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중장년 세대의 창업을 통한 도약을 지원하기 위해, ‘뛰기 젊은 나이, 50+’ 캠페인을 펼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함께한 점프업5060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에 성공하고 새 인생을 펼치는 중장년들을 소개합니다.
도로 귀퉁이에 핀 꽃 한 송이, 빌딩 옥상 정원의 나무 한 그루. 삭막한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존재들입니다. 이렇듯 식물을 통한 초록빛 도시재생을 꿈꾸며 권수정 씨는 ‘점프업5060’에 지원했습니다.
권수정 씨는 결혼과 출산으로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삶을 살던 평범한 주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숲에서 열린 원예 강좌를 들은 뒤, 그녀에게 도전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숲 도시정원사 수업을 들었는데 내용이 정말 좋았어요. 흔히 ‘자연이 소중하다’고 하잖아요. 그 말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죠. 무엇보다 함께 참여했던 분들이 식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잘 이해하셔서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권수정 씨는 자신이 깨달은 자연의 소중함을 가까운 곳부터 알려나갔습니다. 거주지인 서울 응봉동에서 마을공동체 ‘중장년 리셋 타임’ 사업을 시작한 것이죠. 지역 학생, 주민을 대상으로 숲 체험, 가드닝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공동 정원 가꾸기 봉사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처럼 경단녀를 벗어나 원예 전문가로 거듭난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차차 관련 분야 인연이 쌓이며 권수정 씨에겐 ‘원예사회적기업’이라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저 같은 경단녀 주부들이 그동안 공부해온 것들을 각자가 아닌 사회적 기업을 통해 함께 펼치면 좋겠더라고요. 마침 우연히 서울시50플러스재단 ‘점프업5060’ 온라인 설명회를 접하게 됐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막 50세가 됐던 권수정 씨는 그렇게 ‘점프업5060’의 막내세대로 합류했습니다. ‘싹을 틔우다’는 뜻을 담아 ‘티움’이라는 이름을 짓고, 원예사회적기업을 위한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까’라는 말처럼, 처음부터 모든 목표를 이뤄내기엔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결국 아쉽게도 최종 목표였던 사업화 지원금까지 해내지는 못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로 배운 점이 많았다는 권수정 씨입니다.
“원예사회적기업이라는 그럴싸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던 것이죠. 사업적으로 무언가를 제안하고 시행하려면 문서작업이나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한편으론 추진력이 미흡했던 게 아닌가 생각도 해요. 크라우드펀딩으로 사업을 확장할 기회도 있었는데, 실상 놓쳐버렸거든요. 그래도 ‘점프업5060’을 통해 또래의 (예비)창업가들을 만나 소통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기부여도 됐고, 아이디어도 많이 얻었어요. 결과는 조금 아쉽지만, 모든 것을 귀한 경험으로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려 합니다.”
프로젝트 이후 권수정 씨는 ‘위치맘’이라는 작은 카페를 열었습니다. 단순히 수익을 올리려는 목적으로 창업을 한 것은 아닙니다. 뭐든 돕는 일을 좋아하는 권수정 씨는 함께해온 원예 전문가들을 기관이나 강의 등에 연결해주는 메신저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이들을 위한 매개 공간으로써 카페를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꿈도 열심히 키워가는 중입니다.
“지금처럼 꾸준히 봉사와 원예를 하며 언젠가는 실버타운을 짓고 싶습니다. 이런 꿈을 이야기하면 다들 사회복지사 따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원예치유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 영국에서는 원예치유가 처방전에 쓰일 정도로 효능을 인정하는 분위기죠. 그렇게 원예가 어르신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점프업5060’에서의 시행착오를 밑거름 삼아 꿈을 위해 한발 한발 다가가겠습니다.”
창업을 꿈꾸는 5060에게
“코로나19 당시 다른 분야와 다르게 원예 쪽은 수요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거리두기로 인한 답답한 일상에 초록 식물이 활력을 준 덕분이죠.
또 ‘힐링’을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원예가 주는 치유 효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예는 창업 아이템으로도 전망 있다고 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먼저 지역 숲을 찾아 관련 프로그램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2022년부터 일본 전체 인구의 약 5.4%를 차지하는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후기 고령자(75세 이상)로 편입되기 시작한다. 2021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3640만 명)중 절반 이상이 이미 후기 고령자다.
그런데 일본 고령자의 80%는 간호·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건강한 고령자다. 일본 정부로부터 노인 돌봄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정받은 이들이다.
따라서 건강한 고령자들의 거주지에 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도심에 프리미엄 서비스를 내세우는 시니어타운이나 유료노인홈이 생기는 추세다. 하지만 비싼 입주금을 감당할 수 있는 고령자는 많지 않아 이런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고령자는 매우 제한적이다.
건강한 고령자 위한 유료노인홈
일본에는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유료노인홈(우리나라의 실버타운 형태)과 요양시설이 있다. 요양시설은 정부가 정한 기준이 까다로워 진입장벽이 높아 항상 시설 입주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이에 민간시설 중에서는 건강한 고령자가 이용할 수 있는 유료노인홈과 고령자 전용 주택이 늘고 있다.
일본의 고령자 주택·시설 통계를 제공하는 타무라 플래닝앤오퍼레이팅(タムラプランニングアンドオペレーティング)의 “고령자 주택 데이터 2022년 상반기호”에 따르면 2022년 4월 기준 전국의 고령자 주택·시설 종류는 총 14가지로, 총 5만 6741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일본의 고령자 주택·시설 14종류는 다음과 같다.
간호 가능한 유료노인홈(介護付有料老人ホーム), 주택형 유료노인홈(住宅型有料老人ホーム), 건강형 유료노인홈(健康型有料老人ホーム), 신고하지 않은 유료노인홈(無届有料老人ホーム), 분양형 케어서비스 제공 맨션(健康型ケア付きマンション), 서비스 제공 고령자용 주택(サービス付き高齢者向け住宅), 경비노인홈·A형·B형(軽費老人ホーム·A型·B型), 케어하우스(ケアハウス), 양호노인홈(養護老人ホーム), 그룹홈(グループホーム), 개호노인복지시설(介護老人福祉施設), 개호노인보건시설(介護老人保健施設), 개호요양형의료시설(介護療養型療養型), 개호의료원(介護医療院)
고령자 전용 주거 시설은 크게 공적 시설과 민간 시설로 나뉘는데, 지자체가 주로 운영하는 공적시설은 대체로 입주금이 없고 돌봄이 필요한 고령자를 위한 개호(介護, 간호) 시설이 많다.
민간이 운영하는 시설은 대체로 간호 서비스가 함께 운영되는 형태가 많고 입주금이 천차만별이다. 최근 민간시설 중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주택형과 서비스 제공 고령자용 주택(줄여서 사코슈라고 한다, サ高住)이다. 2022년 4월 기준 주택형은 3만 2003호가 증가했고, 사코슈는 2만 6690호가 늘었다.
주택형 유료노인홈은 건강한 고령자 혹은 스스로 생활은 가능하지만 간호가 필요한 고령자가 입주할 수 있다. 주로 외부 간호 업체를 연계하며 60세 이상부터 들어갈 수 있다.
사코슈는 베리어프리 등이 적용된 고령자 전용 주택으로, 이곳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란 간호 서비스가 아닌 안부 확인 및 생활 상담 서비스, 생활 지원 서비스가 주를 이루고 간호 서비스는 제공·연계하지 않는다. 간호가 필요한 경우 개인별 계약을 해야 한다.
간호·돌봄이 모두 필요하지 않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는 건강형 유료노인홈은 전체 유료노인홈의 0.2% 수준으로 매우 적다.
이에 최근에는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건강한 고령자일 것’을 입주 조건으로 내세우는 고가의 유료노인홈과 사코슈가 등장하고 있다.
시니어를 위한 레지던스 ‘파크웰스테이트’
미쓰이부동산은 ‘시니어를 위한 서비스 레지던스’를 표방하며 수도권 중심으로 ‘파크웰스테이트’라는 시니어타운을 짓고 있다. 대체로 유료노인홈과 사코슈가 혼합되어 있다.
또한 ‘원칙적으로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한 만 60세 이상’인 사람만 입주를 신청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신청한다고 모두 입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 진단을 받는 등 입주 심사를 거쳐야 한다.
현재 운영하는 레지던스는 도쿄에 위치한 ‘파크웰스테이트 하마다야마(浜田山)’가 있으며, 오사카 최대 규모인 ‘파크웰스테이트 센리츄오(千里中央)’, 지바 현의 ‘파크웰스테이트 카모가와(鴨川)’가 있다.
비용은 선급금(또는 임대료 상당액), 월 이용료, 보증금 세 가지를 합쳐 일시금으로 내거나 월세로 낼 수 있는데 금액이 상당하다.
하마다야마는 입주비용이 최소 6288만 엔(약 6억 원)에서 최고 2억 엔(약 19억 원)에 달한다. 카모가와의 입주비용은 1인 기준 최소 2520만 엔(약 2억 4000만 원)부터 최대 6451만 엔(약 6억 2000만 원) 수준이다. 센리츄오는 선급금이 없는 곳부터 5300만 엔(약 5억 원)까지 있다.
입주 금액이 꽤 높지만 ‘파크웰스테이트 카모가와’는(473실 규모) 오픈 전부터 4000건이 넘는 문의가 쏟아졌다.
미쓰이부동산은 오는 2024년 도쿄도 미나토구에 지상 36층, 총 421실 규모의 시니어 레지던스와, 지바시에 28층 617실 규모의 시니어 레지던스를 추가로 오픈할 계획이다.
여생 보내는 최고급 유료노인홈 ‘사쿠라비아 세이죠’
미쓰이부동산의 레지던스보다 더 비싼 유료노인홈도 있다. 도쿄 세이죠학원 역 10분 거리에 위치한 ‘사쿠라비아 세이죠’(サクラビア成城)다.
