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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정착 성공사례(6)] “복분자 농사도 경영 마인드 없으면 안돼요”
-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결행해야만 했다. 고향 마을로 돌아왔지만 시내에 거처를 두고 출퇴근하는 우리는 어른들의 눈에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적응기를 거치고 복분자 농사를 지으며 어른들과 소통을 해갔다. 이젠 시골생활의 불편함도 즐길 수 있는 작은 여유가 생겼다. ◇3년의 준비, 2년의 시내생활로 연착륙 = 요즘 언론에서 귀농귀촌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노후대책 또는 새로운 사업으로 농업을 선택하는 등 귀농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예전에는 도시의 삶이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인터넷과 다양한 정보를 통해 농촌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편리한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떠나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도 편리한 귀농을 결심했지만 많은 망설임과 걱정에 선뜻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귀농을 꿈꾸며 머릿속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여러 채의 집을 짓기도, 부수기도 했다. 어떤 농사를 지을 것 인지, 시골에서의 정착은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며 귀농교육을 하는 곳을 찾아 강의도 듣고, 자료도 찾아 읽으며 준비한 기간만 3년이었다. 나름 귀농공부를 하고 결정을 내린 시기는 2009년 2월. 큰아이가 고3, 작은아이는 중3이었다. 주변에서는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하려고 시골로 가려는지 모르겠다며 반대했고, 아이들도 크게 반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귀농을 하는 게 옳다는 생각에 고3인 큰아이만 외할머니께 남겨두고 고향인 정읍으로 내려왔다. 어린 시절 시골집을 떠나 도시에서 살면서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선물꾸러미를 들고 찾던 고향 작은 마을로의 귀농은 가족 모두에게 포근한 안식처 같은 느낌보다는 불편하고 어렵고 힘든 공간과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선은 정읍 시내에 작은 전셋집을 마련했다. 연착륙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우리 부부는 시골마을로 출퇴근을 하며 주변도 익히고, 농사일도 배우고, 농업기술센터에 다니며 교육도 열심히 받았다. 일년 동안 서툰 솜씨로 고추농사를 조금 지으며 얻은 수익은 도시에서의 한 달 월급도 되지 않은 적은 금액이었다. 그저 헛웃음만이 나올 뿐이었다. 현지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현실은 책으로 보고 교육센터에서 몇 시간씩 강의 듣는 것과는 다른 부분이 참 많았다. 관행으로 농사를 지어온 시골 어른들과의 소통은 참 어려운 문제였다. 아무리 좋은 농법이라 해도 어르신들의 경험과 관행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설명도 해 보았지만 교육으로 배운 다양한 농법과 관행농법의 차이점을 좁히는 것은 가장 큰 어려움 일 뿐만 아니라 넘기 힘든 벽과도 같았다. 시내에서 아이학교 보내고 8시쯤 시골마을로 들어오는 우리부부를 보며 “무슨 일을 해가 중천에 뜬 뒤”에 시작하느냐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저녁 무렵 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일을 하다가 말고 간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새벽녘 동틀 때 나와 논과 밭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 종일 들에서 일하다 해가 지면 고단한 몸을 눕히는 시골 어른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게으르기 이를 때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수시로 교육이 있다며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도대체 뭘 한다는 것인지…”, “뭔 교육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받는다는 것인지…”라 여기는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저녁 무렵 마음에 맞는 분과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으로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조언을 듣고 방향을 조금씩 수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홍보·판로 걱정 없고 2차 가공 쉬운 복분자 선택 = 귀농을 계획하며 여러 가지 고려할 문제들이 많지만 어느 곳에서 어떤 작물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1년 동안 교육과 견학을 반복하며 우리는 지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작물인 오디와 복분자를 선택했다. 복분자라는 작물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지역의 특산물, 지역의 브랜드를 선택한 것이었다. 지역에서 홍보도 많이 해 주고, 판로를 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또한 재배방법이나 정보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과 2차 가공 상품으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것이었다. 시골생활을 하면 생활비가 적게 든다고 생각했다. 물론 도시보다는 적게 들어간다. 그래도 꼭 들어가야 하는 고정비용이 있는데 농사로만 그 비용을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귀농이나 귀촌, 전원생활을 하려면 무조건 꼭 필요한 것은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택도 있어야 하고, 농지도 있어야 하고, 농기계도 구입해야 하고, 농사 운영비도 있어야 하고 더군다나 꼭 필요한 생활비, 아이들 학비 등. 귀농 후 2년차. 교육에서 듣고 배운 대로 우선 가공공장을 짓기로 했다. 시골에서는 땅의 분류가 참 복잡하다는 것을 알았다. 눈으로 보기에는 논인데 토지대장에는 대지, 전, 답 등으로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많고, 실제 면적과 서류상의 면적이 크게 다를 뿐 아니라 대지가 아닌 경우 건물을 짓고자 할 때 형질변경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비용지출 등 가공공장 계획에서 착수까지 6개월이라는 시간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귀농자금? 세상엔 공짜가 없다 = 정부에서 귀농자금을 지원해 준다는 이야기가 있어 귀농자금을 문의해 보았다. 정부 귀농자금은 선착순이 아니라 평가제이므로 선정과정과 수급이 참 어려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조건도 너무나 까다로울 뿐 아니라 지원 자금 또한 저리로 해 주는 융자였다. 그것도 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지원 자금을 받기 위해 준비한 서류만도 그야말로 한 보따리였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4월 드디어 가공공장을 짓기 위한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가공공장을 준비하는 중간 중간 오디밭, 복분자밭도 조성하고 정신없이 달리고 또 달린 시간이었다. 교육을 받고 가공공장을 짓고 여러 가지 정착을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소소한 일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교육에서 배운 대로 블로그를 통해 기록해 나갔다. 우리를 알리기 위한 작은 소통으로 시작한 블로그는 시골에서 좌충우돌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달하며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많은 분들을 알게 됐고 생활의 활력도 돼 주었을 뿐 아니라 직접 생산, 가공한 제품을 처음으로 출시했을 때 아낌없는 응원과 함께 구입을 해주는 소중한 고객이 돼 주었다. 도시에서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인터넷과 SNS는 꼭 배우기를 권한다. 농산물을 가공하고 또 직거래 하지 않으면 힘들게 농사 지어도 손에 쥐는 돈이 적다. 그래서 어떻게 파느냐가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이다.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홍보와 SNS는 반드시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귀농은 3년을 준비하고, 수입 없이 3년을 견딜 수 있어야 성공한다”’는 얘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귀농 후 1년은 교육으로, 2년째는 가공공장 짓는 일로, 3년째는 보금자리인 집을 완성한 것으로 완전한 귀농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가슴 뿌듯한 첫 제품도 출시됐다. 홈페이지를 오픈하고, 지마켓, 옥션 등 오픈마켓에 입점하면서 본격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계획, 실행해 갔다. 다양한 교육과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정보를 배웠다. 기존 농민들은 그저 생산자로서 충실하면 되었지만 사회가 바뀌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1차 농산물 또한 단순 재배, 생산이 아니라 재배, 생산, 가공, 유통, 판매, 기획하고 책임까지 져야 하는 요즘 제품을 디자인 하는 경영 마인드가 없이는 농촌에서 살아남기는 힘들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느꼈다. 우리 부부도 블로그뿐 아니라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를 시작했다. 어쩌면 도시에서 평범한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나 주부들이 굳이 몰라도 되는 부분까지 늦은 밤에도 눈 비비고 앉아 배우고 챙겼다. 농사도 사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악착같이 공부했다. 매일같이 사진을 찍고 기록하며 끊임 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스폰지처럼 받아들이며 실천해 나갔다. 10가지를 배우면 꼭 한 가지라도 실천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토론을 했다. 그러다 부부간에 큰 다툼도 있었지만. ◇정신없이 달려 온 4년, 이젠 막걸리 좋아하는 촌부 = 그렇지만 힘들어도 함께 이겨나가야 하는 과정을 거치며 살다보니 이제는 귀농을 생각하는 많은 분들이 농장을 찾아와 함께 공유하고 토론도 하게 됐다. 귀농 후 4년. 어느덧 즐겨하던 와인보다는 막걸리가 더 좋아졌다.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의 건물보다는 눈뜨면 마주하는 높은 산이 더 정겨워졌고 먼 길 찾아와 주시는 손님이 너무나 반갑다. 아이들 성화에도 절대 반대를 고수하며 키우지 못하게 했던 동물에게도 친구인 듯 다정히 말을 건네게 되었고 논으로, 밭으로 장화신고 뛰어 다니며 간섭도 하고 신기해하고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게 되었고 시골생활의 불편함도 즐길 수 있는 작은 여유가 생겼다. 앞으로 시골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뛰면 행복한 일이 가득할 것이라는 희망을 4년이란 시간이 선물해 줬다. 만약 귀농을 꿈꾼다면 절대 대단하고 거창한 성공 비결에 한눈팔지 말고 현재에서 조금 다르게, 지금보다 조금 낫게 그렇게 천천히 시골생활에 적응해 가다 보면 작지만 강한 농부가 될 수 있다. ·귀농 전 거주 지역: 인천 ·귀농 전 직업: 출판업 ·귀농 결심동기: 농업에 대한 비전 ·귀농 선택작목: 복분자, 오디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없음 ·귀농연도: 2009년 ·귀농시 나이: 43 ·귀농지 선택사유: 고향 마을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귀농 초기자금: 없음 ·현재 영농규모: 없음 ·연간 수익: 2012년 1억7000만 원 / 2013년 상반기 1억 5000만 원
- 2014-03-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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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인생] “눈높이를 낮추면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있어요”
