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살아 계신 것만 같은 어머니! 그곳 어머니 계신 곳은 참 좋은 나라이지요? 어머니는 늘 평온하시며 묵묵히 베풀며 살아오셨기에 저 하늘나라 어딘가에 편안하게 계시리라 생각해봅니다.
어머님 막내아들 저희 가족도 덕분에 이제 어느덧 60세 고개를 넘기고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 살아생전에 하시던 말씀 “너희들 막내 잘사는 것 보고 저 세상 가야 할 텐데”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결국은 걱정만 끼쳐 드린 채 어머님을 보내 드려야만 했던 지난날, 그때는 왜 그리 철이 없었던지 그 말씀을 뼈져리게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유난히도 어머님을 많이 닮은 막내아들, 저희 부부 지금까지 얼마나 멀고 긴 시간들을 열심히 달려왔는지 모릅니다. 지난날은 비록 찢기며 부딪히며 살아온 시간들이었지만 이제 엄마의 자리 아빠의 자리 그 소중함 만으로도 서로의 부족함 감싸 안으며 남아 있는 시간들에 최선을 다할 것 약속 드릴께요.
어머니! 그거 생각나세요? 갓 시집온 며느리가 어머니께 김치를 손으로 찢어 달라고 하던 날 말에요. 어머님은 어이가 없으셨는지 멍하니 저를 쳐다 보셨고 아버님은 “그래 새 아이는 선생님이니까 아이들 앞에서 김치냄새 풍기면 안돼. 당신이 해줘요.”
어머님은 아무 말씀이 없이 내 밥 수저 위에 얹어 주시던 그때, 그 김치 맛을 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답니다. 엄마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라온 저이기에 시어머님을 친정엄마처럼 따르고 싶었으니까요. 이제 늦게 나마 그때 모든 일들 다 깊이 감사드릴께요.
무슨 때마다 찾아 뵐 때면 저희가 사 들고 간 것들을 너희들 먹으라며 도로 다 싸주시고 오히려 차 트렁크에 하나 가득 채워 주시던 어머니.
어머님 장독대에는 누구라도 퍼주시기 위해 늘 넘쳐나던 항아리의 행렬들. 이제는 어머니가 떠나시고 남겨진 것들은 모두가 그대로지만 어머님이 즐겨 찾으셨던 경기대 뒷산 형제 봉 산꼭대기 낙엽 덮인 그 자리를 저는 영원히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어머님이 아주 멀리 떠나시던 날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리 없이 눈감으며 아무 말이 없으시면 평온할 수 있음을, 한줌의 재가 되어 하얀 종이위에 쓸려나감은 자연으로 흩어질 수 있음을, 불러도 불러 도 대답 없는 외침의 고요함 뒤에는, 뒤늦게 울부짖는 넋 나간 후손들의 흐느낌뿐이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아무것도 이고 지지 않고 그저 빈손으로 눈감고 간다는 것을, 그리고 가신 뒤 남아있는 영혼들의 서로 갖겠다는 삶의 욕망으로 가득찬 하얀 상복차림들의 아귀다툼 까지도.
어머니! 저 막내며느리 한가지 간절한 바램이 있다면, 이제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버린 나이먹은 형제들. 어느덧 부모가 되어 어머니처럼 갈 길이 멀지 않은 사람들끼리 진정한 사랑우애로 서로를 느끼며 남은 삶을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는 형제애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어머니! 다시금 어머니를 불러보며 참회하고 그리워하며, 저 하늘 어딘가에서 마치 저희들을 바라보시고 계실 것만 같은 어머니, 이제는 이세상 걱정 다 털어버리시고 평안 하시기를 두 손 모아 깊이 기도 드릴께요. 안녕히 계세요.
5월의 마지막날에 어머니를 그리며.
줄담배를 피웠던 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금연을 시작하였다. 금단현상이 너무 심하여 수많은 중단위기를 맞았으나, 17년 동안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다. 이제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유혹을 다 뿌리치고 금연에 성공하였다.
한여름 더위에 가벼운 차림으로 산에 올랐다. 중간에서 친구와 간식을 들면서 쉬고 있었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면 되는 거예요?” 누구인가 소리쳤다. 주위를 살폈더니 또래 등산객이 조금쯤 흥분한 상태였다.
“담배를 피우다니요?” 반문했더니, “담배냄새가 엄청 나는데요.” 또 들이밀었다. 담배냄새가 났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금연 중 ‘담배냄새’ 금단현상에 매우 시달렸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담배골초였으나 휴일 하루만은 피우지 않았다. 1999년 2월 첫 휴일, 산에서 만난 등산객과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웠다. 월요일 출근하였더니, 큰 사무실에서 생담배 타는 냄새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악취가 내 코에서 진동하였다. 머리가 아프고 헛구역질이 났다.
