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령층의 문제는 자산이 집에 지나치게 묶여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70∼74세 가구는 2007년부터 2021년까지 평균 총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9.1%에 이르고, 금융자산 비중은 16.8% 수준에 그친다. 집값이 올라도 주택을 팔거나 주택연금·담보 등을 활용하지 않는 한, 그 집에 계속 사는 동안 병원비나 생활비로 사용할 수 없다. 집은 재산이지만 현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노후, 크기보다 현금흐름이 중요
국회미래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전체 부동산 보유 가구 중 65세 이상 가구주의 비중은 2012년 23.0%에서 2024년 30.0%로 높아졌다. 12억 원 초과 고가주택 보유자 중 60세 이상 비중은 54.2%에 달한다. 고령층의 평균 순자산은 늘었지만 금융자산은 부족한, 이른바 ‘하우스 리치, 캐시 푸어’ 구조가 심화된 것이다.
사례 1 “방도 남는데, 작은 집 갈까?”
서울에서 18년째 전용면적 84㎡ 아파트에 사는 김달관(74, 가명) 부부. 현재 아파트 시세는 약 25억 원이며, 부부가 매달 받는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은 280만 원 정도다. 대출은 없지만 관리비·재산세·종합부동산세·의료비와 자동차 유지비를 지출하면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돈은 많지 않다. 자녀들은 모두 독립해서 방 두 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김 씨 부부는 분명 자산가지만, 일상에서는 현금이 부족하다.
김 씨 부부가 익숙한 생활권을 떠나지 않고 전용면적 59㎡ 아파트로 옮긴다면 어떨까. 새집 구입비와 양도소득세·취득세·중개보수·이사비를 모두 제외하고 6억 원의 현금이 남는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무리하지 않고 연 3% 정도씩 인출한다고 가정하면 세전 기준 월 150만 원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다. 집은 작아졌지만 매달 사용할 수 있는 생활비는 늘어난다.
사례 2 “탈(脫) 수도권, 혜택 크다?”
박한애(71, 가명) 씨 부부는 20년 넘게 거주한 수도권 아파트를 처분하고 부산에 사는 딸 가까이로 이주할 생각이다. 지금 집은 33억 원, 부산에서 살펴본 아파트는 14억 원 정도다.
2026년 8.3 세제 개편안을 보자. 정부는 만 65세 이상 1주택자가 5년 이상 거주한 수도권 주택을 팔고 비수도권으로 이주하면 2027년 양도분은 양도소득세의 50%, 최대 5억 원까지 감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2028년에는 30%, 최대 3억 원 감면이 적용될 예정이다.
박 씨 부부에게는 지역 이동형 다운사이징을 검토할 만한 강력한 유인이 생긴 셈이다. 다만 세제 혜택만 고려하고 이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병원·교통·친구·문화생활과 훗날 집을 사고팔 수 있는 환금성까지 살펴야 한다.

8.3 세제 개편, ‘보유’보다 ‘거주’
8.3 부동산 세제 개편안의 핵심은 ‘몇 채를 보유했느냐’에서 ‘어디에 실제로 거주하느냐’로 과세의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다. 우선 실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는 공시가격 12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확대된다. 반면 한 채만 보유했더라도 실제 거주하지 않는 주택의 기본공제는 12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줄어드는 걸로 발표했다가 다시 12억 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걸로 추진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도 현행 60%에서 2027년 70%로 오르고, 2028년부터 3주택 이상 보유자 또는 조정대상지역 주택 보유자(1세대 1주택 제외)는 80%가 적용될 예정이다. 앞으로는 ‘1주택자냐’보다 ‘그 집에 실제로 살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도 보유기간 중심에서 거주기간 중심으로 바뀐다. 실제 거주기간에는 최대 80%의 공제율을 인정하지만, 비거주기간 혜택은 단계적으로 축소된다. 양도가액 30억 원 이하 주택에 10년 이상 거주한 1주택자는 양도소득 기본공제가 250만 원에서 2500만 원으로 확대된다. 반대로 양도차익이 큰 고가주택에는 2028년부터 공제 한도를 도입한다. 다주택자에게는 2028년까지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완화해 주택을 정리할 시간을 준다. 종부세 부담 때문에 집을 팔 수밖에 없는 고령자를 납부유예 대상으로 확대한다. 결국 이번 개편안은 시니어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 집에서 계속 살 것인가, 임대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집을 노후 현금흐름으로 전환할 것인가?”
