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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분 스피치를 연습해두자
- 시니어가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받지 못하고 시쳇말로 “꼰대” 소리를 듣는 가장 큰 이유는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해서다. 어떻게 보면 관심이지만, 잔소리로 들리기에 십상이다. “가능한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고 한 말이 생긴 배경이다.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는 배경은 나이가 들어 잔소리가 늘어나는 이유도 있지만, 평소에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연습을 하지 않아서이기도 한다. 어느 모임에서건 3분을 벗어나면 듣는 사람이 지겨워한다. 말을 재미있게 하면 다르기도 하나 대체로 그렇지 못한다. 얼마 전 새로 만들어진 글쓰기를 하는 모임의 첫 회의에 참석했다. 참석자는 15명이었다. 첫 모임이라 서로를 알 필요성이 있어 진행자가 한 사람이 5분 이내로 자기 소개를 하도록 했다. 15명이라 정확하게 5분을 지켜도 교대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1시간 20분(발표시간 15 x 5 =75분, 교대시간 10분) 정도 걸려야 끝날 수 있다. 모임에서 소개 시간을 그 정도 한다면 긴 편에 속한다. 마지막 사람은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는 꼴이다.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고 정해진 시각을 지키는 사람이 아주 적다는 데 있다. 그날도 역시 15명 중 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대체로 10분 가까이 사용했고 몇 분은 20분을 넘기기도 했다. 진행자가 시간을 줄이도록 신호를 보내도 막무가내였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여성이 길었다. 참석자 중에서 나이가 가장 젊은이는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스마트폰의 스톱워치를 켜놓고 시작하여 제시간을 지키는 치밀함을 보여주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또, 한번은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13분이 참가한 공동 저서였다. 작가별로 발표시간이 주어졌다. 출판기념회라 축하 손님도 많이 참석했다. 작가들의 이야기 시간이 너무 길어져 참석자들이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 내용 또한 출판기념회 참여 작가로서의 내용을 벗어난 분야를 넘나들기도 하고 불필요한 내용 등으로 어수선한 시간이 되었다. 작가들의 이야기 시간이 너무 길어져 예정 시간을 1시간 정도 넘겨 끝났다. 저녁 시간대라 끝나기 전에 축하객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떴다. 한 분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인지 5분에 맞게 종이에 글로 써와 낭독하여 다른 측면을 보여주었다. 왜, 그렇게 길게, 또 중구난방식이 될까?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준비를 하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는 점을 큰 이유로 들고 싶다. 앞의 예에서 보면 모임이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여 이야기해야 하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거기에 적정한 이야기 구성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싶다. “대충 이야기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갖고 참석해서다. 나이가 들면 으레 금방 한 말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 말을 반복하거나 목적에 맞지 않는 말을 하게 되고 시간 또한 염두에 두지 않게 된다. 3분 스피치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고 말을 해야 할 줄거리를 미리 만들어 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3분은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다. 이를 닦는 데 가장 적정한 시간이 3분이나 3분을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음과 견주어 보면 이해가 된다. 가요 1소절을 부르는 데도 3분 내외가 걸린다. 노래를 부르듯 기승전결(또는, 서론 본론 결론) 3분 스피치를 연습해두자.
- 2017-12-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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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 계발, 자기 경험에 덧칠하기
- 은퇴한 시니어의 가장 큰 자산은 시간이다. 시간 부자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많아도 일상이 무료하다면 고통의 순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장수도 축복이 아니고 재앙으로 다가온다.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면 여가를 즐기는 삶으로 바꿔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취미활동을 들 수 있다. 취미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필자는 손쉽게 취미를 계발하는 방법으로 ‘덧칠하기(Micro Adventure)’를 권하고 싶다. ‘덧칠하기’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일상의 습관이나 관심 가진 분야를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등산이 취미였던 분이 산삼을 연구해 산을 즐기면서 산삼을 캐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필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에 수채화를 그렸다. 그 경험을 살려 60세에 사진을 배움으로써 평생 취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과 관련한 영역을 확대해 하루를 25시로 산다. 과거의 경험에 덧칠을 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용돈도 벌고 사회공헌도 하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삶을 즐긴다. 사진은 취미라기보다 일상생활로 바뀌어가고 있어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어떤 취미보다 돈이 적게 들면서 새로운 직업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특히 돈이 드는 취미에서 돈이 되는 취미를 계발할 필요가 있는 시니어에 꼭 맞는다. 물론 경우에 따라 돈이 많이 들기도 한다. 장비 구매와 사진 촬영지 여행 비용 때문이다. 그러나 늘 휴대하는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찍을 수 있고 일상에서 사진 소재를 찾을 수도 있어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훌륭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다. 필자는 저렴한 카메라(일반인이 손쉽게 살 수 있는 보급기로 렌즈 포함 50만원 주고 산 중고품을 지금도 쓴다)를 사용하고 요즘엔 스마트폰을 주로 이용한다. 전시회용 작품을 만들거나 취미활동용으로 부족함이 없다. 사진 재능기부와 사진 기술을 전수하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전혀 지장이 없다. 장애인 시설이나 양로원 등에서 사진 촬영 봉사를 하고 실버대학 등에서 어르신들에게 사진 지도를 하며 보람을 느낀다. 사진 촬영이 필요한 곳이면 발걸음을 아끼지 않는다. 혹자는 필자에게 “돈도 안 되는 일 그렇게 힘들여 봉사하느냐?”고 하지만 재능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취미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공인 사진작가가 된 필자는 이제 사진으로 돈을 버는 직업인이 됐다. 또한 취미활동이 바탕이 되어 KBS1 을 비롯한 여러 방송 프로그램과 SBS 라디오에 출연하며 방송인이 되었다. 동년기자 선임과 명예기자도 사진이 근간이었고 글을 쓰면서 원고료도 받는다. , , 등 사진과 관련한 책 세 권도 출간했다. 또한 사진 취미생활을 통한 여가생활의 본보기가 되면서 여가설계 강사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강사료를 받는다. 취미에 머무르기만 하면 성장이 없다. 어떠한 취미를 선택하더라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도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필자도 처음에는 단순한 취미로 시작했다. 당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더 좋은 사진을 글에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고양시 일산동구청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사진교실에 참가하게 됐다. 60세의 늦깎이였고 카메라 장비는 소형 카메라 하나였다. 촬영 경험도 많지 않았다. 고급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동호인들을 볼 때 주눅이 들기도 했으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형편에 맞는 카메라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 했듯 공인 사진작가가 되어보자는 욕심이 생겨 사진을 배운 지 3개월 후부터 공모전에 출품하기 시작했다. 