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투 차차차 쓰리 포 차차차.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 익숙한 박자. 혹시 자신도 모르게 몸을 흔들고 있다면 당신은 잠재적 댄서? 문화에서 이제는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 잡은 댄스스포츠를 김종범(63), 박혜경(67) 동년기자가 배워봤다.
촬영 협조 뷰티풀댄스아카데미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127-8 4층)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은 댄스
톨스토이만큼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러시아 작가가 있을까? 그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다 해도 다양한 예술작품으로 리바이벌되고 있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통해 젊은이들도 잘 아는 세계의 대문호다. 그가 태어나고 말년에 살았던 곳이 툴라 근처의 마을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다. 모스크바를 기점으로 남쪽으로
지리산 중턱, 해발 800m, 계곡 물소리 쿵쾅거리는 산중이다. 한때 도류(道流)의 은둔 숲이었던 청학동 구역이다. 이젠 관광지로 변해 차들이 물방개처럼 활개 치며 드나들지만, 특유의 깊고 외진 풍색은 여전하다. 영화감독 김행수는 이 심원한 골을 일찍부터 자주 찾아들었더란다. 2년 전부터는 아예 집을 짓고 눌러 산다.
우레처럼 요란히 소쿠라지는 개울
흔히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어떤 운명적인 순간들과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당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 선택들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작가 이언 매큐언은 자신의 소설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50년 전쯤 편지를 주고받았던 짧은 인연에 기대어 그대에게 다시 편지를 씁니다. 그 사이 어떻게 지내셨나요?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 되어서 그대나 저나 서로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지만 밤잠을 설치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편지를 이어가던 까까머리 시절의 기억은 아직 저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답니다.
그때의 청소년들은 참 답답한 오
처음에는 “무슨 추모공연이냐” 반문하며 차갑게 돌아섰다. 공간예술을 하던 이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추모한다는 말인가. 의미 없다며 외면하려던 찰나 불현듯 생각났다. “선배님이 이 연극에서 연기 참 잘했지.” 좋은 작품을 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 성격답게 세상과 쿨(?)하게 안녕하고 떠난 그녀를 대신해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조명이 켜진다. 카
이자연은 최근 여성 최초로 대한가수협회장에 당선되었다. 호칭을 회장님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자연의 대표곡 ‘찰랑찰랑’을 부를 때 그녀의 목소리와 몸짓을 떠올리면 회장님보다는 찰랑찰랑대는 맛깔스러운 가수가 훨씬 더 어울린다. 대외적인 그녀의 나이는 63년생이지만 사실은 58년 개띠. 이봉규와 갑장이어서 더 말이 많았다.
그녀가 데뷔할 당시 여
‘윽 그만 그만 너무 차가워’ 땀에 흥건히 젖어 목에 두른 수건을 비틀어 짜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더워도 그래도 금방 펌프로 퍼 올린 물을 한바가지만 등에 부어도 차가움을 넘어 추위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한꺼번에 많은 물을 붓지 말고 조금씩 부어 달라고 말해야 되지만 너무 차가와 말 못하고 비명만 질렀다. 우리 어렸을 때나 볼 수 있었던 정겨운
인간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중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엄홍길(嚴弘吉·59) 대장은 ‘신들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 정복이 그의 꿈이었다고 말한다. 꿈을 위해 목숨까지 건 남자, 엄홍길 대장을 만났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해발 8000m 이상의 봉우리 중 독립된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는 총 14개
검정고무신, 아이스께끼, 초가지붕, 푸세식 화장실…. 지금은 까마득한 시절의 우리나라 풍경을 오롯이 기억하는 사람. 1969년 미8군 장병으로 한국을 방문한 스물한 살 청년은 소와 함께 밭을 갈고, 어른을 공경하며 사는 순박한 사람들의 나라가 무작정 좋았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가서 살 수 있을까 궁리하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마침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