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가 끝나고 또 한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에게 받는 것이 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5년 뒤 10년 뒤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쓰는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다. 집에서 통학 거리는 얼마나 되며 어려움이나 건의 사항은 무엇인지도 쓰고,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도 쓰게 한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는 학생의 현재 상황이나 장래 진로를 상담할 때 꼭 필요한 자료다. 또 학생들을 빨리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면 그만큼 학생과의 소통이 원활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교수들이 겪는 일이지만 한 학기에 만나는 아이들만 줄잡아 100명에서 150명 정도가 되니 이름을 다 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강의 과목에 따라 반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 매 학기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고 그 학생만의 특징을 생각하고 얼굴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받아 읽다가 의외로 놀란 부분이 있다. 이력서 양식에서 필수 항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는데 바로 보호자가 누구인지 쓰는 칸이다. 처음엔 별 의미 없이 몇 장을 넘기며 읽었는데, 읽을수록 보호자를 ‘어머니’라고 쓴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략 통계를 내어보니 약 절반 정도가 보호자를 어머니라고 썼다. 처음에는 ‘아빠가 없는 학생인가?’ 했다. 그런데 거의 절반이나 그러해서 개별 상담을 하면서 물어봤다. 놀랍게도 아빠가 없어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라고 쓰는 학생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보호자를 ‘어머니’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필자를 놀라게 했다. 필자도 과거에 많은 이력서를 써봤지만 보호자는 늘 ‘아버지’였다. 어머니라고 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어머니를 보호자로 쓰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어 보였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에서는 아버지가 늘 집안의 기둥이었고 가정을 대표하는 분이었다. 한 가정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권위적이었고 집안을 책임지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아버지에 대한 위상이 지금은 바뀌어버린 것이다.
물론 보호자가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상관이 없다. 꼭 아버지만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그 흔들림 없던 위상이 달라진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러한 현상은 아버지에 대한 권위가 옛날 같지 않다는 의미다. 농업을 하며 살던 시대에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정보통신 시대가 되면서 대가족이 무너지고 핵가족으로 변하는 사회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온 가족의 손이 필요했고 생산과 소비에 대한 절대 권한을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농업에 의지하는 시대도 아니고 자녀들도 도시로 나가 더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것이 가능해졌다. 당연히 아버지라는 절대적인 권한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양성평등의 사회 현상이 남녀에 대한 위상을 동등하게 만드는 원인도 있다. 남존여비 사상은 박물관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이제는 재산상속도 아들딸이 동등하다. 맏이가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 시대는 지났다. 또한 호주도 아버지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머니도 될 수 있다. 아버지의 성이 아닌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 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하고 옛날처럼 아버지의 권위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보호자 칸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누구를 쓰느냐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버지들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아닌지 씁쓸하기도 하다. 자식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시절이다. 필자도 궁금해졌다. 과연 필자의 아들딸들은 학교에서 이력서를 쓸 때 보호자로 누구를 쓰는지.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화가인 엄정순(57) 디렉터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이 화두였다. 보이는 것 이면에 무언가 있을 것 같은데 이해하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답답함. 엄 디렉터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 그 밖의 세상에 있는 진실과 본질 등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그 생각이 ‘눈을 쓰지 않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탐험으로 이어졌고 ‘우리들의 눈’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탄생시킨 계기가 됐다.
“시각예술을 하는 작가로서 안 보이는 세계에 대한 탐구는 필연적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들과의 미술 작업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이는 눈과 보이지 않는 눈이 만나서 다르게 보는 눈 ‘Another Way of Seeing’이 만들어지는 것을 상상했어요.”
엄정순 디렉터가 이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지는 벌써 20년이 됐다. ‘우리들의 눈’은 시각장애인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공유하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다.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는 눈, 보이지 않는 눈, 모두가 우리들의 눈이란 뜻이 담겨 있다. 미술에서 가장 멀리 있었던 시각장애인과 가장 가까이 있는 시각예술가들이 함께 미술 작업을 하고 서로 다른 눈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세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시각장애인들이 미술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중심이 맹학교 미술 수업이다. 예술가들이 직접 맹학교로 찾아가 시각장애 학생들과 창의적인 융·복합 수업을 하는 것이다. 드로잉, 조소 등 미술 수업 외에도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사진 수업, 요리연구가와 함께하는 미각 수업, 조향사와 함께하는 후각 수업 등 학생들과 함께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묻는, 예술적 시도를 했다. 그리고 예술적 역량을 가진 아이들을 발굴해 미술대학에도 보내고, 작가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로 시각장애인 예술가 성장도 지원하고 있다. 미술 수업에서 작가 데뷔까지 시각장애인들에게 열려 있는 미술 교육의 길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와 미술을 주제로 한 전문 공간인 ‘우리들의 눈 갤러리’도 운영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정보와 도움을 주는 복지 차원만이 아닌 예술적 접근을 통해 서로 의미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전시, 교육, 출판, 워크숍 등을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이미지 학습을 위한 점자촉각아트북도 제작한다.
“우리 주변에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이미지를 담고 있는 수많은 도서들이 있는데 시각장애 학생들은 그런 세계에서 너무 멀리 있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들도 소통을 위해 공동으로 쓰는 이미지를 배우고 즐기는 다양한 통로가 필요해요.”
‘우리들의 눈’ 내의 보르헤스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수작업 샘플북을 제작해 보급에 노력하고 있다.
미술 표현 중 시각은 작은 일부
‘우리들의 눈’이 만들어지던 초기에는 시각장애학교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는 엉뚱한 발상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 있었다.
