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1500조 원 시대다. 하우스푸어, 파산 등등의 우울한 단어들은 이미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암울한 처지는 아무리 남의 얘기로 분류하려고 해도 막연한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국가로서 정립되어 발전해온 만큼,
우리 대부분은 잘 몰라서
‘민속극장풍류’는 내가 관련하는 기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찾는다. 담장 하나 너머로 소나무 숲이 울창한 선정릉이 있어 주변 경치도 무척 아름답다. 높은 빌딩 숲 가운데 넓은 능이 있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민속극장풍류는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를 보존·전수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건물 안에 있다. 전수교육관은 명칭
김성예 여사, 참 오랜만이에요. 이런 편지는 언제 썼던가? 결혼을 하고 나서 이듬해던가, 그 이듬해던가 내가 학교 선생으로서 강습이라는 걸 받기 위해 잠시 고향 집에 당신을 남겨놓고 대전이나 공주에 머물러 있을 때 몇 차례 짧은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새삼스럽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막막한 심정인 채로 컴퓨터 앞에 앉아 망설여봅니다. 생
1970년대, 육상 투척 종목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깜짝 스타가 등장했다.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투포환 종목에서 금메달을 휩쓴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68)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어쩌다 그에게 마녀라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현재 대한육상연맹 부회장으로 있는 그를 만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부모님 몰래 시작한 투
사람은 누구라도 이 풍진 세상을 살아나간다. 그러다가 결국엔 생로병사로 삶을 마감한다. 이어 장례를 치르노라면 인생처럼 허무한 게 또 없음을 새삼 천착하게 된다. ‘때 되면 고작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거늘 왜 그렇게 지독하게 살았을까…’라는 화두를 놓고 고인에 대한 평가까지 ‘난상토론’으로 이어지는 곳이 장례식장이다.
5월 20일 타계한
김일태(63) 화백에게 금화의 선두주자라는 말을 쓰니 바로 지적이 날아온다.
“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세계에 없습니다.”
유일무이. 특유의 단호한 목소리 톤에서 자신의 업에 대한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김 화백이 예술가로서의 높은 긍지가 느껴지는 이 문답 너머에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아시아인 최초로 영국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뉴스가 있다.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 이야기다. 젊은 주민이 나이 많은 경비원을 폭행하지를 않나, 경비원을 마치 머슴쯤으로 생각하고 자기 집 허드렛일을 시키지 않나, 주민이 잘못하고도 경비원에게 뒤집어씌우지를 않나.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면 보기도 좋고, 편안하련만. 군대에서 부하가 상관에게 바짝 긴장해서 거수경례를 강
나는 장애인이다. 10여 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후유증으로 인해 장애인이 됐다. 장애인을 위한 정부 복지 정책이 있어서 그 덕을 몇 가지 보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1년에 한 번 컴퓨터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는 '장애인을 위한 무료 방문 교육'이다. 지난달에 내 순서가 돼서 교육을 받았다. 평소 모르면서도 그냥 지나간 것을 쭉 적어 놓았다가 질문하니 너
열다섯 살 소녀는 키가 멀대같이 컸다. 친구들이 꺽다리라고 놀려댔다. 선생님은 운동을 권했지만 소녀의 눈에는 모델과 영화배우의 화려한 옷들만 아른거렸다. 아버지가 가끔 사오는 잡지를 들춰보며 무대에 오르는 꿈도 꿨다. 패션계를 주름잡던 모델 루비나를 흠모하고 카르멘 델로피체처럼 되고 싶었던 소녀는 자주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그리고 어느새 75세가 되어
어딜 가도 꽃잔치가 한창이다. 희거나 붉거나 노란 꽃송이들 우르르 일으켜 세우는 봄의 힘. 그걸 청춘이라 부른다. 자연의 청춘은 연거푸 돌아온다. 인간의 청춘은 한 번 가면 끝이다. 조물주의 디자인이 애초에 그렇다. 청춘은 전생처럼 이미 아득하게 저물었다. 바야흐로 생애의 가을에 접어든 사람에겐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가을을 절정으로 가늠하는 사람에겐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