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이오젠의 아두카누맙을 필두로 치매 치료제 개발에 대한 희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가운데, 놀라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바로 치매 연구의 ‘근간’이라 평가받는 미네소타대학 연구팀의 논문 ‘조작설’이다. 치매 치료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전문가에게 이 사건의 전말과 앞으로의 영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치매는 현대인이 가장 피하고 싶은 노인성 질병이다.
치매는 크게 뇌 자체의 퇴행으로 인한 알츠하이머성 치매, 뇌혈관 손상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 그리고 원인이 불분명한 치매의 3가지로 나뉜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치매 환자의 약 60~70%가 앓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전 세계 대형 제약사들의 치매 치료제는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1907년 독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의 최초 보고 이후 100년 넘게 연구되었지만, 원인과 기전은 아직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최상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약 6개월간 전문가들의 조사를 통해 2006년에 ‘네이처’에 발표되었고 2300여 회 인용된 미네소타대학 논문의 이미지와 데이터가 조작되었음을 보고했다. 미네소타대학 연구팀은 이 논문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진행기전과 관련해 특정 아밀로이드-베타(Aβ56)의 축적이 뇌의 기억 능력을 저하시킨다고 주장했다. 해당 논문에 대한 ‘사이언스’의 보고 발표 이후 주요 언론들은 이 논문으로 인해 미국 정부가 잘못된 알츠하이머성 치매 연구에 큰 예산을 사용했을 가능성, 글로벌 치매 연구 방향의 오류 유발, 그리고 대형 제약사들의 치매 치료제 개발이 늦어지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과학자로서 연구윤리에 어긋난 행동을 한 미네소타대학 연구팀을 비난하고, 이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을 걱정하는 언론의 관점은 타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대중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언론들이 보인 과학 연구 검증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이로 인해 발생한 대중의 불안감 조성이었다.
인문사회 분야와 달리 과학 연구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검증이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기존 연구의 방향성에 영향을 줄 정도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 관련 분야 연구자들은 확장된 대상과 변화된 조건 아래 유사 시험들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발표된 연구 결과의 신뢰성과 보편성을 검증하여 보고한다. 유전자 실험, 분자세포 실험, 그리고 동물 실험 등을 통해 축적된 결과들이 동일한 방향성을 보일 때 이는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한두 개의 조작 논문이 최상위 학술지에 발표될 수는 있어도, 이러한 검증 과정을 통해 주류 연구에서는 배제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대한 아밀로이드-베타의 영향에 관한 연구는 미네소타 연구팀의 논문 조작 훨씬 전부터 이루어져왔으며, 1991년에 발표돼 3446회 인용된 데니스 셀코이(Dennis J. Selkoe)의 리뷰 논문을 통해 정리되었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의 자료 검색 사이트인 펍메드(PubMed)에서 1984년부터 2022년 7월 말까지 찾아볼 수 있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아밀로이드-베타 관련 논문 수는 5만 1755개에 이른다. 이러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아밀로이드-베타가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행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 가설로 받아들여졌고, 미네소타 연구팀이 주목했던 Aβ56이 아닌 Aβ40과 Aβ42가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연관된 핵심 아밀로이드-베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축적된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2021년 미국 FDA는 아밀로이드-베타 제거를 통해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를 목표로 한 아두카누맙(바이오젠)을 조건부 승인했고, 현재 임상에서 환자에게 처방되고 있다. 기존 치매 치료제들(도네페질, 메만틴, 갈란타민 등)이 치매 증상 완화 효과만 보이는 것에 비해,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두카누맙은 일부 임상시험자들의 치매 진행을 늦추는 효과를 보였다. 아밀로이드-베타를 타깃으로 하는 다른 치료제인 레카네맙(바이오젠, 에자이)은 임상 3상 시험 진행 중이며, 현재까지 얻은 결과는 또 다른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의 등장을 기대하게 한다.
지금까지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의 개발과 진행 상황을 돌이켜보면, ‘사이언스’의 보고를 통해 대중과 언론의 많은 걱정을 받았던 알츠하이머성 치매 연구 조작의 영향은 미네소타 연구팀과 이들과 함께 치료제를 개발해온 제약사로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제 개발에 미친 영향은 매우 미미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논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계의 엄격한 검증 시스템을 이해하고, 과학계를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임재홍 메디프론 중앙연구소장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일본 국립산업기술종합연구소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소 등에서 활동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방사선종양연구소 창립멤버로 종양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바이오 기업 메디프론에서 치매 치료제 등을 개발 중이다.
보통 회사는 젊은 세대 채용을 선호한다. 그들의 트렌디함과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한 분야에서 베테랑인 고령자를 선호하는 회사도 있다.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회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보시스템 감리 전문회사 ‘케이씨에이’(KCA)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베테랑이 많은 회사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 케이씨에이를 직접 찾아가 봤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중소기업 케이씨에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눈에 봐도 재직자의 평균 연령이 높아 보인다. 전문가 분위기를 내뿜는 머리 희끗한 직원들은 각자의 일에 열중한 모습이다. 실제로 올해 기준 케이씨에이 전 직원 378명 중 만 60세 이상 근로자는 94명이라고 한다.
올해 케이씨에이는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고령자친화기업 41곳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고령자친화기업은 만 60세 이상 고령 근로자를 5년간 의무 고용해야 한다. 대신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41개 회사 중 케이씨에이는 단연 눈길을 끈다. 대부분 생산직이나 단순노무직이지만 케이씨에이는 IT 전문가를 고용한다는 점에서 차별된다.
그런데 왜 IT 회사인 케이씨에이는 고령 인력을 활용하는 것일까. 이는 케이씨에이가 정보시스템 감리에 특화된 회사이기 때문이다. 감리란 정보시스템이 잘 구축되었는지 점검하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조정·권고하는 업무다. 케이씨에이는 이외에도 IT 컨설팅, 정보 보호, PMO(사업위탁관리) 운영 지원 등의 사업을 한다.
사실 감리 업무는 아무나 할 수 없다. 정보시스템 감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정보처리 분야의 실무 경력이 있어야만 취득 요건을 갖춘다. 한 예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정보처리기사로 7년은 일해야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감리사는 최소 30대는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감리 업무는 IT 업계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안정된 노후를 위해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케이씨에이도 60대가 주축이고 70대도 많이 재직 중이다. 국방과학연구소를 은퇴하고 20년째 감리 일을 하는 80세(1943년생) 베테랑도 있다고. 현재 감리사로 일하는 김영빈(52) 씨는 “개발자로 20년 넘게 일했는데, 여기에 들어오니 막내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김영빈 씨는 아내와 함께 재직 중이다. 김 씨는 과거 IT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아내에게 감리사 일을 권했다. 15년의 공백이 있던 터라 어려움은 많았지만 아내는 자격증을 취득해 먼저 일을 시작했고, 이후 김영빈 씨가 합류했다. 김 씨는 “우리 부부는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베테랑은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어보자.
◇“베테랑 노하우 사회에 보탬돼야”
- 백형충 상무
백형충 상무는 오직 IT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1987년 일을 시작한 그는 금호아시아나의 IT 기업에서 임원까지 하고 은퇴했다. 현재 한국정보공학기술사회 회장이기도 하다.
백형충 상무는 2013년 10월 케이씨에이에 입사했다. 그는 자신의 업무에 대해 “초반에는 감리를 했다. 더불어 전략산업본부에 속해 사업 전체 기획부터 수주 등의 일을 했다. 최근에는 솔루션사업본부에서 ICT사업 부문장을 맡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발굴, 추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백형충 상무는 2003년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IT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만 받고 수석 감리원이 됐다. 백 상무는 일찌감치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에 대해 “IT 업무가 무척 방대한데, 기술사는 전체 영역을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했던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1980, 1990년대에는 직급이 과장 이상 되면 일은 안 하고 결재만 했다. 내 미래의 모습이 저것일까 싶었다”면서 “자격증 취득으로 나 자신의 역량 개발과 함께 후배들에게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백형충 상무는 “제가 환갑 나이인데 주변에 보면 노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30년 넘도록 업계에서 쌓아온 지식과 노하우를 그냥 사장하면 안 된다. 국가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해야 한다. 일하면서 사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강조했다.