이곳의 입주 조건은 70세 이상이면서 돌봄이나 정부지원이 필요하지 않고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쿠라비아 세이죠의 특징은 전액 선급금으로만 비용을 낼 수 있으며 15년 동안 거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급금으로 내는 입주 비용은 평형이나 층수에 따라 금액이 다르다.
입주 후 15년(180개월) 이내에 퇴거하는 경우 필요 경비와 사용료 부분을 제외하고 돌려준다. 만약 15년이 지나고도 거주를 이어간다면, 16년째부터는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 계속 지낼 수 있다.
입주 비용은 가장 저렴한 객실이 약 1억 2000만 엔(약 11억 6000만 원)이며 가장 비싼 객실은 약 4억 엔(약 39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레스토랑 등의 부대시설 이용료를 매월 30만 엔(약 300만 원) 내야 한다. 높은 비용 때문인지 사쿠라비아 세이죠의 주 이용자는 기업 경영자와 가족이다.
150개의 객실은 항상 만실이며 입주를 기다리는 대기자도 많다. 시설을 둘러보는 이들은 주로 50~60대로 대기 회원이 되려면 보증금 100만 엔(약 967만 원)을 내야 한다. 대기 회원이 되면 입주 가능한 나이인 70세가 될 때까지 사쿠라비아 세이죠에서는 정기적으로 소식지를 보내준다.
레스토랑에서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를 제공하며 룸서비스로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레스토랑 내 개인룸을 통해 가족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또한 도예, 회화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으며 갤러리를 통해 작품 전시도 즐길 수 있고, 콘서트홀에서는 정기 공연도 열린다.
무엇보다 사쿠라비아 세이죠가 인기 있는 건 이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일반 유료노인홈들은 간호를 넘어 돌봄이 필요한 경우 요양시설로의 이동이 필요한데 사쿠라비아 세이죠는 자신의 객실에 머물며 돌봄·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70세 현역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노동자’라면 70세여도 취업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취지다. 단순히 연금을 받기 전까지 일자리를 보장하는 개념을 넘어 자아실현 기회를 확보하는 개념을 법에 담았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고용 안정은 물음표다.
기존 고령자 고용 정책은 ‘고용과 연금의 연결’을 목적으로 했다. 공적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65세로 늦추면서, ‘고령자 등의 고용 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고연법) 개정을 통해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먼저 정년 나이를 60세 미만으로 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정년 이후에도 65세까지 계속해서 고용하도록 하면서, 노사협의로 계속고용 대상자를 정하던 것을 희망자 모두에게 적용하도록 넓혔다. 그 결과 2021년 6월 1일 기준, 고용 확보 조치를 하는 기업은 99.9%에 달한다. 고용과 연금 사이의 공백을 줄였다는 점에서 기존 고령자 고용 정책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연금 공백 넘어 자아실현으로
아베 전 총리는 2019년 ‘미래투자회의’에서 “인생 100년 시대를 맞아, 건강하고 의욕 있는 고령자분들이 경험이나 지혜를 사회에서 발휘해주실 수 있도록 70세까지의 취업 기회 확보를 향한 법 개정을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이후 2021년 4월, 고연법은 ‘일할 의욕이 있는 고령자가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또 한 번 개정됐다. “고령자가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노력 의무”를 명시한 것.
기존과 달라진 점은 65세까지의 계속고용제도 대상을 70세까지로 확장하고, ‘고연령자 취업 확보 조치’를 더한 것이다. 계속고용제도의 경우 기존에는 자사에서만 재고용을 했다면, 이번에는 자회사나 관계사에서도 재고용을 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취업 확보 조치는 고령자가 창업하도록 해 위탁업무 계약을 맺거나, 사회공헌사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취업 지원’을 말한다.
개정법에 담긴 내용은 강제 사항은 아니다. 다만 사업주가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을 ‘게을리했다’는 게 인정되면 근로자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받을 수 있고, 후생노동청의 행정지도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개정은 단순히 경제적 공백을 채우는 것을 넘어 고령자의 자아실현 기회를 보장하는 환경 조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고령 근로자는 안전한가?
고용 안정 측면에서 이번 개정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야마가와 가즈요시(山川和義) 히로시마대학 인간사회과학연구과 교수는 “계속고용을 관계사에서도 할 수 있도록 하면, 근로자가 원하지 않는 노동 조건을 설정하거나 재고용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고령자가 잘 알지 못하는 곳으로 재고용되거나, 기존 사업장은 고용했지만 다른 사업장에서는 재고용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이는 기존의 계속고용제도에서 재고용 이후 ‘이전과 달리 노동 조건이 열악해졌다’는 분쟁이 이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존 임금의 25% 수준인 임금을 제시하거나, 사무직 직원을 청소와 같은 단순노무에 배정하거나, 왕복 5시간 거리의 근무지로 발령 내거나, 1년마다 갱신 조건으로 재고용 하고 1년 뒤 고용 연장을 거절하는 사례들이 있었다. 이런 경우 근로자의 건강 문제 등 합당한 해고 사유가 없다면 대체로 법원은 근로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다만, 60세에서 65세로 정년을 연장한 기업은 재고용 의무가 없다.
새롭게 쟁점이 되는 개정 내용은 취업 확보 조치다. 이는 ‘고용이 아닌 조치’를 취함으로써 고령자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회사가 고령자와 위탁업무 계약을 맺는 경우, 자사 소속 근로자가 아니게 돼 노동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야마가와 교수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였던 이들이 창업 지원을 통해 위탁계약을 하게 된다면, 계약 조건을 협상할 때 동등한 위치에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노동안전위생법의 규제도 미치지 않고 사고 발생 예방을 강제할 규칙도 없어 고령자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제도를 도입하는 기업은 1.6%에 불과하다.
한편 사업주에게 취업 지원을 하라고 강제하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실버인재센터와 같은 기관이 아닌 개별 사업주에게 사회공헌사업 등의 취업 지원까지 할 의무를 지우는 건 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강제하면 오히려 고령자의 정년 이후 노동계약이나 위탁업무 계약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야마가와 교수는 “재고용되면서 비정규직이 돼 처우와 노무가 분리된 사례가 많은 만큼, 60세 정년을 바탕으로 하는 노무관리 체계가 100세 시대에 근본적으로 적합한지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고: DIO ‘고령자 고용의 현상과 과제’ 결과 연구 보고서
27일 오후 1시 30분 방송인 고(故) 송해의 49재 추모공연이 서울 종로구 모두의극장(허리우드극장 5층)에서 열린다. 이번 공연은 이상벽, 조영남, 현숙, 심형래 등 생전 고인을 따랐던 후배 문화예술인 12인이 한마음으로 준비해 그 의미를 더했다.
지난달 8일 갑작스러운 비보에 각계각층의 추모가 이어졌고, 49재가 열리는 현재까지도 종로 송해길 주변 상인과 시민들의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생전 고인은 KBS1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받은 사랑을 보답하기 위해 ‘문화 1번지 종로’의 부활을 알리는 극장식 추억의 쇼를 기획 단계부터 직접 참여했고, 종로 거리에서 ‘청바지’(청춘은 바로 지금) 축제를 여는 등 평소 종로에 대한 깊은 열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19년 본지와의 만남에서도 “송해길에 자주 나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맛있는 것도 즐기면서 사는 재미를 느끼시라”며 종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전하기도 했다. 당시 건강한 모습으로 길거리 담소도 마다치 않으며 시민들과 유대해온 그이기에 빈자리는 더욱 컸다.
이에 이번 추모공연을 기획하고 무대를 제공한 ㈜추억을파는극장 김은주 대표는 “송해 선생님은 생전 실버영화관 홍보대사로서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후배를 양성하며 양질의 무대를 위해 힘써오셨다”며 “그게 종로를 찾는 어르신은 물론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길이라 여기셨다. 하늘에서도 분명 후배 문화예술인들이 준비한 무대를 흐뭇하게 지켜보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이 더욱 뜻 깊은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과거 고 이주일이 폐암으로 고통받던 본인의 모습을 공개하며 대한민국 흡연률 감소에 기여했듯, 고 송해의 죽음은 ‘어르신 낙상사고 예방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주최측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매주 월요일 ‘모두의 극장’을 무료로 대관하는 한편, 수익금 일부로 어르신 관객에게 미끄럼방지매트를 제공한다. 아울러 독거노인이 화장실 낙상사고로 고독사하지 않도록 관련 캠페인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한편 송해는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후 끝내 눈을 뜨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추모공연은 시민들을 대상으로 오늘 오전 11시 30분부터 선착순으로 현장 접수한다(300명까지). 평소 송해를 따랐던 후배 문화예술인 이상벽, 조영남, 전원주, 최주봉, 김성환, 박일준, 현숙, 배일호, 조항조, 이용식, 심형래, 김은주((주)추억을파는극장 대표)가 무대에 오른다. 공연 관람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금은 전액 기부 예정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 국민인식 조사'(2019)의 '대상별 혐오 표현 과거 대비 변화' 조사를 살펴 보면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에 비해 ‘노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과거보다 심화됐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아울러 같은 조사에서 60세 이상 응답자 중 자신을 향한 혐오 표현이 ‘맞는 말’이라고 대답한 이는 17.6%로, 대다수 노인이 이러한 현상에 반감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노인들은 혐오에 떠밀려 그들만의 퇴적 공간에 모이기 시작했다.
