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들의 휴양지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다. 목욕을 좋아해 자연 용출장이 있는 곳에 휴양지를 만들었다. 목욕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어김없이 볼거리, 즐길거리도 만들었다. 연극이나 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극장과 원형 경기장도 만들었다. 로마인들의 대표적인 휴양지 중 한 곳은 터키의 파묵칼레다.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부서진 유적 위에 만들어진 온천 수영장에서의 물놀이는 클레오파트라도 부럽지 않다.
거대한 흰 석회암 언덕이 있는 작은 마을
터키 여행을 할 때 파묵칼레(Pamukkale)를 여행 코스에 넣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파묵칼레에 대한 홍보 영상물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곳에서 발산되는 매력을 저버릴 수 없다. 터키 여행 10일 정도 지날 즈음 파묵칼레로 간다. 고국에서 여행 온 후배들을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날짜를 정하고, 같은 숙소를 따로 예약하면 된다.
후배들보다 좀 더 일찍 여행을 왔기에 여유 부리며 터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대부분의 터키 여행자들은 카파도키아에서 안탈리아로 이동해 파묵칼레로 이동하지만 카시~페티예~달얀에서 시간을 더 보냈다. 무계획 여행은 이래서 좋다. 달얀에서 파묵칼레까지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해 12배나 영토가 큰 터키이기에 긴 이동거리도 당연지사처럼 생각하게 된다. 달얀에서 승합차처럼 작은 돌무시를 타고 페티예로 나와 오토가르(터미널)에서 파묵칼레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한다. 분명히 파묵칼레로 가는 표를 구입했는데 데니즐리(Denizli)가 종점이다. 돌무시로 바꿔 타고 10km를 더 가야 파묵칼레다. 통일성 없는 터키의 교통법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35℃ 온천수가 변화시킨 석회암 덩어리
파묵칼레는 아주 작은 동네다.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거대한 ‘설산’처럼 보이는 석회암 덩어리가 불쑥 솟아 있다. 편안한 차림으로 마을의 석회암 언덕으로 오른다. 사방팔방 온통 흰빛이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뜻이다. 온천수가 빚어낸 석회암 덩어리를 빗대어 붙인 지명. 석회 성분을 다량 함유한 35℃ 온천수가 수 세기 동안 바위를 타고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은 것이다. 석회암 언덕은 보기와 달리 미끄럽지 않다. 따뜻한 물이 흐르고 용액의 흐름을 보여주는 ‘층리’가 사방으로 펼쳐진다. 이 석회 언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차례 그 색이 변한다. 녹은 석회암이 물결 모양을 만들었다. 마치 다랑이논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서멀 풀(thermal pools)의 물줄기는 청옥빛이다. 종유석 등은 없지만 딱 석회동굴이 노출되어 있는 형상이다. 서멀 풀은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입욕은 불가하고 맨발로는 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한여름에는 수영복 입은 여행자들이 부지기수다.
석회 언덕 정상에 오르면 또 한 번 깜짝 놀란다. 부서진 문화 유적들이 무수하게 흩어져 있고 박물관도 있다. 이곳은 고대 페르가몬(Pergamon) 왕국이 기원이다. 기원전 130년경, 로마인들이 정복해 ‘성스러운 도시(히에라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리스어 ‘히에로스’는 신성함을 뜻한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에 이어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번성했다.
고대 로마의 히에라폴리스 유적지
‘파묵칼레’라는 지명은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의 룸셀주크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가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해 복원했다. 로마시대의 원형 극장, 신전, 공동묘지, 온천욕장 등 귀중한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최대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원형 극장은 현재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다.
또 증기가 발생하는 단층 위에는 아폴로신전이 세워져 있고 세베루스(Severus) 시대에 만들어진 극장도 있다. 1200기의 무덤이 남아 있는 거대한 공동묘지도 있다. 서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 유적 중 하나인 이곳에는 지금도 수많은 석관 뚜껑이 열려 있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이 석관들은 치료와 휴양을 위해 몰려들었던 병자들의 무덤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곳 또한 고대 도시 유적으로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클레오파트라 온천 수영장에서 물놀이
흩어진 문화 유적지와 박물관을 관람하고 클레오파트라 온천 수영장으로 들어간다. 폐허가 된 유적지에 온천물을 담아 언덕 위에 온천 수영장을 만들었다. 수영장엔 나무들을 심어 그리스, 로마식으로 만들었다. 간이 탈의실도 있고 식당도 있다. 물 온도는 35℃로 생각보다 높다. 물속에는 그리스, 로마시대 때의 대리석 기둥이 그대로 잠겨 있어 발밑이 평평하지 않다. 얕은 곳도 있지만 키를 훌쩍 넘는 곳도 있다.
이 온천수는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져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특히 로마시대에는 여러 황제와 고관들이 이곳을 찾았다. 테르메라고 하는 온천욕장은 온욕실·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 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완벽한 배수로와 환기 장치까지 갖추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와 물을 가져갔는데, 이 물은 양모를 씻고 염색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어쨌든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있던 온천장에서 즐기는 온천욕. 수심이 깊은 곳에서 수영도 하고 밧줄에 매달리기도 하고 물도 먹기도 하면서 두어 시간 놀고 나니 몸이 가뿐해졌다. 클레오파트라도 방문했다고 하니 아무리 바빠도 온천욕은 필히 해야 한다. 파묵칼레는 사실 이게 전부다. 단 이틀 동안 후배들과 함께하고 아쉬운 작별을 한다. 헤어지는 날, 후배는 싸갖고 온 햇반과 깻잎을 건네준다. “선배. 정말 힘들고 외로울 때 이거 먹어. 그러면 아픔이 싹 가신대.” 아끼고 아껴뒀다가 힘들었을 때 꺼내 먹으면서 파묵칼레의 기억을 어찌 떠올리지 않았겠는가? 여행이란 단지 풍치만 보는 게 절대 아니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기억 속의 파묵칼레는 그래서 더 좋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 직항이 있다. 이스탄불에서 데니즐리까지 항공으로는 1시간 10분 소요된다.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는 10시간가량 걸린다. 데니즐리 터미널에서 파묵칼레행 미니버스가 운행된다. 이스탄불 ~ 카파도키아 ~ 안탈리아 ~ 파묵칼레 순으로 대부분 여행 코스를 짠다.
음식 정보 파묵칼레는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제법 있다.
숙박 정보 파묵칼레 마을은 크지 않다. 대부분 가정집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가 많다. 가격은 조식을 포함해 2~3만 원대다. 대부분 수영장도 갖추고 있다.
날씨 정보 터키는 지중해성 기후다. 생각보다 햇살이 따갑다. 4월부터 기온이 풀리고 곧 뜨거워진다. 봄옷을 준비하면 된다. 아침과 저녁은 일교차가 크므로 겉옷을 하나 준비하는 게 좋다.
물가와 화폐 정보 터키 화폐는 터키 리라(Turk Lirasi)다. 물가는 한국보다 싸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파묵칼레 인근에는 또 다른 온천 명승지가 있다. 제2의 파묵칼레로 불리는 카클르크(카크리크) 동굴은 최근에 발견된 종유동굴인데, 광천수가 뿜어져 나온다. 파묵칼레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여행사를 통해 표를 구입해야 한다. 여행사가 두어 곳 있는데 가격 차이가 크다.