“생각의 차이는 ‘미술’이란 단어에서 나왔어요. 미술과 그림, 이미지는 보는 것과 연결되는 시각예술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어서 시각장애인은 못 보니까 시각적 표현이 불가능하고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 거죠. 저는 미술, 즉 이미지의 시작은 상상력과 오감의 산물이기 때문에 시각은 작은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엄 디렉터에게 미술은 시력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였던 것. 여전히 미술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술은 잠과 사랑처럼 인간의 삶에서 소중한 한 부분이라는 의견도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미술 교육을 시킨 후 가장 큰 변화는 자신을 표현하면서 성취감, 자존감, 인간으로서의 품위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처음에 ‘너를 표현해봐라’ 그리고 ‘그것을 이미지로 보여줘라’ 하고 주문했을 때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어려워했고 제대로 못했어요. 미술 세계에서 가장 많이 동떨어져 있던 시각장애인들은 미술은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했고, 또 콤플렉스를 가장 많이 느끼게 하는 과목이었던 거죠.”
그런데 시도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안 된다’고 하고 자신도 ‘못할 거야’라고 했던 무엇을 뛰어넘는 경험이 되었다.
“저는 그들이 느낀 것을 일본의 한 시각장애인이 말했던 ‘미술 수업은 인간으로 사는 품위를 알게 해주었다’는 고백으로 알 수 있었어요. 미술은 논리와 감성의 조화를 배우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게 하는 힘을 갖게 해줘요. 참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미술의 의미를 시각장애인들의 경험을 통해 재발견하고 있습니다.”
미술가들과 사람들의 생각과 표현이 다른 것처럼 시각장애인도 마찬가지다.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을 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저 같은 경우도, 이 작업을 하며 그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눈빛이 많이 생겼어요. 예술가로 또는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볼 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며 놀랄 때가 많아요. 일반 예술가들과 달리 대상을 대하는 방식이 매우 적극적입니다.”
사물에 대한 선입견이 적고 촉각, 청각 등 다른 감각으로 사물을 접하다 보니 보이는 대로 이해하는 비장애인들보다 형태와 표현 면에서 창의적인 작품이 많다.
“저희는 창의적 표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일을 한다고 보면 돼요. 맹학교 학생들이 만든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의 작품들도 그중 하나인데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전형적인 코끼리의 모습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코끼리스러움’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변화를 몰고 온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는 시각장애인과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코끼리를 만지고 표현하는 것을 통해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창의적으로 풀어보자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다. 2009년 6월, 33명의 인천혜광학교 학생들과 15명의 티칭 아티스트들이 인천에서 광주까지 311.5km 첫 번째 코끼리 로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네 번 시각장애인들이 직접 코끼리를 만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2012년 7월에는 청주맹학교 학생 8명과 관계자들이 코끼리를 만져보기 위해 태국 치앙마이에 다녀왔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은 우리의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비유잖아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고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인간을 보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한다’고 하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눈뜬 사람이 사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메타포로 현재까지도 많이 사용되는 비유입니다.”
엄 디렉터는 이 메타포로 아트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코끼리를 경험하게 하면서 한눈에 파악이 안 되는 거대한 무엇에 다가가는 상상력과 시각장애 학생들의 부족한 스케일 감각에 도전해보는 한편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창의적으로 풀어보려고 했다.
이 프로젝트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참여했던 맹학교 학생들이 훌쩍 성숙해졌고 ‘우리들의 눈’ 활동도 각종 방송과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더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2009년 시작된 프로젝트가 2010년 7월 TEDxSeoul에서 발표됐고 이 발표를 계기로 2013년 EBS 다큐멘터리 가 방송됐다(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TV부문 다큐상과 한국피디협회 PD상 수상). 이어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지학사) ‘작문과 화법’에 실리기도 했다. 동물원, 동물보호단체들과의 네트워크도 생겼고, 2015년 ‘코끼리 주름 펼치다 展’으로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블루메미술관(파주 헤이리) 순회 전시도 했다. 미술 교육과 함께 진행되는 코끼리투어 프로젝트는 12개 맹학교 순회 투어를 계획중이다.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운영
비영리 단체인 ‘우리들의 눈’은 소중한 가치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 덕에 운영되고 있다. 기업 후원을 중심으로 매월 소정의 금액을 후원하는 사람들, 매년 바자회를 열어 행사 수익금을 기부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각 분야에서 재능기부를 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20년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어려움이 생겼다. 운영비 지원이 줄어들어 코끼리 만지기 프로젝트도 잠정 중단 중에 있다. ‘우리들의 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의미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북촌에 갤러리를 열었는데 임대료 때문에 고민이다.
“맹학교에서 진행되는 미술 교육 강사비, 재료비 등 비용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시각장애인들이 개안수술을 하거나 하면 봉사나 후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지만 시각장애인에 대한 미술 교육은 제대로 짐작되지 않아서 그런지 후원이 잘 안 되는 편이죠. 갤러리 장소 또는 후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기업들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국내외적으로도 선례가 드문, 시각장애인과 미술 작업을 하는 ‘우리들의 눈’은 한국 사회에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생활 정보를 주는 복지적 관점이 아닌 예술적 협업으로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어 오해도 많이 샀고 이해받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다.
“장애인을 돕겠다는 착한 마음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수많은 편견과 척박한 물리적 환경을 넘어설 수 있는 예술적 해법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이런 시도에 즐겁게 사심 없이 동참하는 이들을 만날 때 엄청 신이 나죠.”
‘우리들의 눈’이 창설된 지 20년째인 2016년, 그간의 활동 자료들을 정리한 자료집을 만들었다. 이 자료집을 기점으로 20년간 펼쳐졌던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이 대중들과 만나고 우리 사회 속에서 쓸모 있는 문화 예술이 소비되는 방법들을 찾으려고 한다. 그 일환으로 ‘우리들의 눈’은 올해 두 권의 책 출판과 아트상품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이사한 아들네 집에 가보니 전에 살던 집에서는 못 보았던 어항이 거실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귀여운 손녀가 조그마한 손으로 필자를 어항 앞으로 이끌며 “할머니, 아빠가 물고기 사왔어요, 예쁘죠?” 하며 자랑이다. 하긴 우리 아들은 늘 강아지나 금붕어 등을 키워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혼 전에는 필자가 반대했고 결혼 후에는 마누라가 싫다고 해서 이루지 못했다. 남편이나 아들이나 마누라의 입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아 좀 안쓰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평소 며느리가 큰 집으로 옮기면 물고기를 길러도 좋다고 했단다. 이번에 집을 늘려나간 아들은 ‘이때다’ 하며 갖고 싶었던 어항을 설치한 것이다. 크기는 작아도 산소 공급기와 물 순환 기구, 온도계 등 설치 비용이 꽤 들었다고 한다. 아들이 어릴 때 어항을 한번 설치한 적이 있어 그 비용이 얼마쯤 될지 짐작이 됐다.