노인들의 핫플 ‘무료 급식소’
탑골공원의 피크타임은 무료 급식소 개방 전후다. 관계자 말에 의하면 요즘은 거의 무료 급식을 목적으로 방문하고 식사 후엔 공원이 한산하다고. 서울의 또 다른 무료 급식소 ‘밥퍼’(밥퍼나눔운동본부), 하루 500여 명의 어르신이 다녀간다. 청량리역에서 거리가 꽤 있음에도 이곳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내비게이션처럼 노인들을 이정표 삼아 따라가면 된다. 식사를 마친 노인들은 인근 경동시장이나 동묘공원 등으로 향한다. 이날 메뉴로 나온 ‘카레’가 만족스러웠다는 80대 노인은 이제 모란역에 가야 한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가 있는데 늦지 않게 가야 도시락을 받는다고. 40년 전 남편과 사별 후 그녀는 점심은 청량리 무료 급식소에서, 저녁은 모란역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고독하지만 자식들의 식사 대접을 스스로 거절한단다. “효도랍시고 못 이겨서 밥 사주는 거지. 다들 억지로 그럴 필요 없다 이거야. 애들이 싫다는데 나도 싫어.”
노노(老老) 혐오도 적지 않아
“남편 밥도 안 해주고 할망구들이 뭐 한다고 와?” 급식소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남성 노인이 여성 노인을 향해 거친 말을 내뱉은 것. 이를 맞받아치는 할머니의 입에서도 육두문자가 쏟아진다. 다른 이들이 말을 더하고 편을 갈랐다면 싸움이 커졌겠지만, 주변의 냉랭한 분위기에 두 사람도 주섬주섬 말을 삼켰다. 일종의 즉석만남처럼 동년배가 함께 식사하며 넉살 좋게 대화하는 풍경을 상상했건만, 노인들은 서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친구를 사귈 목적으로 온다는 이는 드물었다. 말을 걸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지저분하다’, ‘냄새난다’, ‘무섭다’ 등 부정적 이유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말한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그렇게 노인들은 서로를 타자화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혐오는 덤? ‘공짜 지하철’
급식소에서 만난 노인 중 해당 지역 주민은 드물었다. 강 건너 동네에서 오기도 하고, 외곽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시간적 여유도 있지만, 그것이 가능한 기저에는 ‘공짜 지하철’이 한몫했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유랑하듯 지하철을 타고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문제는 노인 우대 차원의 복지 혜택이 오히려 청년 세대의 반감을 사는 구실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경로 승객을 위해 투입되는 예산만 2000억 원 이상이다. 최근 경주 불국사에서 관람료 경로우대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며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이처럼 지하철 요금 역시 기준 나이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청년 응답자의 77.1%가 ‘노인복지 확대로 청년층 부담 증가가 우려된다’고 답했다. 이러한 우려 속에 지하철에서 고함을 지르거나 임신부 배려석에 앉는 노인 등 일종의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노인의 모습에 청년들의 시선이 달가울 리 없는 것이다.
거침 없이 쏟아내는 온라인 속 혐오
지난해 말 부산 동해선 열차 개통 후 한 온라인 게시판에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일었다. 문제의 중심에는 노인이 있었다. 게시물을 올린 이는 두 가지 주장을 펼쳤다. 하나는 ‘경로우대로 인해 동해선이 실버 관광열차가 되어 다른 이용객의 불편을 초래한다’, 다른 하나는 ‘고령화 시대에 노인들의 활발한 외부 활동에 도움이 되어 좋다. 노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면 좋은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서로 앉으려 뛰고 소리 지르는 노인들… 최악의 경험이었다.” “나도 늙어가지만 전자바우처로 지급해야 한다.” “노인 탑승 시간이나 횟수를 조절해야 한다.” 이에 달린 댓글은 거의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후자의 입장은 거의 없었다.
노인 혐오, 그저 눈감는 수밖에
국가인권위원회 ‘노인의 생애사를 통해서 본 인권상황 실태조사’(2022)에는 ‘노인 혐오와 차별’에 대해 이렇게 풀이한다. “무상교통 등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사회 서비스에 대해 지나치게 시혜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음. 이러한 인식은 대중 공간에서 노인 혐오와 차별이 발생할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함. 경제활동 인구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노인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쳐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비하해 젊은 세대의 노인의 향한 혐오와 차별도 스스로 감내하고 심지어 동조하기도 함.” 알면서도 눈감을 수밖에 없는 노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한 단락이다.
나이가 들수록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때문에 노년층에게 주거 공간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즐거운 노후를 위해서는 어떤 주거 형태를 선택해야 할까? 노년층이 이용할 수 있는 주요 시설들의 특징과 차이점을 소개한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노인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주변의 도움 없이도 여생을 잘 보낼 주거 공간이다. 나이가 들어 점차 기력이 약해지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분가한 자녀가 연로한 부모를 집으로 다시 모신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대안을 찾게 되는 이유다. 보통 노년층이 이용할 수 있는 맞춤 주거 시설은 요양원, 요양병원, 실버타운, 양로원 등이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차이가 있으므로 노인의 몸 상태에 맞춰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
요양원과 요양병원
별다른 지병은 없지만 스스로 식사나 거동이 불편하다면, 요양원이 적합하다. 요양원은 독립적인 생활이 어려운 노인을 요양보호사가 24시간 보조하지만 주사를 놓거나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의사는 상주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방문해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정도로 관리가 이루어진다.
요양원은 입소를 원하는 사람의 거주지 관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해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아야만 입소가 가능하다. 등급은 총 5개로 분류된다. 입소비와 요양보호사의 간병비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되므로 대상자가 20%를 부담하면 된다. 그 외 약물 처방이나 기타 진료가 필요할 경우는 외부 의료기관을 방문해야 하고, 이 비용은 모두 본인 부담이다.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했지만 노인성 질환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은 요양원 대신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다. 빠른 치료와 퇴원이 목적인 대학병원·종합병원 등 급성기 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만성기 환자를 위한 병원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며 집중 치료를 한다. 대신 요양병원은 요양보호사가 상주하지 않아 필요 시 개인이 고용해야 하므로 요양원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 간병비는 개인 간병이냐 공동 간병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공동 간병은 한 명의 간병인이 몇 명의 환자를 돌보는지 알아봐야 한다.
양로원과 실버타운
양로원은 의료나 요양이 아닌 주거를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다. 몸이 불편할 경우 도움을 구할 의사나 요양보호사 등이 상주하지 않는다. 종류로는 무료, 실비, 유료 세 가지가 있다. 무료와 실비 양로원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노인장기요양등급과 상관없이 입소 가능하고, 한 숙소를 여러 명이 사용한다. 무료 양로원은 무연고자 혹은 기초생활수급권자 노인을 대상으로 정부에서 100% 비용을 지원한다. 실비 양로원은 노인복지법시행규칙 제14조 1항의 2에 따른 실비보호 대상자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비용을 뺀 일정 생활비를 부담하고 입소할 수 있다. 비용은 월 48만 원 정도다.
유료 양로원은 실버타운을 말한다. 건강하고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는 만 60세 이상이 입주한다. 건강진단서와 의사 소견서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가사 서비스와 식사가 제공되고, 수영장·헬스장·도서관·당구장 등 편의 시설에서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다.
실버타운은 위치에 따라 크게 도심형, 근교형, 전원형(휴양형)으로 나뉜다. 흔히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전원형 실버타운을 고르는 것은 금물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자주 찾아온다면 도심·근교에 있는 시설이 적합하다. 반대로 평생을 전원에서 살아왔거나 전원생활에서 위안과 안정을 찾는다면 전원형 실버타운에 입주하는 것이 맞다. 현재 전국에 운영 중인 실버타운은 시설 수준과 서비스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보증금을 포함해 적지 않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계약 전 충분히 둘러보기를 권한다.
이외에도 정부에서 저소득층 노인을 지원하는 ‘고령자복지주택’(공공실버주택)이 있다. 주택과 사회복지 시설이 복합 설치된 주거 시설이다. 입주 조건은 ‘공공주택이 만들어진 지역에 거주하는 만 65세 이상 무주택 세대 구성원’이다. 해당자 중 우선순위를 정해 입주자를 선발한다. △1순위는 국가유공자 또는 그 유족, 광주 5·18민주유공자 또는 그 유족, 특수임무유공자 또는 그 유족, 참전유공자 △2순위는 생계급여 수급자 또는 의료급여 수급자 △3순위는 해당 세대의 월평균 소득이 전년도 도시 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의 50% 이하인 사람이다. 다만 지자체별로 선정 기준이 상이할 수 있으니 주민센터에 문의해 시설 입주자 모집 공고문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56세 A씨는 노후 거주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이상적인 노후 거주지로 급부상한 실버타운에 대해 알아봤으나, 공동생활을 꺼리는 성격 탓에 노후 거주지 후보에서 제외했다.
59세 B씨는 실버타운 입주 가능 연령을 1년 앞두고 C 실버타운에 입주 예약을 신청했다. 그러나 실버타운 인기가 높아진 탓에 대기자가 넘쳐 2년은 기다려야 한다. 60세가 될 때에 맞춰 노후 생활에 맞는 거주지로 이사하고 싶지만 줄어들지 않는 대기자 명단에 B씨는 다른 거주지를 알아보고자 고민 중이다.
고령화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요즘, 노후 대비를 두고 여느 때보다 관심이 높다. 노후 자산 관리뿐만 아니라 노후에 어디에 살 것인지, 거주지에 관련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생활을 꺼리거나, 실버타운에 가고 싶지만 대기 기간이 너무 길어져 포기한 A씨, B씨와 같은 중년을 위한 거주지가 있다. 바로 ‘실버하우스’다.
실버하우스는 노후 주거지 전문 유튜버 ‘공빠TV’에서 만들어낸 개념으로, 그들이 꼽는 이상적인 세 가지 노후 주거지 중 한 곳이다. 노년기에는 노화로 인해 체력이 약해지고 경제활동을 그만두면서 생활비도 부족해지기 쉬우므로, 중년기까지 살던 집과 노후에 거주할 집은 달라야 한다는 취지로 둘을 구분한다.