- “인생이 열 배는 더 재밌어진 것 같아요.” 이춘계 씨는 지금 택시기사다. 하지만 그의 지난 경력은 삼성전관(현 삼성SDI)에서 부장, 삼성SDS에서는 금융개발팀 팀장, 그리고 삼성에서의 마지막 경력을 삼성SDS의 협력사인 화이넥스의 CEO로 현역을 마친 소위 삼성맨, 그것도 아주 뼈가 굵은 삼성맨이었다. 자신이 택시기사임을 밝히는 그의 목소리는 밝고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아주 시원하게 자신이 하는 일이 재밌다고 말했다. 1953년 생, 서울대 출신 삼성맨, 올해로 예순 두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와 꾸준하게 쌓아 올린 탄탄한 경력을 가진 이 남자가 택시기사를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이춘계 씨는 30년에 걸친 삼성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2009년 1월 1일부터 백수 생활을 시작했다. 항상 시간에 쫓기던 생활만 겪다가 한가롭게 시간을 낚는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게 되니 너무도 좋았다. 그러나 유유자적도 한 두 달이 지나 3개월이 되니 지루함으로 변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백수도 하루 이틀이지… 인생을 다시 시작해보자” “저는 사범대 물리교육과를 나왔어요. 그런데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하는 바람에 한 번도 교사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교사를 해보자, 싶어서 공부를 했죠. 그런데 교장을 하는 친구에게 ‘내가 기간제 교사로 과학 선생을 할 수 없겠느냐’ 물어봤더니 이 친구가 단칼에 자르는 거예요. 친구는 ‘너가 하는 얘기는 알겠고 인정한다, 그러나 요즘 학교 풍토가 기간제 교사들도 다 젊은 교사들만 뽑는다. 학교의 소비자는 학생이잖느냐. 이 학생들이 나이 든 교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일 없이 집에서 지내던 이 씨. 그러던 어느 날 2009년 5월 1일 오후 9시 KBS뉴스에 시선을 확 끄는 뉴스가 등장했다. 외국인관광택시(International Taxi) 발대식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택시기사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었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이 년 500만 명에 달하고 그 중 130만 명이 택시를 이용하는데 가장 불편사항이 언어 소통 문제라고 한다. 영어 또는 일어 소통이 가능한 운전자를 선발하여 외국인관광택시를 운행하게 함으로써 언어소통을 원활히 하고 부당요금 과속난폭운전을 근절하여 외국인들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고한다는 취지였다. 택시기사로의 첫걸음, 녹록치 않았다 이 씨는 삼성에서 근무할 때 일본NEC와 교류가 많아 일본어는 어느 정도 가능했기에 딱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날 외국인관광택시 운전 자격 취득 절차를 물어 보았다. 3개월 이상 영업용 택시 운전 경력이 있어야 하고 서울시에서 위탁한 회사에서 실시하는 영어 또는 일어 구술 시험과 인성 면접에 합격하면 된다고 했다. 2009년 7월 1일, 이 씨는 드디어 6개월간의 백수 생활을 마감하고 택시기사로서의 인생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인사가 잘 안 나왔다. 그래서 매일 운행 시작하기 전 10번쯤 큰 목소리로 구령 조정을 했다. 이 씨는 택시기사가 수입에 비해 근무여건이 너무 열악하다는 걸 인정했다. ‘항상 사고위험을 안고 근무한다(Dangerous). 매주 주야간 교대 근무로 밤과 낮이 바뀌는 생활에 신체가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Difficult). 가끔 술 취한 손님이 주정부리거나 토하거나 하면 대책이 없다(Dirty)’는 점에서 택시기사는 3D 업종이었다. “서울 250여 개 택시회사에서 운영하는 차량대수가 23,000대 정도 됩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택시기사 부족으로 5~10%는 가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근무여건이 이렇게 열악한데 누가 하려고 할까요? 신규로 택시운전자가 100명이 취업을 하면 한 달 이내에 50명이 퇴직하고 3개월까지 다시 25명이 퇴직합니다. 택시기사로 입문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택시운전을 계속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지난해 개인택시로 전환하면서 5년째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 눈높이를 조금 낮추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기로 한 결과다. “‘가만히 놀고 있으면 100만 원이 거저 생기나? 150만 원도 황송하다.’ 이 정도로 낮춰야 합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저희 집사람도 같은 생각입니다.” “150만 원도 황송하다” 이 씨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얻게 된 3D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 즐겁다(Delightful). 택시기사는 상사나 부하 직원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없다. 혼자서 일하기 때문이다. 고객을 만들고 유지시키는데 힘들 일이 없다. 수주 매출 수금이 대부분 한 시간 이내 이루어진다. 보험설계사 같은 경우 한 사람의 고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이 만나야 하고 공을 들여야 하는지 비교해 보라. 만나는 것 차체를 부담스러워하고 다른 약속 있다고 핑계 대는 일이 다반사 아닌가. 두 번째 역동적(Dynamic)이다. 대부분 회사 생활이 사무실내 몇 평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택시기사가 일하는 공간은 서울시 전체 면적 625평방킬로미터이다. 한 밤중에 예술작품과도 같은 찬란한 한강 다리 조명을 바라보며 달리는 올림픽대로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라는 게 이 씨의 설명이었다. 세 번째 자기개발(Developable)이다. 택시에서는 일하면서 외국어 공부가 가능하다. 새벽에 중국어 카세트를 들으며 홍대 앞 삼거리포차에 가면 밤새 술 마시고 집에 가는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이 탄다. 머리가 허연 택시기사가 중국어 공부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자기는 밤새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데 노인이 택시로 일을 하며 중국어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이제부터 각오를 새로이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일도 있었다. 즐길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얻은 수많은 즐거움들 “월 소득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면 택시기사도 할 만 합니다. 단순 노동이라 골치 아플 일이 없습니다. 건설 노동자처럼 육체적으로 힘든 일도 아닙니다. 손님이 내릴 때마다 택시요금 계산을 하니 치매 예방도 됩니다. 여러 곳을 다니며 길을 많이 알게 됩니다. 여러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인생을 배우게 되는 건 덤입니다. 회사택시를 무사고 3년 이상 하게 되면 개인택시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되죠. 개인택시는 이틀을 일하고 하루를 쉽니다.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거죠. 정년도 없습니다. 건강이 허용한다면 80세까지도 할 수 있어요. 나이가 들어도 일이 있는 게 좋은 겁니다.” 요즘 댄스스포츠를 부인과 함께 복지센타에서 배우고 있다는 그는 아내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 자부했다. “부부는 공동의 취미생활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부가 같이 댄스스포츠를 다니며 취미를 즐기니까, 스킨십과 대화가 잦아지고 눈을 마주치니까 자연스레 서로 더 의지하게 되데요. 부부 금슬 비결은 같이 삶을 즐기는데 있는 것 같아요.” 이 씨는 선뜻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시니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전했다. “100세 시대의 준비가 필요하잖아요? 60세 이후의 삶에 대하여 은퇴 후 무위도식한다고 하면 너무 시간이 많이 남습니다. 뭔가를 해야 하죠. 그래서 후회하지 않도록 즐기는 일을 하는 게 좋아요. 제가 삼성에 있을 때 일을 좋아는 했지만 즐긴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지금 택시기사 일은 즐기고 있어요.” ‘知者不如好者(지자불여호자) 好者不如樂者(호자불여락자) 아무리 많이 아는자라 할지라도 그것을 좋아하는 자만 같지 못하고 아무리 좋아하는 자라 할지라도 그것을 즐기는 자를 따를 수 없다’라는 논어 옹야편 구절을 직접 써 주면서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야말로 노후를 즐기는 지혜라고 그는 강조했다. 택시기사 이춘계 씨가 20년이 지나면 82세가 된다. 그때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그땐 댄스스포츠를 전파하러 다녀야죠. 또 한편으로는 어릴 적 꿈인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겠죠. 아마도 기업이나 사람들에게 제 인생을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러 강사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매력적이지 않나요. 이게 자유로운 인생 3막 아닐까요?”(웃음)
- 2014-03-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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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정착 성공사례(5)] “꾸지뽕 키우면서 건강도 인생도 꽃 피웠어요”
- 5년 동안의 병상생활을 굳건히 지켜주던 아내마저 인공심장판막 이식술과 부정맥 확장 수술을 받았다. 몸을 추스르기 위해 찾아온 순창의 월곡마을. 농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지역 주민들과 더불어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건강도 일도 찾은 당당한 농사꾼이 됐다.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려고 온 월곡마을 = 내 고향은 전북 정읍이다. 어렸을 적 도시로 나가 인천에서 살다가 건강이 좋지않아 산 좋고, 물 좋은 청정지역인 이곳 순창으로 7년 전에 이사를 왔다. 그 때 당시에는 몸이 너무 아파 힘든 농사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저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이나 하려는 생각이었다. 마침 처갓집이 순창 팔덕면 월곡리이기에 이곳 월곡마을로 오게 됐다. 처음 이곳에 올 때, 땅 640평을 구입해 집을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처음 집을 지으려 할 때부터 쉽지는 않았다. 마을에서는 이런 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집의 위치가 마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 상류에 살면서 축산업을 할까봐서 집을 못 짓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절대 축산업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집 문제로 마을에서는 임시 총회가 열렸고 찬반 투표까지 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5대 5라고 전해 들었지만 그래도 집은 계속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과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던 그때 돌파구가 된 계기가 있었다. 당시에 월곡교회 목사님이 팔덕면 독거노인 70분에게 반찬도시락을 배달하고 계셨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나누어 드리는 일을 맡아서 하게 됐다. 집을 지으면서도 봉사활동 하는 날에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참여했다. 그런 노력 때문이었는지 집을 짓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집 짓는 일이 거의 마무리 될 무렵은 가을 추수 때가 다 되어서였다. 아스팔트 도로가에다 벼를 말릴 때였다. 오가다보니 다 말린 벼를 자루에 담는 일도 어른들에게는 힘든 일로 여겨졌다. 그래서 그 일이 보일 때마다 가서 도와 드리게 됐다. 아무런 의도도 없이 그냥 기쁜 마음으로 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의 인심이 얼마나 좋은지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추수가 끝나고 나니 그분들이 제일 먼저 쌀가마니를 우리 집으로 가지고 오신 것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던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은총 같은 선물이었다. 40킬로그램의 쌀을 1포씩 가져다 주셨는데 집안에는 일곱 포대가 쌓였다. 그 쌀은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 가족이 1년 동안 충분히 먹을 식량이었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던 기억들이다. ◇주민들과 함께 살다보니 ‘성공한 귀농’= 이런 일이 있으면서 내가 가진 기술을 통해 보일러도 무상으로 고쳐드리고 차 량봉사도 시작했다. 말이 봉사지 그리 거창한 일도 아니었다. 