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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세 이상의 인턴 일자리 ‘실버인재센터’가 책임진다
- 2017년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로 들어선 지 2년이 되었다. 특히 ‘일자리’ 문제는 노년의 삶과 직결되고, 청년과 노년 할 것 없이 모두가 겪고 있기에 난제(亂題)가 되었다. 2006년에 이미 고령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로 들어선 일본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나가고 있을까? 일본의 ‘고령자 고용안정법’ 1994년에 이미 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2000년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개정했다. 65세까지 안정된 고용을 확보하도록 정년을 61세 이상으로 연장하거나,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2004년에는 법을 다시 개정해 ‘65세까지 정년 연장’, ‘계속고용제도 도입’, ‘정년제 폐지’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하도록 했다. 그리고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2006년부터 개정한 ‘고령자 고용안정법’을 시행했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노력으로 정년을 연장 또는 폐지하는 기업이 늘어났다. 자연스레 고령자 채용에 반감을 갖기보다, 오히려 고령자 고용을 선호하는 기업도 늘었다. 일본에서 외식사업을 하는 ‘스카이락 홀딩스’는 시니어 직원을 채용하는 ‘베테랑 크루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 이 기업에 채용된 65세 이상 70세 미만의 크루(직원)는 약 1000명 정도이며 올해는 베테랑 크루의 상한 나이를 70세에서 75세로 올렸다. 노인 일자리 허브 ‘실버인재센터’ 우리나라의 한국노인인력개발원처럼 일본에도 노인 일자리, 시니어 인턴 제도를 담당하는 곳이 있다. 바로 실버인재센터다. 실버인재센터는 노인 일자리 정책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1980년대에 고령자의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지자체 정책인 ‘고령자 사업단’을 모태로 하고 있다. 1986년에 관련 법령이 제정되며 사단법인이 되었고 현재 일본 정부(후생노동성)가 전국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1325개소가(2017년 기준) 운영 중이며 가입 회원 수는 71만3746명, 사업계약금은 3166억 원에 달한다(2017년 기준). 기초지자체별 설치율은 80%에 달하는데 거의 모든 지역이 실버인재센터를 통해 시니어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센터는 60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회원이 되면 연회비를 납부하는데, 금액은 센터마다 다르다. 회원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소개받을 수 있으며, 센터가 개인, 회사, 공공기관으로부터 일을 의뢰받아 연결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근로시간은 한 달에 10일, 일주일에 20시간을 넘지 않는다. 다만, 노동력이 더 필요한 농어촌 벽지에선 주 40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혹여 업무 중 상해가 발생하면 실버인재센터에서 가입한 ‘단체상해보험’을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실버인재센터를 통해 제공되는 일자리는 주차·정원·시설관리, 청소, 서기, 아이돌봄 등이다. ‘고령자 고용안전법’에서 노인의 취업 기회를 주 20시간의 비교적 강도가 높지 않은 일자리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니어가 단순히 일하고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그들이 일하며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일본의 시니어 인턴 사례 - 도쿄 커리어 트라이얼 65 주식회사 아데코가 도쿄도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중이다.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일자리 연계 사업을 진행한다. 주로 제공되는 일자리는 사무직, 영업직, IT기술직으로 1~2개월의 인턴 근무 후 정식 채용이 결정된다. 업무 종료 후에도 전문 상담원을 통해 취업에 관련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 사이타마 현의 ‘시니어 인턴십’ 2018년 일본 사이타마 현은 자체 시니어 인턴십을 진행했다. 현 내에 거주하는 60세 이상(55세 이상 조기퇴직자도 포함)을 대상으로 인턴 준비 강습, 직장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직장 체험 기간은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5일로, 참가자와 고용 기업이 서로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참가자는 본인에게 적합한 직무, 회사를 선택할 수 있고, 기업 또한 필요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 참여자에게는 인턴십 성공 안내책자도 무료로 배포한다. ‘사이타마 현 시니어 인턴십’은 올해도 진행 중이며, 이력서 작성법, 직장 내 소통 등을 주제로 강연을 개최하고 있다.
- 2019-02-1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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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현대맨’이 찾은 희망퇴직 후 제2인생 해법
- 정년퇴직을 1년 남긴 시점에서 날아든 갑작스러운 희망퇴직 공고. 평생을 현대자동차의 성장을 기쁨으로 알고 일해온 홍노희(洪魯憙·59) 씨는 고민에 휩싸였다. 정년을 채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후배들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떠나주는 것이 사랑하는 회사를 돕는 길일까. 37년을 상용차 제조 현장에서 품질관리를 담당해온 그의 고뇌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결같았던 이른 새벽 출근길 떠오른 확신은 결심으로 변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2018년 2월의 일이다. 그 후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1981년.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아이콘 청계고가 위를 포니가 신나게 달리던 시절. 당시 현대자동차는 북미 수출의 꿈을 안고 포니2의 개발을 준비 중이었다. 홍노희 씨는 군복무를 마치고 갓 입사한 청년이었다. 그는 그 시절의 현대자동차를 이렇게 회고했다. “포니가 인기를 얻으면서 공장은 활기로 넘쳤죠. 저는 특장차 조립 일을 했는데, 건설 붐을 타고 수요가 폭발했던 레미콘 같은 차량을 담당했죠. 컨베이어벨트에서 맡은 부분만 조립하는 소형차와 달리 대형 상용차들은 몇 명이 달라붙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품을 조립해 완성하는 방식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내가 만든 차’라는 자부심이 컸고, 소소한 부분까지 공을 들였죠.” 32년간 품질관리 매달려 그런 노력이 회사의 눈에 들었는지, 품질관리라는 개념이 생산현장에 도입되면서 담당자로 발탁된다. 입사 5년 차에 시작한 품질관리 업무는 그렇게 32년간 평생 직업이 됐다. 회사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실력을 발휘해 2004년과 2006년에는 국가품질경영대회에서 우수분임조 은상을, 2010년에는 금상을 받았다. “사실 품질관리라는 분야는 시어머니 같은 역할입니다. 협력업체에서 부품이 제대로 만들어져 왔는지, 그 부품들을 제대로 조립했는지 확인하는 일이니까요. 모든 수치를 암기하고 있어야 했죠. 검사할 때마다 자료를 찾아볼 순 없으니까요. 또 간혹 조립 담당자와 갈등도 있습니다. 조립자들은 할당된 생산량을 맞춰야 하는데, 품질관리자가 시간을 잡아먹는다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스펙에 미달하는 것을 용인할 순 없었죠.” 퇴직 후 예상과 다른 현실에 당황 그의 퇴직 스토리를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족의 반응이었다. 만류는 없었을까? “아내도 이제 쉴 때가 됐다며 응원해줬어요. 몇 년만 잘 버티면 연금도 나오니까 일찍 노년의 삶을 준비할 기회가 될 거라고 하더군요. 오히려 회사 후배들이 말렸지만 저는 퇴직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러나 덜컥 퇴직하고 나서 당황했다. 그는 “생각과는 달랐다”고 고백했다. 그가 예상했던 것과 현실은 큰 차이가 있었다. “텃밭에서 과실수를 관리하고 닭 모이를 챙기는 것이 평생 생산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에게 일다운 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돈 걱정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끊기니 심리적 압박도 있었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재취업.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에서 관련 교육도 받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 도움도 받았다. 그런 와중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퇴직 소식을 들은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품질관리를 맡아 개선해줄 수 없겠느냐는 제안을 해온 것. 그리고 국내 주요 자동차 기업의 우수 협력사로 꼽히는 중견기업 평안정공주식회사에 입사했다. 자동차 산업에 도움될 수 있어 보람 “긴 공백기 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어서, 특히 제가 그동안 해왔던 품질관리 일을 할 수 있어서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또 고향 같은 전 직장에도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더 즐겁습니다.” 물론 회사의 규모도 문화도 다른 조직에서의 적응이 쉬울 리는 없었다.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부품을 갖고 조립만 하다가, 직접 쇠를 깎고 다듬는 과정을 관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우리 회사는 상용차 후륜의 구동부(rear axle housing assembly)를 만들고 조립해 납품하는 일을 합니다. 100분의 1mm만 틀어져도 조립이 되지 않거나, 윤활유가 새어 나오기 때문에 높은 정밀도를 요구해요. 매일 생산되는 약 1000대분의 부품에 문제가 없게 하려면 품질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출근 초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불량에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그는 “몽롱했다”고 표현했다. 사람 손에서 나는 오류는 확인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공정에서 다시 점검하는 ‘키퍼(keeper) 제도’를 도입하는 등 품질관리 과정을 보강하고, 경영진을 설득해 장비도 새로 들였다. 2억 원이 넘는 투자는 곧 품질로 나타났다. 입사 초기보다 10분의 1 이하로 불량이 줄었다. “새로운 회사에서 제가 노력한 만큼의 성과들이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 너무 즐겁습니다. 저를 믿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경영진을 만나게 된 것 역시 제겐 행운이죠. 평생의 보람이라 생각하는 이 일을 회사에 보탬이 되는 한 계속하고 싶습니다.”