잘될 리가 없었다. 28번의 도전 중 절반을 낙선하고 15번 수상해 사진작가 인증을 받았다. 그 후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사진을 배운 지 3년이 되던 2013년에 대한민국사진대전(국전)에 입선하고 부산일보 전국사진대전에서도 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작가가 되는 길은 많다. (사)한국사진작가협회가 인정하는 공모전 출품으로 얻어지는 점수가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사진작가 명함도 만들 수 있다. 사진 전문가가 되면 다양한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 전시회를 열어 작품 판매도 할 수 있다. 향후 작품에 대한 가치도 높일 수 있다. 사진 갤러리를 중심으로 하거나 프로필 사진과 가족사진을 촬영해주는 카페 운영, 사진관 운영, 사진 여행단 운영을 할 수 있다. 수요가 많은 사진 강사로 데뷔할 수도 있다. 전문가는 자기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다. 필자는 사진작가 인증에 그치지 않고 계속 공부하고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사진을 배운 지 벌써 8년째에 접어들었고 찍은 사진도 50만 장에 이른다. 사진을 찍다가 파파라치로 몰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고 강화도 군부대 옆에서 석양을 촬영하다 주민의 신고로 경찰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선택한 취미생활을 오래 할 수 있고 제2의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남이 권유하는 취미나 유행하는 취미를 선택하면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분야에 집착하기보다는 평소 관심을 가져왔던 취미가 좋다. 어린 시절에 즐겨 했으나 생업으로 미뤄뒀던 취미를 끄집어내 덧칠하면 평생 취미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영국의 모험가 제임스 후퍼가 제안한 ‘덧칠하기’다. 필자는 은퇴 후에 수채화를 그리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 꿈을 덧칠해 사진으로 바꾼 셈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3년 정도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에 몰입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필자는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사진 기술과 취미생활 계발을 선도할 ‘청학빛그림학교’를 꿈꾸고 있다.
- 2017-11-29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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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중년ㆍ신중년을 위한 ‘액티브시니어페어2017’ 개최
- 시니어를 위한 ‘액티브시니어&수면케어박람회 2017(Active Senior & Sleep Care 2017)’이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다.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력 있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액티브시니어박람회’는 제2 인생 설계를 위한 국내외 유망 관련 산업을 소개한다. 이는 국내 최초로 개최되는 시니어 전문 박람회로 레저/여가, 힐링, 리빙, 뷰티, 취미/토이, 금육, 교육, 의료서비스, 스마트가전 등 관련 산업 전반의 다양한 참가업체를 만날 수 있다. 함께 진행되는 ‘수면케어박람회’에서는 수면보조침구 및 용품, 보조기기, 수면의료, 수면식품/약품, 숙면테라피/케어 등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현대인의 수면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와 방안을 제시하는 전시품이 출품된다. 다양한 부대 행사도 진행된다. 시니어가 펼치는 패션쇼 ‘서울시니어컬렉션’에서는 3가지 주제를 가지고 3일간 화려한 쇼를 펼칠 예정이다. 건강하고 활기찬 시니어를 위한 행사로 사단법인 한국액티브시니어스포츠협회가 ‘협회장배 액티브 시니어 뉴스포츠 최강전’을 개최한다. 3일에 걸쳐 스포츠스태킹최강전, 셔플보드최강전, 한국최강전이 열리며 대한민국 50대 이상 남, 여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요가 전문 업체 나디아요가는 건강한 삶을 위한 요가강좌, 시연회, 요가 관련 용품을 선보인다.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령인구의 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50년에는 노령인구의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노령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들 중 자산과 소득 수준이 높아 능동적인 소비 주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마케팅이 활발한 추세다. 이번 박람회에는 250여 개 국내외 기업이 참가 예정이며 관객참여 이벤트, 다양한 시현 행사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2017-10-1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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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모의 기술
- 블로거들에게 글을 쓸 때 가장 많이 권장되는 말이 ‘메모를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글감을 찾기 위해서이다.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는 현상이 시니어들의 대표적 노화 현상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뭘 꺼내려고 열었는지 멍할 때가 있다. 통장 번호는 그렇게 오래 썼는데도 아직도 못 외운다. 책을 다 보고 나서 뭘 읽었는지 백지 상태가 될 때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제목이 생각 안 나는 경우도 있다. 배우 이름은 아예 기억하기를 포기한다. 술자리에서 얘기하다가 좋은 글감을 캐치했는데 그 당시에는 좋은 글감이라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말까지 해 놓고 다음 날 술이 깨면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메모는 그래서 중요하다. 기억을 보존해주는 방법이다. 이젠 메모에 의존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일본 사람들은 메모 열심히 하기로 소문 나 있다. 책방에서 ‘메모의 기술’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사카토 켄지라는 사람이 쓴 책이다. 메모가 그냥 메모일 뿐이지 한권의 책으로 만들만큼 무슨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해서 샀다. 천하의 아이슈타인도 자기 집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해 수첩에 적어 두었다고 한다. 기자가 의아해서 물었더니 “수첩을 보면 간단하게 전화번호를 찾을 수 있는데 굳이 외우고 다닐 필요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대뇌과학자들은 ‘손은 제2의 뇌’, ‘손은 밖에 나와 있는 뇌’라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손으로 하는 것이 훨씬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악기 연주나 요리, 도예 활동 등이 뇌 활동에 도움을 주고 메모를 하는 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는 일도 뇌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요즘은 정보가 너무 많아 과부하증에 걸리기 쉬운데 그렇게 되면 거부증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를 쾌적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뇌의 용량을 비워두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그것을 메모가 보충해주는데 ‘메모는 잊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반면에 잊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해석이다. 메모의 기술은 메모를 습관화 하라고 한다. 항상 메모하라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메모를 열심히 하더라는 것이다. 언제나 메모를 할 수 있도록 작은 수첩과 볼펜을 가지고 다니라고 하는데 요즘 같으면 스마트 폰 메모장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메모는 자주하는 편인데 가끔 나중에 보면 메모의 내용이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메모가 좀 더 자세히 되어야 하는데 너무 간단하게 해 놓았기 때문이란다. 메모가 귀찮으면 녹취를 하는 방법도 있다. 스마트 폰에 녹음 기능이 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녹음한 시간만큼 다시 들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치매에 걸린 남자는 수시로 녹음을 해서 자기가 한 행동을 녹음시켜 놓는 장면이 나온다.
