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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왕기 평창군수가 그리는 평창의 미래 지도
- “여러분의 성공적인 귀농·귀촌을 응원합니다” 2018 지방선거에서 초박빙의 승부를 보인 지역, 바로 강원도 평창군이다. 한왕기 평창군수는 선거에서 현직 군수였던 심재국 후보를 단 24표 차로 이기고 가까스로 승리를 거머쥐면서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평창에서 태어나 일생을 보낸 평창 토박이인 한왕기 군수는 요즘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한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평창의 미래를 미리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왕기 평창군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요즘 바쁘게 움직이며 여론과 행정력을 끌어모으고 있다. 올림픽 후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다. “서울올림픽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란 재단을 설립해 유산사업을 현재까지 하고 있어요. 평창동계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중 가장 성공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사업에는 신경을 안 썼더군요. 그래서 평창올림픽법을 국회 문체위 상임위원장인 안민석 의원님께 요청했습니다. 이 법에 근거를 두고 평창올림픽에 대한 재단법인을 만들어서 일관성 있는 올림픽 유산관리와 발굴을 할 예정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유산인 평화를 지역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 평화의 시대를 평창이 주도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평화특례시 추진과 평화 관련 기관 유치, 세계평화포럼 개최를 실현해간다는 방침이다. 해발고도 700m의 쾌적함 평창군은 평균 해발고도가 700m인 지역이다. 이는 인간의 생체리듬에 가장 좋은 고도라는 슬로건으로 ‘HAPPY700’ 브랜드를 론칭하는 계기가 됐다. 브랜드를 선포한 게 1998년이니 벌써 20년 전 일이다. 한 군수는 “이제 평창 하면 HAPPY700을 떠올릴 정도가 되었다”고 자평했다. “매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불볕더위에 700고지의 쾌적한 공간을 찾아 평창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었습니다. 지난 8월 5일에 막을 내린 평창더위사냥축제는 지난해보다 1만2000여 명이 더 많은 8만7000여 명의 방문객이 몰렸어요. 지금도 대관령 고원지대는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줄어드는 인구, 깊어지는 고민 이처럼 살기 쾌적한 도시로서의 평창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평창의 설질(雪質)이 좋다는 사실은 동계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공인된 얘기다. 그러나 평창은 휴양도시로서의 딜레마 또한 분명히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수도권 외 대부분의 지역들이 앓고 있는 문제, 바로 지역 정착민이 적고,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창군 인구는 7월 말 현재 2만1071세대 4만2808명으로, 지난 1995년 5만 명 붕괴 이후 2005년 4만5033명, 2015년 4만3500명 등 점차 감소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구감소의 주요 원인은 2001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은 현상인 데드크로스와 타 지역 전출로 확인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평창군은 2016년 10월 기술지원과 귀농·귀촌 부서, 2017년 10월 기획감사실 지역인구정책부서 등 전담부서를 신설 후 체계적인 정책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귀농·귀촌은 평창으로 한 군수는 평창이 귀농·귀촌에 강점을 가진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평창은 기후변화에 가장 유연하게 대처 가능한 이상적인 온도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평창의 농산물은 특유의 기후 덕분에 식물 세포가 오밀조밀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져 시장에서 고가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한 시간대 거리라는 점에서 교통의 강점도 있습니다.” 한 군수는 귀농·귀촌 현상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외지인과 평창인의 갈등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외지인이 평창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한 프로그램인 ‘평창군 귀농·귀촌 페스티벌’을 시행하고 있다. “무작정 외지인더러 들어오라고만 하면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높습니다. 그래서 귀농·귀촌 페스티벌을 통해 귀농·귀촌에 관심 있는 도시민에게 우리 군의 귀농·귀촌 정책을 소개하고, 귀농·귀촌 선배들을 만나 생생한 정착기를 듣게 해줍니다. 짧은 기간이라도 직접 농촌의 삶을 체험해보고 멘토 농가를 연결해 도움을 받게 합니다. 그래야 정착 성공률이 높아지니까요. 이외에도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 창업 및 정착 지원, 집수리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휴양도시로서의 강점 극대화 한 군수는 최근 국민적 트렌드인 귀농·귀촌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 대책을 강화하는 한편, 올림픽이라는 국제적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더욱 강화된 관광휴양도시로서의 강점도 더욱 극대화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올림픽 기간 중 시범운영을 거쳐 현재 본격 운영 중인 ‘HAPPY700 평창시티투어버스’다. 시티투어버스는 코스를 나누어, 올림픽 개최 현장과 시설을 보며 올림픽의 열기와 영광을 느껴보는 올림픽 로드, 평창 지역의 시골장을 돌며 ‘진짜 촌스러움’을 맛볼 수 있는 전통시장 로드, 문화와 축제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페스티벌 로드 등 시기와 테마별로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최우수 축제인 평창효석문화제는 9월 1일부터 9일까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이자, 가산 이효석의 고향 평창군 봉평면 문화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는 ‘인연, 사랑, 그리고 추억’이라는 주제로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을 전하는 추억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넓은 메밀밭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문학과 체험을 아우르는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한다. 평창백일홍축제는 평창읍 평창강 둔치에서 오는 9월 21일부터 30일까지 펼쳐진다. 시원한 평창강을 배경으로 백일홍 천만 송이가 장관을 이루는 낭만적인 축제다. 해마다 꽃밭 한가운데에 있는 포토존이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평창의 감자, 옥수수, 메밀로 만든 토속 먹거리와 낮과 밤에 끊이지 않고 펼쳐지는 문화예술공연도 운치를 더한다고 자랑했다. 농림축산업 고도화의 발판 마련 최근 평창군에는 기쁜 소식이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8 농촌 신활력 플러스 사업’에 선정돼 70억 원을 지원받게 된 것이다. 전국에서 10개 지자체만 선정된 이 사업에서 평창군은 ‘평창 프리미엄 농식품 플랫폼 사업’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는 서울대학교 허철성 교수를 단장으로 선임해 ‘평창 프리미엄 농식품 플랫폼 추진단’을 꾸리고, 서울대학교의 기술을 활용해 지역의 우수 특용·약용 작물을 고부가가치의 기능성 농식품으로 개발한 후, 지역 내 가공업체로 기술 이전, 해외시장 개척 등 산업 고도화를 이룬다는 계획이다. “평창은 농림축산업이 경제의 근간입니다. 올해부터 4년 동안 체계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 평창의 우수한 특용·약용작물로 프리미엄급 농식품을 개발·생산하고, 이와 접목한 체험·관광을 통합 마케팅할 것입니다. 농업인 소득증대와 일자리 창출, 농촌관광 활성화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를 시작으로 향후 서울대학교와 연계한 고령친화식품단지를 조성해, 평창군 농식품 산업 혁신을 앞당기고자 합니다.” 평창의 주산업인 농업·농촌의 소득 안정을 위해 청년농·여성농·고령농을 지원하고 농산물 판로 확보와 가공유통시설 기반 구축, 산림농업 육성 등 농축산업 경쟁력 강화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한 군수는 농업 예산을 전체 예산의 2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평창에 귀농·귀촌인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갖추고 부족한 농촌 인력을 해결하기 위한 농업인력 지원센터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또 군 전체 면적의 83%를 차지하는 산림을 기반으로 산악관광, 산악스포츠, 산림 복합영농 등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집중 투자해 경쟁력을 갖춘 자립적인 농촌기반을 조성해나가는 데 힘써보겠습니다.” 아울러 평화올림픽 개최를 통해 남북 화해와 세계 평화의 출발점이 된 평창을 평화의 중심지로 부각시키기 위해 평창 평화특례시를 추진하고, 남북 교류협력과 평화의 산실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민생 현장을 돌면서 잘살게 해달라는 평창군민들의 희망을 듣고 1%의 가능성이 평창을 살릴 수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평화의 시작 평창과 함께, 사람이 행복한 문화관광, 더불어 잘사는 지역경제, 소득이 안정된 농촌, 모두가 행복한 복지 등을 군정 5대 목표로 정한 한왕기 군수는 농촌 가치 살리는 평창건설을 위해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평창의 변화와 도약을 이끌어내겠다고 말했다.