공빠TV의 문성택 씨는 “시니어들이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70대 중반부터 20년 이상 거주할 집을 70대 초반 이전까지 마련해서 가능한 한 일찍 행복한 여생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 실버하우스라는 개념을 마련하고, 이에 대한 추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빠TV는 이상적인 실버하우스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경제력, 둘째로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되는 입지, 셋째로 다양한 여가활동의 영위 여부이다. 문 씨는 “경제력이란, 실버하우스를 마련하고 유지하는 비용, 국민연금, 기초연금 등 매달 빠져나가는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실버하우스를 마련할 때에 필요한 자금으로는 전 재산의 50% 이내가 바람직하다.
두 번째로 꼽은 기준은 실버하우스에 거주할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수시로 건강상태를 체크해야 하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질병을 앓고 있다면 큰 병원과 가까운 지역을 알아봐야 한다. 주기적으로 가벼운 운동을 통해 건강관리를 할 수 있는 운동시설이나 공원이 가까이 있는 곳,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노인복지관이나 식당가가 가까운 곳도 공빠TV의 추천 실버하우스 입지다.
문 씨가 마지막으로 여가 생활을 꼽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은퇴 후에는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때문에,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여가 생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 그는 “행복한 여가를 보내기 위해서는 도서관, 노인복지관, 시민회관이나 박물관 등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가까운 지역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 모든 조건을 갖춘 ‘꿈의 실버하우스’ 입지로는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경기도 성남시 판교 등을 추천했다. 문 씨는 “의정부 신곡동의 경우 가까운 거리에 신곡 노인복지관, 의정부 백병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근처에 광역버스 정류장, 의정부 경전철 동오역이 있어 이동하기도 편리하다”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의정부 과학도서관, 추동웰빙공원이 있으며 근처 부용천, 중랑천을 따라 걷기 운동이 가능하므로 실버하우스 입지로 알맞다”고 설명했다.
판교를 추천하는 이유로는 “우선 신분당선 판교역이 가까이 있어 이동이 편리하고, 판교 현대백화점, 백현동 카페문화거리가 가까이에 있어 식사를 해결하거나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며 “주변에 탄천이 지나가고, 낙생대공원이나 판교 노인복지관 등 판교 지역의 탄탄한 인프라를 누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버하우스를 노후 거주지로 선택했다면 경제력과 건강, 여가를 기준으로 선택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추천한 지역에 꼭 입주하라는 것이 아니고, 추천한 지역의 특징을 참고삼아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 실버하우스를 찾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늘어나는 노인 인구는 우리 사회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됐다. 이에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실버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두드림퀵은 노인 일자리 사업 중 하나인 ‘노인 지하철 택배’ 사업의 효율화를 이루어 시니어 택배원들의 소득 증대와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소셜벤처다. 두드림퀵의 이다인 대표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두드림퀵은 세계적인 사회공헌 경영학회 ‘인액터스’의 서울대학교 지부 학생들이 운영하는 프로젝트 회사다. 두드림퀵 직원 6명의 평균 나이는 21.8세. 사회적 가치를 기업가 정신으로 실현하기 위해 모인 대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대표는 “노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라고 사업 시작 배경을 설명했다.
앱 개발해 동선 비효율 개선
2018년 시작된 두드림퀵의 사업은 수도권 내 노인 지하철 택배원과 고객 간의 지하철 퀵 중개 디지털 플랫폼이다. ‘노인 지하철 택배’란 만 6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지하철 요금 면제 복지정책을 활용한 노인 일자리로, 지하철로 퀵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기존 노인 지하철 택배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택배 주문 배정 과정에서 기사의 거주지가 고려되지 않아, 먼 거리의 주문을 배정받는 등 동선 낭비가 빈번히 발생했다. 또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노인 택배원들이 물건 수령·배달 장소가 적힌 종이쪽지만 보고 길을 찾아, 생소한 지역을 헤매기 일쑤였다.
이러한 비효율적 동선의 문제점을 인식한 두드림퀵은 IT 기술을 활용해 노인 친화적인 ‘택배원용 앱’을 개발하고, 서울 지역 9개의 시니어클럽, 어르신 일자리 기관과 협업해 택배원들에게 이를 보급했다. 해당 앱은 ‘위치 기반 자동 배정 시스템’으로, 물품 수령 장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기사에게 주문을 배정한다. 또 앱이 카카오맵과 연동돼 물품 수령·배달 장소로 향하는 최적의 길을 알려준다. 이 대표는 “두드림퀵 서비스로 택배 기사들의 이동 거리는 평균 7.2km, 픽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3분가량 단축됐다”라며 “택배원마다 주문 건수가 달라 편차가 크지만, 한 택배원의 경우 두드림퀵 일을 하며 월평균 소득이 1.5배 증가했다”라고 설명했다.
수익 대부분은 시니어 택배원에게
사업 초기 힘든 점도 많았다. 기관마다 나름의 체계가 있는 상태에서 어린 청년들이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다 보니, 일이 순탄하게 진행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기관들을 하나씩 설득하고 섭외해 현재는 총 9개의 노인 일자리 기관과 협업 중이고, 함께하는 시니어 택배원 수는 약 150명에 달한다. 이 대표는 “초기에는 월 주문 100건도 힘들었는데, 현재는 월평균 주문량이 500~700건으로 늘었다”라며 “2020년 1~9월 대비 올해 같은 기간 매출이 220%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셜벤처’인 만큼, 회사의 수익보다는 택배원의 소득 보장에 더 가치를 둔다. 두드림퀵의 거래 수수료는 5%로, 20~30% 수준인 업계 평균에 비해 적은 편이다. 5%의 수수료 역시 마케팅 비용 등 회사 운영 자금으로 쓰인다. 다만 앱이나 서비스 개선에 필요한 개발 자금은 수수료 수익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데, 이는 주로 공모전을 통해 얻는다. 최근에는 사회공헌 사업을 펼치는 기업과 현장에서 직접 사업을 수행하는 비영리·사회적 경제 조직을 연결해주는 공모전 ‘2021 사회공헌 파트너스데이’(한국사회복지협의회 주최)에서 우수상에 선정돼 300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두드림퀵의 비즈니스 모델과 비전, 사회적 가치 등을 높이 평가받아 얻은 성과다.
최종 목표는 ‘노인 일자리 플랫폼’
이 대표는 “노인을 사회적 약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돌봐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고, 같이 일하며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라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택배원들을 대상으로 앱과 서비스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책자에 필기까지 하며 열정적으로 임하는 시니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송 중 물건을 잃어버릴 상황에 대비해, 자신이 탄 지하철 칸의 번호를 매번 외운다는 시니어도 있다. 한 시니어 택배원은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내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서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는 게 만족스럽고 보람차다”라며 택배 업무 소감을 밝혔다. 그들은 자기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에 참여하며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의 일원이다.
하지만 급속히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노인의 사회적 역할은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추세다. 이러한 현실에 이 대표는 “노인 문제의 핵심은 고독과 빈곤인데, 이 둘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바로 일자리다”라며 노인 일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노인은 일자리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움직이며 사회적 활력도 채우고 소득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두드림퀵의 최종 목표는 ‘노인 일자리 플랫폼’으로의 성장이다. 이를 위해 두드림퀵 멤버들은 주 2회 꾸준히 노인 문제와 사업 확장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 중이며, 공모전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도 언젠가 시니어가 될 것이고, 노인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다”라며 “시니어 커뮤니티, 시니어 친화 앱 등 다양한 노인 친화 서비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많은 것이 멈췄다. 코로나19는 주야간보호센터, 치매안심쉼터 등 치매 환자를 위한 관련 기관에도 타격을 줬다. 대면 관리가 축소되면서 치매 어르신의 돌봄에 사각지대가 생겼다. 다행히 멈추지 않은 것도 있다. 치매 극복을 위한 노력이다. 최근 지자체와 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곳에서 비대면 문화와 공존할 수 있는 돌봄 방식, 학습지가 개발돼 교육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치매 극복을 위한 다양한 방안 중, 호평받고 있는 치매 학습지 세 가지를 소개한다.
필사하고 글 지으면서 ‘오늘도 공부’
‘오늘도 공부’는 치매 예방에 도움 주는 일일 학습지다. 치매를 예방하고 싶은 어르신이나 치매의 전 단계 증상으로 알려진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다. 매달 한 권씩 제공하는 학습지 안에는 하루에 10~15분 정도 투자하면 풀 수 있는 언어 및 인지활동지가 수록돼있다. 제주시 건입동에서 6개월간 진행한 ‘노인 인지-정서 효과성 검증’ 프로젝트로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의 인지능력이 유지되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오늘도 공부는 어르신들이 매일 필사할 수 있는 글귀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평일에는 필사할 수 있는 ‘날마다 따라 쓰기’, 주말에는 ‘주말 백일장’으로 어르신들의 예전 기억을 되살려 언어로 구성하게끔 유도한다. 한 어르신은 주말 백일장 코너에 “학습지로 카카오톡에 글을 써서 보내는 것도 배우고 큐알코드로 노래도 배웠다. 이제는 욕심이 생겨서 손주한테 유튜브도 가르쳐달라고 한다”고 적기도 했다.
