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며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 등을 이용하는 ‘구독경제’의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뿐 아니라 의식주부터 취미와 여가 등 삶의 전반에 다양한 방식으로 침투하고 있다. 심심할 때 TV 대신 넷플릭스를 보고, 유튜브 구독자 수로 인기를 가늠하는 구독 전성시대, 시니어가 알아두면 좋을 이색 서비스를 소개한다.
사진 오픈갤러리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지 1년, 집에 머무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단순한 의식주 생활을 넘어, 개인의 취미와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카멜레온처럼 변하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은 다양한 커피용품으로 ‘홈카페’를 만들고, 영화광들은 빔프로젝터를 구매해 ‘홈시네마’를, 운동 마니아들은 각종 운동기구를 들여 ‘홈짐’을 차리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21’에서 집의 기능이 겹겹이 추가되는 현상을 ‘레이어드 홈’이라고 명명했다.
다양한 인테리어와 가전용품으로 주거 공간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는 가운데, 전시회·갤러리 등 문화생활을 편히 즐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림 소장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미술관에 가는 대신 집 곳곳에 그림을 걸어 자신만의 갤러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명 화가의 원화는 구하는 과정부터 어렵고,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떤 작품을 어디에 걸어야 하는지 등 지식이 부족해 혼자 결정하기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림 렌털 서비스 ‘오픈갤러리’
‘오픈갤러리’는 이처럼 그림을 소비하고 싶지만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국내 인기 작가의 원화를 대여하는 그림 렌털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큐레이터와의 상담을 통해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하면 전문 업자가 작품 설치를 돕는다. 최초 이용 시에는 큐레이터가 방문해 도슨트 서비스도 제공한다. 그림은 3개월을 기준으로 교체가 이루어져 계절이나 유행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2021년 2월 기준 약 1100명의 작가와 3만7000여 점의 작품이 등록돼 있으며, 이 중 오픈갤러리가 중장년층 고객에게 주로 추천하는 작품은 전미선, 이현열, 임은정, 고재군, 류지선 작가의 그림이다.
대여 요금은 작품 크기에 따라 다르며, 1개월 기준으로 책정한다. △10호(약 50×45cm) 이하 3만9000원 △20호(약 70×60cm) 이하 6만9000원 △30호(약 90×70cm) 이하 9만9000원 △40호(약 100×80cm) 이하 12만 원 △60호(약 120×90cm) 이하 15만 원 △80호(약 145×110cm) 이하 20만 원 △100호(약 160×130cm) 이하 25만 원이다. 이는 작품 원래 가격의 1~3% 수준이다.
대여 전 상담은 온라인 및 오프라인 방식으로 진행한다. 온라인은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보낸 뒤 유선 상담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성된 제안서에서 원하는 작품을 고르면 된다. 제안서에는 약 5점의 작품이 추천된다. 신청서를 작성할 때는 개인의 취향이나 공간의 특성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좋다. 취향을 모른다면 오픈갤러리 홈페이지에서 AI 취향 분석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오프라인 상담은 큐레이터가 가정을 방문해 공간을 확인하고 어울리는 작품을 추천한다. 단 서울·경인 지역에 한하며, 6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그림이 마음에 든다면 기간을 연장하거나 구매할 수 있다. 대여에서 구매까지 이어지는 비율은 3% 정도다. 대여 기간 지불한 요금을 제외한 금액으로 살 수 있다. 만일 이용자의 실수로 작품에 복구 불가능한 정도의 손상이 발생할 경우 매매가의 50%를 청구하며 작품을 회수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 주의는 필요하지만, 눈으로만 감상한다면 결함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픈갤러리 관계자는 “중장년층 고객 90%가 만족하고 있다”며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멋진 풍경이나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Plus+] 시니어 홈갤러리 엿보기
[CASE 1] 송그림 씨 (구독 14개월)
“자식을 다 키워 보내니 쓸데없이 집이 넓다며 외로워하시는 엄마를 위해 선물해드렸어요. 그림 하나로 집 안 분위기가 확 바뀐다고 지금까지 해드린 선물 중에 제일 좋아하시네요!”
작품 임은정, DOOR-초대(Invitation)
대여 요금(월/VAT 포함) 6만9000원
구매 가격 900만 원
[CASE 2] 박미술 씨 (구독 7개월)
“여행 가면 미술관, 박물관부터 가실 정도로 ‘아트러버’인 엄마를 위해 그림을 걸어드렸어요. 코로나19 때문에 강제 ‘집콕’ 중이신데, 집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고 너무 좋아하세요!”
작품 이여운, duplicate_3
대여 요금(월/VAT 포함) 15만 원
구매 가격 750만 원
● Exhibition
◇유에민쥔(岳敏君) 한 시대를 웃다!
