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아 어디로 갔니, 소리 없이 흘러가는 세월이건만, 그것이 인생이더라.’ 오승근(吳承根·66)의 새 앨범 수록곡 ‘청춘아 어디갔니’의 가사다. 노래 속 그는 청춘을 찾고 있지만, 현실 속 그는 “내 청춘은 바로 지금”이라 말한다. 노래하는 지금이 청춘이고, 노래를 불러야 건강해지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노래와 함께 남고 싶다는 천생 가수 오승근. 사진을 찍을 때 “주름은 지우지 마라”며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그의 미소에는 특유의 편안함이 배어 있었다. 아내(故 김자옥)가 떠난 뒤, 이제는 살림도 제법 하면서 싱글라이프를 톡톡히 즐기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금껏 나온 앨범 표지 중에 표정과 의상이 가장 밝아요. 밝기도 하고 젊기도 하죠. 한동안 ‘내 나이가 어때서’를 많이 불렀잖아요. 이후에 다른 곡들도 발표했는데 사람들에게 어필이 안 됐어요. 그 노래의 인상이 너무 강하다 보니까. 이번에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뛰어넘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표지 촬영한 것 중에 중후한 멋의 사진들도 있었는데 사진작가나 기획사에서는 젊게 나가는 게 좋겠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얼굴에 포토샵도 하고(웃음). 나야 그런 거 안 하는 게 자연스럽고 좋긴 하죠.
타이틀곡으로 ‘맞다 맞다 니 말이 맞다’를 고른 이유가 있나요? 전체적인 흐름이 좋았어요. 리드미컬하고, 따라 부르기 쉽고. 나이 들고부터 곡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남이 어떻든 간에 나를 나타내려고 가수를 위한,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했거든요. 요즘은 반대로 “이 노래는 내 노래가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노래”라고 하고 불러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보다는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려고요. 예전에 ‘투에이스’, ‘금과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는 듣기는 좋아도 따라 부르긴 어려웠어요. 그래도 여전히 찾는 팬들이 있어 자주 불러드리곤 하죠.
‘떠나는 님아’, ‘빗속을 둘이서’ 등 청춘 시절 노래를 부르면 어떤 감정이 드나요? 이전과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노래는 말이죠, 젊었을 때와 나이 들어서의 감정이 똑같아요. 오히려 노래를 부르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죠. 다만, 나이가 들어서 까랑까랑하던 높은음이 안 나오는데, 그럼 키를 낮추면 되니까. 동년배는 지금 목소리를 더 좋아하기도 해요. 청춘이라는 것도 꼭 20대만을 뜻하는 건 아니에요. 40대가 된 사람이 30대를 그리워하는 것도 청춘이고, 60대가 50대 떠올리는 것도 다 청춘 아니겠어요? 노래는 그런 감정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거죠.
타이틀곡 ‘맞다 맞다 니 말이 맞다’에서 ‘사랑해서 미안합니다’라는 가사는 어쩐지 애잔하더라고요. 아내를 향한 감정이 담긴 것이 아닐까 궁금했어요. 그런 건 아닌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조심스럽게 부르긴 해요. 그만큼 사람들이 공감하는 가사이기 때문이죠. 사랑하는데 왜 미안해? 물어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미안할 수도 있거든요. 연인이나 부부, 자식 관계도 그렇고 모든 게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운하기도 하고, 상처도 주고 하니까요.
아내를 위한 추모곡 계획은 없나요? 안 하려고 해요. 추모는 그 사람을 계속 기억한다는 건데, 그러면 괴로움도 계속되는 거예요. 그 마음 아픈 게 얼마간은 있을 수 있지만 10년 20년 그렇게까지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노래로 만들어놓으면 계속 남잖아요. 그건 남들에게 자꾸 ‘가지고 있어라’ 강요하는 거밖에 안 돼요. 그 사람도 좋은 곳에 갔을 거고, 우리 애들하고 나하고 기도하고 그러니까. 다들 그런 그리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면 좋겠어요.
아내의 부재가 마음이 쓰여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말을 나중에 물어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지내세요?” 똑같아요. 조금 달라진 거는 일하고 집에 갔을 때 같이 있었는데 이젠 혼자 있다는 것. 그 차이일 뿐이죠. 한동안은 같이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잠시 여행 갔다고 말이죠. 전에 같이 있을 때도 몇 개월씩 여행을 다녀오곤 했으니까. 어디 갔구나, 곧 오겠지, 근데 어떻게 하지? 혼자 밥해야 하네? 그렇게 조금씩 실감했어요. 애절하게 ‘나 외로워’ 이건 아니고.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매일 그러지 않죠. 그러면 남은 사람이 힘들어져요.
살림 솜씨가 늘었겠어요. 요리도 잘하세요? 잘하죠. 나 설거지도 잘하고 반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해요. 처음에는 (장가간) 아들하고 같이 살려고 했어요. 근데 아이들도 나도 편하게 살려면 분가하는 게 좋겠더라고요. 아내랑 함께 살던 집에서는 내가 못 지낼 것 같은 거예요. 거실이며 부엌이며 그 동네 어귀에도 아내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데…. 거기 사는 건 내가 너무 괴롭다. 아빠가 나갈게. 그러고는 아내랑(봉안당) 가까운 판교에서 혼자 살게 됐어요.
그야말로 싱글라이프네요. 일상에서의 즐거움은 뭔가요? 내가 참 감사한 게 주변 친구들을 보면 다 실업자들이에요. 직장인들은 정년퇴직하고, 사업가들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근데 나는 정년 없지, 새 노래도 만들 수 있지. 자기 관리만 잘하면 100세까지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또 애들 엄마 하늘에 가면서 일찌감치 상속 정리를 했어요. 그러니 내가 벌어서 나만 쓰면 되고, 쓰고 남으면 좋은 데 봉사하고, 눈치 보지 않고 쓰고 싶은 데 쓰고 먹고 싶은 거 먹고 그러지. 그 자체가 즐거움이죠.
자기 관리 비법이 따로 있나요? 노래를 하면 젊어져요. 엊그제도 몸이 안 좋았거든요. 그러다 무대에서 섰는데 원래 부르기로 한 세 곡을 다하고 앙코르를 해서 총 다섯 곡을 불렀어요. 노래하면서 에너지를 채운 것 같아요. 노래가 약인 거죠. 지방 갈 때 아침엔 컨디션이 안 좋다가도 다녀오면 좋아져요. 매니저한테 나 오래 살길 바라면 일 많이 잡아줘야 한다고 해요(웃음). 약이 되는 피곤함이랄까?
일 외에 취미생활은요? 여행은 안 다니세요? 운동 삼아 골프도 치고, 여행도 가끔 가요. 사람을 골라서 만나지는 않지만, 여행 파트너는 마음이 맞아야 하거든요. 함께 다니던 가장 친한 친구가 작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50년 지기인 데다가 마음도 참 잘 맞았는데… 그러는 바람에 이제 누구랑 여행을 가야 하나 싶어요.
요즘은 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도 많잖아요. 혼자가 좋다고들 하는데, 그건 정말 혼자가 되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나도 자다가 어떻게 될까 싶어 무섭고 외로워요. 여행은 좋은 사람과 함께 가는 게 최고죠. 어떻게 보면 지금이 얽매일 것 없어 여행 가기 좋은 때이기도 해요. 얽매이는 건 가정인데, 아이들도 다 커서 자유로워요. 근데 오히려 편하니까 나태해지더라고요. 이게 아니다 싶으면 스스로 채찍질도 하죠. 온전한 자유 안에서의 불안이 있잖아요. 고삐가 없는 것처럼.
자유로운 지금, ‘내 나이가 어때서’ 노래처럼 도전하고 싶은 일은 없나요? 나는 내 나이를 몰라요. 생각 안 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가고 싶은 데 있으면 가고. 친구들에게 그래요. 너희들 돈 쓸 날도 얼마 안 남았어! 좋은 것도 한때이지 쓸 수 있을 때 쓰고, 재미있게 즐겨야죠. 지금처럼 자유롭게 지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오히려 도전, 목표 이런 걸 정해놓으면 거기에 구애받으니…. 자연스러운 게 좋아요.
‘자연스러운 것’을 선호하는 편이네요. 원래 성격이 그랬나요? 아뇨. 예전에는 그렇게 했어도 구애를 받게 되죠. 옆에 사람(아내)이 있으니까. 신혼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지내왔는데, 살다 보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맞추는 게 좋더라고요. 아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계속 바뀌었죠. 근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잖아요. 요즘 나를 말하자면 자유분방 그 자체?
여전히 아내 얘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 솔직히 불편하지는 않나요? 할 수밖에 없죠 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아요. 근데 너무 길게 이야기하지는 말자 그래요. 그럼 또 생각나니까… 내가 힘들어져요.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물 흐르듯 지나가면서 하는 정도가 괜찮아요.
아내 김자옥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우리는 만나고 6개월 만에 결혼해서 서로를 다 알지는 못했어요. 살면서 느끼고, 알아갔죠. 다음 생에서도 그 사람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다시 결혼하고 싶은 그런 여자예요. 근데 나뿐만 아니라 참 많은 사람이 사랑했잖아요. 아내가 떠날 때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어요. 이 사람 참 잘 살았구나 생각했죠. 내가 죽을 때도 그럴까 싶어요.