- 2018-09-10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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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의 문화행사
- 전시 두들월드 일정 7월 4일~9월 9일 장소 아라아트센터 ‘뭔가를 끼적거리다’라는 뜻의 두들(doodle). 언뜻 보면 낙서처럼 보이는 두들링 작업에 푹 빠진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미스터 두들 (Mr.Doodle)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영국 아티스트 샘 콕스(Sam Cox)가 이번 전시의 주인공이다. 두들월드 전에선 그를 세계에 알린 독특한 벽화 작품, 서울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작업한 서울 시리즈, 그리고 현장에서 진행되는 초대형 설치 작품까지 총 70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축제 부여서동연꽃축제 일정 7월 6~15일 장소 부여서동공원 매년 7월이면 백련, 홍련, 수련, 가시연 등 50여 종의 다양한 연꽃이 부여 궁남지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는 물론 야생화와 수생식물이 있어 아이들의 자연생태 학습장으로도 좋다. 부여서동연꽃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우수 축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축제기간에 연밥인형만들기, 연지탐험, 연씨팔찌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와 전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 신카이마코토展 ‘별의 목소리’부터 ‘너의 이름은.’까지 일정 7월 13일~9월 26일 장소 한가람미술관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데뷔 15주년을 기념한 전시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 등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별 설정 자료, 애니메이션 콘티, 작화 등 신카이 마코토의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원화를 만나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180도 와이드 스크린, 프로젝터 매핑 등을 이용해 애니메이션 속의 명장면을 재현했다. 연극 생쥐와 인간 일정 7월 24일~10월 14일 장소 대학로 TOM 1관 출연 문태유, 신주협, 최대훈 등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레니’와 그런 레니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조지’라는 이주 노동자의 비극적인 우정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성과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인랑 개봉 7월 25일 장르 SF, 액션 감독 김지운 출연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 김무열 등 ‘인랑’은 경찰조직 ‘특기대’와 정보기관인 ‘공안부’를 중심으로 한 절대 권력기관 간의 대결 속에 늑대로 불리는 인간병기 ‘인랑’의 활약을 그린 영화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과 총격신을 더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영화 어느 가족 개봉 7월 26일 장르 드라마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등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원제는 ‘만비키 가족’. 일본어 만비키(万引き)는 좀도둑을 의미한다.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는 한 가족이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같이 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 2018-06-26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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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기 운동에 좋은 신발과 함께 즐거운 아웃도어 라이프!
- 한없이 걷고 싶어지는 4월이다. “신발이야 대충 운동화나 아무거나 신지, 뭐”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걷기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신발을 잘 골라야 한다. 걷는 데 좋은 신발은 통상적으로 쿠션이 적당하며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밑창이 위판보다 넓어야 한다. 특히 앞꿈치와 발바닥 닿는 면적이 넓어야 한다. 별도의 장비 없이 의류와 신발만 갖추면 언제든 부담 없이 시도해볼 수 있는 ‘걷기’는 다른 레포츠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은 체육 활동임이 분명하다. 2016년 기준 산림청은 우리나라의 등산 인구가 월 1회 이상 1500만 명, 연 1회 이상 300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를 내놨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월 3회 이하 체육 활동에서 등산이 1위(40%)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추세는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전 구간 개통된 2012년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걷기’ 열풍과도 맞물려 있다. 당시 지자체마다 둘레길 조성 사업에 박차를 가했는데 대다수의 둘레길이 산과 산을 잇는 임도 구간에 조성됐고, 이는 자연스레 걷기 인구와 등산 인구가 급증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등산에 부담을 느껴 걷기부터 시작한 사람들이 차후 등산에 도전하는 경우도, 반대로 등산에서 출발해 걷기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마라톤’ 인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의류와 신발만 있으면 언제든 도전 가능한 마라톤은 구애되는 장소도 없기에 등산과 트레킹보다도 접근이 쉬운 체육 활동이다. 현재 국내에서 1년 동안 개최되는 마라톤 대회는 무려 500여 개를 웃돌며, 국내 러닝 인구는 6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마라톤이 지속적 인기를 안고 국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면, ‘트레일러닝’은 지난 4년 동안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신생 아웃도어 활동이다. 트레일러닝은 이름 그대로 트레일에서 이루어지는 달리기 행위다. 산길, 들길, 해변, 계곡 등 포장되지 않은 자연의 길을 달린다는 점에서 마라톤과 구분된다. 등산, 트레킹, 트레일러닝, 마라톤으로 분류되는 네 가지 아웃도어 활동에 최적화된 신발별 특징에 대해 정리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신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와 기능이 매우 다르다. 따라서 사전에 본인의 활동 패턴을 고려한 아웃도어 슈즈를 꼼꼼히 점검한 뒤 선택할 필요가 있다. 적재적소에 맞는 신발은 아웃도어 활동의 컨디션과 밀접하게 연관되기에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다. 신고 싶은 신발을 신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신발이 건강하게 걷거나 뛰기를 위한 용도보다는 유행이나 디자인에 치우쳐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신발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신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와 기능이 매우 다르다. 따라서 사전에 본인의 활동 패턴을 고려한 아웃도어 슈즈를 꼼꼼히 점검한 뒤 선택할 필요가 있다 *걷는 기쁨이 두 배 등산화 vs 트레킹화 등산화는 우리나라에서 보통 트레킹화, 하이킹화, 워킹화, 트레일화 등으로 혼용돼 불리는데 크게 지형, 거리, 고도에 따라 어떤 경우에 등산화가 적합한지 트레킹화가 적합한지 살펴봤다. 물론 체력을 비롯한 컨디션과 산행 경험에 근거한 개인차가 있기에 아래 열거한 기준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①해당 지형에 돌이나 바위가 많을 경우, ②산행 거리가 10km 이상일 경우, ③산의 표고가 500m 이상일 경우에는 등산화가 좀 더 안전하다. 반면 ①도심 속 공원이나 야트막한 산길을 걸을 경우, ②산행 거리가 5km 내외로 다소 짧을 경우, ③산의 표고가 500m 이하일 경우에는 트레킹화가 더 편하다. 그렇다면 등산화와 트레킹화를 고를 때 각각 어떤 점을 좀 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까? 먼저 등산화는 경사진 산길을 오래도록 걷는 상황을 대비해 약간 무게감이 있더라도 ①다리가 접질리지 않도록 발목 부분을 단단히 잡아주면서, ②발에 쌓이는 피로감이 분산될 수 있도록 쿠셔닝이 좋고, ③미끄럼 방지기능이 우수한 트레일 그립의 제품을 선택하면 좋다. 더불어 1박 이상의 종주 산행이나 장거리 산행으로 이어질 경우 갑작스러운 우천에 대비해 전 방향 방수·투습 성능의 고어텍스 중등산화가 적합하다. 중등산화는 경등산화에 비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장시간 산행에도 발을 지속적으로 잡아주어 안전성이 높다. 반면 트레킹화는 주로 짧은 거리의 당일 산행이나 트레킹, 도심 속 공원을 가붓이 산책할 때 적합하기 때문에 기능적인 면을 고려하기보다는 ①신었을 때 우선 가볍고, ②착화감이 편안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트레킹화는 데일리 슈즈로도 활용이 가능하므로 ③일상생활을 할 때도 신을 수 있도록 색감이나 디자인을 함께 봐도 좋다. 편의에 따라 다이얼을 돌려 신발을 빠르고 편하게 신고 벗을 수 있는 ‘보아 시스템(The Boa System)’ 제품도 괜찮다. ◇추천 등산화 K2 ‘NU 클라임 이보’ 엑스 트랙션(X Traction) 기술을 통해 신발 측면과 뒷면에 X자 형태의 지지 구조를 만들어 발을 안전하게 잡아준다. 더불어 한국형 화강암 지형에 맞는 엑스 그립(X Grip) 밑창을 통해 거친 산길에서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노스페이스 ‘다이내믹 하이킹’ 2012년 첫 출시된 이후 매 시즌 업그레이드된 기술력과 디자인을 더하는 국내 대표 등산화 시리즈다. 보통발 타입, 평발 타입, 까치발 타입 등 발 모양에 맞게 쿠션과 아치의 높이를 차별화했다. ◇추천 트레킹화 라푸마 ‘에어벤트’ 무봉제(No-Sew) 공법을 통해 무게를 줄여서 착화감이 편하다. 아치 분리형 3D 밑창을 사용해 반발탄성과 유연성을 높였고, 미끄러짐 방지기능이 우수한 트레일 그립을 적용해 비가 올 때도 미끄러짐이 덜하다. 밀레 ‘헬리움 뮤온’ 무게를 줄여 발의 부담을 덜고 착화감을 높인 초경량 워킹화. 밀레의 자체 개발 초경량 기술 라이트엣지(Lite Edge)를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갑피 전체를 무봉제 공법으로 제작해 신발의 무게를 최소화했다. 릴라릴라 ‘디지솔 노르딕’ 디지솔 노르딕 워킹화는 착화력과 통기성이 우수해 워킹화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 보행 때 앞으로 밀어주는 스프링 쿠션, 발뒤꿈치 부분의 충격 흡수, 우수한 미끄럼 방지기능으로 올바른 보행을 유도하는 디지솔 기능이 있다. 강력한 아치 서포트 기능이 장착된 우수한 탄성의 PU 인솔은 일반 쿠션 인솔보다 반발탄성이 20%나 더 높아 보행 때 피로를 덜 느끼게 해준다. 최적의 등산화와 트레킹화가 걷는 기쁨을 더해준다면, 내게 꼭 맞는 러닝화와 트레일러닝화는 달리는 기쁨을 더해준다. 러닝화와 트레일러닝화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릴 때 신는 신발이다. 