음식이 나오고 맛을 보고 나서야 ‘아 이게 그거였구나’ 하게 된다. 기대보다 맛이 좋아 ‘또 먹어야지’ 했던 파스타도 다른 곳에 가면 좀처럼 같은 이름의 파스타를 찾을 수 없다. 그렇게 늘 찜찜하게 남았던 파스타의 기억. 이제는 맛있는 추억으로 바꿔볼 차례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파스타, 완전정복에 도전해보자.
어째서 1955년생인가? 지금 1955년생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 격이기 때문이다. 1955년은 전쟁이 끝나고 인구가 본격적으로 팽창하기 시작한 해였다. 이들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던 1962년에 학교에 입학면서 사회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이후 군사정권의 폭압이 극심해지던 1970년대에 20대를, 산업 현장의 역
‘인생 90년’의 시대를 맞이한 장수사회 일본, 10월 13일 간행된 경제시사지 [프레지던트(President)](통권 884호)는 특집 ‘부자 노후 빈곤 노후, 당신은 어느 쪽?’을 기획해 정년 후 꿈의 라이프를 위협하는 6가지 강적을 정리하면서 그 퇴치법을 소개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후의 불안감을 없애는 전문가의 조언을 포함해 그 해소 방법에 대
2번의 암 수술로 장기 9개를 적출하고도 그 누구보다 건강한 인생2막을 살아가는 이가 있다. ‘생존율 1%’라는 암과의 전투에서서 당당히 승리를 거머쥔 ‘암 정벌자’ 황병만씨. 절망을 희망으로 개척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포기암(give up cancer)을 포기함
1985년 그의 나이 서른셋. 직장암 4기를 선고 받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평생 공무원으로 살았지요.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사진도 정형화된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젠 공무원이 찍은 사진 같다는 말은 듣지 않으려고요. 제가 셔터를 누르던 찰나의 느낌을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싶어요.”
그렇다. 그는 한평생 공무원이었다. 1972년 3월 건설부(현 국토교통부) 초급 공무원부터 시
금융권 생활 20년, 돈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는 사람이 있다. 퇴직 후 10년, 불운의 연속으로 실패에 쓴 맛을 본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NGO단체 (사)러브 월드에서 삶의 보람을 찾고 있는 박근배 사무국장이다.
그는 자신을 한때 ‘잘 나갔던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표했했다. 그러나 전혀 거만하거나 거북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희가 청춘을 아느냐?
요즘 한국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배낭여행에 도전하는 TV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이 인기를 모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나 또한 지난 2월 중학교 동창생 7명이 나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와 뜻하지 않게 첫 ‘도쿄번개’(이태문 객원기자는 현재 도쿄에 거주하고 있다)의 행복을 맛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난 9월에는 고등학교 동창생
핸드메이드 주얼리, 테일러메이드 슈트처럼 사람의 손길을 거친 제품들이 가치를 더하는 요즘. 직접 만드는 재미와 합리적 가격, 거기에 자신의 미적 감각까지 뽐낼 수 있는 DIY 인테리어가 주목받고 있다. 비싼 돈 주고 거창하게 리모델링해도 내 마음에 안 들면 그만. 작은 포인트만으로도 집안 분위기를 고풍스럽게 연출 할 수 있는 DIY 인테리어에 도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