대중에게 오승근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내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아 이 사람! 그렇게 노래와 가수가 함께 떠오르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내가 세상에 없더라도 노래와 함께 회자되고 남아 있다면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노래 자체가 나의 정체성이고, 나의 정체성이 노래로 표현될 수 있는, 그런 게 대중에게 공유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작열하는 태양 아래 높이 치솟은 팜트리, 그리고 역동적인 태평양 바다까지. 캘리포니아만큼 여름과 어울리는 도시가 있을까? 비키니 차림으로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미녀들과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 이 모든 것을 시니어가 함께 즐겨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곳. 그래서 캘리포니아는 액티비티 시니어들의 천국이다. 꼭 비키니에 서핑이 아니라도 좋다. 패들보드 위에서 우아한 요가는 어떤가?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는 플라이 피싱은? 와인과 치즈가 담긴 피크닉 바구니와 담요 한 장이면 되는 로맨틱한 음악회도 있다. 그들은 말한다. 색다른 것에 대한 도전은 늘 그렇듯 삶의 행복지수를 높여준다고. 캘리포니아 시니어들의 이색 여름나기를 소개한다.
◇ 플라이 피싱
브래드 피트의 리즈 시절이 담긴 영화 을 본 사람이라면 플라이 피싱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을 것이다. 플라이 피싱은 곤충처럼 보이는 미끼(플라이 훅)를 날려 보내 물고기를 낚는 방법이다. 진짜 벌레인 것처럼 얼마나 자연스럽게 날리느냐가 중요한데 그래서 필요한 기술이 바로 캐스팅이다.
캐스팅은 플라이 피싱의 백미다. 허공을 가르며 부드럽게 S자 형태의 루프를 그리는 모습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미주에서 몇 안 되는 한인 플라이 피싱 전문가인 캐시 김(55)씨는 플라이 피싱이야말로 시니어들이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취미생활이라고 말한다.
플라이 피싱은 과격한 몸놀림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하이킹이 동반되는 만큼 등산을 즐기는 시니어라면 금상첨화다. 또 물속을 걸어 다녀야 하는데 이것 자체가 몸의 밸런스를 길러주며 하체와 허리 근력을 강화시킨다. 무엇보다 집중력을 길러주고 심신을 안정시킨다. 플라이 피싱은 단순한 레저 스포츠를 넘어선, 자연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것이 캐시 김씨의 설명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한 번 배우면 평생 즐길 수 있다는 점, 인조 미끼인 아티피셜 플라이(artificial fly)를 사용하는 친환경 스포츠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캘리포니아에서 플라이 피싱은 1년 내내 가능하다. 강, 계곡, 호수, 바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지만 바다는 캐스팅 거리가 좀 더 길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골프에 입문하듯 플라이 피싱을 처음 배울 때는 전문 강사에게 받는 것이 좋다. 두세 시간 기본 매듭과 캐스팅만 익히면 바로 출조(出釣)가 가능하다. 입문 한 달이면 캐스팅을 통한 짜릿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필요한 장비로는 낚싯대인 플라이 로드(fly rod)와 손잡이의 감는 틀인 릴(reel), 낚싯줄 라인(line) 등이며, 물속에서 입는 옷과 신발 등도 구입해야 한다. 총비용은 1000달러 안팎. 부담 없는 가격은 아니지만 한 번 장비를 구입하고 나면 더 이상의 장비 구입 없이 평생 즐길 수 있다. 플라이 로드는 잡으려는 어종과 장소(호수, 바닷가, 강, 계곡, 시냇물 등)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로드와 릴, 라인과 훅 등이 서로 밸런스가 맞아야 한다.
대부분 지역의 플라이 피싱 전문 매장에서 1회 기본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강좌와 출조가 포함된 패키지도 선보이고 있다. 1회 레슨은 보통 50~100달러(약 5만~10만원)인데 장비 대여비가 포함된 가격이다. 또 미국에서 낚시를 하려면 면허가 필요한데 캘리포니아의 경우 1일 면허는 13달러,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면허는 55달러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플라이 피싱 출조를 오고 싶다면 캐시 김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플라이 피싱 전문 자격증인 FFF(Federation of Fly Fishers Certified Casting Instructor)와 캘리포니아 가이드 자격증(California Guide license)를 소유하고 있다.
◇ 한여름 밤의 야외 콘서트
오렌지카운티 풀러턴에 거주하는 한인 리처드 김(65)과 줄리 김(62) 부부는 여름이면 야외 콘서트를 즐겨 찾는다.
몇 해 전 LA 대표 야외 공연장인 ‘할리우드 볼(Hollywood Bowl)’ 음악회에 갔다가 여름밤을 즐기는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매료되었고 이때부터 부부의 특별한 취미생활이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멀리 LA까지 가지 않아도, 큰돈 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음악회를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30년 넘게 살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동네 공원의 야외 음악회도 찾아냈다. 인근 시티홀 잔디밭에서 매년 여름 주민들을 위한 ‘섬머 콘서트’가 토요일마다 열리고 있다.
이제 부부는 자동차 트렁크에 캠핑 의자와 담요를 늘 넣고 다닌다. 어떤 날은 커피 한 잔 들고, 또 어떤 날은 시원한 캔맥주를 사들고 간다. 그동안 몰랐던,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여유다. 김씨는 30년간 운영하던 자동차 정비소를 정리하고 은퇴하면 몇몇 친구들과 함께 정식으로 야외 음악회 동호회를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소란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 부담스럽다면, 여름 한철 이보다 더 좋은 여가생활이 있을까? 소박한 바구니 안에 샌드위치와 치즈, 와인 한 병만 가져가면 된다. 단 분위기가 생명인 만큼 와인잔은 잊지 않는다(깨질 걱정은 없다. 미국에서는 유리잔처럼 생긴 야외 와인잔을 어디서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피크닉 바구니를 든 남편과 담요 한 장을 품에 안은 아내, 노부부가 손을 잡고 근처 공원으로 가는 모습은 미국에서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여름이 시작되는 5월부터 9월까지 캘리포니아에서는 낭만 가득한 야외 콘서트가 곳곳에서 열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에서부터 동네의 작은 공원까지, 클래식 공연에서 무명의 밴드까지, 규모도 내용도 출연진도 다양하다.
LA의 대표적인 야외 공연장인 ‘할리우드 볼’을 비롯해 ‘샌타바버라 볼(Santa Barbara Bowl)’, 인랜드 ‘레드랜즈 볼(Redlands Bowl)’ 등은 캘리포니아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야외 공연장이다. 이들 모두 공연을 감상하면서 음식과 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피크닉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공연 전에 미리 찾으면 여유 있는 피크닉을 즐길 수 있다.
공연에 따라 티켓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할리우드 볼의 경우 출연진에 따라 1000달러(약 100만원)를 호가하기도 하지만 종종 5달러짜리 티켓이 나오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무료 관람의 기회도 제공된다. 뒤편 언덕이든 잔디밭이든 음악이 들리는 곳에 자리를 잡고 즐기면 된다. 담요 한 장과 치즈 한쪽, 와인이 곁들여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이밖에 또 다른 캘리포니아 관광명소인 데스칸소 가든(Descanso Gardens), 게티센터(The Getty Center), LA카운티 박물관(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LACMA)은 여름철 무료 공연으로 유명하다. 평소 콘서트 일정을 살펴두면 수준 높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샌디에이고 발보아 공원(Balboa Park),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 시티홀의 섬머 콘서트, 롱비치 엘도라도 공원 등도 매년 여름 무료 콘서트가 열리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 패들보드
하와이 원주민들이 섬을 건널 때 통나무에 올라서서 노를 젓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패들보드. 공식 명칭은 SUP(Stand up Paddle)다. 미국에서는 대중적인 여름 레포츠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인 패들보딩이 최근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액티브 시니어들 때문이다. 패들보딩이 주는 놀라운 운동 효과와 적당한 스릴이 시니어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다.
뉴포트 비치의 시니어 패들보드 클럽은 보딩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운동이라고 소개한다. 기본자세가 관절염 예방과 척추교정에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보딩을 하기 위해서는 팔과 다리, 어깨와 허리 등 전신이 밸런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관절과 근육이 튼튼해진다.
배우기도 어렵지 않다. 보드 위에 균형을 잡고 서는 것이 관건인데 보통 한두 시간 정도면 가능하다. 일어선 후에는 패들을 이용해 방향을 바꾸는 스킬만 익히면 된다. 패들링에 익숙해지면 이때부터는 이리저리 물살을 가르는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구명조끼를 착용할 수 있어 수영이 익숙하지 않아도 문제될 것이 없다.
패들보드는 바다뿐만 아니라 강, 호수, 연못 등 다양한 장소에서 즐길 수 있다. 사실 보드가 익숙해지면 타는 방법도 ‘내 맘’이다. 앉거나 무릎을 꿇고도 가능하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패들보드와 요가, 헬스트레이닝을 접목시킨 신종 레포츠도 등장했다. 특히 패들보드 위에서 요가를 하는 ‘SUP 요가’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하는 운동으로 알려지면서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핫’한 레포츠로 떠오르고 있다.
패들보드도 진화하고 있다. 하드보드가 아닌 공기주입식 보드를 개발해 부피를 줄여 휴대가 가능해졌고 밑바닥에 LED 조명을 장착한 나이트서프도 등장했다. 밤바다를 훤히 들여다보며 보딩을 즐기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캘리포니아에서 패들보드는 바닷가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다. 해변마다 패들보드 대여소가 있어 시간당 10달러(약 1만원) 선에서 대여할 수 있고, 패들보드 요가나 헬스트레이닝은 클래스당 30~40달러 (약 3만~4만원) 선에서 즐길 수 있다.
