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파리 피카소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다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1951년에 그렸다는 과 다시 만났다. 순간 20세기 거장의 작품을 보며 왠지 씁쓸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필자의 국적 때문은 아니었다. 이념의 덫에 걸린 예술 문화 작품을 다시 보는 듯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원로 서양화가 김병기(金秉騏
스포츠 올드 팬들에게 우리나라 축구 선수 계보를 살펴보라고 하면 차범근과 함께 빠뜨리지 않고 등장할 인물이 있다. 스포츠 올드 팬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한국 축구 선수 계보는 일제 강점기 유일하게 올림픽(1936년 베를린 대회)에 출전한 김용식을 첫머리로 ‘아시아의 황금 다리’ 최정민에 이어 이번 호의 주인공인 이회택(李會澤)을 거쳐 차범근 그리고
1976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노신사가 신문에 난 부음을 보고 빈소가 마련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대한민국 초대 공보처장을 지낸 이철원 박사였다. 그는 아버지 생전에 신세를 많이 지었다며 이를 잊지 못하여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어릴 때 우리 형제들에게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손우현 한
‘포니 개발 프로젝트’ 때도 최전방에서 활약했던 이충구(李忠九·70) 서울대학교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지능형 자동차플랫폼센터장(前 현대·기아자동차 통합연구 개발본부 사장)은 자동차업계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현대자동차 총 35종이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포니 생산 40돌이 되는 12월을 맞아 이 센터장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권택명(한국펄벅재단 이사, 시인)
애송시 을 쓴 故 청마 유치환 시인은 그의 시 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쓰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그 행복을 넘어서는 것이 사랑하는 것, 즉 사랑을 주는 것이라는 시인의 표현은 시적 수사(修辭)이고 역설적 표현이지만 한
현대자동차 ‘포니(Pony)’가 1975년 12월 첫선을 보인 지 올해로 꼭 40년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국산 고유 모델 포니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소형차 중심으로 바꾸고 마이카 시대를 열었으며, 단순한 자동차를 넘어 한국 공업화의 상징이 됐다. 많은 국민들에게 ‘생애 첫 차’로 추억되는 포니를 더듬어 본다.
글 유충현
자료를 고르려 단골 서점에 들렀다가 교양서적 코너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분석하고 설명한 책들이 너무 많아서다. 어떤 책은 남자는 머물고 싶은데 여자는 떠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책은 남자는 화성에서 왔는데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한다. 남자는 착각하고 여자는 고민한다는 책도 있고, 놀랍게도 남자는 발레하는데 여자는 권투한다는 책마저
서의호(徐義鎬·63) 교수(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는 ‘무즙파동’을 겪은 당사자다. 현재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당시 수험생으로서, 또 지금의 대학교수로서 그는 50년 전과 오늘날의 입시환경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했다.글 유충현 기자 lamuziq@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이게 정
‘난 왜 이런 입시지옥에 태어났을까’. 수능의 달이 돌아오면 수험생들이 해봤을 법한 푸념이다. 그런데 50년 전에도 치열한 입시경쟁이 있었다. 게다가 피 말리는 수험생활의 당사자는 초등학생이었다. 11월을 맞아 입시파동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무즙파동’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 입시철을 살펴본다.글 유충현 기자 lamuziq@etoday.co
2010년 발간된 에는 김일(金一)과 김기수가 별도의 항목으로 실려 있다.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총본산인 대한체육회의 역사서에 프로 선수가 포함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1980년대 들어 프로화가 된 야구와 축구 등의 국제 대회에 출전한 프로 선수들 이름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두 스포츠 스타가 활동한 시기는 1960년대이고 이때는 아마추어리즘이 철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