일정 5월 9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장샤오강, 왕광이, 팡리쥔과 더불어 중국 현대미술 4대 천왕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유에민쥔의 국내 최초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1989년 발생한 천안문 사태에 혐오를 느낀 유에민쥔은 다음 해 베이징에서 화가로 등단해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으로 그가 겪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작품에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활짝 웃는 얼굴이 등장하지만, 이는 사회주의 붕괴를 목격한 국민으로서의 절망을 역설적이고 자조적인 웃음으로 나타낸 것이다. 국내외를 통틀어 최대 규모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유화부터 대규모 조형 작품, 최근 선보이는 꽃 형상의 얼굴 작업까지 1990년부터 이어지는 유에민쥔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총 6개 섹션으로 나뉘어 진행되며, 각 섹션은 유에민쥔의 트레이드마크인 웃음 속 감춰진 의미를 삶과 죽음, 인간 사회 등 다각도로 바라본다. 전시 기간 코로나19로 인해 도슨트의 대면 해설 대신 앱 ‘도슨트’로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며, 아이돌 그룹 샤이니 온유가 따뜻한 음성으로 읽어낸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일정 5월 30일까지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1934년 시인 이상은 서울 종로에 다방 ‘제비’를 열었다. 벽에는 그의 절친 구본웅의 그림과 쥘 르나르의 경구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예술가들은 미샤 엘만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르네 클레르의 영화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1930~50년대 격동의 시기, 장르는 다르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시대의 전위를 꿈꿨던 문예인들의 뜨거운 연대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막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전은 정지용·이상 등 문학인과 구본웅·황술조 등의 화가를 통해 일제강점기 및 해방기 문학과 미술의 밀월 관계를 조명한다. 총 4부로 나누어 구성된 이번 전시는 다방 ‘제비’를 배경으로 한 공간을 시작으로 신문·잡지 등 인쇄 미술, 대표적인 문학·미술인 커플의 관계도,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문학적 재능도 뛰어났던 작가의 글까지 총 300여 점의 다양한 시각 자료로 두 장르의 지적 연대를 살핀다. 가난과 모순으로 가득 찬 시대 속에서도 정신적 풍요를 잃지 않았던 예술가들의 숭고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 Book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 (이주희 저·청림출판)
50대에 들어선 저자가 여유롭고 건강한 인생 후반기를 위해 필요한 어른의 태도를 책에 담았다. 유쾌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오늘날 중년들의 걱정 근심을 속 시원하게 풀어낸다.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이나미 저·쌤앤파커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가 황혼으로 접어든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통해 노년의 삶을 성찰한다. 죽음과 이별 등 무거운 주제를 담담하고 소탈하게 풀어내 공감과 울림을 선사한다.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박찬일 저·인플루엔셜)
셰프 박찬일이 평균 업력 64년 노포의 장사 철학을 한데 모았다. 우래옥부터 할매국밥, 청진옥까지 화려한 장사 기술과 손익 계산 없이 ‘자기다움’으로 승부하는 노포의 성공 비결을 소개한다.
● Stage
◇팬텀
일정 3월 17일~6월 27일 장소 샤롯데씨어터 연출 로버트 요한슨
출연 박은태, 카이, 전동석, 규현, 김소현, 임선혜, 이지혜, 김수 등
“세상이 무너진 이 순간, 너의 음악이 되리라.” 뮤지컬,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로 진한 감동을 전하는 뮤지컬 ‘팬텀’이 3월 네 번째 시즌의 막을 올린다.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흉측한 얼굴 탓에 오페라 극장 지하에 숨어 살아야만 했던 ‘에릭’의 인간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1991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으며, 국내에서는 2015년 관객과 처음 만나 예상 밖의 흥행을 거두며 ‘뮤지컬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렇게 그대 품에’, ‘그대를 찾아내리라’, ‘그의 얼굴을’ 등 캐릭터 간 서사를 강화하는 곡을 새로 추가하고, 작품의 백미인 발레 장면의 비중을 높여 몰입도를 더했다. 어둠 속에 사는 에릭에게 빛 같은 존재인 크리스틴이 있듯이, 뮤지컬 ‘팬텀’이 힘든 시기를 보내는 관객을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위로할 예정이다.
◇검은 사제들
일정 2월 25일~5월 30일 장소 유니플렉스 1관
연출 오루피나 출연 김경수, 이건명, 박가은, 지혜근 등
5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검은 사제들’이 창작 뮤지컬로 재탄생한다. 올해 초연 무대를 올리는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신학생 ‘최부제’와 교단의 눈 밖에 난 ‘김신부’가 악령에 시달리는 소녀 ‘영신’을 구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원작의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무대와 연출, 음악 등으로 오컬트 분위기를 극대화해 숨 막히는 긴장감과 으스스함을 선사할 예정이다.
◇마지막 사건
일정 2월 15일~5월 9일 장소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
연출 성재준 출연 김종구, 홍승안, 김찬종, 정민, 조풍래, 백기범 등
최고의 추리 소설 작가 아서 코난 도일과 그의 손에서 태어난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의사였던 도일이 탐정물에 관심을 보이고 세기의 작가로 데뷔하기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40여 년 동안 셜록 홈스를 주인공으로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 소설을 쓴 도일의 강렬한 열망과 내면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최근 CNN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전 국무장관이 추리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더불어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도 퇴임 후 소설을 발표한 이력이 주목받으며, 두 정치 거물이 ‘부부 소설가’로 거듭났다는 소식이 전해져 화제가 되었다.
클린턴을 비롯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초강대국의 수장으로 세계를 호령한 그들의 인생 2막을 소개한다.
소설가 클린턴 부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베스트셀러 작가인 제임스 패터슨과 공저한 소설을 출간했다. 제목은 ‘대통령이 사라졌다’. 세계 정계를 배경으로 한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미국 대통령만이 알 수 있는 경험담을 녹여내 인기를 끌었다. 2018년 출간되어 300만 부 이상 팔렸다. 클린턴은 패터슨과 함께 두 번째 합작 소설 ‘대통령의 딸’도 집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부인이자 전 미국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도 소설가로 등단한다. 힐러리는 추리소설 작가 루이즈 페니와 함께 첫 소설 ‘스테이트 오브 테러’(테러의 나라)를 공동 집필 중이다. 장르는 정치 스릴러로, 재임 시절 경험담 등 자전적 요소가 다수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화가 부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전업 화가로 변신했다. 처음엔 고양이나 강아지, 정물화를 그리다 초상화에 빠져들었다. 상이용사, 이민자, 재임 중 만난 각국 정치인들의 초상화를 그렸다. 전시회도 여러 차례 열었다.
2014년 전시회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선보였다. 2019년 방한 당시에는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해,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유족에게 선물했다.
부시는 “평생 미술관을 몰랐지만, 그림을 배운 이후 이제는 미술관에 서너 시간씩 머물며 화가의 붓 터치나 색감을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그는 “내 안에 렘브란트가 갇혀 있다”는 농담도 종종 한다고 전해졌다.
팟캐스트 방송인 오바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음악 스트리밍ㆍ미디어 서비스 업체인 ‘스포티파이’의 팟캐스트 출연자로 나섰다.
오바마는 록 음악의 아이콘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함께 출연했다. 스프링스틴은 오바마와 인연이 깊다. 오바마의 오랜 지지자로, 2008년 오바마가 처음 대선에 도전할 때부터 지지 공연을 하는 등 조력자 역할을 했다.
록의 대부와 전직 대통령은 결혼생활, 아빠의 삶, 인종 문제 등을 논하며 서로의 분야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형성했다.
