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이 살던 집과 지역사회에서 존엄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미국의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AIP)’, 인공지능(AI) 활용 사례를 통해 한국 통합돌봄의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가 열렸다.
24일 서울 강남구 이투데이빌딩 19층 라운지에서 오틸리아 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교수가 ‘미국의 Aging in Place’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오틸리아 리 교수는 사회복지 분야의 석학으로, 고령화와 노인 돌봄 연구에 주력해왔다. 이번 강연은 시니어 비즈니스 리더스 포럼이 마련했으며, 시니어 비즈니스와 돌봄 분야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강연에 앞서 홍명신 시니어 비즈니스 리더스 포럼 회장과 후원사인 이투데이피엔씨의 한승훈 대표가 축사를 전했다. 한 대표는 “통합돌봄과 AI, Aging in Place는 시니어 산업의 미래를 가늠할 중요한 화두”라며 “이번 강연이 한국 시니어 비즈니스와 돌봄 정책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틸리아 리 교수는 미국 노인 돌봄의 주요 방향이 자신이 살아온 집과 지역사회에서 계속 생활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 위해서는 가족과 친구, 이웃, 지역사회가 탄탄한 관계망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며 “도움이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는 사람과 기관이 있어야 하고, 안전과 이동성 등 다양한 조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AIP는 단순히 노인이 집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강과 돌봄, 주거, 경제적 여건, 이동 수단과 지역사회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가능한 삶의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오틸리아 교수는 미국에서 주목할 통합돌봄 모델로 ‘PACE(Program of All-Inclusive Care for the Elderly)’를 소개했다. PACE는 만 55세 이상 가운데 요양시설 수준의 돌봄이 필요하지만, 적절한 지원을 받으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노인에게 의료와 복지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팀을 이뤄 이용자의 건강과 생활을 함께 관리한다.
현재 PACE는 미국 33개 주와 워싱턴DC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센터는 202곳, 이용자는 약 9만3000명이다. 오틸리아 교수는 “미국이 대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라고 지적했다. PACE가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제도가 아니라 지역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는 “한국에서도 지역에서 만들어진 좋은 모델이 발전해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통합돌봄을 확대하려면 부족한 인력과 자원을 기술로 보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날 강연 후반부에는 AI가 사회복지와 시니어 돌봄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가 소개됐다.
AI는 건강 기록과 생활 데이터를 분석해 이용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예측하고, 사회복지사의 사례 기록과 보고서 작성 업무를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하면 노인의 주거환경과 안전 상태를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챗봇과 사회적 로봇은 인지 훈련과 복약 관리, 우울감 완화 등에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
다만 AI가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생성형 AI는 사실과 다른 정보를 그럴듯하게 제시할 수 있어 반드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돌봄 로봇 역시 인간적인 상호작용을 줄이거나 이용자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할 가능성이 있다. 집 안의 카메라와 센서가 노인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사생활과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오틸리아 교수는 AI의 혜택이 일부 계층에만 돌아가거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이 기술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포용성과 투명성, 인간의 자율성을 지키는 ‘인간 중심 AI’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돌봄 제공자가 어르신을 대신해 서비스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며 “어떤 서비스가 있고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충분히 설명한 뒤, 당사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연 후 박영란 강남대학교 시니어비즈니스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1980~1990년대부터 에이징 인 플레이스 개념이 본격적으로 논의됐으며, 최근에는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나이 든다는 의미의 ‘에이징 인 커뮤니티(Aging in Community)’라는 표현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미국 통합돌봄의 특징으로 민간과 비영리기관을 중심으로 한 바텀업 구조를 짚었다. 이어 “돌봄의 모든 영역을 유료 서비스로만 해결할 수는 없는 만큼 공공과 민간, 비영리 영역의 역할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명신 시니어 비즈니스 리더스 포럼 회장은 “열정적인 강연과 수준 높은 청중이 함께하는 자리는 흔치 않다”며 “앞으로도 시니어 산업 종사자들에게 실용적인 지식과 새로운 시각을 전할 수 있는 포럼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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