순창에는 5일마다 장이 서는데 차가 없는 분들을 위해 장터까지 모셔다 드리고 장터에서 점심도 같이 사 먹었다. 그럴 때마다 잔잔한 정담들을 나누며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또한 마을에 농악단이 있었는데 농악에 취미를 붙이면서 지역 주민들과 더욱 가까워지게 됐다. 행사가 있으면 함께 즐거워하면서 마음이 통하게 된 것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더욱 더 합심하려고 노력했다. 이듬해 마을 농가에서 수확한 오디와 복분자를 서울과 인천에 사는 지인들에게 직거래로 팔아드렸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나는 대부분의 농산물을 직거래로 판매해 드렸는데 고사리와 잡곡, 고추 등은 직거래 고객이 많이 늘어나 지금은 인기가 아주 좋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이미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던 사람들처럼 너무나 친숙한 마을 주민이 됐다. 이렇게 마을 분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우리 부부의 건강도 좋아졌고, 살림살이도 늘어나면서 이제 당당한 농사꾼이 됐다. 꾸지뽕 묘목을 재배해 많은 소득도 올렸고 3000평이 넘는 부지에 꾸지뽕 농장을 만들었으며 이제는 꾸지뽕나무를 분재와 관상용으로도 만들어 농가 부업으로 활용 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는 꾸지뽕 가공식품 개발에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할 계획이다. 더불어 우리 농장을 관광농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가 건강을 되찾은 것을 꼽을 수 있다. 지금은 이곳에 이사 오길 참 잘 했다고 부부가 얘기한다. 농가소득도 늘어나 지금은 연간 6000만 원 정도 소득을 올릴 수 있어 행복한 귀농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던지 우리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꿈꾸고 있다. 그 중에 여섯 가정(17명)이 이곳 순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우리 자녀들의 가정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가는데 자연스럽게 홈스테이를 하게 된 이유다.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머무는 동안 귀농 후의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정말 반가운 일은 또 있다. 귀농인들과 함께 마을에 빈집들을 보러 갔을 때 마을 분들이 얼마나 친절을 베풀어 주시는지 모른다. 진심으로 예비 귀농인들을 환영해 주시는 탓에 감동하여 꼭 이 마을에 오고 싶다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살 집들을 현재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순창서 얻은 경험, 귀농인들에게 모두 전할 생각 = 장류의 고장 순창에 이사를 와서 제일 먼저 배우고 싶었던 것은 고추장, 된장, 청국장 만드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마을 할머니들을 집으로 모셔다가 고추장 만드는 방법도 배우고, 장 담그는 방법을 배우면서 어르신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어르신들에게 배운다는 자세로 다가서니 할머니들께서 직접 가르쳐 주시기도 하고, 모르는 부분은 일부러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 가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알려 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전북대학교 식품공학과에서 실시하는 장류 만드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수료하게 됐고, 지금은 아주 맛있는 고추장, 된장, 청국장을 만들 수 있다. 이제는 내 나름의 비법을 레시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도시에 사는 형제들과 교회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상당한 양의 직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도시민들과의 직거래는 여러 가지 농산물을 다 팔수 있으므로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 된다. 정성을 들여 정직하게 거래를 하면 신뢰를 쌓게 되고, 그 신뢰가 소개로 이어져 거래처가 계속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이곳 순창으로 귀농·귀촌 하시는 사람들에게는 고추장, 된장, 청국장 만드는 방법이나 여러 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고 함께 연구하여 순창의 장류사업 발전에 힘을 보태고 지역발전에 적극적으로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며 살 계획이다. 꾸지뽕 농사는 다른 작물에 비해 농가 소득이 많은 반면에 노동력은 적어서 아주 효율적이고 부가가치도 높다. 꾸지뽕나무를 접목하는 기술이나 재배 방법, 판매 방법 개발에 더욱 경주할 생각이다. 꾸지뽕을 첨가한 식품 개발 연구를 통해 부수적 인 농가 소득은 물론 순창 지역 발전에 힘을 보태고 싶다. 이를 위해 그동안 경험한 모든 기술은 순창이 좋아 귀농 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공개할 예정이다. ◇도시에서 살다 왔다고 더 잘 난 것은 없다 = 이런 생각들이 결실을 얻었는지 이번에 또 다른 두 가정이 귀농을 결심하게 되었다. 우리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 귀농이나 귀촌을 하시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스스로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서라는 것이다. 농촌은 지역이 매우 좁아서인지, 아니면 낯설음에서 오는 편견 때문인지 외부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매우 심 하기도 하다. 우선 어떤 사람들인가 하고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타지에서 이사 오는 사람들이 간혹 마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느끼는 것이 지역 주민들과 빠른 시일 내에 가까워져야 좀 더 편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며 정착이 빨라진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지역사회 봉사활동 한두 가지 정도는 같이 해야 할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자율방재단에 가입해 봉사하면서 보람을 얻기도 한다.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지역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고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그들과 소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마음이 통해야 그들과 친해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소통하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저 진심을 다해 도왔고, 진심으로 배우길 원했고, 진심으로 이 마을주민이 되고자 했기에 마을 사람들도 그 진심을 알아주게 되면서 마을 분들 역시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여 주신 것 같다. 진심은 이렇게 통한다. 도시에서 살다 왔다고 마을 주민들보다 더 잘 난 것은 없다. 도시에서 알던 지식이나 생활 방식들은 오히려 이곳에서 쓸모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도시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에게 더 낮은 자세로 배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을 먼저 존중해야 나도 존중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통하는 가장 기본인 것이다. 이런 기본에만 충실 하다보면 빠른 정착의 지름길이 되리라 생각한다. ·귀농 전 거주 지역: 인천 ·귀농 전 직업: 생산직 ·귀농 결심동기: 요양 ·귀농 선택작목: 꾸지뽕 ·귀농귀촌 교육이수: 없음 ·귀농 연도: 2006년 ·귀농시 나이: 55년생 ·귀농지 선택사유: 처가 인근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귀농 초기자금: 1억 ·연간 수익: 6000만원(꾸지뽕 3500만원 이상, 묘목·고사리 등 2500만원) ·향후 계획: 꾸지뽕 가공공장 건축
- 2014-03-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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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수 좋은 날] 2014년 3월 1일 (음력 2월 1일) 띠별·생년별 오늘의 운세
- ◇ 쥐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운기가 불길하여 만사 막힘이 많고 일신이 곤고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흉만이 있지 않으니 침체의 위기를 만날 것이나 호기로 만들 기회가 되는 것이라. 어려운 가운데서 벋어나는 지혜를 발휘하라. 84년생 : 막힘이 많은 기운이니 모든 것을 억지로 하려는 생각을 버려라. 72년생 :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해 보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60년생 : 빈 통이 소리가 요란하듯 일만 분주하고 얻을 것은 힘이 든다. 48년생 : 이동변동의 기운이 요란하나 움직이면 손해만 볼 것이다. ◇ 소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가까운이로 하여 심신을 상할 수 있으니 행동가짐에 조심을 요할 것이다.주고 받는 언사속에 구설이 난무하니 강한 부정은 긍정의 의미를 가지니 잘 알아차려 처리함이 좋다. 85년생 : 친구나 형제간에 반목하는 상이라 의리와 우애를 지키도록 하자. 73년생 : 어떤 일을 남에게 미루지 말고 자신이 확인함이 이득이 크리라. 61년생 : 부부간에 갈등을 신속히 풀어야 일이 제대로 정리될 것이다. 49년생 : 조급함이 일을 망치는 수가 엿보이니 안정하여 일을 도모하라. ◇ 호랑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일에 진척을 얻지 못할 것이니 지난 일에 미련을 두는 것은 다음 일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방법으로 일을 해결하여 좋은 운기를 맞음이 길하니 주의하라. 86년생 : 한밤중에 외출을 삼가야 나쁜 기운에서 이겨나가리라. 74년생 : 버릴건 버리고 잊을건 잊어야 오늘의 위기를 탈출할 수 있으리라 62년생 : 남의 일에 끼여들어 애먹는 수라 눈감고 모른척함이 신상에 좋으리라. 50년생 : 억지로 참여한 일이 금전면에 이익을 가져오니 재수 대길하도다. ◇ 토끼띠총운 금전운 : 상 애정운 : 상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기름진 옥토에서 작물이 잘되듯 일도 좋은 바탕 밑에서 잘되는 것이다.노력하지 않은 가운데에서는 얻어짐도 없을 것이니 좋은 운기를 맞이하여 근면성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87년생 : 용돈이 많이 들어는 오는데 주머니에 구멍난 듯 없어지리니 조심하라. 75년생 : 길을 잃고 헤매는 기운이라 결정할 일은 미루는 것이 좋으리라. 63년생 : 재수 대길하니 주식 투자도 길하며 또한 얻을 것이 많으리라. 51년생 : 때를 잘 읽음이 재수를 열어 감이라. 위축된 기운은 기다림이 좋다. ◇ 용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성급한 결정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수가 생기니 조심하라. 급하게 먹은 떡은 채하기 마련이니 전후 사정을 잘 살피어 행함이 길하게 작용할 것이다. 속단은 금물이니 마음을 자중하라. 76년생 : 진흙 속을 헤매는 운이라 조심성을 살려야 일 진행에 무리가 없으리라. 64년생 : 무리한 투자로 손을 묶으니 자금 융통이 심히 어려워질 것이다. 52년생 : 막힌 자금 사정은 풀리나 무리한 지출을 삼감이 다음 날을 기약하리라. 40년생 : 건강을 돌볼 때다. 특히 감기 몸살로 시작해서 애를 먹을 수라 조심하라. ◇ 뱀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극성스러운 사람이 나타나 애를 먹여도 대접을 잘해 보냄이 길하리라. 백명의 아군보다 한명의 적군이 나를 흉하게 하니, 한사람으로 인해 나의 인격에 금이 갈까 두렵다. 융성히 대접하면 악인이라도 나를 우러러보게 될 것이다. 77년생 :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되어도 조금은 열릴 운이니 밀어붙임이 좋으리라. 65년생 : 서서히 열리는 운세이니 오후부터 좋은 일이 생겨 즐거우리라. 53년생 : 상대에게 대접을 잘하면 큰 이득의 기미가 보이니 놓치지 마라. 41년생 : 골머리 아프다고 생각한 친구라도 푸대접하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 말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상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경사의 별이 나타나니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생기나 겸손을 잃지 마라. 도모하는 일이 있다면 협력자의 도움도 있겠고 많은 재리도 취하게 되니 운기가 더할나위없이 길하다. 