학습지를 제작한 사회적기업 ㈜꿈틀은 현재 건강보험공단 대전·충남지부와 성동구립 사근동노인복지센터에서 시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노원구 ‘데일리 홈런’, 은평구 ‘노노(老老)케어’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각 지자체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에게 학습지를 제공하고 있다. 유장효 꿈틀 이사는 “시범사업 운영 중인 지역 외에도 주야간보호센터에 관리 교사를 파견해 어르신들의 학습지 활용도를 높여 인지능력 저하를 막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추억 속 노래 들으며 ‘쿵짝쿵짝 뮤직북’ 풀어
광진구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지난 8월부터 ‘쿵짝쿵짝 뮤직북’(이하 뮤직북) 학습지를 활용하고 있다. 노래를 활용한 인지학습지인 뮤직북에는 주5일, 4주간 사용할 수 있게 20곡의 가사와 문제들이 담겨있다. 노래는 고향역, 노란샤쓰 사나이, 봄날은 간다 등 어르신에게 익숙한 곡들이다. 어르신들은 학습지의 QR 코드를 활용해 노래를 듣고, 해당 노래에 대한 문제를 푼다.
뮤직북에는 치매 어르신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함께 풀 수 있는 난이도의 문제가 수록돼있다. 센터에서는 주 연령대가 60, 70대인 보호자가 원할 때도 학습지를 제공한다. 그 덕에 조금 어렵다는 치매 어르신부터 비교적 쉽다는 보호자 분까지, 난이도에 대한 평가는 사용자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러나 ‘재밌다’는 사용 후기만큼은 치매 유무를 막론하고 들려온다고. 광진구치매안심센터 음악치료사는 “이번 뮤직북은 이벤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것으로, 기존에 센터에서 활용하던 가정 인지학습지와는 별개”라며 “내년에도 만들게 된다면 단권으로 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센터 방문이 어려워 우편으로 학습지를 전달하고 있다. 음악 청취에 필요한 인터넷 활용이 어렵거나, 활용 방식 자체를 어려워하는 홀몸 노인에게는 직접 댁으로 찾아가 학습지와 함께 음악이 수록된 라디오를 한 달 정도 대여해드리기도 한다. 음악치료사는 “뮤직북은 어르신들이 많이들 좋아하시는 음악을 매개로 인지능력을 자극하기 위해 만든 교재”라며 “교재 제작을 위한 연구 과정에서 다른 지자체 치매안심센터 소속 여러 음악치료사들과 많은 소통을 거쳤기 때문에 다른 지자체에서도 음악을 매개로 하는 교구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매주 새로운 문제로 치매 관리하는 ‘치매안심 실버펜’
강북구 치매안심센터는 지난해부터 기억키움쉼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어르신에게 ‘치매안심 실버펜’(이하 실버펜)을 제공하고 있다. 틀린 그림 찾기, 글자 기억하기, 더하기 빼기 같은 간단한 산수 문제 등 기억력이나 지남력, 집중력 등을 자극할 수 있는 문제들이 실려있다. 매주 다른 내용과 문제들로 구성된 실버펜은 주 1회 어르신 댁 우편함에 배송된다.
예방보다 치료 성격을 띠는 실버펜은 경증 치매를 앓는 어르신의 인지기능 현상 유지가 목적이다. 강북구 치매안심센터 기억키움쉼터 김준호 작업치료사는 “어르신들의 연령대나 보호자의 유무, 교육수준이 학습지 효과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라며 “경증에서 중증으로 치매가 심화되고 있거나 글자를 읽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은 조금 어려워하신다”고 말했다.
현재는 기억키움쉼터로 어르신들의 직접 방문이 어려워 쉼터 직원들이 전화로 어르신들의 활용 정도를 직접 확인하고 있다. 김 작업치료사는 “다 푼 학습지를 수거해 어르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지표로도 사용한다”며 “어르신들이 처음에는 학습지 자체를 낯설어하시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재밌어하신다”고 전했다. 실버펜은 거리두기가 대폭 완화되는 ‘위드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가 오더라도 쉼터 신규 등록자나 대면 프로그램 신청 대기자에게 제공하는 등 비대면 관리방식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영화표를 받아든 김 씨는 빠른 말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표를 사려는 오십대 여자 셋이 보였다. 카드를 꺼내고 지갑을 뒤적이며 네가 사네, 내가 내네 하면서 부산을 떨고 있었다. ‘웬 젊은이들이’ 김 씨는 여자들을 보자 이 공간의 냄새가 달라지고 자신의 연령대가 내려가는 착각이 들었다. 십여 년 전이었다면 영역을 침범당한 느낌이 들고 혹여 영감들 가슴에 바람이 들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을 했을 수도 있다.
김 씨는 요건 몰랐지 하는 기분으로 중년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한 사람당 삼천 원이고, 쿠폰에 도장을 다 받으면 나중에 공짜로 한 편 더 볼 수 있다우.”
김 씨는 일곱 개의 도장이 찍힌 쿠폰을 내밀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참 고우시네요.”
“호호, 이제 뭐…… 오 년 전이면 모를까.”
김 씨는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모르며 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어르신’이란 호칭 대신에 ‘할머니’라고 불렀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른이건 아이건 왜 호칭에 민감한지. ‘할머니, 할아버지’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인데 사람의 심리가 요상하여 ‘나이가 들어’ 라는 앞의 말에 신경 쓰기보다는 ‘늙은 사람’이란 뒤의 말에 민감해진다. 앞에 붙여진 ‘나이가 들어’라는 다섯 글자에는 사람들 제각각의 얼마나 많은 의미와 사연이 담겨 있던가? 김 씨는 아등바등하지 않고 탐욕스럽거나 심술궂지 않게 나이 들기를 원하면서도 할머니란 호칭이 꺼려지는 자신이 우습다고 느껴졌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뜨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 씨는 요의가 느껴지지 않는데도 화장실을 다녀왔다. 간 김에 거울 한 번 들여다보고 하나뿐인 꽃분홍 립스틱으로 입술도 덧칠하고 나왔다.
상영관으로 들어가려는데 좀 전에 만난 여자들이 상영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공책만 한 인쇄물은 멀리서 보기엔 힘들었다. 노년층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마련된 영화관이다 보니 상영작 포스터도 없고 상영관은 하나뿐이고 테이블이 세 개 놓인 대기실 한쪽엔 천 원짜리 믹스 커피를 파는 간이매점이 고작이었다. 그 중 한 여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용지에 코가 닿도록 얼굴을 내밀었고 김 씨는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몇 년 전에 노안 수술을 한 김 씨 눈엔 웬만한 글씨는 잘 보이고 고가의 보청기 덕분에 청력도 좋지만, 좋아서 오히려 불편할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웬만한 것은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라고 시력과 청력이 나빠지는 것이라지만, 잘 안 보이고 잘 안 들린다는 이유로 젊은이들로부터 괄시받고 싶진 않았다. 오메가 쓰리와 은행잎 제제를 매일 챙겨 먹고 영어 공부도 30분씩 했다. 휴대폰을 켜면 바로 영어 단어 앱이 떴고, 건강 보조 식품 챙겨 먹는 시간도 휴대폰의 알람이 꼬박꼬박 알려주었다. 치매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한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휴대폰을 소유하게 되었을 땐 신인류의 일원이 된 것처럼 기뻤다. 설레는 김 씨를 위해 처음에는 휴대폰 사용법을 부드러운 말씨로 설명해 주던 아들이 반복적으로 물었더니 나중엔 짜증을 냈다. 아들의 구박을 감수한 덕분에 이젠 인터넷을 통한 물건 구입과 영화 예매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다. 한때는 지인들이 보내주는 동영상이며 좋은 글귀를 친구들한테 퍼 나르기도 했으나 글대로 실천도 못하면서 누군가에게 읽으라고 강요하듯 보내는 일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부터는 그만두었다. 망측한 사진을 받고 놀라서 휴대폰을 던져버린 적은 있지만, 적어도 김 씨가 자식한테 잘못 전달하는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다. 하지만 새벽에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노인들 사이에 떠다니는 가짜 뉴스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대로 믿고 흥분하기도 했다. 태극기 부대에 참석한 경험도 있는데 정치적 신념이 확실해서라기보다는 군중 심리와 함께 이 나이에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 깨인 노인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지금 상영할 건 이거예요.”
김 씨가 손가락으로 용지를 짚으며 말하기가 무섭게 일행 중 한 명이 톡 튀어들었다.
“아닌데…… 요거네요.”
김 씨 얼굴이 붉어졌다.
“나 좀 봐, 참.”
계면쩍은 김 씨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사람들이 들고나느라 문 주변이 번잡했다. 상영관 입구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김 씨는 오지랖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안으로 들어간 김 씨는 실내 전체를 훑어보다가 특정 위치에 잠시 시선을 던지곤 미소를 지었다. 등받이를 손으로 잡으며 자신이 선호하는 G7 자리를 향해 한 계단씩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뉴스에서 G7이란 단어를 가끔 들어서 익숙한 탓도 있고 근사해 보이기도 해서 그 자리를 고집하는 김 씨를 위해 카운터에서는 표를 따로 빼서 보관해두곤 했다.
전에 발을 헛디뎌서 계단을 구른 영감이 있었다. 김 씨는 그 장면을 보고 눈을 돌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남들도 내가 넘어지면 자신을 보는 것처럼 민망해하겠지.’
G7 바로 앞자리엔 박 씨가 앉아 있었다. 김 씨는 박 씨를 실버 영화 카페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소위 M.C커플이다. 산행을 같이 다니는 연인들도 M.C커플이라고 부르고 콜라텍에서 만난 인연들은 C.C커플로, 복지관에서 만난 연인들은 B.C커플로 불린다. 박 씨는 말수가 적었지만 영화 얘기만 나오면 술술 말을 잘 이어갔다. 놀라울 정도로 웬만한 영화 제목과 주인공 이름들을 기억하는 편이었다. 김 씨는 영화 얘기를 들을수록 박 씨의 매력에 빠져들었는데 젊어서부터 영화는 혼자 본다는 말 때문에 그가 더욱 근사해 보이는지도 몰랐다.
