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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식 노인, 근감소증 동반하면 폐기능 더 나빠져
- 근감소증이 노인 천식 환자의 폐기능 저하와 관련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근감소증은 나이가 들며 근육과 근력이 줄어드는 현상으로 노년기 삶의 질 악화 요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김태범, 노년내과 장일영, 중앙보훈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원하경 교수팀은 국민건강영양조사(2008~2011년)를 실시, 65세 이상 노인 4천 명을 대상으로 근감소증과 천식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천식을 앓는 노인이 근감소증을 동반하면 근감소증 없이 천식만 앓는 노인에 비해 폐활량이 현저하게 저하된 비율이 약 5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도 폐쇄를 보인 비율도 약 2배가량 높았다. 또한 천식 노인 가운데 신체활동이 적은 그룹은 신체활동이 많은 그룹에 비해 폐활량 저하와 기도 폐쇄로 호흡곤란을 겪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따라서 천식이 있는 노인이 폐기능 저하를 느낀다면, 근감소증을 동반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기에 진단해 근육량과 신체활동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연구책임자인 김태범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실제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대규모 노인 인구에 기반해 근감소증과 천식 사이의 연관성을 밝힌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향후 후속연구를 통해 인과관계를 추가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일영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노인 천식 환자의 근감소를 막기 위해서는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가벼운 체조, 걷기 등의 운동을 꾸준히 하고 단백질 섭취를 병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2022-05-10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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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 준비는 41세부터" 말하지만… 현실은 70대까지 근로
- 100세 시대에 ‘은퇴’와 ‘노후 준비’는 중요한 이슈다. 노후 준비는 40대부터 되어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보통 사람에게 이는 쉽지 않은 사정이다. 가족 부양 때문에 노후 준비 여력이 부족한 40대들은 70대까지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5일 공개된 신한은행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20~64세 경제활동자는 은퇴 후 여유로운 생활을 하기 위해 41.5세부터는 은퇴·노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답했다. 40대는 스스로 은퇴·노후 준비를 시작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고 인식했으나, 실제 은퇴·노후를 위한 재무적 준비가 되어 있는 40대는 15.3%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40대의 은퇴·노후를 준비할 여력이 부족한 이유는 성장기 자녀 양육과 동시에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재무적 준비 부족에 ‘가족 부양’ 영향력 응답률이 30대는 35.1%였으나 40대는 57.0%로 나타났다. 50대가 되어서야 55.3%로 소폭 감소했다. 40대의 재무 상황은 총소득과 소비액 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20대는 혼자 벌고 쓰는 미혼가구가 많아 타 연령보다 총 소득(267만 원) 및 소비액(120만 원) 규모가 낮은 편이나, 30대부터는 기혼 가구가 많아지고 가구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가구 총소득과 지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40대의 가구 총소득은 552만 원으로 30대의 443만 원보다 1.2배 증가했다. 그러나 월 고정 소비액이 279만 원으로 총소득보다 더 많은 1.4배 증가하면서, 부채와 저축·투자액은 소득 증가폭을 따라가지 못했다. 50대가 되어서야 소득 증가폭인 1.1배만큼 소비, 저축·투자액 등이 늘어나며 전반적인 가계 경제가 안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정 소비액을 보면 40대가 가족 부양에 돈을 많이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0대는 월 평균 고정 소비액이 200만 원이며, 식비 51만 원, 교육비 16만 원, 용돈 지급이 9만 원이다. 40대는 월 평균 고정 소비액이 279만 원으로 30대보다 79만 원이 오르는데 대부분 가족을 위해 썼다. 식비가 64만 원으로 올랐고, 교육비가 5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용돈 지급은 16만 원이었다. 50대는 식비 61만 원, 교육비 43만 원으로 줄고, 용돈 지급이 19만 원으로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더불어 40대는 가족을 위한 고정 지출은 많지만 본인의 노후를 위한 저축액은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40대의 노후 자금 저축 금액은 27만 원으로 월 소득 대비 저축 금액을 비교하면 4.9%로 30대와 유사한 수준이었다. 현재 부담하는 지출이 많음에도 40대의 45.7%는 내년 소비 지출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앞으로도 노후를 위한 자금 준비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노후 준비가 어렵다 보니 40대의 절반 이상은 은퇴 후에도 소득 활동을 계속해야 할 것으로 예상했다. 40대의 57.2%가 정년인 65세 이전에 은퇴를 예상했으며, 58.4%는 정년을 넘긴 65세 이후에도 소득 활동을 계속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70세가 넘어서도 일을 할 거란 응답도 33.2%였다. 그렇다면 50~64세의 은퇴 준비 현황은 어떨까. 50~64세의 단 18%만이 현재 노후 준비 상태에 만족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 50~64세 경제활동자는 현재 재무적 은퇴 준비 상태와 무관하게 모두 44~45세에는 노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50~64세는 노후와 관련해 ‘준비되어 있음’ 18.5%, ‘비슷함’ 37.7%, ‘준비 부족함’ 43.8%로 각각 답했다. 재무적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응답한 50~64세의 총자산은 10억 8128만 원으로, 준비가 부족하다고 응답한 이들의 총자산인 4억 5230만 원보다 2.4배인 6억 2898만 원 많았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금융 자산은 1억 6566만 원, 부동산 자산은 8억 5748만 원, 기타 자산은 5814만 원을 보유했는데, 재무적 준비가 부족한 50~64세보다 모든 항목에서 2배 이상 많았다. 재무적 준비자는 월평균 저축·투자액 175만 원 중 69만 원(39.4%)을 노후 자금을 위해 정기저축하는 반면, 준비 부족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80만 원 중 13만 원(16.3%)만이 노후를 위한 저축이었다. 50~64세의 80% 이상은 ‘연금’을 은퇴 후 활용할 주소득원으로 예상했다. 재무적 준비자는 연금과 더불어 모아둔 보유 자산, 투자 수입 등을 은퇴 후 생활비로 활용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반면, 준비 부족자는 노령수당 등 공공지원을 기대하는 비중이 더 컸으며, 은퇴한 후에도 소일거리 수준의 근로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경우도 26.9%로 나타났다. 재무적인 상태뿐만 아니라 비재무적인 측면에서도 재무적 은퇴 준비 여부에 따른 차이가 컸다. 재무적 준비자의 60% 이상은 건강 상태, 은퇴 후 여가·취미 활동, 가족 및 지인 관계가 우수하다고 응답한 반면 준비 부족자는 비재무적인 준비 상태 역시 부족하다고 인식했다. 재무적 준비 부족자의 78.7%는 '생활비 때문에 여력이 없어서', 45.0%는 '자녀를 경제적으로 부양·지원하느라'를 이유로 꼽았다. 50대에서 60대로 은퇴가 다가올수록 가족 부양에 대한 부담은 조금 줄었지만 예상치 못한 목돈 지출이 많았고, 은퇴 후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과소평가했다는 인식도 더욱 커졌다. 그런가 하면, 전 연령대의 과반 이상이 60대 이후 은퇴를 예상하지만, 2030대의 6.4%는 30~40대에 은퇴를 고려하는 파이어(FIRE)족인 것으로 조사됐다. 2030대의 은퇴 예상 평균 연령을 보면, 50대 이전 은퇴를 꿈꾸는 조기 은퇴 계획자는 41세, 정년 이후 은퇴 계획자는 68세로 27세 차이를 보였다. 조기 은퇴 계획자의 월평균 가구 총소득은 381만 원으로 정년 이후 은퇴 계획자보다 23만 원 더 벌었다. 이들의 78.2%는 본인의 경제력 수준이 또래와 비슷하거나 높다고 인식했으나, 정년 이후 은퇴 계획자는 42.6%가 또래보다 낮다고 생각했다. 한편,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는 전국 20~64세 경제활동인구 1만 명을 대상으로 전자우편 설문을 통해 조사·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구성됐다. 지난해 국내 경제활동가구의 월평균 총 소득은 전년 대비 3.1%(15만 원) 증가한 493만 원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486만 원)을 회복했으며, 저·고소득층 간 월평균 가구 총소득 격차는 4년 내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 2022-04-1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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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터서 억울한 일 당했다면… "무료 노동법률 상담 받으세요"
