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관련 인터뷰 글을 연재하며 다수의 귀촌·귀농인들을 만나봤다. 어떤 이들은 만족을 표했다. 어떤 이들은 고난을 주로 토로했다. 만족을 표한 이들 역시 정착에 이르기까지의 시련 술회하기를 생략하는 법 없었으니, 귀촌·귀농이란 대체로 일련의 애환과 동행하는 장정임을 알 만했다. 과연 시골생활의 활보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조용하고 강인한 고라니처럼 시골살
초간정(草澗亭) 원림(園林)을 찾아 길을 나선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있다. 햇살이 따갑다. 매서운 폭염이다. 그러나 땡볕을 먹고 여름 꽃이 피고 과일이 실팍하게 여무니 해를 향해 눈총만 쏠 일 아니다. 접때엔 물 폭탄처럼 장대비 내렸다. 장자 말하길, 자연은 자애롭지 않아 만물을 하찮게 여긴다 했던가. 폭우도 폭염도 무심한 자연의 순행(順行)
산과 산 사이 도로를 줄기차게 달려도 산 첩첩. 깊고 후미진 산간이다. 도로를 버리고 접어든 비좁은 산길 끝자락 산 중턱, 후련하게 탁 트인 거기에 나무선(57) 씨의 거처가 있다. 풍경의 절반은 산, 절반은 하늘. 또는 절반은 청풍, 절반은 구름. 절집 자리처럼 개활하니 명당이렷다.
나무선 씨는 서점을 운영한다. 외진 산골짝 서점을 누가 찾아들
청룡포(淸泠浦). 정작 섬은 아니지만 섬처럼 외진 곳이다. 서강(西江)이 삼면을 휘감아 돌아나가고, 남서쪽 육육봉은 벼랑처럼 가팔라 어디에고 육로가 없다. 일러, ‘육지 속의 섬’이다. 배를 타야 닿는다. 강폭은 넥타이처럼 좁아 도선에 오르자마자 내려야 하지만, 강상으로 펼쳐지는 산수란 풍광명미, 눈을 뗄 겨를이 없다.
배에서 내려 청룡포 안통으로
귀촌 5년째. 김석균(55) 씨는 흙집에 푹 빠져 살고 있다. 그간 수십 채의 집을 지었다. 흙집 일색이다. 흙의 내부는 거대하다. 식물을 기르고 벌레를 양육한다. 생명의 출처다. 흙의 이런 본성과 모성이야말로 자연의 표상이다. 사람의 몸처럼, 흙집 역시 수명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간다. 김 씨는 자연의 생태와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흙집의 미덕에 심취했다
어딜 가도 꽃잔치가 한창이다. 희거나 붉거나 노란 꽃송이들 우르르 일으켜 세우는 봄의 힘. 그걸 청춘이라 부른다. 자연의 청춘은 연거푸 돌아온다. 인간의 청춘은 한 번 가면 끝이다. 조물주의 디자인이 애초에 그렇다. 청춘은 전생처럼 이미 아득하게 저물었다. 바야흐로 생애의 가을에 접어든 사람에겐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가을을 절정으로 가늠하는 사람에겐 여
봄꽃에 설레어 마음에도 꽃물 번진다. 처처에 흐드러진 벚꽃은 절정을 넘어섰다. 꽃잎마다 흩어져 비처럼 내린다. 만개보다 황홀하게 아롱지는, 저 눈부신 낙화! 남도의 끝자락 완도 땅으로 내려가는 내내 벚나무 꽃비에 가슴이 아렸다.
한나절을 달려 내려간 길 끝엔 완도수목원. 칠칠한 나무들, 울울한 숲이 여기에 있다. 사철 푸른 야생의 수해(樹海)다. 천
채우기보다 비우기가 더 어렵다. 채우는 쪽으로 발육한 욕망의 관성 때문이다. 채우면 채울수록 더 허기지는 게 욕심이지 않던가. 지긋이 나이 들어서도 사람은 때로 갈피없이 흔들린다. ‘비우기’에 능하지 않아서다.
귀촌은 흔히 이 ‘비우기’를 구현할 찬스로 쓰인다. 욕망의 경기장인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가급적 빈 마음으로 생활을 운영해 한결 만족스런
백년 안짝에 이 세상을 지나가는 덧없는 나그네. 그게 인생길. 이제 남은 생을 들판에서 일하며 만족을 구가하리라, 하득용(52) 씨는 그런 생각으로 산골에 입문했다. 산촌 노장들이 보기엔 짠했던 모양이다. “멀쩡하게 서울에서 그냥 살지 어쩌자고 내려와 생고생이오?” 오나가나 듣는 소리가 늘 그 소리였단다. 그러나 하 씨의 귀엔 맺히는 게 없는 관전평에 불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