그동안 세계 여행을 꽤 많이 한 편이지만, 돌아보면 대도시 중심이었다. 관광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비즈니스 출장이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출장 때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나마 제대로 관광을 할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순수 관광으로 남부 프랑스에 9박 11일 여정으로 다녀왔다. 꽤 긴 여행이었기 때문에 미리 주변 정리를 했다. 나이도 있고 해서 공직 자리를 내놓고 여러 가지 주기적으로 발목을 잡던 스케줄도 정리했다. 앞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번 목적지는 해안에 접한 코트다쥐르와 안쪽 평원 지역인 프로방스 지역을 중심으로 했다. 마르세유, 니스, 모나코, 에즈, 망통, 산레모, 생폴드방스, 앙티브, 엑상 프로방스, 아를, 생에미프로방스, 루시용, 아비뇽, 퐁뒤가르, 몽펠리에, 카르카손, 칸, 그라세까지 꽤 많은 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아침 식사하고 10시쯤 호텔을 나서 한 군데 돌아보면 점심시간이고, 다시 두 군데쯤 더 돌아보면 다시 저녁 식사시간이 돌아왔다. 느긋한 스케줄이었는데도 하루 15,000보~20,000보 정도를 걸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프랑스에 대한 선입견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도인 파리 정도만 보고 프랑스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인구는 5,900만 명으로 우리보다 좀 많고 땅은 남한의 6배로 포도 농사나 짓고 사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찬란한 로마 문명이 남부 프랑스에 그대로 살아 있었다. 그 때문에 프랑스는 물론 로마 문명까지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천년 고적이 즐비하고 그에 따르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숨어 있었다.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듯 프랑스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세잔, 고흐, 고갱, 피카소, 르누아르, 등 쟁쟁한 화가들의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환쟁이라고 업신여김받는 직업이 여기서는 예술가로 대접받는 곳이다.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생 막시민'의 '르 코벤트 로열 호텔'이었다. 옛 수도원을 일부 호텔로 운영하는 중이다. 바로 옆에 붙은 건물이 바실리카 성당인데 1295년 막달라 마리아의 시신이 안장된 곳으로 발견되어 유명하다.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천 년 된 건물이다. 이 수도원을 호텔로 빌려 쓸 수 있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호텔 레스토랑에서 일행의 생일 파티를 하면서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도 제약이 없었다. 우리 같으면 국보급 문화재로 일반인 접근 금지 구역이 되었을 것이다.
두 번째 충격은 아를의 ‘까리에 드 루미에르’라고 다른 말로는 ‘빛의 채석장’이라는 장소였다. 마침 피카소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채석장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규격화되지 않은 다양한 벽면과 기둥, 그리고 천장과 바닥까지도 각각의 영상이 돌아가는 형식이었다.
세 번째 충격은 카르카손 콩달 성의 설치 미술이었다. 역시 천년 된 고성인데 노란 형광의 테이프로 성벽과 성채에 서클을 형상화했다. 아무리 원상 복구가 가능하다지만, 이런 국보급 건물에 이런 예술 행위를 허용해주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네 번째 충격은 역사적인 고 건축물들이었다. 규모 면에서도 압도적이었다. 아비뇽의 교황청, 퐁뒤가르의 거대한 수도교, 마르세유의 물의 궁전은 일단 큰 규모와 섬세한 예술품으로도 숨을 죽이게 했다. 그 외에도 도시마다 천년 역사의 대성당이 있고 조형물들도 즐비하다.
세계 여행에서 로마를 가장 나중에 보라는 말이 있다. 로마를 보고 나면 다른 도시들은 시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부 프랑스를 가장 나중에 보라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인류 문명의 보물들이 즐비한 곳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파리에만 10여 개의 한국 식당이 있다는데 남부 프랑스에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해외여행을 떠난다. 그만큼 여행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고 일상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 TV를 틀면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단체여행에서 배낭여행, 저가여행, 테마여행까지 내용도 다양해졌다. 시니어의 은퇴 후 버킷리스트에도 여행은 항상 우선순위다.
최근에는 액티브 시니어를 중심으로 배낭여행이나 장기여행이 붐을 이루고 있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시니어의 최근 여행 트렌드를 볼 수 있다. 70대 배우들이 함께 떠난 ‘꽃보다 할배’는 배낭여행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또 ‘윤식당’은 해외에서 살아보는 여행을 꿈꾸게 했다. 이처럼 단순 관광을 넘어 배우고 체험하는 여행에 관심이 높아졌다.
교육과 여행의 꿈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교육 여행’
시니어 맞춤형 여행의 대표적인 트렌드는 ‘교육 여행’이다. 시니어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교육여행 프로그램으로는 ‘로드 스칼라(Road Scholar)’가 대표적이다. 로드 스칼라는 ‘길 위의 학자’라는 뜻으로 1975년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 단체다. 150개국에서 5500개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매해 10만 명 이상이 참가한다. 이 단체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평생교육과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탐험하고 모험하며 세상이 하나의 큰 교실이 되는 셈이다. 프로그램은 관심사나 지역 등을 기준으로 선택하면 된다. 관심사 종류는 트레킹부터 사진, 오페라, 조류 관찰, 국립공원 탐방 등 무궁무진하다.
뒤늦게 외국어를 배우려는 시니어도 많다. 노후의 여가시간이 어학을 배우는 데 최적의 조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장기간 살면서 어학연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약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머물면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게 해준다. 예를 들면 스페인 세비야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며 건축, 요리 등을 체험하는 식이다. 머무는 동안 도움이 필요하면 로드 스칼라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손주와 함께 떠나는 세대 간 여행도 인기다. 자연이나 도시 관광뿐만 아니라 손주와 서핑을 배우거나 영화제작도 경험하는 이색 프로그램들이 있다. 주목할 것은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프로그램별로 활동단계(activity level)와 야외활동단계(outdoor level)가 세분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건강 상태와 여행 취향에 따라서 단계를 선택하면 된다. 프로그램별로 일정, 비용, 건강, 취향의 단계가 있어 개인 상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혼자 떠나도 외롭지 않은 ‘혼행’ 상품
두 번째 트렌드는 ‘혼행(혼자 여행)’이다. 혼행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해서 언제든 원하는 대로 여행을 할 수 있다. 또 평소 가족과 여행 다닐 때와 달리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여행사인 ‘클럽 투어리즘(Club Tourism)’은 나홀로 여행객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맞춤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고객은 주로 50~70대. 대략 남성이 30%, 여성이 70% 비중을 차지한다. 친구, 가족과 함께 여행하려는 사람의 신청은 받지 않는다. 고객 간에 버스 좌석이나 방을 정하는 일도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참가자가 모두 혼자 오기 때문에 다른 사람 눈치를 볼 일도 없고 외롭지 않다. 하루 여행부터 해외여행까지 가능하며 60대, 70대 등 연령대별 상품도 있다. 또 여성 한정 여행도 가능하다. 온천, 꽃놀이, 미술관 투어, 크루즈 여행까지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특히 혼자 떠나는 호화 상품의 경우 1인이 2석을 이용하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호텔에서는 1인 1실로 숙박한다. 나홀로 여행객들을 위한 상품은 소규모로 참석 인원을 제한하며,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안내원이 동행하기 때문에 위험할 일도 없다.
세 번째 트렌드는 ‘케어(care) 여행’이다. 시니어는 나이가 들면서 무릎이 안 좋아져 오래 걷기도 힘들고, 건강 문제로 여행을 가고 싶어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들과 걷는 속도를 맞춰야 하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여행이 인기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활성화가 안 됐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의 클럽 투어리즘은 ‘지팡이와 휠체어로 즐기는 여행’을 주제로 고령자들도 여행을 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유니버셜디자인센터’를 만들어 여행할 때 느끼는 불편한 점도 연구한다. 또한 70세 이상을 위한 ‘편안한 여행’ 상품들은 하루 평균 적게는 한 곳, 많게는 세 곳 정도 투어를 해 일정이 비교적 여유롭다. 숙소에 일찍 도착하고, 아침에도 느지막하게 출발해 여유롭다. 이동 중에도 한 시간 반마다 휴식을 취한다. 장시간 걷지 않으며 버스 참가 인원도 제한한다.
첨단기술로 각광받는 ‘스마트 여행’
마지막 트렌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스마트(smart) 여행’이다. 첨단기술의 발전은 여행과도 밀접하다. 과거에는 책이나 지도 한 장에 의지해 여행을 갔다. 하지만 최근엔 스마트폰의 지도를 활용해 관광지를 찾아다닌다. 앱을 이용한 외국어 번역도 필수다. 일명 ‘스마트 관광’이라 부르는 스마트 여행은 ICT 기술을 활용해 빅데이터를 구축한 뒤 실시간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 영국 런던박물관이 2010년 만든 ‘스트리트 뮤지엄(Street Museum)’ 앱은 증강현실을 이용해 과거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증강현실은 현실의 배경에 가상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기술이다. 만약 내가 런던의 특정 장소에서 이 앱의 3D 뷰를 선택하면, 현재 위치의 과거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또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증강현실 기술로 도자기나 조각의 숨겨진 뒷면까지 3D 입체영상으로 보여준다.
