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물든 단풍의 빛깔을 닮아서일까? 쓸쓸한 정취와 어울리는 쌉쌀함 때문일까? 와인은 유독 가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술이다. ‘와인 좀 마셔볼까?’ 하다가 막상 무엇을 고를지 몰라 난감하고, 애써 주문해 한 모금 들이켜도 ‘이게 맛있는 건가?’ 의아스러울 때가 있다. 한마디로 ‘와인은 어렵다’는 생각에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이가 대부분. 와인은 물론
“안 된단 말이야. 데구루루… 너무 아팠어요.” “어디 보자. 우리 채소들이 얼마나 잘 자랐나. 허허, 녀석들 예쁘구나!”
목을 쭉 빼고, 깍지 낀 손가락 위에 턱을 괴고, 고개를 갸우뚱. 점점 빠져든다. 입가에 웃음이 배는 건 어쩔 수 없다. 입담에 알록달록 교구와 손 유희가 어우러지니 잠시 잊고 있었던 동심이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세대와 세대를 잇겠다
애초 부모님이 북쪽에 고향을 두고 계셨던 까닭으로 명절이 되어도 어디 갈 곳이 없다. 그저 관성처럼 TV를 통해 남들 귀성행렬을 바라보며 설이나 추석이 되었거니 느끼며 살았다.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지만 올 추석은 유달리 썰렁했다. 유난했던 세계적 자연재해와 경제 침체로 흥이 날 리 없기도 하다. 게다가 명절 연휴만 되면 고향보다 해외로 나가는 유행이 거리
카메라를 손에 든 사진작가의 눈매는 날카로워진다. 새로운 피사체를 찾아 집중하기 때문이다. 시선은 쉴 사이 없이 분주해진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를 닮아가는지 모른다. 어느 순간 보기 쉽지 않은 사진 소재를 발견했거나 사건을 만났을 때는 가슴이 뛴다. 순간 포착에 숨이 멎는다. 발견의 기쁨이 커진다. 가을이 익어가는 산길 산딸기 잎에 짝짓기하는 사마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물건이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잘 몰라도 그 물건은 장롱 서랍에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가끔 그 물건을 꺼내 만져보고 소꿉놀이를 하며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그 후 수십 년이 흘렀다. 살던 집에서 이사했고 오래된 장롱과 함께 그 물건은 기억 속에서 잊혀 버렸다. 간혹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어쩌다
원 투 차차차 쓰리 포 차차차.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익숙한 박자. 혹시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흔들고 있다면 당신은 잠재적 댄서? 문화에서 이제는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은 댄스스포츠를 김종범(63), 박혜경(67) 동년기자가 배워봤다.
촬영 협조 뷰티풀댄스아카데미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27-8 4층)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은 댄스
“살면서 나를 케어해준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어요.”
소탈하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뼈가 있는 한마디였다. 아마 기자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의 업에 대해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확신을 가진 자유인이 아닐까 싶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김목경(60)이 바로 그 사람이다. 오롯이 홀로 서서 자신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사회에서 배워야 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우리 어머니들, 여성들의 출중한 운동 역사가 있다.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이었던 ‘여권통문’이다. 늦었지만 이 순간 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시는 분들은 참 다행이다.
120년 전인 1898년 9월 1일, 북촌의 양반 여성들이 이소사, 김소사의 이름으로 ‘여학교설시통문(女學校設始通文)’
처음에는 “무슨 추모공연이냐” 반문하며 차갑게 돌아섰다. 공간예술을 하던 이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추모한다는 말인가. 의미 없다며 외면하려던 찰나 불현듯 생각났다. “선배님이 이 연극에서 연기 참 잘했지.” 좋은 작품을 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 성격답게 세상과 쿨(?)하게 안녕하고 떠난 그녀를 대신해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조명이 켜진다. 카
이자연은 최근 여성 최초로 대한가수협회장에 당선되었다. 호칭을 회장님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자연의 대표곡 ‘찰랑찰랑’을 부를 때 그녀의 목소리와 몸짓을 떠올리면 회장님보다는 찰랑찰랑대는 맛깔스러운 가수가 훨씬 더 어울린다. 대외적인 그녀의 나이는 63년생이지만 사실은 58년 개띠. 이봉규와 갑장이어서 더 말이 많았다.
그녀가 데뷔할 당시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