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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따뜻한 마음
- 언제부턴가 필자는 메일로 ‘따뜻한 마음’이라는 글을 받고 있다. 주로 교훈이나 선행에 대한 이야기로 감동적인 내용이 많은데 특히 오늘 받은, 어느 젊은 부부의 이야기는 무뚝뚝한 필자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눈시울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야근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돌아온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매번 침대의 자기 자리에 남편이 먼저 누워 있었다고 한다. 너무 피곤했던 아내는 그때마다 화를 내며 남편에게 비키라고 했고 남편은 배시시 웃으며 자리를 내어주었단다. 어느 날 아내가 병원에 입원할 일이 생겼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병실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자리가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또 내 자리에 누웠었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상해 “당신 또 내 자리에 누워 있었지?” 하고 남편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 남편은 그저 가만히 웃기만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한마디했다. 안 그래도 환자 침대에 누워 계시기에 안 된다고 했더니 아내가 유별나게 추운 걸 못 참으니 내가 누워서 미리 자리를 덥혀놔야 한다고 하더란다. 순간 아내는 구박을 받아가면서까지 왜 그렇게 남편이 자기 자리에 누워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의 행동을 장난이라고만 생각하고 짜증을 냈던 게 매우 미안했을 것이다. 기념일이나 생일에 근사한 선물이나 받아야 자신을 생각해주는 것이라 믿었는데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남편의 마음이 고맙고 감동적이었을 것 같다. 작은 부분에서 그렇게까지 아내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필자도 남편 생각이 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필자 남편은 화초 키우는 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식물을 좋아해서 화분을 들여놓고 싶어 했지만 좁은 거실에 뭘 가져다 놓는 것이 싫었던 필자는 항상 화를 내며 반대했었다. 남편은 한때 사기를 당해 시내 요지에 있던 알토란 같은 건물을 날려버린 터라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 마음을 잘 아는 필자이지만 지금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 그 후로 원래 애교도 많고 상냥했던 필자는 남편에게 무뚝뚝하고 매서운 아낙이 되어버렸다. 필자가 싫어하니 남편은 눈치를 보며 화분을 하나씩 들여놓기 시작했고 어느새 거실 라디에이터박스 위에 쪼르르 난이며 꽃 화분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어느 날 필자가 몹시 화를 내며 왜 저런 걸 사들였느냐며 신경질을 부려도 아무 말이 없었다. 어느 날은 난에 꽃이 피었다며 은은한 향기를 좀 맡아보라고도 했고 예쁜 색으로 피어난 이름 모를 꽃을 감상하라며 권하기도 했다. 필자는 남편 앞에서는 관심 없는 척했지만 어느 날부터 그쪽으로 자꾸만 눈이 갔다. 좁은 공간에 참으로 앙증맞고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 남편이 있을 때는 관심 없는 듯 행동했지만 남편이 없을 땐 가까이 다가가 향기도 맡아보고 “너 참 예쁘구나!” 하며 말도 건넸다. 자신의 큰 잘못을 알기에 군말 없이 투정을 받아준다는 걸 알면서도 고운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필자가 속으론 안타깝고 미안하기도 하다. 남편은 꽃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기분도 좋아질 것 같아서 필자를 위해 모종을 사가지고 와 꽃을 피웠다고 한다. 필자를 위해서 뭐든지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남편의 마음을 무시하고 있었는데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남편의 마음이 더욱 이해되고 가슴속으로 따뜻함이 한없이 스며드는 것 같다. 이제는 그만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남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줘야겠다.
- 2017-03-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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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지에서 생긴일] 꽃구경은 집에 가서 동네에서 할께요!