◇“비전공자라고 비전문가 아냐”
- 김석범 수석
김석범 수석은 회사 내에서 ‘비전공자’로 유명하다. 다른 말로 풀이하면 비전공자인데 감리 일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다. 김 수석은 경제학과를 전공하고, SK텔레콤에서 1995년부터 20년 넘게 일했다. 특히 그는 SK네트웍스서비스의 게임 서비스를 주도한 대단한 인물이다.
김석범 수석은 개발자들과 일하면서 개발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궁금했고, 배우고자 하는 갈증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2018년 은퇴 후 자바(Java)를 시작으로 개발을 공부하며 개발자를 꿈꿨다. 비전공자로서 공부가 어렵지는 않았을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정말 재미있었다. 자존감이 회복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왜 진작 IT 쪽 공부를 안 했을까 많이 후회했다. 내 업무에 접목했다면 엄청난 시너지가 났을 것이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거나 사업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개발자로 취업하기는 나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그럼에도 김석범 수석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그는 IT 업계에서 일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2020년 감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케이씨에이에 입사했다. 김 수석은 “감리사는 기본적인 급여를 주고 업무도 안정적이다”라고 만족감을 표하면서도 “여기에 안주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현재도 공부를 지속하고 있다. 시장조사, 수요 예측 모델 경험을 가지고 그 연장선에서 빅데이터 공부를 하고 있다. 데이터 분야와 감리 직을 연결할 생각도 있고, 또 새롭게 꿈을 찾아갈 생각도 있다. 그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시니어 직원 없었으면 회사 문 닫았을 것”
- ‘베테랑 중의 베테랑’ 문대원 대표
처음 케이씨에이에 취재 요청을 했을 때도,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도 직원들은 “문대원 대표를 만나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문대원(75) 대표야말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고, 대한민국 정보화의 산 역사이기 때문이다.
문 대표는 세계적인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19∼2022년 판에 연속 등재되기도 했다. ‘마르퀴즈 후즈후’ 인명록은 전 세계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달성한 전문가들의 전기 정보를 기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문대원 대표를 만나 정보시스템 감리라는 황무지 분야를 개척하고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문대원 대표는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물리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과학기술처에 들어갔다. 그다음에 총무처로 옮겨갔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행정 전산화를 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행정전산계획관실이 생겼다. 그곳에서 문대원 대표는 전산화 계획 업무를 맡았다. 우리나라 행정전산망의 기본 계획도 그가 세웠다.
이후 1980년대, 당시에는 정보화를 총괄·조정하는 부처가 없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대통령 비서실 산하에 전산망조정위원회를 만들었다. 각 부처와 공공기관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파견 나왔다. 그중에 물론 문 대표도 있었다. 그는 정보화담당관으로 활약을 펼쳤다.
문대원 대표는 1990년대에는 한국전산원이라는 정보통신부 산하기관에서 일했다. 현재는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문 대표는 감리본부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1997년 대한민국은 외환위기 IMF를 맞았는데, 문대원 대표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 인원을 감축하고 민간기업으로 업무를 이관했다. 이에 문대원 대표는 마음 맞는 사람을 데리고 나와 감리회사를 차렸다. 그게 바로 케이씨에이다. 1999년 어려운 시기에 설립된 회사는 내실 성장을 이뤄 감리 대표회사로 자리 잡았다. “평생 공무원으로 살고 공공기관에서만 일한 사람인데 돈 버는 법을 알았겠어요? 그런데 벌써 23년이 지났네요. 처음에 감리본부 핵심 요원 10명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현재는 직원이 300명 넘고요. 감리, IT 컨설팅, PMO 등 각 분야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매출도 300억이 넘습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문대원 대표는 회사가 성장한 것은 모두 직원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특히 문 대표는 “50·60대 시니어분들이 회사의 주축이다. 감리사는 IT 분야의 최고 자격증이고 경력이 중요한데, 그분들의 노하우가 회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감리란 설계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보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도 중요한 업무입니다. 시니어분들이 경력과 경험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을 잘하신다는 거죠. 잘못된 부분은 지적하고, 컨설팅이나 조언을 전문적으로 해주시죠. 저는 그래서 개발이나 코딩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40·50대부터 이 일을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하고 일에 대한 의지가 강한 분들은 70대까지도 거뜬하게 일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어 문대원 대표는 “시니어분들이 안 계셨으면 케이씨에이는 벌써 문 닫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능력이라는 큰 자산을 가진 시니어들이 나이라는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일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안타까워했다.
“50대 후반에서 60대가 되면 다들 은퇴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국가나 사회적으로 낭비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시니어분들에게 일할 기회를 드릴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제일 큰 보람이에요. 무엇보다 그분들이 있어서 회사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정보화에 앞장선 문대원 대표. 그는 앞으로도 케이씨에이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이뤄나갈 예정이다. 문 대표는 “목표는 대한민국 정보화에 기여하는 좋은 회사가 되는 것이다. 글로벌 사업에도 진출했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보화 기업이 되고 싶다. 현재 목표대로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신아연 작가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과 스위스를 함께 가줄 수 있는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처한다면 본인도 조력사를 택하겠는가? 지난 8월, 두 가지 난제에 대한 대답을 담은 책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가 출간되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안락사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오가길 바라며 용기 있게 나선 신아연(60) 작가에게 되물었다. ‘왜? 어째서 안락사를 반대하는가?’
2021년 7월 25일. 신아연 작가는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20년 전부터 그의 글을 즐겨 봤다는 얼굴 모를 애독자가 함께 스위스로 떠나줄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물어왔다. 비행기 삯부터 스위스에서 머물 호텔의 숙박 비용을 포함해 여정에 드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과 함께. 그러나 제안에서 정작 파격적인 부분은 따로 있었다. 스위스행의 목적이 ‘조력사’였다는 점이다.
죽음의 여정이 일깨운 삶의 소중함
조력사는 안락사와 함께 인위적으로 생명을 중단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안락사는 타인에 의한 생명 중단으로, 의사가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조력사의 경우 외부의 도움을 받되 스스로 치사량의 약물을 마시거나 주사를 놓는 자살 행위에 가깝다. 화두를 던지고 떠난 고인의 죽음은 조력사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으로 소극적 안락사까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다.
섣불리 따라가도 되는 것일까. 국내에선 허가되지 않은 죽음을 방조하는 것은 아닐까. 고민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신 작가는 스위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스위스에 도착해서도, 죽음을 결심한 이와 함께 보낸 2박 3일 동안에도 고뇌는 계속됐다. 신 작가는 조력사 시행 직전까지 고인의 가족과 함께 고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애썼다. 책 전반부에 일기처럼 전개되는 조력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독자까지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다. 도리어 시종일관 마음 편해 보였던 건 죽음을 앞둔 고인뿐이었다.
“고인에게 동행을 제안받았을 때부터 악몽에 시달렸어요. 직전까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죠. 지인들도 모두 가지 말라고 말렸어요. 조력사 과정을 지켜보는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게 될까봐, 두렵고 무거운 기억으로만 남게 될까봐 걱정하는 마음이었죠.”
밸브를 돌림으로써 생을 마감하는 인간을 지켜보는 일은 실로 기가 막힌 경험이었다. 아직도 어젯밤 일처럼 생생해서 가슴팍에 통증을 느낄 정도라고.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행운으로 받아들인다. 주변 사람들과 스스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 강렬한 경험은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낳았다. 죽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점, 그리고 ‘잘 살기’만 하면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건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음은 결코 멀리 있지 않고, 죽음과 삶이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닮았다는 점도 깨달았죠. 그러니 죽음에는 삶의 모양이 그대로 반영되리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아끼며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하고요.”
