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애(高光愛·80) 작가는 1958년 대학 시절 한국일보에 공채 1호 여기자로 입사하는 동시에 이화여대 18대 메이퀸으로 선발되며 그녀의 이름 석 자를 알렸다. 그로부터 1년 뒤, 회사를 그만둔 그녀는 영화평론가 임영의 아내로, 또 영화감독 임상수의 어머니로 불리며 살아왔다. 그렇게 자신의 명성은 잠시 내려놓고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던 그녀가 50세가
정유년인 올해는 정유재란(1597.1~1598.12) 발발 420주년이다. 임진왜란으로부터는 427주년. 임진왜란이 치욕의 역사였다면, 정유재란은 왜군이 충남 이북에 발도 못 붙인 구국승전의 역사다. 그 전적지는 진주, 남원, 직산 등 삼남지방 곳곳에 있지만 옛 자취는 찾기 어렵다.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왜군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농성하던 성터들이
“고등학교를 남보다 두 해 늦게, 고향 김천에 있는 농고(農高)로 들어갔지요. 그 무렵 구루병을 앓고 있는 사촌 누이동생과 문학을 교류하며 지냈는데, 그 누이가 이듬해 시름시름 앓다 사망했어요. 그 시절의 누이 모습이 잊히지 않아 ‘소녀’의 그림을 그려왔지요.”
창문이 열린 화실 밖, 밤나무에서 매미가 울었다. 박항률(朴沆律, 1950~ ) 화가는 창밖을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사극은 역사 속 인물을 소환해 현재적 의미를 부여한 뒤 생명력을 불어넣고 오늘날의 사람들과 만나게 한다. 그동안 이순신, 정조, 사도세자, 장희빈, 이성계, 광해군, 연산군, 허준, 윤동주, 김원봉 등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수많은 역사적 인물이 새로운 시각에서 극화됐다. 또한 드라마 의 장금처
뭐든지 척척, 생각하고 말하는 대로 잘되는 사람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뭘 해도 저렇게 운이 잘 따르나’ 싶다. 부럽다가도 얄밉고, 성공 비법이 뭘까 궁금할 때도 있다. 막걸리 전문 주점 ‘가제트 술집’은 8년 전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변두리 골목에 7평 남짓한 좁디좁은 공간에 문을 열었다. 개업 첫날부터 문전성시를 이루더니 맛집으로 널리 알려지면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종편 보기다. 그것도 토론 프로그램이다. 평소 드라마 위주로 보던 사람이 매일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으니 남편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재미있으니 어쩌랴. 국가적 중대사를 논하고 있는데 재미를 운운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사실 까놓고 얘기하는데 재미가 없다면 그런 프로를 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드라마보다 흥미진
이제 사진은 대중화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스마트폰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답게 보이는 장면이 있으면 스마트폰을 바로 꺼내 촬영을 망설이지 않는다. 반면에 사진을 취미로 막 시작했거나, 조금 배운 사람들은 무엇을 찍어야 할지 망설인다. 사진 소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이다. 또 사진을 시작한 지 꽤 됐고 사
를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퇴임 후 예순두 살의 나이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西安)을 잇는 1만2000km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침대에서 죽느니 길에서 죽는 게 낫다”고 말한 그는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여행을 통해 꼼꼼히 기록했다. ‘나이 듦’은 생각하기에 따라 젊음보다 오히려 장점이 많을 수 있다. 속도를 늦춰
어느 날 나이가 들고 보니 살아온 삶에 대해 쓰고 싶어졌다. 책상 앞에 앉았다. 펜을 들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볼까? 하지만 손에 들려진 펜은 곡선을 그리다 갈 길 몰라 방황한다. ‘그것참, 글 쓰는 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 하던 사람들이 모여 글쓰기에 도전했다. 생활의 활력이 생기더니 내가 변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성장하는 감동 스토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