- 몇 년전 봄에, 언니와 함께 경주의 보문단지로 ‘왕벚꽃’구경을 갔다. 왕벚꽃 구경을 하기에 가장 좋은 날로 골라 관광여행사에 예약을 했다. 필자는 버스만 타면 차멀미를 심하게 해서 관광버스로 갈 수 있는 것도 늘 기차로 간다. 이번에도 KTX를 타고 신경주역에 내리니 우리에게 문화 유적을 설명해 줄 가이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12인승 봉고차에 몸을 싣고 달리는 차 안에서 어린아이 처럼 마냥 신바람이 났다. 가이드는 운전하고 가는 내내 보문단지의 왕벚꽃을 은근히 걱정했다. 바로 전날에도 비가왔기 때문에 벚꽃이 다 떨어져 버렸으면 어쩌나 해서다. 잦은 비바람으로 인해 꽃이 피는대로 모두 떨어져 버렸다. 가이드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바람에 꽃이 떨어져서 꽃구경이 힘들겠어요 매우 아쉽게 됐네요”하고 말했더니, 그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느 40대의 여자 관광객이 큰소리로 “괜찮아요, 꽃구경은 집에 가서, 동네에서 하고, 여기서는 경주 구경만 할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런 멋진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이 60살이 넘어도 아직까지 저런 아름다운 마음, 저런 밝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그녀는 스스럼없이 나온다. 관광 목적이 ‘왕벚꽃 구경’인데, 꽃구경은 집에가서, 동네에서 한단다. 그 말이 재미있고, 재치있다. 참으로 긍정적이고 밝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녀가 여름날의 이슬을 머금은 청포도처럼 싱그럽게 보인다. 나도 왕벚꽃 구경은 못해도 괜찮다. 그녀를 만난 것만으로도 벌써 관광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주여행은 큰 수확을 거둔 기분이다. 다른 사람들은 꽃을 보려고 왔는데, 꽃을 볼 수 없다고 투덜대고 불평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부정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들도 보통 이런 사람이다. 그리고 나도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는 저 여인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아! 나는 오늘 젊은이에게 한 수 배웠다.
- 2016-06-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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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유재(松由齋)의 미술품수집 이야기] 맺힌 그리움, 꽃으로 피고
- 꽃은 환희의 절정이며, 새로운 생명을 이어가는 자연의 축복이다. 인간 세상에 꽃이 없다면 단 며칠도 생명을 유지할 식량을 구할 수조차 없다. 꽃은 지극히 소중하고 귀하면서도, 너무 흔하게 널려 있다. 아기가 연필을 잡으면서 제일 먼저 그리는 것도 꽃이며, 출생의 축하 꽃다발에서 생일, 입학, 졸업, 결혼,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할 때에도 꽃송이로 추모한다. 모든 화가들이 꽃을 그리는 데는 어떤 감정이 이입되기 때문일까? 갓 피어오르는 꽃봉오리에서 마른 꽃묶음까지 다양한 형태의 꽃그림을 보며 우리는 화가들의 속내를 엿보려 한다. 여러 해 전 미술품 경매회사에서, 국내 은행 합병에 따른 소장 미술품을 경매에 올린 일이 있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화가들의 전시회를 통해 그림을 구입하거나, 유수한 화랑에서 구입하므로 출처, 진위 등은 염려할 필요가 없고 다만 작가와 가격에 유의하면 된다. 평소 전시회를 관람하며 눈에 담아 두었던 김경희(1948~ )화가의 꽃그림 ‘또 하나의 열정’을 그 경매에서 만나 운 좋게 낙찰 받았다. 80호 크기의 대형 그림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작가는 건축학을 전공하였지만, 일찍이 박고석(1917~2002) 화백과 전상수(1929~ ) 화백을 사사하여 화업을 닦고 미국 유학 중 서양화를 전공한 사람이다. 