- 2017-09-2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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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장의 노인 유품 뭉칫돈
- 일본 NHK가 보도한 바에 의하면 지난해에 쓰레기장에서 주었다고 신고한 금액이 우리 돈으로 약 1900억 원 정도 된다고 한다. 혼자 살면서 장롱 속에 보관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뭉칫돈이라는 것이다. 신고하지 않은 금액은 더 많을 것이다. 상속받을 사람이 없어 국고로 귀속된 금액도 400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KBS 보도로 우리나라도 고독사로 추정되는 죽음이 연간 1만 건이 넘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왜 뭉칫돈을 은행에 안 넣고 장롱 속에 보관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만한 돈이 있다면 쓰다가 죽어야 하는데 다 쓰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노인이 되면 사실 돈 쓸데가 많지 않다. 기껏해야 친구들 밥이나 사고 친척 손주들 용돈이나 주는 정도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쓰는데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시니어들을 보면 이미 갖고 있는 재산이 많은데도 돈 벌 궁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돈 벌던 습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만 해도 큰돈이지만, 이미 갖고 있는 재산은 돈으로 안 친다. 더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갈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금은 없단다. 그러니 하우스 푸어인 셈이다.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에게 밥 한 끼 살 만도 한데 그러지 못하는 부자들도 많다. 현금은 아내가 갖고 있어서 쓸 권한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막상 돈 쓰는 데는 인색하다. 안 써 봐서 그렇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시니어들은 돈을 모을 줄만 알았지, 쓰는 교육에 대해서는 받은 적이 없다. 선진국처럼 기부문화가 발달한 것도 아니다.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하는 행사에 일부 기부하는 것도 서툴다. 모은 돈을 기부하는 것은 아깝고 미리 자녀들 주자니 대우를 못 받을 것 같다. 그러니 뭉칫돈을 가지고 있다가 쓰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고독사 문제도 나름대로 사회 안전망이 잘 되어있다는 일본이 그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더 열악할 것이다. 전기나 가스, 수도 사용량으로 점검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완전하지 않다. 필자가 한 때 장애인 아파트에 살 때, 관리실에서 겨울철인데 전기요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며 점검을 받으라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우편함에 꽂혀 있는 다른 집 고지서를 보니 거의 제로에 가까운 집들이 많았다. 엄동설한에 난방, 온수를 전혀 쓰지 않는 집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그것도 안전망 구실을 못한다. 필자도 해외여행이나 부득이한 일로 스마트 폰 연락이 안 되면 혹시나 무슨 사고 가 있지 않나 걱정하게 된단다. 그래서 해외여행 등의 사유가 생길 때는 미리 밴드나 카톡으로 연락을 해둔다. 필자는 월간지도 여러 개 보고 있고 일간 신문도 두 가지나 보고 있어 집 앞에 잡지, 신문이 쌓이면 이상하게 볼 것이다. 그래서 해외여행 갈 때는 일정 기간 동안 신문을 넣지 말고 돌아오는 날 몰아서 넣어달라는 휴독 신청을 해둔다.
- 2017-09-1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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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주 KBS 아나운서, 하루를 여는 <행복한 시니어>로 일상의 행복을 나누다
- 흔히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고 한다. 멀뚱멀뚱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기도 하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려보지만 세상은 아직 단잠에 코골이 중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일찍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다정한 목소리가 있다. “안녕하세요. 박영주입니다.” KBS 1라디오 의 박영주(朴英珠·57) KBS 아나운서가 그 주인공이다. 매일 아침 97.3MHz의 라디오 주파수를 타고 들려오는 그녀의 모닝콜은 전국 방방곡곡 시니어 애청자들에게 비타민주스처럼 신선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새벽 4시, 평범한 사람이라면 침대에 누워 여전히 어제의 꼬리를 붙잡고 있을 법한 시간이다. 그러나 이토록 이른 시각에도 활기찬 하루의 포문을 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의 애청자들이다. 상냥하고 은은한 박영주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덩그러니 놓인 새벽의 허전함을 사뿐히 채운다. 이미 애청자들과 끈끈한 교감을 이루고 있지만, 방송을 놓치고 있을 이들을 위해 박 아나운서에게 직접 소개를 부탁했다. “새벽 4시부터 4시 40분까지, 시니어를 위한 종합 매거진 프로그램입니다. 새벽잠은 없고 그 외로움과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분들이 이 프로그램을 듣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라는 이름으로 방송했어요. 청취자 층을 50대까지 확장하려는데, 그들을 실버라 부르긴 어울리지 않아 ‘시니어’를 사용하면서 가 됐죠. 이름이 바뀌고 얼마 뒤에 제가 진행을 맡아 3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건강, 추억의 음악, 영화 그리고 한시까지 새벽 프로그램인지라 다소 밋밋하게 흘러가리라 예상했다가 코너 편성표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9988 치매완전정복’, ‘행복밥상’, ‘낭독으로 읽는 고전소설’, ‘유성기로 듣는 우리 음악’, ‘그 시절 그 노래’, ‘추억의 영화’, ‘꿈꾸는 책방’ 등 건강을 비롯한 문화 전반에 대한 14가지의 콘텐츠가 한 주를 가득 채운다. 그녀가 소개한 ‘종합 매거진 프로그램’이라는 문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매일 리포트와 더불어 두 가지의 주제를 40분 동안 꾹꾹 눌러 담아 들려주니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다. 거기에 친근한 박영주 아나운서의 목소리까지, 그야말로 빈틈이 없다. 그중 청취자들의 반응이 가장 좋은 코너는 무엇일까? “치매에 관한 정보 제공과 상담까지 해드리는 ‘9988 치매완전정복’이 반응이 좋아요. 또 ‘한시 산책’을 선호하는 분들도 많고요. 요즘 젊은이들은 한자를 잘 모르지만, 시니어 세대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한자를 다 배웠잖아요. 다들 그런 향수가 있는데, 일반 방송에서는 잘 안 다루죠. 그런 주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각양각색 코너를 마련하는 데 제작진을 비롯한 진행자의 노고도 상당할 터. 