자만하는 가운데 길함이 줄어들 수 있으니 자만은 금물이다. 78년생 : 산에 가서 밤도 줍고 토끼도 잡을 운이라 움직여야 일이 된다. 66년생 : 의사소통이 잘 안되면 실마리가 풀리지 않으니 뜻 담은 말이 필요하다. 54년생 : 금전운이 대길하니 서쪽으로 진출하면 경사가 있으리라. 42년생 : 이기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면 좋은 것을 얻으리라. ◇ 양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과욕을 부리는 가운데 흉함이 거하니 지나친 과욕은 금물이다. 많은 것을 탐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기니 조심해서 구하라. 많을 수록 베푸는 미덕이 필요하니 그리하면 더욱 많을 것을 취할 것이다. 79년생 : 금전운이 길하여 생기는 것이 많을 것이나 과욕은 삼가라. 67년생 : 엉뚱한 일로 마음 상할 일이 생기나 좋은 재수로 땜한다. 55년생 : 사람 상대하는 일이 잘 열려 기분 좋은 하루가 되고 재수도 좋으리라. 43년생 : 무리한 욕심만 삼가면 들어오는데 걸림이 없는 기운이다. ◇ 원숭이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꾀이는 일이 많은 날이라 쳐다보지 마라. 구술에 복이 있으니 많은 재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많은 재가 있으나 남을 해롭게 하는 일에는 재앙이 따르니 과욕은 금물이다. 80년생 : 순수한 마음가짐이 운세를 강하게 여는 길이라 마음이 문제로다. 68년생 : 어떤 일에 갈등이 일어나나 받아들이면 그만큼 소득은 있으리라. 56년생 : 입속에 재물이 비치니 나가서 좋은 말을 많이 하면 이익이 크리라. 44년생 :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물 건너가는 것이라 잘 챙김이 화를 면하리라. ◇ 닭띠총운 금전운 : 하 애정운 : 하 건강운 : 중 오늘의 일진은 믿는 도끼에 발등찍히는 운이니 평소에 믿음을 주던 사람을 조심하라.가까운이로인해 구설시비가 발동하여 손재의 우려가 있으니 타인의 감언이설에 동하지 말라.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할 것이니 남과 말을 섞지말고 들어도 못들은 척하라. 81년생 : 수다스러운 말이 구설로 변해 체통 상하는 기운이니 말조심을 하라. 69년생 : 다른 생각으로 일을 대하니 의사 소통에 문제 발생을 조심하라. 57년생 : 막강한 재력이 따르는 기운이니 잘 받아들이면 큰 이득이 있으리라. 45년생 : 화급한 마음을 버리고 느린 걸음으로 가야 편안한 하루를 만들 것이다. ◇ 개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중 희비가 교차하는 일진이라 잠시라도 방심하면 어려움을 당하리라. 곳곳에 함정이 숨어 있으니 발을 잘못 옮겼다 함정에 빠지기 일수이다. 자중하는 가운데 길이 있으니 경거망동 하지 말라. 82년생 : 입으로 한 약속이라도 지키는 것이 도리이고 바로 재수이니라. 70년생 : 밝은 기운에서 점차 어두움으로 향하니 긴장을 풀면 손해가 크리라. 58년생 : 약간의 막힘은 있으나 좋은 기운이니 어려움은 없으리라. 46년생 : 얻음보다는 잃음이 많은 일진이라 단속을 잘함이 손해를 덜 본다. ◇ 돼지띠총운 금전운 : 중 애정운 : 중 건강운 : 상 오늘의 일진은 길함이 들어서니 사정거리에 들어왔을 때 잡아야 잡히는 것이라 거리를 잘 읽어라.맑은 해안으로 길함을 잡지 못하면 흉함이 중중할 것이니 운기만 믿지 말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83년생 : 아무리 갑갑해도 되고 안 되는 일이 때가 있음이라 기다림이 좋다. 71년생 : 어려운 일로 마음이 혼돈 되어 잘못된 결정으로 애먹을 수니 조심하라. 59년생 : 투기성 사행성이 짙은 것을 삼가야 어려움에서 벗어나리라. 47년생 : 재수는 좋아도 생각대로 안 되니 조금 얻는 것으로 만족하라. 출처| 운세사랑(http://www.unselove.net)
- 2014-03-0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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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정착 성공사례(4)] “인생은 계획보다 하루하루 최선 다하며 사는 것”
- 건강 되찾고 자연에 빠져 사는 경북 영덕의 박혜균씨 귀촌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다가 건강 이상으로 이른 귀촌을 했다. 남들과 달리 선택한 귀어(歸魚). 처음엔 힘들었지만 초보어부 남편은 이제 어촌계 대의원 등으로 자리를 잡았고 4시간씩 고생하던 혈액투석도 미뤄지고 있다. 맑은 환경이 주는 귀촌의 혜택을 누리면서 오늘도 우리 부부는 행복하다. ◇말기신부전으로 계획보다 10년 앞당겨 귀농 = 우리 부부는 둘 다 시골 태생이다. 그랬기에 아주 자연스럽게 귀촌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딸의 반대로 계속 도시에 살았다. 그러다가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서 귀촌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의 귀촌 계획은 환갑쯤이었다. 그래서 시골에 헌집도 미리 사서 대충 수리를 해놓고 주말이면 그곳에 가서 지냈다. 마을 분들과의 유대관계도 맺고, 달라진 시골 생활에 미리 적응을 해야 할 필요성도 있어서였다. 물론 주말마다 시골집에 갈 때면 마을 분들께 드릴 작은 음료수도 빠트리지 않고 챙겼고, 그 덕분에 조금씩 마음이 통하게 되니 우리가 없는 주중에는 이웃집에서 우리 집을 가끔 들여다 봐주셨다.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에 벌레가 생기면 방제도 해주셨고, 겨울이면 수도의 동파도 예방해주셨다. 그렇게 주말마다 시골에서 생활한 덕분에 우리는 마을 분들과 친해질 수도 있었고, 그분들도 우리가 하루빨리 마을에 들어오길 원하셨다. 공기가 좋지 않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내가 병에 걸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 건강한 몸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늘 과로를 한다 싶을 정도의 일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말기신부전’이었다. 혈액투석을 받기 위해 손목에 동정맥루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틀마다 병원에 가서 4시간씩이나 피를 걸러낼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까지 하면서 ‘왜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는 결국 배수진을 치기로 하고 우리가 사놓은 시골집을 수리만 한 다음에 이사를 해버렸다. 시골에는 혈액투석병원이 없어 기를 쓰고 투석을 미룰 만큼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이사와 동시에 식이요법과 간단한 운동을 시작했다. 몸이 아파 이른 귀촌을 하게 된 탓에 마을 분들은 ‘우짜노?’를 연발하며 걱정 해주셨다. 우리는 시골에서 살 자금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했기에 둘이서 직접 집을 수리하느라 한 달 동안을 정신없이 보냈다.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지정해주신 나의 첫 투석일이 다가왔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진료를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던지. 검사결과에 따라 선생님께서 투석을 할 것인지를 판단한다고 하셔서 선생님을 뵙는 시간까지 줄곧 긴장을 하고 있어야 했다. 거기에다가 한 달 동안 시골의 맑은 공기 속에 살다가 도시의 병원에 가 있으니 답답하기도 했다. “수치가 조금 좋아졌습니다. 오늘은 투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보름 후에 봅시다.” 그 말은 ‘다 나았습니다!’라는 말처럼 들려, 지난 한 달간 힘들었던 것을 싹 잊게 해주며 ‘역시 시골의 맑은 환경이 보탬이 되는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때부터 남편과 나는 새로운 인생 3막의 시나리오를 다시 검토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인생은 절대로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건강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거였다. 그것이 시골생활에서 내가 터득한 가장 중요한 삶의 지혜로움이었다. ◇좋은 집보다 좋은 이웃이 더 소중하다 = 며칠 전에는 우리보다 1년 늦게 귀촌을 했던 남편의 지인이 결국 도시로 돌아간 다면서 전화를 했다. 마을 사람들의 텃세와 도시에는 없는 해충을 더 이상 이겨내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시골 사람들이 그렇게 텃세를 하는가? 시골 사람들이 그렇게 이기적으로 변했는가? 꽤 괜찮은 귀촌을 했다고 자부하는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텃세나 이기적이었다기보다는 소통의 부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귀촌하기 3년 전까지 주말마다 마을에 와서 귀촌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했다. 그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었고, 아픈 몸을 끌고 귀촌을 했을 때도 마을 사람들은 내 건강을 진심으로 염려해 주셨다. 또한 우리가 살 집을 새로 짓지 않은 것도 마을 사람들과의 융화에 많은 보탬이 됐다. 만약 우리 부부가 애초의 계획대로 거창한 목조 주택을 지어 귀촌을 했다면 어땠을까? 분명히 우리는 마을 사람들과 보이지 않은 괴리감을 안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급작스런 귀촌을 하느라 집을 새로 지을 시간도 돈도 없어 기존의 농가주택을 수리만 한 것도 마을 사람들과 융화되는데 보탬이 됐다. 그래서 ‘좋은 집보다는 좋은 이웃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가 내 귀촌 제1항이 됐다.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돈만 많으면 시골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고 귀촌을 할 것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시골생활은 돈보다는 배려, 협동, 자조, 성실의 생활자세가 더 필요하다’고. 우리는 무조건 먼저 다가갔고, 지나가다가 일을 하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도와드리면서 인사를 빠트리지 않고 했다. 마당에 출몰하는 뱀과 쥐 때문에 몇 번의 곤욕을 치르다가 백구 세 마리를 키우면서 이런 고통에서는 해방이 될 수 있었다. 시골에 살려면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일에 대하여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일을 할 수 있는 기술과 건강한 몸이 더 중요 = 남편은 시골로 들어와서 통발 허가가 딸린 어선 한 척을 구입해 초보어부로 첫발을 디뎠고, 그것이 우리의 생계수단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나의 병원비까지 해결할 만큼의 어획고를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남편은 틈틈이 다른 일도 병행하고 있다. 시골로 귀촌을 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돈이 많아야 시골에서 살 수 있다’는 것에만 연연해 돈을 모으는 일에 올인 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막상 귀촌을 해보니 돈을 모으는 것보다는, 시골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기술과 건강한 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물론 시골생활인만큼 소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기도 하다. 처음에 우리는 집만 구입하고 토지를 구입하지 못한 탓에 농사를 짓는 일은 포기했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마을의 한 어른이 묵히는 밭이라며 농토를 주셔서 밭농사를 조금 짓고 있다. 우리는 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조금이나마 드리기로 하고 그 밭을 받았는데 작년 농사는 대실패라 수확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올해는 마을 분들의 조언에 도움을 받아 도시에 있는 지인들과 채소를 나눠먹을 정도의 수확을 거둘 수 있어 재미있 는 농사를 지은 셈이다. 텃밭에서 물과 퇴비만으로 길러진 채소들이 밥상에 오르는 기쁨은, 어린 시절 밭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먹던 것보다 더 맛있었다. 귀촌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문화생활도 우리가 어릴 때와는 다르게 많이 바뀌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시골에서도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도 누릴 수가 있고, 군청이나 관련 기관에서도 주민들을 위한 문화행사를 정기적으로 해주기에 병원에 가는 일 외에는 그리 큰 불편함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집 앞의 하천둑을 매일 걷고 작으나마 밭을 경작하면서 혈액 투석도 계속 미뤄지고 있어, 갑작스럽고 이른 귀촌을 한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지금 어촌계의 대의원과 청년회의 임원에 선주협회의 회장까지 맡아 마을 일에 아주 열심이다. 마을의 어르신들은 이런 남편에게 ‘마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활기차고 깨끗하고. 차기에 군 의원을 시켜야겠다!’