금연경험자로부터 ‘금단현상’의 한 형태라는 말을 들었다. 손 떨림, 체중증가, 우울 등은 종종 들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고통스러운 금단현상이 악취, 기억력감퇴, 꿈 3가지 형태로 찾아왔다.
악취가 몇 개월간 너무나 심하여 금연중단의 유혹을 수 없이 느꼈다. “금단현상의 강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낮아지지만, 담배를 한 대만 피워도 다시 처음처럼 강해진다.”고 하였다. 수시로 코를 헹구면서 지독한 악취를 이겨냈다.
제일 큰 문제가 기억력 일시 감퇴현상이었다. 폐인이 될 것 같은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생각 끝에 기억력 이상 유무를 테스트하려고 2개의 국가자격시험에 도전하였다. 읽고, 쓰고, 외우면서 기억력 회복에 힘을 기울였다. 다행히 합격의 영광을 안고 금연을 계속하는데 자신감을 가졌다.
꿈에서 담배를 피우는 현상이 제일 오래 갔다. 아주 맛있게 담배를 피우다가 벌떡 잠에서 깨어나 가슴을 쓸어내리곤 하였다. “내 의지력이 이것뿐인가?” 담배가 완전히 꿈에서 사라진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17년 금연 작전은 막을 내렸다. 신진대사가 잘되고 건강해져서 좋다. 깨끗한 시니어가 되어서 좋다. 무엇보다 손주들과 뒹굴고 놀아도 냄새나지 않아서 좋다. 우연히 찾아 온 금연기회를 끝까지 지켜낸 금연성공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동네 xx금고 이사로 있는 친구가 이사장에 출마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필자는 이 xx 금고 이사장 선출 투표권도 없기 때문에 표를 의식하고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 친구로서 편하게 조언을 듣고 싶어 묻는 것이다.
“아니 편하게 사시지 왜? 고난의 길을 걸으려하는가?”하고 본인의 의지를 물어봤다. 지금 이사장은 두 번이나 연임하였기 때문에 규정상 이제는 물러나야하는 호기에다 주위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많으니 출마해 보라고 주위에서 권유한다는 것이다.
“출마하면 당선가능은 확실한가?”
“꼭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분위기상 붙어 볼만해! 나오라고 권유하는 사람도 많고.”
몇몇 사람이 “당신은 우리 동네 오래 살아 아는 사람도 많고 해당 xx금고 발기인에다가 이사로 간접 경영에 참여한 경험도 있고 게다가 그 정도 재력이면 잿밥에 눈독들일 이유도 없으니 청렴하게 운영할 것이 아니냐?" 고 적극 출마를 권유한다는 의견을 보탰다. 들어보니 외견상 자격은 충분하다.
필자가 말했다. “재력, 신망, 오래 산 안면 이런 것은 과거에 바탕을 둔 성적표에 불과하다. 물론 투표하는 대의원이야 이런 것에 방점을 두고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본인이 이사장이 되고나서 무었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해 보겠다는 미래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갑자기 떠밀리 듯 출마하여 당선되어도 본인이 뭘 하겠다는 뚜렷한 좌표가 없으면 흥미를 잃어버리고 산뜻한 변화를 기대해 찍어준 사람도 곧 실망한다. 필자가 왜? 하려는 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출마 결심을 해야 한다.”
“이미 정해진 xx 금고의 내부 규정대로 운영하는데 무슨 미래 청사진이 필요한가? 사심을 버리고 제도를 벗어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지”
“글쎄 일견 맞는 말이지만 알파고가 바둑의 신인 이창호를 이기고 주식투자도 컴퓨터가 사람보다 한수 위라고 하지만 세상일이 제도 되로만 굴러간다면 사람이 왜 필요하겠는가? 자네 xx금고에서 그동안 이사로 활동했으니까 돌아가는 분위기도 잘 알고 뭘 개선하면 되겠다는 것도 아니까 그걸 적어보고 내 임기 내 이런 일을 하겠다하면 이게 청사진이지 타임 스케줄도 그려 넣으면 더욱 신뢰감을 주지 않겠나? "
필자가 선 듯 동조를 하지 않자 약간 실망하는 눈빛이다. 그는 본성이 친절하고 부지런하여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뛰어다니며 일을 잘 할 사람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뭐를 위해 어떻게 동분서주 할 것인가? 무계획하게 움직이는 것은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 보다 못하다.