◇ 펫시터
취미생활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미국의 직업 안내 포털사이트 트레이드 스쿨(Trade School)에서는 애완견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운 시니어들에게 ‘펫시터’에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동물과의 교감으로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여자와 개의 천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정도로 개 사랑이 유별나고, 관련된 이색 직업도 많다. 뷰티밴(출장미용트럭), 도그위스퍼러(심리치료사), 펫시터(Pet Sitter), 도그 워커(Dog Walker) 등이 있는데 뷰티밴, 도그위스퍼러, 도그워커 등은 전문지식과 기술을 요하지만 펫시터는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특히 여름철 휴가기간 중 반려동물을 돌봐줄 펫시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도 넓다.
미국에서는 로버닷컴(Rover.com)이나 도그베케이(DogVacay) 같은 펫시터 중개 사이트가 활성화되어 있다. 도그베케이에는 3만 명에 달하는 펫시터가 활동하고 있다고. 실제로 이들 사이트에서는 은퇴 후 무료했던 삶이 펫시터를 시작하면서 즐거워졌다는 시니어들의 경험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펫시터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소개서와 사진, 기르고 있는 반려동물 사진을 넣어 프로필을 작성한 뒤 운영진에게 보내 승인이 나면 펫시터로 등록된다. 이용자들은 등록된 펫시터들의 프로필을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최고 시설의 도그 호텔보다 자신의 반려견을 손주처럼 돌봐줄 펫시터를 찾는 반려인이라면, 시니어 펫시터는 선택 1순위가 될 것이다.
펫시팅 가격은 경력자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시간당 10~20달러(약 1만~2만원), 1일 맡길 경우는 50~100달러(약 5만~10만원) 선이다.
2017 포르투 세계 3쿠션 당구대회를 TV를 통해 관전했다. 우리나라의 김행직 선수가 우승하고 허정한 선수가 공동 3위를 한 대회다.
김행직 선수와 결승에서 맞붙은 베트남의 윙꾹윙 선수는 외모부터 우락부락하게 생겼다. 머리를 밀었고 인상은 산적처럼 생겼다. 거기다 큐대를 다루는 태도가 몹시 보기 흉했다. 보통 선수들은 큐대를 양손으로 잡거나 한 손으로 잡더라도 목 부분을 잡는다. 그런데 이 선수는 큐대 아랫부분을 한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 장면이 여러 번 포착되었다. 거기에다 큐대를 당구 대 위에 놓을 때 소리를 내며 큐대로 겨누거나 동선을 재어보는 등 세계적인 선수 같지 않은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분명 눈에 거슬리는 행동인데 해설하는 사람도 이런 행동에 대한 지적이 한마디 없었다.
당구 4대 천왕으로 불리는 브롬달, 쿠드롱, 야스퍼스, 산체스 같은 선수들은 선진국 선수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매너가 좋다. 반면에 윙꾹윙 선수는 후진국인 베트남 선수라 당구 매너를 제대로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당구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매너도 중요하다. 당구대회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정장 조끼를 갖춰 입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큐대는 일단 위협적이다. 작대기, 몽둥이, 창 같은 느낌을 준다. 액션 영화를 보면 당구장에서 난투극이 벌어질 때 종종 무기가 된다. 자칫 남을 다치게 할 수도 있으므로 큐대는 보검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보기 좋다.
2016 구리 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의 제레미 뷰리 선수도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선수다. 해설자가 한 번은 개인적으로 뷰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멘트를 했다. 뷰리는 제한시간 40초를 매번 거의 다 쓴다. 큐대로 요리 재어보고 저리 재어보면서 신중을 기하는데 그런 행동 때문에 상대방이 지친다.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세계적으로 제한시간을 줄이는 추세이므로 더 이상 이런 선수가 설 땅은 없을 것이다.
당구를 즐기는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이라면 큐대를 다루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스로는 모를 것이다. 보는 사람들도 아직은 그런 모습이 별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머릿속에서 세팅이 끝나고 당구대에 브리지와 큐를 내려놓고 수구를 겨누는 동작은 연속 동작으로 한순간에 깔끔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스포츠 용구 중에 검도는 죽도 등 긴 칼을 사용하고 펜싱도 검을 사용한다. 골프도 골프채를 사용한다. 하키나 아이스하키 종목도 긴 스틱을 사용한다. 야구는 방망이가 사용된다. 이런 스포츠 용구를 다루는 모습은 자칫하면 남을 다치게 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경기 중이라면 몰라도 한쪽 끝을 쥐게 되면 다루기도 어렵다. 당구 큐대도 마찬가지다.
심기석 세일ENS 사장은 별명 ‘ 다이소 누님’과 ‘건달’로 유명하다. 2007년 최고경영자로 승진, 현재 장수경영자로 10년째 성가와 성과를 함께 올리고 있다. 인터뷰 당일, 그녀는 살구색 재킷에 인어 스타일의 샤방샤방한 스커트 차림으로 나타났다.
심기석 세일ENS 사장(63)의 별명은 ‘다이소 누님’이다. 등산을 갈 때면 자신의 155cm의 가냘픈 체구보다도 더 큰 집채만 한 배낭을 지고 나타난다. 가파른 산을 올라가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짐을 넘기는 법이 없다. 1착으로 올라가 산마루에서 자리 펴놓고 일행들에게 바리바리 싸온 것을 풀어 먹인다. 짧은 일정의 여행에도 그는 거의 이민 갈 태세의 큰 가방을 밀며 나타나기 일쑤다. 그 커다란 산타자루 아니 트렁크에선 구호품(?)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과일, 홍삼액, 심지어는 플라스틱 소주 컵, 야외 주방도구 일습에서 이쑤시개까지…. 사랑을 퍼주고 나눠주는 선샤인, 아니 문샤인 리더십 덕분에 그의 주변에는 남녀노소가 늘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심 사장이 전통적 의미의 퍼주고 헌신하는 100% 모성형 리더만은 아니다. 그녀의 또 다른 별명은 ‘건달’이다. 바로 건배사의 달인이란 뜻이다. 술자리에선 능숙하게 소맥을 제조하고, 멋진 모습으로 술을 따르는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씩씩한 건배사로 분위기를 선도하는 그녀는 일자리에선 쓴소리를 피해가지 않으며 군기를 세게 잡는다.
심 사장에 대한 조직 내외의 공통된 평가의 핵심은 양수겸장 리더십이다. 호탕한 형님과 따뜻한 누님의 장점을 다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 같지는 않지만 남자처럼 일하고, 여성성을 내세우진 않지만 여성성을 최대한 살린다는 평이다. 심 사장의 양극단 별명 조합처럼 건달 누님 리더십이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어중간한 중성의 평균 타협이 아니다. 상황별로 각각의 장점을 살려 평형을 맞추는 게 심 사장 리더십의 특성이다. 아낌없이 베풀며 모범을 보이되, 돌직구 직언도 아끼지 않는 ‘어른의 품격’을 보여준다. 지인들은 심 사장을 가리켜 요즘 시대에 흔치 않는 ‘어른의 롤모델’이라고 입을 모은다.
‘건달 누님 리더십’은 그녀가 전문건설 설비업계 세일ENS에서 뼈가 굵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건설업은 일반적으로 남성 주도의 업종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 공조업이란 ‘여름엔 얼마나 시원한가, 겨울엔 얼마나 따뜻한가와 관련한 냉난방 배관설비를 건축물 내에 시공하는 사업’을 뜻한다. 거대한 건물 속의 모세혈관을 유지하는 일로서 세심한 손길과 관리가 필요하다.
초창기(1970년대 초반)에 책상 두 개와 직원 세 명밖에 없었던 작은 규모의 회사는 이제 직원 100여 명, 일용근로자 2300명 내외의 튼실한 전문건설 설비업계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재수하던 중 전화나 받는 자리로 잠깐 취직한 회사에서 ‘불독 신세’로 사무실만 지킨다며 찔찔 울던 10대 소녀는 그 사이 60대 초반의 통 크고 손 큰 ‘건달 누님’이 됐다.
원래부터 성격이 담대하고 씩씩했나요?
“아니에요. 환경 탓이 큽니다(하하). 살아남기 위해 변화한 겁니다. 건설업계가 남성 주도 업종이다 보니 여자 관리자는 고사하고 직원조차 드물었습니다. 어느 자리이고 참석하면, 홍일점이란 이유만으로 눈에 띄는 겁니다. 회사 안에서나 밖에서나 직급과 상관없이 ‘한 말씀’을 요청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다못해 자기소개 인사말이라도 하라고요. 이때 ‘준비 안 해 못 한다’고 하거나 ‘시킬 줄 몰랐다’고 수줍은 척 뒤로 빼면 ‘능력 부족’으로 못나 보이잖아요.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 기억에 남도록 하자는 생각에 늘 공들여 준비했어요. 저는 여자 후배들 교육시킬 때도 ‘건배사 제대로 하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차례가 돌아오기보다 자원하라고 말해줍니다. 또 두루 쓸 수 있는 범용 건배사와 자신만의 특성을 살린 필살기 건배사 두 가지를 준비해두라고 강조하지요. 각자 맡은 분야에서 실력은 노력하면 되지만 네트워킹, 사회적응 훈련은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은 선배로부터 배우는 게 효과적이니까요.”