- 2019-02-1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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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유영미 아나운서, 뉴스 Queen 내려놓고 시니어와 동백꽃처럼 피다
- “앵커, 명예 졸업합니다. 고맙습니다.” 8년 전 마지막 뉴스를 전하던 날, 유영미(柳英美·57) 아나운서의 마무리 멘트에는 후련함, 시원함 그리고 섭섭함이 담겨 있었다. 그녀 나이 오십. 여성 앵커로서 최장기, 최고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젊고 아름다운 시절에 뉴스 인생을 마감했다. 강단 있는 목소리로 SBS 여성 앵커의 표본이던 유영미 아나운서. 한동안 안 보이나 싶더니 작년 말 ‘2018 아나운서 대상’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TV 시청자 눈을 떠나 라디오 청취자들과 만나고 있었단다. 그것도 빨간 오픈카(?) 타고 ‘마음은 언제나 청춘’을 외치면서 말이다. 시니어와 소통한 보람을 인정받다 “놀랐어요. 내가 벌써 공로상을 받을 나이가 됐나 하고요. 저희 프로그램은 시니어에게 도움이 되고자 1991년 SBS가 창사하면서 시작한 최장수 프로그램입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벽 청취자들을 위한 방송이었죠. 다른 선배님께서 3년 정도 하시다 제가 바통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했는데 이런 큰 상도 받네요.” 작년 말, 2018 아나운서 대상 시상식에서 유영미 SBS 아나운서의 이름이 불렸다. 시니어 세대를 위한 SBS 러브FM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을 25년간 진행해온 공로였다. 오랜 시간 프로그램을 이끌어온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유영미 아나운서는 DJ는 물론 2010년부터 PD도 겸하고 있기에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2015년에는 한국방송대상에서 사회공익 라디오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SBS 간판 아나운서로 뉴스를 비롯해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던 30대 초반에 만난 ‘마음은 언제나 청춘’. “유영미 선배의 목소리가 너무 따뜻해서 라디오와 잘 어울린다”는 담당 PD의 사탕발림(?)에 못 이기는 척 승낙한 방송이 인생 역작이 됐다. “처음에는 부모님이나 선배 세대를 생각하면서 방송했어요. 청취자와 서서히 녹아들고 세월이 지나고 보니 저도 어느새 시니어 대열에 합류했네요. 그동안 잘 걸어왔어요.” 매일 새벽 5시. 그 누구도 듣지 않을 것 같지만 유영미 아나운서는 멀리서 묵묵히 라디오를 켜는 시니어의 관심과 사랑을 깊이 감지한다. 진행을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2000년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 대학원에서 노인학을 공부했다. 2010년에는 시니어 프로그램 DJ 경험담을 엮어 ‘두 번째 청춘’도 발간했다. SBS로 채널을 돌리면 ‘또 유영미’ 소리가 나오던 때에 말이다. 금기를 깨고 얻은 타이틀 ‘최초’ 유영미 아나운서는 시청자로서 봐왔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파스텔 톤 정장에 정돈된 머리 스타일의 그녀가 밝은 갈색 머리에 꽃무늬 로브룩으로 나타났다. 예능의 끼가 느껴진다 말하니 투정 섞인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 재미난 것을 왜 안 했는지 몰라. 늙기 전에 진작할걸. 옛날에는 뉴스 앵커 이미지 때문에 예능을 할 수 없었어요. 이제는 좀 자유롭게 저를 표출하고 싶어요.” 1986년 울산MBC에서 방송생활을 시작해 SBS 공채 1기로 들어와 현재까지 활동하는 최고령 여성 아나운서. ‘여성 아나운서로서 최초’ 타이틀은 왜 이리도 많은지, 33년 여성 방송인으로서의 삶은 마치 ‘가시밭길 몸소 닦아 새길 만드신 신여성 일대기’와도 같았다. “여성 아나운서는 일을 오래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저는 살짝 그런 시절을 비껴갔는데 결혼한 여자가 회사에 있기 힘든 시절이었죠. 그런데 저는 결혼과 함께 SBS에 입사했습니다.” 결혼을 앞둔 와중에 SBS 공채 1기 채용 공고가 났다. 결혼을 미룰 수도, 응시를 안 할 수도 없었다. 채용 공고가 언제 또 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당시 저희 팀장님이 ‘SBS를 오래도록 빛내고 기여할 아나운서인데 결혼이 뭐가 그리 문제냐’며 윗선의 날선 시선을 잠재워주셨어요. 덕분에 결혼과 신혼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동기들보다 두 주 늦게 출근했습니다. 임신 9개월까지 뉴스 앵커석에도 앉아 있었고요. 두 달 출산휴가 마치고 앵커석으로 돌아온 여자 아나운서는 제가 최초였어요.” 여자 아나운서가 출산을 하고 다시 뉴스를 맡은 전례가 당시에는 없었다. 내가 잘해야 후배들이 이 길을 따라올 거라 믿었다. “임신했을 때 뉴스 하지 말라고 했으면 여성운동했을 거예요. 빡빡한 세상이었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선배들이 있었어요. ‘능력 있고 일 잘하는데 결혼하고 애기 낳는 게 무슨 상관이냐, 뉴스 앵커가 뉴스만 잘하면 되지’ 하면서 응원해줬어요. 선배의 역할은 좋은 선례를 남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공채 1기이다 보니 여자 아나운서 선배가 없어요. 그래서 뭘 해도 늘 최초가 된 거죠. 요즘 세대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을 그때는 싸워서 얻어야 했어요.” 건물 내 흡연이 만연하던 1990년대 말에는 뜻있는 여성 사우들과 함께 ‘꽃을 든 금연 운동’도 전개했다. 사무실에서 금연하는 사람에게 꽃을 주고 박수도 쳐주는 운동이었다. 요즘 건물 밖에서 담배 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시절 생각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피겨 중계, 웃고 울다 남은 생채기 유영미 아나운서를 만나니 스포츠 중계 관련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그녀 이름은 뉴스 앵커와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 라디오 PD 겸 DJ로 회자되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스포츠 중계를 한 여성 아나운서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개·폐막식과 피겨스케이팅,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을 중계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 김연아 선수와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가 세계 주니어 무대에서 주목받으면서 피겨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일던 때였다. 피겨스케이팅 중계를 준비하지 않은 타 방송사에 SBS 유영미 아나운서의 중계가 송출됐다. 이후 SBS는 국제빙상연맹(ISU) 독점 중계권에 이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중계도 독점하면서 동계스포츠 중계에 모든 것을 걸었다. 유영미 아나운서 또한 2000년부터 피겨 중계를 준비하고 있었으니 이변이 없는 한 김연아 선수의 ‘007 본드걸’ 중계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가혹하게도 이변은 일어났고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중계석 마이크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녀는 방송 인생에서 가장 아픈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녹화 중계였는데 제가 ‘한 선수가 성장하기 위해서 많은 지도자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하던 중에 김연아 선수를 위해했던 코치가 지나갔답니다. 그 사람을 지칭해 한 말도 아니었는데 난리가 난 거예요. SBS 스포츠 인터넷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공포 그 자체였어요.” 중계를 녹화할 당시 수많은 스태프가 함께 있었지만 원망의 대상은 유영미 아나운서의 몫이었다. “제가 마이크를 던졌어요. 조직을 위한 결단이었죠. 그저 침묵이 약이었습니다.” 한참 후 담당 팀장이 스포츠 중계를 권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스스로를 위로할 시간이 필요했다. “제가 매화랑 동백꽃을 좋아하는데 꽃이 질 때 뚝 하고 떨어져 내려요. 그땐 나 스스로를 부러뜨려야 했어요. 그저 회사만 생각했습니다. 고통스러웠어요. 안티팬 글을 보고 나면 방송 절대 못해요. 그래도 동계올림픽 최초 여성 캐스터라는 타이틀은 되게 좋았어요. 그런 일들이 있었네요. 아나운서 33년 동안 일이 많았네.(웃음)” 힘들 때 달려와 안긴 곳은 라디오 그러고 나서 힘든 마음을 내려놓은 곳이 시니어 청취자를 만날 수 있는 라디오 부스 안이었다. 스포츠 중계석에서 떨어진 동백꽃은 라디오로 되돌아와 다시 예쁘게 자라났다. 마음속 얘기도 꺼낼 수 있고 제작까지 하니 한결 자유로웠다. “힐링도 하고 자존감도 높아졌어요. 청취자들이랑 늙는 얘기 진짜 많이 해요. 오십견 온 얘기도 하고,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서 한쪽 손으로 방송한 얘기도 하고요. 남들은 25년 한결같이 어떻게 했냐고 하지만 저는 매일매일이 새로웠어요. 제 방송을 듣는 분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면 좋겠어요. 행복하게 사는 방법도 공유하고요.” 앞으로의 꿈이 뭐냐고 물었다. 대답 참 간단했다. SBS 최초로 정년퇴임하는 여성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초라한 성적표일지는 모르겠지만 위대한 여정의 마침표를 찍고 싶단다. “유영미였습니다. 사랑합니다.”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하는 그녀의 마무리 멘트다. 맞다! 방송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2019-02-0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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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일자리 정책으로 본 ‘시니어 인턴 제도’