김 씨는 알은 체를 하지 않고 자리에 앉으면서 부러 큰 소리로 음, 음 거리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박 씨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만 까딱했다. 김 씨는 답례를 하면서도 입이 무거운 박 씨가 야속했다. ‘어서 오시게, 라고 한마디 하면 입술이 부르트나.’ 김 씨는 입을 샐쭉거렸다.
아직 영화 상영 전이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김 씨가 고개를 돌렸다. 통로 건너편에서 자리 때문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서 있는 여자는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고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노인은 굳이 빈자리도 많은데 여기에 앉아야겠냐며 버텼다. ‘저러니까 젊은이들이 질색하지.’ 김 씨는 중얼댔고 주변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여자는 투덜거리며 뒷자리로 갔고, 카운터에 말해서 쫓아내세요, 란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소란을 잠재우듯 실내가 어두워지자마자 광고 없이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제목과 함께 1936년 작품이란 숫자가 떴다.
“어머, 이상하다. 2008년에 만든 줄 알았는데.”
“게다가 흑백이야. 웬 구닥다리?”
“86년 전 영화네. 우리 아버지가 저 때 태어나셨거든.”
“말도 안 돼. 같은 제목의 영화가 또 있었나? 그냥 갈까? 냄새도 퀴퀴하고……”
김 씨가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자 여자들의 수다가 잦아들었다. 좀 전에 보았던 일행들이 막 들어와 앉은 참이다. 오래전 같았으면 따끔하게 한마디 했을 김 씨였다. ‘니들도 실수할 때가 있지.’ 김 씨는 미소를 지었다.
화면이 바뀌었고, 여자들은 다시 조잘대기 시작했다.
“미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래. 그냥 보자.”
“그래, 감독도 유명한 사람이네.”
“쉬, 쉬.”
영화의 첫 장면은 미국의 어느 대저택의 거실이었다. 보석으로 치장한 젊어 보이는 여자가 등장했다. 김 씨 눈에는 여주인공의 나이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 얼굴 구분도 힘들지만, 나이 추측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실제 나이는 김 씨가 추측한 숫자에 10 정도를 더해야 했다. 여주인공은 파티장도 아닌데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김 씨 평생에 입어본 적은 고사하고 사진에서만 보았던 옷이다. 부러우면서도 이런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놀라웠다. 뒤이어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이어졌다. 남자는 거실로 들어와서 여자를 꼭 안아주었다. 종일 남편을 기다리느라 수고했다고.
김 씨는 정해진 팔자란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 씨 남편은 며칠씩 집을 비우다 돌아와도 첫마디가 개밥 줬어? 였다. 김 씨는 아내가 아니라 밥솥이었고 세탁기였고 청소기였다.
외국 영화를 볼 때 김 씨는 긴장이 되었다. 자막이 서 너 줄일 땐 마지막 문장의 꼬리를 놓치기도 하고 사람의 이름을 읽는 중에 화면이 넘어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왜 그리 이름이 길고 호칭 방법도 가지가지인지.
여주인공은 남자의 뺨에 입술을 비벼대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김 씨의 눈에 남자는 아버지뻘로 보였지만 여자의 행동이나 자막으로 미루어보아서는 남편 같았다.
‘아니, 저런 도둑놈이 있나, 곱빼기 띠동갑도 넘겠네.’ 예나 지금이나 지팡이 토막을 가운데 달고 다니는 인간들이 젊은이를 밝히는 건 변함없지만, 김 씨가 보기에도 못생기고 잘생긴 걸 떠나서 싱싱하다는 점만으로도 모두 예뻐 보였다. 심지어 다섯 살 아래인 여자도 김 씨 눈엔 젊어 보였다. 흥분했던 김 씨는 이내 인정 모드로 태도를 바꾸었다.
변덕을 부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여자 주인공을 보면서 김 씨는 혀를 찼다. ‘젊고 얼굴 반반하면 저렇다니까.’ 김 씨는 며느리를 떠올렸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인데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 해도 콕 박힌 미운털이 빠지지 않는 애였다. 좀 산다는 집에서 자란 며느리는 액세서리 수집이 취미였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시댁에 올 때마다 몸에 치장하고 있는 액세서리가 바뀌었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금방 알아볼 정도로 색상이며 디자인이 확확 달라졌다. 며느리를 떠보느라 나도 네가 한 것 좀 차 보자, 고 했더니 어머, 사람들이 웃어요, 라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가 미워 보이는 이유가 말을 얄밉게 하는 탓도 있지만 자신의 삐딱한 시선도 섞여 있다는 걸 김 씨는 안다. 남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자기 돈으로 갖고 싶은 걸 사는 행위를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주인공과 비교해 보니 며느리가 그다지 변덕 부리는 애도 아니고, 딱히 지 남편이건 시댁에 못 하는 편도 아니었다. 김 씨는 며느리의 미운털이 다름 아닌 질투라는 생각에 새삼 부끄러웠다. 그것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며느리는 여자의 촉으로 벌써 눈치 챘을 게다. ‘앞으로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스크린의 영상이 유럽을 항해하는 크루즈 내부로 바뀌었다. 은퇴한 남편이 아내와 긴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한국 여자들은 보리죽 한 숟갈도 자식 입에 넣어주느라 배곯고 쪼그라져 있을 때 서양 여자들은 양장을 빼입고 삐딱 구두 신고 파티에 가거나 세계 일주를 했다니.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날에도 김 씨는 고작 빌려 입은 단색의 한복에 면사포만 쓰고 혼례를 치렀다. 김 씨는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서양 여자들에 비해 고루하게 살았다.
육지와 바다를 오가면서 장기 여행을 하는 사이에 여주인공은 서 너 명의 남자들과 사랑 행각에 빠졌다. 여자는 쉽게 남자를 만나서 사랑했다가 헤어지길 반복했다. ‘지 멋대로군, 착한 남편이 딱하네, 결혼 전에 많은 여자를 만나보지.’ 흥분지수가 높아진 김 씨는 자세를 바꾸다가 자신의 과거가 떠올랐다. ‘하긴, 선봐서 한 달 만에 식을 올린 나는 어떻고.’ 그러고 보니 그런 도박이 없었다.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어이없는 일들이 다반사였는데 죄다 그러려니로 통했다. 어쩜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일들이 몇 십 년 후엔 또 이상한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김 씨가 젊어서 여주인공처럼 했다면 돌팔매질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김 씨가 영화에 집중할 만하면 뒤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을 엿듣는 재미가 있었다. 뒷좌석의 한 여자가 또 말을 꺼냈다.
“안 봐도 비디오다. 나가자.”
“나갈까?”
“그래, 질 떨어진다.”
“아냐, 노벨상 받은 작품이라잖아, 뭔가 있을 거야.”
한 여자가 일행을 달랬다. 김 씨 뒤에서 들려오는 수다 소리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 가래 끓는 소리, 카톡 소리, 사부작사부작 사탕 껍질 벗기는 소리 따위가 영화 중반이 넘어가도록 줄지 않았다. 심지어 전화벨 소리도 울렸다. 늴리리아 늴리리…… 맨 앞줄에 있던, 환갑이 넘어 보이는 남자가 손에 쥔 휴대폰을 끊거나 벨소리를 줄일 생각은 안 하고 느그적 느그적 걸어 나갔다. 남자를 따라서 사람들 고개도 돌아갔다. “걷지 말고 좀 뛰요.” 영화 시작 전에 큰 소리로 면박을 주었던 동일한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키득거렸다. 속이 후련해진 김 씨는 중얼거렸다. ‘어여 가야 해, 어여.’
김 씨는 다시 영화에 몰두하면서 좀 전과는 다른 생각도 했다. ‘하기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뭘 따져, 몸뚱이 아꼈다 뭐 하게, 못 노는 것들이 바보지.’ 여주인공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 씨는 어느새 주인공 편이 되어있었다. 뭐랄까, 김 씨는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양가적 감정이 늘어났다. 어떤 상황이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애매할 때가 있다. 편 가르는 행위가 불편해지면서 교집합 부분이 넓어지고 있다. 기억력은 물론 얼굴도, 몸도 전보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그로 인해 생기는 서운한 감정과 소외감도 자주 들지만 다른 한편으론 삶을 대하는 태도가 느긋해졌다고 할까. 듣는 이에 따라서는 이율배반적이라고 하겠지만, 신체 중에서 가장 불결하게 여기는 부위가 신성한 부분이자 최고의 성감대인 인간 자체가 모순덩어리 아닌가.
여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외도한 상대는 연하의 남자였다. 남자의 어머니가 아들의 상대를 이혼녀이고 연상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여 둘을 강제로 갈라놓는 장면이었다. ‘딱, 나구먼.’ 김 씨는 아들이 자신보다 연상인 여자를 데려왔던 적을 떠올렸다. ‘그렇게까지 반대할 것도 없었는데.’
허리가 꼬부라져도 연애 상대는 어릴수록 좋다는 영감들이 김 씨 눈에는 철없어 보였다. 박 씨 속을 떠보기 위해 왜 두 살 연상인 자신을 만나느냐고 물었더니, 같이 나이 들어가는 마당에 거기서 거기라고, 나이만 적다고 젊은 거고, 나이가 많다고 늙은 거냐고 반문하던 박 씨의 말이 떠올랐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젊은이들이 상대를 고를 때 이혼, 사별, 동거, 비혼 따위를 따지는 일이 별 의미가 없어보였고, 잘 생긴 사람보다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에게 호감이 갔다. 이는 박 씨가 끌린 이유이기도 한데 김 씨 눈엔 박 씨의 딱딱한 말투마저도 매력으로 느껴졌다.