선출직에 나가려는 사람은 당선만 눈앞에 그려서는 안 된다. 당선 후의 조직을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청사진이 있어야한다. 임명직은 임명권자가 임명하려는 사람의 각종 기본 자료를 갖고 있다.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종합 판단하여 임명하면 된다. 선출직보다 실패의 확률은 오히려 적다.
선출직은 민주주의 방식에 따라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이 당선된다. 믿어 달라! 도와 달라!, 열심히 일하겠다! 하는 추상적인 말로서 표를 구하면 곤란하다. 내가 뭘 하겠다는 말을 하고 투표권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선거다. 학벌이나 단지 얼굴 안다는 안면만으로 뽑아준다면 역량이 뒤진 사람이 당선될 확률이 있다. 정치권에서 공약을 내걸고 심판을 받는 것처럼 모든 선출직은 크든 작든 운영 청사진을 내걸고 한 표를 부탁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정년퇴직하고 약 1년을 쉬었다. 43년이라는 길다면 긴 세월을 한결같이 직장에 몸담아왔던 필자f에게 ‘정년퇴직’이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생경하기조차 했지만 길고 지루했던 그 세월에서 해방된다는 느낌은 처음에는 아쉬움보다는 홀가분함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직장생활로 인해 하고 싶어도 못했던 취미활동 시간도 늘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산과 강을 찾아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에 다소 설레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이 훅~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알수 없는 공허함이 점차 마음속에서 자리를 넓혀갔고 삶의 현장에서 살짝 비켜 앉았다는 느낌은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듯 한 소외감과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사실, 정년퇴직 직전에 가끔씩 이런 기도를 했다. 만약에 다시 어떤 직장을 갖게 된다면, “그냥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괜찮을 것같으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염원을 담았다.
퇴직 후, 채 1년도 못 놀고 각별한 지인을 만날 때마다 일 타령을 했더니 어느 날, 느닷없이 출근을 권고 받았다. 고등학교 동창생이 콜을 한 것이다. 젊은 시절, 제조업에 뛰어들어 고생을 낙으로 삼으면서 열심히 살아온 그 친구가 이제는 분당에서 제법 규모를 갖춘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집에서 답답하게 있지 말고 바람도 쏘일 겸 1주일 2~3번씩 공장에 나와서 일을 하면 어떨까?” 라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아~드디어 기도가 하늘에 닿아 이루어졌구나”라고 하면서 기뻐하였다. 의료기 제품을 생산하면서 작지만 알차게 성장해온 그 친구의 공장에 출근한 날, 나는 온종일 서서 일해야 했다.
달랑 점심시간 50분을 빼고는 규정된 휴식시간도 없이 온종일 서서 일을 해야만 했다. 제조업의 현실이었다. 1년간 푹 쉬었던 필자의 근육과 뼈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각종 관절보호대를 제조하는 작업장에서 필자는 가장 힘들다는 다리미실로 처음에 투입되었다. 스팀다리미실에서 후끈후끈한 스팀열기를 얼굴에 받으며 온종일 서서 작업을 해야 했기에 팔도 아프지만 허리와 척추가 가장 뻐근하고 아팠다. 생소한 막일이 안 쓰던 근육의 경련을 일으켰다. 하루는 저녁에 잠을 자다가 척추경련이 일어나 한밤중에 아내가 주무르고 맛사지 하고 요란법석을 떨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공장에 출근하는 첫 날, 전철안에서 이런 기도를 했다. 반드시 3개월은 견디어 내고 그 다음엔 꼭 1년을 견디면서 자신의 의지를 실험해 보겠다는 굳은 다짐이었다. 퇴근하는 전철안에서 필자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겨 졸다가 한 역을 지나쳐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 정신 차려야지!”
헌데, 참으로 놀라운 변화가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3일이 지나고 1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다 보니 서서히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힘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출근하는 전철과 버스안에서도 비로소 여유로운 생각을 하게되었다.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야 직장에 도착하는 상황이었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출근하는 콩나물시루 같은 마을버스 안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나도 그 속에서 버들가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 3개월을 눈앞에 두고 있다. 월급도 두 번이나 받았다. 힘들게 일을 하고 받은 돈이니 만치 쉽게 쓸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 바쁜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 그들과 부대끼고 호흡하면서 예전의 그 허전함이 조금씩 채워져 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필자가 이 나이에 언제 다시 이렇게 리얼한 세상속의 삶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 콩나물시루 같은 마을버스 안에서 격하게 부대끼면서 출근하는 이 시간이 내 마음에 행복의 근원임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급격하게 경제발전을 이룬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사람들은 그중 하나가 고등교육을 받은 풍부한 인력에 있었다고 한다. 세상의 부모들은 왜 아이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일까? 필자는 철이 들면서 이런 의문을 품고 있었다.