등산화·트레킹화와 비교했을 때 기본적으로 무게가 가볍고 생김새가 날렵하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러닝화와 트레일러닝화 역시 ‘어떤 길’에서 신느냐에 따라 각각의 기능이 현저하게 다르다. 먼저 러닝화는 알려진 대로 가벼운 조깅이나 마라톤을 할 때 신는 신발이다. 달릴 수 있는 코스는 다양하다. ①집 근처 골목길이나 도로, ②인근 운동장과 트랙, ③한강 둔치를 비롯한 마라톤 코스 등 많다. 이들 길은 달리기 편한 평지이지만 포장된 인공의 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트레일러닝화는 말 그대로 트레일(trail)에서 신는 러닝화로서, 이때의 길은 포장되지 않은 자연의 길이다. 달릴 수 있는 자연의 길 역시 범위를 한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①임도를 비롯한 둘레길, ②경사진 산길, ③들판, 계곡, 해변, 사막 등이 있다. 러닝화와 트레일러닝화는 달릴 때 신는 신발이므로 통기성과 신축성이 뛰어나야 한다. 발등에서 뒤꿈치, 발목까지 최적의 피팅감을 제공해야 함은 물론 내구성 또한 우수해야 한다. 다만 앞서 강조했다시피 ‘어떤 길’에서 신느냐에 따라 우선적으로 체크해야 할 부분이 조금씩 다르다. 먼저 러닝화의 경우 ①스피드를 낼 수 있도록 가벼운지, ②포장된 인공의 길을 같은 동작으로 지속적으로 달릴 것에 대비해 쿠셔닝이 좋은지, ③발이 지면에 닿는 모든 순간의 충격을 흡수하는 동시에 충격에서 비롯된 반발력을 통한 에너지 전환이 가능한지 등을 체크해야 한다. 트레일러닝화는 ①흙과 바위 등의 불규칙한 지형과 오르막 내리막 등의 경사 변화에도 발의 뒤틀림이나 꺾임 없이 안정적으로 잡아주는지, ②젖은 길바닥에서도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접지력을 겸비했는지, ③장시간 달려도 발이 피로하지 않도록 쿠션감이 좋고 편안한지를 고려해봐야 한다. ◇추천 러닝화 나이키 ‘에픽 리액트 플라이니트’ 경량성과 내구성 등 러너에게 필요한 모든 요소를 동시에 제공하는 혁신적인 폼 솔루션을 장착한 제품으로, 전작인 ‘루나에픽 로우 플라이니트2’에 비해 더 가볍고 탄력적이다. 아식스 ‘젤 카야노’ ‘젤 카야노’ 시리즈는 국내 러너들 사이에서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아식스의 대표 러닝화다. 달릴 때 발목이 바깥쪽으로 심하게 꺾이는 외전 성향의 러너에게 최적화된 것이 특징이다. 아디다스 ‘울트라부스트’ ‘울트라부스트’ 시리즈는 차별화된 쿠셔닝은 물론 에너지 리턴기능의 부스트(boost) 기술력을 통해 최적의 탄성을 자랑한다. 중창과 갑피 사이의 공간을 띄워 어떤 발에도 최상의 피팅감을 선사한다. ◇추천 트레일 러닝화 라스포르티바 ‘헬리오스’ 라스포르티바의 마운틴러닝화 시리즈. 무게 480g으로 가벼워 스피드를 내기에 좋고 오프로드에서 특히 탁월한 착지력과 접지력을 자랑한다. 어퍼는 메시 소재, 뒤꿈치는 에어메시를 적용해 통기성 또한 우수하다. 단거리 트레일러닝에 추천한다. 알트라 ‘론픽’ 뒤꿈치와 앞꿈치의 높이가 같은 제로 드롭(Zero Drop) 플랫폼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달리기를 유도한다. 또한 대다수 한국인의 발 모양에 맞게 발볼 부분이 넓어 편안한 착화감을 자랑한다. 장거리 트레일러닝에 추천한다.
- 2018-04-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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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반 캠핑으로 귀촌과 수입 한 손에
- 캠핑카로 관광지를 옮겨가며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는 생활은 시니어가 한 번쯤 생각해보는 로망 중 하나다. 평생을 직장과 집에 얽매여 살았으니, 구속되지 않는 삶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캠핑카는 중년의 욕망을 쉽게 해소해줄 수 있는 도구로 보인다. 그런데 요즘에는 캠핑카가 현실 탈출의 도구뿐만 아니라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도 쓰인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귀가 솔깃하다. 꿈꾸던 시골생활도 즐기며 돈도 벌 수 있다니.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캠핑카와 카라반(caravan, 캠핑용 트레일러)은 같은 물건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오토캠핑의 대표적 수단이라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캠핑카는 자동차와 결합해 스스로 동력원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반면, 카라반은 다른 자동차 뒤에 결착시켜 끌고 다녀야만 이동이 가능하다. 단순히 생각하면 혼자 이동할 수 없는 카라반은 캠핑카에 비해 매력이 떨어질 것 같지만 업계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오히려 카라반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예산 부담은 적고 매각은 쉬워 인기 관광업계에서 카라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전후. 전국에 펜션 조성 붐이 일다가 인기가 한풀 꺾이면서 좀 더 자연 친화적인 캠핑과 카라반에 주목하게 된 것. 외국산 일색이었던 카라반 시장에 국산 제품이 하나둘 출시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카라반의 원래 목적은 이동이 가능한 숙박 공간 제공이지만, 한자리에 정박시켜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캠핑용으로 쓰려면 주거뿐만 아니라 수도, 전기, 화장실 등과 함께 관련 위락 시설까지 제공되어야 하므로 관광객에게 카라반만 대여해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카라반이 인기 있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체험 아이템으로 활용되면서 숙박까지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조성에 필요한 예산이 펜션이나 민박과 같은 기존 숙박 시설에 비해 훨씬 저렴한 것도 장점. 심지어 업계 관계자들은 “땅만 있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다. 펜션을 지으려면 건축허가 등 과정이 복잡하고, 건축비 역시 최소 1억 원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이에 반해 카라반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5~6인용 1대당 3000만 원 전후면 구입이 가능하다. 여기에 전기나 수도 등 제반시설의 설치비도 1대당 500만 원 정도밖에 안 든다. 이에 반해 카라반 대여료는 웬만한 펜션의 숙박비와 비슷하거나 비싼 수준이다. 여기에 매력적인 또 하나의 장점은 이동이나 처분이 쉽다는 것이다. 집은 이동이 불가능하다. 외진 장소에 지어진 펜션도 제 값을 못 받기 일쑤다. 급매가 필요할 땐 토지 가격으로만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반면 카라반은 원하는 곳으로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그러한 점 때문에 처분도 빠르다. 실제로 중고 카라반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중고장터를 통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은퇴한 시니어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별장으로 사용하기에도 좋다. 지자체도 앞다퉈 조성에 나서 이런 장점들에 매력을 느껴 카라반을 기반으로 한 캠핑장을 운영하는 곳이 많아졌다. 각 지자체도 대표적인 곳 중 하나다. 지자체 입장에선 토지 확보가 용이한 데다 카라반 캠핑장 예산 확보 부담도 적고, 설사 사업을 철수하는 상황이 와도 큰 손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주시와 영덕군은 카라반을 확보해 자체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국민여가캠핑장 조성 사업 일환으로 강릉 연곡해변과 삼척 장호해수욕장을 선정해 캠핑장을 조성했다. 이들 시설에는 총 25대의 카라반이 설치됐다. 또 국제행사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숙박 수요가 있을 때도 카라반이 활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마무리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패럴림픽 오스트리아 선수지원단은 국내 기업인 유엘피가 평창에 조성한 카라반 타운을 숙소로 이용했다. 국산 카라반을 공급하고 있는 이기순 카라반파크 대표는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관광객들의 욕구와 시설 조성에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업주들의 요구가 맞아떨어지면서 카라반 캠핑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최근에는 제작과 운용에 대한 국산 카라반의 경험이 쌓이면서 한국의 계절적 특수성으로 인한 누수나 동파 같은 기술적 문제들도 보완된 상태”라고 말했다. 카라반 캠핑장 관련 제도 개선 중 물론 땅과 카라반만 확보한다고 해서 뚝딱 캠핑장이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다소 복잡한 등록 절차가 필요하다. 당연히 자동차면허도 필요하고 등록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카라반은 차량의 총중량이 750kg 이상인 경우 특수면허에 속하는 견인면허가 있어야 이동시킬 수 있다. 이와 별개로 카라반 캠핑장에 대한 법적 규제가 이슈가 된 사건이 있었다. 2015년 카라반을 설치한 강화도 글램핑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한 사건은 카라반의 제도적 허점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자동차관리법상 원동기에 의해 육상에서 이동할 목적으로 제작된 용구와 견인되어 육상을 이동할 목적의 요구 또한 자동차로 정의된다. 때문에 견인용으로 제작된 카라반은 엄연히 등록이 필요한 자동차다. 자동차등록이 된 차량은 운행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숙박업을 위해 활용하면 불법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 규정이 있다. 자동차관리법 제70조에는 도로 외 장소에서만 사용하는 자동차는 자동차등록이 필요 없도록 특례를 뒀다. 그래서 한때 경찰이나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입장 차이를 보였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관광진흥법 시행령 등을 통해 카라반 캠핑장과 관련한 제도를 개선하면서 일단락됐다. 카라반 사업은 이제 야영장업 관광사업자로 사전 등록을 하면 된다. 국산 카라반이 대부분 운행을 고려하지 않는 정박용, 숙박용으로 제작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동차등록을 하지 않고 아예 야영장용으로 제작되고 있는 상태다. 이로 인해 구조나 인테리어도 운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외국 제품과는 많이 다르다. 안전하게 운영하려면 영업배상책임보험 등 사고 방지나 보상을 위한 보험 가입도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한다. 또 장기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카라반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 필요하다. 최기석 델타링크아시아 과장은 “카라반의 장기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해서는 사업주가 간단한 정비 지식을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면서 “사업적 활용을 고려한다면 무조건 고가 제품을 고집하는 것보다 구조가 단순하고 정비성이 좋은 제품이 적합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2018-04-0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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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학생을 제자로, 한국어 강사 돼볼까?