영화는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역사물을 주로 보던 김 씨에게 로맨스 영화는 피로를 씻어주는 꿀물 같았다. 일부러 로맨스물을 외면해오던 김 씨의 마음을 열게 한 계기는 박 씨다. 로맨스를 주제로 한 영화 내용을 들려줄 때 소도둑처럼 생긴 박 씨의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사랑이 뭔지 제대로 아는 듯 보였다.
김 씨는 영화에 푹 빠져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본부인과 이혼을 하고 새로 만난 애인에게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남자가 탄 보트가 애인이 사는 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김 씨는 다가올 장면을 앞질러 상상하면서 잘했다, 잘했어, 란 말을 연발했다. 한 사람과 애정도 없이 의무적으로 평생을 산다는 건 미련한 짓이지만, 남편이 살아있다면 아직도 그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은 명령하고 김 씨는 복종하고 따르는 식이었다. 김 씨는 담뱃재가 떨어지기 전에 재떨이를 남편의 턱밑에 갖다 대고, 남편이 밥을 먹는 내내 생선 가시만 발라야 했다. 남편은 다리에 깁스를 한 김 씨에게 2충에 올라가서 부채를 가져오라고 호통 친 적도 있었다.
혼자면 외롭기나 하지, 둘이면 외로우면서도 괴롭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김 씨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하고 싶은 대로 채워가고 싶었다.
스크린 속의 여자가 남자에게 다가가서 안겼다. 남편과 사는 동안 포옹은 언감생심이었다. 지 기분 내키면 아무 때나 김 씨를 자빠뜨렸다.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손끝조차 스치지 않고도 20년을 더 살아냈다. 김 씨는 남편이 매일 만지는 문고리나 수저만도 못했다.
김 씨는 남자의 품이 얼마나 따뜻할지에 대해 상상했다. 어릴 적 포근한 엄마의 품이나 듬직한 아들의 품과는 다른 느낌일 게다. 박 씨의 품에 안겨 지난날을 위로받고 싶었다. 활활 타오르기 위해 이성을 만나는 젊은이들과는 달리, 같이 사그라들기 위해 상대를 만나고 싶었다. 반찬이 김치 하나일망정 마주 앉아 식사하고, 약 먹을 때 물이라도 떠다 주고, 피곤한 발을 얹고 잠들 수 있는 사이를 원했다. 노년의 로맨스를 망측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인간은 죽어야만 성애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박 씨가 꽃다발을 들고 걸어오는 상상을 했다. 저…… 순자 씨, 김 씨는 맘 가는 대로 달려가는 자신의 생각이 주책이라고 느꼈다. 거의 움직임이 없이 앉아 있는 박 씨의 뒤통수를 쳐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가 고개를 홱 돌릴 것만 같았다. 머리숱이 인제의 자작나무숲처럼 듬성하지만 박 씨의 뒤태는 늘 정갈했다. ‘저 영감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나.’ 김 씨는 그뿐 아니라 영화관 내의 모든 노인들 감상평이 궁금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도 전에 뒷좌석의 여자들이 서둘러 일어났다.
“내용이 끝까지 예상을 벗어나질 않네.”
김 씨는 영화를 보면서 주변 사람을 떠올리고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연애 감정의 불씨를 키우는 계기도 되었건만 중년 여자들은 빤하다고 했다. 김 씨의 귀에는 이 영화를 끝까지 앉아서 보는 사람들 수준이 빤하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게, 사람들 일어나기 전에 얼른 가자.”
“예의 지키다가는 어느 세월에 나갈지 몰라.”
중년 여성 셋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김 씨가 영화의 여운을 즐길 겨를도 없이 불이 켜졌고 사람들은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면은 일어나는 사람들 때문에 거의 가려졌다. ‘모두 가스 불을 안 끄고 나와서 서둘러 가는 게지.’ 김 씨는 중얼거리며 박 씨가 일어날 때까지 애꿎은 가방만 뒤적거렸다. 박 씨가 일어나더니 김 씨를 보며 말했다.
“안 가요?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그러죠.”
김 씨는 순순히 박 씨의 뒤를 따라갔다. 문을 나서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도 둘은 데면데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야 김 씨는 박 씨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아직도 사람 많은 곳에서 나란히 걷는 게 어색해요?”
박 씨가 타박하듯 답했다.
“뭘, 어색하긴.”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정류장이 있었지만 김 씨는 길이 들지 않은 구두 때문에 멀게 느껴졌다. 박 씨를 만날 때만 신는 검정 단화를 신고 있었다. 김 씨가 가지고 있는 두 켤레의 구두 중 동절기용이었다. 평소엔 운동화를 주로 신고, 화장도 하지 않았다.
박 씨는 김 씨를 재촉하지 않고 보조를 맞춰 걸었다. 김 씨가 영화 본 소감을 물었더니 박 씨는 그 당시엔 획기적인 일이었겠다고, 시대의 변화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고 답했다. 주인공에 관한 얘기 끝에 ‘나이 듦’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늙는 게 두렵지 않아요?”
김 씨가 박 씨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두려워해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공평하게 찾아오는 걸 그냥 받아들여야지 않겠소. 늙는 걸 두려워할 게 아니라 추하게 늙는 걸 경계해야지.”
김 씨는 늘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박 씨가 야속하면서도 궁금해서 또 물었다.
“그럼 아름답게 늙는 게 뭔데요?”
“내가 정답도 아니고 뭘 묻소?”
“그래도 생각을 듣고 싶어요.”
“뭐 별거 있소? 그냥 다 덜어내는 거지. 감정도 덜어내고 그런 거 아니겠소?”
“덜어낸다는 말은 줄인다는 말과 어감이 다르네요. 뭔가 내가 덜 쓴 만큼 남이 쓸 기회를 주는 느낌이 드네요. 여하튼 자신이 가진 것이나 감정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는 거지요,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노하지도 말자는 얘기죠, 태봉씨?”
김 씨가 슬쩍 박 씨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도 덜어내지 말아야 할 감정이 있지.”
김 씨가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이거요?”
박 씨는 5년 전 아내와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내와 아들이 죽기 전에 사랑한단 표현을 많이 해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는 걸까.’ 겉으로는 담담해보이지만, 평온한 얼굴 아래 숨겨져 있을 부단한 노고에 대해 김 씨는 생각했다. 젊어서 한 성질 했다는데, 어떻게 변할 수 있었는지, 주름 하나하나에 새겨진 사연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버스는 금방 왔다. 박 씨가 손을 내밀어 김 씨 먼저 타라는 신호를 했다. 차에 오르는 김 씨는 뒤따라오는 박 씨에게 힘들어하는 동작을 들키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잡고 부지런히 발을 놀려서 계단을 다 올라왔으나 자신도 모르게 나온 에구, 소리로 허사가 되어버렸다.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구나 질투의 감정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여전하지만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내부의 앞쪽 노약자 좌석은 젊은이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지만 김 씨는 못 들은 척하고 뒤로 갔다. 둘은 맨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출발했고 속력이 나면서 덜컹대기 시작했다. 운전까지 과격한 탓에 엉덩이가 공중으로 떴다가 내려앉았다. 김 씨는 워메, 하면서 박 씨의 손을 잡았다. 꼬리뼈에 충격이 느껴졌다. 박 씨는 기사에게 소리쳤다.
“거 운전 좀 살살 하소.”
덕분에 둘은 착 달라붙게 되었고 김 씨가 손을 놓으려 하자 박 씨가 더 세게 쥐었다. 박 씨의 손이 야들야들하고 따뜻했다. 빼려던 손을 박 씨의 손에 맡긴 채 김 씨는 얼굴을 창으로 돌렸다.
박 씨가 물었다.
“뭐 볼 거 있소?”
“나뭇잎들이 제법 물들었네요.”
김 씨는 생각했다. 나뭇잎 색이 변하는 걸 앞으로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를.
“같이 좀 봅시다.”
박 씨가 고개를 돌리면서 김 씨의 머리카락에 뺨이 닿도록 얼굴을 바짝 내밀었다. 김 씨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박 씨의 행동에 의도가 있기를 바랐다.
네댓 정류장을 지나서 내릴 때가 된 두 사람은 출입문으로 걸어 나갔다. 박 씨가 왼쪽 기계에, 김 씨는 오른쪽 기계에 카드를 태그 한 후 출입구를 막은 채 서 있었다. 여학생이 박 씨와 손잡이를 잡고 있는 팔 사이로 손목을 내밀어 태그를 시도했다. 연이어서 실패한 학생을 보고 김 씨는 카드를 가운데로 대요, 라고 말했지만 학생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또 손목을 갖다 댔다. 기계음이 들렸고 그제야 김 씨는 학생 손목에 차고 있던 검은 물건이 요즘 광고에 나오는 뭐시기란 걸 알았다. ‘또 오지랖을.’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김 씨는 자신이 하루살이만도 못한 3초의 뇌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영화관으로 오던 버스 안의 상황이 떠올랐다. 김 씨의 앞좌석에 앉아 있는 청년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시선이 갔다. 큼직한 흰색 라벨이 옷의 바깥쪽에 붙어있었다. 김 씨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옷을 뒤집어 입었네요, 라고 속삭이듯 말했고 청년은 아, 이거요, 요즘 유행이에요, 라며 목 뒤의 라벨을 만지작거렸다.
박 씨 앞을 지나쳐서 쏜살같이 내리는 여학생의 귀에 무선 이어폰이 꽂혀있었다. 두 사람도 손잡이를 잡고 발 앞을 살피면서 내렸다. 여학생이 내리는 속도의 다섯 배는 족히 걸렸다. 내리기가 무섭게 문이 닫히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했다. 왠지 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니들도 답답하지. 당사자는 오죽하겠냐.’ 김 씨는 버스 기사가 야속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한 줄기의 센 바람이 지나갔다. 나뭇잎이 몇 점 떨어졌다. 김 씨가 옷깃을 여미자 박 씨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풀었다. 목에 걸어주려고 박 씨가 손을 뻗자 김 씨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런 맛에 데이트하는 거 아니요?”