오바마의 이런 시도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차별화되는 행보다. 오바마는 회고록을 출간하고, ‘오바마 재단’을 설립해 젊은 리더 양성에도 힘썼다. 이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유사한 활동이나, 팟캐스트 같은 뉴미디어와의 협업은 다른 전임자와 차별화된 도전이다.
산 아래 마을을 지나 언덕을 오르자 이내 숲속이다. 밋밋한 야산이지만 솔이 지천이라 푸르다. 길 오른편으로는 얼어붙은 도랑이 이어진다. 그러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뀐다. 옹골차고 미끈한 바위들이 계곡을 채운 게 아닌가. 송암폭포 일원이다. 바위 벼랑에도, 소(沼)에도 얼음장이 두꺼워 고적한 정취를 자아낸다. 해빙이 되고 봄비 내리면 물은 날듯이 활개를 치리라. 소쿠라지는 폭포 소리로 후련하리라. 기차게 변전하는 산중의 사계를 두고 딴 데에 원림(園林)을 둘까보냐. 고릿적 선비들은 산을 좋아해 산에서 노닐기를 관습으로 삼았다.
작디작은 별서를 만든 건 여기가 허허롭게 사는 이의 피안이란 뜻인가. 만휴정(晩休亭)은 계곡 옆 둔덕에 마냥 소탈한 품새로 들어앉아 있다. 있으나 없는 것처럼 티끌 없이 고요하다. 정갈한 고로(古老)의 반쯤 감긴 눈매처럼 그저 잠잠하다. 세상과 동떨어진 정적과 고독이 짙어 가슴으로 스며드는 풍경이다. 초목이 길차게 우거졌으나 서늘한 겨울 숲엔 새소리도 그쳤다. 부질없이 번잡한 건 사람의 속기일 뿐. 여기에서 속세의 먼지를 털어냄직하다. 조선 전기의 문신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이 만년을 누린 원림이다.
원림에도 유형에 차이가 있고 투자에 격차가 있다. 은근한 치레로 슬쩍 자랑하는 원림이 있는가 하면, 담박한 성정을 담은 정자 하나로 할 말 다하는 원림이 있다. 만휴정은 후자의 전형이다. 몇몇 선과 면으로 조촐하게 그린 먹그림을 닮았으니. 그러나 성정의 경향만 좇아 지었으랴. 주변 산천의 형세와 스케일을 가늠하는 심미안 역시 건축의 주춧돌로 쓰였다. 자연 풍광이 제법 빼어나니 덧칠이야 허세로 여겼을 테고, 비좁아 옹색한 골에 큼직한 원림을 꾸릴 수는 없는 일이라 순리를 따랐다.
계곡 위로는 다리가 놓여 있다. 만휴정 출입문과 곧장 이어지는 다리로 후대에 가설했다. 세 뼘 남짓한 비좁은 다리지만 광폭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요리에 견주자면 애피타이저? 풍경을 보는 눈에 포인트가 담기며 구미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저 위편으로는 입이 떡 벌어지도록 널찍한 너럭바위가 보인다. 이 거대한 바위의 위용으로 숲도 덩달아 묵직한 위엄을 머금는다. 만휴정이 피안이라면, 다리를 건너는 일은 속세와 결별하는 여정인가. 그러고 보면 단아해서 아름답고 고요해서 심원한 만휴정의 모습을 선계의 기척이라고 말 못 할 것도 없겠다.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은 만휴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졌다. 초창 이래 중수와 보수가 거듭됐으나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이 일부 남아 있다. 전면 전체를 개방해 툇마루로 처리한 대목은 흔치 않은 양식이라더라. 누각의 3면을 두른 계자각 난간과 창방 위에 올린 연꽃 화반의 조각에도 공들인 흔적이 완연하다. 아무려나 곱상하게 잘 늙은 집이다. 산야에 피고 지는 꽃들, 산 위로 모이는 별들, 계곡으로 흐르는 달빛을 다 볼 수 있으니 덧없는 세상이야 까먹은 셈치고 숨어 살기 좋은 집이다.
김계행이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 건 일흔 살에 접어든 때였다. 넌더리 나는 벼슬을 버리고 낙향, 장인인 남상치의 별서였던 쌍청헌(雙淸軒)의 옛터에 만휴정을 조성하고서였다. 김계행은 명민한 재목이었으나 이채롭게도 50세에 이르러서야 식년시에 붙어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벼슬에 나아가기 전의 긴 세월을 주로 ‘열공 모드’로 정진했다. 따라서 학문이면 학문, 수신(修身)이면 수신, 어느 면에서든 그를 능가할 이가 드물었다. 점필재 김종직과 함께 영남 유림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이지 않은가. 처신은 칼칼하고 운신은 꼿꼿해 조정에 대고 쏘아붙인 직언도 잦았다. 배울 만큼 배운 자가 지닌 투명한 정신의 발현이었다. 그랬으니 치고 들어오는 ‘안티’와 잠정적인 침몰도 필연이라 부침이 자심했다.
김계행의 인품을 짐작케 하는 일화가 있다. 젊었던 날의 그에게 집안의 장조카로 궁궐의 실력자였던 학조대사가 찾아왔다. 학조는 김계행에게 왕실에 줄을 대줄 테니 중앙 관직으로 나아가라 했다. 이에 격분한 김계행이 학조의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회초리로 후려쳤다. “청탁으로 벼슬을 살라고? 우리 집안의 정신이 겨우 그 정도더냐?” 이렇게 딱 부러지는 기개로 청정했으니 미혹이 침범할 틈이 없었을 테다.
“우리 집엔 보물이라곤 없지만, 오직 청백(淸白)만이 보물이다.” 이는 김계행이 일찍부터 게송처럼 읊조린 삶의 나침반이었다. 그를 청백리의 표상으로 보는 사람도 많았던 걸 보면 언행일치에 차질이 없었던가 보다. 이쯤에서 만휴정의 저 화장기 없는 매무새의 행간을 다시 읽게 된다. ‘청백’의 개결한 심지로 안분지족한 자연옹(自然翁)의 뜻을. 은자는 무욕으로 세상과 세월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무시무시한 무적함대다.