오늘날 자라나는 대부분의 학생은 지엽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핵심적인 답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취업이나 결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알아야 면장(免牆)을 한다는 말도 바로 그런 말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
( Scientia potentia est., Knowledge is Power.) “ 라고 한 말도 같은 맥락이다.
부모의 사후에 자식들이 혼자 힘으로 잘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삶이란 좋아하는 것을 공부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좋아하는 것을 공부하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고 깊이 깨달아야 변한다. 그리고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 해야 한다. 그래야 편견에서 벗어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 의해 바뀌어야 할 때 나의 생활은 힘들어질 수 있다.
학문이란 어떤 분야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익히는 것이다. 어떤 지식이든 항상 의문과 의심을 갖고 비판적으로 접근할 때에만 참된 나의 지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이라는 것은 목적일까? 수단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에 대한 답은 논어에도 나와 있다. “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 이라고 공자가 말했다.
즉 “ 과거의 학자들은 자신의 인품을 갈고 닦기 위해 공부를 하였지만 오늘날의 학자는 다른 사람으로 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와 같이 해석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이 공자와 좀 다른 점은 자신을 갈고 닦아 나오는 빛으로 세상을 결론적으로 위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문을 하는 동안에는 목적이지만 결과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학문을 하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필자가 교육학 관련 공부를 좀 하면서 내린 결론은 좀 다르다.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성적표가 A+를 받는 것이 아니고 올바른 관(觀)을 형성하는데 있다고 본다. 한 발 더 나아가서 공부를 한 사람은 긍정적인 자아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본다. 비록 성적표가 A+가 나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긍정적이지 못하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다면 그는 교육을 잘 못 받은 것이고 그 사람을 공부를 잘못한 것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성공한 사업가 카네기가 젊은 시절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실의에 찬 어느날 빌딩과 빌딩 사이의 네온사인을 보고 용기를 내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American의 앞 글자는 보이지 않고 뒤에서 네 글자 ‘ I CAN“ 만 보였다고 한다. 즉 “나는 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는 것이다.
일화 같은 이야기지만 수긍이 가는 것은 긍정적인 사람은 본인이 바꿀 수 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좋은 것만을 보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무한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간절하게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우리는 가끔 체험하기 때문이다. 원효대사도 “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다렸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만일 학교 성적이 좋지 않다하더라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 긍정은 곧 행복한 삶으로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필요한 기업가 정신의 소유자 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시니어들이 추구하는 배움의 자세는 돈보다는 가치 지향적이어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잘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그런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를 해야 하며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그 폭염 열기가 계절을 초월해 최고조를 달린다. 이에 상응이라도 하듯 나라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곳곳에서 터지고 그 애도의 열기도 식을 줄을 모른다. 가습기 사건, 강남 묻지마 화장실 사건 등등.
희생의 아픔보다 더한 무기력을 채우기 위해 햇살 가득한 베란다 밖으로 세상을 내다보았다. 자연은 여전히 청아하고 맑은 계절의 기운을 창출해 내고 있다. 아직은 살아있기에 성찰하며 그 애도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죽음이라는 낭떠러지 끝에서 마지막 발버둥의 소리들이 귓전을 맴돌며 삶에 대한 허무가 눈물 범벅으로 내 몸을 전율로 뒤흔든다.
아무렇지 않은 듯 걸어 나온 가해자는 살아있고 살기 위해 허둥댔던 피해자는 너무나 우습게 죽어갔다. 삶과 죽음, 산 자와 죽은 자, 그 속에서 엇갈린 경계는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치열하게 싸워야 했던 위급한 상황아래, 죽어가는 자는 무엇을 생각하며 삶의 문전이 얼마나 안타깝게 그리웠을까를 상상하면서 살아서 호흡하는 사람의 가슴에는 그저 아픔으로만 다가올 뿐이다.
그 고귀한 희생 앞에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통계의 수치가 무슨 의미이며 애도의 손길조차 어쩌면 한갓 사치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 부재의 의식적 공백이 치유되지 않는 한 얼마든지 반복되고 또 언젠가 내 자식들, 내 주변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다.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외쳐대던 또 하나의 삶의 의식들이 그렇게 맥없이 사라져간 원인들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진정 넋 나간 한 사람의 병리적 원인으로만 탓해야만 할 것인가?