여느 교양 프로그램 못지않은 탄탄한 구성은 시니어 청취자를 향한 그들의 깊은 고민에서 비롯됐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제작진과 함께 논의해요. 우리 작가는 20여 년 문화 쪽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는데, 나와 또래도 비슷하고 취향도 잘 맞아요. 그래서 문화에 관해서는 속속들이 다 다룬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책, 음악, 영화, 시, 소설 등 미술이 빠지긴 했는데, 아무래도 라디오라서 미술이 지닌 시각적 요소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에요.” 평소 일주일에 두 번은 영화를 보고, 한 달에 두세 번, 많게는 대여섯 번 음악회, 발레, 오페라 등을 즐긴다는 박 아나운서다. 그녀의 폭넓은 문화적 소양과 더불어 어린 시절 추억은 다채로운 코너 구성에 힘을 실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급 배정을 받아 교실에 가보니 담임선생님께서 커다란 전지에 윤동주의 ‘서시’를 써서 붙여놓으셨어요. 매일 조회, 종례시간이면 ‘차렷, 경례’를 하고 그 시를 다 함께 낭송하곤 했죠. 한 달 동안 매일 하나의 시를 외우다시피 읊다가, 다음 달이 되면 또 다른 시를 그렇게 써놓으셨어요. 그 순간이 굉장히 좋았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죠. 그렇게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에 시가 넘쳐나면 보다 더 좋은,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시’ 코너를 넣게 됐어요. 그건 제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코너라 남다른 애착이 있죠.” 사연 속 사연이 담긴 ‘부모님 전 상서’ 요일별 달라지는 코너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토요일 방송분인 ‘부모님 전 상서’다. 청취자가 부모님께 띄우는 편지를 성우가 낭송하는 시간인데, 매주 애잔하고 감동 어린 이야기로 많은 이의 가슴을 적신다. “부러웠던 사연이 있어요. 주인공이 어린 시절 동네에 전염병이 퍼졌는데 아무도 그 시신을 거두지 않아 아버지께서 홀로 수습하시다가 결국 전염병에 걸려 돌아가셨대요. 비록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자녀들의 우애가 대단했죠. ‘의좋은 삼 형제’라고 불렀는데, 큰형이 나무를 하면 꼭 두 동생의 집에 몇 단씩 놓고 가고, 작은 형이 시장에서 뭘 사면 그것을 셋으로 나눠 형과 아우의 집에 주고…. 결혼해서도 윗집 아랫집 다 같이 살았죠. 그러고도 아쉬워서 나란히 묻힐 곳을 마련하고 묘비명도 미리 써두었다는 거예요. ‘우리 삼 형제는 한평생 함께 살면서 우애를 나눴는데 그 정을 두고 가기 아쉬워, 밤하늘의 별을 보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이야기를 나누고자 여기 나란히 묻힌다. 후세들도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억하며 잘 지내라.’ 그런 이야기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들으신다면 얼마나 뿌듯하실까요. 참 부러운 마음으로 사연을 소개했어요.” 이 코너는 편지의 내용에서 오는 감동뿐만 아니라, 편지 그 자체에서도 특별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스마트기기의 발달로 휴대폰 문자로도 라디오 사연을 받는 요즘, 의 청취자들은 젊은 시절 라디오 사연을 보냈던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정성 어린 손편지를 보내온다. 한평생 일하던 회사에서 쓰던 누런 갱지, 신문지 사이에 들어 있는 광고지 뒷면, 아들의 회사 로고가 찍힌 기안용지 등 빳빳하고 깨끗한 종이가 아닌 저마다의 알뜰함이 묻어나는 편지지가 인상적이다. 또 한글을 잘 몰라 구술을 해서 아들이 대신 적어 보낸 편지부터, 할아버지가 늘 하는 이야기를 타이핑해서 사연으로 보낸 손주, 손에 힘이 풀려 삐뚤빼뚤 쓰인 필체 등 그들이 보낸 사연에는 또 다른 사연이 담겨 있다. 청취자를 위하여, 그리고 청취자로부터 온기 어린 사연들만 보아도 어딘가 모르게 시니어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듯, 청취자의 특징이 드러나는 몇 가지 귀여운(?) 오해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을 가볍게 넘기기보다는 청취자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개선하고자 노력한다는 박 아나운서다. “우리 방송 이름이 ‘행복한 시니어’인데, 어떤 청취자께서 사연을 보내면서 ‘행복한 신녀’라고 써서 보내셨더라고요. 아마 ‘선녀’처럼, ‘신나는 여(女)’ 이런 식으로 의미를 생각하신 모양이에요. 우리는 당연히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모를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려 해요. 또 제 이름을 ‘백영주’라고도 하고, ‘박영희’라고도 하고, 청력이 약해지셔서 그런 건데 더 또박또박 말씀드리려고 신경 쓰고 있죠. 가끔 리포터가 현장에 나가 청취자를 만나면 (코너가 많다 보니) ‘박영주 아나운서가 참 똑똑하다, 어떻게 그 많은 것을 아느냐’고 칭찬하신대요(웃음). 그러면 작가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해드리곤 하죠.” 그 외에 대표적으로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새벽 4시 생방송 진행으로 안다는 것이다. 대체로 라디오는 생방송이지만, 새벽 시간대 방송의 경우 사전 녹화로 만들어진다. 박 아나운서가 실제 방송을 녹음하는 시각은 오전 9시 출근시간 이후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벌써 33년째 KBS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몇 년 후면 은퇴를 맞이하게 될 박 아나운서에게 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1985년에 입사해서 초창기에는 TV 프로그램을 많이 했죠. 15~20년쯤 지나면 TV 프로그램은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시니어 아나운서들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주력하게 돼요. 이제 퇴직이 4년이 채 안 남았는데, 선배들도 그랬고 아마 이 프로그램을 하다가 떠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젊어서 한참 아이 키우고 할 때는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거든요. ‘음미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이 있죠. 이제는 상당 부분이 온전히 나의 시간이거든요. 일상의 성찰도 있지만, 지난날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참 많아요. 아주 느린 호흡으로 참되게 나를 위해 집중해서 살 수 있는 시간을 복되게 가꿔나가 보려고요.” 현재도 시간을 내서 사단법인 ‘공감인’에서 진행하는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의 집단 치유 프로그램 치유활동가로 활약하는 그녀는 은퇴 이후에도 이를 유지하며 시각장애인 녹음 봉사자 교육 등에도 힘쓰고 싶다고 했다. 또 한 가지, 곁에 계시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도 늘릴 계획이다. 이러한 다짐에는 ‘부모님 전 상서’ 코너가 교훈이 됐다. “부모님은 늘 거기 계시고, 당연히 뒷바라지해주는 분들로 여겨왔는데, 이 코너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여러 사연 속 공통 메시지는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뵀더라면, 식사 한 끼 함께할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는 거예요. 