필자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지금은 저렇게 깨끗하고 맑은 물에 초록 수초가 살랑거리고 자그마한 색색의 물고기가 유영하므로 보기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항 유리벽에 이끼가 생기고 물이 탁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손녀에게 예쁜 어항을 보게 해줘야 할 텐데 걱정스럽다. 무엇이든 생물을 기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어항도 관리가 무척 중요하다. 그러니 아들이 앞으로 어항을 잘 관리해주었으면 좋겠다.
아들이 어렸을 때 잘 보살피겠다며 물고기를 기른 적 있다. 내키지 않았지만 너무나 갖고 싶어 해 허락을 했다. 물고기를 기르면서 신기한 모습도 봤다. 필자는 그때까지 물고기는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구피’라는 색이 고운 작은 물고기는 새끼를 낳았다. 어느 날 보니 어항 안에 아주 조그만 새끼 물고기들이 잔뜩 생겼다. 너무 신기하다며 즐겁게 들여다봤는데 다음 날 보니 새끼들이 온데간데없이 거의 다 사라지고 몇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아들은 어미가 먹이로 착각하고 잡아먹은 거라며 새끼 보호통을 어항 위쪽에 설치했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어미와 새끼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아들 말대로 새끼 보호통에서 어린 구피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신기했다. 어느 정도 컸을 때 통에서 풀어놓았더니 어미와 새끼 물고기가 잘 어울려 지냈다.
작은 물고기였지만 집 안에서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건 가슴 뛰고 신선한 일이었다. 구피는 번식력이 왕성해 새끼를 자주 낳았고 아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어린 새끼를 분양해주기도 했다. 어떤 아저씨는 구피 새끼들을 분양받으려고 우리 동네까지 오렌지 주스를 사 들고 오기도 했다. 인터넷의 물고기 동호회에 들어가면 각종 물고기를 기르는 사람이 매우 많다고 한다. 서로 물고기를 교환하기도 하고 정보도 나눈다는데 참 재미있는 세상이다.
한동안 어항 청소 등 관리를 열심히 하던 아들은 그 뒤 입시에 매달리게 되면서 물고기들을 돌볼 시간이 없어졌다. 작은 어항이지만 손이 보통 가는 게 아니었고 청소를 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물갈이를 자주 해주지 않으니 유리벽에 녹조가 생겼고 물도 탁해져 더는 예쁜 장식품이 되지 못했다. 환경이 좋지 않아서인지 물고기도 다 죽어버렸다. 그때 필자는 다시는 생명이 있는 걸 기르진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아들네 집에 들여놓은 어항은 참 깨끗하고 보기에도 좋다. 어항이 가습기 역할도 한다니 관리만 잘하면 좋은 실내 장식품이 될 것이다. 이제는 물고기를 보며 즐거워하는 귀여운 손녀 손자를 위해서라도 항상 깨끗한 어항으로 관리되기를 바란다.
오른팔을 주로 쓰는 필자의 왼쪽 어깨가 아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왼팔을 많이 사용하거나 다친 적도 없는데 이상하다. 통증이 가장 심할 때는 옆구리에 있는 윗옷 주머니에 물건을 넣거나 뺄 때다. 팔이 구부러지는 90도의 비틀린 각도에서 깜짝 놀랄 만큼 아프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짐작컨대 많이 들어 본 오십견의 증세와 비슷하다. 병을 고치려면 동네방네 소문을 내야 한다고 하여 여기저기 만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저렇게 아프다고 엄살도 부리고 나팔 불고 다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심해지기 전에 병원에 가서 확실한 진단을 받아보고 치료를 하도록 권했다. 우선 인터넷을 찾아보니 어께가 아파봤자 죽는 병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다고 안심을 시키는 의사가 있는가하면 방치하면 나중에 수술까지 해야 한다고 엄포를 주는 의사도 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의학적으로 유사한 어께아픔이 전부가 오십견이 아니란다. 대표적으로 오십견이라는 유착성 관절낭염이 있고 회전근개 파열과 석회성 건염이 있다고 한다. 다치지도 않았는데 어께가 아프면 무조건 오십견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 어께가 심하게 아픈 사람은 밤중에 응급실에 뛰어 갈 만큼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프지 않다. 참고 버텨보려다가 미련한 짓 같아 동네 정형외과에 가보기로 했다.
접수를 하고 간호사에게 증상을 말하니 우선 엑스레이를 촬영을 하고 기다리란다. 잠시 뒤 호출에 의해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의 컴퓨터에 필자의 엑스레이 촬영사진이 나타났는데 어께에 하얀 물체가 보인다.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석회성 건염이라며 칼슘이 뼈처럼 굳어있는데 이것을 초음파로 깨어서 없애야 하며 일주일에 두 번씩 물리치료를 몇 달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대기환자들 때문이겠지만 치료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의사가 말하지 않은 소염진통제 주사를 얼떨결에 엉덩이에 맞았다. 다음에 물리치료실로 갔다. 침대에 누워 어깨를 냉찜질 하고 초음파로 돌을 깬다는데 기계가 툭툭툭 아픈 곳에 충격을 가한다. (인터넷으로 찾은 정보에 의하면 실제는 딱딱한 돌이 아니고 치약과 같은 석회성 액체인데 충격을 가해 서서히 없어지게 하는 방법이란다.) 마지막에 온열치료를 하고 테이프를 붙인 후 치료가 끝이 났다. 치료비가 5만 5000원 나왔는데 의료보험이 안 되는 물리치료비가 4만 5000원이나 들어있다. 약값은 3일치 약값은 1500원으로 너무 저렴하다. 약사에게 무슨 약이 처방되었느냐고 물어보니 소염진통제와 위를 보호하는 약이 들어 있다고 했다.