어느 때 어느 지역에서든 간에 소외 당한 자의 불평등에 대한 작고 큰 보복들, 아니 가슴에 담겨있는 응어리들은 그 정신적 사고를 넘어선 돌발의 범죄덩어리로 이 땅에 언제 다시 떨어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 평등은 그 완전을 보장할 수 없을 만큼 늘 요원 되어야 할 것이며 다만 우리는, 산 자들은 그리고 다행히도 살아 남은 자들은 그 심리적 공백의 허점을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위임 받은 공권력들은 세상을 이간질하고 시대를 대변치 못하는 양심들로 뻔뻔한 지성인들은 그 임무의 시기적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 인듯하다.
힘없는 국민은 위기의 순간에 그저 비명으로만 생을 마감한 희생자와 가족들의 가슴 아픈 삶의 허덕임 앞에서, 그 인간존재의 배타성 앞에서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으며 꺼이꺼이 흐느끼는 속 눈물로 쓰린 가슴만을 적셔낼 뿐이다.
이처럼 온 세상을 슬픔의 도가니로 응분의 잿더미로 남겨놓은 그 희생의 뒤안길에는 어처구니없는 씁쓸함만이 남은 자들의 가슴을 후벼 파낸다.
철저한 배신과 죽음보다 더 무거운 불신으로 기인된 거부반응과 허무감만이 팽배해 있는 세상에는 또 언제 터져 버릴지 모르는 위태로움의 위기와 가치관의 왜곡들이 고스란히 폭염의 열풍에 또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돈과 기계, 물질만능을 신봉하는 인간세계는 아니 인간을 배신하는 행위는 결코 묵과 될 수 없음을 상기하지 않으면 간단히 죽음의 참사는 반복되는 것이리라.
슬픔이 넘치고 화가 나는 국민들은 저기 사라져 가는 영정 앞에 무엇을 어떻게 보답 해야 할 것인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비통한 유가족 들에게 무엇으로 채워 줄 것 인가. 때마다 감당하는 애도의 물결만이 감정의 앙금들을 치유 될 수는 있는 것일까.
가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보이는 비상식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는 몸짓만큼이라도 보여 줄 수는 없는 것 일까.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여리고 파란 잎들처럼 맑고 청아한 세상, 그곳이 존재한다면 단 하루 만이라도 그곳에서 살고 싶다.
우리 한자어에 부부(夫婦)라 함은 지아비 부(夫)와 지어미 부(婦)를 뜻한다.
부부의 날은 2007년 부부 관계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흔들리는 가정의 이탈 속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가자는 취지로 여성가족부 주관으로 만들어진 법정기념일이다. 건전한 가족 문화의 정착과 가족 해체 예방을 위한 행사를 개최하는 의미를 담고 만들어진 특별한 날이다.
매년 5월 21일로, 5월은 가정의 달로 숫자 2는 두 사람이 1은 하나가 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뜻 깊은 부부의 날을 맞이하여, 가정마다 이혼율은 높아지고 그것도 황혼이혼율이 늘고 있는 요즈음에, 바로 내 옆에 있는 동반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특별한 날이기를 소망하면서 설정스님의 인생법문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부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5가지를 소개해 본다.
부부처럼 지중한 인연도 없으련만 서로 잘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함께 나이 들어 가는 방법은 왜 없을 까. 그 소중한 인연을 우리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듯 함부로 대하고 있다.
부부 관계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순리인데 우리는 그것을 역행하며 때로는 이용의 도구로 삼고 있기도 한다. 부부의 인연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더구나 어차피 맺어져 한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과 함께 지어미와 지아비로 천륜으로 맺어졌다면 더욱이 그 엉킴의 타래는 해결해야만 할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부부로 살기 위해서는
첫째 관심을 갖는 것이다.
상대방이 어떠한 상황에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늘 사랑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존중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내 소유가 아니라 취향과 사생활을 존중하며 서로를 격려해야 한다.
셋째 책임져야 한다.
배우자를 이용가치로 생각하지 말고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조건 없이 헌신해야 한다.
넷째 이해해야 한다.
항상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배려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주기 이다.
희망을 주고 사랑과 위로를 주고 때로는 악연일수록 조건 없이 주어야 한다. 좋은 말을해 주고 따뜻한 표정으로 부드러운 언어로 좋은 마음을 보내주는 것은 중요하다. 좋은 에너지는 주면 줄수록 악연은 빨리 풀어진다고 한다.
부부의 날 첫 주창자인 권재도 목사는 “우리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게 소원이에요.”라는 한 어린이의 TV인터뷰를 보면서 그 충격으로 부부의 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필자는 가슴이 울컥해졌다. 우리가 살면서 부부의 인연으로 만나 한 가정을 이루면서 어찌 평탄하기만 했을까. 산 넘으면 고갯길이 또 한고비를 넘기면 다음 산마루가 그렇게 어느덧 인생 반 고비를 넘기며 이제, 저 산 꼭대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있다.