답사 Tip
경북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다. 만휴정에서 북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는 묵계종택이 있다. 김계행이 살았던 고택으로 한옥 체험 숙박을 할 수 있으며, 종택 옆엔 묵계서원도 있다.
코로나19로 예년과 달랐던 지난해 명절 풍경. 아쉽고 서운하지만, 올해 역시 서로의 안위를 위해 거리를 둬야 하는 상황이다. 몸이 멀다고 해서 마음마저 멀어질 수는 없는 법. 온택트로 소통하고 비대면으로 연휴를 즐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여느 해와는 다른, 코로나 시대의 명절 풍속도를 들여다봤다.
지난 1월 소셜커머스 티몬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가친척이 모여 명절을 보낸다는 이는 단 4%였다(티몬 고객 1043명 대상). 부모님만 뵙고 오겠다는 이들도 16%에 그쳤다. 자녀와 떨어져 사는 부모 세대라면 자식과 손주들을 보지 못해 섭섭한 마음이 클 터. 전화나 스마트폰 영상 통화로 안부를 전해도 좋지만, 좀 더 색다른 비대면 만남도 가능하다.
생방송으로 세배 받고 유튜브도 함께 보고
요즘은 다양한 기능을 접목한 영상 통화 서비스와 앱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 LG유플러스의 ‘U+tv 가족방송’은 IPTV를 통해 생방송 영상 통화가 가능하다. TV를 켜고 가족 채널 970번을 누른 뒤 발신자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는 등 손쉬운 방법으로 연결이 된다. 스마트폰보다 훨씬 큰 TV 화면을 통해 영상을 제공하는 덕분에 시력이 안 좋은 시니어들도 실감 나고 편안하게 가족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TV를 마주 보고 세배를 받거나, 차례 지내는 모습을 생중계하는 등 명절 분위기를 공유하면 좋다.
또, KT의 영상 통화 앱 ‘나를’(Narle)은 사용자 얼굴을 기반으로 만든 3D 아바타나 증강현실(AR) 스티커를 적용해 색다른 영상 통화가 가능하다. 최대 8명이 함께 그림 퀴즈, 마피아 게임을 즐기거나 유튜브 콘텐츠도 동시에 시청할 수 있다. KT는 지난해 해당 영상 통화 서비스를 일부 노인요양원에 지원해 아쉬워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올해 또한 요양원 등 시설의 면회가 쉽지 않아, 이러한 서비스가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금 또는 건강·프리미엄 선물이 대세
지난해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의 리서치에 따르면, 부모님 명절 선물 1위는 현금(59.5%)이 가장 많았다(30~50대 남녀 3041명 대상). 같은 시기 60대 1001명에게 ‘자식에게 명절 용돈을 받으면 기분이 어떤가’라고 묻자, ‘자식 마음이라 생각하고 고맙다’(62.6%)는 흡족한 반응을 보인 이가 과반수였다. 자칫 무성의한 선물이라 인식되기도 했던 ‘현금’이, 코로나 시대에는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기 맞춤한 수단이 된 것이다.
현물 역시 비대면 배송이 가능하다. 지난 1월 롯데마트에 따르면, 올해 설 선물 예약판매 항목에서 건강 기능 식품이 78.7%를 차지했고, 그중 홍삼 관련 제품 매출은 349.9%에 달했다. 코로나19로 건강과 면역력에 관심이 높아진 영향일 테다. 또, 이마트가 설 선물 예약 실적을 분석한 결과 20만 원 이상의 프리미엄 선물 세트가 46.8%의 신장세를 보였다. 부모를 뵈러 가지 못하는 송구한 마음을 고가의 선물세트로 대신한다는 이유에서다. 혹여 현금이나 선물만 보냈다고 섭섭해하기보다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부모들도 이 또한 자녀들의 정성임을 헤아려야겠다. 센스 있는 시니어라면 자녀와 손주에게 모바일 선물을 보내 마음을 표현해도 좋겠다.
온라인 성묘 서비스로 접촉 최소화
설날 차례를 지내고 일가친척이 모여 성묘 가던 풍경도 올해는 보기 어려울 듯하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조상에게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도 거리 두기를 위해 온라인 성묘 서비스를 권고한다. 대표적인 온라인 성묘 서비스로는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www.15774129.go.kr)이 있다. 홈페이지에 접속해 장지를 모신 시설을 선택하고 영정사진을 비롯한 가족사진이나 상차림, 헌화 등 이미지를 넣어 추모관을 꾸미면 된다. 이를 모바일을 통해 가족이나 친지들과 공유해 고인을 기리고 메시지 등을 남길 수 있다.
인천시와 인천시설공단도 이번 설 연휴에 인천가족공원의 전 시설에 대해 ‘잠시 멈춤’(임시 폐쇄)을 시행한다. 대신 지난해 추석 때 반응이 좋았던 온라인 성묘 서비스를 2월 8일부터 21일까지 운영한다. 인천가족공원 온라인 성묘 홈페이지(grave.insiseol.or.kr)에 사전 접수 후 이용 가능하고, 가족들이 원하면 봉안함 사진도 찍어서 제공한다. 아울러 왕래가 어려운 친지간에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유가족 덕담 콘텐츠와 포토 갤러리도 확대할 계획이다.
쏠쏠한 연휴를 위한 소소한 Tip
65세 이상은 전화로 승차권 예매
연휴 기간 장거리 이동이 불가피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최근 KTX, SRT 등은 스마트폰 앱이나 온라인 승차권 예매만 진행한다. 거리 두기로 창가 좌석만 판매해 자칫 비대면 예매 시스템이 익숙지 않은 시니어라면 곤란할 것이다. 이에 코레일과 SR은 만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전화 접수를 하거나 전체 좌석의 10%를 우선 배정하는 등 편의를 돕고 있다.
드라이브스루 전통시장 이용하기
자동차에 탄 채로 쇼핑이 가능한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는 거리 두기에 효과적인 서비스 중 하나다.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대형마트, 편의점뿐만 아니라 노량진수산시장을 비롯한 군산, 울산 등 전통시장에서 이러한 드라이브스루 시스템을 도입했다. 연휴 전후에 간헐적으로 서비스하는 곳도 있으니, 지역 시장을 찾는다면 관련 정보를 꼭 확인해보자.