저는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그걸 할 수 있는 처지거든요. 원래는 냉랭한 딸이었는데, 가능하면 더 자주 찾아뵙고, 더 살갑게 하려고 노력하죠.” 행복한 시니어, Just Do it! 는 청취자들의 노후뿐만 아니라 다가올 박 아나운서의 노후까지 행복으로 이끌어가는 듯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행복한 시니어’는 어떤 모습일까? “글쎄요, 사람들은 행복을 어떤 특별한 상태라고 생각해요. 여행할 때, 친구와 대화할 때, 좋아하는 활동을 할 때 행복을 느끼죠. 그런데 진짜 그럴까요? 춤출 때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가 춤을 출 때는 단지 춤추고 있고, 춤에 몰입해 있을 뿐이에요. 그럼 정확하게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춤을 추고 나서 아닐까요? 그건 이미 춤을 추는 행복에서 벗어난 상태죠. 궤변 같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행복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요. 삶은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고, 아마 삶이 끝나는 순간에는 ‘아! 그래도 행복했구나’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니 지금 ‘살아 있다면’ 행복한 시니어가 아닐까 해요.” 끝으로, 의 청취자와 독자를 위한 응원의 한마디를 부탁했다. 영화 마니아답게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한 영화 의 대사를 언급했다. “영화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네가 신에게 이 난국을 헤쳐갈 용기를 달라,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을 달라고 기도했을 때, 신이 과연 어떤 형태로 용기와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용기? 사랑? 그게 뭔데? 네가 행동을 하면 거기에 용기가 얹어진다. 또 네가 작은 호의를 베풀었을 때 거기에 사랑이 얹어지는 거다. 신이 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무언가를 했을 때 생겨나는 것이 용기이고 사랑이다.’ 나이 들면 뭔가를 하려다가도 못할 이유와 핑계를 찾거든요. 그럴 땐 그냥 무엇이든 일단 해보셨으면 해요. 무언가를 했을 때 거기 길이 있고 답이 얹어질 거예요. 자신을 믿고 저질러보세요. 저스트 두 잇(Just do it)!” >박영주 아나운서 KBS 11기 아나운서로 입사이후, KBS 제3라디오 , , KBS 1TV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과 만났다. 현재는 를 진행하며 KBS 편성본부 KBS한국어팀 팀장을 맡고 있다.
- 2017-08-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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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듣는 얘기야!”
-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할 때가 있다. 하얀 거짓말을 하는 경우와 같다. 인간관계는 대화가 주요 수단이다. 상대방이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마음 씀씀이가 필요하다. 분위기를 돋우기 위하여 어떤 유머를 하면 개중엔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거 알고 있는 이야기야!” 말을 한 사람은 맥이 풀리고 만다. 필자는 스마트폰 카메라 사진 강의를 한다. 어느 분이 쉽게 사진 편집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래서 상대방이 알아주면 좋은 유용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 듣지도 않은 채로 유사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자기도 할 줄 안다며 시큰둥해하는 눈치였다.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앞의 예와 같은 사례다. 요즘은 유머가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재미있는 총각이 인기 있는 신랑감이듯 일상 대화에서도 웃음을 주는 내용이 곁들여져야 한다. 유머 두서너 개는 외우고 있으면서 순발력 있게 쓸 수 있으면 좋다. 작은 수첩에 빼곡히 적어 다니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유머를 잘 구사한다. 때로는 오래된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이용할 때도 있다. 어지간한 우스개는 거의 알고 있기 마련이어서 상대방은 재미없어한다. 지나간 유머를 사용하면 당연히 관심을 두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 유머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큰둥하며 팔짱을 끼기 마련이다. 그것을 때때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사는 것 자체가 노력이듯 삶의 모든 분야에서 향상이 요구된다. 인생 2막을 위해서 끊임없이 학습하며 2차 성장을 하듯 대화의 소재도 새로움으로 충전시켜야 한다. 자신의 내부 저장소에 쌓인 경험과 지혜의 활용도 있어야 하지만, 새로움으로 채워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즐겨보는 코미디 프로그램 방송을 시청해두면 도움이 된다. 반면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적극적 자세도 필요하다. 자기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기를 바라듯 다른 사람의 말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자세가 절실하다. 나이가 들면 대체로 자기의 이야기에 더 열을 올리기 십상이다. 가끔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처음 듣는 얘기야, 재미있네!””라며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하기도 한다. 좋은 반응인 맞장구를 치는 일이고 영어 표현으로 “리액션”이다. 이야기한 상대방을 배려해서다. 대화를 잘하는 기법의 하나가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듣는 것이고 적극적으로 반응을 더하면 금상첨화다. 어느 유명한 분을 모실 기회가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열심히 경청만 하였다. 가끔 맞장구를 쳐 드린 것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참 대화를 잘하십니다.”라고 칭찬을 남겨주고 자리를 일어났다. 잘 듣는 것이 첫 번째의 대화기술이고 내용을 설사 알고 있다손 치더라도 처음 듣는 것처럼 시늉할 필요도 있다. 시니어에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 2017-08-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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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의 무기력증