어느 날인가 큰딸아이가 9살쯤 되었을 때인 것 같다. 남편과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크게 싸우고 나오는데, 큰아이가 방문 앞에서 엎드려 절을 하다가 소스라 치게 놀라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필자는 다짜고짜로 뭐 하는 짓이냐고 다그쳤다. 아이는 울면서 말을 했다.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게 해달라고 헤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열심히 문 앞에서 절을 했다고 했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필자는 그날 이후로는 힘이 들 때면 가정에 위기가 올 때면 그날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견뎌오곤 했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멀지 않았다. 돌아서 앉아있는 남편의 머리 칼은 희끗희끗 처량하게 변색되어 있고 어깨는 축 처진 채로 지나온 날을 대변해준다. 미워하며 살아온 날도 더러는 사랑의 앙금이리라.
이제와 더 무엇을 찾을 것 인가. 이제 책 속에 무수히 써있는 보이는 글 보다는, 세상에 널려져 보이지 않는 우리 부부의 삶의 글을 되돌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특별한날, 필자 부부가 좋아하는 간짜장 해물짬뽕이나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다.
어릴 적 천수답 물꼬를 터 물레방아 놀이를 하다가 농사를 망칠 뻔하였다. 그러나 할아버님은 필자를 한 번도 나무라지 않으셨다. 성년이 되어서도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손주를 키우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80년 만이라는 5월의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물놀이장은 여름철 같다. 마땅한 장난감이 없던 어릴 적에는 집 앞 논에서 물놀이하고, 밭에서는 수박·참외·오이를 따먹으면서 놀았다. 배가 고프면 냅다 집으로 달려가곤 하였다.
평상에 앉으신 할아버님은 새참을 막 드시는 때가 많았다. “어서 오너라. 너는 먹을 복이 참 많구나!” 허허 웃으시면서 먼저 손자의 입안을 가득 채워주곤 하셨다. 거의 매일이 평온하게 지나갔다.
어느 날 이웃마을로 놀러가서 물레방아를 처음 보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물을 차고 도는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다. 집에 온 후로도 멋있는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생감에 구멍을 뚫어 막대기를 꽂고 조개껍질을 붙여 장난감 물레방아를 만들었다.
다락 논 물꼬를 터서 물레방아 돌리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관개시설이나 양수기가 없었던 그 시절의 천수답에는 비가 오면 논두렁을 높이 쌓아 모가 완전히 잠기도록 물을 가득 채웠다.
“누가 물을 빼갔느냐?“ 순찰 도시던 할아버님의 불호령이 들렸다. ”누군가 크게 혼나는 모양이구나!“ 나름 해석은 자유였으나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사실은 조금 후에야 깨달았다. 다락 논 한 배미의 물이 다 빠지고 없었다.
“너로구나!” 한 마디 하시고 모른 척 지나가셨다. 엄청 잘못하였음을 직감하고 할아버님 뒤를 조용히 따랐다. 뭔가 꾸지람을 들어야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후로 한 번도 말씀이 없으셨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가까이 사는 아들·딸 가족과 식사하는 때가 종종 있다. 초등학생 쌍둥이 손녀·손자와 바로 아래 외손자의 떠드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이 귀에 붙는다.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은 손대지 않고 잘 먹지 않는 것은 내가 재고 처리한다. 자식에게도 하지 않았던 버릇이다.
이 대목에서 할아버님의 내리사랑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하였다. 제 부모 이야기는 잘 듣는데 할아버지 말은 도통 농담으로 치부해버린다는 사실도 알았다. 할아버지와 손주는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이인가!
잘 부푼 팝콘 같은 탐스러운 벚꽃, 어릴 적 병아리 떼 종종종, 하는 노래가 생각나는 샛노란 개나리, 화전에 쓰이던 고운 분홍빛 진달래, 그 자태가 너무나도 우아한 자목련 백목련, 어느 향수 못지않은 향기로운 라일락, 거기에 쌀밥처럼 풍성해 보여 붙여진 이팝, 조팝나무 등 우리 곁에 가까이 있던 봄을 알리는 전령 꽃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출 즈음 우리는 계절의 여왕 장미를 만난다.