고 하실 정도로 신뢰를 보내주고 계신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과시보다 화합, 이기기보다 지는 연습 필요 = 우리의 귀촌은 이제 2년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딸아이도 방학이나 휴가 때면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데, 이 아이들은 우리 집이 ‘천국 같다’는 말을 곧잘 한다. 마당에는 유실수가 있고, 도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커다란 백구 삼형제도 마당에서 뛰어노는 곳. 현관만 벗어나면 텃밭에서 거둔 채소로 한 끼 식사가 차려지는 집.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으로 싱싱한 물회를 맛볼 수 있는 집. 저녁이면 온 가족이 평상위에 누워서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집. 집을 둘러싼 산에서 내려오는 솔바람을 여한 없이 만끽할 수 있는 집.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가끔 초치는 얘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가끔 마당에 출몰하는 징그러운 뱀 이야기, 여름이면 파리와 모기가 유난히 많다는 이야기, 한 시간에 한대만 다니는 불편한 버스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손사래를 친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는 이곳이 천국 같아요. 우리도 늙으면 꼭 귀촌할 거라고요. 그러려면 지금부터 뭘 준비해야 하나요?” 그렇다. 행복한 귀촌은 준비하는 자에게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행복한 귀촌은 있을 수가 없다. 그대! 행복한 귀촌을 꿈꾸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이렇게 준비하면 될 것이다. 돈보다는 건강을, 과시보다는 화합을, 이기기보다는 지는 연습을, 말보다는 기술을 익히는 것을. 이렇게만 한다면 그대가 꿈꾸는 귀촌은 현실이 될 것이다. · 귀농 전 거주 지역: 경기도 성남 ·귀농 전 직업: SK네트웍스 스마트학생복 지점장 ·귀농 결심동기: 원래 시골출신, 환갑 전에 돌아가고 싶었다 ·귀농 선택작목: 옥수수, 어업(문어, 소라, 붕장어) ·귀농귀촌 교육이수: 실적 없음 ·귀농 연도: 2011년 ·귀농시 나이: 47세 ·귀농지 선택사유: 남편 고향 ·귀농시 영농기반: 없음 ·귀농 초기자금: 땅 구입비용 1억원, 집수리비용 1000만원, 선박 구입비 5000만원 ·연간 수익: 순수익 월 300만 원(어업), 농업은 없음
- 2014-02-28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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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자문단 칼럼]도저히 대화가 안통해요, 뭘 어쩌라구요!-김숙기원장
- [소통의 행복학] 인생 2막을 준비하면서 혹은 인생 후반전을 살아나가면서 겪게 되는 부부 간의 갈등을 서로 이해하고, 부부 사랑과 신뢰를 회복해 행복하고 건강한 시니어 부부가 되자.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부부대화 내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모든 가족의 문제는 대화가 안되는 것에서 생긴다’는 사실의 재확인이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 그동안 대화 자체를 안하고 사니 부부싸움을 해본 적이 없고, 한술 더 떠 남들에게 ‘잉꼬부부’ 소리까지 듣는다는 사람도 있다. 가정마다 속내를 들여다보기 전에는 행복하게 보이는 부부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소극적, 수동적으로 공격하며 정신적으로 괴롭히며 고문한다. 일종의 음성적인 싸움 즉 냉전 상태다. 상대에 대한 비난과 공격, 그리고 좌절감으로 인한 담쌓기 과정의 하나이며 결혼생활을 그냥 잘(?)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이다. 이런 분들은 분노도 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산다’, ‘사는게 다 그렇지요. 다른 방법이 있나요’ 라며 체념이 가져다 준 평화로 위장전술을 편다. 이런 경우, 부부는 거실과 서재에서 따로따로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한다. 대화는 단절된 지 오래고, 서로 드러내놓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한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가정에 대한 소망은 간절하지만 현실은 불만족스러운 경우가 더 많다. 스스로에게 ‘우리 부부,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가슴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 무엇인가? ‘Yes!’라면, 배우자와 의사소통을 잘 하고 있는 사람이다. 배우자를 비롯하여 자녀와 대화가 단절된 상태라면 가정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서서히 불행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의사소통 즉 대화의 부재는 감정의 왜곡을 통해 비극으로 치닫는다는 얘기다. 언제부턴가 자기식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져있으면 부부든, 부모 자식간이든 부정적 감정의 골은 갈수록 깊어가고 죽을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언제나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대화는 사람의 마음과 서로의 관계를 이어주는 연결통로다. 서로에게 쌓이는 부정적인 감정 즉 오해, 불안, 소외감, 억울함 등은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다보면 서로의 입장이나 감정을 이해하고 나와 다름을 수용하게 되기 때문에 지지와 공감을 주고 받으며 윈-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다음은 부부대화에 있어 남편, 아내가 가장 많은 불만을 호소하는 얘기들이다. “아무리 얘기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 얘기하다보면 더 화가 나요!” - 아내 “피곤한 사람 붙잡고 시시콜콜 얘기하는데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해달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뭘 어쩌라구요~” -남편 “도저히 대화가 안통해요. 내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식대로 다 해석해 버려요” -아내 “풀려고 대화를 시도해봤는데 이상하게 더 꼬여서 나중에는 감당이 안돼요. 차라리 말을 하지 말걸....하는 후회밖에 안들어요.” - 남편 이처럼 대화가 잘 안되어 답답한 부부들이 행복해지시길 원한다면, 다음의 몇가지 대화방법을 통해서 불만으로 잠궈져 있는 부부의 마음을 열쇠로 열어보자. 첫째, 상대방의 행동이나 태도에 대한 내 속마음을 표현한다. 나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 행동이나 태도에 대한 이야기에 머물 경우 비난이나 공격으로 들린다. 아내: “왜 이렇게 매일 늦게 들어와?” (속마음- ‘함께 있고 싶었어’) 남편: "11시가 뭐가 늦다는 거야? 회사사정도 모르고 집구석에서 한다는 소리가 겨우..“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어를 위한 공격을 하게 된다.) 이렇게 바꿔서 이야기 해 보자, 아내: "나 오늘 당신과 함께 있고 싶었는데 늦게 들어오니까 속상했어.“ 남편: "응 그랬구나! 오늘 나랑 함께 있고 싶었어? 미안해~~ 내가 내일은 일찍 들어올게“. (자신을 비난하거나 공격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상대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하게 된다.) 둘째, 감정은 참거나 억압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푸는 것이다. 내 감정표현의 시기를 놓치면 마음속에 쌓아두게 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들을 쌓아놓게 되면 나중에 거칠고 공격적으로 폭발하게 되고 상대는 그 감정폭탄 때문에 도망가게 된다. 감정을 쌓아두고 그때그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관계악화의 지름길이다. 아내: “당신은 옛날부터 날 노예 부리 듯 했어..억울해..흑흑” 남편: 당황해서 “내가 언제 당신에게 그랬다는 거야?” 아내: "10년전 일 생각 안 나? 그때 내가 당한거를 생각하면...억울해..흑흑..“ 남편: 지겹다는 듯 “또 그소리야...? 휴...... 10년전 일을 이제와서 나보고 어쩌라구....” 셋째, 상대방의 마음을 판단하지 말고 그 과정을 이해하고 공감해준다. 사람의 감정은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등 이분법적인 사고로 판단할 수 없다. 특히 가족대화에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고 배려하면서 상대의 입장이 되어 느낌과 생각을 함께 공유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위 사례에서 아내가 억울하다고 할 때 남편은 “10년 전 생각 때문에 당신 많이 억울했겠네. 내가 당신을 많이 힘들게 한 건 사실이야. 10년전 일 좀 이야기 해봐. 당신이 이 정도로 억울하다면 얼마나 많이 가슴에 맺혀있었겠어” 아내의 마음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것이다. 아내는 십중팔구 남편이 자신의 응어리진 마음을 회피하지 않고 들어만 준다면 불만으로 잠궈져 있던 마음이 철커덕~ 열려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글. 김 숙 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
- 2014-02-2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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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기획-나이들수록 소통에 힘써라] ② 시니어를 변화하게 하는 메머드급 에너지… 가족 '소통'
- 지난해 은퇴한 김석현(62세) 씨는 아침부터 부산한 아내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 아내가 어디가는지 보다는 오늘도 점심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아내에게 한마디 건넨다. “나도 같이 가면 안돼?” 은퇴한 부부의 싸움은 의외로 단순한 일에서 비롯된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냉장고 문 열었다 닫었다, TV 보며 빈둥거리는 남편들은 분노한다. “평생 고생하며 가족들 먹여 살렸는데, 퇴직하고 돈 못 버니 아내들의 괄시가 시작됐다”며 서운해 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누구 일방의 잘못이 아니라 은퇴 이후 40~50년을 함께 살아야 할 부부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방법을 몰라 빚어지는 갈등이라고 말한다.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이 싫거나 미운 존재가 아니라 그저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남편이 직장 생활을 했을 때 하루 종일 ‘자유’를 누리던 것들이 갑자기 그 자유가 없어져버렸다. 그 때문에 짜증과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심리적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부이혼 전문가는 "은퇴한 부부 사이의 가장 무서운 싸움은 ‘침묵’에서 시작한다. 남편은 뭐든 아내가 말하는 것은 ‘잔소리’로 생각한다. 서로에게 성의 없이 대답하면 대화를 조기에 차단함으로서 번거롭지 않고 필요이상으로 감정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 편하긴 할 것"이라 의사소통 단절을 지적했다. 어떻게 대화를 해야 소통이 될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은퇴는 끝이 아닌 30~40여년이나 남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인생의 중간기착점이다. 따라서 은퇴 시기에는 남편과 아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부부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게 의식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서로 감정 소통이 안 돼 서먹서먹하게 지내거나 심지어 얼굴을 맞대면 짜증이 나는 사이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며 “힘들겠지만 상대가 뭘 원하는지 뭘 하려는지 맞추려는 최소한 노력과 적응하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은퇴와 함께 찾아오는 건강과 인간관계의 위기, 외로움과 허무함, 노후 계획 등 은퇴를 계기로 부부가 함께 우정을 나누듯 충분히 생각하고 작은 일부터 함께 하고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길어진 노후생활을 위해 특히 감정이 동요하고 통하는 감성소통을 해야 한다.” 곽 교수는 공통된 관심사를 만들어 감정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기 때문에 일단 배우자가 표현한 감정은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한다. 