고령화로 액티브 시니어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여행 업계는 시니어에 주목하고 있다. 길어진 노년기에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다. 여행이 삶에 가져다주는 활력은 노후를 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여행이 더 많아진다면 여행의 질도 높아질 것이다.
이나영 시니어 전문 칼럼니스트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차의과학대학교에서 고령친화산업학을 전공했다. 한화그룹과 신한은행에서 근무했다. 현재 경향신문에서 고령사회 담당 객원기자로 활동 중이며, ‘이나영의 고령사회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다.
한없이 걷고 싶어지는 4월이다. “신발이야 대충 운동화나 아무거나 신지, 뭐”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걷기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신발을 잘 골라야 한다.
걷는 데 좋은 신발은 통상적으로 쿠션이 적당하며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밑창이 위판보다 넓어야 한다. 특히 앞꿈치와 발바닥 닿는 면적이 넓어야 한다.
별도의 장비 없이 의류와 신발만 갖추면 언제든 부담 없이 시도해볼 수 있는 ‘걷기’는 다른 레포츠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은 체육 활동임이 분명하다. 2016년 기준 산림청은 우리나라의 등산 인구가 월 1회 이상 1500만 명, 연 1회 이상 300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를 내놨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월 3회 이하 체육 활동에서 등산이 1위(40%)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추세는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전 구간 개통된 2012년을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불어닥친 ‘걷기’ 열풍과도 맞물려 있다. 당시 지자체마다 둘레길 조성 사업에 박차를 가했는데 대다수의 둘레길이 산과 산을 잇는 임도 구간에 조성됐고, 이는 자연스레 걷기 인구와 등산 인구가 급증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등산에 부담을 느껴 걷기부터 시작한 사람들이 차후 등산에 도전하는 경우도, 반대로 등산에서 출발해 걷기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마라톤’ 인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의류와 신발만 있으면 언제든 도전 가능한 마라톤은 구애되는 장소도 없기에 등산과 트레킹보다도 접근이 쉬운 체육 활동이다. 현재 국내에서 1년 동안 개최되는 마라톤 대회는 무려 500여 개를 웃돌며, 국내 러닝 인구는 6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마라톤이 지속적 인기를 안고 국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면, ‘트레일러닝’은 지난 4년 동안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신생 아웃도어 활동이다. 트레일러닝은 이름 그대로 트레일에서 이루어지는 달리기 행위다. 산길, 들길, 해변, 계곡 등 포장되지 않은 자연의 길을 달린다는 점에서 마라톤과 구분된다.
등산, 트레킹, 트레일러닝, 마라톤으로 분류되는 네 가지 아웃도어 활동에 최적화된 신발별 특징에 대해 정리했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신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와 기능이 매우 다르다. 따라서 사전에 본인의 활동 패턴을 고려한 아웃도어 슈즈를 꼼꼼히 점검한 뒤 선택할 필요가 있다. 적재적소에 맞는 신발은 아웃도어 활동의 컨디션과 밀접하게 연관되기에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다.
신고 싶은 신발을 신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신발이 건강하게 걷거나 뛰기를 위한 용도보다는 유행이나 디자인에 치우쳐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신발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신느냐에 따라 그 쓰임새와 기능이 매우 다르다. 따라서 사전에 본인의 활동 패턴을 고려한 아웃도어 슈즈를 꼼꼼히 점검한 뒤 선택할 필요가 있다
*걷는 기쁨이 두 배 등산화 vs 트레킹화
등산화는 우리나라에서 보통 트레킹화, 하이킹화, 워킹화, 트레일화 등으로 혼용돼 불리는데 크게 지형, 거리, 고도에 따라 어떤 경우에 등산화가 적합한지 트레킹화가 적합한지 살펴봤다. 물론 체력을 비롯한 컨디션과 산행 경험에 근거한 개인차가 있기에 아래 열거한 기준이 절대적이지는 않다.
①해당 지형에 돌이나 바위가 많을 경우, ②산행 거리가 10km 이상일 경우, ③산의 표고가 500m 이상일 경우에는 등산화가 좀 더 안전하다. 반면 ①도심 속 공원이나 야트막한 산길을 걸을 경우, ②산행 거리가 5km 내외로 다소 짧을 경우, ③산의 표고가 500m 이하일 경우에는 트레킹화가 더 편하다.
그렇다면 등산화와 트레킹화를 고를 때 각각 어떤 점을 좀 더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까? 먼저 등산화는 경사진 산길을 오래도록 걷는 상황을 대비해 약간 무게감이 있더라도 ①다리가 접질리지 않도록 발목 부분을 단단히 잡아주면서, ②발에 쌓이는 피로감이 분산될 수 있도록 쿠셔닝이 좋고, ③미끄럼 방지기능이 우수한 트레일 그립의 제품을 선택하면 좋다. 더불어 1박 이상의 종주 산행이나 장거리 산행으로 이어질 경우 갑작스러운 우천에 대비해 전 방향 방수·투습 성능의 고어텍스 중등산화가 적합하다. 중등산화는 경등산화에 비해 내구성이 뛰어나고 장시간 산행에도 발을 지속적으로 잡아주어 안전성이 높다.
반면 트레킹화는 주로 짧은 거리의 당일 산행이나 트레킹, 도심 속 공원을 가붓이 산책할 때 적합하기 때문에 기능적인 면을 고려하기보다는 ①신었을 때 우선 가볍고, ②착화감이 편안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트레킹화는 데일리 슈즈로도 활용이 가능하므로 ③일상생활을 할 때도 신을 수 있도록 색감이나 디자인을 함께 봐도 좋다. 편의에 따라 다이얼을 돌려 신발을 빠르고 편하게 신고 벗을 수 있는 ‘보아 시스템(The Boa System)’ 제품도 괜찮다.
◇추천 등산화
K2 ‘NU 클라임 이보’ 엑스 트랙션(X Traction) 기술을 통해 신발 측면과 뒷면에 X자 형태의 지지 구조를 만들어 발을 안전하게 잡아준다. 더불어 한국형 화강암 지형에 맞는 엑스 그립(X Grip) 밑창을 통해 거친 산길에서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노스페이스 ‘다이내믹 하이킹’ 2012년 첫 출시된 이후 매 시즌 업그레이드된 기술력과 디자인을 더하는 국내 대표 등산화 시리즈다. 보통발 타입, 평발 타입, 까치발 타입 등 발 모양에 맞게 쿠션과 아치의 높이를 차별화했다.
◇추천 트레킹화
라푸마 ‘에어벤트’ 무봉제(No-Sew) 공법을 통해 무게를 줄여서 착화감이 편하다. 아치 분리형 3D 밑창을 사용해 반발탄성과 유연성을 높였고, 미끄러짐 방지기능이 우수한 트레일 그립을 적용해 비가 올 때도 미끄러짐이 덜하다.
밀레 ‘헬리움 뮤온’ 무게를 줄여 발의 부담을 덜고 착화감을 높인 초경량 워킹화. 밀레의 자체 개발 초경량 기술 라이트엣지(Lite Edge)를 적용했을 뿐만 아니라 갑피 전체를 무봉제 공법으로 제작해 신발의 무게를 최소화했다.
릴라릴라 ‘디지솔 노르딕’ 디지솔 노르딕 워킹화는 착화력과 통기성이 우수해 워킹화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 보행 때 앞으로 밀어주는 스프링 쿠션, 발뒤꿈치 부분의 충격 흡수, 우수한 미끄럼 방지기능으로 올바른 보행을 유도하는 디지솔 기능이 있다. 강력한 아치 서포트 기능이 장착된 우수한 탄성의 PU 인솔은 일반 쿠션 인솔보다 반발탄성이 20%나 더 높아 보행 때 피로를 덜 느끼게 해준다.