-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가는 현재 우리는 ‘나는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퇴직하면 무엇을 해야 하지?’ 등의 주제로 남은 인생에 대한 희망 또는 고민을 하게 된다.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중장년층의 퇴직 평균 나이는 49.1세라 한다. 이때부터 다시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미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이나 곧 퇴직을 앞둔 퇴직 예정자들은 노후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일자리 정책 5년 로드맵(일자리위원회·관계부처 합동)’을 보면, 신중년 대상 장기근속을 위한 개선방안, 전직 지원 및 신규 일자리 확대 등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고용창출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고용안정장려금, 장년고용안정지원금 등 장년층 이상의 고용 및 일자리 안정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책들은 대부분 만 45~60세 이상의 연령을 대상으로 신규 고용과 정년 연장 또는 임금 보전 형태의 지원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자리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청 2018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55~64세인 중장년층은 평균 49.1세에 실직을 하게 되지만 이들 중 64.1%가 생활비에 보탬(59.0%), 일하는 즐거움(33.3%) 등의 이유로 평균 72세까지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고용 유지를 위한 정책 대상의 나이와 일하기를 희망하는 나이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혹자는 60세 이상의 중장년층에도 정책 지원이 계속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정년이 60세인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59세 김OO 씨. 정부의 고용안정 관련 지원금을 받아 정년을 62세까지 보장을 받았다. 김OO 씨는 일하고 싶어도 62세에 퇴직을 하면 실업자가 된다. 이 경우 김OO 씨는 62세 이후 정부지원 정책을 통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자리가 고용유지 기간이 짧거나, 계약직 등으로 불안하다면 김OO 씨는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김OO 씨의 사례처럼 중장년, 특히 60세 이상의 시니어(여기서는 60세 이상을 시니어로 칭하겠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많은 시니어가 소득 단절과 노년기 여가 및 사회활동 부족 등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2016년부터 정년 연령을 넘기 시작해, 2024년에는 정년을 초과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은퇴가 현실화되면서 더 커질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55세 이상의 인구는 1389만 명, 2024년도에는 1843만 명으로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니어 인턴 제도, 희망인가? 대안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일자리 사업이 진화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만 45~60세 내외의 고용유지 중심 정책을 지원하고 있고, 보건복지부와 지자체는 60세 이상의 시니어를 대상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은 2004년 도입 당시 공익참여형과 공익강사형, 인력파견형과 시장참여형으로 시작했으나, 이후 활동 유형이 세분화되고 신규 사업 유형이 개발되어 2011년 시니어 인턴십, 고령자 친화 기업 등과 같은 시장자립형 노인일자리사업, 2014년 재능나눔활동, 2017년 기업연계형 사업 등으로 나눠진 일자리 지원 사업이 작동 중이다.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만 60세 이상인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 직업 능력 강화 및 재취업 기회를 촉진함과 동시에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시니어 인턴십 사업은 60세 이상 근로자를 채용한 기업에게 인턴기간(3개월) 중 월 급여의 50%의 급여를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인턴기간 종료 후 계속근로계약(6개월 이상) 체결 시 최대 3개월간 급여의 50%를 추가 지원(전략직종형 최대 월 40만 원·일반형 최대 월 30만 원)한다. 시니어 인턴십은 인턴형과 연수형으로 나뉜다. 인턴형은 단기 근로자 신분으로 고용되어 3개월간의 정부 지원 종료 후 기업이 계속고용 여부를 결정한다. 연수형은 기업이 직접 근로자와 계약을 맺고 해당 직무 연수생으로 3개월간 교육을 시킨 후 신규 채용하는 방식이다. 인턴 채용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나 시니어 인턴십 운영기관에서 신청한 뒤 해당 운영기관에서 진행하는 사전 교육을 이수하고 기업 상담을 거쳐 결정된다. 현재 전국 100곳의 사업장에서 운영 중이다. [표1]의 노인일자리사업은 시니어 계층이 ‘일하는 즐거움’을 체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표2]와 [표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용 유지와 일자리 창출이 강화된 지원 사업 분야는 지속적으로 증가(단, 2017년은 기업연계형이 새롭게 진입해 실적이 하락)하고 있으며, 취업유지율과 계속고용율, 1인당 월평균 소득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시니어 계층에게 긍정적인 일자리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노인일자리사업 통계에 따르면, 시니어 인턴십의 경우 사업시설관리 및 사업지원 서비스, 도매 및 소매업 등 단순 기능직 중심의 일자리 연계가 55.1%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시니어 인턴 일자리가 대부분 경비 아니면 운전밖에 없는 것이다. 일자리 지원 사업이 기존 일자리를 기반으로 저숙련, 진입장벽이 낮은 직무로 연계되는 현실은 대체 가능한 인력이 많은 시니어에게 여전히 고용불안의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시니어만이 할 수 있는 직무 중심의 일자리 창출 그렇다면 시니어 인턴 제도를 디딤돌로 새로운 일자리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력과 역량을 이어갈 수 있을까? 2017년까지 고용노동부에서 수행해왔던 중장년 인턴제는 근로조건, 직무불일치(43.7%), 고령자 고용을 꺼리는 편견(34.8%), 건강상태(20.8%) 등의 문제가 지속되어 ‘신중년 적합 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으로 대체했다. 이는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신중년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선발해 우선지원대상기업 월 80만 원, 중견기업 월 40만 원 등의 수준으로 고용지원을 하는 제도다. 이 사업은 신중년의 적합직무 유형을 경력활용, 역량강화, 신직업 도전의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지원된다. 서울시도 이와 유사한 50플러스 보람일자리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만 50~67세까지 월 57시간 이내(월 52만5020원) 근무하는 인턴을 위한 공헌형·혼합형 중심의 일자리 지원 체제다. [표4]에서 보듯이 시니어 계층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선택을 통해 직무와 직업을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 분야를 보다 전문화, 세분화해 취업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니어 세대가 바라는 취업처를 모두 포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전문적이어서 다른 세대와의 일자리 경쟁을 극복해야 하는 문제, 근력 등의 저하가 발생해 높은 노동 강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능직 분야도 제한적일 수 있다. 시니어는 주니어가 경험하지 못한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가졌다. 그리고 퇴직 후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직무 경험과 노하우를 유지한 채 타 직무로의 전직을 해야 하는 노동생산성의 손실을 보고 있다. 이제는 일자리 지원 정책이 직업 또는 고용유지 정책이 아닌, 개인의 경험과 역량을 일자리 관련 정책과 연계해야 할 시점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각 정부 및 지자체는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부족한 인력이 각 분야에서 활동 경험과 역량이 출중한 산업 현장 전문가들일 것이다. 시니어는 이러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는 직업 중심의 일자리 지원보다 시니어가 보유한 직무 능력을 활용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대안이 직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직업 발굴과 지원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품질, 마케팅, 경영, 인재선발, 해외진출, 생산관리 등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직업훈련을 받거나 예비 창업자들은 경험이 풍부한 각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현재 중장년 또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장려금 사업’은 청년창업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등 시니어 계층의 노하우가 필요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 유지 기능만으로는 안 된다. 