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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규제지역에 가려진 '알짜' 호재들
- 비규제지역에 가려진 ‘알짜’ 호재들 6·17 부동산 대책이 호재로 작용한 지역이 있다. 부동산 규제를 피해 ‘아직 안전하다’, ‘투자할 만하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수요가 몰린 ‘김포한강신도시’다. 그렇다면 다른 호재는 없는 걸까. 김포한강신도시의 잠재된 미래가치를 살펴보기 위해 직접 찾아가봤다. 2기 신도시 개발사업으로 조성 중인 김포한강신도시를 중심으로 ‘풍선효과’가 나타나 관심이 쏠린다. 6·17 부동산 대책에 이어진 7·10 대책 이후에도 김포한강신도시의 부동산 가치 상승세는 여전하다. 오로지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피해 부동산 가격 불안 요인이 없어졌다는 평가 때문일까. 김포한강신도시의 지역가치 성장이 기대되는 건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대출 규제 등에서 자유롭기 때문만이 아니다. ◇저평가된 풍부한 교통호재 김포한강신도시는 다양한 호재를 품었다. 운양지구, 장기지구, 구래지구 총 3지구로 나뉘어 개발된 이 지역은 광역M버스를 통해 서울 여의도, 서울역, 강남, 인천, 일산 등 인접 도시로의 접근성이 매우 좋다. 김포한강로~올림픽대로 이용 시 20분대 서울권 진입이 가능하다. 또한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는 광역버스 대폭 확대와 정시성 개선을 위한 전용차로 도입 추진도 발표했다. 김포시가 추진하는 사업 구간은 김포한강신도시부터 올림픽대로 여의하류IC까지다. 여기에 김포시 직행좌석 9개 노선이 경기도형 준공영제인 ‘경기공공버스’ 사업으로 추가 선정돼 내년부터 총 14개 노선이 운영된다. 무엇보다 지난해 9월 지하철 9호선과 연계된 김포도시철도 개통에 따른 호재로 투자가치가 상승했다. 김포는 도시가 선형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도시철도 노선이 대부분 주요 아파트 단지 사이를 관통해 운행한다. 또한 김포도시철도의 배차 간격은 3분으로 현재 수송 능력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향후 배차 간격을 2분으로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포한강신도시는 광역급행철도(GTX) 개통 호재도 예상된다. 정부는 수도권 서부지역에 새로운 GTX 노선을 추가 검토해 내년 하반기까지 확정, 발표하기로 했다. GTX 3개 노선 외에 새로운 노선(가칭 GTX-D)을 신설하겠다는 것. 다만 노선의 도입 시점과 대상 지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GTX-D 노선 등을 포함한 ‘4차 광역국가철도망’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현재 경기도와 인천시에 이어 서울 강동구가 자기 지역에 공개적으로 GTX-D 노선 유치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무엇보다 경기도와 김포·부천·하남시가 공동으로 김포한강신도시에서 출발하는 것을 추진하는 만큼, 김포지역 GTX-D 노선 수혜가 예상돼 골드라인 개통과 더불어 일대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김포한강선 노선과 차량기지 유치전도 재부상하고 있다. 김포한강선은 서울지하철 5호선 연장선으로 홍철호 전 국회의원의 요구에 따라 2018년 12월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방안’에 반영된 뒤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가 같은 해 10월 명칭을 확정해 ‘대도시권 광역교통 2030’ 기본 구상안에 포함됐다. 이외에 인천지하철 2호선이 김포를 통과해 GTX-A 노선 킨텍스역까지 연결될 예정이고,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파주 개통(예정) 등 교통호재가 풍부해 이에 따른 수혜도 기대된다.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김포한강신도시의 교통개발사업은 서울로의 접근성이 향상되는 만큼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서울 강서(마곡, 김포공항 등)와 양천구(목동), 마포구(상암, 공덕), 여의도, 서울역, 시청, 광화문 쪽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게 거주지로서 훌륭한 선택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값 견인하는 주거 인프라 김포한강신도시는 풍부한 교통호재와 인프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구래지구에는 이마트, 장기지구에는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가 있어 언제든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운양지구에는 CGV, 구래지구에는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예정) 등 영화관이 있어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다. 최근에는 경희대의료원이 인근 풍무역세권 개발사업에 참여의사를 공식 전달한 만큼, 향후 경희대 김포메디컬 캠퍼스가 조성될 계획이다. 주민을 위한 여가활용시설도 만족스럽다. 운양지구에는 가족의 쉼터와 아이들의 놀이공간을 제공하는 ‘야생조류생태공원’이 있고, 장기지구에는 총길이 2.7㎞로 조성된 수변형 공원 ‘금빛수로’가 있어 주민들이 쾌적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구래지구에는 도심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한강신도시 호수공원’이 있다. 이처럼 김포한강신도시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생활 편의성과 자연을 품은 여가 환경이 풍부한 교통호재와 맞물리면서 미래가치가 높아지는 분위기다. 실제로 한동안 하락세를 보인 김포 부동산 경기는 다시금 호황을 보이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리브온에 따르면, 지난 7월 김포시 아파트 m²당 매매가격은 328만7000원으로 지난 6월 322만3000원보다 1.99% 상승했다. 같은 기간 김포와 함께 비조정대상지역으로 남아 있는 파주가 271만9000원에서 274만2000원으로 오른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의 상승률이다. 김포한강신도시의 최근 1년 아파트 가격을 살펴봐도 상승세가 눈에 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운양지구에 위치한 ‘한강신도시 운양푸르지오’(이하 전용면적 84㎡)의 경우 지난해 4억5000만 원에 매매됐으나 올 7월 5억2000만 원에 거래됐다. 또 지난해 3억7000만 원이었던 ‘풍경마을 래미안 한강 2차’는 올 8월 4억6500만 원으로 뛰었다. 장기지구 내 아파트도 가격이 오른 건 마찬가지다. 지난해 2억7000만 원이었던 ‘고창마을’(자연앤어울림)의 매매가는 올 7월 3억1500만 원으로 올랐고, 3억 원이었던 ‘고창마을’(이지더원)은 올 8월 3억4000만 원에 팔렸다. 또 구래지구 내 ‘호반베르디움 더 레이크 2차’ 매매가는 지난해 3억9000만 원에서 올 7월 4억4000만 원으로 상승했다. 3억7000만 원이었던 ‘김포한강아이파크’도 올 7월 4억3000만 원에 거래됐다.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수도권 일대의 가파른 매매가 상승세와 청약경쟁이 심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대출과 청약 제한이 적은 김포시장에 수요가 몰려 집값이 오른 것으로 보인다”며 “김포한강신도시는 그동안 저평가돼 있었고, 하나둘 현실화되는 교통호재로 서울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집값은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배후수요 탄탄한 상권 기대 김포한강신도시는 지속적으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약 6만2000세대, 16만 명이 거주하는 자족형 도시로 거듭났다. 특히 구래지구는 김포 최대 번화가이자 중심 상업지구로 많은 주거 단지가 모인 곳이다. 인구밀집도도 한강신도시 내에서 가장 높고 소비력이 높은 젊은 세대로 구성됐다. 주거시설이 밀집돼 풍부한 배후수요를 갖춘 데다 김포골드밸리, 김포도시철도 호재까지 더해져 김포한강신도시를 대표하는 중심상권 지역으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먼저 김포골드밸리는 구래지구에 인접한 수도권 서북부 최대 산업단지로 현재 5개 산단이 조성돼 입주 업체 1만8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외에 학운3-1, 학운4-1, 학운5, 학운6, 학운7, 대포, 양촌2 등 7곳의 산업단지가 조성 및 계획 중이다. 사업이 완료되면 총 12개 단지 약 632만 ㎡ 규모의 산단 클러스터가 구축된다. 개발이 완료되면 총 2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하고 5만여 명의 상주 고용인구가 유입돼 배후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구래지구의 유일한 단점으로 지적받았던 교통 여건도 김포도시철도 개통으로 개선됐다. 이를 통해 서울 접근성을 높이고 서울 및 인근 지역 인구의 구래지구 중심상권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합리적인 분양가도 수요자들을 사로잡는다. 인근 산업단지는 3.3㎡당 평균 600만 원 안팎으로 공급되는데, 이는 2~3년 전 분양가 수준에 불가해 입주 후 높은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C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김포한강신도시는 최근 상가의 공실이 많이 줄었는데, 지역 내에서도 구래지구는 김포골드밸리, 김포도시철도 수혜를 받아 김포한강신도시에서 핫한 상권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구래지구는 주상복합, 업무시설, 대형마트 등 위락이 가능한 상업시설 분양이 대부분 완료됐다. 탄탄한 배후수요를 둔 만큼 상권의 성장이 기대되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김포한강신도시는 서울 강남과의 접근성과 교통호재를 발판으로 한 판교·광교 신도시에 밀려 2기 신도시 중 상대적으로 소외당한 지역이었다”며 “하지만 유동자금이 풍부한 환경에 정부의 규제마저 비껴가면서 풍선효과를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 2020-09-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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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티고 여미다 마침내 우리 옷 문화를 꽃피우다”