최적의 등산화와 트레킹화가 걷는 기쁨을 더해준다면, 내게 꼭 맞는 러닝화와 트레일러닝화는 달리는 기쁨을 더해준다. 러닝화와 트레일러닝화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릴 때 신는 신발이다. 등산화·트레킹화와 비교했을 때 기본적으로 무게가 가볍고 생김새가 날렵하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러닝화와 트레일러닝화 역시 ‘어떤 길’에서 신느냐에 따라 각각의 기능이 현저하게 다르다.
먼저 러닝화는 알려진 대로 가벼운 조깅이나 마라톤을 할 때 신는 신발이다. 달릴 수 있는 코스는 다양하다. ①집 근처 골목길이나 도로, ②인근 운동장과 트랙, ③한강 둔치를 비롯한 마라톤 코스 등 많다. 이들 길은 달리기 편한 평지이지만 포장된 인공의 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트레일러닝화는 말 그대로 트레일(trail)에서 신는 러닝화로서, 이때의 길은 포장되지 않은 자연의 길이다. 달릴 수 있는 자연의 길 역시 범위를 한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①임도를 비롯한 둘레길, ②경사진 산길, ③들판, 계곡, 해변, 사막 등이 있다.
러닝화와 트레일러닝화는 달릴 때 신는 신발이므로 통기성과 신축성이 뛰어나야 한다. 발등에서 뒤꿈치, 발목까지 최적의 피팅감을 제공해야 함은 물론 내구성 또한 우수해야 한다. 다만 앞서 강조했다시피 ‘어떤 길’에서 신느냐에 따라 우선적으로 체크해야 할 부분이 조금씩 다르다. 먼저 러닝화의 경우 ①스피드를 낼 수 있도록 가벼운지, ②포장된 인공의 길을 같은 동작으로 지속적으로 달릴 것에 대비해 쿠셔닝이 좋은지, ③발이 지면에 닿는 모든 순간의 충격을 흡수하는 동시에 충격에서 비롯된 반발력을 통한 에너지 전환이 가능한지 등을 체크해야 한다.
트레일러닝화는 ①흙과 바위 등의 불규칙한 지형과 오르막 내리막 등의 경사 변화에도 발의 뒤틀림이나 꺾임 없이 안정적으로 잡아주는지, ②젖은 길바닥에서도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 접지력을 겸비했는지, ③장시간 달려도 발이 피로하지 않도록 쿠션감이 좋고 편안한지를 고려해봐야 한다.
◇추천 러닝화
나이키 ‘에픽 리액트 플라이니트’ 경량성과 내구성 등 러너에게 필요한 모든 요소를 동시에 제공하는 혁신적인 폼 솔루션을 장착한 제품으로, 전작인 ‘루나에픽 로우 플라이니트2’에 비해 더 가볍고 탄력적이다.
아식스 ‘젤 카야노’ ‘젤 카야노’ 시리즈는 국내 러너들 사이에서도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아식스의 대표 러닝화다. 달릴 때 발목이 바깥쪽으로 심하게 꺾이는 외전 성향의 러너에게 최적화된 것이 특징이다.
아디다스 ‘울트라부스트’ ‘울트라부스트’ 시리즈는 차별화된 쿠셔닝은 물론 에너지 리턴기능의 부스트(boost) 기술력을 통해 최적의 탄성을 자랑한다. 중창과 갑피 사이의 공간을 띄워 어떤 발에도 최상의 피팅감을 선사한다.
◇추천 트레일 러닝화
라스포르티바 ‘헬리오스’ 라스포르티바의 마운틴러닝화 시리즈. 무게 480g으로 가벼워 스피드를 내기에 좋고 오프로드에서 특히 탁월한 착지력과 접지력을 자랑한다. 어퍼는 메시 소재, 뒤꿈치는 에어메시를 적용해 통기성 또한 우수하다. 단거리 트레일러닝에 추천한다.
알트라 ‘론픽’ 뒤꿈치와 앞꿈치의 높이가 같은 제로 드롭(Zero Drop) 플랫폼을 통해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달리기를 유도한다. 또한 대다수 한국인의 발 모양에 맞게 발볼 부분이 넓어 편안한 착화감을 자랑한다. 장거리 트레일러닝에 추천한다.
필자가 걸었던 길 중 추천할 만한 곳을 골라봤다. 몇 번을 걸어도 새롭게 느껴지는 길들이다. 어느 날엔 노란 꽃이 피어 있고 어느 날엔 무성한 녹음이 반기고 낙엽이 흩어지고 흰 눈이 하얗게 뒤덮여 있다. 사계절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길이다. 혼자서도 좋고 애인이나 가족과 가도 좋다. 복잡한 채비를 하지 않고 가벼운 차림으로 다녀와도 좋다. 낭만과 먹거리도 함께 있어 오감이 만족되는 길이다.
괴산 삼막이길
괴산 삼막이 옛길은 충북 괴산군 칠청면 외사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골 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연결된 옛길을 개발해놓은 곳이다. 괴산댐이 착공되면서 만들어진, 물과 숲이 어우러진 자연 친화적 트레킹 코스다. 총길이는 4km.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걷기 좋은 길 10선’에 들기도 했다. 숲속을 걸으면서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고 길마다 이야기가 담겨 있어 지루하지 않다. 출렁다리와 연화협 구름다리, 여우굴바위, 연화담, 망세루, 남매바위, 매바위, 앉은뱅이약수, 삼신할매바위, 신랑각시바위, 병풍루, 괴산바위(산뫼) 등을 만난다. 200년 된 당산나무 밤나무는 이 마을을 지켜준다. 산막이 옛길은 찾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코스가 다양하다. 강변을 따라 숲속 길을 2시간 정도 왕복해서 걸을 수도 있고, 유람선을 타고 오갈 수도 있다. 또 트레킹을 원할 경우 주차장에서 등잔봉까지 약 1·2km를 오르고 호랑이굴, 매바위를 거쳐 새뱅이 유람선 선착장까지 이동해 각시바위 근처까지 가서 신랑바위를 보고 차돌바위 선착장으로 내려오는 등 다양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3시간 정도 걷고 즐길 수 있는 길들이다. 산막이 옛길은 괴산호가 생기기 전 봇짐장수들이 마을과 마을을 오가던 길이라 한다. 괴산댐이 생기면서 옛 봇짐장수가 걷던 이 길을 물길을 따라 그대로 복원했다.
제주 올레길 6코스
제주 올레길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중에서도 기억이 많이 남는 곳이 올레길 6코스다. 물론 어느 코스가 가장 좋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특색이 있다. 6코스는 쇠소깍을 출발해 제지기오름→보목포구→구두미포구→소천지→천지연폭포→삼매봉→외돌개까지 걷는 코스다. 쇠소깍에서 외돌개까지의 거리는 13.5km다. 쇠소깍의 쇠는 소, 소는 웅덩이, 깍은 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쇠소는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굳어져 형성된 계곡 같은 골짜기다. 깊은 수심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의 독특한 지형으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물의 맑기도 바닥이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쇠소깍을 출발해 걷다 보면 이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야자수가 눈앞에 나타나고 생이돌과 모자바위를 만나게 된다. 모자바위는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어머니와 아들을 형상한다 해서 모자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닷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섶섬도 만난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각종 희귀식물과 난대식물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있어 해상 유람선을 타고 이곳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 가는 곳마다 돌하르방이 인사를 한다. 한 번에 다 돌기에는 풍경이 아까운 길이다. 두고두고 여유를 갖고 걸어야 좋은 길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가 보면 안다. 많은 한국인이 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장기적으로 머물고 있는 이유를 말이다. 매력이 넘치는 바르셀로나는 영화 로케이션 장소로도 큰 인기다. ‘내 남자의 여자도 좋아’, ‘비우티풀’,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등은 모두 바르셀로나를 배경으로 찍은 영화다. 또 몬주익 언덕에는 마라톤 선수 황영조 기념탑이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우승을 안겨줬던 도시. 낯선 나라에서 한글을 보면 가슴이 짜르르해지고 눈시울이 젖는다.
100년 넘게 공사 중인 대성당
스페인 북동부의 카탈루냐 자치주의 주도인 바르셀로나는 17세기에 건설된 항구도시다. 바르셀로나는 최근 카탈루냐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시도하고 있어 국제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은 관광도시로 유명한데 특히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의 건축물은 탁월한 명소다.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는 건축 문외한의 눈길도 저절로 이끈다. 특히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뜻은 ‘성 가족’이라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 마리아, 요셉을 뜻한다.