수술하지 않고 병명도 확실히 알았으니 기분은 개운하다. 며칠 뒤 다시 병원에 갔다. 의사는 차도가 있느냐고 물었다. 많이 좋아졌다고 대답하자 계속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1차 때와 똑 같은 절차에 의한 물리치료를 받았다. 엑스레이는 더 이상 찍지 않았다. 병원비가 이번에는 50,900원이 나왔다. 엑스레이도 찍지 않았는데 병원비가 별로 내려가지 않아 실망했다. 원인은 의료보험이 안 되는 물리치료비 때문이었다. 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이런 간단한 치료에 병원비가 5만원씩이나 하는 것은 너무 비싸다. 물리치료도 치료인데 왜 의료보험 적용을 못 받는지 접수창구에서 옥신각신 따졌다.
환자는 병원에서 약자다. 불이익이 두려워 의료비가 비싸도 비싸다는 말을 못한다. 필자의 항의에 당황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수납을 담당하는 직원이 대답을 못한다. 무조건 전산으로 처리한다고만 말한다. 창구직원 말이 다음치료부터는 고급물리치료가 아닌 간단한 물리치료로 병원비를 줄여주겠다고 말했다. 글쎄 의사도 아니고 접수창구의 간호사로 보임직한 여직원이 의사가 할 수 있는 치료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의심스러웠다.
병원에 갈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병원 수입을 의도적으로 늘리려고 환자로서는 불리한 의료보험 비 급여 항목을 병원에서 선호한다는 느낌이다.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되면서 약값은 너무 싸졌지만 매월 20만 원 이상씩 의료보험료를 내고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병원에 가는 건강한 필자 같은 환자의 입장에서는 병원비가 비싸다고 느낀다. 외래진료비 총 7만 8360원의 70%인 5만 5000원을 1차 치료비로 부담 시키고 2차는 외래진료비 총6만 4770원 중 79%에 달하는 환자부담금 5만 900원을 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들어 4~5개월 동안 지난날 잃어버렸던 병마와의 싸움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친한 친구가 연말에 건강검진결과 암 진단을 받으며 긴 시간을 아파해야 했고, 죽마고우로 필자의 아픔을 걱정하며 위로해주던 친구마저 갑상선암수술로 생활의 리듬이 깨져버려 병마와 동반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여성암 발병률 1위인 갑상선암과 유방암이 50대 중반의 친구들에게 건강의 적신호를 전해 주고 있었다.
세 사람 중 한사람이 암 환자라는 말을 실감하며 현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까마득한 옛일이라 생각했는데 10년 전 건강검진결과 유방암과 갑상선암의 진단과 함께 몸 전체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하고 난 암센터에 입원을 했다.
생존과의 싸움, 그리고 나와의 전쟁에서 싸우고 있었던 사람들 사이로 스며들며 나는 모든 삶을 포기한 채 인생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항암하면 언제부터 머리가 빠지나요?” “수술하면 많이 아프나요?”하며 난 마지막이 될 거란 생각으로 아줌마파마를 하고 딸내미와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 놓았다.
병실에 들어 간 순간 ‘암과의 사투 끝이 이 모습이란 말인가?’ 힘들어 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며 ‘몇 달 뒤 나의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세브란스병원의 뒷동산을 배회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한 가닥의 희망을 주십사하고 절실히 기도했던 순간이 기억된다.
전신 곳곳의 이상발견으로 ‘너무 고생만 해서 나를 미리 데려 가시려나?’하며 스스로 위로를 하기도 했던 순간, 검사결과마다 승전보가 전해졌다. 걱정이 반으로 줄어든 순간 수술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항암치료를 할 수 있음을 감사할 즈음 간호사가 본관으로 이사를 가란다. ‘여기서 나의 끝을 봐야하는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본관으로 이사하라며 모든 간호사님들이 축하의 박수를 살짝 쳐 주셨다.
이제는 암수술 날이 다가오고 항암치료를 받아도 모두 이겨낼 수 있으리란 각오아래 난 거뜬히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하고 나와 보니 친정엄마보다도 더 다정다감하셨던 연세가 많으신 큰형님께서 위로를 해 주셨다. “빨리 나으라고.”
대학병원에 한 달여를 입원해 있어도 점점 기분의 상쾌해짐은 무거웠던 나의 마음을 멀리 날려 보냈기 때문일까? ‘훗훗 가발은 어떤 걸로 맞출까? 단발머리? 커트머리?’ ‘수술과 항암이여 나에게로 오라. 너와 함께 가리라.’ 그 시간이후로 암이란 친구를 사귀기로 다짐하고 이제 어찌하면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항암의 울렁거림은 나를 얼큰하면서도 맛난 음식을 찾게 만들었고 수술의 아픔은 성숙이란 성을 나에게 쌓아 주었다.
항암이 끝나고 상처가 아물고 나니 별천지를 다녀 온양 난 힘이 솟았다.
힘들다고 누워 있고 싶지가 않았다. 새로운 생명을 주신 그분께 열심히 성실하게 살겠노라고 약속을 하며 그 동안 한이 맺혔던 공부에 정진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요양보호사자격증,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미술심리치료사, 웃음을 전파하기 위해 실버웃음치료사와 행복웃음전도사 등의 여러 자격증을 섭렵한 다음 컴퓨터 자격증을 넘어 이젠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도전하여 정복하노라니 암이란 친구는 옆에서 나를 대견하다고 토닥토닥 다독여 준다.
건강정보를 공유하고자 암과의 사랑교실에 갔다가 좀 더 배우고자하는 맘을 떠나 내가 할 수 있다면 하고 봉사를 하고자 시작한 것이 5년이 지나가고 있다.