-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입성, ‘사랑의 불시착’ 등 드라마의 세계적 성공과 K방역 선전 등이 새로운 한류를 일으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에 따라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는 요즘이다. 생활한복의 대명사인 ‘돌실나이’ 김남희(53) 대표는 시원시원하고 호탕한 모습으로 기자를 마주하며 최근 우리 문화에 대한 해외의 호의적 반응에 발맞추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문화를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뛰어들어 27년을 버틴, 그리고 마침내 온몸으로 피워낸 돌실나이와 김 대표의 역사와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생활한복의 대명사인 돌실나이의 인사동점 매장에서 김남희 대표와 인터뷰를 하기 전, 그녀가 직원들과 격의 없이 얘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느낌을 전하자 김 대표가 웃으며 “대표라는 생각 별로 안 하고 살아요”라고 말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돌실나이의 역사와 함께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팀장들은 모두 근속 연수가 20년을 넘었고, 30여 개 매장 직원들도 10년 이상 일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혼자 했겠어요. 이 황무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소박한 문화를 일구자 김 대표가 황무지라고 표현한 것처럼, 돌실나이는 ‘강한 자가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자가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회사다. 그 시작은 오래전, 김 대표의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복이 일상생활에서 입는 옷이어야지 화려하고 아름다운 예식용으로만 정착되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저는 의상학과 전공을 살려서 우리 옷 일꾼으로 나라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었죠.” 김 대표는 의상학과를 다니며 ‘우리입거리연구회’를 만들었다. 한복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 ‘규합총서’ 같은 고서를 뒤지며 원료 염색하는 법을 익히고 실제로 만들었다. 그 일을 다섯 명이 시작했는데 끝까지 남아준 사람이 정경아 씨였다. “그래서 경아와 돌실나이를 만들어 3년을 같이했죠. 회사 이름은, 함께 한 마을에 간 게 계기가 돼서 지었어요. 전남 곡성에 있는 석곡마을인데, 거기서 나는 삼베 이름이 돌실나이였죠. 다 사라져가는 문화가 그 마을에 남아서 이어지고 있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저런 일을 하자고 마음먹게 되었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소박한 문화를 이끌어가는 일 말이죠.”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끝까지 뜻이 맞은 두 사람이 시작한 돌실나이였지만 예상대로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환경오염을 하지 않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소색 의류를 만들자고 했어요. 소색은 염색하지 않은 흰색과는 다른 본디의 색을 이르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 광목색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한 시즌 제품을 만들고 나니 이걸로 먹고살 순 없겠다고 판단하게 됐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염색을 조금만 하자.(웃음) 환경을 오염하지 않는 자연 염색이나 소소한 파스텔 계통의 연한 색을 쓰자고 했죠. 그렇게 점점 먹고살려다 보니 강한 색을 쓰게 되고 화학섬유도 쓰게 되고 변질되어 갔어요.(웃음) 월세도 내야 하고 직원도 생기고 물건도 만들어야 하고 재고회전율, 영업이익율도 신경 써야 했으니까요.”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은 거칠었다. 김 대표의 ‘타협’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이었다. 그런데 극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IMF 금융위기가 도움의 손길이 되었다. “사실 생활한복은 IMF 덕분에 큰 종목이에요. 1996년 12월에 우리 옷 입기 발족식을 문체부에서 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한복 입고 출근하는 걸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하자는 거였죠. 그런데 특별한 행사 또는 결혼식할 때 입어보는 한복을 매번 입기는 불편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공무원 사회도 생활한복에 눈을 돌리게 됐죠. 그리고 1997년 IMF가 터지면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야’라는 인식과 함께 한복 붐이 일었어요. 매일 대리점 내달라는 전화가 올 정도였죠. 생활한복 브랜드가 눈만 뜨면 생겼는데 그해 2000개 가까운 브랜드가 생겼어요.” 포기하고 싶었던 숱한 시간 이겨내다 생활한복 업체들이 갑자기 난립하면서 민감한 사안이 생겼다. 바로 카피 문제였다. “저희는 연구개발 비용을 많이 쓰면서 공을 들여 한복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다른 데서 저희 걸 베낀 제품을 팔더군요. 그런데 유행이라는 게 폭풍처럼 왔다가 거품처럼 꺼지잖아요? 3년 차 되니까 그 사람들은 돈 챙겨서 떠나더라고요.” 한탕주의가 망친 시장은 냉정하고 무서웠다. 상당수의 저품질 생활한복이 소비자에게 큰 실망감을 남겼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한복의 생활화라는 순수한 뜻을 갖고 시작한 다른 문화 단체들이 하나씩 파산하는 걸 지켜봐야 했다.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재고를 사주고 하면서 돌실나이도 역경에 처했다. “제일 무서운 것은 소비자들의 인식에 ‘생활한복은 천박한 것이야’라는 생각이 박힌 거였어요. 한철 장사를 한 사람들이 팔다 남긴 재고들이 한 2~3년 시장에 계속 돌더라고요. 볼 때마다 창피했어요.” 김 대표는 생활한복이 싸구려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활한복의 고급화를 위해 ‘아회’라는 브랜드를 만들었고, 해외 패션쇼와 박람회 활동을 추진했다. 론칭할 때는 꽤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아회 한복을 입고 상견례하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4년가량 추진한 아회는 결국 정리했다.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맞았어요. 고가 의류는 성공하는 비법이 있더라고요. 비싼 옷을 소비하는 이들의 마인드와 문화에 대한 어울림이 있어야 했는데, 제가 못 어울리겠는 거예요. 결국 내 정서에 맞는 일을 해야지 싶어서 담백한 생활한복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며 돌실나이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했죠.”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 그 시점에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사업이 갑자기 커졌다가 줄어들면서 감원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을 뽑는 일보다 줄이는 일이 열 배 더 힘들어요. 퇴사 예정자 중에 출근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고요. 30대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죠. 한때는 화보 촬영할 돈이 없어서 마네킹에 옷을 입히고 인화해서 매장에 붙이고… 별짓 다 했죠.(웃음)” 지금이야 겨우 웃으며 할 수 있는 얘기이지만 김 대표의 심신에 깊이 새겨진 씁쓸한 흔적들이다. 그 때문일까. 그녀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 동안 아파서 꼭 해야 할 일 외엔 못했다고 한다. 갱년기 같은 증상들을 겪었다. 수면장애 때문에 항상 졸렸고 저체온증에 시달렸으며 악몽도 꿨다. 생활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동시에 팀장급 직원들이 개인 사정들이 생겨 휴직에 들어가면서 회사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작년부터 하는 일이 원활해졌어요. 내가 덜 아프게 됐고 휴직 들어갔던 책임자급 직원들이 다 돌아왔어요. 자리가 하나하나 채워지고 연말연초 계획도 끝내고 나니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 운동도 가능해졌어요. ‘아, 나 이제 이렇게 살 수 있나봐’ 했는데 딱 2주밖에 못했어요. 코로나 터지면서 도루묵.(웃음) 내 인생에 뭘 노냐, 그냥 일해야지.(웃음)” 왜 이렇게 미련한지 자신도 이해 못해 들으면 들을수록 김 대표와 돌실나이의 역사는 거친 현실에서 계속 깨지면서 앞으로 전진한 역사처럼 보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활한복 브랜드이지만 이렇게 상처가 가득 새겨져 있음을 아는 이 누가 있을까. “주어진 내 밥그릇이란 없는 듯해요. ‘너희는 자리 잡았잖아’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회사가 부동산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번 건 다 연구개발에 투자하거나 회사에 있고. 저는 통장관리도 해본 적 없어요. 재무관리실에서 다 하고 월급만 받아요. ‘시즌 기획을 잘못했다, 고객들에게 외면받았다’ 하는 일이 두세 번만 일어나도 회사가 휘청이기에 실상 굉장히 피가 말라요. 하루하루 생존하기 위해서.” 한 번 잘하기도 어려운데 계속 잘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어제까지 잘했어도 한 번 실수하면 소비자는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사업은 그렇게 냉정한 자본주의의 현실을 극복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죠.(웃음) 그래도 그냥 가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첫사랑과 결혼했고, ‘이렇게 살아야겠다’ 생각한 삶을 지금까지 살고 있고, 초등학교 때 친구들도 아직 만나고 있는 걸 보면 한 번 관계를 맺으면 끝까지 가는 사람인가봐요. 돌실나이도 그래요. ‘계속 가보자, 잘하든 못하든 그 자리에 있자’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왜 이런 미련한 생각을 하며 사는지 저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요. 그런 DNA가 있나보죠.” 한 해에 600~700개 새로운 아이템 제작 김 대표에게 의상학과는 재수하기 싫어서 점수에 맞춰 들어간 학과였다. 그런 그녀가 27년 동안 계속 한복만 만들게 된 것은 이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제가 돈으로는 안 움직이거든요. ‘그럼 내가 사는 힘이 뭘까?’ 생각해보니 스스로 정한 사명감일 듯해요. 나를 그 안에 가둬놓고 살고 있었다는 걸 중년이 돼서 깨달았죠. 한심하고 답답한 부분도 있긴 한데, 그 묵직한 무게감으로 여기까지 온 거죠. 무언가를 만지고 그리는 창의적인 일이 제 적성에 맞아요. 