- 체력 저하 때문인지, 환경 탓인지,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인지, 요즘 시니어들 중에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몸이 늘어진다는 것이다. 모임에도 안 나오고, 기껏 약속을 해놓고도 막상 그날이 되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약속을 펑크낸다. 질책을 하면 힘없는 목소리로 무기력증 같다며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무기력증의 가장 큰 증상은 체력 저하다. 날씨도 덥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니 기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아침에 몸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나잇살로 군살이 여기저기 늘어나 살도 빼야 하는데 입맛이 없어 못 먹으니 에너지 공급도 빈약해진다. 움직이기 싫고 땀나는 것도 싫어 운동을 안 해 체중만 더 늘고 근력은 떨어진다. 30세가 넘으면 근육이 매년 1%씩 감소하고 여성들은 폐경 후 5년 만에 골밀도가 50%나 떨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이래저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다. 호르몬 변화 때문이다. 신나는 일도 없고 낙도 없다. 배우자 하는 짓을 봐도 한심하고 위안도 안 된다. 밖에 나가면 저 잘났다며 설치는 사람들이 시끄럽기도 하고 보기도 싫다. 가족 중에 누군가 지병으로 누워 있거나 치매 걸린 노부모가 속 썩이면 스트레스도 쌓인다. 무엇보다 희망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좋은 일도 없고 즐거운 일도 없으며 기대할 일도 없어서 삶이 재미없다는 것이다. 거울을 봐도 자신의 모습에서 더 이상 성적인 매력을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이 더욱 슬프다. 나이 든 사람들이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이유다. 혼자라면 무기력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독립가구가 늘면서 혼자 사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애완동물이라도 기르면서 살면 도움이 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다. 공동 주택이니 옆집 눈치도 봐야 하고 사료 값이며 배변 처리며 뒷바라지에도 손이 많이 간다. 어떤 사람은 아예 연락을 끊고 잠수하기도 한다. 한동안 스마트폰을 꺼버리는 것이다. 혹시 변고라도 당한 것 아닌가 한바탕 소동을 치른 후 물어보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랬다고 한다. 이런 무기력증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결국 혼자 찾아야 한다. 먼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긴다. 시작은 우선 잘 먹어서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잘 자야 한다. 그다음에는 운동 겸 기분 전환을 위해 가벼운 외출을 한다. 영화관도 좋고 경치가 좋은 야외 산책도 좋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섞여도 본다. 그렇게 지인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면 조금이라도 활력을 찾을 수 있다.
- 2017-07-3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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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도 수업도 필요 없다, 책 한 권으로 즐기는 ‘컬러링’
- 시니어들에게 그림은 대중적인 취미생활 중 하나다. 누구나 한 번쯤 가졌던 학창 시절의 꿈을 떠올릴 수도 있고, 특별히 이젤을 들고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스마트폰 사진 한 장 보며 실내에서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시작이 어렵다. 이미 굳을 대로 굳어버린 손으로 새로운 기술을 익힌다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주는 취미 분야가 있다. 바로 몇 년 전부터 저변을 넓히고 있는 컬러링.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 하는 시니어들이 혼자서 하기 안성맞춤이다. 컬러링은 말 그대로 채색을 의미한다. 이미 그려져 있는 밑그림에 색을 입히는 것. 마치 어린아이들의 색칠공부와 같이 단순한 작업으로 여길 수 있지만, 마니아들의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예술작품과 다를 바 없다. 색연필 하나로 부리는 마법 컬러링북 채색에 쓰이는 도구는 일반적으로 건식 재료들이 널리 쓰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색연필. 주변에서 구하기도 쉽고 초보자가 다루기도 가장 간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채화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수채색연필도 많이 쓰인다. 동호인들은 색연필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로 휴대성을 꼽는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동용보다는 60색 이상의 색연필을 사용해야 표현이 자유로워진다고 조언한다. 이외에 라이너나 마카, 고체물감 등의 도구도 컬러링에 사용된다. 각 도구들마다 발색과 보존성, 표현력의 차이가 커 주제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주제에 따라 쓰임새 다양한 컬러링북 정해진 도안에 색을 입히는 과정이 지루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림의 주제와 용도가 다양한 컬러링북이 시중에 출간되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메신저 속 캐릭터부터 세계 주요 도시, 국내 유명 관광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컬러링북들도 나와 여러 여행지를 간접경험하게 해준다. 역사나 해부학 같은 학문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컬러링북도 있다. 이와 관련한 밑그림을 색칠하는 것만으로 공부가 된다. 채색을 끝내고 선물로 활용할 수 있는 컬러링북도 있다. 전래동화의 장면들을 채색하다 보면 손주를 위한 유용한 동화책이 완성되기도 한다. 또 엽서를 묶은 형태의 컬러링북도 있어 지인들에게 색다른 선물을 하고 싶을 때 활용할 수 있다. 시니어 취미생활에 딱 맞아 특히 최근에는 보태니컬 아트와 접목된 컬리링북의 인기가 뜨겁다. 보태니컬 아트는 원래 각종 식물을 기록하는 도감을 제작하기 위한 그림으로 출발했는데, 유럽 등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식물 일러스트레이션, 꽃 드로잉, 식물 세밀화 등의 고유한 화풍으로 발전되어왔다. 국내에선 일부 작가를 통해 조금씩 소개되어오다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국내 동호인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지면서 몇 년 전부터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컬러링북 소재로도 널리 활용돼 해외 작가의 책들뿐만 아니라 국내 작가의 저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를 집필한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이해련 강사는 “컬러링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그림에 재미를 붙이고, 요령을 터득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입문 과정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또 그는 “보태니컬 아트와 컬러링 모두 시니어들에게 딱 알맞은 취미로 해외 아티스트 중 상당수는 고령자들이고 실제로 수강생들 중 은퇴자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정해진 도안에 색을 입히는 과정이 지루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림의 주제와 용도가 다양한 컬러링북이 시중에 출간되어 있다.