봉사를 하면서 점점 내가 힐링 받고 있음에 감사하며 바쁜 시간이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힐링 받고 싶다.
10여년 전만해도 상상도 못할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르신들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어서 너무 고마워요” 하시는 요즘 어르신말씀이 나의 생에 이슬이 되어 암과의 사투가 아니라 동반자로서 어느 곳에서든 진정한 빛을 발하면서 스마트하게 그리고 멋지게 100세시대로 진입하고 있었다.
장례에 대한 걱정은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장례비용을 아끼기 위한 방법으로 꽃 장식 하나 없는 작은 장례식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한편에선 시신을 교육용으로 기부하겠다는 신청자가 26만 명을 넘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장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상조 관련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상품 구매가 안식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은 삶의 평화로운 마지막을 위해 장례 상품을 구매할 때는 계약 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상조시장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일반 보험회사에서 운용하는 상조보험과 상조회사에 판매하는 상조상품이다. 이 두 시장은 엇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크다. 상조보험은 금융상품의 일종으로 보험업법의 규제를 받고 금융감독원이 감독한다. 이에 반해 상조회사의 상조상품은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의 규제를 받는 선불식 할부거래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관리한다.
상품의 특성도 당연히 다르다. 상조보험은 계약에 따른 심사가 있고, 가입 거절이나 보장의 일부 제한이 있고, 자살과 같은 고의적 사망은 보장을 받을 수 없다. 대신 가입자가 사망하면 미납입 보험료 납입 의무가 없다. 이에 반해 상조상품은 가입에 대한 제약이 없는 대신, 사망 후에도 납입 의무가 사라지지 않는다.
보험사 개점휴업, 상조회사는 성장 중
현재는 소비자가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없게 됐다. 보험업계에서 운용하던 상조보험을 대부분 철수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재무건전성 등을 이유로 보험회사를 선택하고 싶어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보험업계에서는 동부화재, 한화손해보험, MG손해보험이 2015년을 마지막으로 상조보험 판매를 중단했고, 그나마 끝까지 남아 있던 KB손해보험도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상품 판매를 중단한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인 가입 권유도 하지 않아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바탕으로 한 상조회사의 성장으로 인해 판매가 저조해지면서 손해율이 높아진 것이 판매 중단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는다. 몇몇 보험회사는 다른 보험상품의 특약 형태로 서비스를 전환한 상태다. 조만간 상조보험이라는 단어는 사라질 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상조회사의 상조상품 가입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하반기 상조업체 주요 정보 공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9월 현재 가입자 수는 약 438만 명으로 6개월 만에 19만 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는 규모가 큰 상위 업체에 몰려 있는데, 전체 가입자의 77.6%가 가입자 수 5만 명 이상인 21개 업체에 가입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입자 수가 자본력과 안정성으로 직결되는 상조업계의 특성상,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100억원 이상의 선수금을 보유한 55개 업체의 선수금은 전체 선수금의 95.2%에 달한다.
가입자가 크게 늘면서 건전성이 확보될 토대는 마련됐지만, 서비스의 질은 아직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10월까지의 1372소비자상담센터 상조 관련 상담건수를 보면 7503건으로 2015년 상담건수(1만1779건)에 비해 감소 추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적은 숫자는 아니다.
가입자 울리는 다양한 꼼수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국내에서 활동 중인 상조회사는 195개사에 달한다. 이 중에서 옥석을 가릴 방법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찬찬히 살펴보면 안정적인 회사를 구분해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고 조언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www.ftc.go.kr)에서 가입을 고려하는 회사의 정보를 확인해보는 것이다. 정보공개 메뉴에서 선불식할부거래사업자를 선택하면 회사 정보를 상세히 볼 수 있다. 이외 검색할 수 있는 정보도 꽤 많다. 기본적인 정보는 물론이고 자산과 부채, 자본금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주의 깊게 봐야 할 내용은 선수금 보존비율과 보전계약 체결기관, 그리고 총 선수금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가입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선수금 보전기관에 존재하는지, 납부한 회비 누계액이 정확한지 직접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자신의 이름이 보전기관에 기록돼 있어야 폐업 등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때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안마의자와 여행상품 등을 끼워서 파는 상품이 많아져 이에 대한 주의도 요구된다. 결합상품의 경우 상품별 판매 대금을 정확히 확인하고, 계약서를 구분해서 작성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또 여행상품은 판매 주체가 상조업체라 해도 할부거래법의 ‘장례 또는 혼례’에 준하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이런 결합상품들은 계약 금액도 크고, 계약기간도 길어 문제가 발생하면 골칫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조업체의 영업을 대행하는 모집인(상조 계약 중계자)들로 인한 횡포도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상당수 모집인들은 상조회사 소속 직원이 아닌 대리점 형태의 개인사업자인 경우가 많은데 소비자 입장에선 이들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계약 과정에서 모집인의 설명에만 의존하지 말고, 계약서나 약관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청약 철회는 계약서를 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가능하다.
이밖에 상조상품을 판매하면서 실제 계약은 수의(壽衣) 판매계약으로 체결해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일시불 계약으로 유도해 할부거래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꼼수를 쓰는 경우도 있으므로 대금을 2개월 이상의 기간에 걸쳐 2회 이상 나누어 지급하고 서비스를 받는 거래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일시납으로 대금을 내거나 계약금을 우선 지불한 뒤 장례 서비스를 받은 후 잔금을 내는 형태로 계약을 하면 법 적용을 받을 수 없어 해약할 경우 환급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10년 새 12배 늘어난 ‘성조숙증’이 뭐길래
우리나라에서만 7만5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진료를 받은 성조숙증은 이제 익숙할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성조숙증을 앓는 아이들은 2006년 6400명에서 2015년 7만5000명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10년 만에 12배가 늘어난 셈이다. 성조숙증이란 쉽게 말해 신체가 너무 빨리 성장해 문제가 되는 질환을 말한다. 여아는 8세 이전에 유방이 발달하고, 남아는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며 사춘기가 시작되는 2차 성징이 나타난다. 성조숙증은 주로 여아들에게 자주 발생하며 발생 후 호르몬 조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여아는 10세 무렵에 월경을 시작할 수도 있다. 월경은 여자의 몸이 출산할 준비 과정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너무 이른 나이에 시작해선 안 된다. 남아의 경우 키가 다 크기 전에 2차 성징이 시작돼 성장이 멈추기도 해서 남자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성조숙증의 원인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유전적 요인, 식습관과 위생 수준, 소아비만 증가, 스트레스 등이 조기 발육에 영향을 끼친다고만 알려져 있다.