‘of all flowers me thinks a rose is best’ 모든 꽃들 중 최고는 장미라고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말했듯이 장미는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매력이 있다. 아름다운 장미가 전쟁에 얽힌 일도 있는데 15세기 영국의 왕위계승권을 두고 붉은 장미를 문장으로 한 랭커스터 가와 하얀 장미의 요크 가와의 전쟁이다. 그래서 이름도 장미전쟁, 이름만은 낭만적이다. 그들은 두 가문의 결혼을 통해 화해하고 튜더왕조를 세웠다. 이를 기념하여 화합의 상징으로 튜더 장미 문양이 만들어지고 오늘날 영국의 국화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장미는 사랑을 고백하는 연인들의 꽃이기도 하다. 그게 한 송이든 한 다발이든 상관없다. 무릎을 꿇은 남자가 장미 꽃다발을 여자에게 건네는 장면은 언제라도 가슴이 설레고 미소를 짓게 해 준다. 장미는 덩굴장미와 나무장미로 크게 나누어지며 수많은 품종이 있고 모양도 다르다. 화려한 모양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으니 예쁘다고 함부로 만지면 안 되듯이 아름다운 여자일수록 감춰진 가시가 있다고 장미에 비유하기도 한다.
예전 필자가 대학생일 때 5월이 되면 각 학교에서 메이퀸 뽑는 축제가 있었다. 필자는 마음이 곱지 않았던지 공부 잘하고 얼굴 예쁜 학생을 뽑아 여왕으로 추대한다는 그 행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같은 여학생인데 한 명을 가장 높은 단상에 앉게 하고 시녀로 불리는 학생들이 그 옆으로 들러리를 선다는 게 싫었다.솔직히 말한다면 아마 내가 메이퀸이 될 수 없어서 난 심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대 메이퀸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유명한 축제였는데 내가 이대생이 아니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 첫 번째 이유기도 하다.
다른 여대에서도 비슷한 축제가 열려 메이퀸을 뽑았다. 그런데 청파언덕의 우리 학교는 너무나도 낭만적이고 멋진 메이퀸 축제가 있었다. 5월이 되면 다른 학교처럼 예쁜 여대생을 뽑는 게 아니라 본관 교정 앞 화단에 여러 품종의 장미를 심어 번호를 붙이고 가장 아름답게 핀 장미꽃에 학생들이 투표해서 5월의 메이퀸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장미의 품종은 잘 모르지만, 당시 나는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가진 활짝 웃고 있는 장미에 한 표를 주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과 교정을 거닐며 화단에 핀 장미꽃을 감상하던 추억이 나를 아스라이 먼 동화의 나라로 이끌어 주는 것만 같다. 그때가 그리워 가슴이 먹먹하다.
새빨간 예쁜 넝쿨장미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도 있다. 필자는 중학교까지 전차로 통학하던 전차 세대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동대문 넘어 창신동에 있었다. 우리 집은 돈암동이어서 돈암동에서 전차를 타고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 동대문 광장시장 앞에서 내려 동대문으로 가는 전차로 갈아타고 학교에 갔다. 혜화동 로터리에는 아치 모양으로 철제 터널이 있었고 이맘때쯤이면 그 위를 온통 새빨갛고 예쁜 넝쿨장미가 뒤덮였다. 댕댕댕~소리를 내며 달리는 전차에 앉아 꽃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전차가 없어졌다. 신나고 즐겁던 전차통학도 따라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혜화동을 지날 땐 꼭 그 자리를 바라보며 새빨갛고 예쁜 넝쿨장미를 추억한다. 장미의 계절에 잊고 있던 좋은 추억을 꺼내보니 그 시절 그때가 너무나 그리워 마음이 서늘하다.
필자는 유엔이 정한 65세 노인의 나이에 해당되고 건설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니 노인노동자임에 틀림없다. 좌우를 둘러보아도 필자처럼 60이 넘은 늙은 노동자는 보기가 어렵다. 필자는 운(?) 좋게 아직 일을 하지만 건설현장에서는 나이든 사람을 전염병환자처럼 기피한다. 주된 이유는 나이 들면 행동이 둔하고 고집이 세어 부려먹기 어렵다는 선입견이다. 이런 선입견이 여러 곳에서 작용한다. 예를 들면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치기도 한다. 본인의 부주의든 남에게 피해를 입었든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사고는 일어난다. 사고가 나면 난 것이고 부상자는 치료하고 사고 원인을 파악하여 재발 방지대책을 세우고 이미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규정대로 잘잘못을 따져서 조치를 하면 상황은 끝나야 한다. 그런데 다친 사람이 만약 55세가 넘은 사람이라면 왜 이런 사람을 채용했느냐고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튄다. 나이 들었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으로 단정해버리고 그를 고용한 사람은 덤터기를 쓸 각오를 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설현장에서 나이든 노동자는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조심조심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머리도 염색하고 복장도 단정히 하고 가급적 나이를 잘 모르도록 모자를 푹 눌러쓴다. 출근은 빠르게 퇴근은 늦게 한다. 일은 솔선수범하고 늘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아야 한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못해요‘라는 'No’가 아니라 ‘내가 하지요.’라는 ‘Yes’라는 말이 본능적으로 나와야 한다. 늙은 노동자들은 젊은이들과 같은 일을 하며 겉으로는 당당한 채 하지만 속으로는 주눅이 들고 마음은 움츠려 있다. 나이든 사람의 고용을 멈칫하게 하는 암초는 곳곳에 있다. 나이라는 잣대로 정년을 만들어 한창 일할 능력 있는 사람을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내보내는 것도 좀 생각해볼 문제다.