계속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버릇과 완벽주의가 옷 만드는 일에 적용이 돼서 오늘의 돌실나이가 있게 된 셈이죠.” 그녀의 말처럼 돌실나이의 옷 디자인은 매번 바뀐다. 철저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다. 김 대표는 차라리 새로운 걸 하는 게 낫다고 웃으며 말했다. “25년간 둥근 깃을 변형하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조금 다르면 ‘똑같다’고 하고, 많이 다르게 하면 ‘어색하다’고 하는 그 사이에서요.(웃음) 대신 똑같은 옷은 안 만들기에 회전속도가 빨라요. 2016년에는 1년에 1000여 개의 새 아이템을 만들었고 지금은 좀 줄어서 600~700개의 아이템을 제작하고 있어요. 계속 신상품을 내놓고 회전율과 품종 관리도 철저히 합니다. 물론 100% 자체 개발이고요. 외부 사람이 보면 ‘이 정도 매출이 나오는 회사가 개발비를 이렇게나 써?’ 하며 놀라요.” 떳떳하고 당당하게 우리 문화 만들어가겠다 마침 정부가 우리의 한복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나섰다. 지난해부터 문체부와 교육부, 한복센터는 협업 아래 한복 교복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맞춤형 한복을 학생들에게 교복으로 보급하는 사업을 본격화한 것이다. 돌실나이는 2019년 한복의 전통과 멋을 살리면서도 학생들이 부담 없이 입을 수 있도록 실용화한 교복을 디자인해 ‘한복 교복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총 30여 가지의, 학생들이 스타일링하기 좋은 디자인으로 개발된 교복은 한복 특유의 곡선미와 세련된 색감은 물론 활동성까지 최대한 살렸다. 올해부터 20여 곳의 전국 학교 학생들이 돌실나이가 제작한 교복을 입게 된다. 김 대표는 최근 한복업계가 침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한복이라는 장르를 유행 이상의 가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요즘 고민이다. “우리의 자존심으로 당당하게 한복을 지켜내고 싶어요. 그러려면 매출도 키우고 해외에도 눈을 돌려 한류문화에서 한복이 뒤처지지 않게끔 해야겠죠.” 돌실나이는 다양한 문화운동도 기획하고 있다. 인사동점 3층에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강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시험 삼아 운영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그녀는 돌실나이가 소비자들과 함께하는 문화운동을 하면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구차하게 살지 않을래요. 자존심도 끝까지 지킬 거고요. 그리고 ‘버젓한 한복 브랜드가 일반 의류 브랜드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으니 젊은이들이여, 한복에 뜻을 가지고 오라, 도전하라’고 말할 수 있는 롤 모델이 되고자 합니다.” 우리의 한복을 자랑스럽고 번듯한 브랜드로 꼭 키우고 말겠다는 그녀의 말에서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 내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냉철해 보이지만 따뜻한 뚝심으로 걸어가는 김남희 대표. 그녀의 손끝에서 우아함과 실용성이 함께 닿게 될 우리 옷 문화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 2020-07-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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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A] '불안→분노→우울' 코로나 블루 극복하려면?
-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지역감염이 확산되면서 건강에 대한 위협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 일상생활의 중단 등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겨 우울감이나 무기력증 등 심리적 이상 증세인 ‘코로나 블루’를 겪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에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도움으로 코로나 블루 극복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코로나 블루 치료는 어떻게?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는 공식적인 진단명이 아니다.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의 합성어다. 감염재난 시기에 발생하는 건강에 대한 위협, 경제적인 어려움, 일상의 중단 등은 현실적인 고통으로서 우리가 직면하는 첫 번째 화살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극복해나가야 하지만 쉽지 않다. 자연스레 우리의 마음 한 켠에는 불안, 분노, 우울감이 유발되는데 이를 코로나 블루라고 일컫는다. 사실 불안한 감정을 질환으로 느낄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의 불안은 누구나 경험하고 있어서다. 불안이 있기 때문에 손도 잘 씻고, 마스크도 쓰는 등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KSTSS)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평소시기에 비해 국민들의 우울과 불안은 증가했지만, 80% 정도는 정상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0~20%는 임상적인 관심이 필요한 정도의 불안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대개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우울증, 불안증세가 있었거나 너무나 큰 고통으로 잠을 못 자는 분들은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현재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자가격리자, 그리고 확진자로 볼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감염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장례조차 제대로 치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심적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이 MOU를 체결, 국가트라우마센터를 통해 전화상담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를 권장한다. 일반 국민은 정신건강 전문요원들과 24시간 상담이 가능한 위기상담전화를 이용하면 된다. ◇코로나 블루를 예방하려면?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 가이드라인 중 3분의 1 정도는 위기소통과 심리방역에 대한 내용이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인데, 지금 코로나19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응은 매우 성숙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일상생활의 중단’이다. 본인이 꾸준히 해오던 취미활동, 운동, 사람과의 어울림 등이 한순간에 중단되기 때문이다. 야외활동이 제한됨에 따라 집에만 머물며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계속해서 보게 되는데, 이는 심리방역에 가장 안 좋은 행동이다. 하루 종일 앉아 뉴스만 보면 봄 날씨에도 밖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자연스레 운동량이 저하된다.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심리적인 힘도 결국은 몸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최소한 실내에서 창문을 열고 햇볕에 드는 곳에서 운동하기를 권장한다. 이와 함께 타인과 ‘소통’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소중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전화 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고 ‘함께’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의료진, 방역요원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다.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행동이자 자신의 심리적 면역력을 지키는데 굉장히 유용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면역체계를 지켜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 ◇마음건강 지키기 위한 수칙은? 우리는 누구나 이전에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그것을 이겨온 자기만의 경험을 갖고 있다. 물론 외부의 스트레스로 인해 너무 힘든 상황에 처한다면 이를 잊기도 한다. 마음건강 수칙, 심리방역 수칙 등을 참고하면서 자신에게 잘 맞는 스트레스 극복 방식을 선택하여 적용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2월 말,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국민들을 위한 마음건강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이외에도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에서도 발표한 지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면 된다. ◇아이 돌보는 부모의 생활수칙은? 연령에 따라 상황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 등교가 계속해서 연기됨에 따라 친구도 못 만나게 되는데, 저학년일수록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가짜뉴스와 같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오해를 유발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고학년의 경우, 일상의 리듬이 깨지면서 여러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는데,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여부에 따라 보상을 주는 등 가족끼리 새로운 일상을 계획하고 함께 만들며 극복해나가는 것이 좋다. 이외에도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에 자주 짜증을 내는 등 평소보다 예민해질 수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부모는 아이의 눈높이로 현 상황에 대해 반복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서로 감정을 있는 그대로 공유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이겨나가야 한다. ◇자가격리자 위한 마음건강수칙은? 