일하고 싶어 하는 순간까지 일할 수 있는 지원 정책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러한 대안으로 시니어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청년창업자와 중소기업의 경영난 해결을 위한 문제해결 및 대안제공 전문가, 자문 및 경영 컨설턴트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산업별, 직무별 전문가 직업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보건복지부의 시니어 인턴십 사업과 고용노동부의 장년 인턴제 등을 포함한 시니어 인턴 제도가 복지수혜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도 정착되어야 한다. 시니어 일자리 정책은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부처를 통합한 컨트롤타워를 통해 좀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겠다. 고령화 미래 직업을 고민해야 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인재가 창의융합형 인재라 한다. 그리고 프리랜서의 역할이 더 증대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현재 시니어 대상 일자리 지원 방향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오늘날에 앞으로 사라질 직업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일정 교육 과정을 거치고 실무현장에서 은빛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시니어 인턴들에게 재취업 혹은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시니어 개인으로서는 앞으로 다가올 직업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시니어의 축적된 노하우와 기업의 융합은 새로운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다. 이를 위해 시니어 인턴 제도의 일자리 정책은 시니어가 보유한 노하우나 자원을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직무 기반 직업 마련을 위해 펼쳐나가야 한다.
- 2019-01-3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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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의 구직, "취업이냐 창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글 김대중 본부장(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새해가 시작되었다. 늘 그래왔듯 연초가 되면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등 정부가 운영하는 취업지원 기관들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연말에 퇴직한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받거나 취업을 위해 구직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공공근로가 끝났거나, 계약기간이 종료되었거나, 기업에서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이다. 특히 중장년층에게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재취업을 해야 할지, 창업 또는 귀농·귀촌·귀어를 해야 할지, 봉사활동을 하며 살 것인지, 취미생활이나 하며 쉴 것인지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취업을 할 것이냐, 창업을 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2019년은 창업보다는 적극적으로 재취업에 도전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확실한 경제 전망에 있다. 창업은 ‘운7 기3’이라고 말하곤 한다. 즉 창업의 성공은 기술이나 능력, 아이템보다 운이 더 크게 좌우한다는 의미다. 창업을 시작하며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역시도 대박의 꿈을 안고 시작한 사업을 1년도 채 안 되어 접어야 했던 경험이 있다. 준비도 오래했고 도와주겠다는 지인도 많았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국내외의 경기 불황 때문이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고 외식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출을 줄인다. 소비나 구매에 대한 사고도 ‘있으면 좋겠네, 하면 좋겠네’에서 ‘없어도 되겠네, 안 해도 되겠네’로 180도 바뀐다. 개인들이 하는 사업 중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니어가 취업을 선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직 건강한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그동안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더 나이가 들면 육체적 문제나 고령자 일자리 한계 등의 이유로 취업이 매우 어려워진다. 필요하다면 창업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많은 중장년 퇴직자가 재취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쉽게 포기하면서 무모한 창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물론 이 세대의 재취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준비하고 도전해야 성공한다. 최근 통계상으로 봐도 구직단념자가 증가하고 있다. 경기가 어렵다고, 개인 상황이 안 좋다고 취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나라 시니어 계층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경제적으로 온갖 역경과 고난이 닥쳐도 이를 극복해내고야 마는 불굴의 의지다.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가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몸을 바쳤고, IMF 외환위기도 지혜롭게 헤쳐 나갔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도 겪었다. 그야말로 만고풍상을 다 겪은 세대다. 이러한 경험과 연륜이 있기에 적극적인 자세로 준비하고 도전한다면 재취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은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구인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청년실업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런 모순의 해결을 위해 청년들에게 무조건 중소기업으로의 취업을 유도한다고 해서 욜로(YOLO)족을 꿈꾸는 세대에게 통할 리 없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적합한 일자리 지원 방안을 강구하고 이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자리는 부모 세대인 중장년들에게 소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시니어의 재취업은 어떻게 해야 성공할까. 가장 빠른 방법은 정부의 지원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시니어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퇴직자가 지역아동센터나 사회적 기업 등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회공헌형 일자리도 있고, 민간 취업이나 창업이 어려운 고령자와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공익형 일자리도 있다. 이외 민간 지원 내실화를 통한 시니어 인턴십 사업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올해는 신중년 경력 활용 지역 서비스 일자리 사업이 신설되는 등 다양한 취업 지원 제도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거나 참여 방법이 궁금하면 정부가 운영하는 각 지역 고용복지플러스센터나 중장년 일자리희망센터에 문의하면 된다.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일자리위원회에서도 중장년 일자리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다양한 대책들을 적극 논의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 72세까지 일한다는 통계가 있다. 정년퇴직 후 무려 20여 년을 더 노동하는 셈이다. 앞으로 이 기간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이제 나이에 대한 기존의 인식 틀을 깨야 한다. 정년퇴직 연령과 기대수명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50대는 30대, 60대는 40대, 70대는 50대로 봐야 한다. 신체나이와 사회적 나이를 구분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정년퇴직이나 일반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학교를 졸업하는 시기로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 졸업과 함께 첫 번째 취업 준비를 하고 노력했듯이, 이제는 퇴직 후의 두 번째, 세 번째 재취업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의미의 말이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공공형 일자리, 시장형 일자리, 시간제, 인턴제 가릴 것 없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찾으면 된다. 전문기관의 도움을 통해 현재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재취업을 준비한다면 오히려 이전보다 더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시니어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김대중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본부 본부장 고려대 및 동대학원 졸업(경영학석사), 중앙대 HRD정책학 박사(수료). 노사공동 전직지원센터 본부장,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 본부장, 노사발전재단 국제노동센터장, NCS 및 일자리위원회 전문가 활동 중. 저서로는 춘추전직시대(春秋轉職時代), 전직으로 당신의 인생을 환승하라가 있다.