- 요즘 TV 속은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의 전성시대다. 한국어를 잘하면 나라를 대표해 발언권을 얻거나 친구까지 초청해 한국을 소개하기도 한다. 한국어에 능숙한 외국인이 늘면서 달라진 풍속도다. 이렇게 시대가 변하면서 한국어 강사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족의 증가도 이러한 수요 폭발을 유발했다. 한국어 강사는 언어와 함께 문화를 전한다는 면에서 시니어에게 적합한 직종 중 하나로 꼽힌다. 전 세계 학생들과의 교류에 관심이 있다면 한국어 강사의 문을 두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외국인의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 추세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시험을 주관하는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은 지난 1월, TOPIK의 응시자가 1회부터 지난해 11월 제55회까지 212만168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년 만에 무려 108배나 늘어난 것이다. 한국어 강사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자격제도인 국립국어원 한국어교원 자격취득 현황을 보면 2007년 790명이었던 심사 신청자는 2016년 6304명을 기록했다. 10년 만에 698% 증가한 셈이다. 강사의 시작은 한국어교원 자격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려면 한국어교원 자격은 필수로 꼽힌다. 문화체육부장관이 부여하는 한국어 교육에 관한 자격제도로 심사와 발급 등의 실무적인 부분은 국립국어원이 맡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한국어교원에 대해 “국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어교원은 1, 2, 3급으로 나뉜다. 2급은 학위과정으로 한국어학을 전공하거나 관련 과목을 이수한 사람에게 부여되며, 3급은 양성과정으로 학위가 없어도 100시간의 이론과 20시간의 실습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 때문에 학위와 자격증이 동시에 필요하거나 학사학위 소지자의 경우는 비교적 쉽게 2급 지원이 가능하다. 대학이나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을 통해 16과목(48학점)을 이수해 학위를 받으면 별도의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을 보지 않고 한국어교원 2급 신청이 가능하다. 이럴 경우 자격 취득까지 1년 6개월 정도의 기간이 걸린다. 학위가 없는 경우에도 사이버대학이나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을 통해 학위 취득과 함께 한국어교원에 도전할 수 있지만 3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단점이다. 사이버대학 한국어학과의 경우 시간과 비용 면에서 불리한 대신 졸업장, 학위와 함께 독서논술지도사나 다문화사회전문가 등 관련 자격에도 지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3급은 조금 더 간단하다. 학위가 없는 사람도 120시간의 교육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에 합격해야 하기 때문에 경험자들은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교육비에도 차이가 있다. 시중 교육기관에서 3급 과정을 위한 교육비는 총 50만~90만 원 선. 이에 반해 2급 획득을 위한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의 비용은 일반적으로 과목당 15만 원 이상이 필요하다.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모든 과목을 수료하려면 250만~450만 원가량 든다. 3급은 자격 취득 5년 후 경력 1200시간이 지나면 2급으로 승급 가능하며, 2급은 다시 5년 후 경력 2000시간이 지나면 1급으로 승급할 수 있다. 교육기관을 고르는 가장 기본적인 과정은 자격 과정을 관장하는 국립국어원의 한국어교원 홈페이지(kteacher.korean.go.kr)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대학부설기관이나 학점은행제, 양성과정 등 기관 성격에 따라, 지역에 따라 공인된 교육기관을 찾을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도 수요 많아 한국어교원 자격을 획득하면 활동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생각보다 많다. 국내외에 설치된 대학 한국어학당 같은 부설기관이 대표적. 한국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을 위한 정부기관 한국유학종합시스템(www.studyinkorea.go.kr)에 등록된 대학부설 한국어 교육원 수는 192개에 달한다. 또 사설 한국어학원도 한국어 강사로 일할 수 있는 주요 기관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화상교육이 발달하면서 이를 전문으로 한 교육기관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외에도 최근 급증한 다문화가족을 위해 설치되고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다. 각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대부분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이주민이나 자녀를 위한 한국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이민자통합센터, 사회통합프로그램 운영기관 등에서도 각각의 설립 목적에 따라 국내에서 거주 중인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강사에 대한 수요가 있다.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주요 기관들은 강사를 선발할 때 경력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경험삼아 한국어 강사를 하고 싶거나 경력을 쌓고 싶다면 무료 한국어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에 자원봉사를 신청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국내에 있는 대표적 무료 한국어 교육기관은 서울글로벌센터, 한국이주노동자복지회,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가 꼽힌다. 해외에서 일하고 싶을 때도 방법은 있다.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가 대표적이다. 코이카에서는 해외봉사단을 통해 한국어 강사를 세계 여러 곳에 파견하고 있다. 50세 이상의 시니어 단원의 파견도 진행 중이다. 코이카의 해외봉사단 중 한국어 강사 부문은 인기가 매우 높아 1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적도 있다. 한국어 강사 선발이 가장 많은 기관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재단이 꼽힌다. 세종학당재단은 한국어 교육기관인 세종학당을 지난해 8월 기준으로 전 세계 54개국에서 171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한국어 수요가 늘면서 세종학당도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지난해 국감에서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세종학당재단의 한국어교원 파견 인원은 2013년 24명에서 2017년 110명으로 매년 증가해왔다. 이밖에도 일부 대학이 해외에 설립한 한국어 학당이나 해외에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 선교기관 등도 한국어 강사의 수요가 있는 곳으로 꼽힌다. 일부 국가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 문화교류를 위해 한국어 강사를 선발하기도 한다. 일본의 JET프로그램(The Japan Exchange and Teaching Programme: 어학 지도 등을 행하는 외국 청년 유치 사업)이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매년 각 국가에서 국제 교류를 위한 인원을 선발하고 있는데, 선발된 한국어 강사는 각 학교의 외국어 수업 보조나 특별활동, 지역 교류활동 등을 돕게 된다.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기 위해 갖춰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은 ‘외국어 능력’이다. 아무래도 교육 대상이 한국어가 서툰 학생이라 다른 언어로 소통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일부 기관에서는 자격증 유무, 경력시간과 함께 영어, 중국어, 일본어 회화 능력을 선발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국내외 한국어 강사 구인 정보를 알고 싶다면 국립국어원 한국어교원 홈페이지의 구인정보 게시판을 활용하면 된다. 청년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그렇다면 실제 시니어 한국어 강사의 취업 시장 상황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만만치 않다. 수요는 계속 늘고 있지만 청년층의 유입도 점점 많아지면서 취업 시장이 좁은 문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어교원 자격을 취득 후 활동 중인 중년의 한 한국어 강사는 “한국어 강사를 찾는 교육기관 중 나이제한을 두는 곳도 적지 않고, 학위 소지자나 경력자를 중심으로 뽑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는 시니어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수입 대신 보람을 우선시하고 눈높이를 낮추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진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해외에 있는 한국어 교육기관의 경우는 청년층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시니어 세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체력이나 질환 등에 대한 염려가 있어 장기간 해외에 체류해야 하는 교육기관은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젊은 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어 강사에 대한 인적 수요는 해외에서의 한국어 인기, 온라인 교육 시스템의 대중화로 인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세이글로벌 조연정 대표는 “한국어에 대한 인기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세이글로벌은 2014년 용산노인복지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와의 봉사활동 교류가 계기가 돼 설립된 스타트업 기업으로서 한국어 학습을 원하는 전 세계 외국인들과 한국어 강사를 온라인으로 매칭시키는 사업을 지난해 4월 부터 시작했다. 서울시 50플러스 서부캠퍼스와 함께 한국어튜터되기 과정 수업을 운영 중이며, 수료생 중 일부를 선발해 한국어 강사로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조 대표는 “10대에서 60대까지 수업을 희망하는 학생층도 넓어지고, 한국 문화에 대한 단순한 애정에서 취업을 위한 것까지 배우고자 하는 목적도 다양해지고 있어 한국어 교육시장도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삶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많고 은퇴 후 시간 활용이 쉬운 시니어에게 한국어 강사는 적합한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 2018-02-28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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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을 노래하는 가객 최백호
