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 산골로 귀촌한 전직 변호사 정회철 씨

기사입력 2018-08-20 14:31 기사수정 2018-08-20 14:31

[박원식이 만난 귀촌 사람들] 술도가에 박혀 사는 산골 ‘일벌레’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술을 즐기다 보니 술 만드는 기술이 궁금해졌더란다. 그래서 양조법을 배웠고, 조예를 키웠고, 마침내 술도가를 차렸다. 최고의 술을, 독보적인 전통주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이게 그의 귀촌 내력이다. 산골 숲속에 터를 잡았다. 된통 외진 골짝이다. 바람소리 물소리 도란거려 술을 익히나? 술 아니라 맹물이라도 향긋하게 무르익을 풍광이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천년 산행’, ‘암자에서 듣다’, ‘산골로 간 예술가’ 등의 저서가 있다.

산골 술도가 사장 정회철(56) 씨의 전직은 변호사. 변호사였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집어치우고 고시학원 강사로 뛰어 이름을 들날렸다. 충남대학교 로스쿨 헌법 교수로도 재직했다. 남들 눈에는 활보였겠으나 그는 도중에 멈췄다. 시골로 내려가기에 마땅한 사정이 생겼기 때문에. 건강에 탈이 났기에. 일밖엔 난 몰라! 그는 그리 속으로 외치며 열렬히 직업 활동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몸에 적신호가 켜진 것.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머리 아픈 증상이 극심했어요. 오랜 세월 누적된 과로로 몸에 과부하가 걸렸던 거죠. 온몸의 기(氣)가 머리로만 몰렸던 것 같아요. 단 5분도 책을 집중해서 읽을 수 없었어요. 밤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정신병원으로 가야 할 상황이었죠.”

“사법고시 준비생들에게 스타 강사로 널리 알려졌었다죠?”

“근 10년쯤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강의를 했어요. 하루 너덧 시간을 내리 강의하는 식으로 열심히 했죠. 제가 고시생들을 위한 헌법 수험서 열 권을 펴냈는데, 날이면 날마다 글을 쓰는 일도 무리였어요. 명예도 좋고 부(富)도 좋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건강부터 되살리고 보자, 그런 생각으로 귀촌을 했습니다.”

“귀촌 이후 건강은 좋아지셨고?”

“강의하고 책 쓰고, 머리의 에너지를 모조리 써야만 하는 강행군에서 벗어나자 몸이 빠르게 회복되더군요. 요즘 다시 머리가 아파지려 하지만.(웃음)”

“양조장 일의 과로로?”

“양조사업 구상은 귀촌 이전부터 나름 충실하게 해왔어요. 양조 공부를 많이 해뒀죠. 덕분에 일의 진행이 빨랐어요. 그런데 전통주 사업, 이게 만만한 게 아닙니다. 일본 술 사케나 서양 와인은 1년에 한 번 빚으면 그만이지만, 저희 토속주는 1년 365일 계속 매달려야 하거든요. 게다가 양조장 개업 7년이 지났지만 아직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요. 그러니 머리 아플 수밖에.”

“적자 발생 원인이, 문제점이, 어디에 있죠?”

“소비자들이 전통술을 잘 모릅니다. 변호사가 만든 술이라 호기심을 가질 법하지만, 별 관심들이 없더라고요. 전래의 청주 문화, 약주 문화는 이미 고사 직전이에요. 거대 기업들이 장악한 유통망을 저희 같은 작은 업체가 파고들기도 어렵고.”

정회철 씨의 양조장엔 ‘전통주조 예술’이라는 상호가 걸렸다. 그 옛날의 고귀한 양조 정통을 살려 예술에 맞먹을 술을 빚겠다는 의지를 실었다. 산중 유벽한 곳에, 수려한 숲속 5000평 부지에, 살림채를 비롯해 완벽한 수준의 양조 시설물들을 구축했다. 본때 있게, 맵시 있게.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뭘 모르고 뛰어들었어요”

개량 한복을 소탈하게 차려입은 정 씨. 안면에 자란 텁수룩한 수염이 입성과 오붓하게 어울린다. 숨어사는 사람처럼 표정은 고요하다. 넘치는 의욕으로, 신명에 찬 근면으로, 그는 오직 술 만들기에 전념해왔단다. 주조(酒造)만을 일삼진 않는다. 양조 기법과 술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체험교실도 운영한다. 게스트하우스도 겸한다. 하지만 아직은 불황! 세상의 그 어디에도 예외가 없다. 사업판이란 적자생존의 정글이라는 거.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이지만, 전국 곳곳에 산재한 군소 전통주 업체들이 고전한다. 그는 그걸 몰랐을까? 몰랐단다.