-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는 시니어의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환경에 기반하여, 안심노동환경 조성을 위한 ‘시니어 노동법률상담 서비스’를 시작한다. 11일 시니어 일자리 정책과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춘 일자리를 발굴하고 시니어 맞춤 직종교육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는 ‘시니어 노동법률상담 서비스’를 통해 노동관계에서 겪는 시니어의 고충을 해결하고, 노동권에 대한 인식개선과 취업환경을 개선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서비스 대상은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시니어뿐만 아니라 취업 준비 중인 구직자, 시니어를 채용하고 있는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와 직업상담사까지 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시니어 노동법률상담 서비스’가 마련된 배경은 시니어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증가하지만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의 ‘서울의 노동 동향 2019-20’에 따르면 2020년 서울시의 50세 이상 인구는 370만 2천 명으로 이중 경제활동인구는 198만 3천 명으로 조사됐다. 특히 60세 이상의 경제활동인구는 84만 5천 명으로 지난 10년 간 가파르게 늘어가고 있으며(2011년 대비 33만 4천 명 증가), 20대 경제활동인구(2020년 90만 2천 명)와 유사한 수준이다. 그러나 시니어 대부분은 필수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며, 최저 수준의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놓여있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만큼 임금체불, 부당 해고, 산업재해, 직장 내 괴롭힘 등 각종 노동권익 침해를 당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시니어 노동법률상담 서비스는 4월부터 12월까지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운영하며, 상담을 원하는 이는 사전예약을 통해 시간과 상담 방법(전화, 방문)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해당 일시에 맞춰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를 자유롭게 방문하면 된다. 4월의 경우 4월 28일 목요일에 진행 예정이고, 현재 홈페이지와 전화(www.goldenjob.or.kr 02-735-1919)를 통해 신청 받고 있다. 이에 지난 8일 도심권서울특별시노동자종합지원센터와 ‘고령 구직자 노동법률상담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진행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노동법률 정기 상담 운영을 위한 자원 연계 협력 ▲노동권익에 대한 중요성 확산과 인식개선을 홍보를 위해 상호 협력하게 된다. 도심권서울특별시노동자종합지원센터는 종로구·중구·용산구를 중심으로 서울시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와 권익향상을 돕는 기관이다. 노동상담 및 법률구제, 노동인권교육, 노동단체 활동 지원, 도심권 제조업 노동자 실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희유 센터장은 “주된 일자리 평균 퇴직연령은 49.3세로 퇴직 이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는 시니어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번 협력을 통해 시니어의 노동환경이 점차 개선되어, 현재 일자리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안심노동환경 조성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도심권서울특별시노동자종합지원센터 정숙희 센터장은 “시니어 다수가 종사하는 일터의 경우 소규모 사업장이 많아 노동권 인식 제고 노력이 더욱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협력을 통해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2022-04-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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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돼 돌아가" 천종호 판사가 말하는 ‘소년심판’
-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천종호 판사의 유명한 어록 중 하나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8년 연속 소년 재판을 담당하며 때로는 서슬 퍼런 호통으로, 때로는 뜨거운 눈물로 비행 청소년의 곁을 지켜왔다. 2018년 법원 정기 인사로 소년부를 떠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른들의 방임과 학대, 가난 등으로 인해 내몰린 소년범이 삶을 새로 빚어내도록 돕고 있다. 2017년 인천 초등학생 유괴 살인 사건, 같은 해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 2018년 인천에서 갓 졸업한 초등학생이 또래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 등 최근 몇 년간 이슈가 됐던 소년 범죄들은 소년범 처벌 강화, 소년법 폐지,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의 논쟁에 불을 지폈다. 게다가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의 세계적 흥행과 맞물리면서 이에 관한 여론이 또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소년심판’은 실제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소년 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극화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단순히 가해자나 피해자, 엄벌주의 혹은 온정주의에 그치지 않고 개인과 가족,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다각도로 그린다. 대신 기존 가정법원의 소년부를 소년형사합의부로 명명했고, 현재 소년 재판이 판사 혼자 단독재판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한 명의 부장판사와 두 명의 배석판사가 소년보호사건과 소년형사사건을 모두 담당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천종호 판사는 ‘소년심판’ 제작진에게 자문을 한 장본인이다. 극 중 심은석 판사 역할을 맡은 배우 김혜수 또한 천 판사의 동영상과 책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처벌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 소년과 천종호 판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8년간 소년범들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훈계하고 교화하는데 힘썼으며, 열악했던 소년 재판의 실상을 조명해 개선하려 했다.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선처를 호소하는 가해 청소년을 향해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이 전파를 타면서 주목받았다. 이 장면은 아직까지 인터넷에서 회자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당시 앞에 선 비행 청소년들의 눈물에 흔들리지 않고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 해서 ‘사이다 판사’, ‘천10호’라 불렸으며, 반성의 기미가 없는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기도 해 ‘호통 판사’라는 별명도 붙었다. 천 판사가 소년 재판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하루에 약 100명을 담당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한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3분. 이름 한 번 부르고, 죄목을 확인한 후 앞으로 그러면 안 된다고 당부하고 나면 끝이다. 때문에 호통은 고작 컵라면 하나 끓이는 짧은 순간 동안 강한 울림을 주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터.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호통 치료’는 꽤 효과적이다. 그냥 목청만 대충 높이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리라. “사실 재판정만큼 호통과 안 어울리는 장소도 없어요. TV나 드라마에서 정숙하라고 외치며 법봉을 두드리는 판사를 상상하신 분들에게는 제가 호통 치는 모습이 더욱 낯설어 보이겠죠. 평소에는 다소 내성적인 편입니다. 혼자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하고, 마음도 약해요. 