- 2017-07-2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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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이상희 헤어팝’ 이상희 원장
- 그녀는 뽀얗고 하아얀 뭉게구름 같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색다르고 기발한 발상이 피어오른다. 집중해서 듣자니 성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이상희 헤어팝’의 이상희(李相熙·56) 원장. 직업은 미용사인데 그녀 인생에서 봉사를 뺀다면 삶이 심심할 것만 같다. 손에 익은 기술을 바탕으로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니 말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란 말에 백만 개의 하트풍선이 ‘뿅뿅’ 터지는 그녀의 환한 얼굴과 마주했다.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루하루가 감사한 사람입니다 “지금도 하루하루가 감사해요. 저는 되게 감사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감사’라는 단어를 꺼낸다. 열 손가락이 성한 가운데 기술을 배운 것도, 그 기술을 가지고 다른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서 감사하단다. “미용기술을 배울 때 돈만 벌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한 달에 네 번 봉사를 간다면 나머지 시간은 봉사를 가기 위해 미용실에서 일하는 시간이라 생각하거든요. 제 이름이 서로 ‘상’에 빛날 ‘희’거든요. 말 그대로 상희답게 사는 거죠.” 어려운 이들을 만나면 뭔가 해줄 수 있어 좋고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후배들이 잘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이상희 원장을 만난 것은 5월 말. 본인 스스로가 정한 인생의 안식년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미용실을 계속하면 쉴 수 없겠더라고요. 원래 하던 넓은 미용실을 4월 30일까지만 하고 5월 1일 철거했어요. 저와 오래 일했던 디자이너들이 일할 곳을 마련해 지금의 아파트 상가로 옮겼어요. 이성적으로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일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철거하던 날 잠이 안 오더라고요. 안식년이라 해도 두 손 다 노는 게 아니라 그런지 다음 날부터는 잠이 너무 잘 왔어요.” 그런데 그 안식년이란 것 말이다. 대부분 휴식을 염두에 두고 설계를 한다. 이상희 원장은 그 하고 싶다던 일(?)에 더 빠져보려 미용실 운영 대부분을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맡겼다. 벌여놓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 당장 앞두고 있었던 새터민 결혼식에 피부 관련 사업, 매달 있는 봉사, 새로운 봉사, 미용인의 처우 개선 등 쌓이고 쌓인 일을 보니 이게 안식년인가 싶다. 봉사와 업(業)이 하나인 인생을 구상하다 전라북도 정읍 출신인 이상희 원장은 성공하려고 미용계에 입문했다. 미용실에 갔더니 기술을 배우면 서울도 갈 수 있고 해외도 갈 수 있다고 말해줬다. 솔깃한 말에 응시한 미용 자격증 필기시험에 떡하니 붙었고 곧바로 실기시험을 준비했다. “학원 안 다니고 미용실에서 연습했어요. 고등학교 친구들 데리고 가서 머리 잘라주면서 두세 달 정도 훈련했고 합격 1년 정도 후에 상경했죠.” 서울에 오자마자 당시 유명했던 미용실에 취업한 이상희 원장은 일주일을 못 다니고 그만뒀다. 줄지어 서 있는 거울에 헤어디자이너의 이름이 아닌 번호가 붙어 있었다. “큰 미용실 가야 성공한다기에 들어갔는데 거기선 사람 이름을 부르지 않았어요. 적응하기 힘들더라고요. 제가 시골 애였지만 자존감은 있었거든요.” 서울살이 초반 20대의 이상희는 걷기도 많이 걸었다. 집이 있던 상도동을 지나고 한강다리 건너, 숙대, 남대문시장.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했다. “신호등 앞에 있는데 파마가 막 말아지는 거예요. 다시 미용을 해? 돈 많은 남자 만나서 미용실을 열어? 가난해서 걷고 고민하면서도 걷고. 그렇게 내린 결론이 나를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을 키워 성공하겠다는 거였어요.” 머리 자르는 미용기술 외에도 머리를 올리는 ‘업스타일’에 ‘메이크업’ 기술도 할 수 있어야 했다. 다니던 미용실 원장과 선배, 동료에게 양해를 구해 시간을 마련했고, 잘살던 친구에게 학원비를 부탁해 메이크업 학원에 등록했다. 선후배 관계가 수직적이고 딱딱하던 시대였지만 업무시간을 배려받고 학비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더욱 완벽한 미용사로서 비상을 꿈꿨다. “후배들에게 돈과 시간이 없어서란 변명을 하지 말기를 당부해요. 꼭 해야 할 일이고 열정이 있으면 누구든 도울 테니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해요.” 20대는 미용사 이상희로서 삶을 채우는 시간이었다면 30대는 그것을 바탕으로 존중하고 돕고 깨치며 살아갔다. ‘높임말’과 ‘봉사’는 철칙 서른 살의 나이, 자신의 이름을 단 미용실을 열었다. 개업과 함께 이상희 원장이 철칙으로 삼았던 두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가 직원들 사이에 높임말 사용이었다. 당시는 손님이고 미용사들이고 서로에게 함부로 하던 시절이었다. “저희 때는 디자이너와 스태프가 같이 앉아 밥도 안 먹었어요. 솔직히 미용기술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람 차이는 없잖아요. 그래서 오픈할 때부터 높임말을 사용했어요. 혹여 함부로 하는 손님이 있으면 더 예의를 갖춰 말했어요. 구두며 유니폼도 갖춰 입었습니다. 그렇게 분위기를 바꿨어요.” 두 번째는 바로 봉사다. 한 달에 한 번은 전 직원이 봉사하기로 했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좋은 일에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교, 지역 그 어떤 것도 따지지 않고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어려운 이웃과 얼굴을 마주했다. “처음 찾아서 봉사했던 곳이 가난한 마음의 집이라는 곳이었어요. 1990년대에는 메이크업이 아주 강할 때였어요. 장애우들이 저희를 보고 놀라서 숨는 거예요(웃음). 그래도 몇 번 가니까 친해졌어요. 봉사하다 보니 새터민과도 연결이 됐어요.” 