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올빼미족’이었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은 가족들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뜨는 습관을 들이고 나니, 이전에 잠자느라 놓쳐버린 시간들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다.
‘올빼미족’이었을 때는 새벽까지 책도 읽고, 옷수선도 하고, 뜨개질이나 레이스뜨기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고 있는 팔순이 넘은 집안 사촌 형님과 술자리를 했다.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팔순이 넘은 분과 술자리를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아직 없다. 예전에는 팔순이 넘은 분들이 살아 계셨지만 체력도 약하고 기억력도 희미해 대화가 쉽지 않아 인사 정도만 했다. 직접 살아본 체험만큼 좋은 경험도 없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온몸이 아팠다. 전날 낮술부터 시작해 하루 종일 술을 마셔서 숙취 때문인 줄 알았다. 종종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에 술 마신 다음 날의 당연한 후유증으로 알았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더 아팠다. 알고 보니 근육통이었다.
일주일 전에 맞은 황열병 예방 주사가 원인이었다. 아프리카나 남미를
송파 노인복지관에서 독거노인 현황을 조사한다며 문자가 왔다. 문자 메시지를 보면 바로 전화해 달라고 했다. 3년 전에도 같은 내용의 전화가 왔다. 65세부터는 노인복지관에서 주기적으로 현황을 조사 관리한다는 내용이었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죽거나 중증으로 거동을 못할 경우 남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내가 벌써 요주의 대상이 되었나 하고 씁쓸한
‘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내 길을 만들었다’고 자신의 생애를 요약하는 최현숙(崔賢淑·62).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모든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에 의심을 품었다. 가출을 반복하던 끝에 출가(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에는 천주교 사회운동을 시작으로 민주노동당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거치며 진보정당 활동을 이어갔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수십 년간의
현재 한국 농업·농촌에 대해, 이동필(李桐弼·63)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간단하게 ‘전환기’라고 명명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농업 현장인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농부로 일하면서 느낀 솔직한 속내였다. 그러나 그는 전환기 속에서 맡은 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고자 한다. 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스스로 돌아보는 ‘마음공부’ 뜨락에 씨앗을
지난 6월 26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주최하고 서울특별시에서 주관하는 아셈인권정책센터 개소기념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발표자는 노인 인권 동향과 대응에 관하여 유럽과 말레이시아의 정부정책을 중심으로 발표했다. 노인 인권 증진정책, NGO 역할 등의 방안을 가지고 각 나라 대표들과 패널들의 열띤 토론이 있었다.
이제 고
전화가 왔다. 40대 여성 정도의 목소리였다. 집 앞에 와 있는데 꼭 만나서 몇 가지 조사도 해야 하고 사인도 받아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구청에서 실시하는 어르신 안전 점검 요원이라고 했다.
그래서 만났다. 필자가 관내 독거노인으로 고독사 할지도 모르는 대상자라는 것이었다. 송파구 가락 2동 10명, 마천 1동 20명을 책임지고 있다고 했다. 이웃 일본에
노후의 삶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장수리스크’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준비 없이 맞이하는 긴 노년은 괴로움만 더할 뿐이다. 따라서 나이에 맞는 ‘생애자산관리’가 뒤따라야 하며, 은퇴 직전인 50대뿐만 아니라 30~40대부터 노후필요자산에 대한 적정성 점검과 자산 극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은퇴 이후에는 노후 기간을 세분화하여 자산의 적정한 인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육상 중에서 가장 긴 거리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 인생의 굽이굽이 한평생과 같다는 말로 이해한다. 인생에 있어서 초년, 중년, 말년이 있다면 마라톤에도 초반전 중반전을 거쳐 마지막 골인지점의 최후의 승부처가 있다. 초반이나 중반에 선두에 서지 못해도 힘을 비축하였다가 마지막 승부처에서 다른 선수를 따돌리고 먼저 들어오는 선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