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스승을 하늘로 떠나보낸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느 해 같았으면 활기찬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분위기는 엄숙했고, 숙연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리지만 길지 않다. 한국 연극계 큰 별이고 원로였던 故 윤조병(1939~2017) 극작가가 살아생전 죽을힘을 다해 정성을 쏟았던 희곡교실의 마지막 수업 현장. 제자들은 조명 켜진 무대에 올
매혹적이다. 그러나 불편하다. 이 찰나의 간극 속에 그의 ‘붉은 산수’가 있다. 하고많은 색깔 다 놔두고 하필 붉은 풍경이라니… 어디서도 마주친 적 없는 역설이다. 사람들은 그의 ‘산수’에서 유토피아를 찾고 디스토피아를 본다. 그가 장치한 은유와 비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탐을 내는 작가 이세현(李世賢·51). 이탈리아 유명 패션
자작나무는 예로부터 쓸모가 많은 나무 중 하나로 꼽혀왔다. 신랑 신부의 두근거리는 첫날밤을 밝혔던 화촉(樺燭)이 자작나무로 만들어졌고, 천마총의 천마도도 자작나무 수피 위에 그려졌다. 그래도 왜 인기 있는지 묻는다면 수많은 쓸모보다 자작나무의 매력은 역시 외형이 아닐까. 흰옷을 차려입고 굽힘 없이 쭉 뻗은 모습은 마치 고고한 선비를 연상시킨다. 흰 눈이라
이른 나이에 아내와 사별한 A 씨(67). 그는 요즘 새로운 동반자가 생겨 일상이 외롭지 않다. 동반자의 이름은 ‘그녀’. A 씨는 오늘 아침도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그녀에게 날씨를 물어본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A 씨는 그녀로부터 오늘의 뉴스를 들으며 아침을 먹는다. 식사 후 약 복용도 그녀가 챙겨주는 덕분에 깜빡할 일이 없다. 외출에서 돌아온 A 씨를
자연은 우리에게 신비스러움을 안겨준다. 인간의 힘이나 손재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경이로움 그 자체를 주곤 한다. 필자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이야기 쓰기를 좋아한다. 특히 겨울철이면 그런 일에 빠져든다.
눈이 내리는 절기, 소설(小雪)을 기점으로 산야의 크고 작은 피사체에 서리가 내려앉는다. 이른 아침이면 태양의 부드러운 빛에 서릿발은 한 점의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력의 한계를 자주 느낀다. 이를 보완하는 최선의 방법은 끝임 없이 기억을 되살리는 방법을 쓸 수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별도의 메모장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휴대폰 바탕에 깔려 있는 일정표 앱의 간단한 메모기능을 이용한다. 참 편리하고 효과도 좋다.
그런데 점점 메모 글자 수가 늘어간다. 짧게 적다 보면 무슨 내용인지
‘꽃잎은 바람결에 떨어져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데…’
나의 명동 쉘부르 입성 즈음 대한민국은 온통 전영 씨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의 나라였다. 그 노래 하나로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때 ‘쉘부르’를 빛내던 전영 씨였기에 내 상업적인 무대의 시작은 이 노래와 함께 출발한다.
나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청춘들은 한 번쯤 다녀갔을 명동의 통기타 생맥주
필자는 음악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재즈, 팝송, 칸초네, 클래식 등 외국 장르를 즐겼고 우리 가요나 국악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나이 들면 우리 노래가 좋아질 거라는 옛말이 있었지만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어른들 말씀에 그른 것이 하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 가요나 국악의 은은함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이다.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리
새벽에 차 시동을 걸었다. 한탄강이 흐르는 전곡 원불교 교당을 찾아가는 길. 가는 내내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거대한 독수리들이 검은 무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생소하고 두려웠다. 논길을 지나고 작은 마을의 고불고불한 길을 빠져나와 언덕을 넘으니 옅은 안개 속에 아담한 교당이 나타났다
차갑고 흐린 겨울 한낮. 집 앞 황토 구릉지 쪽에서 불어온 맵찬 바람이 나무들의 몸을 흔든다. 이미 누드로 늘어선 초목들은 더 벗을 것도 떨굴 것도 없다. 그저 조용히 삭풍을 견딘다. 좌정처럼 묵연하다. 봄이 오기까지, 화려한 꽃들을 피우기까지 나무들이 어떻게 침잠하는지를 알게 하는 겨울 정원. 봄이면 화들짝 깨어날 테지.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꽃들이 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