그저 아이들이 다시는 법정에 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호통을 치는 것은 보통 경미한 범죄로 집에 다시 돌려보내는 아이들을 위한 방법이다. 중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호통 대신 그에 맞는 처벌을 내린다. 천10호라는 별명도 소년원에 2년 동안 보내는 가장 무거운 10호 처분을 많이 내린다는 의미에서 파생됐다. “아이들에게 미움을 사거나 원망의 말을 듣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죠.” 그의 호통은 가장 기본 의무인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부모들, 교육자로서 아이들을 이끌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사태를 수수방관하거나 제 몸 사리기에만 급급한 선생님들에게도 향한다. “우리 사회가, 부모들이, 어른들이 아이들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으면 어떡합니까!”라면서 말이다. 근본 원인이야 어찌됐든 일단 부모와 가족에게 심려를 끼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것은 소년 자신이다. 그래서 스스로 ‘잘못했다’고 말하게 한다. 법정에 와서 판사의 이야기만 수동적으로 듣기 보다 스스로 무엇이든 해보게 하는 것이 반성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다. “보통 부모를 향해 꿇어앉고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라거나, ‘사랑합니다’를 열 번 정도 외치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지만 한 번, 두 번 외치다 보면 밖으로 돌던 말이 그 소년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이 느껴져요. 덩달아 부모의 마음에도 울림을 주죠. 그런 뒤 소년과 부모를 껴안게 하는데 그럴 때면 대부분 울음을 터뜨립니다. 서로 부둥켜안고 법정이 떠나가라 엉엉 소리 내 우는 가족도 있어요.” 내던져진 비행 소년의 현실 말로 안 되는 아이들에게는 시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온 ‘그 남자’라는 노래를 개사해서 읽게 시키기도 한다. ‘그 아이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늘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 아이는 언제나 울고 있어요.’ 이 방법은 소년 재판 담당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배운 뒤 바로 실천했다. 아이가 자기 마음을 간접적으로라도 표현하게 하려는 의도다. 물론 법정을 나선 후 부모와 자식이 언제 화해했냐는 듯 다시 돌아설지도 모르지만, 찰나의 순간에라도 마음의 씨앗을 심어주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을까 해서다. 사실 판사들에게 소년재판부 부임은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할 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 판사는 가해 학생들의 대변인을 기꺼이 자처한다. “소년들과 이렇게 진하게 얽힐 줄 몰랐죠. 저 역시 달동네에서 자라면서 극에 달한 가난과 사회의 무관심에 상처받았던 적이 있어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경험 덕에 위기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째서 비행을 저질렀는지,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그 배경과 맥락을 누군가 헤아려준다면 충분히 달라질 거라 믿습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이 봤고요. 소년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책임감이 커집니다.”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호자나 가족의 보호 아래 있는 아이들은 비행을 저질렀을 때 도움을 받아 피해자에게 변상 혹은 용서를 받고 경찰 단계에서는 훈방 조치를, 검찰 단계에서는 기소유예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소년 법정까지 오는 것이다. 이들은 보통 가정 해체, 애착 손상, 가난을 겪고 있다. 죄목을 살펴봐도 경제적 곤궁으로 인한 생계형 범죄가 대부분이다. “전체 소년 사건 중 흉악범죄는 1%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9%의 아이들은 살인, 폭력, 성폭행 등 중범죄와 분명히 차이가 있어요. 슈퍼에서 과자를 훔치다 법정에 서는 아이도 많죠. 스스로 보호할 힘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주위 환경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보호해 줄 어른이 없고, 좋은 동행이 되어줄 친구가 적은 상태에서 아이가 올곧게 성장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죄를 지으면 물론 벌을 내리겠지만, 저에게는 소년들에게 세상을 알려줘야 할 책임이 있고, 판결 이후 찾아올 삶까지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소년범을 둘러싼 가정과 사회의 보호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수준이다. 특히 경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은 보호자가 잘 관리해 재범을 막으라는 취지로 1호 처분을 하는데, 가정이 붕괴된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보니 소년부 판사들이 처분에 어려움을 겪었다. 때문에 천 판사는 대안이 될 수 있는 청소년회복센터(사법형 그룹홈)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국가와 사회가 움직이지 않으니 정말 답답했죠.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며 고생하는 바람에 이명을 얻었지만, 아이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 2016년 청소년복지법 개정을 통해 ‘청소년회복지원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됐고, 2019년 1월부터 국가의 예산 지원을 받게 됐어요. 하지만 아직 시설들이 민간에 의존한 채 운영되고 있고, 국가가 운영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기 때문에 차차 보완이 필요합니다.” 좋은 어른이 좋은 소년을 만든다 현재 대한민국은 소년범을 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 만 10~14세 미만의 촉법소년, 만 14~19세의 범죄소년 등으로 구분한다. 촉법소년은 형사책임 능력이 없기 때문에 형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하더라도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가정법원이 소년원으로 보내거나 보호관찰을 받게 하는 등 ‘보호처분’을 할 수 있다. 이보다 어린 범법소년은 아예 보호처분도 내리지 않는다. 범죄소년은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를 저질러도 형량은 최대 20년으로 제한돼 있다. 이렇다 보니 합법적인 처벌 면제를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의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는 데다 더욱 잔혹해지는 범죄 수위 탓에 촉법소년의 연령을 낮추거나 소년법을 폐지해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천 판사는 환경을 마련하지 않고 무작정 보호처분 기간을 늘리거나 형사처벌을 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소년범에 대한 교화 가능성은 무시한 채 이른 나이에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면 오히려 사회성을 잃고 더 나쁜 범죄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소년 보호처분을 다양화하고 수용 시설을 증설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을 통틀어 소년교도소가 1개, 소년원이 10개로 인구 대비 시설 수가 턱없이 부족해요. 전국의 소년범을 한곳에 모아두면 다 한 패거리가 되어 출소하게 되는 상황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처벌을 강화할 거라면 수용 시설이 먼저 증설돼야 합니다. 출소 이후 저소득층과 빈곤층 아이들의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 교육과 보호를 병행할 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해요. 국가가 아이들의 가정환경을 재편할 수 없으니 청소년회복센터 같은 ‘대안 가정’ 제공을 확대해 아이들의 비행성을 낮추는 방식으로요. 그게 더 현실적이라 봅니다.” 많은 이가 소년범을 둘러싼 주제에 대해 빠르게 불타올랐다가 쉽게 식는다. 예컨대 “피해자를 위해서 가해자를 엄벌해야 해”라든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니 교화하면 돼” 등 여러 의견이 충돌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나 소년범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천 판사는 말한다. “비행이라는 거푸집을 벗기고 나면 삶의 부조리와 폭력 앞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내던져진 아이들의 유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비행 내용과 범죄 내용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실상을 어른들이 헤아려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소년범은 악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길러진 악이니까요.”