- 2019-01-2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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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시대는 가고 명퇴시대가 왔다
- 은퇴(隱退)란 사전적 의미로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이라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또 아름다운 말이다. 평생을 몸 바쳐 일한 사람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생하고 애썼으니 이제 편히 쉬어도 되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사회적 배려가 담긴 말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은퇴한 분들을 보면 우러러 보이기까지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한가히 지냄’이란 말이 거슬린다. 과연 ‘은퇴 후 한가히 지낼 만한가?’라고 다시 묻게 된다. 직장마다 좀 다르긴 하지만 민간기업은 정년과 관계없이 명예퇴직을 요구한다. 정년을 못 넘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설령 정년을 넘긴다 해도 한가히 쉴 만큼 여유가 없다. ‘55세 퇴직 61세 회갑’은 평균수명이 70세 정도일 때 적합한 말이 아닌가 싶다. 요즘처럼 100세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퇴직 때까지 벌어놓은 돈으로 좀 아껴 써가며 70세까지 사는 데 큰 무리가 없었을 때는 은퇴라는 용어가 어울렸다. 그런데 백세시대에는 퇴직 후 50여 년을 더 살아야 한다. 그러니 이 기간을 생각하면 한가히 지낼 수가 없다. 언론에서는 세 차례 퇴직 쓰나미를 이야기한다. 제1차는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 전체 인구 중 14.3%)다. 710만 명의 퇴직이 시작된 지 몇 년 되었다. 제2차 베이비붐 세대(1968~74년생, 전체 인구 중 12.1%) 604만 명의 퇴직도 곧바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제3차 베이비붐 세대인 에코 세대(1979~85년생, 전체 인구의 10.8%) 540만 명이 그다음으로 퇴직한다. 에코 세대는 제1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다. 우리가 맞이할 이 시기에 1955년생부터 1985년생까지 약 30년에 걸쳐 엄청난 퇴직 인구가 쏟아져 나온다(중앙일보 2015.1.15.일자 기사). 퇴직 쓰나미라는 말이 실감난다. 정년도 못 채우고 명퇴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정년을 채우고 은퇴를 해도 문제다. 명퇴자나 은퇴자나 다를 게 없다. 모두가 제2인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자리는 이미 첨단 산업에 밀려 빼앗긴 지 오래다. 컴퓨터 한 대가 수십 명의 몫을 해낸다. 우리가 개발해놓은 첨단 산업에 쫓겨나는 형국이다. 19세기 영국의 수공업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섬유기계를 파괴하는 폭동을 일으킨 사건인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다.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고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없어지는 산업만큼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된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정책적 뒷받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은퇴자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자신을 낮추고 보람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퇴직 후 한가히 쉴 수 없다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면 즐겁지 않다. 작은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 중요하다. 경제적으로 아직 한가하게 쉴 입장이 아니라도 일의 노예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의 깊이도 달라진다. 지혜를 발휘할 때다.
- 2019-01-2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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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업 근무 29년보다 프리랜서 생활 더 만족”
- 공기업. 안정된 직장의 표본처럼 취급받는 일터. 그곳에서 29년을 일했다. 평생 큰 굴곡 없이 살아오다 은퇴 직전에 느닷없이 찾아온 위기. 그래서 느꼈을 충격은 더 컸을지 모르겠다. “계획이 어긋나는 순간 눈앞이 깜깜하더라고요.” 그는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하지만 주저앉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평생 천직이라 생각하고 살아온 일보다 자신에게 더 맞는 직업을 찾았다. 프리랜서 강사 박영호(朴英鎬·63) 씨의 이야기다. “퇴직 전부터 일찍 준비를 했죠. 문제는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과정에 있었어요. 그냥 막연히 공인중개사를 하면 어떨까 하고, 1년간 자격증 취득 준비를 했죠. 그런데 실제로 실무를 접해보니 제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과장하는 등의 모습을 보니까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렴한 공기업 근무자로 국민을 위해 평생을 살았는데, 누군가를 후회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죠. 그렇게 포기하고 나니, 그다음이 문제더라고요. ‘뭘 하고 사나’ 하는 물음을 또 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갈 곳 정해지자 발걸음 빨라져 그는 위기의 시절 만난 노사발전재단의 생애설계 프로그램을 ‘방아쇠’로 표현했다. 어디로 나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에게 방향을 제시해줬기 때문이다. “퇴직 프로그램인 공로연수과정에서 생애설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죠. 처음엔 별 생각 없이 한번 들어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눈이 뜨이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렇다고 어떤 일을 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정해주진 않았어요. 대신 제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스스로 돌아보게 해주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일으켜줬죠. 때문에 강사라는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어요.” 그가 새롭게 잡은 목표는 노후준비 전문 강사. 평생을 국민연금공단에서 근무한 만큼 이미 전문성은 갖추고 있었다 . “국민연금은 국민의 최소한의 노후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한 장치이지만, 국민연금공단이 단순히 연금 관리만 하는 곳은 아닙니다. 개개인이 제대로 된 노후준비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좋은 제도가 많은데 잘 알려지지 않아 회피하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평생을 공단에서 근무한 입장에서 갖게 된 소명의식이 있어 은퇴 후에도 많은 분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력만으로는 강사가 되지 못한다. 그 역시 남 앞에 서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고 판단했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방향이 정해졌으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진로나 일자리 관련 강의를 위해 직업상담사 자격증, MBTI 성격유형검사 강사 자격증도 땄어요. 또 보건복지부 인구교육강사 양성과정에도 참여해 1기 강사로 뽑혔죠. 이후에는 한국고용정보원 전직지원 프로그램, 공무원연수원의 미래설계 강사로도 위촉되었어요. 몇 년 전 저와 같은 입장의 후배들 앞에서 강의를 했죠. 적어도 저처럼 시행착오는 겪지 않도록 열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입소문 난 인기 강사 강사로서의 삶은 어떨까? 박 씨는“공기업 생활할 때보다 훨씬 낫다”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직업 안정성으로 따지면 최고 수준에서 최저 수준으로 내려온 셈인데,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의 대답이다. “조직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과업에 몰입되지 않다 보니 만족감이 커지는 것 같아요. 직장에서는 나만의 노력으로는 성과 내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지금은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어요. 그게 매력적이에요. 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꾸준히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행복한 법. 강사로서 얼마나 많은 강의에 나서는지 궁금해졌다. 그는 “한 달에 20여 차례 강의 의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많은 숫자다. “2016년 큰 교회에서 진행한 노후준비 강의가 첫 시작이었어요. 강의 슬라이드 순서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달달 외워갔죠. 지금 생각하면 미련한 짓이었어요. 물론 초창기에는 강의가 필요할 만한 곳에 가서 나 좀 써달라고 영업을 해야 했죠. 그렇게 강의 경험이 쌓이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이제는 찾아주시는 분이 제법 많아졌어요.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재능기부도 마다하지 않아요.” 정년퇴직자로서, 일자리 강사로서 은퇴 이후의 중장년 일자리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견을 듣고 싶어졌다. “직업에 대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에 가치를 둘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죠. 금전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데 역량이 부족하다면 일자리를 찾기 어렵잖아요. 자신의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에 대한 동기를 찾아야 해요.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막연하게 일자리를 찾는 것이 의미도 없어요.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난 상태라면 소득에 연연해하지 말고 사회 환원을 위해서 또는 자아실현을 위해서 봉사활동도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희생해왔던 삶과는 다른, 의미와 가치를 찾게 해주는 직업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 2019-01-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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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들은 녹슬지 않는다