입에 척척, 귀에 쏙쏙 감기는 건배사가 허투루 즉흥적으로 튀어나온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심 사장은 책, 신문을 읽다가도 응용할 것이 있으면 메모하고, 변형하고, 외우고 연습한다. 사자성어로 신조어 건배사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의 히트 건배사는 인사불성(인간을 사랑하라는 말은 불경에도 나와 있고 성경에도 나와 있다), 적반하장(적당한 반주는 하느님도 장려하신다) 등이다. 술을 따르더라도 진기명기의 방법을 개발해 한편의 그럴듯한 퍼포먼스로 승화시킨다. 지방출장을 가든, 해외여행을 가든 사람들의 사는 모습, 먹는 모습, 마시는 모습은 관찰의 대상이고, 그것은 여러 가지 퍼포먼스와 아이디어에 스파크를 일으킨다. 관찰과 사고, 연습의 조합에서 의미와 재미와 흥미의 창조적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고교 졸업하고 1973년에 취직해 44년간 한 직장에서 근무했습니다. 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성공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내 일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비결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평범하지만 진실입니다. ‘시간이든 돈이든 비용을 덜 들이고, 더 효과적으로,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사원, 정확하게는 전화 받는 사환으로 온갖 궂은일을 할 땐데요. 세금계산서가 들어 있는 편지봉투를 그대로 버리는 게 아까운 거예요. 글자가 쓰인 부분만 자르고 봉투 뒷면을 사무실 내에서 메모지로 썼지요. 내 것이란 생각으로…. 구매 일을 할 땐 견적을 뽑아보고 어떻게 협상해야 보다 좋은 제품을 싸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예전보다, 항상, 남보다 최고 2% 싸게 사는 작전과 목표를 세워 실천했습니다.”
구매 일을 하면서 사람 보는 법도 부가적으로 배웠다고 말한다. ‘저 사람은 곧 그만두게 될 사람, 독립할 사람, 독립해서 공장까지 지을 사람’ 등 나름대로 사람 보는 눈이 생기더라는 것. 10명 중 7명은 심 사장의 예상대로 운이 풀렸다. 족집게 적중률의 근거는 바로 주인의식이란다. ‘내 일처럼’ 진실, 성실, 창조적으로 하는 사람이 독립해서 사업도 잘하더라는 게 나름의 경험상 얻은 결론이다.
회사와 함께 개인적으로도 성장하셨는데요. 회사가 급성장하면 창업공신의 성장속도가 그에 미치지 못해 도태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중간관리자 시절, 선행학습을 충분히 한 게 도움이 됐습니다. 중간관리자는 말하자면 조직의 관절이에요. 윗사람, 아랫사람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학습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각 입장을 고루 관찰하고 이해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선행학습할 수 있었습니다. 또 마흔 넘어 영업을 하며 고객의 외부적 시각, 내부의 시각을 다 고려해보게 되더군요. 결국은 단계별로 자기의 그릇을 키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릇이 작으면 상을 차려줘도 밥을 못 챙겨먹습니다. 그릇을 키우는 게 먼저입니다.”
먼저 베풀고, 내 일처럼 하는 회사일, 좋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신세대들은 헌신하다 소진하고 탈진돼 헌신짝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일을 통해 기쁨을 얻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요. 남의 보상이나 인정을 갈구할수록 실망할 일이 많아집니다. 오히려 남에게 의존적이 되고요. 내가 열심히 하고, 배우는 것을 우선순위로 놓으면 활용당하거나 보상이 적다고 실망하는 일이 적어집니다. 결국은 자기 실력으로 쌓이는 것이거든요. 자신의 시간에, 삶에 충실하지 않고 대충 일하는 것이야말로 책임, 인생 유기이니까요. 성실히 일하면 단기적으로 손해 같지만, 장기적으론 투자입니다. 비유하면 농사와도 같습니다. 씨앗을 많이 뿌린다고 해서 모두 싹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씨앗을 많이 뿌리지 않으면 싹이 날 확률이 줄어듭니다. 일단 노력과 열정을 기울이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젊은이를 만나면 ‘잘나가는 것만 부러워하지 말고 어렵고 힘든 부서에 가서 몇 년만 버텨보라’고 말합니다. 나만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다른 회사, 다른 부서, 어디에서든 잘할 수 있거든요.”
쓴소리 잘해서 ‘비즈니스계의 윤여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들 ‘밥은 사고 말은 참는 것’이 어른의 의무라고들 하는데요.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올바른 소리를 피하는 것은 진정한 어른이 아니지요. 그저 뒤에서 혀만 쯧쯧 차기보다는 뭇매를 맞더라도 옳은 말을 해주는 게 어른의 역할입니다. 당장은 듣기 싫더라도 행동에 도움이 된다면 해야지요. 열 명에게 얘기해서 한 명이라도 받아들여 변화되고, 사회를 밝게 한다면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나서서 쓴소리를 하는 이유입니다.”
‘사원에서 사장까지’ 성공신화 뒤에 숨은 콤플렉스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왜 없었겠습니까. 지금이야 예순을 넘었으니까 조금 자유로워지긴 했지요. 한창때엔 고루고루 콤플렉스투성이였습니다. 보다시피 제가 인물이 좋습니까, 키가 큽니까, 가방끈이 깁니까. 지금 이 나이니까 어느 정도 풍화됐지만 그때는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영업을 할 때는 ‘내가 팔등신 미모에 좋은 학벌, 돈 많은 사람’이라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됐을까 많이 아쉬웠지요. 또 내가 처음에는 술을 잘 못했거든요. ‘소주 두 병만 마실 수 있으면 업계 판도를 바꿨을 텐데’ 등등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웃음). 돌이켜보니 콤플렉스, 결핍이 오히려 다행이었어요. 부족하고 모자라서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수수하게 낳아주신 것에 감사하고요. 실력과 학력이 부족한 걸 알기에 더 노력했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건배사 개발도 술을 많이 못 먹어 술자리나 재미있게 만들자는 궁여지책에서 시작됐다. 그가 국내든, 국외든 자주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전통시장이다. 이곳에서 컵 홀더 등 특이하고 스토리가 있는 소품들을 사와 지인, 고객들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한다. 골프를 치고 오면 같이 간 일행들의 골프 폼과 대화 등 후일담을 메일로 전하기도 한다. 심 사장에겐 마음을 나누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기쁨의 선순환이 사업가로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의미요, 재미다.
이야기가 인맥 쪽으로 좀 흐른 것 같습니다. 모든 관계에서 개척 못지않게 중요한 게 유지관리 아닙니까.
“맞습니다. 잘나갈 때는 누구나 잘해줄 수 있습니다. 위기 때의 태도가 신뢰의 증표입니다. 진정한 신뢰는 못나갈 때도 한결같이 잘해주는 것입니다. 직원들에게 늘 말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 세일은 이익이 날 때뿐 아니라 밑지더라도 잘하자!’ 도장을 찍었으면 이유 불문 책임을 지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자 합니다. 돈을 잃을망정 사람까지는 잃지 말자는 것입니다. 품질이든, 원가든 당초 약속을 반드시 지키자는 것이지요. 평판은 얻기는 힘들지만 잃기는 쉬운 법이거든요. 우선 나부터 충실하고 튼실해져야 합니다. 내가 급급해하면 남을 챙기고 지켜줄 여유를 갖기 힘듭니다. 개인이나 회사나 다 똑같습니다.”
심 사장은 밑질 때의 마음 다스리기 법을 들려주었다. 가령 5억이 남을 줄 알았는데 5억이 밑지면 일반적인 셈법으로 ‘10억을 손해봤다’며 억울해한다. 그는 신용을 지켰으니 3억만 밑진 것으로 나름의 가감승제법을 적용한단다. 당장의 손해가 앞으로 어떤 이익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투자’라 생각하며 위로를 한다는 내공 어린 고백이다.
경영자 등산모임 ‘시애라’의 회장도 맡고 계시지요. 최근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봉 트레킹을 열흘간 다녀오시기도 했는데요.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릴 때 가면 안 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더 나이 들기 전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육체적 자신감은 물론이고 심리적 에너지를 많이 얻었습니다. 웅장한 자연도 좋았지만 그보다 의미 있는 것은 절대고독의 시간이었습니다. 몸을 뒤척이기조차 힘든 옹색한 싱글 방에서 휑뎅그렁하게 있으며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일에 대한 욕심까지도 포함해서 세속의 먼지를 떨어내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공한 경영자들이 의외로 가정 경영은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여성 경영자로서 애환이 더 많았을 것 같은데요.
“‘아침밥은 얻어먹고 다니십니까?’가 내조 점수 체크 질문이지요. 저는 남편이 아침밥을 차려준답니다. 행복하고도 감사한 일이지요. 저는 계란 프라이가 있어야 아침을 먹는데요. 한번은 출장을 갔는데 지인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어요. 밖에서도 계란프라이를 먹도록 챙겨줄 정도예요(하하). 어차피 집안일, 회사일을 다 잘하긴 힘들어요. 솔직히 말해 사장 되고선 주방 들어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잘하는 일을 선택해,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에요. ‘집에선 당신 부인이지만, 밖에선 남의 부인으로 생각하라’고 말할 정도로 전투적으로 산 게 우리 시대, 여성 리더의 생존전략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서로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고 신뢰를 쌓는 것, 그것 이상의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은퇴 계획을 묻고 싶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자’는 게 제 신조입니다. 외부 평가보다 내부 평가가 더 좋은 리더로 기억되고 싶고요. 우선 3년 후에 있을 회사 50주년 행사 준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는 제 장점을 살려 나만의 재미나는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요. 가깝고 편한 사람들끼리의 작은 공간, 행복살롱을 만들고 싶습니다.”