- 2022-04-0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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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동물, 여생의 가족으로 주목받는 이유
- 예전에는 집에서 기르는 동물을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대상’으로 인식해 애완동물이라 했지만, 이제는 사람과 ‘심적 친밀감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로 반려동물이라 부른다. 신문이나 광고에서 반려동물 천만 시대라는 문구가 심심찮게 보이는 현재, 동물들은 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참고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 한겨레 애니멀피플) 작은 몸에 올망졸망한 눈으로 한결같이 나만 바라보는 반려동물은 우리 마음의 정화를 불러일으킨다. 성별, 외모, 장애, 경제력 등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며 비판하거나 질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최근 강아지, 고양이, 새와 같은 동물을 인생을 나누는 ‘반려’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638만 가구로, 인구로 환산하면 1500만 명에 달한다. 이는 국내 반려동물 산업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펫 택시, 전용 유치원, 장례 서비스, 원격 양육 서비스 등 관련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 9000억 원에서 지난해 3조 4000억 원으로 성장했으며, 전문가들은 2027년에는 6조 원으로 2015년보다 3배 이상 확대되리라 전망했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방송사마다 동물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SNS와 동영상 플랫폼에 동물 콘텐츠가 넘쳐난다. 반려동물의 긍정적 효과 우리 사회가 점점 고령화되어가고, 1인 가구가 꾸준히 늘면서 동물은 사람의 소외감과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이자 가족 역할을 해주고 있다. 반려동물이 사람의 심리와 정서 안정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9년 서울시 취약계층 반려동물 양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물을 기르는 청장년 1인 세대보다 노인 부부 세대가 더 높은 심리적 효과를 누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하면서 책임감 증가, 외로움 감소, 삶의 만족도 향상, 스트레스 감소, 대화 증가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반려동물이 노인들의 인간관계와 사회활동을 촉진하는 사회적 윤활유 역할을 하는 셈이다. 반려동물과 장기간 생활하면 기억력 감퇴와 인지 능력 저하 등을 늦춰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려동물의 이름을 기억하고, 식사를 챙겨주고, 산책을 시켜주거나 털을 빗겨주는 등의 행동이 치매 환자의 정신 상태나 기동성을 향상시키는 작용을 해서다. 미국 플로리다주 제니퍼 애플바움(Jennifer Applebaum) 박사가 50세 이상 1300명의 인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53%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인지 능력 저하 속도가 느렸다. 애플바움 연구원은 “반려동물과의 상호작용과 스트레스 감소의 생리학적 측정(코르티솔 수치 및 혈압 감소를 포함해 장기적으로 인지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 사이에 연관성을 확인했다”며 “반려동물이 인지 저하를 예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초기 증거”라고 말했다. 동물들은 그저 존재하는 자체로 치유를 일으키기도 한다. 공원에서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강아지의 뒷모습을 보기만 해도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테니 말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다양한 ‘애니멀 테라피’를 실시하고 있다. 애니멀 테라피란 동물을 통한 치료 방법을 말한다. 활용되는 동물로는 개, 고양이, 돌고래, 소 등 다양하다. 예컨대 난독증 환자의 치료법 중 강아지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이 있다. 난독증 환자들은 자신이 더듬거리는 것에 대해 깊은 열등감이 쌓여 있거나 주눅 들어 있는 등 평소 자신감이 약한 태도를 보이기 쉽다. 때문에 편견을 가지지 않은 존재인 개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낮아진 자신감을 올려주고, 점차 말을 더듬는 증상을 완화하는 식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일본 내 유기 동물 문제 해결과 노년층의 건강 회복 모두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올해부터 요양원에 애니멀 테라피를 도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 환경성은 지자체가 보호 중인 개나 고양이를 병원이나 요양원으로 보내 노인의 심리 치료 효과를 높이고자 한다. 동물과의 아름다운 이별 노년에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거나 계획이 있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반려동물의 죽음이다. 보통 반려동물의 평균 수명은 15~20년이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정들었던 동물 친구를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식처럼 기른 반려견, 반려묘가 죽어 큰 슬픔을 호소하는 ‘펫로스 증후군’을 겪기도 한다. 특히 노년층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적고 반려동물을 향한 심리적 의존도가 높아 극도의 우울, 무기력, 자책 등의 감정을 동반할 수 있다. 애니멀피플이 공공의창·한국엠바밍·웰다잉문화운동과 함께 실시한 ‘한국 반려동물 장례 인식조사’를 보면, 펫로스를 경험한 응답자의 과반수가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52.8%)을 꼽았다. 우울증(19.5%), 반려동물 죽음 자체에 대한 부정(18.7%), 죽음에 대한 분노(7.9%) 등이 뒤를 이었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던 대상이 떠난 후 밀려오는 그리움과 상실감은 당연하지만, 이를 잘 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관련 책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려동물과 이별한 사람을 위한 책’의 저자 이학범 수의사는 “반려동물과 이별하며 슬픔을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여러 증상이 함께 나타나거나 기간이 길어진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심리적·정신적 고통을 겪지만, 수습 절차나 방법은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주변 산에 묻는 행위는 불법이다. 보통 동물은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쓰레기봉투에 담아 생활 쓰레기로 배출하거나, 동물병원에 맡겨 의료용 폐기물로 처리한다. 최근에는 오랜 친구를 폐기물로 처리하길 원치 않는 사람들이 늘면서 병원에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합동 화장을 진행하거나, 반려동물 장례 시설을 이용하는 추세다. 