8.13 공급 대책, ‘이사 선택지’ 넓힌다
8.13 공급 대책은 수도권에 23만 호 이상 추가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의 2026~2030년 수도권 135만 호 착공 계획에 신규 공공택지 10만 호 등이 더해졌다. 서울 강서, 남양주 도심, 경기도 광주 등에서 먼저 2만 7000호를 추진하고, 7만 3000호 이상의 후보지를 추가로 선정할 예정이다. 공공택지는 후보지 발표부터 착공까지 걸리는 기간을 종전 68개월에서 37개월로 줄이고, 3기 신도시 등의 8만 9000호 착공을 1∼2년 앞당긴다. 재개발·재건축,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과 소규모 정비사업을 촉진하고, 다세대·다가구와 도시형생활주택 규제도 완화한다. 공공임대와 20년 이상 장기 민간임대 등 임차 선택지도 확대한다.
금융 측면에서는 부동산 PF 보증과 자금 지원을 26조 3000억 원에서 47조 8000억 원 이상 늘리고, 조기 착공 사업에는 이자·보증수수료·세금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즉 공공택지와 도심 정비사업, 일반주택, 민간 PF와 임대주택을 동시에 움직이겠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23만 호는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상당 부분 ‘추가 공급 또는 착공 목표’다. 공급 확대가 실제 입주와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따라서 공급 대책 발표만 보고 집을 급매로 처분하거나, 몇 년 뒤 집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시니어에게 8.13 대책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집값 예측보다 향후 소형주택·임대주택·도심 정비주택 등 이사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다운사이징 성공의 다섯 가지 원칙
첫째, 면적보다 생활 인프라를 먼저 줄여서는 안 된다. 병원·지하철·시장·공원과 자녀 집까지의 거리를 살펴야 한다. 엘리베이터·문턱, 욕실 안전 손잡이와 평지 보행 환경도 집값 못지않게 중요하다.
둘째, 매매 차액이 아니라 ‘순현금’을 계산해야 한다.
순현금 = 기존 주택 매도가격 - 새 주택 구입가격 - 양도세·취득세 - 중개보수·이사비·수리비 - 상환할 부채

셋째, 같은 생활권의 소형 아파트, 인접 지역의 역세권 주택, 비수도권 도심 주택 등 최소 세 가지 대안을 비교해야 한다. 무조건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독주택은 관리 부담과 환금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넷째, 확보한 현금을 한꺼번에 고수익 상품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 생활비 2년분과 의료비는 현금성 자산으로 보관하고, 나머지는 예금·채권·연금형 자산 등에 분산해 정기적인 인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계약 전에 반드시 현행 세법과 개정안 적용 시점을 따로 계산해야 한다. 2026년 매도, 2027년 매도, 2028년 매도의 세후 잔액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취득가액, 실제 거주기간, 부부 공동명의, 일시적 2주택 여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다운사이징은 삶을 축소하는 일이 아니다.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생활비와 의료비, 여행과 여가, 그리고 마음의 여유로 바꾸는 ‘자산의 재배치’다. 노후에 가장 좋은 집은 가장 비싼 집이 아니다. 앞으로 20년 동안 안전하게 살면서 매달 필요한 현금을 마련해주는 집이다.
다운사이징의 기준은 얼마나 작은 집으로 옮기느냐가 아니라, 옮긴 뒤의 삶이 얼마나 안정적이냐에 있다. 집에 묶인 자산을 생활비와 의료비로 쓸 수 있는 현금흐름으로 바꾸되 병원·교통, 가족과의 거리 같은 생활 기반은 지켜야 한다. 세제 혜택과 공급 확대는 선택지를 넓혀주는 변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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