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산에 가자.”
“그래, 관악산 입구 詩도서관 앞에서 만나자.”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관악산詩도서관으로 들어가 ‘항아리속의 5월의 시’를 잡은 순간 제목과 내용에 깜짝 놀랐다.
김영교의 ‘쉬어가는 의자’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었다.
맑은 바람이 앉고 햇살이 퍼질러 앉고 마음을 지나가는 고마운 생각들......
중년의 무거운 어깨를 아는 양 마음의 휴식을 가르쳐 준다.
싱그러움을 만끽하러 일찌감치 등산화와 마음을 재촉했던 부지런한 등산객들과 주민들이 벌써 많이 내려오고 있었다. 우린 복잡한 아스팔트보다는 자연의 흙을 밟자며 많은 시화를 감상하며 오른쪽 등산로인 ‘도란도란 걷는 길’로 올라갔다.
그동안 아파트주변만 몇 번 돌았던 나는 100m도 못 가서 숨을 헐떡인다.
나보다 10살 정도 많으신 언니는 “벌써부터 헐떡이면 어쩌니?” 하시는 말씀에 나의 체면은 계곡 아래 바위틈 사이로 숨어 버렸다.
푸르름과 연두색의 새싹들이 관악산을 채색하고 마지막 남아 숨 쉬는 철쭉꽃이 자연의 싱그러움을 과시하듯 아직도 예쁘게 인사를 한다.
천천히 올라가노라니 알록달록 화려한 차림새의 연세가 있으신 언니들 세분이 과일과 음료수 등 간식을 꺼내 놓고는 아카시아 꽃이 휘날리도록 함박웃음을 쏟아낸다.
“언니~ 좀 쉬었다 가면 안 될까?” 하며 언니를 졸라서 우리도 커피와 떡 등을 꺼내어 솔가지위에 앉아서 인생의 향연을 지지배배 지저귄다.
산속을 싱그럽게 노래하는 새들의 합창 속에 손을 꼭 잡고 서로를 의지한 채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는 부부, “아빠~ 힘들어요. 쉬었다가자”며 조르던 초등생은 벌써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하얀 아카시아꽃이 향긋함을 전하고 새싹들의 녹음이 신록의 푸르름을 전해 주는 관악산은 바람조차도 싱그러움을 전해주고 있었다.
피톤치드를 진하게 느낄 즈음, 우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호수공원으로 발길을 돌려 장미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운동을 꾸준히 해야지 안 되겠어. 힘들어 언니~” 나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며 맛있는 만둣국을 그리워하며 발길을 옮긴다.
경쾌하게 조잘대는 사람들이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모습은 등산객과 주민들이 자연 사랑, 환경사랑에 앞장서고 몸소 실천하고 있음을 실감하며 내려왔다.
중년부부가 화려한 등산복차림으로 관악산詩도서관에서 상큼한 등산과 詩의 향연에 빠지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까?
관악산詩도서관은 바쁜 일상생활로 평상시에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詩에 담아 전할 수 있는 ‘詩로 보내는 편지’코너를 마련하였다.
아날로그시대의 손 편지로 낭만을 느낄 수 있도록 우체통, 그리고 편지지와 편지봉투, 또 우표도 비치되어 있다.
관악산을 찾는 등산객과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시 한편을 통해 삶의 여유를 전하고 여운이 진한 향수를 가득 안겨주어 인생의 멋진 그림을 채색했으면 한다.
희망설계재능기부연구소 산악회원들은 매달 둘째 주말 산행을 즐긴다. 5월 두 번째 토요일 10시 독립공원에서 9명이 모여 안산자락길 산행을 하였다.
안산은 서울 시내 중심에서 홍제동으로 향하는 통일로를 사이에 두고 인왕산과 마주하고 있는 높이 295.9m 나지막한 도심의 산이다. 독립문역에서 바로 연계되는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곳이다.
조선시대 인조 때인 1624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켜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며, 한국전쟁 때 서울을 수복하기 위한 최후의 격전지였던 곳이다. 잘 정비된 주장애길 오르는 길에는 5월의 여왕 아카시아 천국이다. 향기에 취하여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담을 나누면서 걷고 보면 안산의 정상 봉수대에 다다른다.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정성껏 준비한 간식이 뷔페식당을 만들었다. 아카시아 그윽한 향기에 싸여 정상주 한 잔 높이 들고 재능기부 자원활동을 서로 격려하였다. 학창시절 소풍 날, 선생님을 피하여 친구들과 돌려가며 마셨던 ‘첫 소주’가 생각났다. 그 첫맛을 못 잊어 소주를 얼마나 좋아했던가.
봉수제는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과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알리는 통신체계였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봉수는 모두 남산의 5봉수대에 집결되었다. 평안도 강계-> 황해도-> 경기도-> 서울 무악 동봉수대-> 남산 제3 봉수대로 전달되었다.
안산의 백미는 메타세콰이어 숲길! 독립공원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도는 거리는 7㎞이다. 전국에서 최초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무장애 길로 조성된 이 산책로는 메타세스콰이어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졌다. 메타세스콰이어(Metasequoia)는 중국이 원산지로 35m까지 자라고 수피는 회색빛을 띤 갈색이고 세로로 벗겨진다.
저 건너편 인왕산을 조망하고 독립공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비를 머금은 찬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하산을 서둘렀다. 영천시장 골목 족발집으로 빠져들었다. 만원의 행복 차례다. 막걸리 잔이 돌고 소주잔이 비워졌다. 음식이 푸짐하고 맛이 좋고 값이 싸다. 처음으로 회비에서 거스름돈을 받았다.
‘만원의 남는 행복!’
시니어 기관 워크숍에 참여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시니어들 모임은 물론 어떤 단체이든 오래 활발한 활동을 하려면 기금이 마련되어 진행비가 있을 때 좀 더 모임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예상되는 지출 비용보다 회비를 더 많이 걷어 모아뒀다가 1년에 한두 번 큰 행사를 할 때 사용하곤 한다. 어떤 모임에서는 일일찻집을 하거나 경매 행사 등을 통해 기본 진행비를 마련하기도 한다. 야유회 때 기부금을 받는 경우도 많다. 오랜 기간 회비를 모으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에 제안서를 넣어 비용을 제공받아 단체 성격에 맞게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커뮤니티를 만들면 활동비를 적게는 50만원에서 몇천만원까지 제공받기도 하다. 구성원에 대한 정보와 단체 운영 내용을 제대로 작성해 보고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 같은 방법으로 기금을 제공받아 활동하는 곳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창업과 창직에 관해서는 청년은 물론 시니어 대상으로 기금까지는 아니더라도 회의나 모임 장소를 제공받을 수 있고 간식이나 식사비용, 그리고 강의가 이어질 경우 강사비도 제공받을 수 있다.
