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긴 마대로 캔버스를 만들고 물감을 뒷면에서 앞으로 밀어내어, 마대 올 사이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한 뒤, 앞면에서 최소한의 붓질만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사용하는 물감도 회색이나 검정, 청회색 등 단색으로 단조로우나, 보는 이들에게 고요한 명상에 잠기게 한다.
화가 하종현(河鍾賢, 1935~)은 1960년대 우리나라 앵포르멜(informal, 비정형) 추상
늙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단계별로 노인 초기에는 사회 활동을 해야 하니 실버타운에 입주한다고 해도 도심권이 편하다. 그러나 더 늙으면 바깥에 나갈 일도 없어지고 힘이 들어 못 나간다. 그러다가 병으로 병상에서 죽을 수도 있고 이렇다 할 병은 없어 그런대로 늙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나중에는 혼자 밥 해먹을 힘도 없어 끼니를 거르거나 거동
지난 6월 22일 남부터미널역 ‘팜스 앤 팜스’에서는 계간 문학잡지 제 13회 신인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이 자리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의 회원인 손웅익씨가 수필가로 등단하는 자리였다.
필자는 한마디로 겉모습도 속마음도 잘난 남자들을 좋아한다. 지휘자 중 가장 좋아하는 불세출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외모 자체가 명품이다. 이에 버금가는 손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던 친구가 돌아왔고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 몇몇을 연락해서 만나기로 했다. 사는 곳이 제각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가 편하도록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추어 각각 나타나는 친구들의 환한 모습들이 어쩐지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동안 종종 만나곤 하던 친구들도 있지만 일부는 수년만에 만나는
친한 친구가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뒤 필자를 초대했다. 주변 친구들이 거의 아파트에 살고 있어 주택으로 이사한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오랜만에 아파트 아닌 집을 구경하려니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아담하고 깨끗한 예쁜 집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그 집에서 다락방을 볼 수 있었다. 예전 필자가 알던 그런 형태는 아니었지만, 복층에 만든 다락방이었다.
요즘 아이들
“안전벨트 꼭 매세요. 출발합니다.”
2017년 총동문회 상반기 안보 탐방을 진해로 떠난다는 말에 얼마나 들떴는지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뒤척이다 일어나 탐방 준비를 했다. 일 년에 두 번 탐방이 있지만 매번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어린 시절 수학여행 떠나는 기분으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들떴던 마음과는 달리 긴 여행이어서 슬슬 허리가 아파오고 몸 여
그해 봄부터 매주 목요일 아침 10시, 목동 파리공원에서 우리들은 작은 모임을 가졌다. 연령도 20대에서 60대요, 직업도 틀리지만 쇠귀 신영복(牛耳 申榮福, 1941~2016) 선생의 책과 신문 칼럼 이야기를 듣고,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기탄없는 자유토론의 시간이 즐거웠다. 이야기가 길어지거나 토론이 격해지면 인근의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엄마, 이 오빠 알아? 이 오빠 엄마가 엄마 안다던데?”
교회에 다녀온 딸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얘, 민철이 아니야?”
“맞지? 맞지? 오빠랑 얘기하다 우리가 옛날 살던 동네 얘기가 나왔는데 자기네도 거기 살았다고….”
민철이 엄마와 필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다. 아랫목에 배를 깔고 팝송을 함께 듣고, 디제이가 있는 빵집에 들락날락했던 둘도 없
“고등학교를 남보다 두 해 늦게, 고향 김천에 있는 농고(農高)로 들어갔지요. 그 무렵 구루병을 앓고 있는 사촌 누이동생과 문학을 교류하며 지냈는데, 그 누이가 이듬해 시름시름 앓다 사망했어요. 그 시절의 누이 모습이 잊히지 않아 ‘소녀’의 그림을 그려왔지요.”
창문이 열린 화실 밖, 밤나무에서 매미가 울었다. 박항률(朴沆律, 1950~ ) 화가는 창밖을
해마다 거리에 캐럴이 흘러나오는 이맘때쯤이면 약간은 분위기가 들뜨고 여러 가지 약속들로 분주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올해는 모든 것을 잡아먹는 괴물, 블랙홀이 등장하여 연말의 감상에 사로잡힐 틈이 없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흘러가고 있다. 매일 흥미진진한 것은 좋은데 나날이 도낏자루가 썩어가고 있으니 그것이 걱정이긴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