존엄한 선택? 되레 사회적 약자 내칠지도
고인이 원하던 대로, 신 작가는 고인과의 일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출간 직후부터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온라인 매체 ‘오마이뉴스’에 그가 직접 기고한 책 소개 글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 메인에 소개돼 15만 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해당 글과 카페나 블로그 등에 공유된 글까지 합쳐 7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댓글 수도 놀랍지만, 신 작가는 거의 대부분의 댓글이 안락사 찬성으로 입을 모으고 있어 더욱 놀랐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8명이 안락사 허용을 원한다고 하던데, 제가 받은 댓글로만 보면 9.9명은 안락사 허용을 외치는 것 같더군요. 한 사안에 대해 이렇게까지 의견이 일치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놀라운 한편으로 우려스럽기도 해요. 삶과 죽음을 논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만장일치가 아니라 적절한 비율로 찬성과 반대가 나뉘어야 옳다고 생각하거든요.”
안락사 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오는 이유를 그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기대수명 자체는 늘고 있지만 삶의 질은 장담할 수 없는 세상이다. 이로 인한 걱정과 우려, 더 나아가 불안과 공포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신 작가의 생각이다. 무의미한 생명 연장으로 인해 받을 육체적·정신적 고통, 그에 따른 의료 비용 부담 등이 두려워 안락사 시행을 찬성한다는 거다.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안락사 시행 문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죽음에 대해 신중히 고민하고, 나아가 안락사 시행 반대 입장에 섰으면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에서다. 인간의 존엄성과 삶에 대해 선택할 권리를 위한다지만, 허용 기준이 모호해 악용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다.
“이미 안락사를 허용한 네덜란드에서는 가정을 가진 41세의 사업가가 불안장애와 우울증, 알코올 중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안락사를 선택해 사회에 충격을 안긴 바 있어요. ‘네덜란드의 안락사 법이 알코올 중독자를 죽이기 위해 쓰였다’며 비난이 들끓었죠. 캐나다에서도 최근 ‘만성질환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사회에서 멸시를 받고 있기에 죽기를 원한다’며 신청한 존엄사가 승인되어 논란이 일었다고 해요. 안락사가 사회적 약자를 제도적 죽음으로 몰아가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우리나라라고 상황이 다를까요?”
다른 건 없다,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안락사 시행에 확고한 반대 입장에 선 그는 이 책을 계기로 안락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공론의 장이 펼쳐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가 안락사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호스피스 케어다. 말기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사회적 고통을 완화시켜 삶의 질을 향상하는 호스피스 케어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낭비하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건이 된다면 인세의 일정 부분을 호스피스 시설 확충에 사용하고픈 마음도 있다.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부분도 있다. 조력사 현장에 동행한 사실이 알려진 후 신 작가는 세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나이와 안락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각기 다른 세 사람이 고인과 같은 부탁을 해온 것이다. 그중 두 명은 이미 스위스 안락사 시행 단체에 가입한 상태였다.
이전처럼 결심을 바꾸려고 발 동동 구르는 대신, 그는 이들과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지금은 친구 사이에 하듯, 카카오톡 메시지나 이메일로 안부를 묻는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사람에게 어떤 말을 건넨다는 행위 자체가 섣부를 수 있어 매사 조심스럽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메일 한 통, 메시지 한 줄만큼의 용기를 내고 있다.
신 작가는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웰빙’(Well-being)한다면 ‘웰다잉’(Well-dying)도 저절로 따라오리라고 믿는다. 여전히 죽음이 두렵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낯선 이들을 위해, 고인이 생전 신 작가에게 남긴 이야기 중 일부를 옮겨 적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조력사를 앞두고 있는 저 또한 평소와 다른 무엇을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그럴 수 없네요. 그저 하던 대로의 일상 그 이상은 없더군요.
어느 책에서 시한부 젊은 주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려주고 싶다고 대답하고, 그 소망을 이룬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주부로 살면서 밥하고 살림하는 일이 기쁘고 즐겁기만 했을 리 없을 텐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쩌면 지겹기조차 한 그 일상이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 됩니다. 이 점에서 저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직장인의 90%는 기회만 된다면 이직하고 싶어 한다. 평생직장의 개념도 사라진 지 오래다. 어느 분야에서 베테랑이 된다는 건 ‘시간’을 들인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투입 시간 대비 산출 결과의 효율을 생각하는 시대, 다양성이 더 중요한 시대다. 4차 산업혁명이 사람을 대체할 거라는 이 시대에 베테랑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누군가의 노하우를 배우려면 베테랑이 있는 현장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요즘은 유튜브, SNS 등에 ‘꿀팁’(매우 유용한 정보나 조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수없이 올라오는 통에 굳이 베테랑을 찾아가지 않아도 배울 방법이 많다. 그런 데다 시대 변화는 어찌나 빠른지 4차 산업혁명으로 2030년이면 지구상에 현존하는 직업의 절반이 사라진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어쩐지 베테랑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같다.
하지만 사라지는 영역의 베테랑은 디지털 시대에 다른 형태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새로 등장하는 분야에서는 새로운 베테랑이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시간이 빚는 베테랑
베테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이다. 의미상 숙련자, 전문가와 비슷하지만 ‘오랜 시간’을 들인다는 뜻이 조금 더 강하게 녹아 있다. 그렇기에 베테랑이라면 누구나 그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이나 요령은 어디에도 없는 그만의 기술이다.
한 분야에서 3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을 만나보니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휴, 그때는 누가 옆에 앉혀놓고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매일 청소하면서 어깨너머로 눈동냥하며 공부했죠.(웃음) 그렇게 종일 눈으로 배우고 일과 끝나면 무작정 따라 해보는 거예요.” 베테랑의 노하우를 얻으려면 눈치가 좋아야 했다. 알려주지 않아도 혼자 열심히 연구하고 있으면 어느새 베테랑이 다가와 자신의 노하우를 하나씩 알려줬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가 되는 것이다. 특히 기술이 필요한 곳에서는 이렇게 도제식(徒弟式) 교육이 이뤄졌다.
그렇기에 베테랑의 노하우에는 시간뿐만 아니라 그의 감(感)이 녹아 있다. 요리책에 나온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해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이유는 개인의 손맛 때문이다. 같은 기술을 배워도 기술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제식 교육 하면 ‘무형문화재’ 같은 ‘장인’(匠人)이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기술자가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많은 영역에서 도제식 전수가 이뤄진다.
영화 제작, 검사나 경찰의 수사, 기자나 PD의 취재, 조향사의 조향 과정 등에도 사수(師授)의 노하우가 입으로 전해진다. 사수는 ‘스승에게서 학문이나 기술의 가르침을 받음’이라는 뜻이다. 일터에서는 스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수와 부사수’ 관계로 일을 가르치고 배운다. 요즘 버전으로 말하자면 ‘멘토링’(Mentoring)이다. 멘토링은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멘토, Mentor)이 지도와 조언을 통해 멘티(Mentee, 멘토링을 받는 사람)의 실력과 잠재력을 높이는 것을 말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바뀌고 있다. 한 분야의 베테랑은 오랜 시간을 들여야 빚어지는데, 일자리가 아예 사라진다면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제빙기 개발은 얼음 장수를 사라지게 했다. 냉장고나 제빙기가 없던 시절에는 한강이 얼면 강의 얼음을 깨 파는 얼음 장수가 있었다. 하지만 냉장고와 제빙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정에서 얼음을 얼려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얼음 장수는 사라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온다고 한다. 또 한 번 사회가 크게 발전하는 시기다. 2016년 다보스포럼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는 “2020년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약 710만 개 사라지고,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분야의 베테랑은 더는 ‘시간’을 누적할 수 없어 도태될 것이고, 새롭게 생긴 일자리에서는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베테랑이 생겨날 것이다.