시니어 모임에서 만원의 행복으로 참여하신 분은 매번 본인의 식사와 차 한 잔 비용밖에 안 되기 때문에 입회비 명목으로 혹은 회비 명목으로 미리 1년 회비를 한꺼번에 받기도 한다. 어떤 모임에서는 자신이 아끼는 물건 중에 덜 필요한 물건을 경매 물건으로 내놓도록 해서 워크숍 행사 중이나 연말 송년회나 신년회 때 경매 행사를 열어 기금 마련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만원의 행복에서 이런 모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친목 모임이든 배우는 모임이든 많아지면 부담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 4월 22일, 워크숍 참여기간 중에 기금을 모으기 위해 경매시간을 갖게 되었다. 단체기금을 마련해보는 시간이었는데 놀라운 결과가 있었다. 전체 인원 39명에 여성 참여자들이 17명, 남성 참여자들이 22명이었는데 놀랍게 여성 참여자들이 더 고가의 경매가를 불렀고 남성 참여자들은 훨씬 여성 시니어 참여자들에 비해 경매가가 약했다. 이번 경매 행사를 통해 여성 시니어들의 경제적 결정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연세가 많아 보이는 한 여성분께서 마치 지름신이 강림한 듯 높은 경매가를 불러 참여자들이 모두 놀랐다. 행사가 끝난 뒤 비용을 많이 쓰게 되셨는데 괜찮으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가격을 부르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문에 현답을 하셨다. “어디를 가도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하는데 한쪽 구석에 쭈그러져 있는 것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 분위기도 고조시키고 뭔가 모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그렇게 나잇값을 하고 산다”고 말씀하셨다. 그 깊은 뜻에 모두가 옷깃을 여미며 숙연해졌다.
나이 들어가면서 형님이 되고, 왕언니가 된다는 것은 대접만 바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책임도 함께 짊어져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은 날이었다.
최근의 여행 트렌드는 친구나 연인과의 여행보다는 가족과 함께 떠나는 테마 여행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여행의 보편화와 맞물리는 현상으로 보인다. 여행이 일상이 된 현재, 보다 일상적인 이벤트로서 가족과 함께하는 모습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시인 류시호씨는 며느리, 사위, 손주 등 온 가족과 자주 여행을 떠난다. 이번 5월에 떠나는 여행지 그곳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좋겠다.
류시호 시인ㆍ수필가
얼마 전, 가족 9명을 데리고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큰아들 부부와 작은아들 부부가 직장을 다니며 고생하기에 손주들과 시원한 바다에서 여유롭게 쉬도록 우리 부부가 경비를 마련했다. 여행은 어디를 가든 즐겁다. 준비할 때부터 기분이 좋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에서, 강원도 영월에서, 그리고 충북 수안보에서 숙박을 하면서 여러 번 가족여행을 했기에 서로가 여행 분위기를 잘 느낀다.
이번 가족여행은 해외로는 처음 가는 것이라 어린 손주 3명이 걱정스러웠다. 이동 중 간식을 먹이는 문제도 그랬고 장거리 비행 중 아프지나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염려가 됐다. 어린아이들 때문에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에도, 비행기에 탑승할 때도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게이트 번호가 100번이 넘는 곳이라 탑승구로 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 열차를 타고 가서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탑승시간에 임박해서 겨우 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동안 여러 번 해외여행을 했지만, 공항 내에서 지하철로 이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이륙할 때 큰 손주는 좋아서 웃고 작은 손주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장거리 비행기를 타다 보니 둘째 손주가 기내 공기가 안 좋아서인지 좁은 곳이 갑갑해서인지, 며느리 가슴에 음식물을 토하기도 했다. 막내 손주는 인천공항 비행기가 이륙할 때, 그리고 보라카이 섬과 가까운 칼리보 공항으로 비행기가 착륙할 때 울어댔다. 기압 차이로 귀에 통증이 왔던 것이다. 막내 손주가 어디가 불편한 건지 표현을 잘 못해 며느리가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 외 시간은 비행기 안에서도 잘 놀아 다행이었다.
작년과 재작년에 필자가 방문한 베트남과 미얀마는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한국인들을 우대해줬는데 이곳은 세관 심사가 너무 까다로웠다. 보라카이 휴양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해 하루에 이곳을 찾는 여행객이 2만 명이나 된다 하니 작은 섬의 인기가 대단하다. 이 섬의 치안은 안전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10년 전 필리핀을 여행할 때도 총기사고가 있었다. 최근에는 불법으로 유통되는 총기가 100만 정이나 된다는 뉴스도 있었다. 심지어 총기 규제가 허술하니 ‘필리핀에서는 택시를 타지 말라’는 경고도 있다.
칼리보 공항에 내리니 밤이었다. 그곳에는 한국인 가이드가 아닌 필리핀 가이드가 서 있었다. 필리핀 가이드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한국인을 바꿔줬다. 그분이 하는 말이 오늘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와서 안내하느라 자신이 두 시간 거리인 보라카이에 있으니 현지 가이드와 같이 오라고 한다. 공항에서 낯선 필리핀 사람이 우리 가족들 이름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고 약간 실망도 했는데 어두운 밤에 그 외국인을 따라 목적지인 보라카이로 가려니 걱정도 됐다. 그러나 가는 동안 필리핀 가이드와 대화를 한 뒤 불안감은 조금 가셨다.
얼마 후 보라카이 섬으로 들어가는 부두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배를 타니 한국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제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 섬에 도착하니 보라카이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자전거 택시 베디카부와 오토바이를 개조해 좌석을 몇 개 만든 3륜 오토바이 트라이시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을 타고 우리 가족은 호텔로 이동을 했다. 10여 년 전, 마닐라를 방문했을 때는 미군이 사용하던 군용 지프를 개조한 작은 버스 지프니가 대중교통 역할을 했다.