동물 장묘업체는 반드시 이동식 장묘업체가 아닌 농림축산식품부에 등록된 업체여야 한다. ‘e동물장례정보포털’(eanimal.kr)을 통해 합법적인 업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반려동물을 부탁할 곳도 고민해야 한다. KB국민은행에서는 내가 죽고 나면 누가 내 강아지를 돌봐줄까 고민되는 사람들을 위해 반려동물 신탁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의 주인인 ‘위탁자’가 사망해 반려동물을 돌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수탁자’인 은행에 자금을 미리 맡기고, 본인이 사망한 뒤 반려동물을 돌봐줄 새로운 부양자인 ‘사후 수익자’에게 반려동물의 보호 관리에 필요한 양육 자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조건으로 가족 또는 제3자에게 자신의 유산을 일부 상속해놓는 것도 방법이다. 대신 어떻게 돌봐줘야 하는지 등 상세한 내용을 담은 유언장이 있어야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한편 비교적 명확한 반려동물 관련 산업의 성장성에 비해 반려인 사망 시 반려동물에게 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돌연사, 고독사, 사고, 질병 등에 의해 반려인을 잃고 홀로 남을 반려동물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 마련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 2022-04-0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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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음은 그만…’ 다양해진 고령친화식품
- 이롭고, 연하고, 부드럽고, 균형 잡힌 ‘케어 푸드’ 제품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노인과 환자가 케어 푸드의 주 고객이었던 과거와 달리 다이어터나 임산부 혹은 어린이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식품 업계는 저당식, 영양 강화식 등 맞춤형 제품을 속속 출시하며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케어 푸드는 고령친화식품, 실버 푸드, 시니어 푸드 등 부르는 용어가 다양하다. 용어는 다르지만 의미는 음식물 섭취와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식품으로 통용된다. 관련 시장 규모의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한 ‘2020년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고령친화식품’ 보고서를 살펴보면, 고령친화산업 시장 규모는 2011년 5104억 원에서 2017년 1조 원, 2020년엔 2조 원으로 늘어 10년여 만에 4배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였다. 이러한 케어 푸드 분야에서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브랜드에서 연화식을 포함한 가정간편식 신제품 개발에 나선 것이다. 과거에는 질병을 가진 노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고령친화식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으나, 건강하고 활동적인 중장년층을 겨냥한 식품도 개발되면서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hy(전 한국야쿠르트)는 22가지 곡물을 함유한 당뇨환자용 균형영양식 ‘잇츠온 케어온 당케어’를 지난해 출시했고, 같은 해 대상라이프사이언스는 백미 대신 현미와 렌틸콩, 퀴노아를 넣어 당 함량을 3g 낮춘 ‘뉴케어 당플랜 볶음밥’을 선보였다. 현대그린푸드는 케어 푸드 브랜드 ‘그리팅’과 온라인 몰 ‘그리팅몰’을 통해 고령친화식품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리팅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 층까지 겨냥하며 저당식, 칼로리 밸런스식 등 건강식을 집으로 직접 배송해주는 맞춤형 케어 푸드를 추구한다. 신세계푸드도 ‘이지밸런스’를 통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연하 도움식을 비롯해 각종 건강식과 영양강화식 등을 제공하고 있다. CJ프레시웨이는 최근 케어 푸드 브랜드 ‘헬씨누리’를 통해 고령친화식품 8종을 선보였다. 소스는 ‘유니 짜장 덮밥소스’, ‘연잎 콩 카레 덮밥소스’, ‘불고기 계란덮밥소스’ 등 3종이며, 반찬은 '소불고기, ‘고추장 돼지불고기’, ‘간장 돼지불고기’, ‘연근조림’, ‘쥐눈이콩조림’ 등 5종이다. 이중 불고기 3종과 쥐눈이콩조림은 농림출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로부터 고령친화우수식품 인증을 획득했다. 올 상반기 내 덮밥소스 3종과 추가 출시될 반찬 5종에 대해서도 고령친화식품 관련 인증 획득에 나설 예정이다. CJ프레시웨이 관계자는 “고령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고령층 특화 식품도 공인 인증을 받은 제품이 더욱 각광받을 것”이라며, “케어 푸드 브랜드 헬씨누리를 중심으로 우수한 품질의 식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해 소비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2022-03-2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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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60 취업자 수, 꾸준한 증가세
- 시니어 취업자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50대 고용률은 전년 대비 2.9% 올랐고 60세 이상 고용률은 1.6% 상승했다. 50대 취업자는 12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며 지난해보다 27만 2000명이 늘었다. 60세 이상 취업자 역시 45만 명이 늘어 13개월 연속 증가하고 있다. 한편 지난달 전 연령 취업자 수는 2740만 2000명으로 전년 대비 103만 7000명이 늘어 22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또한 취업자 수가 2월 연속 100만 명 넘게 증가한 것은 1999년~2000년 이후 처음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15~64세 고용률은 모든 연령층에서 상승해 전년동월대비 2.6% 상승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지난 16일 고용동향 발표 후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60대 이상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고령자 취업지원 대책에 차질이 없도록 추진할 것을 당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주요 고용지표의 개선 흐름이 이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피해업종 및 계층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고, 방역인력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것과 정부 일자리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데 따른 영향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 확산세와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민간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전했다.
