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나이 듦’을 주제로 책을 엮고 싶었다는 정끝별(54) 시인·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컴퓨터 바탕화면 속 ‘늙음’이라는 폴더에는 그 날것의 이름에 어울림직한 시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50대 중반이 되었을 즈음, ‘지금이야말로 나이 듦을 이야기할 최적기’라 느꼈다. 청년기엔 늙음을 막연히 멀리 볼 것만 같았고, 노년엔 너무 자신의 늙음에 매몰돼
산행은 봄·여름·가을·겨울 사철 쉼이 없다. 어린 시절 눈이 잘 오지 않는 따뜻한 남쪽에서 자랐던 터라, 흰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 산행을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러다 설상에서 손가락 탈골사고가 나고 말았다. 자기 손가락을 스스로 접골하는 희대의 사건전말은 이렇다.
2013년, 새해 초부터 눈이 엄청 많이 내렸다. 그날은 학교 동문 전체 산악회에서 북
삼수의 고통 끝에 도도한 대학 문이 열렸다. 3월의 꽃샘추위도 매섭게 따라붙었지만 나에게는 달짝지근한 딸기바람일 뿐이었다. 개강 후 일주일이 지난 하굣길에도 추위는 여전했다. 발을 동동거리며 버스를 기다리는 내 옆에 순한 인상의 남학생이 언뜻 보였다. 기다리던 버스가 와서 타는데 그 남학생도 같이 차에 오르는 게 아닌가. 붐비는 차 안에서 이내 자리가 나자
싫은 사람이 있으면 안 보면 된다. 부득이 마주치게 되면 피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마주치게 되는 관계가 고등학교 동창생들 모임이다. 비슷한 환경에서 만나 50년을 지내왔으니 친한 관계이다. 그런데 그 중에도 친소관계는 있게 마련이다.
A는 동창회 모임에 좀 늦게 도착했다. 한정식집이었다. 인기 있는 반찬은 먼저 바닥난다. 간장게장이 인기
요즘은 겨울에도 눈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지금의 겨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몹시 춥고 눈도 많이 왔다. 그때는 함박눈이 탐스럽게 내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덮여 있곤 했다. 그 시절엔 눈 내리는 정경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나이 든 지금도 눈 내리는 날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어머니와 회초리
“지워, 다시 써”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잘못이 고쳐지지 않자 등짝에 회초리가 날아든다. 아무리 새 공책이라도 같은 곳을 3~4회 지우기를 반복하면 찢어지기 마련이다. 눈물이 공책에 떨어지니 지울 수도 없었다. 타고난 미운 글씨체는 회초리도 못 고쳤다. 미운 글씨체는 나를 쫓아다니며 망신을 줬다.
평생을 살면서 어머니에게 세
김 서린 다관 속에서 따뜻한 잠영을 하는 총천연색 꽃들을 나른하게 바라본다. 꽃다발을 받는 느낌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향긋한 기운과 느긋함이 찻잔 속에 한아름 안겨 담긴다. 추운 겨울 얼었던 손에 꽃차가 담긴 잔을 감싸쥐고 한 모금, 또 한 모금. 몸도 마음도 봄날 꽃처럼 활짝 핀다. 아름다운 모습만큼이나 순하고 착한 꽃차의 매력에 빠진 이들을 만
한국 포크 블루스의 살아 있는 전설, 이정선의 음악 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에게 오랜 활동의 원동력을 물으니 “다른 걸 할 줄 모르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그는 거의 모든 질문에 무심하고도 간단하게 답한다. 자신의 음악적 삶에 대해서조차도 “그냥 오래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974년에 데뷔한 이후 그가 대중음악사에서 이룬 것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S예요. 선생님 저 곧 결혼할 거예요. 고마웠어요, 선생님"
"S야 정말 오랜만이구나. 참으로 축하한다. 이제는 힘든 일은 다 잊어버리고 좋은 사람과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S를 만난 것은 그녀가 평택여고 2학년인 1998년도 봄학기였다. 어느날 컴퓨터실에 갔던 나는 작은 소동을 목격했다. 보육원에서 살고 있던 S가 같은
청소년들은 식욕이 왕성하다. 없어서 못 먹을 지경이다. 어릴 때 자장면 먹으러 중국집에 간 적이 있는데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별로 드시지 않았다. 그때는 이렇게 맛있는 자장면을 왜 안 드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이 들어 보니 알게 됐다. 어르신들은 소화기가 약하다. 먹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식사 후 속이 좋지 않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다. 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