우리 가족이 예약한 호텔은 이 지역에서 꽤 유명한 호텔로 시설이 아주 좋았다. 다음 날 호텔 수영장을 배경으로 한국인 모델이 촬영을 하고 있어 관계자에게 문의하니 인기 있는 호텔이라 한국에 선전하려고 찍는다고 했다. 그만큼 괜찮은 호텔이라는 의미라서 기분이 좋았다.
보라카이는 세계 3대 화이트비치라는 소문에 세계 여러 나라의 자유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보아하니 한국인들도 많이 온 것 같았다. 숙소인 ‘파라다이스 가든’에는 넓은 부지에 야자수를 비롯한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조용한 휴식과 레저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적합해 보이는 이곳은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상쾌한 물줄기를 내뿜는 인공폭포가 마련된 옥외 수영장이 인기였다. 전체적으로 안락한 분위기에 우수한 시설로 불편이 없었고 도보로 5분 거리에 화이트비치가 있어 참 편리했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은 열대식물이 있는 정원에서 가족 9명이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먹었다. 아름다운 섬 보라카이의 멋진 정원에서 식사를 하니, 대기업에서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큰아들 부부, 부부 공무원으로서 민원인들에게 시달리며 일하는 작은아들 부부가 기분이 좋은지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손주들도 신이 나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아파트에 사는 손주들에게 늘 했던 “조심하라”는 말을 안 해서 필자도 즐거웠다.
옥외 풀장에서는 가족 모두가 물놀이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우리 부부가 손주들과 놀아주니 아들과 며느리들이 오랜만에 해방된 기분이라며 이구동성이다. 점심은 보라카이 다운타운 디몰(D-mall)에서 먹기로 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많아서인지 멕시코식, 일식, 그리스식, 스페인식, 이탈리아식, 스위스식, 한식 등 여러 나라 음식이 많았다. 우리 가족은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필리핀 음식점에서 닭고기와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주문했다. 공장에서 만들었는지 종이에 싼 밥도 나왔다. 손주들과 며느리들이 맛있게 먹어주니 기분이 좋았다. 후식은 자리를 옮겨 필리핀 특산물인 망고로 만든 망고쉐이크를 주문했다. 가족들 모두가 좋아했다. 길을 걷다가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젤라토를 사 먹기도 했다. 그런데 큰손주가 망고쉐이크가 맛있다고 또 사달라고 하니, 둘째 손주도 덩달아 자기도 사달라고 해서 할머니가 지갑을 분주히 열고 닫아야 했다. 가족들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사는 맛이 났다.
다음 날,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밀가루 같은 모래로 손주들과 두꺼비집도 지으며 놀았다. 큰손주는 신이 나서 아예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어서 필리핀 전통 선박으로 엔진 없이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돛으로만 이동하는 세일링 보트를 탔다. 그물망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보라카이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즐겼고, 가족 모두가 흥겨워하니 쪽빛 바다, 흰 파도, 그리고 멋진 모래사장이 있는 이곳으로 여행을 잘 온 것 같다.
저녁에는 가족 모두가 방에 모여 맥주와 위스키,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손주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만끽했다. 특히 손주들이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즐거워하니 아들과 며느리들도 만족스러운지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동안 국내 여행을 자주 함께하며 가족 간 사랑을 나눴던 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부모와 형제는 수족 같고 처자식은 의복과 같다고 했다. 어른이든 아이이든 사랑을 받아야 삶의 활력이 생긴다. 사랑은 살아가는 이유가 될 만큼 아름다운 감정이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어깨 위에 올려놓은 자식과 손주를 절대로 짐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녀들은 가족이 함께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잊고 살지만 공부와 취업, 그리고 결혼 때문에 떨어져 살거나 부모 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제야 부모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각자 자기 둥지에서 살다가 인간관계, 심리적인 문제 등이 생겼을 때, 가족을 찾는다. 가족이 가장 편하고 세상 어느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머니는 늘 따뜻한 마음으로 자녀들을 안아주고, 아버지는 투명한 빛으로 자녀들의 길을 밝혀주기에 부모가 오래 곁에 있다면 최고의 복이다.
이 세상에서 가정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집이 대궐같이 으리으리하고 돈이 많아도 가족 간에 사랑이 없으면 행복한 가정이라 할 수 없다. 가정의 행복을 맛본 사람은 인생의 햇볕을 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빛으로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울 수 있다. 보라카이로 떠난 가족여행은 행복했고, 무사히 귀국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덕분에 가족들의 아름다운 미소는 오랫동안 우리 가정의 풍경이 되고 에너지가 됐다.
주말에 큰손주가 오면 “할아버지 할머니 보라카이 또 가요. 그리고 망고쉐이크 사주세요” 한다. 그 말에 필자와 아내는 싱긋이 웃는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 계획을 짜본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행복이다. 재충전의 기회도 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동안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면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떠나보자.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는 시간 속에 어쩌면 꽃보다 더 아름답고 향기로운 웃음꽃이 만발할 것이다.
>>류시호 시인ㆍ수필가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임한 후 시인과 수필가로 등단해 현재 중부매일신문의 오피니언 ‘아침뜨락’에 2008년부터 고정필진으로 있다. 이외 대구일보와 현대문학신문의 필진으로 있으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16년 문학 창작금 수혜(受惠)를 받았다. 서울특별시장의 ‘서울사랑 이야기 공모전’ 수상 외 6건을 수상했고, 저서로 과 등 4권이 있다.
초등학교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사는 쌍둥이 손주들과 아침마다 학교에 같이 간다. 엊그제 입학한 것처럼 생각되는데 어느새 2학년이 되었다. 새봄을 맞아 학교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하여 ‘아침걷기운동’을 권장하고 있다. 고구려 기병들의 말발굽 먼지처럼 운동장이 온통 뿌옇다.
미세먼지도 없는 화창한 수요일, 손주들이 걷는 날이다. 여느 때처럼 쌍둥이가 운동장을 몇 바퀴 도는 동안 아이들의 책가방, 신발주머니와 과제물 가방을 한아름 들고 교실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몇 학년이세요?” 어느 아이가 물었다.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어리둥절하였다.
나도 모르게 “나는 7학년”이라고 중얼거렸다. 아이가 다시 “누구를 찾으세요?”고 물었다. 이제야 아까의 질문을 이해하였다. 그 사이 손녀와 손자가 운동장 돌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가방을 메고 교실 안으로 뛰어가면서 손을 흔든 모습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오후에 다시 보자”면서 교문을 나섰다.