허약한 뚱뚱이 체질은 위험군!
평소 체질이 약해 잦은 배앓이를 하는 아이들의 경우, 학교나 유치원 등에서 겪는 단체생활로 인해 장염 등에 노출되기 쉽다. 설사, 복통 등을 반복하고 면역력과 소화 능력이 저하되면 식욕부진이 일어나고 이는 영양 섭취 미달로 인한 성장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장내 기능이 약해지거나 식욕부진이 지속되면 전체 ‘면역력’이 약해져 성조숙증 외에도 다른 질병 발생률도 높아진다.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단체생활로 아무래도 감염원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평소에 면역력을 키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면역력을 보강한다고 전문가와의 상담 없이 이런저런 영양제나 보양식을 마구 먹이는 것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아이들은 아직 성인만큼의 소화력이나 흡수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보다 면밀한 일대일 처방이 중요하다. 또 무분별한 항생제 복용 역시 장내 유익균을 감소시켜 오히려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반면 아이가 너무 잘 먹어도 문제가 된다. 요즘에는 체력은 부실하고 덩치만 큰 아이들이 많아졌는데 이는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정크푸드나 서구화된 식습관에 익숙해진 때문이다. 과다한 영양으로 오장육부는 허약하고 몸집만 큰 ‘허약한 뚱뚱이’ 체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허약한 체질에 비만이 겹치면 성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이럴 경우 성장호르몬 대신 나이에 맞지 않는 성호르몬이 과다 분비돼 성조숙증을 앓게 되고, 몸은 이미 2차 성징이 일어났다고 착각해 조기에 키 성장이 멈춰버리기도 한다.
만약 우리 손주가 성조숙증이라면
손주가 또래보다 빨리 자라는 것 같다면 먼저 정확한 검사와 임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봐야 한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 또는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로 혼자 섣불리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면 병을 키우는 상황이 된다.
성조숙증이 의심되면 발병시기, 진행속도, 약물투여 등에 대해 병력 청취를 한다. 이후 신장, 체중, 2차 성징 발생 정도, 색소침착 등에 대한 진찰을 한다. 골연령(骨年齡) 검사는 주로 왼쪽 손목 X선 검사 또는 호르몬 자극검사 등의 임상적 방법으로 진단한다.
성조숙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치료에 들어가야 하는데, 양방과 한방의 치료 방법은 차이가 있다. 일반 병원에서는 호르몬 치료를 한다. 대개 4주마다 한 번씩 근육주사로 성선자극호르몬(여성의 난소와 남성의 고환에 작용해 발육과 성호르몬의 생성과 분비 등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한다. 호르몬 치료를 진행하는 동안 성호르몬을 억제해 성장 속도를 늦추고 골 성숙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것은 2차 성징의 쇠퇴가 일어나는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는 보다 근원원적인 치료에 집중한다. 아이만의 체질적 특성과 성장 속도에 맞는 일대일 맞춤보약을 지어 복용하도록 하거나 약침시술 및 생활관리 처방을 한다. 이는 신체 성장의 정상 속도를 찾아 제대로 맞추는 치료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조숙증을 받아들이는 보호자의 태도다. 한창 성장하는 아이들은 또래와 자신의 몸이 다르다는 사실에 매우 민감할 수 있으므로 따뜻한 말로 차분하게 설명해서 이해시켜야 한다. 예를 들어 치료하지 않으면 빨리 월경을 시작해서 큰일이 난다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키 성장이 멈춰버린다는 등의 겁주는 말은 위험하다. 그보다는 “보다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지금 속도를 맞추는 과정”이라고 설명을 해주는 건 어떨까. 조숙한 신체를 갖게 된 아이들은 또래 집단의 시선에 예민해질 수도 있으니 “달리기 해봤지? 친구들보다 한 걸음 앞섰을 뿐이야, 곧 친구들도 따라올 거야”라는 설명으로 아이가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
윤정선 한의사
하우연한의원 대표원장, EBS 육아학교 소아청소년과 분야 BEST 육아멘토, 윤스한의원 대표원장,
소아한방 편 공동저자
만 65세 생일이 다가 오자 국민연금공단에서 연락이 왔다. 먼저 편지로 기초연금 신청을 하라며 서류를 보내왔다. 신청구비서류로는 필수제출 서류인 사회보장급여 신청서, 소득 재산신고서, 금융정보 등 제공동의서, 신분증, 통장 사본 등이었다. 다음에 스마트 폰 문자로 부부합산 재산 소득에 따라 최대 20만원부터 최소 2만원까지 기초연금을 지급 받을 수 있으니 상담을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주거지 동 주민센터나 국민연금공단에 반드시 사전 전화 상담을 하고 방문하라는 것이었다. 연락 온 국민연금공단 전화번호로 바로 연락했다. 먼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묻더니 그 자료를 바탕으로 소득을 체크하는 모양이었다. 한 회사에서 매달 필자에게 자문료로 지급하는 월급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일단 확실히 드러난 소득이므로 인정했다. 그리고 현재 연금 수령 액수, 은행 예금액, 거주하는 집이 자가인지 월세인지 물었다. 솔직하게 답을 했더니 필자는 하위 소득자로 볼 수 없으므로 기초연금 대상에서 탈락이라고 했다. 필자도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기대도 하지 않았다.