자가격리자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고립이다. 방안에서 거의 2주간 나오지 못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하루 종일 뉴스만 듣게 되고 누워 있다 보면 생활 리듬과 일상이 깨지게 된다. 특히 일의 공백이 생기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호소한다. 자가격리자의 마음건강을 위해서는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해외 연구를 살펴보면, 자가격리자의 경우 불안장애나 불면증이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타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가격리 기간을 후유증 없이 이겨냈다는 사실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의 건강함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감정을 공유하는 등 이 시기를 잘 헤쳐 나아나갈 수 있게끔 응원해줄 필요가 있다. ◇의료진을 위한 마음건강수칙은? 해외에서 진행된 ‘의료진에 대한 감염재난의 영향’ 연구자료를 살펴보면, 사스, 신종플루 당시 오랜 기간 훈련받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에 대해서도 잘 준비가 돼 있어 괜찮다는 의견과 다른 한편으로는 스트레스로 인해 불안 증세나 불면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의료인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본인의 환자를 잃는 트라우마다. 어떻게든 살리고자 했지만 실패했을 때, 그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영향을 주기도 한다. 또한 이 시기에는 누구나 예민해질 수 있다. 의료진도 예외는 아니다. 의료진도 사람이기에 자신의 마음 건강상태를 관심 있게 살펴봐야 하며, 필요하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팀워크 또한 중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에게 믿음을 갖고 더욱 살펴야 한다. 환자에게 항상 하는 말처럼,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에 우리 의료진들도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 2020-05-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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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가 원대연 교수의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이야기
- 이젠 초록이 완연하다. 탁 트인 세상을 보러 가볍게 훌쩍 떠나 자연 속에 파묻히고 싶어진다. 시골 마을에 스며들듯 이루어진 '이원 아트빌리지'는 반짝이는 초여름빛을 받으며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에 위치한 친환경 복합문화공간 이원 아트빌리지의 하루는 충분한 여유와 쉼을 주는 시간이다. 미잠리(美蠶里). 이곳 지형이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이름이다. 막 시작된 초여름이 싱그럽다. 방문을 허락하면서 하신 말씀이 '요즘 볕이 좋고 온 천지에 피어난 꽃들이 너무 예뻐 혼자 보기 죄스럽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애초부터 '함께 하기' 위한 공간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건축가 원대연 교수와 사진작가 이숙경 부부가 이원 아트빌리지를 만들어낸 것은 2003년이었다. 한때 롯데호텔, 롯데월드, 압구정 현대백화점, 여의도 63 빌딩 등의 국내의 굵직한 건축 작품의 설계와 공사를 진행했던 건축가 원대연. 그리고 '(주)플러스 건축'을 설립, 건축전문지 '월간 플러스' 창간, 후학들을 가르치는 대학교수로 더없이 왕성한 시절을 보냈다. 뿐만 아니라 건축문화와 일상을 엮어서 '여행 넘어서기'라는 책 1,2,3권, 건축 가이드북 ‘살수록 고마운 집 - 자연에, 좋은 집에, 멋진 나날들’을 출간하기도 한 작가다. “생명의 집을 지을 수 있으면 다 버려도 좋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바삐 돌아가는 세상일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내 의지대로 삶의 리듬을 원했다. 그 무렵을 이용재 건축평론가는 이렇게 적었다. '국내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투시도의 달인 원대연은 만날 반복되는 일에 치이고 지금 내가 왜 살고 있는 거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뭘까? 고민했다. 전국의 땅을 보러 다닌다.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가 맘에 든다. 아예 이월면으로 보따리 싸서 내려간다. 생태마을 건립에 나선다. 왜 만날 남의 것만 만들어 주냐. 외부 간섭 없이 나만의 자유로운 건축을 실현하겠다. 이제부터 넘어야 할 가장 큰 상대는 나 자신이다.' 마침내 6년 만에 이원 아트빌리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5년에는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자연에서 싹이 돋아 자연의 숲이 이루어진 건축의 숲을 본 것이다. 인공조미료가 배제된 건강 자연식품의 건축을 만난 것이다. 옥내 공간에 집중된 기존 건축과는 달리 옥내 공간과 옥외 공간이 등가로 다루어지면서 풍부한 공간 연출을 하고 있는 Vernacular 한 건축이다." - 건축가협회상 수상 수상에 대한 심사평에서 입구의 담장에 담쟁이덩굴이 덮이기 시작했다. 그 앞으로 마을 사람이 무심히 지나가는 풍경, 논과 밭과 마을길이 아트빌리지와 분리되어 보이지 않고 함께 자연스럽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이런 곳이 있었나 놀랄 일이 기다린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자연 채광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상촌 미술관 제1관, 2관, 3관. 이숙경 사진작가의 작품과 건축가의 그림,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술관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연결된 문화공간을 찾아 걷는 맛이 시작된다. 전시관이나 세미나실뿐 아니라 자연 경사를 그대로 살린 골목길을 따라 발견되는 건축 예술이 흥미롭다. 어디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예쁜 골목과 샛길이 이어지는 열린 공간이다. 목련 갤러리 뒤편으로 목련 정원이 기다리고 있다. 너른 다목적 행사장과 공연장, 갤러리와 소소한 아트공방들, 색색의 담장을 지나 작은 숲 쉼터를 만나면 누구라도 거기 그냥 한 번 앉아서 쉬고 싶어 진다. 토기인형과 담 아래 꽃들이 편안히 피어난 조붓한 길을 걷다 보면 샛길과 계단을 통해 숨겨진 듯한 공간이 나타나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이곳에선 모든 게 나지막하다. '사람 눈에 허술해 뵈고 만만해 뵈고 편안한 게 좋은 집'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이렇게 나지막한 집이 쑥쑥 자라나는 나무에 뒤덮여서 안 보이기를 바란다'는 원대연 건축가. 전망대로 올라가면 나무판자를 겹겹이 얹어 만든 너와지붕이 눈 앞에 펼쳐진다. 너와지붕 너머로 이어지는 이월면 미잠리 농촌 마을이 자연스럽다. 어울림이다. 이렇게 한 바퀴 돌다 보면 이상한 '균형'이랄까 그런 게 느껴진다. 어느 것 한 가지만 유난하지 않고 돌 하나 소나무 한 그루도 그 자리에서 함께하는 역할의 의미를 있다는 것. 결국은 마당과 골목길, 그 모든 건축물과 뒷동산이 어디든 연결된다. 내비게이션의 지시대로 길을 찾는 요즘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의미 없음을 알려준다. 아트빌리지의 길을 따라서 걸으며 상상력을 만끽하고 창의력을 발동시키는 그런 건축의 힘을 전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트빌리지 옆으로 난 오솔길을 잠깐 걸어가면 광장처럼 널따랗고 멋진 공간이 기다린다. 신록의 계절이다. 산 아래 울창한 숲과 잔디밭이 어우러진 그곳에 부드러운 바람이 가득 차 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 내림이 눈부시다. 중앙엔 넓은 원형으로 울퉁불퉁한 돌의자가 던져진 듯 놓여있다. 거기 앉아 회의도 하고 여유롭게 수다와 휴식이 즐거울 수 있는 숲 마당, 자연 속에서 놀아볼 수 있다. "야생화를 300~400개쯤 심었지요. 잘 피어나서 계절별로 책 찾아가며 사진을 찍어놨는데 그러나 어느 정도 살다가 반 이상은 죽더라고요. 이곳이 아무리 자연이라고 해도 야생화는 야생에 있어야 해요. 그래서 심지 마라, 옮기지 마라, 살아있는 건 그 자리에 두어라 해요." 건축 예술가의 열정으로 자연과 한 몸이 되는 마을이 이 땅에 만들어졌고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 그리고 건축가가 제시한 공간을 통해서 다수의 누군가는 공감했다. 그래서 그가 추구하는 관계성이 수용되고 그 꿈이 지속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운영의 부침을 맞으면서 2012년 개방을 멈추었고 나름대로 대비를 한다. "이 곳을 기부를 하거나 재단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 봤어요. 그런데 그럴 경우 그동안 내가 지켜왔고 생각해온 마을이 유지될지 걱정됩니다. 아마 이 나무들이 온전히 있기 어려울 듯해요. 요즘은 그래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어요. 눈이 올 때 이 숲의 풍경이 다양합니다. 또 사계절 따라 늘 다르죠. 지금도 깜깜한 밤에 사진을 찍으면 칼라가 정말 이뻐요. 어제도 영산홍을 찍었는데 빨간색이 낮과 밤이 달라요. 완전한 어둠 속에서 또는 달밤에도 찍어요. 자연 속에서 변화하는 색감이 대단합니다." 푸릇푸릇한 식물들의 향이 뿜어 나오는 선큰 가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정원 계단에 둘러앉아 멋지게 세월을 사는 이의 건축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특별하다. 비밀의 문을 연 듯한 그 옆의 오디오실은 신세계다. 가치를 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오디오와 스피커, 그리고 재킷 포장이 그대로인 희귀 소장품 레코드판이 잘 정돈되어 있다. 70대 은발의 곱슬머리 건축 예술가는 음악 한 곡을 걸었다. 그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던 '매기의 추억'이 감동적이었던 건 단지 오디오의 성능 때문이었을까. 그 시골 마을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생생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이원 아트빌리지, 이곳에서는 한두 시간 또는 한나절이면 된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 마을의 따뜻한 고요함에 푹 빠져봐야 한다. 