이 성당의 원 설계자는 가우디의 스승인 비야르. 성 요셉 축일(1882년 3월 19일)에 착공을 했으나 건축 의뢰인과 의견 충돌로 중도 하차했고 이듬해부터 가우디(당시 31세)가 맡게 된다. 가우디는 1926년까지, 총 12년간을 오로지 이 성당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성당을 완공도 하기 전, 그는 전차에 치여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다. 그가 사망할 당시 이 성당은 ‘예수 탄생’ 파사드, 종탑 한 개, 네 개의 탑, 지하 납골당만 완성된 상태였다. 그날 이후 공사는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가우디 사후 100년(2026년)이 되는 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성당은 천천히 자라나지만, 오랫동안 살아남을 운명을 지녔다”는 생전 가우디의 말이 이뤄질 것 같다. 입장료가 비싸지만 매표소는 늘 장사진을 친다. 매표 요금은 완공을 위한 기부금 형태로 쓰인다.
바르셀로나를 빛내는 건축가 가우디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400여 개의 회오리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 구경하면 된다. 가우디의 유해는 지하 박물관에 있다. 1869년(17세), 가우디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형이 이미 가 있는 바르셀로나로 터전을 옮겨 건축학교에 입학한다. 고향과는 달리 큰 도회지인 바르셀로나에서 처음은 적응이 어려웠지만 그 시절, 많은 자극과 동기를 받는다. 1874년(22세),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건축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그의 특이한 창조성은 호평보다는 혹평을 많이 받는다. 그는 늘 말이 없고 허름한 차림새에 이상한 실험들을 일삼았기에 평생 괴짜라는 꼬리표를 안고 살아야 했다. ‘귀족적이면서 천박한, 댄디(dandy)이자 방랑자, 박식하지만 오락가락하는, 기지가 넘치지만 재미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있었다. 그는 가우디를 천재라고 칭찬했다. 사후 30년 뒤인, 1960년대부터 그는 인정받기 시작했고 바르셀로나를 영원히 빛내고 있다.
카사 밀라에서 구엘 공원까지
바르셀로나에는 성 가족성당 말고도 가우디의 모더니즘 건축의 최고로 꼽히는 카사 밀라가 있다. 산을 주제로 디자인하고 석회암과 철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독특한 건축물로 파도가 치는 것 같은 곡선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또 바다를 주제로 디자인한 카사 바트요(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는 도자기 타일과 유리 모자이크가 아름답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구엘 공원(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다. 가우디와 구엘 백작의 합작품.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백작은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만들 목적으로 바르셀로나의 펠라다 지역 땅을 매입한다. 구엘은 가우디에게 영국의 전원도시를 모델로 해서 그리스의 팔라소스 산과 같은 신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공원 부지가 돌이 많은 데다 경사진 비탈이어서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가우디는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땅 고르는 것도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이 단지를 위해 무려 14년(1900~1914)이나 매진했지만 결국 자금난 등으로 미완성으로 끝났다.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는 구엘 백작 소유의 이 땅을 사들여 이듬해 시영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자연 친화적 건축물, 구엘 공원
구엘 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독특한 공원 중 하나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는 사람은 꼭 방문해봐야 하는 곳으로 손꼽힌다. 멀리 지중해와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바지에 구엘 공원이 있다. 초콜릿을 닮은 듯한 돌기둥, 과자의 집처럼 생긴 건물, 반쯤 기울어져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인공 석굴, 계단 위에 타일로 만들어진 도롱뇽, 기념품 파는 건물 등 가우디만의 색깔이 분명한 건축물이 오롯이 모여 있다. 또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구엘 백작의 요청으로 만든 도리아식 기둥도 눈길을 끈다. 녹색 식물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들어앉은 독창적인 건축물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마디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만들어졌고 사방팔방으로 시내가 조망되어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까지 가세하면 두말할 필요 없이 행복한 공간이다. 단 과거 가우디가 살았던 집은 박물관으로 공개해 유료다. 가우디가 사용했던 침대, 책상 등 유품과 데드 마스크가 전시되어 있다.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가구들이 감상 포인트다.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직항이 운행된다. 소요시간은 13~14시간.
현지 교통 바르셀로나는 규모가 커서 대중교통을 필히 이용해야 한다. 지하철이 제일 편리하다. 도심이 복잡하므로 1일권을 사서 무제한으로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음식정보 보케리아 시장에서는 해산물을 구입해 즉석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때는 근처의 레스토랑을 이용하자. 흥정으로 절반짜리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숙박정보 바르셀로나는 관광도시라 물가가 비싼 편이다. 고급 호텔 가격은 1박당 50만 원 이상. 아파트, 한인 민박, 호스텔 등을 이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아파트 숙박은 1박당 10만 원 정도.
화폐 유로화 통용.
날씨 바르셀로나의 4월 평균 최저기온은 8.5℃, 평균 최고기온은 17.6℃로 서울의 4월 중순 기온과 비슷하다. 예측 없이 비가 내릴 수 있으니 비옷과 우산은 꼭 챙겨서 외출하자.
시니어 여행 포인트 바르셀로나는 서둘러 여행하는 곳이 아니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둘러봐야 할 도시다. 몬주익 언덕은 꼭 올라가 봐야 한다. 도시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경기장 근처로 내려오면 차도 옆으로 황영조 동상이 있다. 차도를 따라 내려가면 미로 미술관을 만난다. 바르셀로나를 기점으로 근처 소도시 여행은 꼭 해야 한다. 몬세라트 성지와 타라고나를 적극 권한다. 누드 비치에 관심이 있다면 바르셀로나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시체스(Sitges) 해변을 찾으면 된다.
세계 곳곳에 불고 있는 도시화(Urbanization, Citification) 바람은 꺾일 줄 모르고 진화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물론 대형 빌딩이 지닌 물리적 인구 흡입력과 첨단 IT 융합 현상이 도시화를 가속시키는 데 큰 몫을 하고 있지만, 도시 속 대형 빌딩들이 숲을 이루면서 나름대로 뿜어내는 예술성도 배제할 수 없는 원인일 것이다. 그것은 빌딩 건축물을 예술적 감각이 배어 있는 대형 조형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 널려 있는 건축예술품만을 찾아나서는 전문 관광객 그룹이 얼마나 많은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3년 전에 건축가 중심의 동호인 25명이 독일에서 서울을 찾아오더니, 금년에도 45명이 찾아오겠다는 전갈을 받았다. 서울에 산재한 도시 빌딩이 지닌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기 위함이다. 당시 서울을 찾은 독일 건축가들은 한결같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보는 것만으로도 서울을 찾은 보람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하기야 ‘DDP’는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 1950~2016)’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지만, 세계 각 도시에 산재한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최우수 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메인스타디움 디자인 공모를 하면서, 건축설계자로 ‘자하 하디드’를 선정했다. 그러나 일본 내 강한 반대 여론에 봉착하고 말았다. 막대한 건축비를 반대한다는 이유를 내걸었지만, 일본 건축계가 자존심이 많이 상해서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명성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래서 우리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대형 조각품 같은 건축물이 서울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아끼고 가꿔가야 할 새로운 개념의 문화재가 아닌가 싶어서다.
이성낙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학교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前 회장, 간송미술재단 이사.
한 사람의 손을 놔주는 것도, 매달리는 것도 사랑이다. 누군가는 극복한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말했다.
유디트 크빈테른(Judith Quintern·46), 그녀는 18년 전 독일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땅으로 가는 길이었다. 한 남자와 도저히 헤어질 수 없었던 한 여자는 그 사랑을 극복하기로 했다.
한순간 길을 잃는다 해도 괜찮았다. 그리고 강원도첩첩산중 외딴집에서 된장국을 끓이고 해당화에 빠져 사는 동안 알게 됐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함부로 외롭지 않을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일임을….