상담 과정에서 보니까 연금공단에서는 적어도 필자의 재산 정보는 기초적으로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집, 자동차 등을 재산으로 보아 자동적으로 파악하고 과세하고 있는 것과는 달랐다. 같은 국가 공기업인데 왜 정보가 공유되어 있지 않느냐고 물으니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양심적으로 재산 상태를 밝혔으나 고의적으로 감출 경우 그대로 믿고 기초연금을 주게 되는 것 아니냐며 따져 물었다. 그러나 ‘금융정보 등 제공 동의서’를 내면 조사에 들어가서 다 나온다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출마자들이 노인 공약으로 기초연금을 대폭 인상하겠다고 공약했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내용이다. 소득 하위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률이 심각하다니 빈곤하다고는 보기 어려운 필자는 당연히 양보해야 한다.
‘노후 파산’이라는 일본 책을 보면 일본에서도 소득 하위자들이 사회 문제화 되는 모양이었다. 독거노인으로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초연금이라는 제도가 있는데도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법을 잘 모르거나 국가에 신세를 진다는 미안한 생각 때문이라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법의 문제는 하위소득자에게만 맞춰져 있는 것이다. 가령 아무리 소득이 없어도 집을 하나 소유하고 있으면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집을 팔면 대상자가 되지만, 집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안 팔고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기가 살던 집에서 죽기를 원한다. 현행법과 현실과의 괴리인 것이다.
노후파산은 처음부터 파산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노인들이 부부연금으로 연명한다. 그러다가 배우자가 죽으면 연금이 반 토막 나면서 경제난에 허덕이게 된다. 그렇게라도 아슬아슬하게 먹고 살만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가 늙어서 병이 생기거나 하면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고 소득하위자로 추락한다. 그런 일이 없도록 기도하는 것이 상책이다.
“배낭여행 가려는데 어디가 좋을까?” 딸아이의 물음에 “인도가 좋다던데!”라고 무심코 대답하는 아빠. 그러자 옆에 있던 엄마가 한마디 거든다. “인도는 위험하지 않을까? 당신도 함께 다녀오는 건 어때?” 그렇게 보호자 신분(?)으로 아빠는 딸과 여행을 떠났다. 딸의 꿈으로 시작된 배낭여행은 이제 함께하는 꿈으로 성장했고, 아빠는 딸의 보호자가 아닌 꿈의 동반자가 됐다. 어느덧 8년 차, 환상의 배낭여행 콤비 이규선(62)·이슬기(32) 부녀의 여행기를 들어봤다.
◇ 아빠 이규선
30년간 다닌 은행에서 은퇴 후, 시골로 내려가 자연인으로 살고 있다. 딸 덕분에 여행에 눈을 뜬 뒤, ‘어디로 떠나지?’라는 즐거운 고민에 빠져 지낸다. 자타공인 ‘딸바보’라 불리길 좋아하는 푼수 아빠다.
◇ 딸 이슬기
삼성맨을 그만두고 놀이·공연·강연을 기획하는 액션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추억부자가 되길 바라는, 또 무엇보다 부모님의 ‘베스트프렌드’가 되길 바라는 철부지 딸이다.
◇ 이규선·이슬기, 우리 부녀의 여행은?
여행 이력 8년 차. 인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15개국 111개 도시 여행
여행 콘셉트 청춘여행! 나이와 무관하게 자기가 꿈꾸는 걸 실현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청춘!
여행 시기 목표로 했던 꿈을 이루고, 그다음 꿈을 향해 갈 때
역할 분담 아빠) 그날그날 일과 짜기&요리담당, 딸) 예약 및 정보수집
여행 경비 현재까지는 아버지와 자신을 위한 선물로 딸이. but, 돈 관리는 아빠가!
사실 말은 쉽지만 가족여행은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보다 훨씬 더 어렵다. 어쩌면 ‘가족여행’이라 쓰고 이렇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싸운다. 고로 가족이다.’ 에 딸 슬기씨가 쓴 글귀다. 낯선 이국땅에서 아빠는 딸에게 맞추느라, 딸은 아빠에 맞추느라 서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을 터. 그러나 아빠와 딸이라서 다시 애틋한 가슴으로 서로를 껴안을 수 있었던 그들이다.
첫 배낭여행, 싸우며 싹 틔운 부녀의 동지애
아빠: 인도에 도착하고 처음 며칠은 거의 공포 수준이었죠. 여행 초보자가 감당하기엔 버거웠거든요. 그런 데다가 딸이 이거는 이렇게 해라, 저거는 하지 마라는 둥 잔소리를 하니 서럽더라고요. 그때만큼은 한국에 있는 아내가 무척 보고 싶었어요.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아빠와 딸이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어느새 동지애를 느끼는 친구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전보다 대화거리도 풍부해졌고, 딸에 대한 믿음도 더 확실해졌죠.
딸: 처음 배낭여행을 떠나는 아빠인데, 친구와 함께 간다고 착각하고는 티케팅 30분, 배낭 싸기 한 시간, 그리고 여행 관련 책 한 권 달랑 가방에 넣고는 여행 준비를 끝내버렸죠. 여행 초반에는 아빠와 하루에 열 번, 아니 그 이상 싸웠어요. 그래도 그 넓고 낯선 곳에서 믿을 사람은 아빠와 나뿐 아니겠어요. 긴급한 상황에 서로 의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똘똘 뭉치게 되더라고요.
서로의 낯선 얼굴과 마주하다
아빠: 살면서 자식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우린 자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슬기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집 밖에서 본 딸애의 모습은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나? 이런 모습도 있네? 신기하고 대견하기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 슬프기도 했습니다.
딸: 내게 익숙한 아빠의 모습은 ‘가장’이라는 책임의 가방을 메고 있는 남자였어요. 히말라야에서의 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촛불을 켜고 카드게임을 하며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죠. 아빠는 어떤 학생이었는지, 첫사랑은 누구였는지…. 이야기 속에는 나보다 어린 나의 아빠가, 그리고 내 나이의 아빠가 있었습니다. 아빠라는 책임감을 어깨에 메기 전, 그도 한 소년, 한 남자였다는 것을 알게 됐죠. 여행을 하면서 아빠는 내게 ‘이규선’이라는 한 사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꿈과 희망, 열정으로 가득한 멋진 남자였습니다.