옥스퍼드대학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 교수는 논문 ‘고용의 미래’에서 △정교한 손가락 움직임 △손재주 △좁은 작업 공간과 불편한 자세 △독창성 △순수예술 △사회적 지각 △협상 △설득 △타인의 배려 및 보살핌이 필요한 영역은 기계나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렵다고 봤다. 아무리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결국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베테랑의 감(感) 입는 디지털
단순·반복적이거나 숙련도가 떨어지는 일이 대체로 자동화되고 있는데, 이 자동화에도 베테랑이 필요하다. 바로 그들의 ‘감’이 자동화를 더 정교하게 만들기 때문. 포스코는 베테랑 근로자의 경험과 감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베테랑의 머릿속에 있는 주관적 데이터를 객관적 데이터로 바꾸어 ‘스마트 고로’를 만들고 AI가 학습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 결과 품질 불량률이 63% 감소했다. 사람이 아닌 AI가 베테랑의 노하우를 배우는 셈이다.
현대건설도 현장 베테랑의 지식과 노하우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특히 안전·품질 분야를 스마트화해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데 공들이고 있다. 처음에는 자신의 노하우를 빅데이터화하면 신입 직원에게 밀려날까 불안해하던 중장년 베테랑도 이제는 스마트 기술에 적응하며 새로운 변화를 따라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베테랑이 오히려 단순노동에서 벗어나 더 가치 있고 창의적인 일을 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 역시 숙련 기술의 디지털화를 시도하고 있다. 과거 일본의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는 생산 현장을 강조하는 의미였지만, 지금은 제조 설계부터 고객 만족까지 통합된 하나의 흐름을 가리킨다. 설계, 생산, 서비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 되었다. 최근에는 모노즈쿠리 혁신을 외치며 베테랑의 노하우와 디지털을 결합하는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은 보고서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 활용이 새로운 부가가치의 원천인데, 모노즈쿠리 과정에서도 수많은 데이터가 발생한다”면서 “일본 제조 기업은 이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생산 효율화를 목적으로 내세운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내부에서만 공유하던 데이터를 산업의 경계를 넘어 기업이 상호 거래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단순한 생산 효율화가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축 등 오픈 이노베이션 추진이 목표”라고 분석했다. 베테랑의 노하우를 공유함으로써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노하우를 이어가는 베테랑도 있다. 과거 도제식 교육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여전히 우리는 베테랑이 필요하다. 노하우를 축적한 베테랑과 그들을 찾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생겨난 이유다.
‘탤런트뱅크’는 전문 인력 상시 고용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에 고도의 비즈니스 문제가 닥쳤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를 프로젝트별로 연결한다. 현장에서 은퇴한 베테랑이 전문가로 투입되는 것. 재의뢰율이 60%를 넘어설 만큼 기업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클래스101’은 중장년 베테랑의 노하우를 교육과 강의 형식으로 전한다. 음악·미술·운동 등 취미 관련 강의부터 부업·재테크 노하우, 업무 능력 향상 등 일 잘하는 방법, 인문·사회·예술을 비롯한 교양 강의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숨은 고수라는 뜻의 ‘숨고’에서는 900여 분야의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려견 산책’, ‘주례’, ‘게임 레슨’ 등 소소한 영역까지 포함된다. 베테랑 전업주부의 노하우를 살려 ‘정리수납 고수’로 활동하거나, 기업에서 인사관리와 교육 일을 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취업 컨설팅 고수’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시대의 흐름은 다양한 직종, 여러 분야의 베테랑을 사라지게도 하지만, 그들의 노하우는 무형의 가치로 남아 디지털과 융합해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두 개의 선이 서로 의지하며 맞닿은 형태의 사람 인(人)은 책과 또 다른 책을 잇는 징검다리 같은 모양새다. 조우성 변호사는 특유의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분쟁을 겪거나 억울하게 지탄받는 이들이 본질을 찾도록 돕는다. 이번 북人북에서는 남다른 발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이상한 변호사’의 내공을 담았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최근 성황리에 종영했다. 이 작품은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우영우가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며 진정한 변호사로 성장하는 내용을 다뤘다. 6월 29일 0.9%로 출발한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은 마지막 16회에서 17.5%라는 기록을 세우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드라마 대본을 쓴 문지원 작가는 변호사들이 경험한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두고 이야기를 구성했다. 16부작 중 4화, 11화, 13화, 14화에는 조우성 변호사의 저서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의 일부 내용이 차용됐다. 형들에게 속아 아버지로부터 받은 토지 개발 보상금을 5대3대2로 나누겠다는 각서에 도장을 찍은 막내, 불법 도박장을 드나들다 우연히 로또 1등에 당첨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당한 아내 등 실제 그가 맡았던 사건들이 각색돼 드라마에 등장했다.
검사가 되지 못한 이유
조우성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7년부터 18년간 국내 대형 로펌인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일했으며, 서울중앙지방법원분쟁조정위원, CDRI 기업분쟁연구소장 등을 거쳤다. 현재 법률사무소 머스트노우의 대표이자 올해로 26년 차 변호사다. “시골 출신인 데다 장남이다 보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고도 고시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죠. 연수원 동기로는 윤석열 대통령,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있어요.”
1992년 연수원의 실무 교육을 받고 1993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수습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직접 피의자들을 앞에 두고 경찰에서의 진술 과정을 확인한 다음, 보완할 내용을 적어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처음 담당한 ‘아리랑 치기’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리랑 치기는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한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말한다. 대학생 김 군이 술에 취한 피해자 최 씨의 양복 윗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안에 있던 현금 5만 원을 절취했다는 것이 범죄 사실의 요지였다.
“김 군의 사정을 들어보니 참 딱했습니다. 입원 중인 어머니의 수술비가 필요했대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뿐이라 학교가 끝나면 늦게까지 근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나 봐요. 집에 돌아가던 길에 쓰러져 있던 피해자의 양복 안주머니가 불룩한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었다고 했어요.”
일단 범죄 사실에 대한 진술을 정리한 뒤, 그는 김 군의 안타까운 사연을 피의자신문조서에 자세히 기재했다. 더불어 김 군이 대학교에서 장학생이며 교내 봉사상을 받은 내역도 포함시켰다. 내용을 확인한 검사는 난감하다는 듯 “조 시보님, 이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가 아니라 변호인이 작성한 변론요지서 같습니다. 이 아래로는 전혀 필요 없는 내용이에요”라며 지적했다. 비슷한 사례를 여러 차례 겪은 뒤 검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다고 느낀 그는 결국 변호사를 택했다.
소송 아닌 화해 권하는 괴짜
갓 변호사가 됐을 때는 내공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 수많은 소송 건과 자문 사건을 동시에 진행하며 사무실에서 쪽잠을 잤다. 설상가상으로 나이 많은 의뢰인들과 결혼, 이혼, 자식 관련 문제 등으로 상담해야 하니 법적 지식만으로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어르신들과의 대화를 직접 이끌어야 하는데, 법 조항만 기계적으로 늘어놓으면 발전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소양을 높일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동양 고전을 보게 됐습니다.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기보다 책에 깊이 파고들었어요. 나름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터득하게 됐죠. 어느 순간부터는 의뢰인들과 대화가 통하더라고요.”
사건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중요한 건 승소지만, 조 변호사는 사람과 그의 감정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사건의 단면만 생각하는 것은 두 시간짜리 영화를 시작한 지 40분 지난 후의 지점부터 보는 일과 같다. 의뢰인을 처음 만나는 변호사와 영화 상영 중간쯤 영화관에 도착한 관객은 이러한 면에서 닮았다. 우선 의뢰인을 진정시키고, 보지 못한 앞부분의 스토리를 최대한 자세히 듣는 일이 중요하다.