- 접하는 순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칠순을 앞두고 있는 최백호(崔白虎·68) 가 부르는 노래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그 소리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 수만 가지 감각들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예술품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그렇게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흔치 않은 예술가의 자리를 갖게 된 그가 이제 영화감독이라는 오랜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고 종합적인 예술인으로서의 자신을 완성해가고 있는 최백호를 만나 미래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을 확인해봤다. 청년 최백호는 친구 매형의 라이브 카페에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1977년에 첫 앨범을 낸 이후 어언 40년, 이제 그의 목소리에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두터운 세월의 결이 느껴진다. 그러나 1950년에 태어나서 전후 베이비붐 세대와 함께 살아오면서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그는 지금 ‘은퇴’라는 단어와 가장 거리가 먼 가수 중 한 명일 것이다. 이적, 아이유, 박주원 등 젊은 실력파 후배들과의 협업과 월드 뮤직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도전 등 최백호는 새로운 피로 자신의 감수성을 뜨겁게 채우고 있는 중이다. 계획하며 살지 않는 사람 그뿐만이 아니다. 최백호의 예술적 취향은 일찌감치 화가 쪽으로도 뻗어서 다수의 작품 전시회를 가졌다. 그리고 2018년 4월에 열릴 다섯 번째 전시회도 준비 중이다. “스무 점 정도 올릴 예정이에요. 테마는 나무고요. 제가 나무밖에 못 그리기도 하고.(웃음)” 그는 자신이 계획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의 ‘그때그때 대충대충 살아왔다’는 말은 ‘먼 계획을 세우기 어려울 정도로 그때그때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의미도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주변 사람만 피곤하죠.(웃음) 41주년이 되는 올해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영화감독에 도전하고자 합니다. 갑작스런 일이 아니고 사실 오래 준비해왔어요. 시나리오를 썼고 홍보 계획도 세웠고. 그런데 남자 주인공이 없어서 못 만들고 있었죠. 마음에 딱 맞는 사람이 없었어요.” 영화 제목은 ‘미사리’. 그는 남자 주인공으로 가수를 생각하고 있다 했다. 영상과 음악 위주의 영화가 될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선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영화감독으로의 새로운 도전 기왕 미사리 얘기가 나왔으니 미사리와 음악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시니어에게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미사리에서는 4~5년 정도 공연을 한 적 있어요. 지금은 미사리 카페가 두세 군데 남았나.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조금 있어야 했는데, 우리나라는 뭐든 잘된다고 하면 다 달려들어서 하려다가 힘이 더 드는 지경이 되고 말아요.” 미사리가 쇠퇴한 이유는 가수 출연료 때문이었다고 한다. 인기를 끌자 라이브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출연 가수들 출연료가 치솟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가수 출연료가 오르면 음식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노래가 좋다고 해도 음식 맛이 없으면 누가 찾겠는가. “그래서 가수들이 모여서 출연료를 올리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출연료 기준은 송창식 선배에게 두자고 했죠. 그런데 그게 안 지켜지더군요. 그래서 시장이 흐려졌고…. 우리나라는 참 낭떠러지가 있는데도 밀려가요.” 혹시 미사리 같은 음악의 대안공간을 다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그러한 궁금증에 선유도가 좋은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선유도 안에 공연장이나 레코딩 스튜디오를 만들고, 코너마다 버스킹을 할 수 있게 한 다음 입장료는 3000~5000원 정도 받으면 좋은 이벤트 공간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홍대와도 연결돼서 다리에서 버스킹도 가능할 테고, 좋은 관광코스로도 활용할 수 있죠.” 과거에는 자연주의적인 느낌이 있었지만 요즘은 도로가 나고 식당이 난립해서 이제 변해버린 미사리의 운명에 대하여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씁쓸함이 배어나왔다. 그러한 느낌이 그가 만들 영화에도 담기게 될까 궁금했다. “영화감독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어요. 원래는 미대를 가고 싶어 그림 공부를 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대학을 포기하고 군대를 갔죠. 그런데 군대에서 몸이 안 좋아서 나오게 됐고, 생활 때문에 노래를 시작했죠. 영화는 머릿속에 계속 갖고 있던 생각인데, 아마 이번 영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예요.(웃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요.” 최백호의 고민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 대표, 그리고 문화관광부와 마포구가 협약해 만든 음악 창작공간인 뮤지스땅스 대장으로도 일하고 있는 최백호는 어찌 생각하면 가수 일 이상으로 행정적인 영역들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런 입장에서 나오는 목소리에는 현장에서 부딪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현실감이 있었다. 그가 이끄는 한국음악발전소는 무소속 프로젝트라 하여 소속사 없는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모아서 경연대회를 하고 있다. 413개 팀들 중 8팀을 뽑아서 앨범을 만들었고 지난 연말 12월 15일에 홍대 상상마당에서 공연을 했다. 연령, 장르 제한은 없다. 덕분에 힙합부터 국악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독립음악가들을 발굴하는 콘테스트로 참여율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올해가 4회째인데, 예산이 없어서 문제가 되고 있단다. 지원해주던 단체에서 지원을 끊은 것이다. 다행히 3회는 CJ에서 지원해 무사히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었다. 그에게 행정가로서 겪어야 하는 이러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음악창작소 프로젝트가 있는데 정부에서 전체 운영자금으로 10억 원 규모를 책정했어요. 원래 시작은 전국 세 군데에서 했어요. 그래서 세 곳으로 자금이 나뉘어 지원됐죠. 그런데 지방에서도 참여하기 시작해서 지원해야 할 곳이 여덟 군데로 늘어난 거예요. 문제는 인디밴드가 없을 것 같은 지역에도 지원금이 들어간다는 거죠. 인디밴드를 한다는 사람들은 다 서울로 오는 게 현실인데, 여덟 곳으로 늘어났어도 세 군데일 때의 예산으로 계속 쓰고 있어요. 우리가 생각하면 말도 안 되잖아요? 그래서 15억 원으로 늘려달라고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죠.” 뮤지스땅스 대장으로서 속 터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도 자체 운영이 잘되고 있으며 후배들이 좋아한다는 게 보람이다. 한마디 잘못하면 삶이 무효가 되는 세상 단체의 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 만나는 일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음악 작업 차원에서도 인디밴드부터 아이돌 등 10대부터 노년까지 남녀노소를 다 만나며 사는 것이 최백호의 요즘 삶이다. 그렇게 많이 만나다 보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 “특별히 사람을 평가해서 만나는 건 아니에요. 거리를 어떻게 두느냐의 차이죠. 그런데 오랜 경험으로 처음 보고 대화를 한 번 해보면 대충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나이 들면서 더 멋있어 보인다고 하자 그는 너털웃음을 날렸다. “젊었을 적에 워낙 별로여서 나이 드니 조금 나아진 거지.(웃음) 나이 들수록 조심해야 될 게 많아요. 사람을 사귈 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래요. 가장 중요한 게 말이죠.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해요. 우리말이 거칠고 극단적이어서 잘 써야 하거든요. 아주 품위 있는 말도 가능하고 정말 천박한 말도 가능하고. 외국어에 비해 그 폭이 훨씬 크니 상처를 주게 되는 게 우리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는 SBS 라디오에서 ‘최백호의 낭만시대’ 진행을 맡고 있다. 대중과 소통하는 중심에 있으니 당연히 말에 대해 더욱 민감한 경험을 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올해 10년이 되죠. 라디오를 하고 있어서 그런 경험을 많이 했어요. 요즘은 한마디 잘못하면 삶이 리셋되는 세상이에요. 그래서 말을 조심하려면 되도록 사람 만나는 걸 줄여야 해요.(웃음)”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처럼, 그도 사람들이 SNS를 하는 것을 이해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연예인들이 SNS에서 서로 모여 왜 자기 생각을 그리 밝혀야 하는가 싶죠. 책임을 지려면 사회적 활동을 하든지…. 저는 모르겠어요. 자기 일만 열심히 해도 될 텐데.” 