“또 같이 갈까?” 여행 유발자는 누구? 아빠? 딸? 둘 다!
아빠: 첫 여행 때 호되게 (딸아이에게) 시집살이를 하고 다시는 슬기와 여행 가지 않겠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60대 버킷리스트, 유럽여행을 위해 다시 딸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여행을 다닌다고 다녔지만 여행 일정, 이동 경로와 수단, 숙박까지 스스로 해결하기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혼자 끙끙거리는데 때마침 슬기가 전화를 해 여행을 가자는 거예요. 첫 여행에서 당한 것이 떠올라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결국 함께 떠나기로 했죠.
딸: 여행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면서, 또 다른 꿈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휴식시간과 같아요. 그럴 땐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하든 응원해줄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죠. 내겐 아빠가, 아빠에겐 내가 그런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주 함께 떠나는 것 같아요. 여행을 다녀오면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자연스럽게 ‘이번엔 어디 갈까?’라는 말을 꺼내게 되죠.
‘부모·자식’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아빠: 은퇴 후,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이겨내기 어렵다고 느꼈을 때, 사랑스러운 딸 슬기가 배낭여행이라는 요술로 그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무조건 떠나세요. 나의 분신, 자식과의 여행은 여러분을 행복한 추억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딸: 온 가족 여행도 좋지만, 장기 여행이라면 모녀, 부자 등 두 사람이 떠날 것을 권합니다. 여행은 보러 가는 것보다 느끼러 가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해요. 여럿보다 단둘일 때,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죠. 이왕이면 상대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여유 넘치는 곳으로 가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도 추천할 만합니다. 걷고 싶은 데서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 생각만큼 부담스럽지 않아요. 함께 걸으며 건강도 챙기고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답니다.
◇ 자녀와 함께 떠나는 해외여행 Tip 10가지
1. 망설이지 말자. 때는 바로 지금!
2. 잘만 먹어도 성공한 여행이다. 필수품으로 팩소주와 라면, 그리고 고추장.
3. 많이 걷자. 여행 책자와 지도를 들고 발이 가는 대로 무작정 걸어보자.
4.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다양한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 유명 관광지보다 볼거리가 더 풍성할 때가 많다. 대중교통 표를 직접 구입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5. 긴장을 풀고 (자식보다) 앞장서 가보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편해지고 여행도 한결 즐거워질 것이다.
6. 사진을 많이 찍자. 셀카봉은 필수!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고 싶다면 몰래 찍는 파파라치 컷을 추천한다.
7.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자. 자녀가 골라주는 곳도 좋지만, 직접 여행지를 찾아 떠나면 즐거움과 더불어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다.
8. 다양한 숙소를 경험하자. 호텔, 게스트하우스, 호스텔, 현지인의 집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현지인의 집을 추천한다.
9. 그 나라 언어를 알지 못해도 여행을 ‘잘’ 할 수 있다. 물건을 사고, 음식을 주문할 때 직접 도전해보자. 손가락 몇 개와 간단한 영어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 자신감이 붙는다.
10. 배낭여행이지만 한 벌쯤은 휴양지에서 갖춰 입을 복장을 챙기자. 차려입었다는 기분 덕분에 해변에서 마시는 맥주가 더 맛있게 느껴질 것이다.
새봄이 찾아온 4월 초 휴일 진달래ㆍ개나리ㆍ벚꽃이 앞 다투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친구들과 봄 향기에 취해 경기 수리산 등반을 즐겼다. 모두가 초보 은퇴기를 지나서 뭔가 경륜이 붙기 시작하는 시기가 되었다. 뒤풀이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면서 자연스럽게 ‘시니어 새봄’ 이야기로 이어졌다.
제일 먼저 조심해야 하는 일이 주위의 ‘유혹’이다. 은퇴 초기에는 이른바 모시기 유혹이 하늘을 찌른다. 좋은 자리, 고수익 등 이른바 공짜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요사이는 정부의 창업지원정책에 따라 묻지마 창업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헤어나기 어렵다.
은퇴준비를 돈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으면서 정작 중요한 건강문제를 별로 중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치매로 장기간 고생한 부친의 상을 치른 한 친구가 불치병에 걸리면 연명차료를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강 건너 산불처럼 쉽게 말하지 말자. 막상 닥치면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막상 은퇴 후 필요한 돈에 대해 계산해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꼭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인지 조달방법은 어떠한지 구체적인 방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장기적인 수지균형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의사소통이 부족하여 한 사람만 재무적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흔히 경제권을 쥐고 있는 일방의 결정으로 예기치 않는 손실을 보아 만회하지 못한다. 자산관리 정보와 기법은 날로 변하고 있는데 부동산이나 증권 투자는 과거방식을 믿다가 낭패 보기 일쑤다.
은퇴 후의 삶에 대해 대화하지 않는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 의사결정을 해두지 않는다. 부부 중 한 사람이 더 오래 살 것이다. 국민연금 유족연금도 상속된다. 부부 재산공유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다. 양도소득세, 상속세 등에도 유리하고 상호신뢰가 생겨서 좋다. 상속재산의 처리 등 사후분쟁 예방을 위하여 유서가 필요한 대목이다.
젊은 시절의 건강을 영원하리라 착각하고 치료비 및 장기 간병비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 수입과 지출은 줄어들지만 몸은 점점 쇠약해져서 의료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은퇴세대의 치명적인 단점이 자녀지원을 우선하고 자신의 노후준비를 잊는 경우가 많다. 먹이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먹이를 입에 넣어주기까지 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과잉보호로 자생력을 잃으면 허깨비를 만들 뿐이다. 취업절벽, 결혼절벽이 부모들의 탓이 아닌지도 곰곰이 살필 필요가 있다.
세상에 일확천금은 함정이다. 삶길 70년처럼 살길 30년을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