‘그분과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상대방으로부터 이상한 조짐을 느낀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볼 때, 상대방이 좀 이해되는 부분은 있나요?’의 순으로 질문을 던지며 상태를 판단한다. “형제간의 재산 분쟁에서 형을 대리한 적이 있습니다. 2년 동안 치열하게 노력해 승소했지만, 의뢰인은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얼마 후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검투사처럼 싸워서 이기는 것에만 집중했는데, 차라리 의뢰인의 감정을 알아채고 동생과 화해하는 쪽으로 이끄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그 후로는 법정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의뢰인께 분쟁 상대와 대화 혹은 사과를 먼저 권하게 됐어요. 근본적인 감정을 잘 보듬어주면 문제가 금방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9부 능선 넘어선 ‘조변보감’
임상의학이 직접적인 진단 및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면, 예방의학은 병의 원인을 찾고 그에 따른 예방 방법을 개발하는 분야다. 그는 ‘임상 변호사’의 삶을 마무리하고, ‘예방 변호사’로서 더 멀리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개인의 사건을 맡아 처리하고 승소를 끌어내는 일에서 나아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법에 관련된 정보를 재밌게 소개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열 계획이다.
“여전히 법률이라는 분야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용어가 딱딱하고 내용이 어렵다 보니 법적 다툼이 일어났을 때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지적하고, 분쟁 전 충격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예방 변호사’의 덕목 아닐까요. 전문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유튜브, 책, SNS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제가 소개하는 법률 상식을 알아가셨으면 해요. 실제 상황에서 잘 활용할 수 있게끔 돕겠습니다.”
‘생각의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책
by 조우성
중장년이 되면 본질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려면 관점을 달리하는 것이 우선이죠. 내 안의 힘을 믿고 인생의 목적을 다시 설정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제가 추천한 책들이 남다른 통찰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저)
“세계적인 MBA 와튼스쿨의 교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가 강의하는 ‘협상 코스’의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진정한 의사소통,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 실전에 유용한 전략 등 협상을 위한 기본 개념은 물론, 통념을 뒤엎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 방법도 담겨 있죠. 저자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사례를 들며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람들의 비밀, 가격 흥정과 생활의 혜택을 얻는 비법 등을 독자들이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냈습니다.”
노이즈 : 생각의 잡음 (대니얼 카너먼 외 2명 저)
“저자는 인간이 저지르는 오류를 편향과 잡음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쉽게 파악 가능한 편향을 제거하고, 다소 발견하기 어려운 잡음을 예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편향과 함께 판단 오류를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인 잡음을 최초로 규명한 연구 보고서인 이 책은 형사사법제도, 의료제도, 비즈니스 예측, 근무평정, 지문 감식, 정치 등 여러 분야 속에 숨은 잡음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가 (후안 엔리케스 저)
“우리는 스스로 ‘옳고 그름’을 잘 분별한다고 여깁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을 해석하고, 평가하고, 구분 짓기도 해요.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확신을 무너뜨립니다. 옳고 그름은 시간에 따라 바뀐다는 거죠. 우리는 윤리를 절대적이고 근원적인 대상으로 여기지만 규칙은 변하고, 영원한 진리는 없다는 겁니다. 거듭된 발전으로 변화한 사회 속에서 어떤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봐야 할지 고민해볼 수 있겠습니다.”
채근담 (홍자성 저)
“채근은 나무 잎사귀나 뿌리처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말합니다. 송나라 학자 왕신민이 ‘사람이 항상 나무뿌리를 씹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죠. 이 책도 읽다 보면 나무뿌리 같은 투박하지만 깊고 담담한 맛이 느껴집니다. 저자가 말하는 삶의 진리나 깨달음도 소박하고 단순해요. 자연의 이치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그 본질과 기틀을 깨닫게 하며, 헛된 욕심을 다스려 항상 자신을 바로 세우는 길을 제시하고 있어요.”
외벌이 가장 민 씨는 작년부터 노모 병원비까지 부담하는 상황이 되었다. 비상 예비자금을 따로 준비해두지 않은 민 씨는 제2금융권 대출이나 현금서비스 등 당장 손쉬운 대출을 자주 이용했다. 신용대출 만기 시점에 은행으로부터 신용평점 하락으로 한도 축소와 금리 인상 통보를 받은 민 씨는 개인신용에 대한 전반적인 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 신청을 해왔다.
1~10등급의 신용등급제로 평가되던 개인신용이 2021년 이후 1~1000점의 신용평점제로 변경되었다. 은행 등 금융회사는 자체 신용평점시스템(Credit Scoring System, CSS)을 기준으로 대출 승인, 신용카드 발급, 한도, 금리 결정 등 각종 금융 거래를 위한 의사결정을 한다. 이때 CB(Credit Bureau)사(社)라고 하는 개인신용 평가회사의 신용평점을 참고한다. 2022년 8월 현재 개인신용평점에 따른 주요 은행별 일반 신용대출 금리를 비교하면 ‘표 1’과 같다.
개인신용평점에 따라 대출 금리는 최대 3배 가까이 차이 난다. 대출 금액 1억 원을 10년 동안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상환할 경우 대출이자율 차이에 따른 월 상환금과 총 이자액은 ‘표 2’와 같다.
개인신용평점은 두 CB사에서 운영하는 ‘나이스지키미’와 ‘올크레딧’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하면 연 3회 무료로 조회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2011년 10월부터 신용점수 조회 사실은 신용평가에 반영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용점수에 이의가 있을 경우 신용조회회사 고객센터를 통해 신용점수 산출 근거 등을 확인할 수 있다. CB사의 설명에 이의가 있을 경우에는 금융감독원 민원센터인 ‘개인신용평가 고충처리단’을 통해 이의 제기가 가능하다.
개인신용평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신용 관리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신용 관리 지식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다음 ‘표 3 신용평점 관리 자가진단표’에 하나씩 답을 해보면서, 개인신용평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보자.
CB사는 상환 이력, 부채 수준, 신용거래 기간, 신용거래 형태, 비금융/마이데이터 등의 정보를 활용해 개인신용평점을 평가한다. 첫째, 상환 이력이란 기한 내 채무 상환 여부와 채무 연체 경험에 대한 정보 등을 말한다. CB사는 연체 정보 중 10만 원 미만 혹은 5영업일 미만의 연체는 신용평점에 반영하지 않는다. 대신 연체로 등록될 경우 90일 미만의 단기 연체 정보는 3년, 90일 이상의 장기 연체 정보는 최장 5년까지 신용평가에 반영한다. 연체 기간이 장기일수록, 연체 금액이 클수록, 연체 횟수가 많을수록 개인신용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둘째, 부채 수준은 현재 보유한 채무의 수준을 말하며, 대출 상환 정보가 반영된다. 부채 규모가 클수록, 부채 건수가 많을수록 개인신용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부득이 현금서비스를 이용해야 할 경우 100만 원씩 두 번 받는 것보다 200만 원을 한 번 받는 것이 더 낫다. 보증채무도 부채 수준 정보에 포함된다. 단순히 신용카드를 여러 장 발급한 것은 신용평점과 상관이 없다.
셋째, 신용거래 기간은 신용 개설, 대출, 보증 등 신용거래 활동을 시작한 후 거래 기간에 대한 정보다. 연체 없이 대출 상환 기간이나 신용카드 사용 기간이 길면 길수록 개인신용평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고로 신용카드 정리 시 사용 기간이 오래된 카드를 유지하는 것이 신용평점 활용 면에서 유리하다.
