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골프 지인이 죽었는데 이상하게도 사람들 반응이 이상했다. 심지어 한 사람은 “잘 죽었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이유는 죽은 사람이 지나치게 시간을 끌며 경기를 하는 바람에 평소 밉상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평소에 누가 그에게 직접적으로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슬
여름은 무더워 신체가 상하기 쉬운 계절이다. 누구나 기진맥진해하고 힘들어한다. 선풍기나 에어컨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몸이 허약하면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도 싫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절이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더 힘들다. 고산이나 북쪽의 서늘한 곳으로 피서를 떠나는 것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한두 달 피서를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외
‘중국’ 하면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게 더 많이 떠오른다. 아마도 ‘점철되어온 괴로움의 역사’가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물리적으로 비교하면 작아도 한참 작은 국가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중국이라는 ‘거대 문화 권력’을 지척에 두고도 예로부터 아주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온 사실이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소풍 때만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 엄마와 함께 김밥을 말았다.
김밥 가게가 생겼을 때 ‘과연 이게 팔려?’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소풍날 아침이면 너도나도 김밥집으로 향한다. 흔하디흔한, 빠르고 간편한 먹거리 김밥. 일상 속에서 쉽게 집어 들던 김밥에 형형색색 특별함을 더해 세계 속에 화려한 모습으로 선보인 이가 있다. 바로 ‘김밥 셰프’로 불리는 김락훈(
몇 달 전, 어느 술자리에서 그녀와 처음 마주쳤다. “반갑습니다. 윤승희입니다” 하고 인사하는 멋진 중년 여인의 인사에 “아니 그럼 당신이 ‘제비처럼~’의 그 윤승희 씨?” 하며 한량 이봉규의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명색이 나도 TV 출연 꽤나 한 방송인이지만, 이 왕년의 섹시가수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청소년기에 윤승
기존 출판의 문제점인 비용과 재고부담을 극복하고자 ‘개인출판’이 등장했다. 자신만의 책을 갖고 싶은 독자라면 교보문고의 개인출판 시스템 ‘퍼플’을 이용해보자.
지금은 출판사에 투고되는 원고의 대부분이 사장되고 있다. 자가 출판은 글을 쓴 저자가 직접 사비를 들여서 책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자비 출판이라고도 부른다. 이 경우 출판사는 저자에게서 책
장승(長丞)은 오래전부터 마을의 입구나 경계에 세워져 수호신으로 모시던 민간신앙 조형물이었다. 그러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와는 무관하던 장승이 사찰의 경계표시나 지킴이로 변모하여 사찰장승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사찰장승은 절 입구에 세워 이곳부터 절집이라는 성역 표시와 함께 절을 지키는 수호신이나 호법신 역할을 했다. 경북 상주
“엄마, 기타 치는 모습 너무 귀여워.”
휴대폰으로 찾은 동영상을 보면서 기타를 이리도 잡아 보고 저리도 잡아 보는 나를 향해 딸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기타를 잘 치냐 하면 반대로 왕초보다. 이제 막 통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어려서부터 늘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기타를 치는 모습, 가수들이 기타 치
10여 년 전, ‘한국죽음학회’를 설립하고 ‘웰다잉’과 관련해 선구자 역할을 해온 최준식(崔俊植·63)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당시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그는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정도를 넘어 성장의 계기로 적극 활용하자고 말한다. ‘내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등의 질문들
두 해 전 일이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큰 사고를 당해 입원을 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며 병원을 두 차례 옮기기까지,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을 방문해 친구의 심적, 영적 회복을 도왔다. 상태가 많이 좋아져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자 사람들이 문병을 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내가 올 때가 가장 편하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