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작품으로 전 세계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이야기는 100세를 맞이한 노인이 자신의 생일잔치를 앞두고 양로원 창문을 넘어 탈출하면서 시작된다. 우연히 돈 가방을 훔치고, 살인에 연루되는 등 황당한 에피소드 사이에 노인의 100년 인생 여정이 녹아 있다.
주인공 알란은 사는 동안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역사적 인물을 만나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사선(死線)을 넘나든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호들갑 떨지 않는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과 죽음, 세계사의 변곡점에 대해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능청스럽게 툭툭 건드리듯 지나간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 일어날 무슨 일이든 그 자체일 뿐”이라는 알란의 말처럼 소설은 시종일관 낙관과 허무, 무거움과 가벼움을 넘나든다.
이 스펙터클하고 허무맹랑한 소설이 우리나라 연극 무대에 올랐다. 스페인, 미국, 소련, 중국, 히말라야, 한국을 아우르는 대장정인 데다가, 등장인물만 60여 명. 이토록 방대한 이야기를 과연 연극 무대에 제대로 올렸을까? 살짝 미심쩍은 마음으로 연극을 보러 갔다.
연극은 놀라울 정도로 소설 속 복잡한 인물과 사건을 거의 빠뜨리지 않고 등장시켰다.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무대의 한계를 극복한 것은 물론 또 다른 재미까지 보여줬다. 무대 위 수많은 서랍장이 하나씩 열리면서 시공간의 이동을 알려줬다. 여기에 배우들이 그 나라의 노래와 춤을 통해 마치 뮤지컬처럼 장소를 표현했다. 60여 명의 등장인물은 5명의 배우가 맡았는데, 1인 다역으로 순간순간 역할을 바꿔가며 모든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성별, 나이 불문 때론 동물 역할까지 저글링하듯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연출가와 배우들의 분투에 애처로움이 들 정도로 감탄이 이어졌다.
원작을 읽은 관객이 소설 속 풍자와 해학, 허무와 낙관의 느낌까지 바라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연극으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은 사건과 인물을 따라가기가 벅차 상황과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한계를 느꼈을 것 같다. 그러나 “내일은 없을지도 몰라”, “그 누구도 늙는다는 걸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 같은 원작 속 메시지만큼은 정확하게 전달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