넷째, 신용거래 형태는 대출거래 형태나 신용카드의 이용 형태와 관련된 정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더 높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로부터 대출을 받을 경우 연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아 은행 대출보다 신용평점에 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일반 신용카드보다는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개인신용평가에 더 긍정적으로 반영된다. 습관적인 할부는 상환해야 할 부채 수준을 일정 기간 높게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일시불보다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단기 카드대출(현금서비스)은 신용평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신용카드 이용한도 대비 사용 비율이 높을수록 신용평점에 부정적이다. 따라서 신용카드 이용한도는 가능하면 높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신용카드는 한도의 30~40% 이내에서 사용하는 것이 신용평점에 긍정적이다.
다섯째, 비금융/마이데이터는 고객이 CB사에 직접 등록하는 정보다. 국민연금이나 국민건강보험료, 도시가스 요금, 통신 요금 등을 6개월 이상 꾸준히 납부한 실적을 CB사에 직접 등록하면 신용평점에 가점을 받을 수 있다.
신용은 보이지 않는 자산이며, 신용사회가 되어갈수록 개인의 신용 관리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신용평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잘 숙지하여 신용카드 하나부터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사용해야 노후의 재무건강을 지킬 수 있다.
과다 채무자 구제제도
주식이나 부동산 혹은 가상화폐 등 투자한 자산의 가격하락으로 갑작스럽게 채무가 과다해진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땐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냉정한 판단과 가족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생활비를 대폭 줄이거나, 가족의 재무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 채무가 가족의 능력 범위를 초과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채무자 구제제도를 이용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채무자 구제제도는 공적채무조정과 사적채무조정이 있다. 공적채무조정은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인데, 법원이 운영 주체다. 사적채무조정은 신용회복위원회가 운영 주체인데, 연체 기간에 따라 ‘연체 전 채무조정’, ‘이자율 채무조정’, ‘채무조정’(개인워크아웃)으로 구분한다. ‘표 4’는 우리나라 채무자 구제제도를 요약한 것이다.
공적채무조정 중 많이 활용되고 있는 개인회생은 연체 여부와 상관없이 신청할 수 있다. 개인회생이 허가되면 채무자는 본인의 소득에서 부양가족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금액을 변제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부양가족 최저생계비는 매년 중위소득의 60% 수준에서 법원이 탄력적으로 적용한다. 현재 개인회생 변제금 최장 납부 기간은 원칙적으로 3년이다. 다만 청산가치보장의 원칙이라고 해서 갚아야 할 변제금이 보유한 자산가치보다는 많아야 한다. 청산가치보장의 원칙에 따라 변제 기간을 5년까지 늘릴 수도 있다. 개인회생은 변제금을 상환할 능력이 있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채무자는 반드시 소득이 있어야 한다. 개인회생은 자산이 적고, 부양가족이 많고, 소득이 높지 않은 채무자일수록 상대적으로 탕감되는 채무가 많다. 법원으로부터 개인회생 인가를 받으면 채무자에 대한 독촉은 중단된다. 하지만 보증인에 대한 독촉은 중단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회생은 보증인이 없거나 채무자와 보증인 모두 개인회생을 원할 때 신청하는 것이 좋다.
사적채무조정은 개인회생에 비해 원금 감면 비율이 낮다. 대신 보증인에 대한 독촉은 중지되고 상환 기간(최장 10년)이 길다. 개인회생이 모든 채무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사적채무조정은 신용회복위원회와 협약된 금융회사나 대부업체의 채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협약되지 않은 회사나 개인의 채무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채무로 인해 고통스럽다면 우선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서 상담받을 것을 권한다. 신용회복위원회 콜센터(1600-5500)나 인터넷으로 신용회복위원회 사이버상담을 통하면 채무조정부터 개인회생에 대한 안내까지 받을 수 있다.
모두가 돈 걱정 없는 삶을 원하겠지만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럴 때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현실을 외면하기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대처하는 것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음’을 피하는 길이다.
참고 신용회복위원회(www.ccrs.or.kr), 나이스지키미(www.credit.co.kr), 올크레딧(www.allcredit.co.kr)
마네의 인상주의나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을 처음 본 당대 사람들은 ‘예술이 아니다’, ‘낙서에 불과하다’라고 혹평했다. 시간이 흐른 뒤 대중은 그들을 ‘창시자’라 일컬었고, 작품들을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듯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이들은 저마다 산통을 겪는다. 그리고 여기, 모바일 아트로 미술계에 한 획을 긋겠다는 남자가 있다. 국내 최초 모바일 아티스트 정병길(69) 씨다.
어떠한 창조적 본능이나 이끌림 같았다. 정병길 씨가 그림을 그린 까닭 말이다. 학창 시절 다른 숙제는 거들떠보지 않다가도 그림이나 공작(工作) 과제는 눈을 반짝이며 해냈다. 슥슥 휙휙 그렸다 하면 사생대회 1등은 떼놓은 당상. 뛰어난 실력에 담임선생님이 미대를 권유한 적도 있었다. 물론 뜻이 없진 않았지만, 당시엔 다른 꿈이 더 앞섰다. 우장춘 박사처럼 훌륭한 육종학자가 되어 농촌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꿈으로 끝나버렸다. 아버지의 지병으로 가세가 기운 탓이었다. 원하는 전공보다는 장학금을 주는 농협대학을 택했고, 곧장 밥벌이를 시작했다. 30여 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화실까지 마련해가며 붓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이란 목표로 하는 꿈보다는 오래 지니고픈 로망이었기에 쉬이 접지 못했을 테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도 여느 직장인처럼 인생 1막을 정리할 때가 다가왔다.
“농협 지점장까지 하다가 2010년에 은퇴했어요.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그만두고도 2~3년 더 일할 자리를 마련해줬거든요. 앞으로 30~40년은 더 살 텐데, 당장 몇 년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겠더라고요. 눈 한번 질끈 감고 일자리를 사양했습니다. 프리랜서 작가로 그림을 그리고 글도 써볼 요량이었죠. 그런데 얼마 못 가서 이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저성장 양극화 시대에, 그것도 무명인이 문예활동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다고 여긴 게 큰 착오였죠.”
박수 받은 창직, 현실은 맨땅에 헤딩
정병길 씨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재주도 남달랐다. 당초 그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 글을 투고해 원고료로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었다. 은퇴 후 1년 동안 칩거하며 쓴 글을 ‘내 아이 이웃과 함께 더 큰 세상으로’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2년 뒤엔 두 번째 책 ‘이젠 아빠를 부탁해’를 펴냈다. 주변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나마 다행히 그림으로는 ‘상하이아트페어’, ‘대한민국미술대전’, ‘행주미술대전’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개인전도 열며 초석을 다져나갔다. 하지만 그 역시 취미를 넘어 직업으로 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유명 작가가 아니니 결국 홍보 문제다 싶더군요. 신문 광고도 몇 번 냈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죠. SNS를 배워 직접 홍보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관련 강의를 듣다 만난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이 모바일 미술 앱을 소개해줬습니다. 태블릿 PC에 떠듬떠듬 그려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당시 강사에게 매주 새로운 그림을 그려 보여줬더니, 모바일 미술을 업(業)으로 삼아보면 어떻겠냐 하더라고요. 그게 창직의 신호탄이 된 셈이죠.”
‘모바일 미술’(아트)이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의 모바일 기기에 내장된 그림 앱을 이용해 창작한 미술이나 예술을 말한다. 물감, 붓, 캔버스나 이젤 등이 필요 없고, 그 덕분에 별도로 화실을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온라인이나 SNS상에 작품을 게시하거나, 출판물에 사용하기도 하고, 캔버스나 종이 등에 출력해 유화나 수채화처럼 전시할 수도 있다. 그런 모바일 미술이 정병길 씨에겐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친김에 정보를 찾아보니 해외에서는 입소문을 탄 장르였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전무했다. “옳거니!” 창조적 본능이 되살아났고, 그렇게 개척자의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당시 모바일 미술을 가르치는 학원도, 선생님도 없었어요. 거의 독학으로 기법을 습득하고 펜업(삼성전자 그림 공유 서비스) 도움을 받았죠. 작품을 만들어 뭔가 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이 분야를 알리는 쪽으로 초점을 맞췄어요. 시장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사람들의 반응을 보려고 SNS에 강좌 정보를 올렸더니 수요가 꽤 있더군요. ‘그러면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결론이 섰죠.”