곽 교수는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가를 느끼고 그것을 상대에게 적절히 표현해서 그에 대한 해답을 함께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통이 잘되는 부부는 외롭지 않아 프라우스 부부심리상담센터 송금희 원장은 “부부 간에는 풀 수 있는 것보다 풀 수 없는 문제가 훨씬 많다. 갈등 해소의 핵심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하다 보면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특히 송 원장은 황혼 부부들에게 가장 먼저 ‘들어주는 연습’을 주문했다. “소통이 안 되거나 갈등이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는 닫고 입만 연다는 것입니다. 자기 말만 하고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않아요. 상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야 미처 깨닫지 못했던 배우자의 감정에 대해 알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거든요.” 이에 이혼전문 H변호사는 은퇴 후 부부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진 황혼 부부에게 각자가 실천해야 할 두 가지를 제시했다. 남편에게는 아내와 하는 말의 수를 늘리라는 것과 본인 스스로에게 좀 더 유연해지라는 것이었다. 아내에게는 남편이 원하는 행동에 동행해주도록 노력하라는 것과 자신만을 위한 동적인 취미생활을 하라고 조언했다. 부부행복전문 A코치도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해서는 부부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대화라고 피력했다, "일상 속 의사소통을 위한 대화만으로는 부부 사이의 갈등을 해소되거나 유대감이 높아지지 않는다"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상대의 감정을 수용하는,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자주 해야 행복한 부부로 살 수 있다"고 단순하지만 기본적인 얘기를 꺼냈다. 송 원장은 “상담센터를 찾은 중년 부부들의 대부분은 원만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소통을 원하지만 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의사소통의 의미를 자신에게 맞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요점, 자신의 주장에 맞춰서 진행되는 게 의사소통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송 원장은 “자신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답답해하고 심지어는 ‘우린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부’ 라고 결정 짓고 포기해버린다”며 “상대에 대한 어설픈 배려로 오히려 얘기를 혼란 속에 밀어 넣을 때가 많은데 그냥 다 털어놓고 밑감정을 얘기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래야 듣는 사람도 훨씬 이해가 빠르게 되니까”라고 설명했다. 부부행복 전문 A코치는 "아내가 ‘내 마음이 우울해’라고 말했을 때 남편이 ‘그래 너 마음이 슬프구나’ 라고 반응이 돌아와서, 아내가 ‘그래, 저 사람이 내 마음이 슬프다는 걸 알아주는 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 소통이 이뤄진 것"이라 조언했다. 세상에는 싸우지 않는 부부, 문제가 없는 부부는 단 한 쌍도 없다. 갈등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마음을 주고받는 소통을 하면 갈등은 해소되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 받을 수 있다.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를 하면 내편, 동반자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더 이상 외롭다고 느끼지 않게 되고, 부부 사이에 애정과 신뢰, 친밀감도 높아진다. 부모 자식간 소통 방법은 공감대 형성부터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다. 집안이 화목해야 바깥일도 잘 풀린다는 이야기이다. 화목한 집안을 만드는 중심에 바로 부모가 있다. 화합하는 부모는 자녀들과 효율적으로 소통하며, 이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원활한 소통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화목한 가정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자녀, 그리고 가족을 변화시키는 부모의 소통방법이 더욱 중요해지는 오늘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직장을 다니거나 대학생이 되면 말 붙이기 조차 어렵다는 고백을 한다. 물론 중학생,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다. 머리가 커져 말 붙이려 하면 “바쁘니까 나중에 말씀하세요.”라고 훅 가버린다. 부모는 배신감마저 든다. 특히 일만 해 온 아버지와 대화는 더 어색하고 불편해 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릴 수 없다며 자식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게 문제이다.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대화를 한답시고 자식 붙들고 옛날 과거 얘기하면서 늘어지면 더 어렵게 된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기 위해서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 갈등이 생겼다면 ‘난 그 말 듣고 좀 화나고 기분이 안 좋았어’라는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대광고 김철경 교장은 “마음을 전달하는 말을 할 때는 감정의 주체가 자신이기 때문에 ‘나 전달법’으로 말해야 합니다. 나 전달법은 ‘나는~’으로 시작해 자신의 감정까지 넣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하죠”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내 마음을 이해받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이때 ‘너는~’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 상대방은 그 말이 자신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으로 느낀다. 그래서 상대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도리어 방어, 공격, 회피로 대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아들이 계속 늦게 집에 오는 경우 아버지가 ‘너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두란노 아버지학교 관계자는 "부모자식 간에서는 반드시 자식이 잔소리로 여기면 세상없이 중요한 말도 잔소리임을 인정하고 중단해야 한다. 특히 요즘 부모들은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매고 자녀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보내야만 부모 도리를 다 하는 것으로 믿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부분 대학 입시를 앞둔 고3만큼 바쁘고 고달프다. 부모는 그런 자식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알아서 저자세를 취하기 쉽다. 사소한 일로 툴툴거리고 짜증을 내도 공부만 잘하면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런 습관이 굳어지면 자식이 성장해도 “어머니 그만 간섭하세요.” “아버지가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등의 무관심한 말들을 서슴지 않고 내뱉게 된다. 단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존경심이 우러나기를 바라기는 어려운 환경이 되버렸다고 한다. 김철경 교장은 "부모자식 간 대화부재의 원인은 가족들의 개인주의,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등을 꼽을 수 있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이 가장 멀어진 데는 서로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손을 먼저 내밀지 않기 때문"이라 분석했다. ‘중년 남성이 가장 외로울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자녀들이 모른 척할 때’라는 응답이 50%를 넘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접받고 싶은 만큼 상대에게 대접하라 다양한 관계 속에서의 소통의 방법을 제시해도 나이가 들수록 그토록 소통이 어려운 이유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자신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사실,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 전에 속내는 대접받고 싶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에서는 “논리나 말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상사의 의견이 명예와 명분을 중요시 하는데 실리를 따지며 얘기 하면 천박하다 할 것이고, 실리를 중요시 하는데 명예와 명분을 따지면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상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 수록돼 있다. 이는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의 어려움을 설파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존경과 신뢰가 있는 소통 사례를 잠깐 살펴보자. 선일여중의 호빵맨 최용범 교사는 SBS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에서 학생지도 달인으로 소개됐을 만큼 유명하다.25년 경력의 베테랑 학생주임 최용범 (56)씨.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 순찰을 돌며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짜잔~’하고 나타나는 그는 학생들의 수호천사이자 효과 빠른 긴급 구조대다. 윽박 대신 애정으로, 강요 대신 믿음으로 인근 지역에서 학생 선도의 최고봉이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학생들과의 실시간 소통을 위해 양팔에 찬 휴대폰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더 놀라운 점은 학생들에게도 그의 번호가 모두 저장돼 있다는 것. 학생들의 119 역할은 물론, 전교생의 생일까지 빠짐없이 축하 메시지를 챙겨 보낸다. 단순히 전교생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문자를 보낸다고 해서 쌍방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든 선생이지만 그의 진심이 인성교육 철학과 만나 고스란히 아이들의 마음에 전해지면서 변화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재능교육 양병무 대표(60)는 소통을 잘하는 CEO로서 “공자의 불치하문(不恥下問) 즉 아랫사람에게 묻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소통 덕목을 제시했다. 나이 먹었다고 세상사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이는 결코 소통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윗사람이 말을 걸지 않으면 아랫사람은 입을 열지 않는다. 아버지는 열렸는데 왜 자식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느냐고 채근할 일이 아니다. 소통의 부재는 전적으로 윗사람 탓이다. 그냥 기다리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묻는 것은 사실 말을 거는 행위이기도 하다. 물음에는 답이 따른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대화가 되고 저절로 소통이 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묻고 대답하며 가르쳐 주는 관계가 형성되면 아랫사람도 어려워하지 않고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와 묻는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자식, 아내, 부하, 학생, 후배 등 이들에게 권위와 가식, 억압과 통제의 사슬을 벗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랫사람에게 물어보는 건 자신의 위신을 깎는 게 아니라 자신의 관용과 적극적인 이해의 태도라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권위는 강요하는 게 아니라 존경에서 온다. 윗사람이 어렵게만 느껴져서는 존경의 마음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만 쌓이는 건 순식간이다.” 불치하문의 소통, 그것이 비로소 우리 사회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최적의 답이 아닐까 싶다. 결코 나이가 들어서 문제가 아니라 부부, 부모 자식, 스승과 제자 등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이 최소한의 작은 진심부터 시도, 원활하고 건강한 소통 메커니즘이 작동되기를 희망한다.