현장은 작업조건 외에도 춥고 덥고 비 오고 눈 오는 날씨와도 싸워야 한다. 봄은 일하기 좋은 계절이지만 봄이 짧아졌다고 한다. 5월의 중순이지만 한낮의 봄볕은 여름처럼 뜨거운 적외선과 얼굴이 검게 타는 자외선을 뿜어낸다. 특히 건설현장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많다보니 근로자들은 땀을 많이 흘립니다. 더우면 더 심하다. 요즘은 중국 황사 바람 탓으로 황사 마스크까지 까지 쓰고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현장에는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도 없다. 잠깐의 휴식시간의 배려를 위해 만들어진 천막그늘 막에 시원한 냉수가 제공되는 곳이 유일한 오아시스다.
사람은 살아있으면 젊으나 늙으나 먹어야하고 잠을 자야 합니다. 더우면 인체는 적절한 온도를 맞추기 위해 땀을 흘립니다. 나이 들었다 해서 땀을 흘리지 않는 예외는 없다. 몸에서 흘러나온 땀 속의 소금물이 작업복을 적시면서 구름 꽃을 그려낸다. 아이들이 오줌 싼 요에서 오줌지도가 그려지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겨드랑이 밑이나 등판에 특히 땀이 많이 배어난다. 땀의 양에 따라 얼룩의 명암이 달라지고 한반도 지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구름 모양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커다란 목련꽃 모양도 만들어 진다. 내가 만든 구름 꽃은 나는 보지 못하지만 남들은 다 봅니다. 앞사람 등에서 각양각색의 구름 꽃을 꽃으로 보면 웃을 수 있지만 꽃으로 보지 못하고 삶의 현장으로 보면 눈물이 난다.
땀이 나서 마르고 또 땀이 나서 마르다보면 머리비듬처럼 하얀 소금가루가 만들어져 떨어진다. 비비고 털어서 입에 넣어보면 찝찔한 소금 맛이 느껴진다. 땀의 소금은 조금전만해도 내가먹은 음식의 일부다. 내 몸의 여러 장기들을 돌고 돌아 할 일을 다 하고 마지막으로 내 체온을 조절해주는 것으로 운명을 다한 고마운 나의 분신이다.
땀이 만든 구름 꽃은 건강의 꽃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노동에 종사할 수 없고 노동자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우선 밥이 없어지고 몸이 건강할 수가 없다. 햇볕에 검게 변한 얼굴도 구리 빛 팔다리에 파동 치는 근육은 남자다움의 과시이자 건강의 상징이라고 추켜세우지만 노동현장에서 건강한 몸은 일하는 연장이며 든든한 삶의 보루다.
땀 냄새가 베어나는 구름 꽃은 행복의 꽃이다. 노동을 통해 받는 돈은 가장 고귀하고 깨끗한 돈이다. 원가에 덧붙여서 이익을 본 돈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쳐서 번 가장 원초적인 몸 팔아 번 돈이다. 어미 새가 입으로 먹이를 물어와 새끼들을 먹여 살리는 것처럼 노동으로 번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행복한 가정의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든다. 나아가 자식에게 미래의 희망을 잉태하게 하는 씨앗 값이 바로 땀으로 만든 구름 꽃값이다.
구름 꽃은 생산의 꽃이다. 오늘 구름 꽃이 그려지고 저녁에 빨래로 지워지고 다음날 다시 그려지고 또 지워지면서 시간이 흘러간다. 이런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맨땅에서 건물이 만들어진다. 건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또 다른 생산을 위해 사용된다. 구름 꽃은 경제를 살리고 순환 시키는 피 같은 꽃이다. 혹 퇴근길의 땀 냄새나는 노동자를 만나더러도 피하지 말고 이들이 산업역군임을 알아줘야 한다. 오늘도 구름 꽃을 만들고 피우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