아내와 함께 날마다 아침에 출근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대신하여 가까이 사는 쌍둥이 등하교를 보살피러 간다. 아침 등교가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지난지금은 아이들이 기상, 씻기, 옷차림은 어른처럼 혼자서도 매우 잘한다. 여기까지는 다 자란 것 같아서 매우 행복한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학교수업이 끝나는 낮부터는 문제가 달라진다. 방과후 수업과 학원 보내기는 날마다 일정이 들쑥날쑥하여 도통 중심잡기 어렵다. 두 녀석 일정표를 집안 곳곳에 붙여 놓고 스마트폰에 올려서 내 일정표보다 더 열심히 쳐다보아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집에서 대기하거나 적어도 비상시 즉시 달려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까지만 외출하여야 한다.
왜 ‘7학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을까.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면서 독서량이 엄청 늘고 놀이문화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진다. 질문에 대답하기 곤란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른다고 하면 대화상대에서 제외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이에게 거꾸로 질문을 하면 효과가 크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정말 열심히 설명한다. 훗날 엄청 큰 자산이 될 터이다. 하기야 손자에게도 배우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후가 되자 두 녀석이 즐거운 표정으로 집에 들어섰다. 한참 클 때가 되어서인지 손 씻자마자 간식부터 챙긴다. 손녀는 가까운 학원으로 같이 가고, 손주는 버스에 태워서 보낸다. 귀가시각을 아들네와 조율하면 하루해가 저문다. 뜨거운 사랑이 있는 가족만이 할 수 있는 일과임이 분명하다.
과거에는 수치로 여겼던 휴학과 유급을 요사이는 취업절벽 때문에 자청하는 경우가 많은 세상이 되었다. 부족해서만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즐겁고 알찬 대화를 위하여 시니어의 하루는 바빠야 한다. 배우다 보면 어느새 꼼짝 없이 멋쟁이 제7학년 초등학생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즐거운 취미생활은 인생의 달달한 간식시간과도 같다. 차곡차곡 단지에 꿀을 모으듯 취미도 오래, 그리고 깊게 즐기다 보면 어느새 꿀단지가 가득 차 삶의 밑천이 되고 보람이 된다. 그러다 보니 좀 더 특별하면서도 의미 있고, 생산성 높은 취미활동을 찾는 이가 많다. 반면에 여전히 독서, 영화감상, 등산에만 머물러 있는 이들도 있다. 아직 취미를 제대로 찾지 못한 이들을 위한 다양한 취미 관련 프로그램 가이드를 준비해봤다.
STEP 1. 취향 따라 두루두루 ‘백화점 문화센터’
무엇을 취미로 삼을지 막연하다면 가까운 백화점 문화센터를 방문해보자.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적힌 카탈로그를 쓱 훑어보면 호기심이 생기는 몇몇 강좌가 눈에 띌 것이다. 문화, 스포츠, 예술, 생활 공예 등 일회성 프로그램에서부터, 여러 달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장기 프로그램의 경우 분기별로 신청할 수 있고, 단기 프로그램은 강좌 스케줄에 따라 별도로 참여 가능하다. 눈여겨볼 만한 3대 백화점 문화센터 주요 강좌들을 정리해봤다.
STEP 2. 내면이 차오르는 취미활동 ‘서울시 평생학습 포털’
다양한 취미활동을 맛보며 몸 좀 풀었다면, 이제 내면의 즐거움을 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살펴보자. 서울시평생학습포털(sll.seoul.go.kr)을 이용하면 각종 온라인 강좌를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있는 서울시민대학 강좌를 신청할 수 있다. 인문, 철학, 문학, 교양 관련 강좌 및 외국어, 취업, 자격증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STEP 3. 커리어 플러스 ‘50플러스인생학교’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하면서도 뭔가 남는 것이 없고 아쉽게만 느껴진다면 좀 더 전문적으로 구체화해볼 필요가 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장차 제2인생의 커리어로 발돋움하길 원한다면 50플러스캠퍼스의 문을 두드려보자.
이맘때쯤이었다. 1962년 완도 앞바다의 햇살은 따뜻했다. 바닷가엔 조개껍데기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뱃머리에 선 소년은 이 정도 기온이면 다시는 추위에 떨지 않을 수 있겠다 싶어 안심했다. 당시만 해도 전라남도 완도에서 서울로 가려면 배를 두 번 타야 했고,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14세 소년은 멀고 긴 상경길이 걱정되지 않았다. 고향에는 다시 내려오고 싶지 않았다. 금의환향을 위해서는 차라리 먼 여정이 낫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눈 앞의 조개들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소년은 나전칠기 대한민국명장 임충휴(任忠休·67)씨다.
“원래 어릴 때부터 공부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무작정 서울로 가출을 했죠. 신문팔이며 구두닦이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그런데 서울의 추위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한 달 만에 집으로 도망쳐왔어요. 그리고 날이 좀 풀렸을 때 다시 서울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동네 이장이셨던 아버지는 그때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다시 도망쳐올 것 같으면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성공하려면 인내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임충휴 명장은 그날부터 아버지의 조언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고 있다. 그의 작업실 한쪽에는 큼지막하게 쓰인 ‘忍耐’라는 글자 액자가 걸려 있다.
그는 두 번째 상경 때 생각을 바꿨다. 무작정 돈을 좇기보다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인천의 라이터 공장에 들어갔다. 그의 성실함이 통했는지 후암동의 한 공장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나전칠기 공장이었다.
나전칠기를 처음 본 소년은 바로 사랑에 빠져버렸다. 영롱한 빛깔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전복 껍질은 지천에 널린 흔한 것이었지만, 주걱 대신 무엇을 긁을 때 말고는 쓸모가 없었다. 그런 하찮은 것이 이렇게 아름답게 변하다니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그는 이 기술을 꼭 자기 것으로 만들겠노라 다짐한다.
월급·휴일 없어도 감지덕지
그러나 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 3년간은 월급도 받지 못했다. 그저 명절 때 주는 옷 한 벌과 간식 정도 사먹을 수 있는 용돈이 전부였다. 일요일도 없었다. 휴일은 한 달에 한 번뿐이었다. 그래도 숙식을 해결하며 어깨너머 기술을 훔쳐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작업만 고됐던 것이 아니다. 한겨울에도 찬물로 청소를 하느라 손과 무릎에는 생채기가 가실 날이 없었다. 아직도 그의 몸에는 당시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말도 못하게 힘들었죠. 어린아이에게는 벅찬 일들뿐이었어요. 당시엔 기술자 중 상당수가 통영 분들이었는데, 연장 명칭은 죄다 일본어였죠. 전라도 출신 아이가 일본어가 섞인 경상도 사투리를 어떻게 알아듣겠어요. 그런데 말도 못 알아듣는다고 혼났죠(웃음).”