- 2022-03-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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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병 최전선의 목소리, “암 환자에게도 일과 생활은 엄연한 현실”
- 질병과 가장 근접한 이들은 누구일까. 환자와 그의 가족, 혹은 그들과 함께하는 의료인일 것이다. 질병과 삶, 때로는 죽음을 마주하는 간호사들은 우리 사회에서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립암센터 암생존자통합지지실과 호스피스 병동에서 전담 인력으로 근무하는 간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박미애 국립암센터 암생존자통합지지실 간호사 “유방암을 예로 들어볼게요. 유방암 0기, 1기 환자들의 경우 방사선 치료에 보통 한 달 걸립니다. 호르몬 치료를 위한 처방약 복용은 장장 5년간 계속해야 해요. 하지만 방사선 치료가 끝나면 그 뒤로 의사에게 진단받을 기회가 없어요. 의사들은 ‘이제 치료 끝나셨어요. 몇 달 뒤에 검사받으러 오시면 됩니다’라고 하면 환자들이 치료가 끝나서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앞으로 나는 뭘 해야 하나. 몸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정보가 부족하니 오히려 막막하고 불안해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박미애 간호사가 만나는 환자들은 암 진단을 받은 뒤 수술이나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의 적극적인 치료를 끝낸 암 생존자들이다. 그러나 치료가 끝났다고 해서 질병과의 고리도 끊어진 것은 아니다. 센터를 찾는 이들은 여전히 암 재발을 가장 두려워하며, 미미한 통증이나 신체 변화만 생겨도 암과 관련된 증상이 아닐까 불안해한다. 그가 하는 일은 환자들이 스스로를 관리하고 원활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상담과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2019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 10만 명당 연령표준화발생률은 295.7명으로, 2015년 이후 신규 암 환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암 치료 후 어떤 것을 신경 써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적 지원을 받거나 재취업은 언감생심이다. 그저 환자들끼리 모여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2017년 7월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암생존자통합지지사업은 올해부터 본사업으로 전환됐다. 박 간호사는 사업이 처음 시행될 때부터 함께한 암생존자통합지지실 초기 멤버다. 정신 전문 간호사로서 암 생존자인 환자가 방문하면 자가평가 및 상담부터 진행하며 환자가 겪고 있는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파악하고, 건강관리법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맡았다. 또한 통합지지실의 전반적인 행정 업무 및 간호학과나 대학원 등 관련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암 생존자 관리에 대한 교육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암 환자 10명 중 7명은 5년 이상 생존한다는 통계자료가 발표됐지만 암은 여전히 통증, 단절, 혹은 죽음을 연상시킨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환자들은 피로와 통증 등의 신체적 어려움이 있어 경제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일을 시작해도 괜찮을까’ 등의 심리적인 불안감까지 합세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투병 사실 알리기를 꺼리기도 한다. 같이 사는 배우자를 제외하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환자도 더러 있다. 사람들의 지나친 배려가 부담스럽거나 무덤덤하다 못해 냉담한 반응에 상처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공이나 노력보다 행복, 남의 시선보다 나 자신과 가족에게 집중할 변화의 계기로 삼는 이들이 조금이나마 늘어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작년에 센터를 찾았던 65세 림프종 환자 A씨도 비슷한 사례다. 현재 센터에서는 코로나19 때문에 프로그램 다수를 비대면 콘텐츠로 제공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을 비롯해 익숙지 못한 일에 대한 도전을 특히 겁내던 분이었다. 그러나 영양식생활 프로그램과 사진, 짧은 일기를 공유하는 ‘고잉온 다이어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용기를 얻었고, 결국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운영되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취직해 일하게 되었다. 박미애 간호사는 앞으로도 제2의 A씨가 많아지길 바란다. 암이라는 제약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세상으로 향하길 꿈꾸고 있다. 유재빈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 간호사 “여전히 암 진단은 사형선고나 다름없고, 호스피스 병동은 무겁고 엄숙한 공간이라는 편견이 강해요. 그래도 죽음과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해 노력하려고 해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 가족들끼리 췌장암에 걸린 할머니에게 마지막 생일파티를 해드리려고 병실에서 촛불과 케이크를 준비했었어요. 당시 할머니는 이미 의식이 없으셨고,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많아 유난이라며 아버지를 나무랐죠. 하지만 지금은 병동에서 환자들의 생애 마지막 생일파티를 소소하게나마 챙겨드리고 있어요. 앞으로도 암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점차 변화하리라고 믿어요.”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에서 3교대로 근무하는 유재빈 간호사는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 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다. 신체적 증상 관리부터 위생, 임종 돌봄 및 장례 준비, 정서적 지지까지 환자의 말기 돌봄 기간에 필요한 모든 간호 활동을 수행한다. 그가 일하는 곳에서는 입원한 환자 9명의 힘든 증상을 적극적으로 완화시키는 치료가 이뤄진다. 환자의 의사를 가장 존중하여 수혈 및 중재적 시술을 적극적으로 지속하고, 가정에서 증상 조절이 가능해지면 퇴원이 이뤄지는 일반 병동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일반 병동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회복하는 과정에 집중한다면,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입마름 같은 신체적 증상 완화부터 환자의 안위 증진 및 개인 위생에 대한 돌봄이 제공되고 있다.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병동과 일반 병동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담 및 돌봄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이다.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 환자 및 보호자와의 상담을 필수로 진행하는 것은 물론, 음악이나 미술 요법, 스트레칭 데이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심적인 안정과 위로를 건넨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을 제외한 지인들의 면회가 쉽지 않아 병동에서는 유튜브 라디오 프로그램을 고안해내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을 열어 사연과 신청곡을 받는 실제 라디오와 유사한 진행으로, 특히나 만족도가 높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환자와 가족들의 수용 정도, 실질적인 심리·사회적 어려움이 무엇인지부터 파악에 나선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약사, 요법치료사로 이뤄진 전담팀이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남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후회 없이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통증과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을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엄연히 의료 서비스에 해당한다. 그러나 병동 바깥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가 갖는 이미지는 무겁기만 하다. 죽음을 준비하기보다 터부시하고 쉬쉬하는 분위기와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을 때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합쳐진 결과다. 병동을 찾아 초기 상담을 진행할 때까지만 해도 엄숙하고 숨 막히는 공간으로 생각해 걱정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적지 않다. 환자들이 ‘왜 나에게 이런 몹쓸 병이 와서 우리 가족을 힘들게 할까’, ‘이제야 살 만해졌는데 이런 나쁜 병에 걸렸구나’ 하며 자책하는 모습도 자주 본다. 의식이 흐려지기 전까지 자녀와 배우자, 부모에게 미안해하는 것이다. 암에 걸리고 싶어 걸린 것이 아니며,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님에도. 그러나 암은 의학 기술의 발달로 고혈압 및 당뇨 같은 만성질환화되고 있다. 약을 복용하고, 생활 습관을 조절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병 말이다. 병동에 들어와보니 예상했던 분위기와 달라 놀라는 이들이 많다. 그는 얼마 전 명절맞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들이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며 매일 깨달음을 얻는다. 일한 기간이 늘어날수록 ‘함께’, 그리고 ‘가족’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곱씹게 된다. 그에게 울림을 준 건 아들이 아버지를 간병하는 무뚝뚝한 부자였다. 입원 초기 서먹했던 사이가 서로를 용서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며 느끼는 바가 많았다. 아버지가 병동 내 ‘평온실’에서 임종을 맞은 몇 달 뒤 아들은 병동으로 세 장짜리 장문의 자필 편지를 보내왔다. ‘주저앉고 싶었던 마지막 순간, 슬픔을 공감하고 이해해주며 오히려 배려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편지의 한 구절을 읽어주며 눈시울을 붉힌 그는 다짐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도 예외 없는 죽음 앞에서 환자가 편안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덧씌운 선입견을 벗겨내는 데 보탬이 되는 간호사로 성장하고 싶다고.