- 2014-02-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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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기획-나이들수록 소통에 힘써라] ①건강한 疏通은 '행복과 성공'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대접 받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일단, 나이가 들어 갈수록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짐을 나타낸다. 나이가 들고 성공할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뻣뻣해지고 권위적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은 소통을 위해 애쓰더라도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 말에는 그만큼 어른대접 받기 어려워진 시대가 됐다는 자조적 의미도 숨어 있다. 예로부터 유교적 사상에 따라 연장자가 어른 대접을 받는 것이 우리나라의 전통이었지만, 어느새 그런 전통은 사라져버렸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어른 대접을 해주는 곳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각종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나이가 들수록 경험을 통해 현명해진다는 명제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체험을 통해 얻는 지혜보다는 돈이 우대받는 세상이기도 하다. 어른 대접만 받기 어려워진 것이 아니다. 사회 어느 분야에서라도 적극적인 소통 없이 리더 자리에 오르기 힘들어진 사회가 됐다. 물론 소통 없이 자리를 유지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제 소통은 ‘베풂’의 한 종류가 아니라 ‘생존법’ 그 자체다. 때문에 중장년층에게 소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소통은 남을 위해서도 해야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행복은 주변 사람과의 원활한 관계 속에서 존중받는 소통을 통해서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세계 15위권에 속하는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각종 조사에서 한국인의 행복도가 낮게 나타나는 것도 소통의 부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경제활동 역시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소통 없이 부자가 되기는 힘들다. 그러니 소통만 잘해도 인생의 반은 성공했다고 말할만한 시대다. 최근 고령화, 늘어난 인생에서 소통은 가장 굵직한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입장과 상황에 따른 건강한 소통법과 소통의 노하우를 살펴보고 소통의 담대한 사례를 5회에 걸쳐 시리즈로 짚어본다. [소통기획 취재팀=이지혜-김지호-김영순 기자] 글 싣는 차례 ①진짜 소통은 삶에 아름다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나만의 생존법’ ② 가족을 움직이게 하는 메머드급 에너지… 가족간의 소통 ③ SNS소통으로 노후 삶의 질 높아져 ④ 자기만의 소통법 노하우…시니어CEO의 인디언스틱 소통방식 ⑤ 자기만의 소통법 노하우…기초단체장의 봄바람 소통 ◆시니어를 위한 소통 코드는 ‘NO 3노’ 2014년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소통’으로 떠올랐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세대 간 갈등,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우려가 크기에 ‘소통’이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소통을 위해서는 듣는 것이 전제가 돼야한다. 귀는 둘이고 입은 하나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소통을 영어 철자로 풀어 보면 남의 말을 듣고 공감하는 것(sympathy)인데 요즘은 sympathy로는 부족하고 empathy가 필요하다고 한다. sympathy가 이성적 측면에서의 소통을 강조한 단어라면 empathy는 감성적 측면에서의 배려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수동적인 ‘같이(sym=together)’의 개념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em=enter)’을 의미한다. 이는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보다 더 좋은 소통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나이가 들수록 조심해야 하는 ‘3노’가 있다고 어르신들은 자주 강조한다. 바로 자신이 중심이 되는 노욕, 노여움, 노파심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본인과 주변 모두를 위해서 말을 조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말이야말로 소통의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소통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걸까? 예를 들어 수화를 할 줄 아는 의료진이 없다면 청각장애인은 병원에서 어떻게 진찰을 받을까. 이런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 주는 의료 전문 수화 통역사 오은정 씨. 의료진에게 말 한마디 하기 쉽지 않은 청각장애인들에게 그녀의 수화 통역은 한줄기 빛과도 같다. 청각장애인의 손짓도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의료진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의료진과 청각장애인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그들의 입과 귀가 되어준다. 육체의 고통보다 소통의 고통이 더욱 심하다고 말하는 청각장애인들, 그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는 그녀는 의료진과 청각장애인 사이 소통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소통은 감성이 오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아름다운 변화가 생겨 궁극적으로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소통 부재, 소통이 어려운 이유 소통은 두 사람 또는 두 개의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한쪽의 주장을 상대편에서 귀 기울여 듣는 소통도 있고, 듣고 나서 자기 의견을 내놓는 소통도 있고, 반반씩 주장과 경청을 곁들일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소통은 상대방의 의견을 진심으로 경청해준 다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만 하면서 상대방이 그 주장을 모두 들어주지 않으면 싸움이고, 공격이 돼 버린다. 예전에 본 일본 드라마 중 ‘숙년이혼(熟年離婚)’. 우리말로 ‘황혼이혼’을 뜻하는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는 한 가장이 정년퇴직 당일 저녁, 온 가족이 함께하는 만찬 자리에서 아내로부터 보기 좋게 이혼을 당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결정적 원인은 누가 봐도 번듯한 남자주인공 캐릭터에 있다. 폭력적이거나 무능력하지 않고 이혼당해 마땅한 구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노년의 신사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다. 중견기업 중역으로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그의 정년퇴직은 분명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더없이 자랑스러운 일일 터였다. ◆소통의 정공법은 진심과 배려 하지만 그는 가족과 ‘소통’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좋으면 가족 모두가 좋고, 자신이 싫으면 가족도 다 싫어할 거라는 오만, 가족 구성원이 자기의 생각과 통제 속에서만 행복할 것이라는 그의 착각이자 ‘실수’였다. 소통 부재가 불러온 가족 해체, 그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이웃, 내 가족의 뼈아픈 자화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부부 간의 진심어린 소통 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의 자연스런 소통, 친구끼리의 믿음에 바탕을 둔 소통, 이웃과 이웃 간의 배려 있는 소통 등이 없는 이유 또한 소통에 대한 사회의식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탓이다.
- 2014-02-1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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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기자 리포트]“내 나이가 어때서, 노인들의 성 이제는 말하고 싶다“
- -시니어들의 아름다운 성, 이대로 감추기만 할 것인가 우리나라는 사회적 편견이 강한 편이다. 더구나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이나 성문화사업 등은 많이 있지만 노인들을 위한 것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노인들이 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남사시럽게, 부끄럽지도 않나?, 주책이 없어"이런 생각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또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노인들의 성 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눈길을 끈다. 의학적 발전에 따라 노인 인구가 갈수록 건강해져 성생활을 누리는 비율이 높아진 데다, 황혼 재혼도 늘어나면서 성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상담해 고치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벌써 우리나라는 고령화시대로 접어들었다.우리나라 인구수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속에서 산업화의 주역인 이들을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복지실현을 마련해줘야 할 국가적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모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난다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의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지난 해 12월 17일 경기도가 전국 처음으로 '경기도 노인 성문화 축제'를 개최했다. 건강존, 성 체험존, 자기관리존 등 3개존 10개 부스에서 건강검진, 비뇨기과, 한방진료, 노년기 성(性)인식 조사, 성 변화, 양성평등 퀴즈 및 성 상담, 메이크업, 네일아트, 사진촬영 등의 다양한 체험행사로 진행되었다. 성문화는 이제 하나의 고유문화로서 '성 질병 예방 및 치료법','성범죄 예방 및 관련법률', '건전한 이성교제 에티켓','부부 및 가족과의 대화 방법'등노 노인의 건강한 성생활과 세대 간의 소통 및 이해에 대한 폭넓은 교육과 상담을 실시해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을 위한 정서적 지원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노인 아닌 노인들이 증가했슴과 동시에 요즘 노인들은 노년의 삶을 단순한 수명 연장이자 "할배·할매"라고 불리기엔 아직 이르고 꽃노년들의 문화 활동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서울시가 2011년 11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서울지역 노인 327명을 대상으로 한 성(性)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5%가 노인의 성(性)에 대해 사회적 관심적다고 답했다. 그리고 배우자가 있는 노인들 24%는 1개월에 1~2회, 8.7%는 1주일에 1회 이상 성관계를 맺는데 배우자가 없는 노인 72.4%는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조사가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2014년, 노인들의 성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부부간 성문제, 이성과의 문제를 털어놓는 노인이 많아졌다. 체면 때문에, 아니면 부끄러워서 더 이상 감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노인들 스스로 성에 대한 낡고 왜곡된 생각을 버리고 성 생활이 그저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구성원인 노인들도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본다. 고령화 사회에 노인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삶의 활력을 불어 넣을수 있는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현재 민간주도에서 정부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장년 노년을 위한 다양한 콘텐츠개발 및 보급과 노인들의 성인식 개선사업등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건전하고 체계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시니어 기자 최재영(kthigh11@naver.com) △OCJP 국제공인자격 △RABQSA ISO9001 △27001 국제 심사원 △KBS n 리포터△정부3.0 맞춤형서비스 △생활공감정책모니터 용인시 대표 △서울시 인터넷시민감시단 △한국소비자포험 화이트슈머 △금융감독원소비자리포터('금소리') △한국가스안전공사 경영공시모니터 △분수네신문사 칼럼리스트 △직업 특강 & 컨설턴트 △IT 및 보안전문가 --------------------------------------------------------------------------------- ※[알립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시니어 기자단’ 모집 -다시 뛰는 인생2막 ‘나도 기자다’ 프리미엄경제신문 이투데이의 자회사인 이투데이 PNC(Passion & Creative)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 시니어 기자단’을 모집합니다. 시니어 기자단은 액티브 시니어들의 치열하고 아름다운 ‘삶의 현장’ 소식과 함께 인생2막-자기계발 성공 스토리, 애환과 고통, 기쁨 등을 취재하게 됩니다. 선정된 기자단은 소정의 교육을 거쳐 2014년 2월부터 시니어 모니터링 업무와 현장 취재기사를 작성하게 되고, 작성된 기사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사이트에 게재됩니다. 50대 이상 신장년층들은 우리 사회의 주춧돌이자 근간이며 버팀목입니다. 하지만 직장-자녀문제-부모-집안 대소사-건강-대인관계 등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열정은 누구보다 뜨겁습니다. 단지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신장년층은 명분과 격식, 보수적인 사회적 가치에만 연연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 온갖 혼을 불어넣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투데이 PNC가 운영하는 시니어 전문 미디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당당한 시니어들의 고품격 Life 정보 웹진으로 ‘2막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e-시니어’ ‘‘Dynamic Senior’의 신나는 놀이터’‘시니어들의 애환과 고통을 나누는 사랑방’을 지향합니다. 참여를 희망하는 시니어들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많은 성원과 지원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 songbird@etoday.co.kr. (02)799-6712