엄격한 교육은 요령을 부리지 않고 길고 번거로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제대로 된 완성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하도록 해줬다. 전통 공예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그는 이미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중일(잡부가 아닌 정식 기술자의 초보 단계) 자리를 줄 테니 공장을 옮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 공장은 보문동의 조안공예사. 이곳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김태희 선생의 제자 안승권씨가 운영하던 공장이었다. 임충휴 명장은 아직도 당시에 인연을 맺은 13명과 친목회를 통해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그를 담금질한 성공과 고난의 시간들
제대로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기쁨에 날아갈 것 같았지만 그 역시 순탄하지는 않았다. 옻칠에 사용되는 고운 토분(土粉)을 얻기 위해 매일같이 흙먼지를 마셔야 했고, 나무판자 표면을 곱게 고르는 작업에 종일을 바쳐야 했다.
그렇게 또 정신없이 5년을 보내고 나니, 임충휴 명장은 업계에서 꽤 알려진 기술자가 돼 있었다. 탐을 내는 사람도 많았다. 말 그대로 어엿한 기술자였다. 웬만한 화장대나 문갑 정도는 만들 수 있는 실력이 됐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스카웃 제의가 있었다. 이번에는 김호창 선생이었다.
“김호창 선생님 덕분에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죠. 제 성실함을 눈여겨보셨는지
4년 만에 그 공장에서 공장장을 맡게 됐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많고, 실력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악착같은 제 모습이 맘에 드셨나봐요. 그곳에서 공장장으로 일하다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제 회사를 차리게 됐어요. 독립하고 나서도 선생님이 하청을 주고 신경을 써주셔서 자리 잡는 데 큰 고생은 하지 않았어요.”
어렵게 융통한 300만원이 밑천이 됐다. 시작은 직원들 먹일 밥 지을 곳이 없어 비 맞으며 음식을 할 정도로 열악했다. 전라도 사람을 차별하는 풍토도 있어 어떻게든 신용만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성공이라는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그때는 9자 나전칠기 장롱이 300만원 정도 했어요. 그 돈이면 당시 시골에서 논 20마지기(약 6000평)를 살 수 있었어요. 고향에서 장롱이 그 가격이라고 하면 믿지 않았으니까요(웃음). 덕분에 여러 고관대작의 집에 들락날락했는데 그분들 중에 재벌이나 국회의원, 장관도 있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삼성종합건설의 부탁으로 쿠웨이트 영빈관에 줄 선물로 자개병풍을 만든 것이에요. 사진이라도 하나 남겨놨으면 좋았을 텐데….”
인내는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뚝섬과 성남에 나눠져 있던 그의 작업장에는 직원이 어느 새 100명에 달했다. 제대로 된 9자 나전칠기 장롱이 만들어지는 데는 6개월이 걸리는데, 그의 작업장에서는 하루에 하나꼴로 완성됐다. 그만큼 꾸준한 수요가 이어졌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시장에서 사랑받았다.
“당시 나전칠기 장롱은 주부들에게는 일종의 로망이었어요. 누구나 갖고 싶어 했고, 부의 상징이었죠. 실제로 정부에서는 이 장롱을 사치품으로 간주해 특소세 인지가 있어야 거래가 가능하도록 했어요. 주부들이 자개장을 갖기 위해 계모임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어요.”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어려움이 닥쳤다. 1978년 2차 유류 파동에 잠시 휘청했던 사업이 좀 견뎌지나 싶더니 1997년 IMF라는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현찰 대신 받았던 어음들은 줄줄이 부도가 났다. 당시 부도난 어음의 총규모는 12억8000만원 정도. 개인사업자가 넘길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당시 인사동과 명동, 신설동에 거래하던 가게들이 많았죠. 물론 대부분 어음으로 거래를 했어요. 받지 못한 돈이 12억이 넘었어도 절 믿고 따라준 거래처, 직원들을 실망시킬 순 없었죠. 몇 채 가지고 있던 집들을 모두 처분하고 빚잔치를 했죠. 직원들에게 퇴직금도 조금씩 챙겨주고. 그러고는 칠기와는 인연을 끊으려 했죠.”
실제로 그는 칠기와 잠시 이별했지만 다시 돌아왔다. 그도 천직을 잊기 어려웠지만, 그의 솜씨가 사장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주변의 만류도 컸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진성옻칠공예가 다시 부활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면서 그는 과거의 제작 방식과 전통 소재에 더욱 집중했고, 이러한 노력은 2004년 노동부의 칠기 분야 명장 지정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는 명장 지정 이후에도, 전승공예대전 문화재청장상, 한국옻칠공예대전 금상 수상, 대한민국명장회 최우수 명장 위촉 등으로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다.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다며 주는 상 같았어요. 그간의 노력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그는 명장 제도가 기능인들의 사기를 살리고, 상공인들의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칠기에 대한 몇 가지 오해
나전칠기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자개 장식에 관한 것. 나전칠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수많은 자개 장식이다. 이 자개 장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가구는 높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일까? 임 명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칠기의 생명은 곱고 투명하게 옻칠을 하는 실력과 옻칠의 재료인 칠액에 있어요. 칠액은 옻나무의 수액을 정제해서 만드는데 1Kg에 70만원을 호가하기도 해요. 그래서 예전엔 저렴한 동남아에서 캐슈(cashews) 나무 수액으로 만든 칠액을 쓰는 곳도 있었어요. 사실 자개가 가구 표면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넓으면 넓을수록 만드는 과정은 쉬워요. 또 자개 재료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요. 그래서 자개는 약간의 장식으로만 쓰인 옻칠 가구가 훨씬 귀하고 비쌉니다.”
또 옻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조금 다른 방법으로 진행된다. 말리는 과정이 그렇다. 칠액을 바르고 말리고 바르고 말리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어야 제대로 된 옻칠의 광택이 살아난다. 투명 옻칠은 이 과정을 스무 번 정도 반복해야 한다. 보통 말린다는 표현은 수분이 날아가 표면이 단단하게 굳는 것을 의미하지만, 옻칠은 물로 말린다. 습도가 80% 이상 되는 곳에서 표면을 굳혀야 특유의 투명함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업실의 건조장 바닥은 늘 흥건하다.