3시간여 격정적인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심기석 사장이 필자의 명함을 다시 꺼내들었다. 건달 누님 리더십의 직설본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긴장하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조언이 쏟아졌다.
“명함의 글자가 너무 작아요. 글자 배치도 조금 앞으로 와야겠군요.”
어른이 내리치는 죽비소리는 아프기보다는 시원한 법이다. 요즘 신세대들이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탓하는 것은 ‘발언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발언 자격’의 문제가 아닐까. 어른의 품격은 바른 소리가 아니라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는 자격에서 우러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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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허비되기 쉬운 건 청춘만은 아니다. 황혼의 나날도 허비되기 쉽다. 손에 쥔 게 많고 사교를 다채롭게 누리더라도, 남몰래 허망하고 외로운 게 도시생활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머리에 들어온 지식, 가슴에 채워진 지혜의 수효가 많아지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은하계를 덧없이 떠도는 한 점 먼지이지 않던가.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한다. 어둠 속을 부유하는 먼지의 신세를 면하기 위해, 저마다 나름의 별이 되기 위해, 타성에 젖은 삶을 바꾸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스스로 자청한 귀촌이라는 점에서는 유쾌한 도발이거나 즐거운 실험이다. 정착에 성공한다면 주야간에 얻어 누릴 것이 많은, 자못 성대한 사업이 바로 귀촌이라는 논평도 널리 돌아다니는 게 사실이지 않던가. 서울에서 이름 난 회사의 간부로 근무했던 김창승(58)씨. 그는 오래도록 그저 평범하고 무난한 인생을 끌어왔더란다. 퇴근 뒤 주점에 들러 한잔 마시는 일이나, 휴일에 느긋하게 골프를 즐기는 정도를 여흥으로 알고 살았다. 뭐 하나에 빠지면 수면 밑바닥까지 함빡 빠져드는 버릇, 그게 특유의 개성이라면 개성이라지. 본인이 선택한 일을 숭상하는 사람임을 알 만하다. 그런데 아마도 김창승씨가 가장 애호하는 건 아내 김태영(57)씨라는 존재였던 모양이다. 아내는 귀촌의 깃발을 들고 앞장서 나섰으며, 그는 즉각 응했다는 게 아닌가. 그는 ‘충성!’을 속으로 외치며 대번에 아내의 뜻을 따랐던 것 같다. 이를 부부애의 한 절경이라 봐도 무리가 없을 터.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부러워할 정경이렷다. 동쪽으로 가자 하면 일쑤 당나귀처럼 어깃장을 부려 서쪽으로 냅다 뛰기도 하는 게 남편이라는 종족이니 말이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내가 원하는 귀촌을 결행하기 위해 자신의 내부에 들어 있는 생각과 가치관 따위를 새삼스럽게 신중히 점검한 김창승씨는, 귀촌이라는 종목이 사실상 자신에게도 어울리는 탁월한 선택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이후 매우 신속하게 일을 서둘렀다. 그는 곧장 회사에 사표를 냈다. 2014년 1월 엄동 철에 부부는 마침내 전남 구례군 토지면의 시골로 귀촌했다.
“아내의 고향이 구례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인생 후반을 맞이하고 싶다는 게 아내의 소망이었어요. 이 사람은 초등학교 교사인데, 고향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텃밭농사를 통해 순수한 먹거리를 거두어 먹고, 자연의 품안에서 평온한 생활을 하며 늙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던 거죠. 어릴 적의 추억이 서린 시골에 대한 향수가 소박하지만 절실한 꿈으로 부푼 것 같았어요. 가만히 생각해보자니 저에게도 신선한 전환일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일에 착수했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밀어붙였어요. 어느덧 귀촌 3년의 세월이 흘렀는데요. 아내는 물론 저 역시 크게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김창승씨 내외가 깃들어 사는 집은 오래된 기와집. 마당엔 갖가지 나무와 화초들이 자라고, 온갖 작물들이 자라는 텃밭도 솔숲처럼 싱그럽다. 낡고 빛바랜 태로 세월의 풍상을 웅변하는 고가(古家)가 자아내는 푸근한 정감. 길차게 자란 채 집을 빙 에두른 대나무들이 뿜는 청신한 기운. 남도의 전형적 농가의 구색이며, 수더분해서 다분히 이상적인 조경이며, 꾸민 바 없이 자연스럽게 잘 꾸며진 미학의 공간이다. 아니, 이토록 고리타분한 집에서 살려고 시골을 내려왔소? 하고 딴죽을 걸 사람이 드물지 않겠지만, 인간이란 저마다 다양한 취향을 관철하며 즐기며 살아가게 돼 있는 동물. 김씨 내외는 이 옛집이 취향과 구미에 맞아 오직 만족스럽다는 거다. 집 뒤 저편으로는 지리산이 거인의 눈을 껌벅이고 있으며, 집의 전면으로는 수려한 섬진강이 요요히 남실거린다. 명당에 들어앉은 집이라 간주한 내외는 이 집을 아예 사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단다. 집주인이 집을 팔 의향이 눈곱만치도 없어서였다. 그래서 당분간 그냥 빌려 쓴다.
먹거리 정도는 자급하기로
귀촌이나 귀농을 하는 사람들이 맨 처음 해결할 문제는 단연 거처나 땅을 확보하는 일이다. 게다가 시골의 집값, 땅값은 늘 생각보다 비싸며, 매물 자체가 드물며, 뭘 모른 채 엄벙덤벙 순진하게 덤벼들었다가는 잔머리 굴리는 재주를 가진 이들의 농간에 깜박 속아 넘어갈 수도 있다.
“귀촌 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나 들어가 살 집을 장만하는 일입니다. 시골에 빈집은 드물지 않지만, 대부분의 집주인들이 절대 팔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요. 도시에 나가 사는 자제들이 언젠가는 들어와 살거나 별장 용도로 쓰겠다는 생각들이니까요. 그렇다면 현지의 사정도 파악할 겸 잠정적으로 세 들어 살 집을 마련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지만, 딱히 임대할 만한 집도 드문 게 현실입니다. 저희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서야 이 집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우선은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지요.”
“집 지을 땅이나 농토를 구입하려고 10년을 돌아다녔다는 사람도 있습디다. 뜸들이다 늙어버리는 것이죠. 이상적인 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과욕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 경관이 빼어난 땅을 덜컥 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발이나 건축을 할 수 없는 땅을 속아서 사는 케이스죠. 계절마다 땅 사정이 다르다는 점도 유념해야 해요. 여름엔 바람골이라 시원하겠다 싶어 사들였다가 겨울이 돼서야 유난한 얼음골이라는 걸 알고 낙심하는 수가 있으니까요. 땅이나 집의 거래 때 마을의 내부 가격과 부동산 업체에 내놓는 가격차가 크게는 두 배에 달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해요.”
“선생 내외는 혹한기 1월에 여길 들어왔어요. 춥고 외롭고 불안하진 않았나요?”
“고가의 보일러를 손보고, 벽지를 바르고, 그러곤 그냥 살았어요. 당시엔 TV도 없었어요. 온천지에 깜깜한 밤이 내리면 7시부터 잠을 잤죠. 그렇게 긴긴 겨울을 좀 스산하게 지냈으나, 어느덧 봄이 왔고요, 그 첫봄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요. 이어 여름이, 가을이 오가고, 절기에 맞춰 농사가 시작되거나 마무리되고, 온갖 꽃들이 피고 지고, 참으로 감동적이었어요. 꿈꾸듯이 지낸 날들이었어요.”
“일은? 농사는? 그저 자연 풍경을 관람하며 지냈나요?”
“아내가 교직에 있고, 나름 물적 여력도 좀 있고 해서 황급히 돈벌이에 나서진 않아도 되는 여건이었어요. 그렇지만 이왕에 시골에 살게 됐으니 부부의 먹거리 정도는 자급을 하자, 뭐든 소소하게나마 농사도 지어보자는 생각으로 농토 400평을 샀습니다. 거기에 주로 콩을 심어 된장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귀촌과 귀농을 겸한 방식으로 살아온 셈이죠.”
도시라고 왜 매력 요소가 없을까마는, 한결 안전한 삶이 시골에서라고 거저 주어질 리가 있을까마는, 인구와 차량과 소음이 거품처럼 바글거리는 도회의 생활이란 시골에 비해 피로와 고독을 가중시키는 게 사실이다. 차갑고 쓸쓸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곳, 타산이 없는 동행을 만나기 어려운 장소가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쟁과 긴장이 덜한 시골에서 권태를 피해 생기를 유지하고 행복을 구가한다는 게 용이한 일만도 아니다. 적막하거나 적적한 시골살이에 무기력하게 코 꿰게 된다면 그 역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김창승씨는 가급적 일을 만들어 거기에 온전히 투신하는 게 복된 삶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즈음의 그는 거의 일벌레다.
“시골 인심은 정말 순후해”
“콩농사와 벼농사, 그리고 양봉도 합니다. 벌통 20개를 운영하고 있어요. 왜 양봉이냐? 지리산 지구인 이곳엔 산야초가 타지에 비해 두 배 정도 많아요. 벌들이 꿀을 물어올 꽃들이 지천이라는 얘기죠. 과수농사도 좀 합니다. 아내는 저보고 일을 벌이지 마라, 좀 편하게 살자, 그렇게 투정처럼 말하지만 일이 즐거우니 어떡하나요? 물론 농사로 아직 수입을 올리진 못하고 있어요. 경험을 축적하는 단계라는 거.”