최백호의 희로애락 최백호는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라고 회고했다. “재수할 때였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노래를 한다고 3~4년 고생했죠. 결핵을 앓았어요. 생활은 안 되고. 그 시절 너무 심한 고생을 했기 때문에 지금도 어지간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의 아버지는 고 최원봉 국회의원. 제2대 국회의원이었으며 스물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당선됐지만 최백호가 태어난 지 5개월 되던 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아버지에 대해선 무한한 존경심이 있어요. 비록 일찍 돌아가셨지만 그 존재는 계속 제 곁에 있었고, 제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딸이 태어났을 때, 그리고 그녀가 시집갔을 때를 꼽았다. “딸아이는 사정 때문에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갔어요. 처가가 미국에 있거든요. 그때부터 딸을 일 년에 두 번 정도 보면서 살았죠. 딸이 사춘기를 겪었을 때 아내는 옆에 있었지만 나는 없었어요. 그 아이가 스무 살에 한국으로 잠시 왔는데, 그때만 해도 저와 거리가 있었고 자주 싸웠죠.” 그 시기 이후 딸은 다시 공부를 하러 외국을 가게 됐고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가 왜 자신을 그렇게 멀리했나를 이해하면서 굉장히 친해졌어요. 이젠 뭐 친구처럼 모든 걸 알고 지내요. 결혼식도 예식장에서 하지 말고 바닷가에서 하라고 했더니 정말 바닷가에서 했고. 저도 딸을 이해하게 됐죠. 딸아이도 저에 대해선 이제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구나 싶어요. 정말 큰 행복이죠.” 가진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얻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능력에 비해 많이 성공했다 싶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그림도, 음악도 따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가진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얻었어요.” 시간은 그를 성장시켰고 변화하게 만들었다. 그는 옛날에는 곡을 써도 남을 안 줬다고 한다. 자신이 불러야 하는 노래다 싶어서 욕심이 나서 계속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탐이 나는 곡이라도 주변 후배들에게 준다. 히트곡을 더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없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 그는 좀 더 세심해졌다. 그가 현재 부산에서 진행하고 있는 ‘깡깡이 마을 프로젝트’도 과거 같으면 벌써 끝났어야 할 일이다. 깡깡이 마을 프로젝트는 과거 조선소가 있었던 마을을 문화마을로 키우려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다. 이 작업에 그는 두 달간 매달려 있는 상태다. 그러나 시간이 늦어져도 그만큼 결과물이 좋아지니까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젊을 때 성격이 급했고 지금도 급한 편이라고 말하는 그는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변화된 모습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있다. “새해 소망은 올가을부터 만들기 시작할 영화를 잘 완성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까 자금을 마련하는 일이 큰일이 되겠죠.” 원로임에도 고고하지 않고 일가를 이뤘음에도 계속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가 가진 그러한 소탈함이 단단한 철학으로 다듬어져 있는 것이야말로 그는 영원히 예술가이며 계속 우리 곁에 있으리라는 안정감을 주는 것 아닐까. 최백호의 새로운 도전인 영화가 어떤 미학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다.
- 2018-01-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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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 해소에 좋은 ‘파크골프’
- “하루에 한 가지 취미를 즐기면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외국 속담이 있지요. 누구나 현직에 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을 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년퇴직이든 명예퇴직이든, 퇴직 이후 직장 동료나 후배·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인데, 이런 때일수록 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찾아보고 경험해보려고 노력하셨겠지요. 이런 면에서 저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마도 3년 전의 일일 듯싶네요. 퇴직 후 동네 공원에 운동하러 갔다가 배드민턴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허리가 아파서 골프운동을 못하게 되어 파크골프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참 잘한 것 같다”는 동네 형님의 말씀에 귀가 솔깃해져 그분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필자도 어깨가 좋지 않아 골프를 쉬고 있었기에 그분의 소개로 파크골프 운동협회에 가입한 이후 지금까지 즐기고 있습니다. 파크골프(park golf)란 골프와 아주 유사한 운동으로 공원 같은 소규모 녹지공간에서 누구와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골프게임입니다. 1983년 일본 북해도 마크베츠 강가의 진달래 코스로 7홀의 간이 파크골프장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대한민국 파크골프의 시초는 1998년 진주 상락원 6홀을 시작으로, 2004년 서울 여의도에 9홀을 정식 개장한 한강 파크골프장 이래, 파크골프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그 수요에 발맞춰 파크골프장이 계속 신설되고 있습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생활체육회에서는 자치구별로 파크교실을 운영하게 하여 무료교육을 실시해왔습니다. 서울시를 예로 든다면 각 구에서 반상회 등 홍보활동을 통해 교육생을 모집, 약 2~3개월(주 1회 또는 2회), 지정된 장소(여의도 한강 파크골프장, 잠실 파크골프장 등)에서 무료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파크골프장은 서울에 5개소를 비롯하여 전국에 총 160여 개소가 산재해 있으며, 9홀을 기준으로 Par 3홀 4개, Par 4홀 4개, Par 5홀 1개로 구성되며, 9홀을 두 번 운동하는 파크골프장이 많이 있으나, 최근 신설되는 파크골프장은 18홀, 27홀, 36홀 규모의 파크골프장으로 변화·발전되고 있습니다. Par 3홀 규모는 파크골프장의 시설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티샷을 하는 티잉 그라운드로부터 홀컵까지의 거리가 대략 40~60m, Par 4홀은 70~100m, Par 5홀은 110~150m 정도의 거리이며, 페어웨이 폭은 5~10m 정도입니다. 파크골프는 3세대가 함께할 수 있으며 배우기가 쉽고 공을 치기도 쉬우며 비용도 적게 드는 반면에, 운동은 많이 되며 자연과 가까이 할 수 있고 신체에 무리가 거의 없으며 시간이 적게 들어 쉽게 찾아가서 즐길 수 있는 운동이지요. 수년 전 행해진 일본의 어느 대학 연구에 따르면 파크골프 운동의 효과로는, 첫째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사랑을 느낄 때 생성되는 다이돌핀이 왕성해지고, 진통효과가 있어서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으며, 둘째 온몸의 근육이 강화되어 낙상이나 골절이 예방되고, 잔디 위를 걸음으로써 허리나 무릎의 통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고, 셋째 함께함으로써 고독을 해소하는 데 더없이 좋은 운동입니다. 골프운동을 할 때는 운동할 사람과 골프장을 사전에 예약하는 등 신경 쓸 일이 많고 골프장을 찾아 몇 시간씩 이동해야 하고, 운동 후에는 허리도 쑤시고 갈비뼈와 어깨도 아파서 수시로 한의원을 찾아 치료를 해야만 했습니다. 파크골프 운동으로 전환한 이후에는 몸이 아픈 데가 없으며, 운동량은 골프 운동이나 파크골프 운동이나 똑같이 잔디 위를 걸으며 동반자들과 대화를 하며 운동을 하니 골프 운동할 때와 거의 유사합니다. 파크골프에 입문하려면 여러 방면의 길이 있는데 첫째 파크골프 인터넷동호회에 가입하여 동호회원으로 활동하기, 둘째 협회에 가입하여 협회회원으로 활동하기, 셋째 어느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고 개인 스스로 활동하기 등이 있습니다. 세상사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어느 방법을 선택하든 본인이 결정할 사항이지요. 필자의 경우를 소개해드리면 협회에 가입하여 협회비도 내고 협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정기월례대회, 연말대회 등) 또는 전국대회(전국에서 개최)에 나가기 위해 협회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협회에서 주관하는 각종 자격시험에 응시해 자격을 취득할 수 있고, 일정 자격을 취득한 이후, 강사 또는 심판 자격에 도전하여 자격을 획득한 회원은 강사 또는 대회 심판 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협회 회원들 간 상호 친목을 도모하며 생활할 수 있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입니다. 파크골프와 관련된 단체로서는 (사)대한파크골프협회, 대한파크골프연맹이 있습니다. 필자가 가입한 (사)대한파크골프협회는 2016년 5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통합 대한 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승인을 받은 단체입니다. 파크골프를 하기 위한 용구와 복장으로서는 파크골프 클럽(채)와 공, 골프 티, 볼마커, 볼 포켓, 모자, 장갑, 골프화, 운동복 등이 필요합니다. 파크골프 클럽은 일반 골프 클럽의 퍼터와 비슷하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파크골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가까운 소속 구청 생활체육과와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과에 문의해보시고 그래도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하신 분은 (사)전국파크골프연합회 등에 문의하시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숨 가쁘게 근무했던 현직에서 물러나 이제는 취미 하나 정도는 즐기시는 여유와 함께 제2인생을 살아가셔야 우울증 없는, 건강한 삶을 누리시지 않겠어요?