이렇게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칠기는 모양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도 훌륭한 생활 도구가 된다. 환경호르몬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토피 같은 질환을 예방하는 데도 좋은 친환경 재료로 알려져 있다. 칠기 가구가 아기용 옷장으로 입소문이 난 것도 이 때문이다. 잘 썩지도 않고 불도 잘 붙지 않는다.
후진 양성을 위한 노력
임충휴 명장은 최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옻칠을 전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통의 장인이라면 옻칠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 마음먹은 제자들 중에서 후계자를 골라 기술을 전수하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일할 장인이 없다는 것이에요. 특히 자개장 같은 건 기능인이 부족해서 웬만한 곳에서는 만들 엄두도 못 내요. 50세 정도는 이제 현장에서 젊은 축에 듭니다. 예전엔 옻칠조합 회원이 100명도 더 됐는데, 이젠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가 돼서 조합도 없어졌어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후진 양성이다. 군포시에 위치한 서울남부기술교육원 옻칠나전학과에서 취업이나 취미를 목적으로 모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술을 가르친 지 2년이 됐다. 이제 그를 사사한 학생이 100명이 넘는다. 장인에게 기술은 밥줄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는 교육원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전통공예를 현대적 디자인에 접목하고 싶어도 매일 비슷한 것만 만들어온 사람들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칠기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데 말이죠. 그런데 교육원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제가 배우는 기분이에요. 실제로 미술 전공자들도 많이 있고요. 이제 교육원에 나가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일은 제 인생에서 보람 있는 일 중 하나가 됐어요.”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에는 중량감 있는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65세 사진작가 킨케이드 역으로 출연했고, 메릴 스트립은 가정주부 프란체스카 역을 맡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4일간 집을 비운 사이 킨케이드가 프란체스카의 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사랑에 빠져 정사를 나누고 갈등한다는 줄거리다. 중년의 외도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명화라며 칭찬하는 분위기다. 남녀 구분 없지만 특히 여성들이 더 열광한다. 언젠가 EBS에서 주말의 명화로 이 영화를 방영한다고 하자 주변 여성들이 꼭 보라며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안 본 사람은 꼭 봐야 하고 이미 본 사람도 다시 볼 만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시큰둥해했다. 서부영화에서 카리스마를 보이며 멋진 총잡이로 나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너무 늙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것도 보기 안쓰러웠고, 그런 나이의 남자에게 프란체스카의 마음이 움직여 정사까지 나누게 되는 전개도 큰 공감이 되질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며 같이 도망가서 살자는 킨케이드의 유혹도 도덕적으로 용서하기 어려웠다.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별 불만 없이 살고 있었고 아이들까지 있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가 가정을 버리고 킨케이드를 따라나섰다면 돌팔매를 당할 만한 줄거리였다.
여성들이 남편의 외도에 대해서는 ‘절대 불가’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 영화에 대한 평가에 관대한 것을 보면 대리만족이 아닐까 한다. 영화에서는 되고 현실에서는 안 된다는 이중 잣대인 셈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의 외도에 대한 조사 자료는 많다. 남자들의 외도율은 매우 높다. 여성들도 남성들보다는 낮지만 꽤 높은 수준이다. 통계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신뢰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 주변의 남자들이 예외 없이 외도 경험이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은 성 경험이 있어야 비로소 성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군대에 입대한, 성 경험이 없는 졸병들에게 부대 인근의 매춘부를 붙여줄 정도로 남자들은 ‘숫총각 딱지’를 떼도록 강요받는다. 요즘은 성매매를 강력히 단속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좀 달라지기는 했지만, 남성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여자들과 섹스할 수 있는 기회는 널려 있는 편이다.
외도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애매하다. 배우자 이외의 이성과 데이트 정도 한 것을 외도로 보는 사람도 있고, 정사를 나눈 것만 외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남자들은 외도 기준을 상당히 깊은 관계에 둔다. 매춘부와의 섹스 정도는 외도로 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 남자의 본능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도 섹스를 할 수 있으므로 마음을 주지 않으면 외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종종 여성들도 마음을 주지 않은 섹스 정도는 눈감아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니 외도를 하더라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
여성들은 폐경이 되면 성욕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전히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다. 섹스리스 부부 중 남편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병이 생길 수 있다며 불만을 터뜨리지만 성욕이 떨어져버린 아내는 꿈쩍도 안 한다. 신혼부부라면 이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50대가 넘으면 애걸해봤자 “나이 들어 주책”이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가수 조영남씨가 쓴 책에 보면 5년마다 배우자를 바꾸는 공약을 내세우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개그가 있다. 남녀 모두 열렬히 동의하는데 특히 여자들이 더 뜨겁게 호응하더라는 얘기다. 생물학적으로 3년이 지나면 호르몬 작용에 의해 사랑하는 감정이 식는다고 한다. 그 무렵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가교 역할을 하게 되면서 부부의 정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영화에는 정상적으로 부부생활을 하는 커플보다 이혼을 하거나 별거인 커플이 더 많이 등장한다. 전 남편과 현 남편이 같이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는 장면도 있다. 우리나라도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이혼에 대한 시각이 상당히 관대해졌다. 이제 혼인빙자간음죄에 이어 간통죄까지 폐지되었다. 개인의 사생활을 국가가 개입해 제재를 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섹스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종족보존의 본능을 벗어나 섹스라는 쾌락을 즐길 줄 아는 동물이다. 그런 선물을 도덕적 잣대 때문에 억제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각자가 알아서 처신할 일이지만, 외도는 ‘적당한 간식’이며 ‘삶의 활력소’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단, 배우자에게 들키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빙빙 돌거나 혹은 주인을 무는 등 다양한 행동을 한다. 물론 반려견의 경우 강아지가 이를 갈 때 하는 행동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스트레스 때문에 보이는 이상행동일 가능성이 많다. 마음의 병이 지나치면 큰 병이 된다. 함께 사는 반려동물의 행동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자료제공 웹진