그렇게 ‘모바일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탄생시켜 이를 개념화하고, 강좌와 전시를 통해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시대가 발전하며 모바일 미술용 앱과 플랫폼이 더욱 다양해졌고, 관련 툴(Tool)이나 출력 기술이 정교해지며 이 분야는 상승세를 탔다. 혹자는 찰나의 아이디어가 운때 맞았다 여길지라도, 이는 나름의 안목을 갖고 꾸준히 노력했기에 얻은 선물과 같다. 그 성과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 ‘시니어 IT 일자리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이라는 결실도 얻었다.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관심과 응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개척자의 길은 여전히 험난했다.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에요. 미술계는 기득권의 장벽이 높고 굳건하니까요. 그런데 과거 예술 분야 개척자들을 보면, 대부분 목숨 걸어가며 단초를 마련하잖아요. 저는 아직 모바일 미술 때문에 목숨까지 건 적은 없지만, 돈은 참 많이 까먹었습니다.(웃음) 노후에 도움 되려고 한 일인데 오히려 리스크가 될까봐 걱정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그 말이 와닿더라고요. ‘안전한 길은 위험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안전하긴 해도 뭔가 즐거움이 없잖아요. 그거야말로 노후 리스크죠. 그래서 기왕 시작한 거 최대한 부딪혀보려 합니다.”
‘NFT, 줌’ 신기술과 만나는 모바일 아트
현재로서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보단 투자하며 판로를 개척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으로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다. 장차 모바일 아티스트가 촉망받는 직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대 과제인 셈이다. 현재 작품을 판매하거나 저작권료로 얻는 소득은 높지 않다. 그보다는 학생이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새로운 기술과 직업을 알리는 강의를 통한 수입이 주가 된다. 여타 예술처럼 경매에서 작품의 우수성을 평가받아 높은 금액이 책정된다면 가장 이상적인 구조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은 생소한 분야인 데다, 작품의 고유성이 떨어진다는 인식 때문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가령 일반적인 경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 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지만,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그림 파일을 종이나 다른 소재에 계속해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바일 미술의 가치 평가는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까?
“판화 역시 여러 장 찍어낼 수 있잖아요. 대신 한정된 수량을 제작하고, 찍는 순서대로 숫자 표기와 서명을 남기죠. 가령 판화 아래 1/10이라고 표기돼 있다면, 10개 찍은 작품 중 첫 번째 에디션이라는 뜻이에요. 그렇게 판화의 개념으로 가치를 판단하면 좋겠습니다. 또 실크스크린 판화는 판면의 구멍에 잉크를 넣어 찍는데, 이 기법으로 여러 작품을 만들 수 있죠. 같은 방법으로 모바일 미술은 완성된 작품이라도 툴을 이용해 색이나 요소를 수정하고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는데, 그 과정이 쉽다는 게 큰 장점입니다.”
그는 NFT(Non 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의 개념을 접목해도 좋다고 덧붙였다. 근래 디지털 수집품 거래가 활발해지며, 이러한 자산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도구로 NFT가 사용되고 있다. 미술 시장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는 추세다. 모바일 미술 작품의 경우 파일 형태로 저장돼 NFT로의 변환이 용이하다. 정병길 씨 역시 이러한 장점을 살려 수익 창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신기술과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에 집중한 아이템은 바로 ‘줌’(Zoom,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이다. 주로 방과후교실이나 사회교육원 등에서 모바일 미술을 가르쳤는데, 코로나19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줌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첩하게 태세 전환을 하고 기술을 익힌 그는 이제 줌에 관해서도 반전문가가 됐다. 최근 2년 사이 ‘줌을 알려줌’, ‘줌 활용을 알려줌’이라는 줌 활용서를 두 권이나 펴냈으니 말이다. 물론 줌 역시 모바일 미술과의 접점을 꾀하고 있는 그다.
“제 목적은 모바일 미술의 매력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건데, 그동안 시공간의 제약이 많았거든요. 특히 섬이나 농어촌에 사시는 어르신처럼, 문화 수혜 격차를 겪는 지역민에게 줌으로 모바일 미술을 전파하려고 해요. 또 그런 분들도 모바일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줌 전시회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꼭 전에 없던 무언가를 해야만 창의적인 건 아니에요.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을 어떻게 융합하고 접목하느냐에 따라 창작과 창직이 가능하다고 봐요. 자신의 재능이나 관심 있는 분야를 신기술과 잘 연결 지으면 누구든 저처럼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꿈을 이루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정병길 씨는 2020년 설립한 모바일아티스트협동조합을 통해 체계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넓혀가고 있다. 전문인력 양성도 꾸준히 해나가고 있고, 장차 자격증 발급 절차 등도 논의해볼 방침이다. 그런 그가 모바일 아티스트로서 갖는 최종 목표는 분명했다. 바로 ‘모바일 아티스트가 가장 많은 나라 대한민국’을 이루는 것. 어쩌면 자칫 거대한 포부처럼 들리겠지만, 그는 결코 허황된 꿈이 아니라고 말한다.
“요즘 BTS(방탄소년단)를 비롯해 가수들의 한류 열풍이 대단하잖아요. 사실 우리나라처럼 동네마다 곳곳에 노래방이 즐비한 나라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일상에 스며든 예술이 결국 거대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고 봐요. 노래방에서 노래하듯 모바일을 통해 손쉽게 미술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말하는 우리 동네 가수처럼, 우리 모두 저마다 작은 예술가가 되는 거죠. 특히 나이가 들수록 가슴속 예술 감수성을 깨우고 자유롭게 표현해야 삶이 풍요로워져요. 많은 중장년이 모바일 아트에 관심을 갖고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중에도 그의 손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20초 남짓한 짤막한 순간에도 무언가를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시간을 무위(無爲)로 흘려보낸 기자가 이유를 묻자 그 또한 목표라 답한다. 어딜 가든 획 하나라도 긋고 오는 게 목표라고. 그 말을 들으니 수많은 획이 켜켜이 모여 언젠가 미술계에 큰 획을 긋게 될 정병길 씨의 모습이 더 선명히 그려졌다. 문제는 시간. 하지만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조급함이 없었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아직 인생은 늦지 않았으니까.
“모지스 할머니로 잘 알려진 미국의 국민화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75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곤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내놓은 작품만 1600점이 넘는다고 해요. 그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렸다고 하고요. 그분의 삶은 제게도 큰 영감과 희망을 줍니다. 제가 힘을 얻었던 모지스 할머니의 말을 독자분들께 공유하고 싶네요. 여러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일본의 고령자들이 갈 곳이 없어 시세의 70% 수준으로 거래되는 ‘사고물건’으로 몰리는 반면, 올해 도쿄 신축 아파트 가격은 1억 엔을 넘어서며 ‘억션’(억 엔대의 맨션 줄임말)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자살, 타살, 고독사가 발생한 집을 ‘사고물건’이라고 부른다. 사고물건은 일본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다. ‘엄청 좋은 집이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에 나왔는데 알고 보니 사연이 있었다’는 클리셰가 유명하다.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거주를 피하기 때문에 보통 시세보다 30~70%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된다. 일본에서 사망 후 이틀이 지나도 발견되지 않은 사람은 연간 3만 명에 이른다. 일본에서는 고독사가 부동산 시장 가격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꼽힐 정도로 사회적 이슈다.