- 2017-11-2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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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화가 김봉준, 문화 창조는 비주류가 한다
- 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교과서에서도 풍문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민족의 뿌리와 신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남자. 탁성에 파장 깊은 목소리는 빠르게 내달렸지만, 여성 방청객이 많았던어느 날의 분위기와 맞지 않았다. 투박하고 투쟁적이었다고나 할까?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끝마치지 못한 남자에게 다가가 시간을 드릴 테니 못다 한 뒷얘기를 해달라고 청했다. 시대의 풍파를 억척스럽게 이겨낸 예술가이자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 김봉준(金鳳駿·63)은 한 일도 또 할 일도 많다. 트라우마의 근원을 찾아 헤매다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두 시간 정도 거리. 찻길을 지나 숲길, 논길, 밭길을 거쳐 다다르면 옛 기억을 찾아 떠나는 곳, 오랜미래신화미술관(이하 신화미술관)이 있다. 김봉준 관장이 이곳에 터를 잡은 지도 24년째다. 서울 토박이 김봉준 관장은 도시 삶의 피로감을 피해 시골로 탈출을 감행(?)했다고 말을 꺼낸다. “나는 자유롭게 살아왔어요. 직장생활도 해본 적이 없고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 질서에도 익숙하지 않습니다. 불편하고요. 생존하려고 적응하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죠. 그러니 20년 넘게 여기서 살아온 것입니다.” 강원도 산골까지 왜 왔는지에 대해 스스로 자문하다가도 ‘천생 팔자이고 운명’이라는 답에 이른다. 그리고 세월의 흔적과 아픔 또한 신화미술관에 담으며 살아왔다. “나를 치유하고 거듭나지 않았으면 온전하게 살지 못했을 겁니다. 망가졌겠죠. 죽었거나 정신병자가 됐거나. 신화미술관 건물도 제가 지었어요. 꿈을 이뤄보겠다는 생각에 돈 한 푼 없이 맨땅에서 시작했습니다.” 신화미술관은 김봉준 관장의 안식처이자 낙원이다. 어릴 때부터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렸기 때문. 이 상처를 끊어내기 위한 여정의 결과가 신화미술관에 깃들어 있는 셈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많이 맞고 자랐어요. 그게 트라우마가 됐죠. 한국전쟁 직후 세대인데 전쟁으로 인한 폭력 문화가 그대로 계승된 사회였습니다. 군인 출신 아버지에 군대를 경험한 선생이 있는 학교. 체벌이 너무 쉽고 당연한 사회였죠.” 김봉준 관장은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2차 폭력을 가하는 야만적 해소 대신 트라우마를 풀 수 있는 예술을 택했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라기보다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더 컸죠. 딴 전공은 생각해본 적 없이 홍대 미대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입대한 군대에서도, 심지어 민주화 운동을 할 때도 폭력은 계속됐다. “같이 운동하는 선배한테도 그런 일을 당했어요. 예술을 하는 입장이니 마음도 여리고 폭력을 당한 이후에 그것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것으로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 눈뜬 것이 바로 탈춤이었다. 역동적인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학교에 동아리를 만들었다. ‘굿’은 풍물 자체이자 문화의 뿌리다 “제가 그때 풍물에 미쳤어요. 홍대 탈춤반을 데리고 1970년대에 우리 가락이 있던 곳을 찾아서 답사를 다녔어요. 전라북도 남원, 진안, 임실이 풍물로 가장 유명해서 찾아갔습니다. 남원 산골에 갔더니 할아버지가 ‘농악’이란 말을 못 알아듣더라고요. 열심히 설명을 해드렸더니 그제야 ‘굿, 우리 굿이 셌지’라고 하셨어요.” 농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우리 가락을 깎아내려서 부른 말이었다. ‘굿’의 의미에는 무당의 굿만 있는 게 아니었다. “풍물, 마을 전체를 합쳐서 하는 큰 행사를 대동굿, 별신굿이라 불렀어요. ‘굿 구경 가자’ 하는 것이 예술굿이었고, ‘두레굿하자, 풍장굿하자’ 하는 것은 노동굿이었죠. 노동의 조직만이 아니라. 이 마을의 난리굿이 셌어. 의병굿이 셌어. 이런 말도 해요.” 당시 일제는 조선민속연구를 통해 조선 사람의 조직적인 힘의 원천이 굿에 있다고 보고 이를 없애고자 했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의병운동도 당시 사람들은 ‘의병굿’으로 불렀으니 굿이라는 말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것이 분명하다. “민중의 언어는 한자말이 아니잖아요. 그 말을 써왔고 굿이 다 그 말을 포괄했다고요. 동학굿을 난리굿이라고 불렀어요. 동학 때 그냥 갔을 거 같아요? 풍물굿이 같이 갔습니다. 그리고 신앙으로서의 굿이 있단 말이야. 그 공동체에서 내려오던 자기 신앙. 옛날부터 뿌리 신앙 굿이었던 거죠.” 탈춤에 미쳐 있던 시기 자연스럽게 탈에 표현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불화(佛化)를 배우게 됐다. “옛날 탈을 만들려고 보니까 대학에서 배운 그림 기법으로 안 되는 거야. 가만 보니까 단청 그림하고 비슷해. 양식이 내가 배운 수채화나 유화로는 표현할 수 없겠더라고.” 고민하다 보니 탈에 표현된 느낌이 단청하고 같은 양식이었다. 고대부터 내려오는 그림을 배워야겠다 싶어서 인간문화재인 봉원사의 만봉 스님을 찾아갔다. “대처승이던 만봉 스님이 단청 장인이었어요. 어떤 절이든 상관없이 주문이 오면 후불탱화를 그려주는 분이셨어요. 인간문화재로 등록된 사람은 배우겠다는 사람을 가르칠 의무가 있어서 한 달에 얼마씩 지원금이 나왔고 저는 무료로 불화를 배웠습니다.” 만봉 스님에게 배운 불화는 고대부터 내려온 화법이었다. 대학교의 동양학과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고유의 것. 그렇게 대학 생활 3년 동안 힘을 기울여 배운 불화는 김봉준의 그림과 조각, 글씨에 그대로 배어 여전히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유학을 포기하고 신화미술관 문을 열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도시 생활을 했던 김봉준 관장은 탈춤을 계기로 접하게 된 마을 문화와 지역 신앙, 정신에 매료되기에 이른다. “마을 문화를 공부해야겠다 싶어서 외국 유학을 포기했습니다. 친구들 대개 뉴욕이나 파리로 유학을 가는 거야. 미대 조소(彫塑)학이다 보니 서양을 유학의 성지라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나는 거꾸로 이리로 온 것이죠. 더 공부해야겠다. 그래서 마을 문화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지역 문화 축제를 열고 관여하다 2007년에 문화관광부가 지원하는 지역 문화 만들기 프로젝트에 선정돼 받은 돈으로 신화미술관을 개관했습니다. 2008년 10월에요.” 의문이 생겼다. 지금까지 탈춤으로 시작해 굿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는데 왜 탈춤이 아닌 신화를 선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신화에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죠. 굿을 뿌리로 한 신화 구조이죠. 신화에는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가 있고, 일종의 기도, 음악, 춤, 미술, 모든 것이 있습니다.” 신화미술관 안에는 김봉준 관장이 직접 제작한 다양한 형태의 조각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여신상을 모아놓은 구역이 있고, 건국신화를 비롯해 창세, 토템(동물상), 저승, 도깨비, 마을의 신화를 모아놓은 것이 각각 있다. “현대 사회는 마을을 무시하지만 아주 중요한 단위입니다. 가족, 마을 문화가 무너진 광장 문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뿌리가 없는데 시민사회 공동체가 이뤄지겠어요? 사람도 세포가 있어야 형성되는데 마을 문화도 일종의 세포입니다.” 암 환자의 의지, 씩씩한 조각상으로 초야에 묻혀 사는 것처럼 보여도 김봉준 관장은 지극히 사회 참여적인 인물이다. 광화문에서 열렸던 촛불 집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 현장에도 찾아가 유족들을 위로하는 조각상과 판화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화가로, 탈춤에 빠져 있었던 연출가로, 시민운동가로 살고 있다. 그저 마음이 가고 발길이 닿는 곳에서 어떤 형태로든 행동하고 반응하는 전천후 예술가의 삶이 김봉준 관장의 하루하루에 녹아 있다. 그러다 보니 몸에 병이 든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부천에서 시민운동을 하다 이곳으로 왔는데 임파선암 3기 말이었어요. 자가진단을 한 것이 잘못이었어요. 위쪽인 줄 알고 위 내시경만 했거든요. 다행히 전이가 안 된 상태였어요. 암 치료받은 지 17년 됐고 아주 씩씩하고 용감하게 살고 있습니다.” 미술관 건물은 아프고 난 다음에 지었다고 했다. 암과 한바탕 결투를 벌인 이후 만든 조각상이라 씩씩하고 힘찬 느낌이라고. “암에 이기지 못하면 지는 거잖아요. 절망의 시기를 겪고 죽음의 절벽과 언덕을 넘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블랙리스트 인생이 지금의 나를 만들다 “나는 3번의 블랙리스트를 겪은 거 같아.” 1980년대에는 5·18 포고령 수배자였다. 1년 후 다행히 포고령이 풀려 개과천선하고 살 수 있나 싶었는데 1990년 윤석양 이병이 들고 나온 보안사 민간인 사찰 문건에도 김봉준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난 정부 9년 동안 그는 예술가 지원 정부 사업에서 제외됐다. 인터뷰 초반 ‘자유롭게 살아왔다’는 말은 알고 보니 당시를 추억하는 씁쓸한 넋두리였다. “근데 말이지 문화 창조는 비주류에서 나온다고. 지금은 주류에 임박했는데(웃음).” 과거 그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없었다. 