- 2014-02-1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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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농정착 성공사례(3)] 농촌으로 간 디자이너, 마을의 미래를 디자인하다
- -황정임 농촌진흥청 농촌환경지원과 농업연구사- 김주성씨가 있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하월천리에 거의 온 것 같은 느낌을 들 때였다. ‘새농어촌건설운동’사업지임을 알리는 커다란 나무 기둥이 마을 어귀 양 옆으로 우뚝 솟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솟대로 장식되어 있는 이 나무 기둥들은 하월천리 주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김주성씨가 마을 이장으로 있는 동안 나타난 변화들 중 하나다. 지금 김주성씨는 ‘도시로 나간 자녀들이 돌아오는 농촌 마을’을 만들고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 꿈은 화전민이 살던 터를 귀촌지로 매입해 자연휴양·치유의 장소로 살뜰히 가꾸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농촌으로 간 디자이너 =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도시에서 광고, 기획, 생활한복 등 다방면에서 사업을 하면서 갖은 흥망을 경험했다. 그가 귀촌을 결심한 이유는 도시 생활에서 느낀 고단함이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도시보다는 농촌이 미래사회의 대안이라는 생각이었다. 20년 후에는 농촌의 가치가 더욱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 전망하면서 속도와 경쟁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활력소가 될 수 있는 자연치유 산림휴양마을을 만들고 싶은 꿈을 품게 됐다. 그가 구상한 것은 현재 보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단기성 농촌 체험이나 관광이 아닌 장기 농촌 체류 모델로 크게 두 가지 형태였다. 첫째는 명상이나 요가 등의 프로그램과 치유음식이 있는 장기 체류 휴양·치유마을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원격업무가 가능한 회사나 산업을 마을로 유치해 도시에서 하던 일을 하면서 농촌에서 살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이곳 양양의 깊은 산골로 자리를 정한 것이 2000년. 그로부터 4년 후인 2004년 10월 이사를 올 때까지 매주 금요일에 양양으로 내려와 월요일 새벽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생활을 이어갔다. 서울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이곳이 그리워지면 택시를 불러서라도 내려오고야 마는 자신을 보면서 귀촌 생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이렇게 제2의 인생을 위한 보금자리를 다듬어 가면서 귀촌 후 사업 계획을 차근차근 구체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귀촌 1막, 깊은 산 중에 자리를 잡다 = 귀촌 후 3~4년 동안은 산 속 터전을 갈고 닦고, 장래 사업을 위해 준비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했다. 빈집 세 채를 수리하여 거처할 곳을 마련하고 돌탑을 쌓고, 연못·나무다리를 만드는 등의 일을 모두 손수 감당했다. 펜션 운영을 위한 건물 한 동도 직접 지어 올렸다. 또 주변에는 고사리 300평, 취 300평, 엄나무 450주 등을 심었다. 치유음식의 식자재로, 방문객들에게 주는 선물용으로 미리 준비하는 의미였다. 실제 이 재료들은 현재 마을 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농촌 현실에 대해 깨우치고 꿈을 정교하게 다지기 위해 부인과 함께 각종 교육을 받고 선진 사례들을 돌아보는 데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승용차가 못 들어가고 유무선 전화, 인터넷 사용도 불가능한 깊은 산 중에 정갈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광랜을 설치하고, 버스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을 냈다. 이처럼 묵묵히 노력한 결과 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가 이장직을 맡을 수 있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됐다. 결국 2009년 12월, 김주성씨는 마을 총회에서 이장으로 선출됐다. ◇귀촌 2막, 이장이 되다 = 이장 권유를 받고 나서 그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마을을 깨워 아침을 여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이장이 되고 나서 먼저 주민들에게 마을기업 CEO로서의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마을에 필요한 사업들을 적극 유치해 하월천리를 잘사는 마을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동안 마을 행사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 등에 참여도 했고, 사업정보를 알려주거나 사업계획서를 쓰는 데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했지만,한계를 느꼈던 터였다. 그러나 주민들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했기에 의견을 물었고 주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음으로 그는 마을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조직을 구성했다. 그 당시 마을 조직은 마을회, 노인회, 부녀회가 전부였다. 김주성씨는 마을을 위해 일할 젊은이들의 조직인 청년회와 마을 내 이견들을 조정할 원로회가 추가적으로 필요하 다고 판단했다. 청년 8명, 그리고 75세 이상 어르신들을 모아 각각 청년회, 원로회를 조직했다. 이장이 된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추진한 일이다. 이렇게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고 사업 추진을 위한 조직을 갖춘 후, 그가 가장 먼저 도전한 사업은 강원도 사업인‘새농어촌건설운동’사업이었다. 여기엔 상사업비 5억을 받게 되면 마을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종잣돈을 확보하게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의 주도에 따라 주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끝에 8개월 만에 우수마을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이같은 결과는 강원도에서 12년 새농어촌건설운동 사업을 실시한 역사상 최단기 간의 일이라 한다. 선정하는 측에서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사업을 추진한 경력이 돼야 수상자 후보로 고려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2~3년은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주성씨가 목표한 대로 받게 된 상사업비로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고, 거기에 농촌진흥청의 향토음식자원화사업을 유치해 탄생하게 된 것이‘농가맛집 달래촌’이다. 농촌진흥청이 지원하는 농가맛집은 전국적으로 64개, 강원도에 6개가 있지만, 달래촌의 가장 큰 차별성은 영농조합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마을 공동의 일자리를 만들어 소득 창출을 꾀하고자 하는 목적이 담겨 있다. 각종 산나물, 능이버섯, 송이버섯 등을 활용한 약산채 밥상으로 특화한 달래촌은 김주성씨의 아내를 중심으로 예약 현황에 따라 마을 주민들이 배치돼 운영된다. 노동에 대한 대가는 시급으로 지급되고 있다. 달래촌이 행정소재지에서 많이 떨어져 있어 꾸준히 손님이 있는 형태는 아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예약제로만 운영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자연휴양·치유마을을 향한 구상 가운데 치유음식을 담당하는 곳으로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아내와 주민들은 전통음식, 산채, 떡 등 다양한 교육과정에 참여하면서 약산채 밥상에 걸맞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다음 사업 아이템은 달래길이었다. 사람들이 먼 곳까지 방문할 수 있는‘거리’가 마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총 80km, 13코스를 계획하고 있는 중에 현재 32km가 조성된 상태인데, 길이 완성되는 대로 식생자원 체험, 숲 치유 등 프로그램 운영을 병행할 계획이다. 여기에 추가로 유치한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을 통해 아토피 치유센터를 만들고, 저수지 수변 공간을 공원으로 정비하고, 귀촌마을을 조성하는 등 자연휴양·치유를 테마로 한 그의 마을에 대한 구상은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주민들을 설득해 함께 사업을 추진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주민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천(川)을 중심으로 마을이 분열되어 단결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소수 귀농·귀촌인들과 원주민들 간에도 갈등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주성씨는 새농어촌건설운동을 계기로 사람들을 마을회관으로 자주 모이도록 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단순히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교육을 받도록 하기도 했다. 하루에 2~3개씩 교육이 진행되는 일도 있었다. 틈나는 대로 마을 사업에 대해 주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거나 설득하기도 했다. 자주 만나서 먹고 마시고 시간을 보내야 관계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그의 지론대로 실천한 것이다. 또한 원로회장님을 비롯한 어르신들이 생일을 맞으면 아내가 떡케익을 만들어 생일잔치를 해드리는 식으로, 기회가 될 때 감동을 주고자 했다. 이렇게 70~80년 사신 마을 어르신들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고자 했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용한 마을에서 공연한 일을 벌인다는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고비마다 눈에 보이는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지해 주는 주민들이 늘어갔다. ◇대한민국의 농촌을 바꿔보자 = 하월천리의 브랜드 ‘달래’는 월천(月川)을 한글로 푼 것이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마을, 즉 치유하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마을이 가지고 있는 대표 자원인 산림 자원을 이용해 자연휴양·치유마을을 조성함으로써 마을의 소득원을 창출해 궁극적으로 자녀들이 돌아오고,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이 들어오는 농촌마을 모델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꿈은 이렇게 마을에 머물러 있지 않고 강원도, 대한민국 농촌으로 향해 있다. 이를 위해 30여명의 마을 리더들로 구성된‘비전 양양 21 핵심리더’모임에 참여하면서 선진사례를 꾸준히 학습·토론하고 있으며, SNS 매체인 카카오스토리를 이용하여 전국에 있는 여러 사람과 소통하면서 마을을 적극 알리고 있다. 아울러 마을의 미래를 위해 청년들과 일을 함께 해나가고, 마을에 필요한 외부의 인재들을 유치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마을 사업에 뛰어든 이후로는 펜션 운영도 접고, 부부가 모두 마을 일을 돌보느라 집을 돌볼 겨를이 없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품었던 꿈을 마을 전체를 통해 실현시키는 일에 몰두에 있는 그에게서는 개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그에게 더 이상 귀촌인이란 지칭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가 도시에서 살았음을 인지하게 하는 것은 돋보이는 경영 감각과 다방면의 인적 네트워크 뿐, 그는 달래촌 하월천리에 열렬한 애정을 품은, 정신적인 토박이였다.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김주성씨가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으로 첫 번째 꼽은 것은, ‘자신을 낮춰야한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어떤 화려한 생활을 했든 농촌에 오면 그 문화에 적응해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농촌에 와 처음부터 서두르기보다는 최소 2~3년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고유 전통이 뭔지 보고, 느끼고, 많이 생각하다가 서서히 관계를 맺고 소통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처음 3년은 땅 사고 집 짓고 하면서 금세 세월을 보내지만, 이후 여유를 가지면서 오히려 갈등과 불화를 만들어 이웃과 벽을 세우거나 마을을 떠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두 번째로 그는 귀촌하기 전에 1년 정도 시골살이를 체험해볼 것을 권했다. 직접 부딪히면서 실제 살 수 있겠는지 저울질도 해보고 차근차근 준비해가면서, 어느 정도 자생력이 있다고 판단될 때 땅을 사고 집을 짓는 수순을 밟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귀촌지를 선택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것처럼 신중하게 고르고 정성스럽게 구애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자체의 지원 내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을 경계하는 조언일 터이다. 그가 발을 내딛은 그 길이 아직 끝을 알 수 없는 도정이지만, 손님과 같이 잠시 머물다가는 귀촌인이기보다, 농촌의 주인으로서 다른 귀농·귀촌인들이 와서 행복할 수 있는 농촌을 만드는 초석을 놓는 일에 뜻을 품은, 그런 귀촌인들이 농촌에 참 소중한 존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2014-02-17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