“뭘 모르고 뛰어들었어요. 상황을 알았다면 덤벼들지 않았겠지요. 몰랐기에 사업 착수가 가능했던 겁니다.”

“그 무슨 신념이 있었기에?”

“우리 선조들이 마셨던 전통주를 제대로 복원해 보급하고 싶었어요. 진정한 민속주를, 장삿속만을 추구하지 않는 술다운 술을 빚는다는 거, 그건 사업 성패를 떠나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 판단했어요.”

“전통주를 만드는 사람마다 자기의 술이 최고라 자부해요. 장인정신을 표방하며. 당신이 만드는 술은 어떤 특장이 있나요?”

“좋은 술은 일단 맛이 빼어납니다. 미각과 후각은 물론, 시각까지를 미묘하게 자극해 만족을 주죠. 또 숙취라는 게 없어요. 그럼 좋은 술을 만드는 관건은 무엇인가? 누룩입니다. 어떤 누룩을 썼느냐에 따라 술의 품질이 결정돼요. 대부분의 업체들은 첨가물이 들어간 인위적 누룩을 사용하는데, 이게 술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겁니다. 저는 직접 자연발효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어요.”

정 씨가 술을 내놓는다. ‘무작53’이라는 이름이 붙은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53도. 조선의 명주 ‘적선(謫仙)소주’를 원본으로 해 빚었다는 정통 증류식 소주. 한 잔 털어넣자 감미롭게 혀를 굴러 뜨겁게 목으로 넘어간다. 그는 증류식 소주 외 약주와 막걸리도 만든다. 술마다 고가격을 매긴 건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자부심의 표출이겠지.

술꾼들은 좋은 술에 대한 얘기만 나와도 엔도르핀이 솟는다. 이태백 이래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술과 더불어 풍진 세상 흥겨이 노닐었던가. 날이면 날마다 막걸리를 마시며 쓸쓸한 이승을 소풍처럼 살다 귀천(歸天)한 천상병 시인의 동류는 또 얼마나 많던가. 술로 구겨진 인생도 숱하지만, 술의 위무(慰撫)로 일어선 인생사도 즐비하다. 가장 복스러운 인생은 술 빚는 자의 것일지도. 향기로운 술로써 세상에 미만한 고독과 고통을 씻는 일에 일조하기에.

“술을 만드는 일, 좋은 술을 빚는 일, 거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정말 즐거워요. 용케도 만족할 만한 술이 만들어졌을 땐 기뻐 날뛰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히죠. 모두들 세상에서 최고는 돈이라고들 하지만, 제겐 술이 최고예요.”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최고의 술’을 만든다지만 부진을 면치 못하는 중이군요. 불안은 없을까?”

“귀촌 전, 진정 기꺼이 즐기며 남은 생 전체를 쏟을 일을 찾았어요. 그게 전통주 사업이었죠. 단순한 술도가가 아니라, 풍류를 중심에 두고, 모두 흥겹게 어울려 놀 수 있는 복합 술 문화공간으로 가꾸고 싶었어요. 그게 꿈이자 목표예요. 불안? 그런 건 없어요. 다만, 화증과 짜증은 많이 늘었죠. 화 폭발의 대상은 와이프이고.(웃음)”

“부인이 무슨 죄? 신사는 여자에게 큰소리를 치지 않는 법이죠.”

“아내가 하는 말, 서울에서 이토록 열심히 일했다면 빌딩을 벌써 사고도 남았을 거요! 저는 일벌레입니다. 부진한 수익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 그 하나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사업상의 향후 전망은 밝으니까.”

“활로를 찾았다는 얘긴가요?”