VR 콘텐츠로 즐기는 온라인 박물관
손주와 연휴를 보낸다면 유익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외출 대신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내 ‘온라인 전시관’에서 무료 전시를 만나보자. 최근 전시와 더불어 지난 전시 영상이 다양하게 마련됐다. 특히 인기리에 진행됐던 ‘지도예찬’, ‘황금문명 엘도라도’ 전 등을 비롯해 경주, 전주, 부여 등 지역 박물관 전시장을 VR 콘텐츠로 더욱 실감 나게 감상할 수 있다.
● Exhibition
◇신의 예술가, 미켈란젤로 특별전
일정 5월 2일까지 장소 M컨템포러리
16세기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의 걸작을 미디어 아트를 통해 한자리에서 조망한다. 드로잉, 유화, 프레스코, 조각, 시 등 5가지 장르를 통해 그림을 시작했을 때부터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미켈란젤로의 전 생애 작품을 살펴보고, 그의 예술세계를 탐구한다.
전시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연대기와 작업 방식을 살펴보는 공간으로 시작한다. 이어 그가 남긴 드로잉으로 작품을 위해 수없이 그어야 했던 선을 확인한다. 회화 부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유화 작품과 시스티나 예배당 프레스코 등을 조명한다. 이곳에서는 ‘아담의 창조’를 비롯한 유명 프레스코화를 미디어로 재해석해 환상적인 볼거리를 선사한다. 이 외에도 3D 영상, 홀로그램 등 다양한 미디어 기술과 접목한 조각품으로 몰입도를 높이며, 미켈란젤로의 시를 함께 전시해 그의 생각을 엿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미켈란제로의 작품을 색칠하는 컬러링 존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환기가 필요한 일상에 영감을 제공하는 이번 전시는 실제 작품을 감상하기 어려워진 관객들에게 색다른 방식으로 위로를 전하고, 지성을 불어넣는다.
◇마티스 특별전 : 재즈와 연극
일정 4월 4일까지 장소 마이아트뮤지엄
앙리 마티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는 국내 최초 마티스 단독 전시회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진행되고 있다. 앙리 마티스는 강렬한 색채가 특징인 프랑스 야수파 화가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손꼽힌다. 50년간 유화, 드로잉, 조각, 판화, 컷아웃, 책 삽화 등 방대한 작품을 제작했으며, 주요 작품은 ‘모자를 쓴 여인’, ‘춤’, ‘붉은 화실’, ‘폴리네시아 하늘’ 등이 있다. 그중 마티스의 컷아웃(종이 오리기) 기법은 20~21세기 추상미술, 미니멀리즘 디자인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번 전시는 컷아웃 기법으로 제작된 ‘재즈’ 시리즈와 드로잉, 석판화, 발레 공연을 위해 디자인한 무대 의상, 로사리오 성당 건축 등 작품 120여 점을 다채롭게 소개한다. 특히 대표작 ‘재즈’를 통해 마티스 특유의 생생한 색채와 선을 조명하고 작품과 어울리는 재즈 음악을 큐레이션해 그림과 음악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도슨트의 풍부한 해설로 작품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한다.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마티스의 예술적 순수함과 열정은 코로나19로 메마른 감성에 단비가 되어준다.
● Book
◇노인을 위한 치료백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 저·알에이치코리아)
시니어에게 자주 나타나는 여러 질환을 한 권에 모아 소개한다. 질환뿐 아니라 간병, 요양병원 등 복지서비스까지 총망라했다. 시니어라면 집에 한 권 두고 틈날 때마다 찾아볼 만하다.
◇억척의 기원 (최현숙 저·글항아리)
중장년 여성의 구술 생애 작업을 이어온 최현숙 작가가 이번엔 60대 나주 농민의 이야기를 실었다. 두 여자의 굴곡진 삶을 통해 그들이 억척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풀어낸다.
◇어른의 말공부 (사이토 다카시 저·비즈니스북스)
나이가 들수록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품격 있는 언어 습관을 소개한다. 필요한 말만 하는 분별력, 진심을 담는 전달력 등 말의 내공을 갖추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 Stage
◇얼음
일정 3월 21일까지 장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연출 장진
출연 정웅인, 이철민, 박호산, 이창용, 신성민, 김선호 등
‘충무로의 이야기꾼’ 장진 감독의 화제작 연극 ‘얼음’이 초연 후 5년 만에 돌아왔다. ‘얼음’은 독특한 구성의 2인극으로, 2016년 초연 당시 장진 감독 특유의 작가적 상상력과 뛰어난 이야기 구성,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화제를 모았다. 작품은 잔인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18세 소년과 그 소년을 범인으로 만들어야 하는 두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무대에 등장하진 않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소년과 살인 사건이 일어난 날의 정황을 짚어가는 두 형사 사이 팽팽하게 펼쳐지는 심리전이 극에 긴장감을 더한다. 이번 공연에는 내로라하는 실력파 배우들이 대거 캐스팅되었다. 배우 이철민과 박호산이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초연에 이어 이번 무대에 다시 오르고, 배우 정웅인, 이창용, 신성민, 김선호가 새롭게 합류해 작품에 힘과 활력을 불어넣으며 짜릿한 연기 앙상블을 펼칠 예정이다.
◇위키드
일정 2월 16일~5월 1일 장소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연출 조 만텔로 출연 옥주현, 손승연, 정선아, 나하나, 서경수, 진태화 등
초록 마녀 열풍을 일으켰던 뮤지컬 ‘위키드’가 다시 무대에 오른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을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두 마녀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과 사랑, 용기 등을 다룬다. 거대한 타임 드래곤, 날아다니는 원숭이, 350여 벌의 의상 등 화려한 무대와 마녀들의 매혹적인 노래가 마법에 걸린 듯 시선을 사로잡는다.