숲에 들어 자연의 빛과 바람과 하늘을 마주는 순간 자연 속에 그만 묻혀버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름다움은 천천히 느리게 즐겨야 제 맛이다. 청정한 산세에 둘러싸여 있는 건축 마을에 푹 잠겨 보냈던 하루. 생거진천(生居鎭川), 충북 진천 이월면 미잠리의 이원 아트빌리지에 가면 느리고 무심히 자연 속에 스며드는 온전한 날이 된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길 306-1 / 이원아트빌리지에 가고 싶다면 미리 연락을 해서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지금도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일반 단체 방문객이 예약을 통해서 방문한다. 주변 볼거리와 맛집 △이월성당 (梨月聖堂) 그곳에 가면 또 한 군데 들러볼 곳이 있다. 원대연 건축가가 설계를 봉헌하여 지어진 '이월 성당'. 이원 아트빌리지를 나와 밭둑 옆으로 잠깐 달리다 보니 멀리 성당 뾰족탑의 십자가가 보인다. 자연의 흐름의 바라보듯 시골 들판을 내려다보는 듯한 위치에서 저녁노을을 받고 있다.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 292-5번지 △ 진천막국수 진천에는 건강한 맛집이 여럿 있다. 그중에 메밀로 만든 시원한 막국수가 인기다. 메밀 새싹이 수북이 얹혀 나오는 메밀 새싹 물막국수와 비빔막국수는 따뜻한 육수도 함께 나온다. 요즘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국수 양념도 자극적이지 않다. 무채와 열무김치도 심심하고 맛있다. 속이 실하고 큼직한 메밀만두도 빠뜨리지 말고 맛볼 것. // 진천 막국수 / 충북 진천군 이월면 진광로 725 / 막국수 7000원, 메밀 왕만두 5000원 △ 미잠米과 생거진천 쌀로 만든 건강한 빵. 진천에서 농사짓고 정미소도 직접 운영, 도정, 제분하여 쌀빵을 굽는다. 쌀눈이 살아있는 빵으로 특허출원, 쌀빵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식감이 부드럽다. 건강기능성을 선호하는 사람들과 밀가루 알레르기 환자 등의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SNS 등의 입소문으로 전국 각지에서 주문 요청이 많다고 한다. 방문 고객에게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서비스로 제공된다. 식빵은 물론이고 쌀 인절미 크림빵, 현미깜바뉴 등 미잠미과 만의 쌀빵 종류가 다양하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미잠리 403 /10:00~19:00
- 2020-05-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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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과 함께 온ㆍ오프라인으로 즐기는 문화생활
- 창덕궁 건너편에 위치한 서울 돈화문국악당(예술감독 강은일)의 국악 공연 온라인 생중계가 문화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전국민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이에 따라 문화계의 모든 공연 취소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 돈화문 국악당 역시 지난 2월 25일부터 계획됐던 모든 공연을 취소한 바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따르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으나 공연이 취소되면서 국악인들은 공연 사례비를 받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 돈화문 국악당은 서울시가 국악당을 설립한 목적이 공연활동 지원을 통해 전통예술을 계승하고 있는 국악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겠다는 설립 취지인 만큼 공연을 계속해 경제적인 지원은 계속하되 코로나 19 바이러스로부터 관객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관객 온라인 생중계라는 아이디어를 실현하게 된 것이다. 서울 돈화문 국악당 측은 페이스북과 유튜브 온라인 생중계에 기술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점검 후, 곧장 2월29일 토요일에 잡혀있던 대금 연주자 정소희씨의 ‘신화와 현실의 어딘가에, 대금’ 을 관객 없는 무관중 공연 온라인 생중계로 선보인 것이다. 국악공연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된 온라인 생중계라 네이버 포털과 국악방송에서도 큰 관심을 나타내 3월19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운당여관 음악회’는 네이버V라이브와 돈화문국악당의 페이스북 라이브로 7일 동안의 공연이 모두 온라인 생중계되기도 했다. 현재 유튜브 국악방송 채널에서는 3월19일부터 29일까지 열렸던 공연 모두를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운당여관 음악회'는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고(故) 박귀희 명창이 돈화문로에서 실제 운영하던 ‘운당여관‘에서 착안한 공연으로 1950~80년대 종로를 찾는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던 운당여관의 모습을 젊은 국악인들이 다양한 장르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아래 링크는 유튜브 국악방송 채널에 올라와있는 ‘운당여관 음악회’ 영상이다. https://youtu.be/9JVglLOEl3w https://youtu.be/qaDQo76N26c https://youtu.be/jDuzp4d7n04 https://youtu.be/vXG7Gy5FiCA https://youtu.be/hv7ntmXbFDM https://youtu.be/k0_wy_t0lHw 국악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운당여관을 모티브로 국악인들의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보여준 ‘운당여관 음악회’ 영상은 전통문화의 현대적 해석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 영상 화질도 매우 높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방콕인 요즘 매우 적합한 문화생활이 아닐 수 없다. 운당여관 음악회를 이야기 하면서 운당여관 이야기를 안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한국 국악계의 대모인 박귀희 선생이 운영하던 운당여관 스토리로 들어가본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그토록 원했던 한옥호텔의 원조라 할 운당여관은 종로구 운니동 65-1번지에 위치해있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으로 순조 임금 시절, 궁중의 내관이 왕으로부터 목재를 하사 받아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1951년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인 박귀희 선생과 남편 윤길병씨가 이 한옥을 구매한 후, 이웃한 시인 한상억 선생의 고택을 포함, 3~4채를 합쳐서 1958년부터 이름을 '구름 속에 있는 집' 혹은 '스님들이 좌선하는 집'을 뜻하는 '운당(雲堂)'이라 짓고 여관으로 운영하였다. 본래는 박귀희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고 국악인들의 사랑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 가옥을 구입하였으나 6.25 전쟁 이후 생계 유지를 위하여 부득이하게 여관으로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운당여관은 싸고 저렴하면서도 한옥의 정취가 품격 있게 유지돼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지며 화가, 작가 등 예술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운당여관은 1959년부터 한국 바둑의 최고봉인 국수전, 명인전, 국기전 등 주요 기전의 400여 대국이 벌어져 한국의 최고수를 배출해 내는 등 한국 바둑사에서도 중요한 곳으로 기록되고 있다. 의외로 사업 수완이 좋았던지 손님이 많아지자 1960년에는 정릉에 있던 순종의 비 윤씨의 별장을 이전 복원해 종로 한복판에 450평 한옥에 31개 객실을 가진 한옥여관으로 확장, 운영되기도 했다. 한편 박귀희 선생은 1989년 운당여관을 매각한 20억원을 서울 국악예술고에 기부하면서 국악인 후진 양성에 큰 힘을 보탰고 이후 운당여관 일부 한옥은 경기도 남양주 종합촬영소로 이전, 헐린 터에는 돈화문로 월드오피스텔이 들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나만의 슬기로운 문화생활 Tip 안국역 3번 출구에서 내려 창덕궁 쪽으로 걷다 보면 계동 현대그룹 사옥과 창덕궁 돌담길 사이 코너에 최근 인스타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베이커리 카페 ‘Onion’이 눈에 띈다. 한국 스타트업 회사들이 모여 있는 성수동에서 금속공장을 개조해 도시 재생 카페로 첫선을 보였던 Onion이 이곳 계동에서는 대청마루 너른 곳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좌식형 카페로 선을 보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추천하고 싶은 곳은 이곳보다는 김수근 선생이 설계한 건축사무소 공간 1층에 위치한 프릳츠를 추천한다. 요즘 커피 좀 안다는 마니아들 사이에 인기 급상승중인 프릳츠는 독특한 커피 맛을 앞세워 각 지역마다 프릳츠 스티커를 붙인 원두공급업체로도 상종가를 치고 있다. 공간의 적벽돌 건물을 감상하며 1층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마시는 커피 맛이 일품이다. 커피를 마시고 창덕궁 쪽으로 계속 걸어 내려오다 삼거리에서 길을 건너서 돈화문국악당으로 들어가본다. 국악당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면 언제든 들어가서 잔디밭 의자에 앉아 파란 하늘과 형형색색의 늘어뜨린 천과 잔디의 초록색의 어울림을 감상할 수 있다. 1층 안내 데스크 오른쪽에 마련된 대청마루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면 확 트인 창으로 창덕궁 입구가 환하게 보인다. 좌탁이 마련돼있어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며 잠시 감성에 빠져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창덕궁을 바라보며 대청마루에 앉아 언제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나만의 슬기로운 여가생활 보내기다.
- 2020-04-0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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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울림으로 차오르는 따뜻한 공간