여느 화가들이 원색 쓰기를 저어하는 데 반하여, 과감한 원색을 자유자재로 풀어낸다. 거칠 것 없는 대담한 붓질로 빚어낸 색채의 흩어짐과 모임이 스케일 큰 구도 속에 ‘정물화’를 생동감 있게 변화시킨다. 그믐밤 즈음의 화원에는 붉은 맨드라미가 꽃대를 뽑아 올리며 꽃무리를 이끌고 있다. 무당벌레가 은밀히 속삭이고, 고추잠자리 한 쌍도 꽃 위에 앉으려는 찰나가 설화처럼 고즈넉하다. 붉은색과 초록의 대비도 좋고, 왼쪽 위로 열린 하늘에 이우는 달빛과 흩뿌려진 별들의 점묘도 화려하다. 꽃의 환희이며, 도도한 생명의 예찬이다. 이 작가의 수채화들 또한 속기를 벗어난 명징하고 고아한 정신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작품 입수가 어렵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어떤 그림을 수집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미술잡지 ‘월간미술’ 1996년 3월호는 서병기(1919~1993) 화가의 ‘작가발굴’ 기사로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서병기는 1930년대 서양화의 메카라는 대구 지방을 중심으로 이인성(1912~1950), 서진달(1908~1947), 주 경(1906~1985) 등과 함께 미술활동을 했다. 그는 동경제국미술학교에 유학하였으나, 가정사정으로 중도에 귀국하였다가 다시 출국, 소미야 이치넨(曾宮一念· 1893~1994) 화백 화실에서 그림 공부를 하며, ‘광풍회’와 ‘춘양회’를 통해 작품 활동을 하였다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첫 국내전을 열었고, 1963년 대구 공보관화랑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 것이 국내전의 전부다. 그 해 일본에서 2인전을 열어 일본 화단의 큰 호평을 받았고, 1979년에 세 번째 개인전도 일본에서만 열렸다. 저간 십여 년의 열정이 녹아든 이 전시에 35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다고 전한다. 대구의 대저택에서 1964년 서울로 이주하였고, 1973년에는 부인과 사별했다. 유난히 금실이 도타웠던 그는 거의 매일, 경기도 송추 인근의 부인의 묘원을 찾곤 했다고 유족들이 전한다. 그곳의 풍광을 눈에 가득 담아 와서 찬찬히 화폭에 옮겼다. 아내에 대한 곡진한 그리움이 화필에 녹아 한 송이 두 송이 눈물어린 꽃이 되었다. 몇 해 전 인사동 어느 화랑에 서병기 화가의 작품이 입수되었다기에 즉시 달려가 아홉 점의 그림을 일괄 구입하였다. 모두가 두터운 종이에 유채로 그린 10호 안팎의 보관상태 만점인 그림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돌아와 그림 한 겹 한 겹 고급한지를 풀어 놓은 탁자 앞에 우선 침향(沈香)을 사르고, 죽로차 한 잔을 올리며 경외의 배관(拜觀)을 하였다. 공교롭게도 꽃그림이 여섯 점이고, 풍경화가 석 점이었다. 장미, 모란, 산나리, 아네모네들의 향내가 은은히 어리는 듯하였다. 짙붉은 모란 앞에서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마당에 서너 포기 모란이 필 때면 묵객과 더불어 김영랑 시인의 절창 같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염송해 왔기에 그 감회가 더하였다. 꽃병에 세 송이 만개한 모란이 잎 사이로 붉은 해 같은 광채를 발하고, 소용돌이처럼 오른 방향의 붓질과 달리 잎새들은 왼쪽으로 원을 그려 율동감을 주고 있다. 꽃병에도 꽃과 잎의 그림자가 어려 운치를 자아낸다. 저 세상 아내에 대한 피맺힌 사모의 헌화이리라. 이태 전 이른 봄 남도 여행 중, 담양의 소쇄원(瀟灑園) 제월당(霽月堂) 오백 년 된 마루에 반백년 친구와 나란히 앉아, 바람에 흩어지는 매화꽃을 바라본 적이 있다. 아련히 이어지는 먼 꽃길 사이로 가물가물 아련한 솔바람 길에서부터 한참의 세월을 담연한 눈빛만으로 되짚어 보았다. 설핏 대 그림자 사이로 꽃잎은 날아가는데 얼룩진 눈을 닦으며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글 이재준 미술품 수집가 joonlee@empas.com 1950년 경기 화성 출생. 아호 송유재(松由齋). 미술품 수집가, 클래식 음반리뷰어.
- 2015-12-29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