“예전과 달리 젊은이들이 전통주에 관심과 호감을 갖기 시작했어요. 제겐 고무적인 정황이죠. 어, 이거 맛있네! 기존 막걸리와는 다르잖아! 이게 뭐지? 전통주네! 그런 반응들.”


“우리가 마시고, 남으면 팔자!”

바람 잔 날에 바람개비를 쥔 사람의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람이 일기를 기다리기. 다른 하나는 앞으로 바람처럼 달려 바람 일으키기. 정회철 씨는 냅다 질주 중이다.

“선택과 집중. 돌아보면, 제 인생은 그걸 나름 잘 해왔어요. 뭐든 신중하게 선택하고 가차 없이 몰두해왔죠. 이게 아니다 싶으면 바로 바꿨어요. 이런 저의 삶을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기분으로 조마조마 바라보는 건 와이프이고.”

“어릴 적 꿈은?”

“제가 대학 땐 운동권에서 뛰었어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 할까, 정치인이 되고 싶은 꿈이 좀 있었죠. 그러나 한계를 느꼈어요. 그건 나의 길이 아니다, 그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긴 해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 판단을 했어요. 오늘날 이곳에서의 양조 일, 그건 인생 후반에 발견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술 사업과 적성이 잘 부합하는 거예요? 비즈니스란 허울 좋은 요령과 처세가 무기일 텐데.”

“흠, 얼마 전 너무도 힘들어 난생처음 점집에 가서 사주를 봤는데요, 절더러 한량 타입이라 합디다. 한량? 내가 정말 그런 거야? 반신반의했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정히 그렇다면 잠든 ‘끼’를 살려 재미있게 살면 되겠지, 워낙 모범생으로 성장해 내향적인 성격이 굳었지만 술과 더불어 한평생 즐겁게 살자, 그런 다짐을 해보는 것이죠. 저희 부부에겐 슬로건이 하나 있어요. ‘재미있게 살자!’ 부제(副題)도 있어요. ‘우리가 마시고, 남으면 팔자!’”

떠밀릴 수밖에 없는 거대한 파도에 직면한 것과도 같은, 그런 절박한 굽이를 곧잘 마주치는 게 인생이지만, 웬일인지 파도는 흔히 절로 가라앉는다. 그걸 문득 느끼자면, 순항도 재미요, 난항도 재미다. 자신이 선택한 상황 안에서 자극과 감흥을 발견해 즐기는 데에서 삶의 풍미는 돋아난다.

“귀촌을 해서 목가적인 낭만을 즐기겠다는 태도는 위험해요. 일 속에서 재미와 가치를 구해 행복의 실체를 찾아가는 게 옳다고 봐요. 귀촌을 환상으로 모색하는 건 실패의 첩경입니다. 시골 환경은 예상보다 더 단조롭고 답답할 수 있어요.”

“원주민과 흐뭇하게 지내는 일에도 공을 쏟아야만 하죠.”

“귀촌인들은 마을에서 백년을 살아도 외지인이에요. 애초 마을과 뚝 떨어진 곳에 터를 잡는 게 현명할 수도 있어요. 지나친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

“도시보다 시골에 막대하게 많은 건 자연의 얼굴들이죠. 자연이 주는 안정감, 그건 귀촌으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행운이지 않을까?”

“사계의 변화에 자주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철 맞춰 꽃이 피고, 향기가 번지고…. 아아, 그럴 때면 넋을 잃어요.”

생물과 무생물이 섞인 도시. 생물과 생명이 얼크러져 순환하는, 시골이라는 자연. 자연을 향해 넝쿨처럼 뻗어나가는 마음이라면, 귀촌이란 자못 근사한 여행이겠지.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

정회철 씨가 주는 귀촌 준비 tip

❶ 시골은 돈 버는 곳이 아니라 돈을 줄여 쓸 수 있는 곳이다. 너무 열악한 경제 형편 하에서 귀촌하면 괴로워진다.

❷ 가급적 마을과 떨어진 곳에 터를 잡자.

❸ 시골의 문화 여건은 미비하다.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뭔가를 준비해서 귀촌하자.

❹ 도시에서 맺은 인적 관계를 꾸준히 관리, 지속하자.

❺ 사업을 할 게 아니라면 터를 넓게 잡을 필요 없다. 200평 정도면 텃밭까지 즐길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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