◇붉은 정원
일정 2월 5일~3월 28일 장소 유니플렉스 2관 연출 성재준
출연 박은석, 이정화, 조현우 등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3대 문호로 꼽히는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을 각색한 창작 뮤지컬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18세 소년 ‘이반’과 치명적인 매력의 ‘지나’, 이반의 아버지이자 유명 작가인 ‘빅토르’의 위험한 삼각관계를 그린다.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대사들과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음악들로 원작의 감동을 구현했다.
통영은 혼자 가면 안 된다. 파도만 넘실대는 곳이 아니라 역사와 장인의 솜씨마저 희망처럼 요동치는 곳이다. 혼자서는 통영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에 제한이 있고 고독한 나그네의 가슴도 울렁대기 마련이어서 시인처럼 낮술을 마시고 시를 짓거나 우체국 창을 바라보며 연애편지를 하염없이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혼자 여행을 하게 된다면 통영은 온 발바닥을 땅에 대고 걸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를 지키려는 열망으로 가득했고 사랑의 기억으로 응축된 항구도시의 역사를 제대로 맛볼 수 있다. 시인 백석의 표현대로 “자다가도 일어나 가고 싶은 바다”가 있으며, 유치환처럼 행복론을 시로 쓸 수 있는 곳이요, 윤이상의 창작의 근원이었던 한려수도의 해조음을 들을 수 있는 도시다. 환경이 인간을 만든다지만 축복받은 자연에서 이곳 사람들은 본능적 감각을 쪽빛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게서 배운 듯하다.
이순신과 통영의 예술
충무공의 통제영이 있었던 도시이며,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한산대첩의 배후 항구였고, 전국적으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 모이던 인재와 문화의 집합소였다. 통영이란 도시는 이순신과 불가분의 관계다.
통영의 시작은 조선 수군의 통제영 설치와 연관된다. 3도수군 통제영(統制營)의 설치로 12공방을 비롯한 전국적인 장인집단이 대량 유입되었다. 이순신 장군은 시를 짓고 문장을 쓰던 예술가였다. 초대 수군통제사로 이곳에 와 혼합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통영의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군사도시 통영에서 예술가들이 많이 나온 건 이순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통영은 그리하여 다양한 예술과 음식문화를 꽃피웠다. 통제영이 있던 세병관 뒤쪽에 가면 통제영의 물적 기반을 제조하던 12공방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통영의 거리를 걷노라면 통영 출신 예술인들의 거리명을 통해 그들이 남긴 흔적을 훑게된다. 보도블록 사이로 유치환의 ‘행복’을 비롯해 통영을 빛낸 시들이 새겨져 있고, 건물의 벽이나 창에는 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통영의 처자를 찾아 이 도시를 찾았던 백석 시인의 시도 있다. 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의 작품도 보인다. 유치환 작사 윤이상 작곡의 각 학교 교가 악보도 눈에 띈다. 물론 이곳 출신의 전혁림 화백의 그림이나 통영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이중섭 화가의 그림이 새겨진 동판도 볼 수 있다.
통영은 홀로 다니는 여행자에게 음식 쪽에서는 불친절하다. 1인분짜리 음식도 있기는 하지만 현지인이 아닌 외부인은 다찌나 정식으로 통영의 다양한 맛을 보고 싶다. 다찌란 일본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통영 지방 특유의 음식 문화다. 부산과 여수 사이의 주요한 항구에는 스쳐지나가는 나그네가 많아서 서서 먹었나보다. 다찌는 항구에서 ‘서서 마시는’(立ち飮み) 항만 노동자들의 음식문화였다. 충무김밥이라 불리던 음식도 항구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상하지 않게 밥과 음식을 따로 제공하던 전통 풍습에서 만들어졌다. 서서 음식을 먹던 다찌 문화는 그 후 다소 변화되어 테이블에 비닐을 깔고 다양한 통영의 음식을 곁들인 정찬 요리, 잔치 음식으로 바뀌었다. 가격은 보통 1인분에 3만 원 정도 하는데 대부분 2인분부터 주문한다.
요즘에는 2인분도 꺼려하는 분위기다. 항만 노동자들의 선술집에서 많은 변화를 거친 것이다. 대신 반다찌가 있는데 온다찌의 화려한 비주얼을 상상하던 사람은 실망하고 만다. 술은 어느 정도까지는 서비스로 나오며, 음식은 손님이 먹는 속도에 따라 맞춰 나온다. 혼자 하는 여행도 좋지만 밥을 먹을 때는 아쉽다. 특히 통영은 그렇다. 요즘 같은 겨울에 가장 어울리는 음식은 서호시장의 시락국이 최고다. 특히 아침 식사로 일품이다. 중앙시장의 물메기탕은 별미다.
물메기, 꼼치, 잠뱅이
명품은 심플하다. 통영의 음식은 바다의 밭이라는 천혜의 환경 덕분에 재료가 탁월하여 요리법이 심플하다. 기교를 거부한다. 겨울에만 한정 판매되는 물메기는 명품 해장국의 주인공이다. 명품에는 유사품이 존재한다. 그리고 한정판도 나온다. 물메기는 동해에 가면 꼼치, 서해로 가면 잠뱅이라고 불린다. 겨울에만 나오기 때문에 한철 음식에 쓰인다. 식도락가와 주당의 목이 타는 이유다. 그만큼 사랑도 듬뿍 받는다.
음식 기행을 한다면 단연 통영이다. 사시사철 먹거리가 넘친다. 남해의 건강한 바다에서 때맞춰 해산물이 올라오고 남풍을 맞고 자란 싱싱한 채소가 어우러져 통영은 미식가들이 들락거리는 한국 최고의 ‘미항’(味港)이다. 역사적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어서 중인계급이 발달하였고 이들에 의해 문화와 예술이 진작된 도시이며 음식 맛도 여수에서 통제영이 이전하면서 전국의 맛이 집합했다. 또 지리적으로도 음식 맛이 좋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 우스갯소리로 맛의 고장으로 대표적인 전주 사람들이 왔다가 기죽어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새만금 갯벌이 사라져가면서부터는 통영이 맛의 수도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도다리, 갯장어, 물메기, 굴, 미역, 전복, 졸복 등이 차례로 밥상에 오르는 통영은 단 한 번의 여행으로는 그 맛을 다 볼 수 없는 곳이다. 미항에서 미도(味都)로 발돋움하고 있다.