- 어린 시절의 겨울을 떠올려보면 추운 날씨에도 바깥 활동을 참 많이도 했다. 팽이치기, 자치기, 썰매타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얼음땡 등 겨울 놀이가 풍성했다. 요즘은 세상이 변해서 따뜻한 실내에서도 다양한 놀이와 체험을 할 수 있다. 손주 손 잡고 가족과 함께 즐길 만한 핫 플레이스를 찾아봤다. 1. 힐링과 웰빙을 담는 곳 ‘미리내 힐빙클럽’ 이 겨울 따뜻한 곳에서 제대로 된 휴식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미리내 힐빙클럽’(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몸과 마음을 함께 보해주는 예방 의학과 ‘마음 챙김’ 철학이 만난 공간으로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50분 거리에 있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로 심신을 내려놓고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피곤함을 떨쳐버릴 수 있는 곳이다. 스트레스 체크를 시작으로 유산균이 배합된 팩을 얼굴에 바르고 누워서 하는 ‘바디스캔 명상과 디토피팩’은 미리내 힐빙클럽의 특별 프로그램이다. 깊은 휴식을 통한 이완과 재충전도 하고 피부 노폐물도 제거할 수 있다. ‘실내 체험존’에는 ‘풀이 우거진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순우리말 이름의 ‘가든푸실’이 있다. 100여 종에 이르는 초록 식물과 반신욕, 족욕 등 물을 테마로 한 공간으로 조용하고 편안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다. 말초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테마별 족욕탕도 곳곳에 있다. 잇꽃 입욕탕, 겨우살이덩굴 입욕탕, 쑥탕 등 생약초 족욕탕, 오감 족욕탕, 게르마늄 족욕탕 등으로 나뉘어 있어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다. 바이오 세라믹볼 찜질도 방문객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라고. 인체에 유익한 다섯 가지의 광석 물질이 몸속 깊숙이 열을 전달해주는 원적외선을 방출한다. 옛날 아랫목이 있던 구들방을 연상케 하는 ‘구들잠休’는 평소 숙면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기다. 잠깐 자고 일어나도 개운함을 느낄 수 있다. 힐빙체험존에는 간, 비위, 콩팥, 폐, 심장을 중심으로 한 오행 테라피와 향기, 명상, 소리, 색깔을 이용한 오감 테라피 등이 있다. 2. 도시 속 예뻐지는 정원 ‘아모레 성수’ 이곳에 가면 예뻐질 수 있다! 건물 안에서 정원도 감상하고 아모레퍼시픽의 다양한 제품들을 직접 써볼 수 있는 공간, 바로 ‘아모레 성수’다.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관대한 이곳은 지난 10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문을 열었다. ‘아모레 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의 30개 브랜드를 중심으로 이뤄진 만들어진 뷰티 라운지다. 1층에서 3층 옥상까지 총면적은 300평 규모. 어린 시절 엄마의 콜드크림을 얼굴에 조금씩 발라보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곳이다. 마치 그때 그 시절 화장대를 넓은 공간에 예술적으로 표현해놓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모레 성수 건물 안 중앙에는 ‘성수가든’이라고 이름 붙인 정원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간을 배치해 건물 어디에서나 정원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정원수로 쓰인 꽃들은 비비추, 앵초 같은 우리 강산에서 나고 자란 식물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매장 입구에서 간단한 웹 체크인을 하고 나면 아모레 성수에서 체험할 수 있는 미니어처 교환권과 오설록 할인권 등을 스마트폰으로 다운로드해 쓸 수 있다. 화장품을 사용하기 전 세안을 할 수 있는 클렌징 룸을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뷰티 라이브러리’. 아모레퍼시픽 30여 개 브랜드의 2000여 개 제품을 마치 도서관에서 책을 빼서 보듯 꺼내 쓸 수 있다. 뷰티 라이브러리 맞은편에 있는 가든라운지는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다. 비치된 의자에 앉아 성수가든을 바라보며 다양한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다. 2층에는 오설록 아모레 성수점이 입점했다. 3층은 옥상으로 연결돼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성수동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3. 기차 안에서 놀자! 크루즈 열차 ‘해랑’ 크루즈 여행은 한 장소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목적지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탑승과 함께 진행되는 유람선 안 프로그램이 낭만적이다. 아주 멀리 배를 타고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기차 안에서 놀고 즐길 수 있는 해랑을 타고 달려보자. 일명 레일크루즈라 불리는 ‘해랑’은 코레일관광개발에서 운영한 지 11년째 된 관광열차다. 상시 여행 코스는 2박 3일 전국일주(서울-순천-경주-동해-태백), 1박 2일 동부권(서울-단양-경주-서울), 1박 2일 서부권(서울-고창-보성-순천-서울) 3가지가 있다. 오는 12월 30일과 31일에는 해맞이 특별 열차가 운영될 예정이다. ‘해랑’으로 운영되는 열차는 총 2대로, 1대당 8량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 차량인 4호와 5호는 레스토랑 카페와 이벤트 라운지이고, 나머지 6량은 객실이다. 2인실(스위트·디럭스룸)과 3~4인실(2층 침대) 패밀리 룸과 스탠다드룸 등 4개 타입이 있다. 호텔식을 지향하기 때문에 시설 또한 고급스럽다. 관광 전용 열차에 걸맞게 침대, 소파, 화장실, 헤어드라이기 등 여행과 휴식에 필요한 시설들이 구비되어 있다. 여행이 시작되면 승객과 승무원들은 이벤트 라운지에 모여 여행 시작을 알리는 작은 파티를 연다. 다양한 이벤트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준비하는데 승무원들의 장기자랑도 이때 볼 수 있다. 승객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하면서 새로운 여행 친구들과 인사한다. 보다 친근한 여행을 즐길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해랑 승무원들은 맡은 소임은 물론 각 여행지에서 관광객 인솔과 이벤트 공연, 식음료 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해랑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쇼핑을 강요받는다거나, 추가 요금을 내는 일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다. 시니어들에게는 화요일과 금요일에 출발하는 전국일주 2박3일 코스가, 어린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는 1박 2일 코스가 인기 있다. 4. 손주들과 함께 가는 실내 동물원 ‘주렁주렁’ 주렁주렁은 도심 속에서도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겨울철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던 동물원 나들이를 하게 된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실내 동물원 ‘주렁주렁’은 동물들과 함께하는 테마파크로 하남, 일산, 경주,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들어서 있다. 시간 여행자와 생명의 나무(타임스퀘어), 잃어버린 기억(하남), 여행자의 추억(일산), 숨겨진 비밀(경주) 등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운영된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이라 실내 평균온도와 내부 환경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고. 실내는 23℃에 맞춰져 있어 외부 날씨 영향을 받지 않고 사시사철 이용이 가능하다. 춥거나 미세먼지가 많아도, 눈비가 와도 즐길 수 있는 동물원이다. 운영 프로그램도 각 동물원마다 색다른 특색이 있다 ‘하남 주렁주렁’에서는 전 연령 대상으로 앵무새 ‘민트’와 함께하는 토크쇼 ‘모퉁이 상담소’, ‘주렁숲 요정의 산책’이라는 환영 행사를 진행한다. 올해 7월에 문을 연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은 1000평 규모의 실내 동물테마공원으로 대중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복합쇼핑몰 안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 시간 여행자와 생명의 나무 콘셉트에 맞춰 게임을 하듯 미션을 하나씩 수행하면서 동물원을 관람할 수 있다. 미션을 마친 뒤에는 영상 불빛 쇼도 볼 수 있다 하니 이번 겨울에 꼭 한 번 가보시길.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많은 ‘일산 주렁주렁’은 파충류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생생 도슨트 체험 파충류 대사전’과 ‘걱정인형 만들어주기’, 동물에게 먹이를 줄 수 있는 ‘생태체험 주렁쿠키’, 앵무새 비밀 친구(마니토)를 뽑아 특별 간식을 선물하는 ‘생태체험 나의 마니또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경주에서는 동물먹이주기 체험이 주를 이룬다. 상어, 사바나캣, 카피바라에게 먹이를 주고 싶으면 현장에서 신청하면 된다. 방문 전 주렁주렁 사이트에서 가고 싶은 곳 정보를 확인하면 보다 알차게 동물들과 교감할 수 있다. 5. 숲속 맑은 공기와 찜질 스파 ‘테르메덴 풀앤스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이천. 복합휴양 공간인 ‘테르메덴 풀앤스파’가 있다. 추운 날씨에도 실내외 온천 사우나와 수영장은 물론 카라반 캠핑 시설과 한옥을 갖추고 있어 유럽에 온 듯한 숲속 정취와 우리 전통의 향취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실내에 마련된 풀앤스파는 각종 질병 예방과 요양,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개발된 건강보양온천 시설이다. 이를 바데풀(Bade Pool)이라고 하는데 독일의 바데하우스(Bade Haus)를 모델로 했다. 유수풀, 유아풀, 테마 이벤트탕, 아로마 사우나 닥터 피시 등이 마련돼 있다. 실내 시설 중 하나인 찜질 스파는 전형적인 온천에 찜질을 더한 것. 온천욕을 즐긴 후 편백나무방, 황토방, 소금방, 맥반석방 등에서 찜질을 할 수 있다. 일본의 편백나무와 히말라야의 암염, 전북 고창의 최고급 황도, 경북 예천의 맥반석을 사용해 최고의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찜질방과 함께 패밀리룸, 가든 커뮤니티, 안마의자룸, 키즈라이브러리 등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이밖에 건·습식 사우나, 온천탕, 노천 이벤트탕은 일상의 지친 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춥다고 해서 꼭 실내 시설만 이용할 필요는 없다. 노천 이벤트탕은 생각보다 춥지 않다고. 겨울에는 바닥에 살얼음이 낄 수 있어 걸어 다닐 때 조심해야 한다. 추위가 걱정된다면 긴팔로 된 래시 가드를 착용할 것을 권한다. 테르메덴 풀앤스파에서는 수영복 대여가 안 되므로 꼭 챙겨가야 한다.