- 지금으로부터 4년 전, 50대 중반의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모였다. 그들은 앞으로 계속 퇴직하는 이들이 늘어날 텐데, 함께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40명이 뜻을 같이하기로 했고, 이름을 ‘엔슬(ENSL)’이라고 지었다. ‘Executive Network for Second Life’의 약자다. 그리고 법적 실체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 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엔슬협동조합의 탄생이었다. 공덕동 서울 허브센터에 있는 엔슬협동조합의 배영효 이사장, 송덕호 이사를 만나 고수들의 고민과 이념과 가치, 미래 비전을 들어봤다. “엔슬의 활동은 인생을 향유하고, 사회에 봉사하고, 배움을 추구하는 겁니다.” 지난 4년 동안 엔슬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배영효 이사장은 엔슬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밝혔다. 수십 년 동안 한 분야에 몸담고 있다가 퇴직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고,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는 우리 시대의 커다란 과제임이 분명하다. 엔슬은 엔슬의 방식으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엔슬이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많은 사람에게 좋은 선례가 되고 우리 사회에 큰 공헌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또한 우리의 시행착오와 경험도 앞으로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행, 지식 나눔, 재취업, 스타트업 투자까지 경험 인생을 즐기고, 봉사하고, 배운다는 차원에서 지난 4년 동안 엔슬은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했다. 여행과 답사, 지식 나눔, 재취업, 창업 멘토링과 스타트업 투자까지, 엔슬협동조합 회원들은 퇴직자들의 도전과 실수와 보람 등을 모두 겪었을 것이다. 그것들이 엔슬협동조합의 유의미한 데이터로 쌓여 있다. 예를 들어 serving, 즉 봉사활동을 봐도 그렇다. 그들의 봉사활동은 이웃돕기 같은 차원의 활동이 아니다. “기업 경력이 30년 넘는 임원이 많다 보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활동을 벌여왔지요. 최근 창업이 붐이잖아요. 대부분의 창업자가 젊은 친구들이고요. 아이디어와 패기를 가진 창업자라 해도 네트워크나 사업 전개 방식 등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있죠. 그래서 우리 멤버들과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겁니다. 엔슬은 숙련된 전문가들이 멘토링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직 규모는 작아 실험적 단계입니다만, 회원들이 일정 금액을 모아 스타트업 투자도 하고 있고요. 창업 멤버들 중 일부는 투자 전문 기업을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루라고 해도 끝까지 성장하고 싶어 한다 내부적으로는 투자 기업 형태의 실험도 진행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엔슬은 회사가 아니다. 따라서 엔슬 조직은 위계도 없고, 멤버들이 보상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직이 유지되느냐?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들이 있을 수 있다. “조직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해야만 하고, 그 일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기업이라면 계층 구조 아래 급여를 주면서 일을 시키지만, 엔슬은 그런 조직하고는 다릅니다. 멤버들끼리 품앗이를 하면서 일을 합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의 기대도 다르고, 상대에게 강요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40명의 멤버가 4년간 활동해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엔슬이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을 하자’이다. 송덕호 이사는 ‘사람과 함께 활동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곳’이 엔슬이라고 했다. “퇴임 후 시간 보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죠. 집에서 쉬고 싶고, 돈이 많으니 골프나 치면서 살겠다는 사람은 엔슬에 오지 않아도 됩니다. 공부라든지,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이 오면 됩니다. 공부와 성장은 혼자만으론 힘듭니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하니까요. 그 니즈를 아는 사람이면 되는 것입니다.” 엔슬은 녹슬지 않는다 2019년의 엔슬은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는 사람끼리 활동을 해왔지만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계획을 갖고 있다. “2019년의 가장 큰 변화는 신입회원 모집입니다. 지난 4년간은 초창기 멤버들만 활동을 해왔는데 엔슬도 하나의 조직으로서 신진대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신입회원을 모집하기로 했습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상호 작용으로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품앗이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새해부터는 모든 회원이 하나 이상의 역할을 맡기로 했습니다. 무임승차(free riding)를 줄이는 것이 이런 성격의 조직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엔슬의 변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그 의미는 엔슬의 가치가 학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성장과 배움을 이루려면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든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든지 해야죠.”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과거의 관계들로 이뤄져 있다. 과거에 어디서 태어났느냐, 학교가 어디냐, 어떤 직장을 다녔냐 등등. 특히 시니어 세대를 이루는 50~60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동창 모임, 직장 선후배 모임, 종교 모임, 기타 취미활동 동호회 등이 인간관계의 주된 축이다.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과거지향적 관계들인 것이다. “내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야 발전할 수 있죠. 예를 들어 평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인문학, 물리학, 블록체인 등의 내용을 처음 접하면서 사유를 넓혀가듯 말이죠.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계급장을 떼고 진짜 새로운 사람과 일을 해보자.’ 엔슬은 그렇게 과감한 판단을 내렸다. 물론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무조건 장밋빛 미래를 가져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좋은 일도 있겠지만 리스크도 있을 것이다. 기업에서 수십 년간 일하며 온갖 사람들을 다 만났던 베테랑 엔슬 멤버들이 그런 문제들을 인지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관계로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 얻는 게 더 많으리라는 답을 내린 것이다. 당장의 욕구는 인생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배영효 이사장에게 엔슬의 회원이 될 수도 있는 이들, 바로 곧 퇴임할 베테랑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에 대해 묻자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답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무얼 어찌하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시간을 잘 쓰자’ 정도의 말은 누구에게나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시간을 잘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Happiness is not a destination. It is a way of life(행복은 목적지가 아니고 삶의 한 방법이다)’ 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은 아무 문제없는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마다의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지향점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보통 정년이 되어 퇴직할 때가 되면 온갖 욕망들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배 이사장은 그런 욕망이 지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보통은 옷을 벗고 나올 때 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욕구가 목적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욕구이지요. 억압이 풀리면 그 욕구 역시 의미가 사라져요.” 구루가 되기 위한 출발선에 선 사람들 엔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있다. 바로 구루(guru)다. 자신들을 구루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직장에서 오래 생활했다는 것만으로 구루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엔슬은 구루 모임이 아니라 구루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오는 자리라는 것이다. 