무한하지 않아서 인생이 애틋하듯 단 한철이라 애지중지 각광받는 물메기는 겨울에만 등장하는 미식계의 겨울 진객이다. “인생의 으뜸은 만취”라는 바이런의 시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통영의 제철 안주 상차림 명물 다찌집에서는 취하기 마련이다. 통영에서는 취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이른 새벽 서호시장으로 가서 시락국으로 해장을 하거나 강구안 쪽 중앙시장으로 들어가 복국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이라면 더 취해도 좋다. 바로 물메기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겨울 한철 통영은 물메기로 뒤덮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메기가 대형 공장의 빨래처럼 걸리는 섬이다. 조그만 포구마다 이 천하에 못생긴 물고기를 다듬는 데 여념이 없다. 겨울 물메기철 어부는 밤새 물메기를 퍼 올리고 날이 밝으면 아낙들과 퇴역 어부들이 포구에 나와 물메기 등을 따서 내장을 꺼내 손질하고 세척한 뒤 건조한다.
종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물메기는 표준어가 꼼치라고 한다. 서해안 보령에서는 잠뱅이라고 부르고 강원도에서는 곰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통영의 꽃인 동백꽃도 수백 가지 종류가 있듯 비슷하면서 다른 이 물고기도 여러 종류가 있다. 요즘은 국립수산과학원에서 꼼치와 물메기를 같은 어종으로 표기한다고 한다.
해장국의 명품을 맛보려면 통영으로
물메기탕은 물메기국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무를 푹 고아서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물메기를 넣고 살짝 데칠 정도만 끓인다. 모자기와 다진 마늘을 넣으면 맑은 국물이 나온다. 맑은 국물을 낼 때 대파를 얹고 고기와 함께 마시듯 먹는다. 물메기는 지방이 적고 아미노산이 풍부해 감칠맛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육질이 부드럽다. 멸치젓을 곁들이기도 한다. 통영의 겨울 새벽의 맛은 맑은 국물 맛이다. 물메기는 탕을 만들 때는 주로 생물을 쓰고 건메기는 찜을 해서 먹는다. 육질이 매우 부드러워 해장국으로 끓여 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는다.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면서 한입 떠 넣어 삼키면 간밤의 숙취가 그 뜨거움과 부드러움에 도망을 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술병을 잘 고친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예로부터 해장에는 빠질 수 없는 물고기였다. “고기 살은 매우 연하다. 뼈도 무르다.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라고 쓰여 있다.
11월 마지막 주 정도가 되면 주당들은 물메기탕을 먹으러 몰려든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통과의례이자 어민들에게는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즐거운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맛을 찾으려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더해져 대구에 육박하는 인기를 끌고 있다. 가격도 대구 값에 가깝다.
통영에서 물메기 경매는 서호시장 옆 통영수협 도천위판장에서 열린다. 새벽 4시부터 물량에 따라 한두 시간 경매가 이루어진다. 시장은 새벽 5시경부터 활력이 넘치기 시작한다. 인근의 500원짜리 커피가 불티나게 팔리고 시장 내의 시락국집에는 한 그릇을 해치우는 시장 상인들로 북적거린다. 건메기는 12시에 경매를 한다.
대구나 복국도 물메기로 만든 시원 담백한 해장국 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겨울철 통영에 가서 술 마시고 새벽에도 깨어나지 못한 여행자는 뜨거운 위로를 받는 듯한 물메기 해장국 맛을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겨울철만 놓고 봐서는 최고의 해장국이다. 봄날 도다리쑥국이 나오기 전까지는 겨울 통영에서 해장국 명품의 호사를 누려보시라!
파도가 멈추는 해안선이 기다란 통영은 오목하게 들어간 포구가 발달해 있다. 한려수도의 바다와 섬 전망은 미륵산 정상이 최고이고 통영항 전망은 세병관 둥근 기둥에 기대어서 봐도 좋지만 20여 분 땀을 흘리고 올라 북포루에서 보면 완벽하다. 백석의 시 ‘통영2’처럼 충렬사 계단에 앉아 동백꽃 필 무렵 한산도 뱃사공이 되어도 좋으리라.
최치현
한국외대 중국어과 졸업. 숭실대 국제통상학과 겸임교수로 ‘국제운송론’을 강의한다. 저서는 공저로 ‘여행의 이유’가 있다. ‘여행자학교’ 교장으로 ‘일본학교’ ‘쿠바학교’ 인문기행 과정을 운영한다.
한때 우리는 자유롭게 예술을 향유했다. 해외 유명 박물관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원화를 감상하는가 하면, 그들이 생전에 살았던 지역을 거닐며 온몸으로 그 분위기를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지독한 코로나는 예술을 향유하는 즐거움마저 빼앗아갔다. 하늘길이 막힌 지 1년, 이따금 전 세계 문화 창고를 자유롭게 누비던 그때가 그리워진다면 집에서라도 분위기를 내보자.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유럽의 예술과 낭만이 흐르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러빙 빈센트 (Loving Vincent, 2017)
우체국장 ‘룰랭’(크리스 오다우드)이 아들 ‘아르망’(더글러스 부스)에게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그의 동생 테오에게 전해 달라 부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아버지의 부탁으로 반 고흐가 생전 머물렀던 마을에 도착한 아르망은 그곳에서 반 고흐의 주변인을 만나고, 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러빙 빈센트’는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으로, ‘로토스코프’ 기법을 활용해 제작됐다. 로토스코프 기법은 실제 영상 이미지를 한 프레임씩 그려 만화화하는 방법이다. 이 영화에서는 100명이 넘는 화가가 반 고흐의 화풍을 재현하며 6만5000여 개의 유화를 10년에 걸쳐 그려냈다. 생전에는 단 한 점만의 그림을 팔았지만, 죽은 뒤에야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된 반 고흐의 고독한 삶을 자신이 직접 그린 듯한 유화들로 만나볼 수 있다.