몸을 핥는다고 혼내면 절대 안 돼요
반려견을 키우다 보면 한 부위만을 집요하게 핥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행동을 내버려두면 피부 염증이 생겨 털이 빠지거나 심할 경우 피부층이 벗겨지기도 한다. 심하면 자기 몸을 물어 자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구나 물건 등을 집착하듯 지속적으로 물어뜯는 것도 스트레스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뭐든지 마구잡이로 물어뜯는다. 특히 이런 행동은 활동성이 많은 중형견과 대형견, 분리불안증을 보이는 강아지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반려견이 가족구성원을 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그 사람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몸을 세게 긁는가 하면 용변 실수를 하고 지나치게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 반려견의 동공이 확대되거나, 눈 사이와 입 가장자리에 주름이 생기는 신체적인 증상도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신호 중 하나다. 반려견의 스트레스가 만성화하면 같은 곳을 빙빙 돌거나 자신의 꼬리를 쫓아 도는 등의 상동행동(비정상적인 반복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스트레스나 불안함 때문에 시작한 상동행동이 점차 버릇으로 굳어지면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강박신경증이 악화될 수 있다. 가능한 한 빨리 발견해 행동을 멈출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때 혼을 내면 안 된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반려견의 만성 스트레스도 질병의 원인이 된다. 자주 긴장하거나 스트레스에 약한 강아지의 경우 식욕부진, 궤양성 대장염에 걸릴 수 있다. 전반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컨디션이 안 좋고 설사를 하기도 한다. 마음껏 운동을 시켜 남아도는 에너지를 발산시키고, 마사지를 해주는 등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말보다는 보디랭귀지가 더 효과적
반려견을 훈련시킬 때는 말보다 보디랭귀가 더 효과적이다. 신체 부위를 건드리거나 간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경우도 많은데 지나친 장난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간식을 줄 듯 말듯하며 애태우거나 꼬리, 귀 등을 잡아당기는 행동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것도 반려견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손님이 왔을 때는 반려견을 격리시켜두거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냄새를 맡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일상이 바쁘고 피곤하다고 너무 오래 신경도 안 쓰고 혼자 내버려두면 안 된다. 반려견도 외로우면 화가 나고 불안해한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시간을 내서 반려견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반려견, 자주 안아주는 게 좋을까?
반려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행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반려견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행동 중에는 불편하거나 위협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이 있다. 특히 뒤에서 안는 행동은 조심해야 한다. 반려견은 시야가 좁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가 몸을 만지는 행동에 굉장히 민감해하며 불안감을 갖는다. 반려견은 시야를 가리는 행위, 정면에서 다가오는 행위, 귀를 덮는 행위 등을 싫어한다.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만지는 것도 반려견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 중 하나다. 반려견을 처음 만났을 때는 특히 낯을 많이 가리므로 머리보다는 등을 쓰다듬으면서 그 손길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게 좋다.
과잉 그루밍, 알고 보면 스트레스 때문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머리털이 빠지는 것처럼 반려묘도 털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고양이의 ‘그루밍’은 치유의 효과가 있지만,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가 다 드러날 때까지 같은 곳을 계속 핥는 경우가 있다. 이런 행위를 ‘과잉 그루밍’이라고 하는데 피부 이상이 없는데 털이 빠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는 식욕을 급격하게 잃어버리거나 행동이 둔해지거나 어딘가에 숨어 폭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가장 흔한 이상행동은 소변을 엉뚱한 곳에 보는 행위다. 일부러 화장실이 아닌 곳에 소변을 보는 등 이상행동을 해서 주인에게 자신의 문제를 알리기도 한다. 이런 행동이 계속된다면 함께 놀아주거나 장난감을 줘서 기분을 전환시킨다. 사료를 좀 더 주거나 긴장을 풀도록 마사지를 해주는 것도 좋다. 고양이가 배변 실수를 할 때 무조건 혼을 낸다면 주인의 접근을 두려워하게 된다. 고양이가 잘못했을 때 혼내는 것 보다는 주인이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 그에 맞는 보상을 주는 일에 더 집중하는 것이 좋다.
자유로운 동물, 강제로 훈련시키지 마세요
고양이는 강제로 훈련을 시킬 필요가 없다. 강아지와 달리 ‘앉아’, ‘일어서’ 같은 복종 훈련을 아무리 시켜도 효과가 없다. 고양이는 안아주는 것도 싫어한다. ‘무언가 나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고양이는 배, 뒷다리 등을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 목 뒤, 턱과 귀 주변을 부드럽게 긁어주는 것을 선호하니 애정을 표시할 때는 그곳을 만져주는 것이 좋다. 고양이가 원하지 않을 때는 강제적인 스킨십을 피해야 한다. 고양이가 먼저 다가왔을 때 얼굴 주변을 가볍게 쓰다듬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면 고양이가 좋아한다. 화장실은 깨끗하게 치워준다. 고양이는 화장실이 깨끗해야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면서 제대로 배변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양이의 화장실은 주인이 배변을 처리하기 좋은 장소보다는 고양이가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에 두는 것이 좋다.
바빠도 하루 30분은 꼭 놀아주세요
고양이는 강아지와 달리 주인에 대한 의존성이 없기 때문에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양이도 외로움을 느낀다. 심할 경우 주인의 부재에 분리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바빠도 하루에 30분 정도는 고양이와 함께 놀아주는 것이 좋다. 고양이는 후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향이 강한 세제, 탈취제 냄새 등은 불쾌감을 줄 수 있다. 고양이가 이용하는 화장실과 용품을 세척할 때는 향이 나지 않는 천연세제 등을 이용하자. 처음 만나는 동물을 보면 본능적으로 공격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중요시하는 ‘영역동물’이다. 당연히 다른 동물이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계속 같이 지내야 할 동물이라면 서로가 익숙해질 때까지 천천히 시간을 갖고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반려견, 반려묘와 살다 보면 서서히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빠지거나 점점 길어져 눈을 덮는 털도 그렇고 발바닥에는 종종 상처도 생긴다. 낑낑대며 걸어서 어디라도 다쳤나 살펴보려고 하면 소리를 지르면서 아픔을 호소한다.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울 때 간단하게나마 필요한 미용 도구와 발바닥 및 털 관리법에 대해 알아봤다.