탈춤을 찾아 방황하고 탈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배움의 길을 닦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은 대학 졸업을 해도 이미 사회에서 계속 찍혀왔기 때문에 좋은 직장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어요.” 신화미술관 한편에는 그림이 빼곡히 걸려 있다. 동양적 색채가 강한 그림과 광장을 표현한 판화 등 다양하다. 지금의 정권이 아니었다면 걸어놓지도 못했을 거라고 웃어 보인다. “그런데 촛불 집회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꼭꼭 숨겨두기도 했습니다. 판화도 다양하게 많은데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에게 컬렉터들이 붙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 눈치도 빠른 거 같아요. 춥고 배고플 때 좀 사주지(웃음).” 생업 작가로서의 삶은 계속된다 정말 본의 아니게 전업 작가로 살아온 60여 년의 세월이다. 홍대 미대 출신, 깔끔하고 단정하게 뉴욕의 화랑에서 멋들어진 전시회 여러 차례쯤은 열었을지도 모를 사람. 그러나 많은 시간을 숨어 살았고 민족의 뿌리 문화를 찾아 헤맸으며 지금은 신화와 숨 쉬는 인생을 살고 있다. “나 그래도 판화도 팔고, 디자인 주문 들어오면 글씨도 써요. 70년대부터 스님으로부터 고법으로 붓을 쓰는 법을 잘 배웠잖아(웃음).” 예술가로서 마음속으로 꿈꾸는 좋은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물었다. “과정에서 좋은 미래로 가는 길을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가는 거겠죠. 내 세대의 징검다리에서 다음 세대의 징검다리로 조금씩 사회를 변화시켜나가야겠죠. 내가 가는 길이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나 또한 예술을 배반하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것이 뿌듯합니다. 당당합니다.”
- 2017-11-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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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형 잡힌 여가모델을 개발하자
- 은퇴 후의 여가생활은 노후 행복의 중요 요소다. 여가시간이 계속하여 늘어나기에 더 그렇다. 은퇴를 하고 나면 시간 부자(富者)가 된다. 달리 표현하면 “날마다 일요일”을 사는 셈이다. 이 시간을 무료하지 않게 보내야 노후가 행복해진다. 여가활동이 이에 해당한다. 긴긴 여가를 하릴없이 보낸다면 고통일 수밖에 없다. 여가활동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문화예술, 스포츠, 휴식, 사회활동, 관광, 취미 오락으로 나눌 수 있다. 문화예술과 스포츠 분야를 다시 관람과 참여로 나눌 수 있다. 종류는 정말 다양하다. 활동 형태에 따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정적 활동과 동적 활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혼자 하느냐 어울려 하느냐에 따라 개인형, 집단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네 가지 유형에서 어느 한 방향으로 치우친 활동보다 균형 잡힌 여가활동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독서만을 즐기는 유형의 사람은 활동적인 취미나 다른 사람과 어울려 하는 취미를 추가로 개발하여 활동하면 균형적 여가활동이 되어 사회성도 높이고 건강도 챙길 수 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보다 균형적 삶이 필요하다. 사람은 대체로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즐기는 생활이 있게 마련이어서 한 방향으로 기울기 쉽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보다 균형적 삶이 필요하다. 사람은 대체로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즐기는 생활이 있게 마련이어서 쉽사리 한 방향으로 기울기 쉽다. 균형 잡힌 여가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여가활동 형태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에서 현재 하고 있는 여가활동 종목을 동그라미로 그려가면서 점검해본다. 처럼 한쪽에 치우쳐 있다면 그 반대 방향에 있는 종목 중에서 잘 할 수 있는 종목 한둘을 개발하면 된다. 종목 선택은 종류에 상관하지 말고 현재 재미있게 하고 있거나 관심을 가져온 분야면 좋다. 재미있는 취미가 되려면 하고 싶었고 재능이 있는 그리고 유소년 시절에 즐겨 했던 종목이면 금상첨화다. 어느 여성 한 사람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배웠던 종이학 접기를 다시 시작하여 소일거리로 만들었고 종이접기 전문가로 거듭나 바쁜 여가를 보낸다. 취미뿐만 아니라 전문 강사로 활동하며 용돈도 벌고 있다. 현재 재미있게 하는 일상의 습관이나 관심을 취미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이다.
- 2017-10-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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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을 즐기는 법
- 우리 엄마는 충남 예산 사람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일찍이 고향을 떠나 사셨기 때문에 엄마가 충청도 사람이란 걸 오래도록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충청도 지방을 여행하면서 가끔씩 엄마 손맛이 떠오르는 밥상을 받게 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추석연휴를 마무리 하면서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건 외암마을에서 먹은 시골밥상이 생각나서였다. 외암마을에 들어가려면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야 한다. 표를 끊으며 보니 '외암민속마을을 재밌게 관람하는 방법'이 쓰인 안내판이 보였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쭈~욱 가서 홍보관 영상 보고 상류층, 중류층, 서민층 가옥을 둘러본 다음 자연미 넘치는 돌담을 따라 걸으며 마을 정취를 느껴보길 권하고 있었다. 안내문에 써진 대로 좌측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아빠 무등을 탄 꼬마나 나이 든 부모님이나, 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즐겁게 전통가옥을 구경하였다. 담 너머에서 들리는 다듬이 방망이 소리에 옛 추억이 생각난 사람들은 다듬이 체험장에서 신나게 방망이를 두드렸다. 어린 아이들에게 다듬이질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들도 신이 나 보였다. 전시관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진짜 마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고즈녁한 동네가 나온다. 명문 고택과 초가로 된 농가가 한데 어울려 있는 소박한 마을이다. 마을은 온통 돌담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 돌담의 길이가 무려 6,000m에 이른단다. 집 안이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낮게 만든 돌담은 제주도 돌담과는 또 다른 운치를 느끼게 했다. 돌담길을 걸어 찾아간 곳은 이 마을 유일한 밥집인 신창댁이다. 밭에서 직접 길러 만든 반찬으로 된장찌개나 청국장을 먹을 수 있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1인분에 5,000원이니 시골인심이 듬뿍 느껴진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신창댁 아주머니는 가는 길에 먹으라며 막 쪄낸 옥수수를 싸주었다. 내가 미안해 하자 '여긴 아직 촌인심이 살아있다'고 선하게 웃던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아주머니를 위해 달달한 파운트 케익 하나를 준비했다. 대청마루에 앉아 구수한 청국장찌개를 먹는 동안 아주머니는 방 안에서 빵을 드셨나보다. 밥을 다 먹었을 즈음, 빵이 너무 맛있다며 밥상도 물리지 않은 상에 다가오셨다. 아주머니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시부모님 몰래 밤 마실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려고 하니 시아버지 방에 불이 켜있어서 오도가도 못하고 쩔쩔 맸던 옛날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었다. 밥도 맛있고 커다란 대청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도 즐거웠다. 마치 시골 친척집 아주머니집에 다니러 온 것 같이 편안한 느낌이었다. 여유로운 농촌에서 휴식을 즐기는 것이 요즘 여행의 트렌드다. 잘 여문 벼들과 감나무, 밤나무, 고염나무 열매가 풍성한 가을날, 외암민속마을을 거닐며 보는 풍경은 한없이 정겹다. 서울에서 차로 1시간 30분이면 올 수 있다. 게다가 외암민속마을 주변에는 현충사나 공세리성당,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 등 즐길거리도 풍성해 당일여행으로도 매력적이다. 10월 21일부터 11월 25일까지 가을여행주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해 전국의 지자체와 민간기업이 함께하는 국내여행 특별 주간으로, 여행주간 기간 동안은 정부의 지원 아래 지자체, 관광업계가 협력해 전국의 주요 관광지에서 숙박ㆍ편의시설, 입장료 등을 무료 혹은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가을여행주간(fall.visitkorea.or.kr) 사이트를 둘러보고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러 떠나보면 어떨까.
- 2017-10-20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