- 2019-12-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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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 좀 마실 줄 아는 사람입니다”
- 느닷없이 맥주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좀 싱거운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군요. 술꾼치고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나 싶어서죠. 애주가 중에서도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주나 와인 등 다른 술은 좋아하면서 딱히 맥주는 즐기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술의 청탁을 그리 가리지 않는 저도 한때 맥주를 멀리했는데 해외에서는 와인에 빠져 있을 때 그랬고 국내에서는 맥주가 맛이 없을 때 그랬었죠. 조직문화의 일환으로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밤 칵테일, 코리안 칵테일)나 소맥(소주 칵테일, 심플, 오로라, 레인보, 선라이즈 등등)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맥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맥주가 좋아서 마시는 것과는 다른 거죠. 맛나게 잘 만든 칵테일이라면 몰라도 소주 칵테일은 되도록 멀리합니다. 짧은 시간에 분위기를 올리는 장점은 있지만 술맛으로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기 때문이죠. 무더위에 시달리는 여름철이나 운동 또는 일로 땀을 많이 흘린 후, 마실거리로 맥주만큼 당기는 술은 없을 거예요. 전통주인 막걸리도 좋지만 아무 때고 막걸리를 마시자고 할 수는 없죠. 빈대떡 등 부침류나, 도토리묵 같은 무침류, 그도 아니면 김치 몇 조각이라도 앞에 놓여 있어야 막걸리를 마실 기분이 납니다. 매콤하거나 걸쭉한 전통 먹거리와 어울리는 게 시큼털털한 막걸리가 아닐까요? 그렇다고 외래주인 맥주가 걸쭉한 안주나 한식차림에 맞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안주에 어떤 술이 ‘맞다’, ‘안 맞다’를 잘라서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선택할 안주가 많다면 술 먼저 정하고 안주를 고르는 것이 애주가들에게는 더 익숙하겠지요. 음식과의 어울림을 따지는 데는 와인이 맥주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하겠습니다. 술과 음식의 조화(매칭, matching)를 진지하게 따지는 프랑스인들이 그런 매칭(Vins et Mets)의 전통을 만들어왔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맥주 종류도 많고 브랜드도 많아 어떤 맥주에 어떤 안주가 어울린다는 설명이 더 많이 눈에 띕니다. 미식가나 애주가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만 고객의 눈을 끌기 위한 판매 전략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건 제가 아직 진정한 맥주 마니아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술과 안주의 매칭은 많이 마셔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 아닐까요(술꾼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리오!). 지금, 맥주전쟁이 한창입니다. 대형마트에 가보면 새로운 우리 맥주 브랜드에 온갖 수입 맥주들이 가세해 진열대가 현란할 정도입니다. 눈이 즐거울 소비자들에게 맥주의 매력을 한껏 높이는 동시에 맥주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볼 수 있게도 해줍니다. 근래 ‘테라(Terra)’라는 국산 브랜드가 나와 엄청난 속도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데 7월 기준으로 출시 3개월 만에 1억 병이 나갔다고 합니다. 몇 년 전에는 클라우드(Kloud)가 나와 한동안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기도 했지요. 이런 판에 수입 맥주들이 자유롭게 들어오고 있으니 가히 ‘맥주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라 하겠습니다.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맥주전쟁도 이따금 정치·외교의 바람을 타게 돼 있죠. 전장(戰場)을 들여다보면, 현해탄의 파고가 이처럼 높은 적이 없었다는 것을 지금의 맥주시장이 일깨워주고 있는 셈이지요. 수입 맥주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일본 맥주가 전달에 비해 45%나 떨어진 것입니다. 그새 맥주 강국 벨기에가 1위를 차지하고 미국 맥주가 2위를 가져갔다고 합니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일본 맥주 애호가들이 다른 브랜드로 옮겨갔다지만 열혈팬들은 여전히 27%의 점유율을 지켜주고 있다네요. 현해탄의 파고가 다시 낮아지면 옛 팬들이 되돌아올지는 아직 알 수가 없는 상황이죠. 맥주 브랜드의 다양한 입맛에 길들여지면 다시 바꾸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군요. 벨기에 맥주가 1위를 차지한 것은 라거(lager)와는 다른 에일(ale) 맥주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맥주 기호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는 거죠. 에일을 주로 하는 수제맥주(craft beer)에 대한 기호도도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데 점유율은 아직 전체 5조 원 시장의 1.3%에 불과하다지요. 연평균 40%의 그 상승세가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오래전 영국에 체류할 때 펍(pub)에 가서 맥주 달라고 하면 그냥 에일을 가져왔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 캠퍼스에도 맥주 카운터 같은 게 있는데 머그나 파인트에 받아와 잔디에 비스듬히 누워서 즐겨 마시던 불그스름한 에일의 추억이 생생하네요. 그래서 지금도 에일 맥주를 더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수제맥주는 브루어리(brewery), 즉 양조장과 판매장이 한곳에 있는 것이 보통이지만 대형 양조장이 거느리는 전국적인 프랜차이즈도 늘고 있습니다. 서울을 비롯한 웬만한 큰 도시에는 길에 수제맥주 간판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니까요. 길에 나가서 수제맥주집이 안 보이면 큰 식당이나 골프클럽 같은 데로 들어가 신선한 생맥주(draft beer)를 시켜 마실 수도 있지요. 생맥주는 병이나 캔이 아닌 캐스크(cask)에서 직접 받아내므로 양조 과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사치(?)가 있지요. 게다가 “맥주는 글라스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Bier muss im Glas wachsen)”는 말도 있으니 기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생맥주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세계 맥주시장이 워낙 커서 우리나라 맥주의 점유율을 따져본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빠르게 질이 향상되고 있다지만 대동강 맥주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던 우리 맥주를 생각하면 수출이 되기나 할까 싶군요. 그런데 실상은 그게 아니랍니다. 우리나라 맥주 수출은 2010년부터 소주를 제치고 주류 수출 1위를 지키고 있으며 지난해 처음으로 20만 톤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판매액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는데 해외에서 우리나라 맥주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주로 향수에 젖은 동포들과 케이 컬처를 업고 늘어나는 한식당들이 아닐까 싶네요. 맥아(麥芽)나 홉(hop) 등 맥주 원재료에서 취약하긴 해도 머지않아 우리의 제조기술이 올라 훨씬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할 것으로 기대해야겠죠. 맥주는 거의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습니다. 기원전 2500여 년쯤 이집트 피라미드 공사 인부들이 맥주를 마시던 당시의 유적이 발견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그렇다고 이집트가 맥주 제조의 시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곡물이 비에 젖어 자연발효가 이루어지는 순간 맥주가 탄생했다고 본다면 농경시대에 들어 세계 곳곳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소설을 통해 보면 중세 유럽에서는 물 대신 에일 맥주를 늘 비치해놓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일은 발효 온도가 높은 효모를 사용함으로써 윗부분[上面]에서 발효가 되도록 한 것이고 라거는 발효 온도가 낮은 효모를 사용해 아랫부분[下面]에서 발효가 되도록 한 차이가 있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에일과 라거는 향미나 목넘김이 상당히 다르다 하겠습니다. 1561년에 독일 바이에른의 빌헬름 4세는 ‘맥주순수령(German Beer Purity Law, 麥酒純粹令)’을 공포했는데 맥주는 물, 홉, 보리로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다른 원료가 들어간 맥주에는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바람에 밀맥주 제조는 면세 지역인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지요. 빌헬름 4세를 취향 면에서 맥주 정통파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법령으로 인해 독일이 유럽 내 맥주 제조의 주도권을 쥐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지금도 어떤 독일 맥주 브랜드는 이 영(令)에 따라 주조했음을 밝히고 있죠). 독일과 경쟁이 될 만한 체코의 맥주가 뜨기 시작한 것은, 1842년 플젠(Plzen)에서 제조된 황금색의 필스너 라거가 나오면서입니다. 당시 새로이 등장한 투명 유리잔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시장을 휩쓸다가 독일로 역수출된 것이 필스너인데 대표 브랜드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은 원조 필스너란 뜻으로 체코의 자존심을 지키는 한 축이죠. 맥주의 본방을 독일로 치더라도 맥주 강국이 의외로 체코라는 사실이 흥미롭군요. 체코의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143ℓ로 24년째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하네요. 체코 다음은 오스트리아(106ℓ), 독일(104.2ℓ), 미국(74.8ℓ)의 순이고요. 스텔라 아르투아, 벨기에産 맥주에 대한 취향은 계속 변하는 걸까요? 사람마다 기본적인 취향이 있다고 해도 여러 가지 브랜드를 접하다 보면 기왕의 취향과 다른 맥주들을 찾게 되지요. 언젠가 브뤼셀에 들렀을 때 미술관 옆 큰 광장에서 친구와 함께 마시던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 생맥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그 양조장이 1366년에 세워졌다 하니 연도만으로도 애호가들의 갈망을 채워주기에 족하다고 하겠죠.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스텔라 아르투아를 멀리할 수 없답니다. 10여 년 전 이탈리아 남부 포지타노(Positano)에서 옥빛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마시던 페로니(Peroni)의 완벽한 블론드 빛깔과 가뿐한 그 맛에 매혹되어 요즘도 이태원의 유명 피자집에 가면 찾아서 마신답니다. 마드리드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어느 광장에 헤밍웨이가 자주 찾았다는 맥줏집(Cervezaria)이 있는데 굳이 그 집을 찾아 헤밍웨이가 와서 앉곤 했다는, 창가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에스트레야(Estrella) 생맥주를 주문해 마셔보기도 했죠. 에스트레야, 스페인 바르셀로나産 지금까지 유럽 맥주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유럽 밖의 맥주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수입량 2위를 자랑하는 미국산 맥주 브랜드도 다양합니다. 버드와이저를 비롯해 밀러, 쿠어스 등. 미국 하면 무엇보다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는 풍경이 떠오르죠. 오래전 뉴욕의 시(Shea) 스타디움에서 메츠와 양키스 게임을 보러 갔을 때 남들 하는 대로 종이컵에 든 버드와이저 생맥주를 사 마셨는데 솔직히 맛있다는 인상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후 미국 맥주 하면 도매금으로 ‘별로’라는 판정을 내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는 광고 노래가 좋아서 한동안 미켈롭(Michelob)이란 브랜드를 즐겨 마신 적도 있습니다. 100만 달러짜리 목소리를 타고 멋진 블론드의 여인이 춤추듯 걸어가는 장면이라 아마도 거기에 정신을 빼앗겼던 것 같기도 합니다. 