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신중년에게도 스마트폰은 필수품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손가락 몇 개로 식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고, 전국의 친구들과도 소통을 할 수 있다. 때로는 필요한 사진과 동영상을 받기도 하고, 급하게 처리할 문서를 내려받기도 한다. 그런데 갑자기 스마트폰 용량이 모자랄 때 당황스럽다. ‘구글 포토’를 이용해 보자. 각종 동영상과 사진으로 무거워진 스마트폰의 무
청소년기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고 베토벤의 곡을 즐겨 들었다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전호근(田好根·54) 교수. 10년 전, 메이너드 솔로몬이 쓴 베토벤 평전 은 자연스레 그의 손에 들렸다. 처음 책을 접했을 당시에는 평전 글쓰기의 모범이라 생각할 만큼 저자의 분석력에 감탄하며 읽었다. 그때는 자료를 읽어내듯 눈으로 읽고 머리로 기억했는데, 그는 최근
김영희(金英姬) 前 대사
우리 동네에는 우물이 세 개 있었다. 동네 한가운데 마을 공동 우물이 있고 방앗간 집과 우리 집에 우물이 있었다. 1949년 한글날 태어난 나는 6·25전쟁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 집 우물에 던져져 죽을 뻔했다는 얘기는 알고 있다. 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 집에다 큰아들이 국군 장교로 참전 중이어서, 인민군이
약간의 침묵이 흐른다. 갑작스레 지휘자의 손끝이 하늘을 향한다. 그러자 실내의 모든 눈동자가 그 끝을 좇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일시에 숨과 함께 소리를 내뱉는다. 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게,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야 한다. 그 사이에 그들의 시선은 정면의 손끝과 청중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소리와 시선 사이엔 날카로운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백제는 삼국 중 한반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을 차지한 복 받은 나라였다. 그러나 가장 먼저 망했다. 왜 그랬을까?
백제 땅은 고구려, 신라는 물론, 중국, 왜와도 교류할 수 있는 한반도 서남 요지였다. 북으로 고구려라는 강국이 있었지만 고구려는 대부분의 시기 중국의 위협에 대항하느라 여념이 없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 중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백제를 크
삼국시대에 관해서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왜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지 못했나?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우리의 영역이 만주까지 넓혀졌을 것인데..’라는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대외관계를 검토하면 이것은 이루기 어려운 목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 간의 관계에만 주력한 신라, 백제와는 달리 고구려는 중국 왕조들을 비롯하여 만주의 여러 민족들을
스포츠 올드 팬들에게 우리나라 축구 선수 계보를 살펴보라고 하면 차범근과 함께 빠뜨리지 않고 등장할 인물이 있다. 스포츠 올드 팬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한국 축구 선수 계보는 일제 강점기 유일하게 올림픽(1936년 베를린 대회)에 출전한 김용식을 첫머리로 ‘아시아의 황금 다리’ 최정민에 이어 이번 호의 주인공인 이회택(李會澤)을 거쳐 차범근 그리고
1976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노신사가 신문에 난 부음을 보고 빈소가 마련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대한민국 초대 공보처장을 지낸 이철원 박사였다. 그는 아버지 생전에 신세를 많이 지었다며 이를 잊지 못하여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어릴 때 우리 형제들에게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손우현 한
글 권택명(한국펄벅재단 이사, 시인)
애송시 을 쓴 故 청마 유치환 시인은 그의 시 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쓰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그 행복을 넘어서는 것이 사랑하는 것, 즉 사랑을 주는 것이라는 시인의 표현은 시적 수사(修辭)이고 역설적 표현이지만 한
달팽이 요리를 즐기는 나라, 그러나 시속 300㎞가 넘는 TGV가 달리는 나라, 프랑스. 말을 할 때 여러 가지 내용을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도 귀담아들어보면 앞뒤 논리가 잘 맞는 기막힌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세계의 유행과 패션을 리드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유행이나 패션에 별 관심이 없는 나라. 수많은 명품을 생산하지만, 실제 거리에서는 우리나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