‘유디트의 정원’이라 했다. 처음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 이름을 듣는 순간 타샤 튜더의 정원이 떠올랐다. “정원에 관해서라면 결코 겸손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여자. 문득 그 아름다운(?) 고집스러움이 그녀에게서도 느껴졌다. 그러지 않고서야 유배와 다를 바 없는 먼 이국땅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에서 정치 철학을 공부한 그녀가 남편 이희원(58) 씨를 따라 한국으로 온 것은 지난 2000년.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이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 생각하려 애썼다.
“제 친구를 통해 남편을 알게 됐어요. 당시 독일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있던 그는 매너가 좋고 친절한 사람이었어요. 생각하는 게 비슷해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눴지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게 됐고요. 그런데 독일에서 둘만의 소풍을 다녀오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우리 결혼할까?’ 하고 물었어요. 그 순간 딜레마에 빠져버리고 말았어요. 그가 박사학위를 딴 뒤에는 반드시 고향에 돌아가 연로하신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다고 했거든요. 저랑 만나는 동안에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자주 했기 때문에 우리의 연애는 종종 무거웠어요. 며칠 생각할 시간을 달라 했어요. 그와 헤어지거나, 그를 따라 한국으로 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죠. 어느 결정도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와 헤어지는 것은 상상만 해도 견디기 힘들더군요. 그날 이후 제가 그와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됐어요.”
병이 되어버린 그리움
남편 가족들은 그녀를 환영했다. 물론 유학까지 보낸 아들이 외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섭섭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10여 년 만에 유학을 끝낸 아들이 돌아와 결혼을 하면 며느리와 오순도순 지내볼까 기대를 했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독일 며느리라니….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물었을 때 시아버지는 간결하게 한마디만 했다.
“나는 내 아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것으로 가족의 의견은 정리가 됐고, 두 사람의 결혼은 무리 없이 진행됐다. 시댁과 남편의 따뜻한 배려를 받으며 그녀도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타국에서의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콧마루가 시큰해지는 날이 많아졌다. 결국 그녀는 심한 우울증과 향수병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엔 매력적으로 보이던 서울도 점점 싫어졌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한국말을 못해 누구를 만나도 바보처럼 앉아 있어야만 했다. 어느새 모국어도 친구도 다 잃어버리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는 말도 못하고 혼자 울면서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때로는 마음이 곤두박질치며 당장 독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은 TV에 외국 사람들도 많이 출연하니까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제가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관광객 취급을 받았어요. 도시 사람들은 지금도 저를 만나면 ‘젓가락 사용 아주 잘하네요’ 같은 말들을 해요. 그런 대화는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들에게 저는 영원한 이방인인 거죠. 그게 힘들었어요.”
삼척에서 정이 들다
안산 한양대학교에서 독일어 강사로 7년 동안 일하면서도 외로움은 치유되지 않았다. 독일과는 분위기가 다른 교수 사회도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강원도에 집을 마련하자고 했다. 그녀는 시부모님과 함께 갔던 시골을 떠올렸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을 환하게 열었던 곳.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생활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을 그리워했던 그녀는 시골로 들어가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영영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됐다. 불안했지만 도시의 일상에 잔뜩 지쳐 있던 터라 시골집을 구하러 가는 남편을 따라 나섰다. 그리고 해발 700m고지 삼척 산중에서 다 쓰러져가는 집 한 채를 발견했다.
“운이 좋았어요. 화전민이 살던 땅을 구하고 싶어 했는데 거의 1년 만에 하늘 바로 밑 햇살이 가득 쏟아지는 곳에서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땅을 발견했어요. 남편은 기분이 좋아 ‘와~ 진짜 화전민이 살던 곳이네’ 하고 소리쳤어요.”
화전민 가옥을 구입한 뒤 두 사람은 도시에서보다 일상이 더 바빠졌다. 전기도 끊기고 재래식 화장실밖에 없는, 잡풀과 거미줄이 가득해 쓰레기더미처럼 보이는 집을 치우다 보면 하루가 다 갔다. 지인들은 이런 집에서 불편해 어떻게 사냐며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지으라 조언했지만 부부는 옛집을 살려보고 싶었다. 특히 그녀는 구석구석 쓸고 닦고 광을 내면서 옛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상상하는 게 즐거웠다. 그녀에게는 그냥 빈집이 아니었다.
“독일 사람들은 오래된 집을 좋아해요. 콘크리트로 지은 집보다 훨씬 기품이 있거든요. 삼척에서 산 집이 100년도 더 된 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 집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속속들이 들여다봤어요. 박물관에서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옛 사람의 손길과 마음까지 느꼈다고나 할까요. 집을 떠받들고 있는 나무 기둥과 격자형 문틀, 마루, 그리고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며 손때를 묻혔을 바가지와 그릇들이 폐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어요.”
두 사람은 한동안 옛집을 복원하는 일에 빠져 지냈다. 몸은 고단했지만 재미있는 놀이에 중독된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잡풀과 먼지 속에 묻혀 있던 가옥이 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부부는 노다지를 찾아낸 양 행복해했다. 마음껏 늘어져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기에 딱 좋은 집이었다. 8부 능선에 눈이 푹푹 내려 갇혀버리면 마치 세속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사람들처럼 즐거워했다. 봄이 오면 그녀가 좋아하는 해당화를 잔뜩 심었다. 심심할 때는 트로트를 틀어놓고 따라 불렀다. 그새 두 마리의 고양이가 가족이 됐다. 배가 고프면 청국장을 끓이고 산에서 뜯은 나물을 무쳐 밥상을 차렸다. 그렇게 자연 속 맨발의 시간들과 서서히 정이 들었고 그녀는 독일을 떠난 뒤 찾은 ‘새 고향’에서 비로소 안식을 얻었다.
새로운 놀이터
최근 그녀는 또 다른 정원을 가꾸느라 분주하다. 바로 독일식 카페 ‘유디트의 정원’. 5년 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만두고 경포호 근처에 예쁜 카페를 하나 짓더니 벌써 4호점까지 열었다 한다. 느리게 사는 걸 좋아하는 분이 어쩌자고 일을 자꾸 벌이시냐 물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이곳 강원도에 와서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의외로 유럽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독일 소개도 하고 서로의 문화 차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 싶었어요. 수다를 떨기에는 이런 공간이 좋잖아요. 또 독일이 그리울 때쯤 핑계를 대고 건너가 가구를 직접 고르는 일도 재미있고요. 그동안 들여온 물건들이 벌써 수백 점이나 돼요. 그러다 보니 자꾸 정원을 넓히게 되네요.”
그녀가 다시 그리는 그림이 어떤 모양새가 될지 슬쩍 궁금해진다. 한국에 와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는 그녀는 그것들에 더 집중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산책, 독서, 자연, 고양이, 정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산책할 때는 온몸의 감각기관을 열어놔야 해요. 그냥 걷는 건 의미 없어요. 저는 자연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고 싶어요. 내 마음에 얹힌 무거운 짐을 내려주고 평화를 찾도록 도와주기 때문이죠.”
이만하면 한국 사람 되려고 더 이상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의 풍경과 음식을 사랑하고 좋아하게 됐으니까.
사랑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유배한 곳에서 그녀는 이제 낙원을 찾은 것일까.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캠핑카로 관광지를 옮겨가며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는 생활은 시니어가 한 번쯤 생각해보는 로망 중 하나다. 평생을 직장과 집에 얽매여 살았으니, 구속되지 않는 삶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캠핑카는 중년의 욕망을 쉽게 해소해줄 수 있는 도구로 보인다. 그런데 요즘에는 캠핑카가 현실 탈출의 도구뿐만 아니라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도 쓰인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귀가 솔깃하다. 꿈꾸던 시골생활도 즐기며 돈도 벌 수 있다니.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캠핑카와 카라반(caravan, 캠핑용 트레일러)은 같은 물건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오토캠핑의 대표적 수단이라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캠핑카는 자동차와 결합해 스스로 동력원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반면, 카라반은 다른 자동차 뒤에 결착시켜 끌고 다녀야만 이동이 가능하다. 단순히 생각하면 혼자 이동할 수 없는 카라반은 캠핑카에 비해 매력이 떨어질 것 같지만 업계에서 인기가 높은 것은 오히려 카라반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예산 부담은 적고 매각은 쉬워 인기
관광업계에서 카라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전후. 전국에 펜션 조성 붐이 일다가 인기가 한풀 꺾이면서 좀 더 자연 친화적인 캠핑과 카라반에 주목하게 된 것. 외국산 일색이었던 카라반 시장에 국산 제품이 하나둘 출시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카라반의 원래 목적은 이동이 가능한 숙박 공간 제공이지만, 한자리에 정박시켜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캠핑용으로 쓰려면 주거뿐만 아니라 수도, 전기, 화장실 등과 함께 관련 위락 시설까지 제공되어야 하므로 관광객에게 카라반만 대여해서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카라반이 인기 있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체험 아이템으로 활용되면서 숙박까지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조성에 필요한 예산이 펜션이나 민박과 같은 기존 숙박 시설에 비해 훨씬 저렴한 것도 장점. 심지어 업계 관계자들은 “땅만 있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다.