“구례군 귀농귀촌협회장이기도 하죠? 귀농귀촌인들의 실태에 훤하겠어요. 그들은 어떤 문제에 가장 큰 애환을 느끼죠?”
“만족할 만한 소득을 올리기가 어렵다는 점이죠. 농사로 돈을 만지기란 실로 어려워요. 더구나 막연히 뭔가 잘되겠지 하고 무작정 들어온 경우는 실패하기 십상이에요. 시골에 내려와 살고자 한다면 미리 도시에서 한 가지쯤 기능을 익혀두는 게 현명하다고 봅니다. 목공, 배관, 전기기술, 중장비 또는 숲 해설사라거나, 유용하게 써먹을 기능 분야가 많으니까.”
“마을 주민들과 흐뭇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떤 처신이 필요할까요? 융화에 실패하고 패잔병처럼 철수하는 이들이 드물지 않아 묻는 질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대목이죠. 흠. 전통 농경사회의 특성이랄까, 시골 주민들은 ‘외지 것들’ 또는 ‘도회지 놈들’에게 일단 경계심을 품게 마련입니다. 개나 끌고 다니며 괜히 거들먹거리는 사람들, 온갖 참견을 하고, 육하원칙을 내세워 따지고 비판하는 부류들을 좋아할 리가 없죠. 제가 온몸으로 느낀 거지만, 시골 인심은 정말 순후해요. 주민들 속으로 겸손하게 들어가야 합니다. 돈 드는 일도 아녜요. 경로당에 수박 한 덩이 들고 가서 노인들과 어울리는 일은 사실 즐거운 일입니다. 마을 사람 하나와 싸움을 하면, 그건 결국 마을 전체에 싸움을 거는 일과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야 해요. 존중하라! 그리 말하고 싶어요. 우리네 어버이들이 대부분 시골 출신 아니겠어요?”
자아도취엔 리스크가 많지만 겸허한 실천으로는 길이 열린다. 시골이라는 공동체에서 나를 낮추면 뜻밖에도 쏟아져 들어오는 것들이 많다. 우호적인 눈길, 미더운 관심, 끈끈한 유대감이 시골살이를 안정적인 쪽으로 데려다준다. 그렇다면 귀촌이란 수신(修身)이구나! 교만하거나 우매한 나를 독사의 눈으로 냉철하게 돌아봐 교정하는 교실에 들어선 것이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자신을 세우되 이웃을 품는 일, 끔찍한 아귀다툼의 세태에서 한발 떼어 자연과 인간에게 순하게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일, 이는 음풍농월만큼이나 발랄한 자아실현의 길이지 않겠는가.
“아침저녁으로 새롭게 변하는 자연 풍경들이 정신과 영혼을 정화해주는 것 같아요. 이건 도시에선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행운이죠. 산과 들과 강, 하늘과 별과 숲을 바라보면 때로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환희가 가득하기도 합니다. 마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때처럼….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내가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주체의식과 생기를 깨달아요. 예전엔 아내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섬처럼 저를 느끼곤 했으나, 이젠 온전한 기쁨을 느껴요. 뭔가 한층 높고 고결한 곳에 있다는 실감이랄까, 그걸로 만족스러운 겁니다.”
삶의 일상에 자연이 붙어 있을 경우, 행복의 빈도는 더 잦아진다. 강바람에 들이 일어서고 눕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 나뭇가지 하나를 집 삼아 밤을 나는 박새를 바라보는 일, 별이 모이는 걸 바라보는 일, 이 모든 소소한 풍경들에서 내 심장의 볼륨이 높아지는 걸 깨달을 수 있는, 시골살이란 어쩌면 낙원으로의 입문이다. 낙원의 한 치 곁엔 늘 연옥이 있는 법이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실버타운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독립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독립적인 가족문화 때문일 것이다. 은퇴 후 자식에게 의존하기보다는 내 스스로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시니어들의 의식도 한몫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실버타운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이름난 대규모 은퇴 단지만 3000여 곳, 이 중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작은 해안도시에 있는 라구나우즈 빌리지는 한인들에게는 꿈의 은퇴촌으로 불린다. 365일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 입맛대로 골라 즐길 수 있는 클럽활동,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년 친구들, 무엇보다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다. 서로를 ‘아름다운 동행자’라 부르는 이곳,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한인들을 만나봤다.
미스터&미세스 손
“입구를 잘못 들어왔네요. 거기서 기다려요. 미스터 손한테 나가보라고 할게요~”
은퇴촌이라고 만만히 봤다간 낭패다.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총면적은 2100ac(약 250만 평). 라구나우즈 시(市)의 90%를 차지한다. 여의도 전체보다도 크다.
알려준 9번 출입구를 못 찾아 8번 출입구로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9’에서 ‘8’이 멀어봤자 얼마나 멀겠냐 했지만 결국 길을 잃었고 기어이 80세의 주인장을 마중 나오게 만들고 말았다. 나무 그늘 밑에 자동차를 대놓고 5분 정도 기다리자 언덕 위에서 골프카트 한 대가 바람을 가르며 달려왔다. 흐트러진 흰머리를 단정히 하며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노신사. 미스터 손이었다. GPS를 손에 들고도 길을 잃은 젊은이(?)에게 위로의 말도 잊지 않는다.
“여기가 원래 넓어서 찾기가 좀 힘들어요. 하하하.”
손기용(80), 손종숙(75) 부부. 빌리지에서 이들은 미스터&미세스 손으로 불린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와 정반대 쪽에 있는 오하이오에서 40년 넘게 소아과 의사, 병리과 의사로 각각 일하다 은퇴를 했고 6년 전 캘리포니아로 이주,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주민이 됐다.
“오래 살았던 오하이오가 익숙하긴 했지만 겨울이 추웠어요. 따뜻한 플로리다로 갈까, 아들이 있는 캘리포니아로 갈까 고민하던 중에 집이 덜컥 팔려버린 거예요. 어디로든 떠나야 했죠. 일단 아들 집과 가까운 이곳 라구나우즈 빌리지에서 월세로 살면서 천천히 결정해보자 했는데, 두 달 만에 집을 샀습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찾던 파라다이스였어요!”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2300ft2(약 65평)의 크기로 거실과 주방, 그리고 두 개의 침실과 화장실이 있는 예쁜 단층집이다. 2011년 당시 80만 달러에 구입했다. 라구나우즈 빌리지에는 손씨 부부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 외에도 콘도와 아파트가 있는데 한인들이 선호하는 어바인이나 플러턴에 비해 주택 가격은 다소 낮은 편이라고.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날씨는 부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여름엔 더워도 습도가 낮아 상쾌했고 겨울엔 눈이 내리지 않아 운전하기가 좋았다. 10분이면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라구나 해변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가 있었다. 인근 플러턴과 어바인에는 한국 식당과 상점이 넘쳐나니 한국 음식이 그리울 틈도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여유 넘치는 빌리지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한마디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골프, 수영은 물론이고 젊은 시절부터 취미였던 사교댄스도 더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였죠. 빌리지에는 200개가 넘는 클럽(동호회)이 있어요. 원하면 어떤 클럽이든 가입할 수 있고 직접 만들 수도 있어요. 여기서는 심심할 일이 없어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서로 얼굴도 못 보는걸요. 젊은 시절보다 더 바쁘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합니다.”
남편은 독서와 골프를 즐기고 아내는 하이킹과 합창을 좋아한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는 부부는 각자 활동하는 클럽이 다르지만 이것만큼은 꼭 같이하자고 정해놓은 세 가지가 있다. 손을 잡고 거니는 저녁 산책, 같은 침대 쓰기, 그리고 벌써 20년을 함께해온 볼륨댄스가 그것이다.
빌리지 안에서 손씨 부부는 춤꾼으로 유명하다. 경력 20년의 수준급 솜씨다. 특히 아내 손종숙씨는 전국 경연에도 참가할 만큼 프로급 댄서다. 어느 해 연말파티에서 백인들도 울고 갈 정도로 멋들어지게 춤을 추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이웃에 사는 한인 부부들이 배움을 자청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세스 손의 댄스교실은 현재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늦은 춤바람으로 열공 중이다.
부부는 라구나우즈에 들어오기를 두고두고 잘한 일이라 여긴다. 아내에 비해 조금은 소극적인 성격인 손기용씨는 이곳에서 동년 친구들과 격 없이 어울리며 사는 재미를 알게 됐다고 한다. 평생 쓰고 싶어도 못 썼던 모국어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저녁은 주로 아내가, 아침은 내가 준비합니다.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매일 아침 볼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요. 우리는 현재 생활에 아주 만족해요. 둘이 있어서 좋고 친구가 많아서 즐겁습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즐거움이지요. 아내와 나는 이곳이 마지막 종착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해야지요. 스트레스가 건강에 제일 안 좋다는데 여긴 그럴 일이 없어요. 이곳에 살고 있는 최고령 한인은 90이 넘은 분이에요. 10년은 문제없겠지요? 하하하.”