저렴해야 팔리는 사고물건
최근 사고물건 중개 사이트가 많아지고 있다. 사고물건으로 입주하고자 하는 사람도 늘었지만, 가족·친족이 고독사한 주택 거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하는 집주인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고물건 정보 공개 사이트의 원조는 ‘오오시마랜드’다. 오오시마 테루 씨가 2005년 직접 빈집을 조사하러 다니며 들은 내용을 작성하면서 시작된 이 사이트는 이제 제보를 통해 외국의 사고물건 주택까지 표시하고 있다. 이런 사이트가 생겨나는 건 주택 매입자나 임차인과의 계약 분쟁을 막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택지건물거래업법’을 통해 입주 희망자에게 해당 주택에 대한 물리적·심리적 결함을 반드시 고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고지 지침이 없어, 이를 숨기고 거래했다가 나중에 알게 된 입주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빈번하다. 2021년 국토교통성은 사고물건 고지 범위에 대한 지침안을 정리했다. 중개업자는 3년간 매입자·임차인에게 사고물건이라는 점을 알려야 하지만, 자연사나 일상생활에서의 사고사 등으로 인한 고독사라면 알리지 않아도 된다.
사고물건 세입자는 고령자?
사고물건의 정보가 오픈되기 시작하자 1인 고령가구는 집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혼자 살다 고독사를 했는데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으면 그 집은 사고물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 임대주택관리협회 조사에 따르면 집주인의 80%는 고령자 입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한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25%는 입주를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사고물건에서 거주하려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 사고물건에 입주하고자 하는 이들은 대개 고령자, 외국인 근로자, 젊은 독신가구 등이다. 집에서 발생한 사고보다 재정적인 할인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인한 빈집 증가가 사고물건 거래 증가로 이어지자 요코하마의 부동산 회사 마크스는 2019년 4월 사고물건 전문 중개 사이트를 열었다. ‘조부쓰(成佛) 부동산’은 사고물건이 어떤 사정으로 빈집이 되었는지 밝히다가 2020년 11월부터는 사고물건을 매입한 뒤 리모델링해 되파는 사업도 시작했다. 또한 거래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충분한 청소·소독 등이 되었다는 ‘조부쓰 인정서’를 발행한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맨션
반면 일본 맨션(일본에서 아파트를 부르는 말)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분양된 수도권 신축 아파트 평균값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5% 비싼 6476만 엔(약 6억 8000만 원)을 기록했다. 도쿄 도심인 23구만 보면 8300만 엔(약 8억 7000만 원)을 넘는다.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2021년 수도권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은 2000년 무렵 일본의 버블경제 정점기 수준을 웃돌았다.
가격 상승세는 오사카, 후쿠오카 등의 지방 주요 도시 신축 아파트와 도심 구축 아파트로도 확산되고 있다. 도쿄만(灣) 지역의 구축 아파트 가격은 2년 동안 평균 20%가 올랐다. 2012년 아베노믹스 이후 2020년까지 8년 동안 신축 가격이 약 25.4% 올랐다는 걸 생각하면 구축 가격 상승세는 무척 빠른 편이다.
버블경제의 붕괴로 부동산 하락을 겪은 일본에서 부동산은 ‘값이 떨어지는 물건’이지 투자의 대상이 아니다. 준공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이어지다가 30년이 넘어야 재건축 기대심리로 인해 떨어지던 집값이 반등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주택대출 금리는 변동금리 기준 0.5% 수준으로 저렴하지만, 그만큼 대출 심사가 무척 까다로워 아무나 받을 수 없었다. 여차저차 해서 대출을 받았다 하더라도 집값은 계속 떨어지는데 30년 동안 대출금을 갚아야 하니, 시세 차익으로 대출 상환을 계획하기도 어렵다. 결국 결혼, 출산, 은퇴 등 어떤 큰 전환점이 있을 때에야 집을 구매하는데, 최근 일본 은행의 저금리 정책으로 대출이 쉬워지면서 맞벌이 부부의 주택 구입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노인복지센터(관장 희유스님)은 지난달 26일(금), 30일(화) 양일간 한가위를 맞이해 저소득 어르신 차례상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번 프로그램은 추석 차례상 장보기 비용을 지원하고, 함께 장을 보러 나감으로써 명절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고 참여 만족도를 높이고자 기획됐다. 지역사회 후원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 어르신들이 함께 조를 꾸려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의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시키는 기회도 제공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KT 사랑의 봉사단’이 함께 하며 의미를 더했다. KT 사랑의 봉사단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실시하는 임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7월 말 취약계층 어르신들을 위해 300만 원 상당의 광장시장 상품권을 지원한 바 있다.
프로그램은 직접 차례상을 차리는 어르신 중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20명을 선정해 광장시장 상품권을 지원하고, 우선 선발된 장보기에 능숙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시장에 가서 직접 장을 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측은 “봉사자와 어르신이 한 팀이 되어 물건을 정리하고 자유롭게 장을 보는 과정에서 정서적 지지까지 제공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추석 명절이 지난 뒤 사후 모임을 가지면서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소감을 함께 나눌 예정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요즘 물가가 비싸서 금전적으로 부담이 됐는데,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좋은 마음을 전달해줘 너무 감사하다”, “혼자 장을 보는 것보다 같이 시장에 오니 화기애애한 명절 분위기를 미리 느끼고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며 소감을 전했다.
관장 희유스님은 “물가가 오르며 명절 차례상 준비에 부담을 느끼는 어르신들께도, 홀로 준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어르신들께도 이번 프로그램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지역사회와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간 프로그램인 만큼 상생과 나눔의 의미가 다가오는 추석까지 잘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의 독신가구가 늘어나면서 ‘유품 정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물건을 가족이 아닌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효율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이들이 주로 유품 정리 전문가를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야시 상회(林商会)가 실시한 ‘유품 정리 전문가에게 의뢰할 경우 중점적으로 받고 싶은 지원’을 주제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4%는 ‘유품 정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답했다.
A씨(50대 여성)는 “유족들은 여러 추억이 있으므로, 유품 정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으며, B씨(50대 남성)는 “자녀들이 타지에 살기 때문에 유품 정리를 하려 숙박을 하며 지낼 것을 생각하면 유품 정리사가 오는 게 낫다”고 말했다.
또한 정리할 물건이 많아 전문가가 효율적으로 처리해주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있었다.
응답자들이 유품 정리사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싶은 1위는 “필요 없는 물품 처리”였다.
이어 2위는 “유품과 필요 없는 물품을 구분하는 것”, 3위는 “필요 없는 물품 판매”, 4위는 “대형 가구·가전 폐기”, 5위는 “귀중품과 중요 서류 찾기” 등이 차지했다.
1~4위의 항목을 보면 주로 물품 처리에 관련된 것이 많았다. 유족들은 남은 물건의 필요성을 냉정하게 결정하기 어렵고, 물품을 버린다는 생각을 할 수 없어 중고 판매 등도 쉽지 않다.
따라서 유품 정리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필요한 물건과 남겨야 할 물건을 분리하고 판매 가능한 것은 팔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리는 과정을 맡기고자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대형 가구나 가전은 처리하는 데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대부분 유족들이 일과 유품 정리를 병행할 것을 고려하면 유품 정리사가 처리해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5위를 차지한 것은 중요 서류를 찾는 것인데, 이유로는 “본인이 중요 서류를 둔 장소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와 “가족이 중요한 서류인지 모를 것을 대비해 알려주었으면 해서”라는 이유가 있었다. 특히 유산 상속과 관련한 서류는 자칫 가족 간 싸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물론 “요금이 비쌀 것 같다”, “고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싶다”, “마음을 담아 직접 정리하며 추모하고 싶다”는 이유로 유품 정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도 있었다.
하야시 상회는 “요즘은 ‘종활’(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활동)을 통해 생전 정리를 하는 사람도 늘어 유품 정리사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면서도 “‘실제 유품 정리를 해보니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는 경험자들도 많은 만큼, 전문가에게 유품 정리를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