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재의 미술품 수집 이야기] 푼더분하게, 그리고 질박하게

기사입력 2016-02-26 09:58 기사수정 2016-02-26 09:58

<글> 이재준(아호 송유재)


스위스 태생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의 작품은 세계 많은 예술가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인물상을 조형하면서 군더더기를 깎아내어 본질에 접근하려는 극도의 절제됨이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가늘고 긴 팔다리와 얼굴의 과장된 모습은, 인간 내면의 고독과 우수 같은 정신세계를 표출하려는 그의 시각에 실존주의적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게 했다.

본인은 “인간 본연의 적나라한 모습을 관찰했을 뿐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나타내려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차가운 금속을 녹이고 붙이는 고단한 작업 속에서 무형의 내면의식을 드러내려는 지난한 탐구가 우리 마음을 동화시킨다.

인간이 흙을 주무르고 반죽하여 어떤 형상을 만드는 행위는 본능인지라 그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토기를 빚어 굽는 일이야 생활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레 발전해 왔으나, 어떤 특정한 형상을 만드는 행위는 그렇지 않다. 비록 신상(神像)일지라도 만드는 이의 의지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고대 조각가들은 인간의 등신상(等身像)을 돌이나 청동에 극사실적으로 만들기는 했으나 인간의 정신세계까지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로댕(Auquste Rodin ·1840~1917)이나 부르델(Antoine Bourdelle·1861~1929) 같은 조각가들은 사실적이면서 인간 심연의 본능과 오묘한 감성의 변화까지를 조각에 나타내고자 노력하였다.

▲한애규 '어깨동무' 테라코타. 30cm*13cm*48cm. 2004.
▲한애규 '어깨동무' 테라코타. 30cm*13cm*48cm. 2004.

여성조각가 한애규(1953~ )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와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프랑스 앙굴렘 미술학교를 수학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조각의 길로 정진하였다. 테라코타(Terra cotta) 영역에 도전하여 흔치 않게 일관된 작업을 이 십년 넘게 견지하고 있다. ‘테라코타’는 이탈리아 말로 ‘구운 흙’이란 뜻인데, 점토를 800도 정도에서 구워 도자기의 초벌구이나 벽돌 기와 등에 사용한 인류의 오랜 문화의 흔적이 곳곳에 산재한다.

그러나 한애규의 테라코타는 1200~1350도까지 굽는 온도를 높여, 도기(陶器)나 자기(瓷器)의 수준에 버금가는 강도 높은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의 전시장을 꽉 채우는 등신(等身)에 준하는 인물상을 테라코타로 완성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간 테라코타만으로 십여 회의 개인전을 열어 큰 호평을 받아왔다. 그의 인물상은 거개가 여인상들로, 넉넉한 품새와 투박하고 푼더분한 마음씨 좋은 이웃 아줌마를 연상시킨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의 모습도 꼭 그러해 “자소상(自塑像) 같다”고 했더니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이 작품 ‘어깨동무’는 아내와 평창동 산책 중에 들른 화랑에서 구입한 것으로 한애규 작품 중에서 중간 크기에 해당된다. 투박한 손발이며 얼굴의 미소까지 테라코타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만약 같은 형상을 돌에 새기거나 브론즈로 다듬었다면 거칠고 구수한 멋이 사라졌을 것이다. 작가의 질료(質料)를 다루는 손길이 오롯이 보는 이에게 전이되어 마치 나도 흙 반죽 위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리는 듯한 동화감을 주고 있다. 군더더기를 깎아내기보다 오히려 더 보태어 강조함으로써, 내면에 흐르는 의식을 절묘하게 표출해 내는 작가의 원숙함이 우리를 따스하게 한다.

조각을 수집하려는 사람들은 테라코타나 브론즈 형태의 작품을 복제성 때문에 망설이는 게 사실이다. 돌에 깎으면 유일한 작품인 것을 석고로 본을 뜨고 거기에 점토나 청동 재료를 부어서 만들면 수십 점의 동일한 복제품이 탄생하는데, 수집가들은 희귀성에서 벗어난 예술품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한애규는 거의 복제품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테라코타 작품도 유일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조의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소년' 화강석 24cm*21cm*53cm. 2002.
▲조의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소년' 화강석 24cm*21cm*53cm. 2002.

조의현(1959~) 조각가는 조선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모교의 교수로 있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미술제 등의 전시를 통해 간간이 접하곤 하였다. 대부분 브론즈의 형태로 우리 주변의 소년, 소녀, 아저씨, 아주머니 형상을 조형해 내는데 그 모습이 가히 파격적이다. 날씬하고 예쁜 얼굴은 찾을 수가 없다. 넓적한 얼굴 바탕에 샐쭉한 눈, 낮은 코, 광대뼈가 불거진 뺨과 짧은 목, 땅딸한 키에 굵고 투박한 다리가 우리의 시선을 잡는다.

인물을 과장 한다기보다는 우리의 1960~70년대 원초적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만 같아서 반갑다. 다듬고 꾸밀 줄 모르던 우리 이웃의 아낙과 어머니, 누나들의 수수함을 체감한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히말라야나 몽골 오지의 인물들을 보면 연민보다 반가운 동질감을 느끼는 심경과 같다고나 할까. 간간이 테라코타 작품도 보여, 주저없이 수집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화랑미술제 기간에 한 화랑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소년’이 눈에 들어와 즉시 구입하였다. 이 작품은 검은 화강석에 깎고 새긴 특이한 소재의 작지 않은 작품이다. 화강석을 다듬고 연마하여 얼굴, 목, 발목 등을 조성하고 그러나 두발이나 옷 등은 정으로 쪼아서 거친 질감과 색의 대비를 맞춘 작가의 의도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소년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무심히 수평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유년기의 한때를 떠올리게 하는 질박함이 좋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집을 나와 들길을 걷거나, 뜰에 서서 동무를 기다리거나, 논둑으로 스쳐가는 저녁놀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그 어떤 연상으로도 마음의 순수가 되살아난다.

평면 회화작업과 달리 조각은 입체를 조성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야 하고 세심한 마무리 작업이 필수적일 뿐 아니라 흙, 돌, 쇠붙이, 나무 등 질료에 따라 물리적인 노고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건축법에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는 반드시 환경조형물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다수의 조각가들이 참여하므로 열악한 예술가들의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거리에 격이 높은 예술적 공간도 늘어나고는 있다. 수백 년 뒤에도 도시와 거리의 상징물이 될 조형물로, 푼더분하고 질박한 정감이 흐르게 하면 어떨까.


△이재준(李載俊)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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