2. 미드나잇 인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
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온 시나리오 작가 ‘길’(오웬 윌슨)이 홀로 밤거리를 배회하다 우연한 계기로 1920년대 파리에 도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파리의 예술적 황금기를 동경했던 길은 홀린 듯이 들린 술집에서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 등 거장을 만나고, 매일 밤 꿈같은 야행을 즐긴다. 영화는 주인공처럼 지나가 버린 시대를 예찬하듯 파리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조명하지만, 시대 속 인물의 대사를 통해 현재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피카소의 뮤즈였던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는 ‘벨 에포크’라 불렸던 1890년대를 동경하고, 벨 에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고갱은 “르네상스야말로 최고의 시대”라며 당대를 비판한다. 누구나 인생의 호시절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이 지금은 아닌지, 이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3.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 2003)
미술적인 재능을 갖고 있지만 이를 펼칠 기회가 없었던 ‘그리트’(스칼렛 요한슨)가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콜린 퍼스)의 집에 하녀로 취직하고, 그의 뮤즈가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소녀와 이를 세기의 걸작으로 탄생시킨 페르메이르 간의 매혹적인 사랑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펼쳐낸다. 여기에 믿고 보는 두 배우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의 섬세한 연기력이 몰입도를 높인다. 실제로는 그림 속의 소녀가 누구인지, 귀족도 아닌 수수한 옷차림을 한 소녀가 어떻게 캔버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영화는 신분을 넘나드는 두 사람의 사랑과 열정을 통해 이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소녀가 진주 귀걸이를 착용하고 캔버스 뒤에 서는 순간을 흥미롭게 담아낸다.
머릿속에 제목을 떠올리면 줄거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더라도 특정 색깔이나 톤, 분위기 같은 부수적인 요소들이 곧바로 연상되는 영화가 있다. 미장센이 잘 표현된 작품이 주로 그렇다. 이런 영화는 러닝타임이 끝나고도 여운이 남고,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관람한 것 같은 시각적 충만함을 준다. 이번 주 브라보 안방극장에서는 문화 충전이 필요한 독자를 위해 수려한 미장센으로 영상미가 극대화된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소개하는 작품들은 모두 넷플릭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1.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대부호 ‘마담 D’(틸타 스윈튼)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머무른 후 의문의 살인을 당하고, 그녀의 유산인 ‘사과를 든 소년’ 그림을 호텔 지배인이자 연인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스)가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촌극을 그린다. ‘미장센의 장인’이라 불리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강렬한 분홍빛 색감과 정확히 계산된 구도, 아기자기한 소품 등 영상미가 돋보인다. 다층의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시대가 변할 때마다 화면 비율도 함께 바뀌어 시공간을 넘나드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하며, 환상적인 호텔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소동을 통해 영광의 순간을 누렸던 시대의 몰락을 극적으로 담아낸다.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앤더슨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문라이즈 킹덤’도 볼 만하다.
2. 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2017)
디즈니월드 건너편에 위치한 임시 주거지 ‘매직캐슬’에서 불안정하게 살아가는 미혼모 ‘핼리’(브리아 비나이트)와 딸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의 시선을 담담하게 그린다. 디즈니월드의 화려함 속에 가려진 소외 계층의 암울한 현실을 ‘매직캐슬’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역설적으로 풀어낸다. 무니의 삶은 얼핏 보면 한 편의 동화 같다. 연보랏빛 건물과 그 위를 수놓은 무지개는 동심을 나타내는 것 같고, 디즈니랜드는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나 길 한 번만 건너면 도착하는 디즈니랜드는 영영 갈 수 없고, 밥값을 위해 가짜 디즈니랜드 표를 구해 사기를 치며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는 이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의 이면을 밝은 톤으로 찬란하게 묘사한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영상미로 극대화한 작품이다.
3. 쉘부르의 우산 (The Umbrellas of Cherbourg, 1964)
1957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항구도시 쉘부르에서 우산 가게 일을 하는 아가씨 ‘쥬느비에브’(까뜨린느 드뇌브)와 자동차 수리공 ‘기’(니노 카스텔누오보)의 애틋하고 달콤한 사랑을 그린 뮤지컬 영화다. 프랑스 누벨바그 세대를 대표하는 자끄 드미 감독의 작품으로, 영화 ‘라라랜드’에 큰 영향을 줄 만큼 뮤지컬 영화계의 고전이자 수작으로 꼽힌다.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파스텔 색감의 배경과 의상과 소품 등이 까드린느 드뇌브의 인형 같은 미모와 만나 환상적인 합을 이루고, 대사 없이 오직 노래로만 극을 진행하는 송스루 형식을 취해 눈과 귀를 모두 즐겁게 한다. 몇십 년 전이었다면 주인공들의 스타일링이 다소 촌스럽다고 느꼈겠지만, 돌고 도는 유행에 지금은 오히려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강원 철원군 화지리 화지마을 할머니들의 따뜻한 시선을 그림으로 담아낸 전시 ‘화지마을 이야기꽃’이 20일부터 31일까지 12일 동안 경기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갤러리움에서 열린다.
‘화지마을 이야기꽃’은 한 번도 붓을 잡아본 적 없는 평균 나이 67세 할머니들이 세월의 연륜과 지혜만으로 꽃피운 그림들을 한 자리에 선보이는 전시다.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는 이종선, 김순옥, 박정례, 이진숙, 이금재, 박정희 할머니 등 총 6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철원군에서 추진하는 ‘피어나는 화지마을 주민공모사업’의 일환으로 화지마을 재생센터에서 열린 글짓기와 그림 그리기 수업에 참여했다. 그동안 살면서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표현할 기회가 없었던 6명의 할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화려한 그림 재료와 물감을 만졌고, 어색한 기색도 잠시 자신만의 개성 있는 선과 색으로 도화지를 채워나갔다.
그 결과 매주 놀라운 그림이 쏟아졌다. 그림 그리기 수업의 강사로 참여한 배미정 작가는 수업을 진행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의 통찰력과 솔직한 표현력에 감탄해 SNS에 사진을 올렸다. 해당 사진들은 예술 관계자 등 평단의 눈길을 끌었고, 총 68점의 그림이 마침내 헤이리갤러리움에 작품으로 걸리게 되었다.
여섯 작가의 정겹고 따뜻한 그림은 오늘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통찰해야 하는지 색다른 관점으로 제시한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월요일은 휴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