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학교에서, 사회에서 배워야 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우리 어머니들, 여성들의 출중한 운동 역사가 있다.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이었던 ‘여권통문’이다. 늦었지만 이 순간 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시는 분들은 참 다행이다.
120년 전, 1898년 9월 1일, 북촌의 양반 여성들이 이소사, 김소사의 이름으로 ‘여학교 설시 통문(女學校設始
우리는 귀촌이라 하면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 안빈낙도의 생활을 즐기는 과정을 떠올린다. 제2인생을 위한 새 출발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령화 사회의 선배라 할 수 있는 이웃 나라 일본은 어떨까? 일본에서는 최근 다거점생활(多拠点生活) 혹은 다거점라이프(多拠点ライフ)가 새로운 귀촌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단어의 의미
귀농·귀촌을 결심하기 전, 원하는 마을을 미리 둘러보게 될 것이다. 이왕 방문을 계획했다면 휴가를 겸해 마을의 명소와 맛집도 두루 즐기고, 다양한 농촌 체험도 맛보기로 해보자. 마을의 자연과 전통문화를 활용해 체험과 휴양 공간을 제공하는 ‘농촌체험휴양마을’에서라면 가능하다. 지 단편적인 사례를 통해 귀촌·귀농의 성패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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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은 아무나 할 수 있을까? 누구나 국제결혼을 할 수는 있으나 법적으로 소득 금액 기준을 충족해야 자격이 있다. 2018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소득 기준 금액은 외국 배우자를 데려왔을 때 구성되는 가족의 수를 기준으로 대략 2인 가구 1700만 원, 3인 가구 2200만 원, 4인 가구 2700만 원 수준이다. 혼자 사는 경우 결혼하게 되면 2
처음에는 귀촌 목적이 아니었다. 꽃향기, 흙냄새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텃밭 하나 장만할 생각이었다. 부부는 사랑에 빠지듯 덜컥 첫눈에 반해버린 땅과 마주했다. 부부는 신이 나서 매일 밤낮없이 찾아가 땅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응답이라도 하듯 땅은 씨앗을 감싸 안았고, 뿌리 깊은 나무는 온몸으로 품었다. 텃밭은 꽤 큰 대지가 됐고, 이후 정자와 살 만한 집도
글 김민혜 동년기자(한국농어촌공사 창녕지사)
자연친화적이고, 느린 삶에 대한 도시민의 소망은 최근 TV 프로그램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설마 귀촌생활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지요? 보통 귀촌에 대한 의견을 부부에게 물으면, 여자 분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도 없고, 놀러갈 곳도 없는 산속 오지에서 어찌 살란 말이오?” 하
충주 땅 변두리 후미진 동네에 사는 너를 찾아간 것은 들판에 황금빛 물결이 일기 시작하는 어느 해 가을이었지. 논에는 벼농사, 밭에는 주로 사과 농사를 짓는 마을. 사과 과수원에는 누런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나뭇가지마다 매달린 사과들은 태양의 후예들인 양 붉은 빛깔로 여물어가고 있었어. 모처럼 찾아온 나를 위해 너는 한 과수원으로 데려가 사과 한 상
현재 한국 농업·농촌에 대해, 이동필(李桐弼·63)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간단하게 ‘전환기’라고 명명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농업 현장인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농부로 일하면서 느낀 솔직한 속내였다. 그러나 그는 전환기 속에서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스스로 돌아보는 ‘마음공부’ 뜨락에 씨앗을
소풍 때만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 엄마와 함께 김밥을 말았다.
김밥 가게가 생겼을 때 ‘과연 이게 팔려?’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소풍날 아침이면 너도나도 김밥집으로 향한다. 흔하디흔한, 빠르고 간편한 먹거리 김밥. 일상 속에서 쉽게 집어 들던 김밥에 형형색색 특별함을 더해 세계 속에 화려한 모습으로 선보인 이가 있다. 바로 ‘김밥 셰프’로 불리는 김락훈(
도시에 살다 농촌으로 삶터를 옮기는 것을 귀농 또는 귀촌이라고 한다. 농촌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농사를 지으러 가는 것은 ‘귀농’이고,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귀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시골을 찾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가는 것보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 이동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터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