어렵던 시절 동료들과 친구의 도움으로 메이크업을 배운 것이 두고두고 고맙다는 이상희 원장. 좋은 마음이 모여 얻은 기술이기에 봉사를 할 때 더없이 기분이 좋다. “미용실 열고 1년쯤 돼서 어떤 손님이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러시아 여자와 함께 한국으로 들어온 탈북민이 결혼식을 하는데 메이크업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제가 메이크업을 한다는 걸 몰랐던 손님인데 말입니다. 당연히 좋다고 했죠.” 봉사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놀이처럼 재미있고 기획력 있는 봉사가 이어졌다. 정부 지원이 어려운 틈새 청소년들을 위해 일일찻집을 열고, 산골 아이들을 위해 자전거도 사주고 고아원에 세탁기도 기증했다. “손님들에게 이건 꼭 약속했어요. 우리 미용실에 와서 머리를 하면 그 일부는 다른 사람들 위해 쓰인다고요. 제가 그렇게 좋은 일을 하면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복을 받는 거잖아요.” ‘K뷰티’와 ‘뷰티엔젤’ 봉사의 중심에 서다 2000년대 중반에는 한·일 미용인 간의 세미나가 자주 있어서 일본에 갈 기회가 많았다. 그때 일본의 성년의 날과 우리나라의 성년의 날에 대한 의문과 고민이 일었다. “일본에 갔는데 일본 젊은이들이 기모노를 많이 입더라고요. 예쁘기도 하지만 그 나라 문화잖아요. 그런데 일본의 ‘성인식’은 공휴일인데다가 자치단체에서 큰 잔치를 열어요. 기모노 입고 화장과 머리를 하고. 이 모든 게 다 미용실에서 이뤄지는 거예요.” 함께 일본에 방문하고 온 미용실 원장들에게 우리 청년들을 위한 성년의 날을 특별한 날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메이크업과 머리손질은 미용실에서 도움을 주고, 한복은 당시 이상희 원장이 다니던 우석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미르’에서 만난 지인이 공급해주기로 했다. “연세대학교 다니는 손님한테 학교 대동제 때 성년식을 열어주겠다고 제안했어요. 단, 스마트폰으로 한복 입은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학생들에게만 기회를 주기로 했어요. 2011년 5월에 이틀 동안 저희가 준비한 성년식에 300여 명이 참여했어요.” 이 행사를 계기로 K뷰티디자인협회의 시초가 된 한국업스타일협회를 창설했다. “일본에 같이 다녔던 미용인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서 좋은 일도 하고 미용실 손님도 우리 손으로 오게 하자고 말씀드렸어요. 한국업스타일협회는 이후 좀 더 의미를 넓혀 지금의 K(Korea)뷰티디자인협회가 됐습니다.” 이상희 원장의 또 다른 활동 영역은 뷰티엔젤이다. 미용실 개업 초기 직원들과 다니던 봉사가 주위 미용인들과 함께하는 한국미용봉사회로 이어지다가 누구든 함께 참여하는 연합봉사 형태의 ‘뷰티엔젤’로 탄생했다. 한국 봉사는 물론 캄보디아 미용기술 지원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미르’의 박문희 원장님이 의료진하고 캄보디아 봉사를 간다고 머리를 하러 오셨어요. 제가 ‘의사들은 너무 좋겠다, 다른 나라 가서 봉사도 하고’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봉사를 하게 된다면 저는 미용을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게 진행이 됐어요. 그쪽 아이들 미용기술 가르칠 생각을 시작하니까 잠이 안 왔어요.” 캄보디아 봉사는 이상희 원장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20년 넘게 많은 사람을 도우며 살아왔지만 처음의 그 에너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 봉사를 앞두고 느꼈어요. 왜 잊고 있었지? 친구 한 명의 도움으로 내가 20대를 살았는데 지금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난해도 여자가 기술을 배우면 자식교육 시킬 수 있고 생활고에서 나아지니까 공부는 늦게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두 번의 캄보디아 미용기술학습프로그램을 통해 20명을 지원했다. 학비뿐만 아니라 숙식과 생활보조금까지 지원하는 사업이라 매년 할 수 없다고 한다. “캄보디아 아이들과도 약속한 것이 있어요. ‘너희가 성공을 하면 한 사람을 가르쳐라.’ 그게 약속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캄보디아에 미용실 오픈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곳 아이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거죠.” ‘미용복지사’라는 직업 멋지지 않나요? 안식년이라는 본인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다. 매달 13일 레드엔젤(청년응원단체)과 함께 K-컬처 콘서트를 개최한다. 2~3개월에 한 번씩은 다른 봉사단체와 연합활동도 한다. 캄보디아는 물론 올가을 새터민 합동결혼식도 계획 중이다. 미용인으로서의 고민도 남다르다. “미용은 보건의 개념도 있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복지의 개념입니다. 형편은 되는데 거동이 힘들어서 미용실에 못 오시는 경우가 있잖아요. 현재 미용은 이동 미용이 안 됩니다. 환자 외에는요. 미용복지사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미용사의 새로운 직업에 대한 아이디어일 뿐 아니라 고령화 사회 시니어들의 복지에 대한 깊은 배려가 담겨 있다. 이외에도 한류로 인해 유입되는 외국 여행객에게 보다 친근하게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뷰티존’을 만들어 세계에 한국 문화와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단다. 미용실을 작은 평수로 옮기면서 ‘손아당(蓀雅堂)’이라는 공간도 만들었다. 뜻 맞는 사람들이 모여 봉사에 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허브 역할을 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근데 저는 생각하는 게 예쁜 거 같아요. 끊임없이 꿈을 꾸는 거 같아요. 내가 만일 미용 일에서 손을 뗀다면 내 직함을 뭘로 하지? 뷰티풀 라이프 디자이너 이상희로 불리면 어떨까 하는데 되겠죠?” 뷰티풀 라이프 디자이너를 꿈꾸는 그녀의 입에서는 이쁘다(예쁘다)라는 말이 참으로 많이 흘러나온다. 자주 쓰는 단어에는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이 담겨 있다. 그녀의 이쁜 마음이 영원하길 지지하고 응원한다.
- 2017-07-10 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