즉, 엔슬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그 반대로, 구루로서의 첫걸음을 지향한다. “구루가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지식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혜가 중요하죠. 지혜로운 사람은 향후의 변화를 읽을 수 있고 그걸 품을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아는 게 아니라 변화를 마음에 품고 사물을 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배 이사장이 인생의 고수야말로 진정한 구루라고 말하자, 송 이사가 받아서 좀 더 구체적으로설명했다. “구루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봐요. 첫째는 살면서 성장하겠다는 욕구죠. 모든 사람이 성장하려 하지는 않거든요. 둘째는 분야를 정해야 합니다. 분야가 너무 많으니까요. 셋째는 과거와 무관치 않다는 것. 과거를 무시하고 구루가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걸 경험해보겠다면 즐길 수는 있지만 구루가 되기란 어렵죠. 넷째는 십 년은 더 활동해야 한다는 겁니다.” 4년을 걸어온 엔슬의 새로운 도전은 2019년부터 전개된다. 신입회원은 최근 1~2년 내에 퇴임한 대기업 임원들을 중심으로, 2019년 1~2월에 걸쳐 모집 선발하고, 3월에는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그들이 바라는 구루의 길이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찾는 고수들에게 어떤 모델로 제시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2019-01-0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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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 이후를 고민하는 중장년들의 일자리
- 100세 시대가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이제 50대는 청년과 다름없는 역할을 하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은 그 이름대로 서울 시민 50세부터 64세까지인 50플러스 세대의 삶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2016년에 설립된 이후 재취업, 일자리, 교육, 정책 개발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는 50플러스재단은 지난해 10월 김영대 전 국회의원을 대표이사로 임명해 향후 3년 동안의 사업 전개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자리가 최대 화두가 된 시대, 김영대 대표이사를 만나 50플러스 세대의 일과 삶에 대한 대안을 들어봤다. 새해 이슈는 일자리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이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고, 그 조짐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반발로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등 단순 서비스직 업계에서는 사람을 쓰지 않는 대신 자동화 설비, 로봇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니어가 은퇴 후 직업으로 많이 선택하는 택시 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카풀 논란 또한 자율주행차가 도입될 미래의 택시 산업과 연결되는 사전적 갈등이다. 이처럼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의 일자리가 4차 산업혁명으로 줄어들면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50플러스 세대는 노인 세대도 청년 세대도 아니어서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모든 50플러스 세대가 생산적이고 준비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각 방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재단의 존재 이유입니다. 사실 생계형 일자리를 연계해주는 곳은 이미 많습니다.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 등에서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죠. 그래서 재단은 인생 후반 새로운 일의 유형으로 ‘사회공헌일자리’를 발굴하고 확산하고자 합니다. 보통 ‘앙코르커리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지속적인 수입뿐만 아니라 개인적 보람, 사회적 가치 모두를 만족하는 활동, 일거리, 일자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50플러스 세대를 위한 일자리 해법 시니어에게 일자리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수명이 늘어나고 부양 의무가 계속되면서 현역으로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 마련을 위한 노력은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정무적 책임을 갖고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도 50플러스재단을 발족해 시대적 화두에 동참했고, 최근 김영대 대표이사가 임명되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민주노총 부위원장 출신으로 시민사회단체, 국회의원, 중소기업 CEO 등의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남북경제협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임명에서부터 50플러스재단의 방향성에 대한 큰 그림이 느껴졌다. “재취업, 일자리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십니다. 이제는 많은 분이 칠십까지 노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되는데, 그중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 부분에 우리가 좀 더 노력해서 저소득, 취약 계층의 50플러스 세대를 케어하는 노력을 보강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김 대표는 50플러스재단이 시니어 취약 계층에 대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빈곤율은 OECD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60.2%에 달한다. 고령화 속도도 가장 빨라서, 높은 노인 빈곤율과 고령화의 쌍끌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더 가중시키는 상황을 불러오고 있다. 시니어의 일자리 확보가 본인 스스로에게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새로운 틈새시장 공략해나갈 것 일자리를 찾아내는 것도 문제이지만 중장년 일자리와 시니어를 매치시키는 것도 만만찮다. 현장에 가면 정책과 현장의 차이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 50대 이후의 직업 훈련, 생계를 위한 일자리 알선 등은 고용노동부나 보건복지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노동의 가치를 살려 저소득 취약 소외 계층, 그리고 일하고 싶은 분들을 잘 안내해야겠죠. 또한 서비스직, 문화관광, 기타 영업 마케팅 쪽으로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도록, 구력과 경험 많은 분을 매칭하고 관련 프로그램과 직업들을 만들고자 합니다.” 김 대표는 최근의 일자리 대책이 세대 융합 일자리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모범적인 사례를 찾아내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만큼 그런 사례를 만들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창업과 관련해서는 당사자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창업하는 분들 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순식간에 돈을 까먹습니다. 조사해보니 창업자 10명 중 6~7명이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창업을 철저히 준비하게 해야 하고, 창업자 수도 줄여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진입장벽을 높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하겠다고 하면 사전에 꼼꼼히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실행 전에 미리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재단에서 올해 개발해볼 생각이에요.” 시니어가 대거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엄청난 손실뿐만 아니라 자신감도 잃어서 순식간에 나이 들어버린다는 얘기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들려온다. 청년 때는 아래로 떨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지만 나이 들면 어렵다. 따라서 선경험을 해보고 안 맞으면 빨리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 설명을 들으며 김 대표가 말하는 “조사, 증명과 함께 새로운 길을 제안하는 방향”이라는 게 어떤 모양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외국인 관광객 수를 보면 일본의 성장세를 우리나라가 못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건 관광 서비스하고도 맞물려 있어요. 관광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 중에 50플러스 세대가 할 수 있는 새로운 길들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관광 가이드, 문화관광 해설사, 외국인들을 안내할 수 있는 문화재 해설사 역할 등이 있겠죠.” 은퇴자를 위한 귀촌 일자리 창출 김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 중에는 귀농·귀촌도 있다. 귀농·귀촌이라고 하면 무조건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농촌에 가서 생활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걸로 하고 귀촌을 하면 생기는 일자리가 있다. 수확기에는 일당 받는 일자리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통, 택배를 도와주는 일도 있다. 그리고 지방에 가면 축제가 많은데 축제에 활용될 인력으로 50플러스 세대가 가장 적합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살려고 하면 힘들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농한다고 부부가 함께 갔다가 몇 달 후 아내 혼자만 올라오는 일도 있고요. 