펜션을 지으려면 건축허가 등 과정이 복잡하고, 건축비 역시 최소 1억 원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이에 반해 카라반은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는 5~6인용 1대당 3000만 원 전후면 구입이 가능하다. 여기에 전기나 수도 등 제반시설의 설치비도 1대당 500만 원 정도밖에 안 든다. 이에 반해 카라반 대여료는 웬만한 펜션의 숙박비와 비슷하거나 비싼 수준이다. 여기에 매력적인 또 하나의 장점은 이동이나 처분이 쉽다는 것이다.
집은 이동이 불가능하다. 외진 장소에 지어진 펜션도 제 값을 못 받기 일쑤다. 급매가 필요할 땐 토지 가격으로만 거래가 이뤄지기도 한다. 반면 카라반은 원하는 곳으로 쉽게 이동시킬 수 있다. 그러한 점 때문에 처분도 빠르다. 실제로 중고 카라반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중고장터를 통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은퇴한 시니어가 적당한 장소를 찾아 별장으로 사용하기에도 좋다.
지자체도 앞다퉈 조성에 나서
이런 장점들에 매력을 느껴 카라반을 기반으로 한 캠핑장을 운영하는 곳이 많아졌다. 각 지자체도 대표적인 곳 중 하나다. 지자체 입장에선 토지 확보가 용이한 데다 카라반 캠핑장 예산 확보 부담도 적고, 설사 사업을 철수하는 상황이 와도 큰 손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주시와 영덕군은 카라반을 확보해 자체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국민여가캠핑장 조성 사업 일환으로 강릉 연곡해변과 삼척 장호해수욕장을 선정해 캠핑장을 조성했다. 이들 시설에는 총 25대의 카라반이 설치됐다.
또 국제행사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숙박 수요가 있을 때도 카라반이 활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마무리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패럴림픽 오스트리아 선수지원단은 국내 기업인 유엘피가 평창에 조성한 카라반 타운을 숙소로 이용했다.
국산 카라반을 공급하고 있는 이기순 카라반파크 대표는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관광객들의 욕구와 시설 조성에 위험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업주들의 요구가 맞아떨어지면서 카라반 캠핑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최근에는 제작과 운용에 대한 국산 카라반의 경험이 쌓이면서 한국의 계절적 특수성으로 인한 누수나 동파 같은 기술적 문제들도 보완된 상태”라고 말했다.
카라반 캠핑장 관련 제도 개선 중
물론 땅과 카라반만 확보한다고 해서 뚝딱 캠핑장이 들어서는 것은 아니다. 다소 복잡한 등록 절차가 필요하다. 당연히 자동차면허도 필요하고 등록 여부도 결정해야 한다. 카라반은 차량의 총중량이 750kg 이상인 경우 특수면허에 속하는 견인면허가 있어야 이동시킬 수 있다.
이와 별개로 카라반 캠핑장에 대한 법적 규제가 이슈가 된 사건이 있었다. 2015년 카라반을 설치한 강화도 글램핑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한 사건은 카라반의 제도적 허점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자동차관리법상 원동기에 의해 육상에서 이동할 목적으로 제작된 용구와 견인되어 육상을 이동할 목적의 요구 또한 자동차로 정의된다. 때문에 견인용으로 제작된 카라반은 엄연히 등록이 필요한 자동차다. 자동차등록이 된 차량은 운행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숙박업을 위해 활용하면 불법 소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 규정이 있다. 자동차관리법 제70조에는 도로 외 장소에서만 사용하는 자동차는 자동차등록이 필요 없도록 특례를 뒀다.
그래서 한때 경찰이나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가 입장 차이를 보였지만, 문화체육관광부가 관광진흥법 시행령 등을 통해 카라반 캠핑장과 관련한 제도를 개선하면서 일단락됐다. 카라반 사업은 이제 야영장업 관광사업자로 사전 등록을 하면 된다. 국산 카라반이 대부분 운행을 고려하지 않는 정박용, 숙박용으로 제작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동차등록을 하지 않고 아예 야영장용으로 제작되고 있는 상태다. 이로 인해 구조나 인테리어도 운행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외국 제품과는 많이 다르다.
안전하게 운영하려면 영업배상책임보험 등 사고 방지나 보상을 위한 보험 가입도 필요하다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한다. 또 장기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카라반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 필요하다. 최기석 델타링크아시아 과장은 “카라반의 장기적인 운영과 관리를 위해서는 사업주가 간단한 정비 지식을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면서 “사업적 활용을 고려한다면 무조건 고가 제품을 고집하는 것보다 구조가 단순하고 정비성이 좋은 제품이 적합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삶에서 행복을 충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 한다. 그것을 다하며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중견 여행사 ‘베스트래블’을 경영하는 음식·여행 칼럼니스트 주영욱 대표(57)가 그이다. 이외에도 사진가, 팟캐스트 DJ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노는 게 일이다. 그의 별명은 문화 유목민, 호모 루덴스(유희하는 인간)다. 한마디로 노는 사람이다.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을 일해온 그는 2013년 52세의 나이에 여행사를 창업, 인생 2막을 ‘문화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뛰는 사람에서 ‘튀는 사람, 노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 그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들어보자.
주영욱 대표는 여행, 음식은 물론이고 미술, 음악, 사진 모두 전문가 수준의 취미를 갖고 있다. 57세, 보통 사람은 이제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할 때다. 그는 하나씩 실행해나가며 지워나가느라 오히려 홀쭉하다. 고교 시절부터 꿈꿨던 DJ의 꿈은 팟캐스트 활동으로, 음식 칼럼을 쓰고 싶다는 꿈은 중앙일간지 연재를 통해 실현했다. 이외에도 가상역사소설, 공상과학소설로 저술을 준비하는 등, 그의 꿈은 산지사방 전 분야에 걸쳐 뻗쳐 있고 진행 중이다.
얼마 전 그는 왼쪽 팔목에 ‘매버릭’(Maverick, 개성이 강한 사람)이란 문신을 새겼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대 젊은이들처럼 멋부리기 유행을 타서도, 폭력배처럼 위협을 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매버릭, 말 그대로 개성이 강한 사람으로 편견과 습관에 갇혀 살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이고 자유선언이다. 그는 “세상의 터부 내지 스스로의 금기를 깬 느낌 때문인지 시원했다”며 “세상에 길들여져 탈색되지 않는 자유인으로 살겠다는 의미에서 했다”고 말했다. 그가 정기적으로 단식과 명상을 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비우는 것도 본질과 개성을 찾기 위한 일환이다. 그는 비우고 내려놓고 편견의 곁가지를 쳐내야 핵심에 집중해 생생해진다고 말한다. 삶이나 몸이나 생각이나, 심지어 음식의 맛도….
마케팅 리서치 분야에서 25년간 일하며 미국, 일본, 프랑스 글로벌리서치 사의 한국법인 CEO를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52세의 나이에 이종 분야 창업을 하신 게 특이합니다.