- 2022-03-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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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 몸 자책 말아야 하는 이유
- 한국 사회에서 아픈 건 ‘죄’다. 가족, 친구, 혹은 회사 동료에게 미안해 아픔을 숨긴 적이, 병원 진료비와 약값이 부담스러워 진료를 미룬 일이, 혹은 ‘내게 왜 이런 병이 왔을까’ 스스로 자책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한국인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질문을 바꿔보자. 내 몸이 아픈 이유가 내 탓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고혈압, 당뇨, 비만, 알레르기, 탈모, 관절염 등.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만성질환 한두 개쯤 안고 있다. 아픈 곳 없이 건강하길 바라는 안부 인사를 주고받지만 ‘아픈 곳 하나 없는 상태’란 이룰 수 없는 이상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건강이라는 이상적인 잣대로 스스로를 재단하고 ‘아픈 게 죄’라며 자책한다. 그런데 아픈 몸은 정말 우리의 잘못일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당뇨병 환자는 333만 명에 달한다.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앓고 있다는 고혈압 환자도 671만 명을 기록했다. 그뿐인가.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생활이 늘면서 함께 늘어나고 있는 비만 환자, 미세먼지가 일상화되며 점차 늘어나는 비염 환자만 합쳐도 그 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아픈 사람 탓하는 사회 한국 사회는 유독 아픈 이들에게 박하다. 건강하지 않으면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기 일쑤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나이 들고 아프며 죽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잘 아플 권리’, 질병권 개념을 처음으로 주장한 조한진희는 건강 중심 사회에 대해 “모든 사람이 건강하다는 걸 전제로 건강한 시민만을 표준의 몸으로 삼아 사회를 직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위기는 아픈 사람에게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인류학자 서보경은 책 ‘아프면 보이는 것들’에서 우리 사회가 전염성 질환에 보이는 부조리한 대응을 지적한다. “어서 감염자를 찾아내 격리부터 하라는 요구, 감염자는 반드시 그럴 법한 문제가 있는 사람일 거라는 편견, 따라서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솎아내면 사회는 다시 안전해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그리고 질병과 고통의 경험을 스캔들화하는 언론의 태도는 HIV와 에이즈를 통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전염병을 다루는 방식이다.” 실제로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공개 문제는 팬데믹 내내 이슈가 됐다. 팬데믹 초기에는 확진자 정보를 공개할 때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되거나, 확진자의 시간대별 이동 동선을 그대로 공개해 사생활 침해 문제까지 제기된 바 있다. 이에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을 개정하고 코로나19 확진자의 이동 경로 등 정보를 공개할 때 성별·연령·국적·읍면동 이하의 거주지·직장명 등 개인정보와 관련된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깜깜이 환자’나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염려로 코로나19 확진자의 자세한 동선과 정확한 거주지 주소를 공개하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질병관리청이 확진자의 거주지와 같이 방역의 목적과 관계없는 개인정보는 동선 공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포털사이트부터 뉴스, SNS로 퍼져버린 동선과 개인정보로 인한 사생활 침해로 정신적 피해가 막심하다며 호소하는 목소리는 불안감에 묻혀버렸다. 팬데믹이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지금까지도 ‘정확한’ 동선 공개의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건강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 치료할 수 없는 만성질환을 앓는 이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건강보험공단이 집계한 질병 통계에 따르면 고혈압, 당뇨병, 암 등 중장년에게 익숙한 만성질환자 수는 2020년 기준 1900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 5288만 명의 35.5%에 해당한다. 이들 만성질환자 수 증가율은 최근 4년간 연평균 4.0%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유례없이 길어진 팬데믹은 사람들로 하여금 코로나19에 언제 감염될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완벽한 치료제가 부재해 완치 후에도 여러 후유증을 떠안게 만들었다. 질병을 완전히 치료해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자꾸만 생겨나고 있다. 근대화 이래 계속돼온 건강 중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은 도처에 널려 있다.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상승해 2020년 65.3%를 기록한 건강보험보장률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80%에 훨씬 못 미친다. 반면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비급여 부담률은 전년 대비 0.9%p 감소한 15.2%를 기록했다. 게다가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메디컬푸어’(Medical Poor) 비율은 2019년 기준 7.5%다. 이는 OECD 평균 5.4%를 훌쩍 넘긴 수치다. 공보험이 챙겨주지 못하는 부분을 사보험이 챙겨주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조사 결과, 5060세대는 치료비 부담을 덜기 위해 평균 2개 이상의 보험에 가입했으나 정작 보험금을 받는 사람은 평균 12%에 그쳤다. 이들의 80%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50대는 2.4개, 60대는 3.3개의 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보장 범위가 충분치 못한 것이다. 충분히 아픈 뒤 나을 시간도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개인이 지켜야 할 생활방역 제1수칙으로 제시한 것은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기’였다. 이를 포함해 총 5개 수칙이 공개됐지만 당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제1수칙이었다. 개인적 문제 말고도 대체인력 확보나 유급휴가 부여 등 경제적 보상 문제가 겹쳐 사회·구조적으로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파도 학교를 가고, 아파도 직장에 가는 삶을 살았지만 건강관리까지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진다. 보건의료기본법 제14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 건강관리는 개인의 의무? 그렇지 않다 사회는 ‘스스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수준’의 건강 상태를 유지할 것을 암묵적으로 요구한다. 건강관리도 실력이라며 눈치를 주고, 빈 자리를 채워줄 대체인력이 없어 아픈 사람이 눈치를 보게 만든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한정돼 있음에도, 개인의 노력을 강조한다. 책 ‘질병과 함께 춤을’의 저자 다리아(필명)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매끼 친환경 건강 밥상을 마주하고, 매일 30분씩 땀 흘려 운동하고, 몸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쉴 수 있느냐”고 묻는다. 왕복 서너 시간의 통근을 거쳐야 하는 사람에게는 규칙적인 식습관, 충분한 수면, 적절한 운동이 중요하다는 의사의 조언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건강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며, 질병은 함수가 아니다. 사람마다 꿈꾸는 ‘건강한 상태’는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고, 특정한 음식이나 습관으로 모두가 건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언가에 ‘감염’되고 아픈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픈 몸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또한 질병을 얻는 순간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픈 몸으로도 문제 없이 온전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전대미문의 감염병을 겪으며 ‘잘 아플 권리’에 대한 논의가 조용히, 서서히 이뤄지는 이유다. [TIP] 아픈 몸 자책하는 당신에게 1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저) 데이터를 통해 질병의 사회적·정치적 원인을 밝히는 사회역학을 도구 삼아 혐오, 차별, 고용불안 등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지 말한다. 