차라리 가벼운 마음으로 일정 시간 귀촌해서 살아보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일주일 중 월화수목은 도시에, 금토일은 귀촌을 하는 거죠. 경험을 쌓고 그 속에서 익숙해지면 정착하는 걸로 계획을 세우게 해 너무 부담을 갖고 가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런 분들을 모아 집단으로 공유주택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귀농·귀촌과 일자리 문제 해결이 함께 이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북경제협력, 돌파구 될 수 있어 김 대표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이 남북경제협력 부분이다. 현재 남과 북 사이에는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분야가 경제협력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경제협력 전문가인 김 대표가 50플러스재단 대표로 임명된 것은 남북 간의 경제, 일자리 문제를 위한 장기적인 포석은 아닐까. “사실 정년에 걸려 배출되는 50플러스 세대가 많잖아요. 서울만 해도 교통공단, 시설관리공단, 교사, 금융인 등등 꽤 많은데 이분들이 제2인생을 설계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50플러스 세대가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습니다.” 김 대표는 남북 간 교류가 진행되면 당장 철도에 대한 시설관리 점검에 들어가야 하는데 개선, 보수 부분에서 나름대로 시장이 꽤 크게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50플러스 세대의 인력들은 기능직이 많다. 북측의 도로 보수, 여러 가지 인프라 조성 등의 기간산업에서 발생하는 일자리는 50플러스 세대 기능직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50플러스재단이 중추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건강하다면 계속 일할 것 “저 역시 50플러스 세대로서 민주화와 산업화를 경험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대한민국 50플러스 세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은 실제 경험해본 사람이 시민들의 피부에 느껴지도록 설계해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0플러스재단에서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기획이 두 가지 있다. 우선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50플러스보람일자리’다. 은퇴한 50플러스 세대가 학교, 마을, 복지시설 등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경험과 전문성을 살린 사회공헌활동을 하며 인생 2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사업이다. 2015년 6개 사업 총 442명의 규모로 시작해 지난해는 총 31개 사업에 2236명이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신중년 커리어 프로젝트 ‘굿잡5060’이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고용노동부, ㈜상상우리가 재단과 함께 풀어가는 사업으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5060세대 1000명에게 전문 교육을 제공한 후 사회적기업 취업률 50%를 목표로 하는 장기 계획이다. “저도 칠십 세까지는 일할 계획이 있고 그 이후에는 건강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건강할 때까지는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일하던 사람이 집에서 쉬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엄청난 여유가 있어서 여행만 다니며 살 조건도 못 돼요. 그래서 칠십까지는 일하고 이후에는 사회봉사형 일자리, 공헌형 일자리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여하고 싶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담백한 목소리로 불필요한 부분 없이 실제를 말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읽고, 통찰력과 정책으로 다듬어진 김 대표 자신이 무엇보다도 50플러스 세대인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 2019-01-0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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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의 품격
- 믿음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말이 된다.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된다. 습관은 가치가 되고, 가치는 운명이 된다. 자기 분야를 구축하고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사람들, 이른바 인생의 고수들을 끊임없이 만나면서 그런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 인터뷰 기자로 살면서 우리 사회의 삶의 모델이 될 만한 각계각층 수많은 인물의 꼭꼭 숨어 있는 속마음 밑바닥까지 들어갔다 나왔다. 그동안 만난 1000여 명의 사람들 중에서도 한 분야에서 ‘고수’의 영역에 있는 이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짜 희생도 없다는 것. 시기가 문제일 뿐 노력의 대가는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직장에서 돈으로 보상받거나, 사회에서 명예를 얻는 등의 대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무심코 꾸준히 행하는 일상의 소소한 습관과 실천도 그것이 오랜 시간 쌓이고, 다져지다 보면 아무나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나름의 목표와 도전정신까지 더해진다면 고매한 고수의 길에 오른다. 필자가 만났던 몇몇 인생 고수들을 예로 들어보겠다. 고수들의 도전은 현재진행형 서울 지하철 군자역 인근에 위치한 쉐보레 동서울대리점 박노진(64) 대표는 자동차 영업계의 살아 있는 신화다. 1979년 대우자동차(현 한국GM)에 입사해 자동차 영업을 하면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1년 연속 판매왕 기록을 세운 ‘발품의 고수’로도 알려져 있다. 2010년 직접 대리점을 낸 그는 “자동차 판매는 발뒤꿈치에서 나온다”는 인생 노하우로 여전히 발로 뛰며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영업 철학을 ‘콩나물시루에 물주기’로 비유했다. 만나서 거절당하면 또 만나고 설득하기를 반복한다. ‘거절’은 콩나물을 키우는 물과 같아서 물이 시루 밑으로 다 빠져도 콩나물이 자라듯, 거절을 당하면 남는 게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논리다. 어느 분야이든 미리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제나 성공의 길은 열려 있음을, 그는 오늘도 발로 뛰며 입증하고 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베이비부머 1세대인 1955년생 신종훈 시니어가 대표적이다. 그는 그야말로 ‘배움의 고수’다. 대기업에서 35년을 근무하는 동안, 그리고 2015년 정년퇴임 이후에도 대학과 대학원에서 8개 학과를 전공하면서 평생학습을 실천해왔다. 현재 9번째 학위 취득을 목표로 상담심리치료학을 공부 중이다. 2018년 이미 108개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평생학습 끝판왕’으로도 불리며 자격증 숫자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단순히 그가 맹목적으로 학위나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린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1998년부터 연간, 월간, 주간, 일일 계획을 세워 목표 관리를 하고 ‘플래너’를 써왔다. “성공은 습관이고, 좋은 습관이 인생을 변화시킨다”가 그의 인생 좌우명이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도 매일의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1959년생 베이비부머 신용선 씨. 그는 ‘자기계발의 고수’다. 베이비부머 중에는 ‘한 우물’을 팔며 살아온 이가 대다수다. 때문에 사업을 하다 실패하면 자기가 해오던 분야에서 재기하려는 경향이 주를 이룬다. 신용선 씨의 경우 계속되는 사업 실패 속에서도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방향 틀기를 계속해나갔다. 익숙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나선 그에게 필요한 건 용기였고, 잇따른 실패 속에서 필요한 건 희망이었다. 그렇게 용기와 희망의 씨앗은 도전이라는 싹을 여럿 틔웠고, 최근 그 열매를 속속 수확하는 중이다. 2018년은 더욱 각별했다. 생애 첫 도전으로 직접 저술한 책 두 권을 펴냈고, 늦깎이로 경영학 석·박사 과정을 모두 수석으로 마쳤다. 덕분에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경영 지도사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사업가로도 스리랑카 한국 현지 기업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올해는 몽골 국립대학교 겸임 교수직까지 맡게 돼 ‘글로벌 경영의 고수’로 활약할 전망이다. 고수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고수 위에서 소개한 시니어뿐만 아니라 노인은 누구나 지식을 뛰어넘는 지혜와 경륜이 있다. 거칠고 험한 세상을 저마다의 ‘견딤’으로 살아냈음에 대한 대가일 것이다. 처한 상황은 다를지라도 치열한 생존경쟁 속 성공과 실패를 오가며 인생살이의 고수가 되어간다. 물론 누군가는 ‘이만큼 살다 보니 고수가 되었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했을 뿐 다 그만한 노력과 희생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렇게 누구나 고수가 될 수는 있어도, 이를 유지하거나 한 발 더 나아가려는 노력이 없다면 ‘일시적 고수’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정상에 오르기는 힘들지만 지키는 건 더 어렵다. 성공에 도취하면 위기가 오고, 위기에 도전하면 기회가 온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도 운도 따른다. 정상에 올라섰다가도 나락으로 추락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처참하게 무너졌다가도 피나는 노력으로 재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인생의 희로애락, 흥망성쇠를 겪어내며 어엿한 자신의 삶을 일군 이들이야말로 견딤의 고수, 노력의 고수, 도전의 고수이며, 그 노력을 멈추지 않고 갈고 닦을 때 진정한 ‘인생 고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 2019-01-03 0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