자료제공 웹진
반려견 털 관리할 때 필요한 도구
슬리커 브러시 슬리커 브러시는 중·장모 견종의 죽은 털을 제거할 때 사용한다. 죽은 털만 제거해도 털에 윤기가 돌고, 환기가 어려운 겨울철 반려견의 털 걱정도 덜 수 있다. 슬리커 브러시로 빗질을 할 때는 털이 자란 방향으로 가볍게 빗어줘야 한다. 반려견이 시원해할 것이다. 피모를 강하게 자극하면 찰과상이 생길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고무빗 고무빗은 단모 견종의 먼지와 털을 제거할 때 쓰인다. 중·장모 견종들과 달리 털이 짧아 고무빗으로만 빗어줘도 털에 윤기가 돈다. 고무빗은 슬리커 브러시처럼 피모에 찰과상이 생길 염려는 안 해도 된다. 단, 예민한 피모를 가진 반려견의 경우 마찬가지로 털이 자란 방향으로 가볍게 빗어줘야 한다.
가위 가위는 중·장모 견종의 엉킨 털을 자르는 데 이용한다. 안전을 위해 반드시 빗을 털 뭉치 아래에 넣고, 빗 위에서 가위질을 해야 한다.
클리퍼 클리퍼는 어떤 견종이든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 가위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 미용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과열되기 쉬워 화상을 입거나 모터가 타버릴 수 있다. 중간중간 클리퍼 날 부분의 열을 확인하면서 쉬엄쉬엄 미용을 해주는 것이 올바른 사용법이다. 세척 후에는 날을 잘 닦은 뒤 냉각, 소독해 보관한다.
피모 관리 유의 사항
☞반려견
포메라니안, 스피츠와 같은 이중모 견종은 모근에 가깝게 클리퍼를 사용하면 털이 다시 안자라는 경우가 있다. 털의 특성을 잘 파악해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사료와 간식을 고를 때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원료가 불분명한 제품은 반려견의 털과 피부를 망가뜨릴 수 있다. 원료를 꼼꼼하게 체크해 건강한 사료와 간식을 먹이도록 한다. 목욕 뒤에는 드라이어의 미풍이나 냉풍으로 털을 말려야 한다. 반려견들은 체온이 높아 고온으로 말릴 경우 고체온증에 걸리기 쉽다. 물은 깨끗하고 신선한 것으로 줘야 한다. 특히 물을 잘 먹지 않는 강아지의 경우 수분 부족이 지속되면 피부에 문제가 생기기 쉽고 시간이 지나면 신부전으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다.
☞반려묘
고양이의 경우는 스스로 털을 핥아 몸을 단장하는 ‘그루밍’을 한다. 또 ‘그루밍’을 통해 ‘헤어볼(털 뭉치)’을 토해내는 행동을 한다. 따라서 아침, 저녁으로 가볍게 빗질로 죽은 털을 제거해주는 것이 좋다. 단모종의 경우는 촘촘한 빗으로 빗기고, 장모종의 경우는 조금 성긴 빗으로 빗겨주면 좋다. 털을 들어 속 털까지 빗어줘야 엉키지 않는다. 고양이는 털이 엉키면 불편해하고 가려워하기 때문에 방치하면 안 된다. 빗질을 싫어하는 고양이라면 고무장갑을 끼고 물을 묻혀 고양이의 몸을 쓸어주면 된다. 목욕을 시키거나 털을 미는 방법도 있다. 미용 전문가에게 맡겨도 좋지만 후유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집에서 미용을 하는 고양이가 많다. 만약 헤어볼을 계속해서 토해내면 헤어볼 제거에 도움 되는 사료, 간식, 보조제를 먹이거나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먹인다. 식이섬유는 헤어볼을 장까지 운반해 배출할 수 있게 도와준다.
건조한 겨울철, 반려견·반려묘의 발바닥 건강 관리
☞반려견
반려견의 발바닥은 두꺼운 편이라서 한 번 갈라지거나 상처를 입으면 회복하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건조함으로 갈라진 상황이라면 그로 인해 발바닥에 상처를 입는 일이 더 잦아질 수 있다. 이미 갈라졌거나 상처를 입은 상태라면 2차 감염까지 가지 않도록 빠르게 치료해주는 게 좋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발바닥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미리 관리를 해 예방하는 것이다.
첫 번째, 산책을 다녀온 후 반드시 미지근한 물로 발바닥을 깨끗하게 닦아준다. 발바닥 사이에 이물질이 끼어 있을 경우 그것들로 인해 작은 상처가 생겨 갈라질 수도 있다.
두 번째, 발바닥 털을 손질한다. 발바닥 털이 많이 엉켜 있으면 산책할 때 많은 이물질이 발바닥 사이에 낄 수 있다. 발바닥 털은 반려견 보행 시 미끄러움을 유발해 슬개골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세 번째, 발톱이 너무 길지 않게 잘라준다. 제때 잘라주지 않으면 발톱이 발바닥으로 파고들어가 상처를 낼 수 있다.
네 번째, 반려견 전용 발바닥 보습제를 수시로 발라준다. 마사지하듯이 가볍게 눌러주면서 발라주면 좋다.
다섯 번째, 발바닥 마사지를 해준다. 사람의 발바닥처럼 반려견도 경락이 발바닥에 집중되어 있어 마사지를 해주면 건강에도 좋고 피로도 풀어줄 수 있다.
맨발로 보행하는 반려견들에게는 여름철의 뜨거운 길 혹은 겨울철의 차가운 길은 독이 될 수 있다. 발바닥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신발이나 패드 등을 신겨보는 것은 어떨까?
☞반려묘
반려묘들의 발바닥 건조는 영양 불균형 또는 모래의 영향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건조한 날씨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작은 상처의 경우 보통 ‘그루밍’을 통해 저절로 낫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발견 즉시 2차 감염 예방을 위해 치료하는 게 좋다. 반려견과 마찬가지로 발바닥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유의한다. 가장 간편한 예방법은 반려묘 전용 발바닥 보습제를 사용해 수시로 발라주는 것이다. 예민한 고양이의 경우 발바닥을 못 만지게 할 수도 있지만, 잠이 들었을 때 조금이라도 발라주기를 권장한다. 만약 건조함 때문이 아니라면 현재 먹고 있는 사료 및 간식의 영양성분과 모래가 청결히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충분한 물 섭취도 필요하다. 체내 수분이 부족해지면 고양이 피부 또한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수분 공급을 충분히 해주고, 물을 잘 먹지 않는 고양이의 경우 습식사료를 주는 것이 좋다. 실내 습도 유지도 중요하다. 겨울철은 실내가 건조하므로, 가습기를 이용하거나 젖은 수건 등을 걸어놓고 습도 유지를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