라우나우즈의 이장님, 한인회 김일홍 회장
라구나우즈 빌리지에 한인회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 1998년. 당시 회원은 30명 정도였다. 타향살이 이민자들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형님 동생이 되었고 주말이면 다 같이 한집에 모여 바비큐를 먹고 친목을 다졌다. 이후 7명의 한인 회장이 배출되었고 그동안 빌리지의 한인은 700여 가구 1200여 명으로 늘었다. 옛날처럼 오손도손한 분위기는 없어졌지만 한인의 위상은 커졌다.
현재 8대 한인 회장을 맡고 있는 김일홍(79)씨는 초기 한인회가 한인들 간의 친목을 다지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지금은 커뮤니티 내 타 인종과의 화합과 클럽활동을 통한 자기계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5년간 이곳에 한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어요. 이대로 가면 빌리지의 한인 비율이 전체의 10%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그만큼 커뮤니티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 좋겠습니다. 매년 빌리지 내에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초청해 기념식과 만찬을 열고 있는데 참으로 뿌듯합니다. 4년 전 만든 한국어 클래스도 아주 인기가 좋아요. 얼마 전에는 아리랑 코리안 문화축제를 열었는데 주민들의 호응이 대단했어요.”
라구나우즈 빌리지에는 동호회 활동을 위한 대규모 연회장인 클럽하우스가 10여 개 있다. 소규모 모임을 위한 크고 작은 미팅룸은 예약만 하면 10~20달러(1만~2만원) 선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한인들이 주축이 된 클럽도 20여 개나 된다. 김일홍 회장은 클럽활동을 단순한 여가생활에서 더 발전시키려 애쓰고 있다.
“목표를 정하고 도전해보자는 거죠. 그 예로 글사랑모임 클럽에서는 2014년부터 라는 수필집을 발간하고 있어요. 회원들의 필력뿐 아니라 편집이나 사진 실력이 매년 발전하는 것을 보며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김일홍 회장은 라구나우즈에서 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한인회 관련 일은 물론이고 동호회 활동, 관리사무소나 빌리지 내 시설 사용 등 민원 업무도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앞서 만난 손기용씨는 김 회장을 알뜰살뜰한 마을 이장님 같다고 했다. 빌리지 안에서 운전하며 가다가도 아는 얼굴을 만나면 꼭 차를 세우고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다. 짬을 내어 아프거나 홀로된 노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도 살펴야 맘이 편하다. 때로는 라구나우즈 빌리지 가이드가 되어 투어 서비스도 한다.
미국 전역에서 톱 10에 속하는 명성에, 한인이 많이 살다 보니 은퇴자라면 한 번쯤 꿈꾸어보는 라구나우즈 빌리지. 입주 문의는 늘 이어진다. 라구나우즈 빌리지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주택 종류에 따라 3만6000달러(약 3600만원)에서 4만2000달러(약 4200만원)가량의 연수입이 있어야 한다. 일정 금액의 자산도 증명되어야 한다. 월 관리비는 650달러로 골프장, 수영장, 헬스클럽, 클럽하우스 등 빌리지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시설관리, 조경, 가스, 수도, 케이블TV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김 회장은 빌리지 입주는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지만 미리미리 은퇴 계획을 세운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조언한다.
“재력이 은퇴생활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죠. 100세 시대에 은퇴하고 20년, 3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인들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경향이 있죠. 지나친 헌신으로 은퇴 후 자신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솔직히 우리 나이가 되면 자식보다 배우자, 친구가 더 소중합니다.”
김 회장은 건강과 재력 외에 성공적인 은퇴생활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은퇴 후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했다.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쓸지 몰라 난감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평소 좋아하는 운동이나 취미를 준비해놓는 것도 중요해요. 라구나우즈가 최고의 은퇴촌으로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을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죠. 이곳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다들 바빠요(웃음).”
라구나우즈 빌리지의 많은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웃들의 소소한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포토그래퍼 박성원 작가, 성악가의 꿈을 라구나우즈에서 이루고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소피아 최 회장, 춤을 사랑하는 동호인들을 모아 7년째 고전무용 춤방을 열고 있는 김영옥씨,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가 그리 좋더냐’ 훈남 이수일로 변신한 연극반 채한경씨,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에서 이제는 라구나우즈 미술선생님이 된 이상락씨, 그리고 여전히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고 배려하며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미스터&미세스 손까지….
라구나우즈 빌리지가 꿈의 은퇴촌으로 불리는 이유는 기막힌 골프코스와 수영장, 럭셔리한 클럽하우스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여전히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열정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라구나우즈 빌리지가 아름다운 이유다.
라구나우즈 빌리지는?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라구나우즈 빌리지’는 라구나우즈 시 안에 있는 은퇴 마을이다. 현재 1만2736세대, 3만6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빌리지 안에는 5개의 수영장과 36홀의 골프코스, 테니스코트, 도서관, 극장, 우체국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있다. 라구나우즈에 입주하려면 조합(HOA – Home Owner’s Association)에 가입해야 하는데 크게 협동조합(Co-Op)과 상호조합(Mutual)으로 나눠져 있다. 협동조합의 경우는 조합이 소유주로서 입주자는 집이 아닌 조합회원권(Stock Certificate)을 구입하면 된다. 상호조합의 경우는 콘도 내부 수리와 관리를 소유주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
상호조합과 협동조합의 가장 큰 차이는 구입한 집을 임대해줄 때다. 협동조합의 경우는 1년 동안 6개월 이상 임대를 줄 수 없다. 상호조합은 임대에 대한 제약이 없다. 따라서 투자를 위한 임대 목적으로 은퇴촌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는 상호조합 콘도를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라구나우즈에 입주하려면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반드시 55세 이상이어야 하며, 집값은 일시불로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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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나우즈 빌리지 웹 사이트 lagunawoodsvillage.com
한인회 웹사이트 lagunawoodskac.com
대림산업은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에 ‘e편한세상 구리수택’을 6월 중 분양한다.
지하 3층부터 지상 29층까지, 총 10개 동 총 733가구로, 선호도가 높은 중소형 면적(59‧74‧84㎡)으로 구성했다.
e편한세상 구리수택이 들어서는 구리시 수택동은 경의중앙선인 구리역,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간선도로가 가까워 서울 및 수도권으로 접근이 수월하다. 지하철 8호선 연장선과 구리~포천고속도로(6월 말 개통 예정), 서울~세종고속도로가 개통을 앞두고 있어 도심과의 접근성이 향상될 전망이다.
주택 인근에 교문초∙중, 구리초‧중∙고 토평중∙고 등이 있으며 주변 녹지시설이 풍부한 것도 특징이다. 구리시립 체육공원, 시민의 숲 공원을 비롯해 생태공원을 조성 중인 이문안저수지가 근접해 있다. 백화점, 전통시장, 대학병원 등 쇼핑∙문화∙의료 시설도 가까워 편리하게 이용 가능하다.
단지 내에는 피트니스센터, 골프 연습장, 라운지 카페 등 커뮤니티 시설이 조성된다. 세대 내부 모든 창문에는 소음 차단과 냉·난방 효율이 높은 이중창 시스템을 도입해 외부 소음 유입을 줄이고, 거실과 주방에는 층간소음완충재를 적용해 층간소음을 저감했다.
대림산업은 정식 견본주택을 개관하기 전 분양 홍보관을 열고 사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견본주택은 6월 중 개관하며 입주는 2020년 1월 예정이다.
미국산 백색 샤도네이(Chardonnay) 와인의 대표 브랜드로 웬티가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에서 샤도네이 포도 묘목을 들여와 와인주조학으로 정평이 나 있는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주립대학 팀과 협력해 미국 토양에 맞게 개량하는 데 성공하고, 이를 미국 곳곳의 포도밭에 전수한 본거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꾸준히 운영해온 웬티 빈야드의 4대째 주인 에릭 웬티(Eric Wente·67)를 수년 만에 다시 만났다. 일본을 들러 말레이시아로 가는 길이었다.
차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리버모어 계곡에 자리 잡은 지 134년째. 한 번도 주인 바뀐 적 없이 웬티 창업자 가족의 4대와 5대째 후손들이 만들어가는 전형적인 가족 경영 포도밭이다. 미국 서부 와이너리들이 몰려 있는 샌프란시스코 북동쪽 나파 밸리 지역의 파 니엔테(Far Niente) 와이너리가 아기자기한 맛의 아름다운 포도밭이라면, 웬티 빈야드는 영지 내 호주의 프로골퍼 그렉 노먼이 설계한 골프장도 갖고 있는 호방한 느낌의 포도밭이다.
작년 미국 와인 작황은 어떠했나.
2015년이 어려운 해였다면 작년 작황은 2013~ 2014년도 평균치로 회복되었다. 날씨 변화가 상대적으로 심했던 유럽에 비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의 와인 작황은 좋은 편이다.
웬티 와이너리의 해외 사업은 어떤가.
현재 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종교적 이유로 와인을 판매하는 데 걸림돌이 있는 지역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와인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는 미국이다. 대략 미국인 20% 정도가 통상적으로 와인을 마신다고 보면 된다. 외국 가운데 웬티 와인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캐나다이고 한국 역시 빠르게 성장하는 와인시장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시도하던 TPP(환태평양파트너십 협정)나 유럽과 미국 간에 논의 중인 TTIP(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 협정) 등을 통해 해외 시장이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TPP 파기 결정은 너무 안타깝다.
비행기 안에서도 웬티 와인을 만난 기억이 있는데.
마케팅 덕분인지, 품질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덕분인지 많은 항공사에서 우리 와인을 찾고 있다. 캐세이퍼시픽, 유나이티드, 노스웨스트, 한국의 아시아나항공 등에 납품하고 있다.