“경영상 이견으로 외국 회사 한국법인 CEO를 그만두고 됐어요. 20대 때부터 몸담아온 마케팅 리서치 일을 다시 할까도 생각했어요. 마케팅 리서치는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 본질에 집중하는 일이거든요. 제 성격의 완벽주의랑 맞아 신나게 일했어요. 25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스스로 타성이 느껴지더군요. 현재의 삶에 그럭저럭 안주하는 내 모습이 싫어졌습니다. 아직 젊은데 작은 성공에 취해서 한 달에 보름씩 골프를 쳐가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불안하기도 했고요. 재미가 제 삶의 중요 요소예요. 좋게 말하면 글로벌 마인드, 나쁘게 말하면 역마살이라고나 할까요. 익숙한 길보다 가지 않은 길, 새롭게 흥분할 수 있는 것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나를 던지고 싶었어요.”
주 대표께서 생각하는 여행의 재미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여행의 가장 큰 의미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사고를 유연하게 해줘요. 이분법적 사고에서 절로 벗어나게 한다고나 할까. 여행 가면 늘 낯선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룰을 따르고 새롭게 생각해야 하잖아요. 그런 게 제 성격에 맞아요. 철이 안 들어서 그런가봐요. 추하다vs아름답다, 옳다vs그르다의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게 해줘요. 편견을 깨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지요.”
그는 인도 여행을 갔을 때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초라한 행색의 인도인이 자기 배를 타달라고 호객 행위를 심하게 하더란 것. 다음 날 아침 숙소 앞에서 넘어져 잠깐 쉬고 있을 때였다. 그가 다가오기에 또 호객 행위를 하러 온다고 생각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고. 알고 보니 약을 주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여행지에서 매번 시시각각 깨닫는다고 털어놓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 사업을 하는 것은 별개인데요. 창업을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고품격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 하잖아요. 저는 그게 여행 자체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400회 이상 해외 여행한 경험이 있으니 그런 기획을 잘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여행 계획을 짜면 모두들 즐거워하며 ‘이런 프로그램은 여행사도 못 짠다. 너, 나중에 여행사 차려라’ 하고 농담할 정도였거든요. 두 번째는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여행업은 미래 산업으로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나름 판단했지요. 세 번째는 인맥에 대한 자신감이었지요. 제가 온갖 모임의 총무, 회장을 맡아 마당발이었거든요. 아는 VIP들만 모객해도 걱정 없겠다 생각했지요. 금방 착각임을 깨달았습니다만….”
즐기던 여행을 막상 사업으로 해보니 어떻던가요.
“일과 취미는 전혀 달라요. 지금까지 여행사를 하며 실제 고객은 모르는 분들을 개척한 거예요. 아는 사람과 도와주는 사람은 전혀 별개예요. 처음엔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그게 인지상정이에요. 나도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친분보다 전문성을 갖고 냉정하게 판단하거든요. 인생 2막, 새로 도전하면서 과거 인맥을 바탕으로 뭘 해보겠다는 사람을 보면 적극 말려요. 사업은 아는 사람 믿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준비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기본인데도 잊기 쉬워요.”
그는 “내가 여행상품 기획은 잘하니 호텔, 항공료 절감 등 원가 관련 문제 같은 부족한 실무 요소는 남을 통해 보완하면 되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실수였다”며 “사장이 큰 그림 보며 해야 할 일을 직원이 대신 해줄 수는 없더라”고 말했다. 만일 창업 초기로 돌아간다면 여행 가이드를 하든, 자격증을 따든, 직원을 하든 현장에서 밑바닥 경험을 1~2년 반드시 해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자신은 충분한 투자금을 확보해놓고 시작해서 버틸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고백이었다.
그가 히트를 친 것은 고품격 테마여행 중국 장강삼협 크루즈 관광상품 출시다. 동종 상품의 3~4배 가격으로 고품격의 명품패키지를 기획한 게 먹힌 것이다. 2016년 그는 여행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해외여행자와 서비스 제공자(여행사/랜드사/가이드/해외교민/유학생 등)를 직접 연결시키는 맞춤형 여행 도움 플랫폼 ‘티비스켓’을 창업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
주 대표는 “얼핏 마케팅 리서치 경력이 여행업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마케팅 리서치의 본질은 옥석을 가려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이는 여행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직관적으로 ‘좋다, 나쁘다’로 끌리기보다 호기심의 본질과 원인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주 대표와 대화를 하며 특이한 모습을 발견했다. 인생의 우선순위로 재미를 이야기하고, 본인도 재미있게 살지만,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거나 유머가 넘치는 편은 아니었다. 첫째, 둘째, 셋째 하는 식으로 정리를 해서 설명하고 단어의 정의를 내린 후 논리를 전개해나가는 방법으로 대화를 했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나라 상위 2%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 회장을 지냈다.
음식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시지요. 일간지에 연재도 하셨고 ‘이야기가 있는 맛집’이라는 책까지 내셨습니다. 일반 음식 칼럼과는 달리 식당 셰프, 사장의 인생 사연을 곁들이는 게 특색이더군요. 잘되는 식당의 비결은 무엇이던가요.
간단히 말하면 기본에 충실한 식당입니다. 말은 쉬운데 오래 유지하긴 어려워요. 이런저런 핑곗거리와 유혹 때문에 넘어가기 쉽거든요. 유명한 집과 맛 좋은 집은 달라요. 진정한 맛집의 음식에선 주인의 정성과 열정이 느껴져요. 손님을 지갑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 자체에 자부심을 가진… 결국 음식은 재료맛, 손맛, 칼맛의 조합이거든요. 주인의 정성이 깃든 음식은 첫맛, 중간맛, 끝맛이 일관되게 같아요. 단맛이나 자극적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은 첫입엔 당기지만 끝맛이 좋지 않아요.”
주 대표는 ‘맛집을 고르는 비결’로 2가지를 귀띔해줬다. 사장이 직접 요리하는 곳, 오랜 전통을 가진 곳, 이 두 기준으로 고르면 틀림없다는 것.
요즘 상(上)남자는 상(床)남자, 상 차리는 남자란 농담도 있더군요. 집에서 요리를 잘 하십니까.
“한동안 열심히 배웠지요. 내 손으로 메뉴에 따라 음식을 만드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의욕이 넘쳐 비싼 칼이랑 파스타 냄비만 잔뜩 사놓고선 그만뒀어요. 손이 입을 못 따라가 중년 남자의 작심삼일 셰프놀이에 그쳤지요.(웃음) 애들이 먹지 않으니 요리할 마음이 없어지더군요. 그냥저냥 요리는 재미있는데 뒷정리 설거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내의 고마움을 뒤늦게 깨달았답니다. 요리를 배우겠다는 동년 친구들에게 충고해주는 게 있습니다. 음식 맛은 고가의 장비랑 상관없으니 비싼 그릇과 도구는 사지 말라고요. 고급 골프채를 새로 샀다고 골프 스코어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해주지요.”
음식 칼럼니스트가 꼽는 최고의 음식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하는 음식은 아내가 해준 김치찌개입니다. 힘들고 지쳤다가도 돼지고기 넉넉하게 넣고 끓인 김치찌개만 먹으면 마음이 순식간에 풀려요. 나의 소울 푸드라고나 할까요. 밖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지친 와중에서 집밥 해주는 정성을 알기에 일절 불평 없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반찬투정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답니다. 음식은 입보다 마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소박한 집밥 한 끼가 어느 산해진미보다 더 맛있게 기억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최근 아프리카 여행 때는 가수 휘성 씨 뮤직비디오 촬영도 하셨다면서요. 산악자전거 타기, 사진가, 종횡무진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여행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 여행 전문 케이블 TV를 만들고 싶어요. 경영자로서 저는 수치에 그렇게 밝은 편이 아닙니다. 선한 영향,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업이 자리가 잡히면 직원들을 소사장으로 만들어 파트너 관계로 경영하고 싶어요. 좋은 음식이 그렇듯 뒷맛이 좋고 오래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김치찌개같이 질리지 않고 따뜻한 사람으로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핸드폰을 꺼내 자신이 DJ로 활동하는 맛집탐방 팟캐스트를 들려주었다. 촉촉한 7080의 감성 어린 목소리로 사연을 곁들여 맛집을 소개하고 있었다. ‘꿈이 있는 자는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다음에 만날 때 그가 얼마나 더 ‘홀쭉해진’ 버킷리스트를 갖고 나타날지 궁금해졌다. 그때 같이 먹을 추천 식당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