또한 사회가 개인의 몸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사회역학의 여러 연구 사례와 함께 이야기한다. 2 아프면 보이는 것들 (제소희 외 12명 저) 이 책은 의학이 설명하거나 포괄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아픔’을 인류학의 시선으로 톺아본다. 저자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아파 보지 않아서 볼 수 없었던 것들에 다가가자고 제안하며 아픔으로부터 시작될 치유와 연대를 꿈꾼다. 3 질병과 함께 춤을 (다리아 외 3명 저) 이 책은 각자 다른 질병을 가진 여성 4명이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고유한 삶을 온몸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다. 동시에 건강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탐구해온 분투기이기도 하다. 4 질병, 낙인 (김재형 저)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센병 등장 후 의학과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치료와 관리에 개입했으며, 환자들이 한 사회 내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역사적으로 풀어낸다. 앞으로도 예고 없이 찾아올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 2022-03-0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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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 일자리 사업, 성과를 위한 조건
-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2000년 고령화사회,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25년 노인 인구가 20%가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는 가운데, 노인 1000만 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인구 고령화를 적절한 대처 없이 맞는다면 개인적으로 노년기에 경제적 어려움, 질병, 고독, 무위 등 4고(四苦)로 인한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노동생산성 저하는 물론 노인 부양비 증가, 복지 비용 증대 등으로 인한 국가경쟁력 약화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노인 일자리 사업 전개 : 시작과 발전 그동안 정부는 우리 사회의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쳐왔다.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이하 노인 일자리 사업)은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중위소득 50% 이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심각한 수준으로 2011년 47.8%에서 2020년 40.4%로 개선되었으나(통계청,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2021), OECD 38개국 평균(13.1%)의 3배 이상으로 최하위 수준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OECD, 2021). 따라서 일자리는 저소득 노인들에게 생계 문제나 생존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일자리 정책을 추진해왔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정부’를 내세우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 등을 국정과제로 설정했다. 이와 같이 문재인 정부에서 일자리 정책은 주요 핵심 과제로 여기에 노인 일자리 사업이 존재한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2004년 2만 5000개의 일자리로 시작해 2022년 84만 5000개로 확대했고, 관련 예산은 2004년 약 213억 원에서 2022년 1조 4422억 원으로 증액했다. 이렇듯 짧은 기간에 급속한 노인 일자리 사업의 성장은 성과와 더불어 한계를 지닌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소득 보충적 특성으로 인해 공익활동 사업의 양적 확대 등 직접 일자리 창출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제한적 민간 일자리 사업 성장, 수행기관 및 전문인력 부족, 과도한 사업 수행량, 사업 수행의 유연성 부족 등이 이 사업의 제약점으로 제시될 수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인 일자리 사업은 노후소득 보장 체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제취약층 노인들의 소득 개선에 도움을 주며, 노인의 심리적·정서적 건강과 사회관계 개선, 의료 이용 감소, 삶의 만족도 향상 등 노후 생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대한 기대 그동안 노인 일자리 사업은 양적 확대를 통해 소득 보충 및 사회참여에 이바지해왔다는 점에서 목적에 맞는 성과를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온전한 성과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여전히 노인 일자리는 수요보다 공급이 현격히 부족한 편이며, 단순 저임금 일자리의 질적 변화 없이 일자리 개수만 늘리는 정책으로는 다가올 초고령사회를 대비할 수 없다. 지속가능하고 질 좋은 일자리 증대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향후 노인 일자리 사업에 대한 제언을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양한 노인의 욕구, 경험 등을 반영한 혁신적 노인 일자리가 개발되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인층 진입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이들 세대는 기존 노인층보다 높은 교육 수준, 건강 등 상이한 특성을 지니며, 경륜을 활용한 일자리에 대한 욕구가 높다. 일자리의 다양성, 질적 개선에 대한 베이비붐 세대의 욕구를 잘 반영한 새로운 형태의 노인 일자리 확대가 필요하다. 또한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니티 케어)이 확대되는 가운데, 지역 내 공공 및 민간기관 등이 협력하여 인적·물적 자원 연계를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지역 기반 상생형 노인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지역성을 반영한 ‘돌봄’ 또는 ‘안전’, ‘방역’ 등의 노인 일자리 사업 연계가 적절하다. 이외에도 4차 산업혁명 진전에 따라 ICT 기술혁신을 통한 서비스 개발이나 직무 발굴이 필요하다. 청장년 일자리와 상생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세대교류형 내지 세대통합형 노인 일자리도 개발되어야 한다. 둘째, 노인 일자리 수요처의 욕구에 맞게 노인을 교육·훈련하고 인적 역량 개선을 위한 지원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노인 일자리 소양 교육이나 안전 교육 이외에도 업무 수행에 필요한 지식 및 기술 습득과 훈련, 그리고 보수 교육, 역량 강화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직무 경험과 욕구, 역량 등에 근거하여 교육과정의 설계 및 실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노인 일자리 사업 수행기관 및 담당인력이 확충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노인 일자리 사업 수행기관과 전담인력의 사업 관리, 직무 전문성 강화, 일자리 상담, 고용안정성과 처우 개선 등 보상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맞춤형 교육과 일자리 매칭, 수요처 발굴 등 역할 수행을 위해 종사자 직무역량 교육 강화 또한 중요하다. 넷째, 노인을 수동적·의존적 대상이 아닌 적극적이고 독립적 주체로서 우리 사회의 주요 구성원임을 인식하고, 자신 역시 미래의 노인이라는 시각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노인 일자리 사업의 효과성, 노인 일자리 참여자의 장점(예를 들면 성실성, 책임감 등)을 부각하는 동시에, 노인 일자리의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한 캠페인 또는 공익광고 등이 필요하다. 인구 고령화, 코로나 팬데믹, 4차 산업 시대의 도래 등 급변하는 사회에 노인 일자리 사업이 ‘위기’가 아닌 도약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곧 도래할 초고령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노인 일자리 확대 및 내실화는 우리 사회의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 실현을 앞당기고, 참여 노인뿐만 아니라 미래의 노인인 국민 모두에게 사회안전망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참고문헌 통계청,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2021).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OECD (2021). Pensions at a Glance 2021: OECD and G20 Indicators. 글 원영희 교수 원영희 교수는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학 석사, 플로리다 주립대학(Univ. of Florida)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성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비상임이사를 역임했다.
- 2022-02-18 0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