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 부서져도 눈 덮인 산을 그리워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참아가며 설상 경사로를 질주했다. 수줍은 미소로 시작한 두 사람의 인터뷰는 시간이 갈수록 반전에 반전을 더했다. 사람은 이렇게도 살 수 있다! 겨울 놀이에 인생을 던진 두 남자를 만났다.
이들은 1994년 처음 만났다. 도봉산에 있는 한국등산학교에서. 전영래(55) 씨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
생활이란 우리가 자주 착각하는 것처럼 멍에가 아니라 사방으로 열린 활공장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향에 있다. 오체투지처럼 궁구하는 삶이 있으며, 경주마처럼 각축하는 삶이 있고, 바람의 사주를 받아 가뿐히 떠도는 삶이 있다. 연극인 최영환(49)은 아마도 바람과 동맹을 맺은 계열에 속할 것이다. 그는 한결 자유로운 삶을 원해 귀촌했다.
누군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육개장은 ‘오래된’ 전통음식일까? 전통음식이지만 ‘오래된’ 음식은 아니다. 육개장의 역사는 불과 100년 남짓이다. 늘려
벽에 그림 하나 걸어두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추상화를 가르쳐준 스승은 더는 알려줄 게 없으니 스스로 헤매며 길을 찾아보라 했다. 그 후 20여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가끔 붓질이 그리웠지만 자신이 없었다. 더러는 행복해서, 더러는 안간힘을 쓰며 사느라 그림과 점점 멀어졌다. 그러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던 걸까. 오영희(吳英姬·67) 씨는
A(77) 씨는 2000년경 계열사 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다. 이후 협력업체를 세워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회사생활이나 사업은 큰 어려움 없이 잘해왔지만 가정사는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고 아내가 2000년 초 일찍 세상을 떠났다. 큰아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그곳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큰딸은 사업가와 결혼 후 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마음만 동동 구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이번 호에는 이강선 교수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허리를 굽혀 요가 매트를 마는데 군데군데 흰점이 보였다. 낡았네. 하긴 오래됐지. 들여다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자는 결혼을 하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출산을 하고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하면서 살다 보면 젊은 시절의 경력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이렇게 사는 것이 여자의 일생이지’ 하면서 단념하려던 순간,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잘해보겠다고 다짐하며 빛을 따라 즐겁게 걷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애석한 사실 하나 귀띔하고 그의 귀농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귀농 7년 차. 농사도 살림도 어언 자리 잡힐 만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문기운(60) 씨는 아직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자나 깨나 진땀을 흘리는 것 같다. 화살을 쏘았으나 여태 과녁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속사정을 모르는 남들은 일쑤 ‘귀농우수사례’로 치지만, 사실은 실패 사례에 가깝다는
느닷없이 맥주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좀 싱거운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군요. 술꾼치고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나 싶어서죠. 애주가 중에서도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주나 와인 등 다른 술은 좋아하면서 딱히 맥주는 즐기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술의 청탁을 그리 가리지 않는 저도 한때 맥주를 멀리했는데 해외에서는 와인에 빠져 있
A(89·남) 씨는 1970년대에 회사를 설립해 연평균 매출액이 2000억 원가량 되는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A 씨는 형식적으로 아직 회사 대표이사로 등재되어 있지만, 건강 문제로 6여 년 전부터 실질적인 경영은 사내이사인 장남 B 씨가 담당하고 있다. A 씨는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고, 평생을 바친 회사가 자신이 은퇴한 뒤에도 잘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