4대째 가족 경영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좋은 점이 있나.
아들과 딸이 와인 만드는 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니 이미 5대째 경영인 셈이다. 손자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전공에 따라 머지않아 6대째 경영이 가능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가족들은 대부분 떨어져 살고 있는데 우리는 3대가 이래저래 사업으로 얽혀 있어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감사할 따름이다.
포도 수확과 와인 제조에 새로운 기술을 많이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포도밭 한가운데에서 바로 포도압축 공정을 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포도를 수확해 처리공장까지 가는 데 걸리는 두 시간을 단축해 15분 만에 현장에서 처리한다. 신선도와 온도 유지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공정이다. 다른 하나는 야간에 포도를 수확하는 과정이다. 캘리포니아 날씨는 저녁에는 매우 선선해 밤 10시경 기온이 섭씨 15도 정도 되었을 때 작업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지역에 따라 야간작업 시간을 조정한다.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포도의 품질관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
포도 재배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햇볕과 물인데, 물 관리에도 새로운 기술력을 동원했다고 들었다.
물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새크라멘토 강에서 수로를 따라 물을 공급하는데 마침 우리 포도밭에는 골프장도 있어 물 사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적 방안을 늘 강구하고 있다. 일례로 적외선 공중촬영을 통해 포도밭과 골프장의 모든 블록에 균등하게 물이 공급되도록 조절한다. 이를 위해 곳곳에 센서 장치를 설치하고 연중 온도와 수분공급량을 측정하여 축적된 빅데이터를 활용, 운용의 최적화를 도모한다.
웬티 빈야드의 샤도네이는 미국뿐 아니라 유렵 지역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데, 풍미는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다. 우리 샤도네이는 미국식, 유럽식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웬티식 고유한 맛으로 평가받고 싶다. 그만큼 대대로 품질 관리에 신경 써왔다고 자부한다.
곧 여름이 오는데 포도밭에서 열리는 음악콘서트 자랑 좀 해보시라.
벌써 30여 년째 운영하고 있다. 매년 7월 중순부터 두 달 동안 10여 차례 콘서트가 열린다. 주로 재즈나 대중음악인데 야외에 무대를 만들고 저녁식사를 겸해서 개최한다. 제임스 테일러, 쉐릴 크로, 링고 스타, 윌리엄 넬슨 등 유명 연주가들이 참여한 바 있다. 얘기 나온 김에 ‘더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포도밭 안에 상주하는 전문가의 감독 아래 유기농 채소밭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한 야채들을 식탁에 바로 올리고 있다.
‘더 레스토랑’의 명성은 한국에도 알려져 있다. 2016년 JTBC 예능 프로그램 샌프란시스코 원정 편에 소개된 바 있다. 에릭은 스탠포드대학을 졸업했다. 아들과 딸도 각각 스탠포드,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부모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온 가족이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와이너리 운영은 영락없이 농부의 일이다. 오랜만에 마주잡은 농부 에릭의 두툼한 손이 믿음직했다.
늘 함께하려고 남편과 혼인서약을 했고 언제까지나 함께하는 줄 알고 살았던 적이 있다. 신혼 무렵엔 남편이 출장만 가도 허전했고 하루만 지나도 보고 싶었다. 요즘처럼 봄꽃이 눈부실 때는 같이 봐야 하는데, 집안 모임에 같이 가야 하는데 하며 남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창밖으로 아스라이 한 점 비행기가 날아갈 때면 그가 보고 싶어져 가슴이 저릿해지기도 했으니 내게도 분명 풋풋한 시절은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든 한가할 틈 없도록 희로애락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예기치 않은 변화무쌍한 일상들이 이어지고, 인간은 도전하듯 주어진 시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런 날들 속에서 아이를 키워내고 일상에 치이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안달도 난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인 줄도 잘 알기에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살아간다.
필자는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면 혼자 해결해야 하는 소소한 일상들이 힘들고 불편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남편의 출장이 은근히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필자 옆에 있어야 세상이 돌아갔는데 이제는 달라진 것이다. 출장 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예뻐 보인다는 말에도 공감이 갔다.
그래도 출장을 떠나는 남편이 내게 주는 것이 자유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주부에게 진정한 자유란, 정신적 홀가분함과 함께 가사노동을 포함한 모든 일에서 풀려날 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이 떠난 후에도 자녀교육이 남아 있고 노동도 여전히 이어진다. 그럼에도 한결 가벼워진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남편의 자리는 큰 만큼 부담스럽기도 했고 인내심도 필요했다. 인내심이 필요 없는 인간관계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물며 평생 한집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인내심보다 더한 마음을 내야 하리라.
남편의 부재가 확인되는 순간 쾌재를 지르며 샐러드 한 접시로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 친구를 만나 고궁도 거닐고 무뎌진 감성으로 밤늦도록 음악을 들으며 가슴 떨리는 시간도 가져본다.
그러나 필자가 꼭 해보고 싶은 것은 한없이 늘어져 있어보는 것이다.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온전히 혼자 있어보는 것. 다용도의 삶을 살아온 내 자신에게 심심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요즘도 난 심심함을 꿈꾼다. 이런 심리를 남편에게도 반영해본다. 출장을 떠나는 그의 마음에도 자유라는 생각이 스며 있을 것이다. 또는 필자와 아이들이 며칠 집을 비울 경우 남편도 혼자 있는 시간을 반길 것이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쳐다보며 “아, 좋은 시간…” 할 것이다. TV 리모컨을 들고 야구 채널과 골프 채널을 돌려가며 보다가 출출해지면 달그락거리며 혼자 라면도 끓여 먹을 것이다.
부부란 몇 번쯤 서로 이런 시간을 꿈꾸다가 결국에는 상대를 그리워하는 존재가 아닐까. 손짓이나 눈빛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읽히는 사이. 함께 쌓아온 시간의 힘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익숙한 관계의 행복을 깨닫는 기회도 된다.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필요해져.”
어린 왕자가 말했듯이, 한 사람의 부재가 전하는 건 그 사람이 내게 큰 의미였음을 알게 하는 시간이다.
동네에 먹자골목이 있다. 길 좌우로 200m 정도 각종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잘되는 집은 손님들이 줄을 서지만, 안 되는 집은 파리만 날리다가 몇 달 못 가 없어지고 다시 다른 업종이 들어오는 일이 반복된다. 한 달에도 몇몇 점포들이 문을 닫고 새로운 음식점이 문을 연다. 개업 화환들이 화려하게 입구를 장식한 개업 음식점들을 보면 희망이 가득해 보이지만, 상례로 보아 몇 달 못 가 또 문 닫을 거라는 예상이 되면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새로 문을 연 호프집 옆에 얼마 안 가 새 호프집이 생긴다거나, 치킨집이 있는데 또 치킨집이 생기면 둘 중 한 집은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치킨게임을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지금의 자영업 시장은 인테리어 업자만 돈을 버는 구조다.
강남의 잘 꾸며놓은 고깃집에 갔었다. 손님보다 종업원 수가 더 많아 보였다. 2층이 경관이 좋아 2층으로 가려고 했더니 2층은 서빙이 안 된다며 그냥 1층에 앉으라고 했다. 넓은 1층에도 손님이 앉아 있는 곳은 몇 테이블 안 되었다. 월세는 꼬박 내야 하는데 이렇게 장사가 안 되니 주인은 속이 바짝바짝 탈 것이다.
손님이 많기로 소문난 강남 대형 쇼핑몰은 젊은이들이나 몰려가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시니어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요리하는 음식점들도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주 가는 쇼핑몰인데도 이런 음식점들이 있다는 걸 몰랐으니 장사가 잘될 리 없다. 시설은 깨끗하게 잘해놓았으나 한창 저녁을 먹을 시간인데도 손님이 얼마 안 되었다.
잠실의 한 삼계탕 집은 한때 손님이 벅적였는데 최근 문을 닫았다. 삼계탕 한 그릇에 1만5000원을 받아 돈을 좀 버는가 했더니 적자라며 문을 닫은 것이다. 겉으로는 손님이 많아 남는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큰 시설을 유지하자니 관리비에 인건비에 카드 수수료까지 떼이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계탕 집을 정리하고 아파트 단지 안에 김밥 등을 파는 분식집을 차렸는데 현금 장사에 손님이 많아 오히려 낫더란다. 음식 값이 싸서 손님들이 부담 없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은 권리금을 내고 점포를 확보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봐야 성공 확률은 10% 정도다. 20~30%는 문도 못 닫고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고, 나머지는 적자란다. 외식 산업 성공률은 매우 낮다. 잘되는 업소라 해도 끝까지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줄을 서다가도 손님들의 취향이 바뀌어 어느 순간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여기에 건물주가 집세를 올리거나 자기가 운영한다며 내보내는 일도 발생한다.
건물주들은 가만히 있어도 해마다 건물 값이 오른다. 현재 금리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그렇다면 집세도 내려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장사가 잘되면 집세를 올리는 건물주도 많다. 자영업자들은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를 쉬지 않고 일한다. 그래야 겨우 살아남기 때문이다. 반면 건물주들은 골프나 치러 다니면서 앉아서 거저 돈을 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세상살이가 쉽다. 하루 종일 일해도 남는 게 없는 자영업자들에 비하면 뭔가 불공평해 보이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이런 정도의 현상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모순은 모순이다. 공평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 보인다. 새 정부가 이런 문제들을 직시하고 합리적인 조정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