“그게 아니라……”
김 씨는 머플러를 목에 늘어뜨린 채 눈을 내리떴다.
“갑시다, 순자씨.”
박 씨가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김 씨는 뒤따라가며 웃음이 나왔고, 목덜미가 자꾸 간지러웠다. 박 씨가 몇 미터도 안 가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골목으로 들어갔다. 코너의 편의점을 끼고 꺾어 들어서자마자 생선구이집이 보였다. 김 씨는 갈치구이가 먹고 싶다고 박 씨에게 지나가듯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입구부터 고소한 생선 굽는 냄새가 폴폴 풍겼다. 홀에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했다. 김 씨는 음식 맛을 보기도 전에 행복감에 폭 빠졌다. 빈자리는 입구 근처밖에 없었다. 박 씨는 김 씨에게 안쪽 자리에 앉도록 권하고 물도 따라주었다. 수저도 놓아주려고 하자 김 씨가 손을 저으며 막았다.
“아, 제가 하지요.”
“선심을 쓰면 좀 받으세요.”
박 씨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황송해서 그렇죠.”
대접받는 게 어색한 김 씨가 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남자는 주고 싶고 여자는 받고 싶은 게 연애의 재미 아닙니까?”
“그래도 받기만 하는 건 좀 그래요.”
직원이 주문을 받아 가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메뉴라고 해봐야 갈치구이와 갈치조림 두 가지였다. 정갈한 밥상이 차려질 때까지 김 씨는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다 박 씨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태봉씨, 여긴 자주 오셨던 곳인가요?”
“오긴 누가 와요.”
박 씨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깐 미안했어요. 받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만……”
박 씨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막상 잘 안 되네요.”
둘이 대화하는 사이에 기름이 차르르 흐르는 갈치구이가 나왔다. 박 씨는 왼손으로 갈치 토막을 잡고 오른손에 든 젓가락으로 잔가시가 있는 양쪽 끝을 바깥으로 당겼다. 가운데 뼈 위에 숟가락을 밀어 넣으면서 살을 들어 올렸다. 살덩어리가 부서지지 않고 네모로 분리되었다. 김 씨는 능숙한 손놀림을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박 씨가 발라 준 생선살을 수없이 먹었을 과거의 여인에 대해 생각했다. 밥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손만 쳐다보고 있자 박 씨가 한마디 했다.
“가시 바르는 거 처음 봅니까? 밥 좀 떠보세요, 순자 씨.”
김 씨는 얼떨결에 수저로 밥을 떴다. 박 씨가 뽀얀 쌀밥 위에 생선살을 얹었다. 김 씨가 당황하여 수저를 빼려다가 주춤했다.
“또 그러시네.”
“남의 밥에 반찬을 얹어주기만 하고 받아먹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럽니다.”
말하는 도중에 삼십여 년 전 한정식 식당에서 며느리를 처음 만났던 때가 불쑥 떠오를 게 뭐람, 시어머니 가까이에 있는 음식에 젓가락을 댈 엄두도 못 내는 며느리를 위해 아들이 갈비 한 점을 옮겨 주던 모습이 박 씨의 행동을 보자 떠올랐다. 그때의 섭섭함이 지금에서야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박 씨가 김 씨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 감동 먹은 거요?”
“네. 제대로 먹었지요.”
“밥도 많이 먹어요, 순자 씨.”
김 씨는 사람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박 씨의 자상함과 배려는 몸에 밴 습관 같았다. 또한 세상의 소란함과 서두름으로부터 흔들림이 적어 보였다. 팔십 가까이 살아온 눈으로 알아볼 수 있다.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남편은 김 씨를 백 번도 더 울렸다.
김 씨는 밥을 먹는 중간에 국이나 물을 자주 마셨고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당황했다. 그리 맵지도 않은 도라지 초무침을 먹으면서 기침도 더러 했다. 박 씨가 김 씨에게 티슈를 내밀기도 하고 직원에게 따뜻한 물도 달라고 했다. 김 씨는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따뜻한 물로 입가심을 했다. 여태껏 먹어본 밥 중에 제일 달았다. 박 씨는 김 씨를 보며 흐뭇해했다. 데이트다운 데이트가 네 번째인 김 씨의 눈에 박 씨의 모든 점이 좋아 보였다. 김 씨는 나중에 콩깍지가 벗어지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이 들어서 이성을 만날 때는 다른 건 다 맘에 안 들어도 한 가지 맘에 드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김 씨는 박 씨와 헤어져서 집에 돌아왔다. 김 씨는 박 씨가 자신의 어깨에 오도카니 앉아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를 손으로 문질러보았다. 웃음이 났다. 옷도 벗지 않고 며느리에게 전화부터 했다.
“너 좋아하는 약식하고 식혜 해 놓을 테니 내일 와서 가져가거라.”
“꺄악.”
김 씨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괴성 때문에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좋아하다니, 김 씨는 자신이 얼마나 박한 시어머니인가를 생각하다가 바빠서 글피에 갈게요, 라고 이어진 며느리의 말 때문에 좋다는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한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전화를 끊고 개운치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니 시어머니 행세, 연장자 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자기 입으로 박 씨에게 되물었던 말이 생각났다. 너무 기뻐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너무 노하지도 말자. 며느리도 나름의 스케줄이 있는 건데.
박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날엔 상념에 잠기게 된다. 김 씨는 아무리 잘 살았어도 마무리가 부실하면 인생 전체가 망가지는 느낌이 들고 잘 못살아왔어도 끝이 좋으면 지나온 생이 보상받는 느낌이리라. 인생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그 간절함의 가운데 박 씨가 있었다. 왜냐하면 김 씨의 이름을 불러 준 사람은 박 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있긴 있었다. 내과,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간호사들이 불러 주는 이름은 달갑지 않았다.
* 영화 제목은 ‘공작부인’이며, 원제는 남자 주인공 이름인 ‘Dorthworth’다.
•수상소감 - 우수상 단편소설 박상희
“저의 허당끼가 소설을 쓰는 모티프가 되기도”
나이가 지천명을 넘어가면서 아직 오지 않은 시절에 대한 호기심과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자세를 고민하면서 써 놓았던 몇 편의 소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이번 공모전의 주제와 어울리는 한 편을 골라서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저의 허당끼로 인해 소재를 얻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꼼꼼하지 못해서 영화감독이나 제작년도를 확인하지 않고 영화관에 간 실수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8년에 만들어진 「공작부인」을 보고 싶었는데 그만 1936년에 제작된, 같은 타이틀의 다른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 편의 소설을 썼고, 수상까지 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의 허당끼는 소설을 쓰는데 모티프가 되기도 합니다.
기존의 저명한 작가들은 글 쓰는 작업을 습관처럼 매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따라해 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던 터에 선배가 제안을 해왔습니다. 하루에 단편 소설 한 편을 읽든가, 필사를 하든가, 소설 한 장 분량을 쓰든가, 써 놓은 소설을 수정하든가, 매일 이 네 가지 중, 한 가지라도 해내기로. 지키지 못할 경우는 밥을 사기로 했습니다. 올해 초부터 선배는 하루도 빠짐없이 약속을 지켜왔는데 저는 밥 사러 몇 번을 선배 동네로 가야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사의 밑그림이나 순서를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 시간 안에 쓰는데 만 급급했습니다. 부모님 댁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가면서도 노트북을 들고 갔습니다.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소설의 중간 토막부터 써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구성을 해놓고 소설을 써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지만 소설의 줄거리, 캐릭터, 작가의도가 정해질 때까지 기다리다보면 소설은 시작도 못 한 상태에서 두세 달이 그냥 가버리기도 합니다. 지금은 첫 문장을 쓰다가, 중간 중간에 몇 줄씩 쓰기도 하고 결론의 한 문장부터 쓰기도 하는 등 규칙 없이 쓰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안 쓰는 것보다는 나은 듯해서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제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소설을 놓아버릴까 말까 고민을 반복할 때도 선배는 꾸준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이제는 하루라도 소설과 관계된 읽기나 쓰기나 수정을 하지 않고 지나가면 꺼림칙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선배와의 다짐이 이제 효과를 발휘하는 듯합니다. 목표를 거창하게 잡으면 얼마 가기도 전에 지쳐버리지만,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정하니 꾸역꾸역 앞을 향해 나가기는 합니다. 다이어트 할 때 일주일에 1킬로그램 또는 한 달에 4킬로그램 감량을 목표로 하지 않고, 매일 200그램씩 빼겠다는 덜 부담스러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같은 저만의 방식입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글이 안 써지면 딴 짓을 합니다. 제 취향이 아닌 영화도 보고, 딸을 앞세워 젊은이들이 모이는 라이브 카페에 가기도 하고, 부모님과 조카들까지 모아 놓고 마음 알아채기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막힌 골목이나 민예품이 전시되어 있는 재미있는 장소를 찾아다니기도 합니다. 펜션 주인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기절할 각오하고 패러글라이딩에 도전도 해봤습니다.
TV를 보거나 버스타고 차창 밖을 바라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휴대폰에 단어 나열식으로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어놓습니다. 기록 당시에는 이해되었던 내용들을 한참 후에 찾아보면 어떤 의도로 저장해 두었는지 암호 해독 수준이 되기도 하고, 메모해 둔 제 글씨체를 읽을 수 없는 어이없는 경우도 생깁니다.
글을 쓰면서 세상을 의심하고 낯설게 보는 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태껏 보편타당하다고 여겼던 점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글이 쓸수록 더 어렵게 느껴지지만,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수상으로 인해 격려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