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상상했던 이미지 그대로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었다. 내일모레가 환갑인데 이토록 귀엽다니,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희한한 여인이다. “일단 오늘 하루만 남편을 존경하자!” 그렇게 각오하고 사니 평생의 꿈이었던 현모양처가 저절로 되었다고 말하는 개그우먼 이성미. 한여름 오후의 데이트는 분명 귀여운 여인과 시작했는데 끝
“남편을 변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세요. 여러분에게 딱 맞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분 스스로가 남편에게 맞추는 게 더 쉬워요.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평가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조급함을 버려야 합니다.”
초청 신부님 강론이 있었다. 평일의 성당은 대부분 여자들로 채워졌고 열기가 가득했다.
“신부님 말씀 듣고 용서하며 너그러워지려고 노력하는데
서둔야학을 함께 다니던 동급생들 중에 남몰래 사모하는 선생님을 한 분씩 숨겨둔 아이가 서너 명 있었다. 우리들은 당시 한창 감수성 예민한 16~17세의 꿈 많은 소녀들이었다. 선생님들도 20대 초반의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었으니 그분들을 연모하는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필자 또한 그들 중의 하나였는데 그 당시의 애탔던 심정을 어찌 말과 글
성긴 마대로 캔버스를 만들고 물감을 뒷면에서 앞으로 밀어내어, 마대 올 사이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한 뒤, 앞면에서 최소한의 붓질만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사용하는 물감도 회색이나 검정, 청회색 등 단색으로 단조로우나, 보는 이들에게 고요한 명상에 잠기게 한다.
화가 하종현(河鍾賢, 1935~)은 1960년대 우리나라 앵포르멜(informal, 비정형) 추상
댄스 계에서 나이 든 사람들은 평생 댄스만 하다 보니 바깥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지하철을 무료로 타고 다니는 지공선사의 단계에 올랐으니 시니어 라이프나 노후 대비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이다. 그래서 식사 자리에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해주면 상당히 놀라워한다.
우선 나이가 들면 병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이가 60세 넘은 사
체력 저하 때문인지, 환경 탓인지,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인지, 요즘 시니어들 중에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몸이 늘어진다는 것이다. 모임에도 안 나오고, 기껏 약속을 해놓고도 막상 그날이 되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약속을 펑크낸다. 질책을 하면 힘없는 목소리로 무기력증 같다며 용서를 구한다. 그러면 받아들일
1963년 필자가 서둔야학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 호기심으로 동네 언니들을 따라 며칠째 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화기애애함으로 수업을 하던 분위기가 그날따라 이상했다. 통곡을 하며 우는 선배 언니들도 있었다. 내막을 알고 보니 야학 선배들의 선생님인 김진삼 선생님이 돌아가셨단다. 농사단 자취방에서 잠자다가 문틈으로 새어 든 연탄가스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다.
‘고향 떠나 긴 세월에 내 청춘 어디로 가고 삶에 매달려 걸어온 발자취 그 누가 알아주랴 두 주먹 불끈 쥐고 살아온 날들 소설 같은 내 드라마…’ -케니 김 1집 ‘내 청춘 드라마’ 케니 김(70). 그는 LA의 트로트 가수다. 한국에서 온 연예인도, 주체할 수 없는 끼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소심한 성격에 낯가림도 심하던 그가 무대 위에서 그것도
두 번째 해외근무를 앞둔 김 부장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남들은 한 번 가기도 힘든 해외근무를 두 번이나 가게 된 행운을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다. 10년 전, 첫 번째 해외근무를 갈 때는 여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환희에 들떠 있었던 김 부장이다. 회사 돈으로 생활을 하고, 아이들 영어교육도 받을 수 있고, 5년간의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땐 제법 큰
한국인들은 기계처럼 일해왔다.
그게 한국을 2차 산업의 승자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계처럼 일하는 인간은 기계를 이기지 못하는 세상이 왔다.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인간으로의 회귀,
그것은 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보다 천천히 가야 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보다 멍청해져야 한다는 말이며,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