라거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보리와 홉의 사용량을 줄이고 옥수수나 쌀 등을 섞어 단가를 낮추면서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간 것도 미국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죠. 저는 맥주의 ‘아메리칸 스탠다드’는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지만 위스키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보리가 아닌 다른 재료들을 써서 버본이나 테네시 위스키 등으로 변화를 이뤄낸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발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국 중의 대국인 중국의 칭따오(Tsingtao, 청도) 맥주를 잠시 언급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불공정한 일이겠죠. 사실 중국 식당에서는 칭따오 외에 다른 맥주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죠. 칭따오가 언제부터 유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 요릿집에서 드러나게 눈에 띄는 맥주가 칭따오 아니겠습니까. 칭따오 맥주는 세계 어느 곳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중화요리에 얹혀서 널리 알려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칭따오 맥주는 19세기 말 삼국간섭(三國干涉)으로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 산둥반도에서 독일 기술자들이 맥주공장을 지어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높은 기술 전승 혜택으로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누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맥주 원료는 물, 맥아, 홉 그리고 효모인데 무엇보다 우선 물이 좋아야 좋은 맥주가 나오겠지요. 아무리 물이 좋아도 좋은 맥아가 없고 좋은 홉이 나지 않는다면 훌륭한 맥주를 만들 수 없을 것입니다. 홉은 덩굴식물의 꽃인데 종류에 따라 레몬이나 포도, 솔잎, 재스민 같은 다양한 아로마를 가미해주죠. 말하자면 맥주의 향신료라고 할 수 있는데 홉이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물은 정제해서 만들 수도 있다지만 좋은 맥아나 홉은 수입해 와야 합니다. 그러니 제조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데 원가절감을 하다 보면 맛 좋은 맥주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이해할 만하죠. 아무튼 우리 스스로 근사한 맥주를 만들 때까지 다양한 수입 맥주가 들어와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채워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정달호 전 이집트 대사관 대사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 대사를 지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저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다. 현재 제주도 국제교류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한라산 자락의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는 등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
- 2019-11-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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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놓치기 아까운 코엑스의 6월 행사
- 삼성동 코엑스에서 리모델링 개장 2주년 기념으로 6월 한 달 동안 특별행사를 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명사 초청 특별 강연. 하나같이 놓치기 아까운 강연들이다. 지난 6일은 특별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강연이 있었다. 소설 ‘개미’로 세계적 작가로 부상한 이후 ‘타나토노트’, ‘신’, ‘웃음’, ‘나무’ 등 잇따라 화제작을 내놓았다. 35개국 언어로 번역되었고 2천 3백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번엔 ‘죽음’이란 작품 발간 기념으로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만나보고 싶었던 작가였기에 강연을 듣고 사인까지 받았다. 주어진 육체는 영혼의 세계보다 훨씬 가치가 있고 소중한 것이므로 삶을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야 하며 자살 같은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고 작가는 강연을 통해 강조했다. 7일에 있은 연극배우 손숙씨의 강연에서 손씨는 자신의 삶을 유머와 함께 풀어냈다. 자신의 일생은 어려서부터 책과 연극이었으며 자연과 독서의 어울림이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시력이 떨어져 마음껏 책을 잘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면서 죽는 날까지 연극무대에 설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노배우는 말했다. 14일엔 소설가 공지영 씨, 21일에는 유홍준 교수, 그리고 28일에는 건축가 유현준 교수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 금요일 명사 초청 강연 말고도 수요일. 목요일 오후 7시에 많은 전문 강의가 계획되어있다. 그뿐만 아니라 매주 토요일 3시에는 도서관 콘서트도 열려 힐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별마당 도서관은 삼성역 스타필드 코엑스 몰에 위치한 열린도서관으로 총 7만여권의 장서를 갖추고 있으며 무료로 즐길 수 있다.
- 2019-06-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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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속 책 박물관을 가보실까요?
- 도심에 크고 작은 책방에 이어 헌책방이 생겨나더니 이번엔 책박물관도 생겼다고 해서 찾아가봤다. 지난 4월 23일 서울시 송파구 송파대로37길77에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책 박물관. 상설전시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독서공간도 함께 마련했다. 지하 1층에 수장고와 오픈 스튜디오, 지상 1층에는 어린이를 위한 북 키움과 키즈 스튜디오, 어울림 홀이 있고 지상 2층에는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미디어 라이브러리, 야외정원 등이 있다. 상설전시장은 책과 문화독서라는 주제 아래 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향유로 조선시대의 독서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선 시대의 독서 문화와 독서광, 장서 등이 소개되어 선현들이 보여주는 독서문화를 통하여 책 읽는 즐거움을 느껴보게 된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붓으로 옮겨 적은 책을 팔고 사는 업이 성행했다고 하니 그 모습들이 미소를 짓게 한다. 제2부는 소통으로 1910년부터 최근까지 100여년의 독서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세대가 함께 책으로 소통하는 즐거움의 공간으로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다. 연대별로 베스트셀러나 잡지가 전시되어 있어 그 공간에 서면 마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도 받는다. 제3부는 창조의 공간으로 책이 나오기까지의 전 과정을 테마로 엮었다. 작가의 방을 통하여 책이 저술되는 시작의 공간과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전 과정을 돌아보는 공간. 작가의 방, 출판기획, 편집자의 방, 북 디자이너의 방을 살펴보고 체험하는 장이 있다. 작가의 방에서 들려오는 타자기 소리와 노트에 펜 긁히는 소리가 마치 현장에서 책이 탄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된다. 그리고 북 키움은 미래세대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이들이 책과 함께 놀며 더 큰 세상의 꿈을 키운다는 기치 아래 구성된 체험 전시 공간이다. 꿈이 자라나는 체험공간인 동화마을, 꿈이 샘솟는 독서공간인 지혜의 샘, 꿈을 만드는 창작 공간인 동화마을 아뜰리에로 구성되어 있다. 이 박물관은 특별한 날이나 찾아가는 박물관이 아니라 수시로 찾아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조상들의 독서문화와 미래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친숙한 공간이다.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아니고 필요한 책을 언제든지 뽑아 즐길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다. 이용 및 교통 안내 - 관람 시간은 매주 화요일~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관람요금은 무료. - 지하철 8호선 송파역 4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9호선 석촌역 5번 출구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으며 버스는 3322, 3417. - 주변에 석촌시장이 있어 가족과 함께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 2019-05-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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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연회, 맑은 느낌 수채화에 빠지다
- 또 다른 느낌의 에너지였다. 붓이 물 안에서 살랑, 찰랑. 물 묻은 붓이 물감을 만나면 생각에 잠긴다. 종이에 색 스밀 곳을 물색한다. 한 번, 두 번 종이 위에 붓이 오가면 색과 색이 만나고 교차한다. 파고, 풀고. 수백, 수천 번 고민의 흔적에 마침표를 찍으면 삶의 향기 드리운 수채화 한 점이 생명을 얻는다. 수채화 그리는 일상을 살아가는 김재열 교수의 제자 모임 ‘수연회’를 찾아갔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각자의 시선으로 색감 물들이는 이들에게는 잔잔한 어울림과 따뜻함이 있었다. 수채화를 그리는 모임 ‘수연회’ “2004년쯤 수채화교실의 인터넷 카페를 만들려고 보니 대표할 이름이 없는 거예요. 마침 그때 KBS2 드라마 ‘겨울연가’ 인기가 일본에서 대단했어요. 일본에 있는 친구가 드라마 촬영 장소를 그려서 책을 만들자고 해서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릴 때였습니다. 그래서 ‘수채화연가’라고 이름을 지었고 지금의 수연회가 됐습니다. ‘수채화를 사랑하는 모임’. 자연스럽게 예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지난 9월 말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가온갤러리에서 열린 ‘2018 한·일 수연회 아카데미전’에서 밝은 얼굴의 김재열 교수를 만났다. 홍익대학교에서 건축미술을 전공하고 1980년대 이름을 날렸던 주식회사 보루네오가구 임원으로 정년퇴임한 김재열 교수. 현재 홍익대학교 문화예술 평생교육원을 비롯해 다양한 예술교육 현장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제자들이 그림 그리는 것에만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솜씨를 세상에 알리고 보여주기 위해 매년 이렇게 전시회를 열고 있다. 32년 전 업무차 만났던 일본인 친구 우에노 히로시(上野 博) 첼시아트아카데미 대표는 평생을 함께하는 그림 친구로 꾸준히 교류 중이다. 전시장 안에는 김재열 교수와 제자 45명, 우에노 대표와 제자 18명의 연합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한·일 양국 두 스승과 제자들의 교류 전시회는 올해로 7회째로 수채화 총 64점이 전시됐다. 내년에는 일본에서 한·일 연합 전시를 할 예정이다. ‘나의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치러진 이번 전시회에서는 양국 제자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달리던 도시인, 느린 삶에 눈뜨다 수연회에 모인 사람들은 직업군도 나이도 다양하다. 30대부터 80대까지 전·현직 교사, 퇴직 공직자, 주부, 작가, 제빵 경영인 등이 수채화를 그리기 위해 모였다. “선긋기부터 시작합니다. 그림을 잘 모르던 사람도 함께 그리다 보면 실력이 늘어요. 퇴직한 분들도 오십니다. 그림 한 번 그려본 적 없는 분도 있고요. 다들 용기내서 들어오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매력이 있어서 수채화 속에서 이들은 낭만을 즐기는 것일까? “수채화가 다시 사람들 마음속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하더라도 관광지에서 사진만 찍고 끝내지 않아요. 느리게 여행하고 대상을 천천히 봅니다. 사진이 아니라 그림으로 남겨오면 더 좋잖아요. 그게 바로 ‘어반스케치(urban sketch)’, 즉 스케치 활동을 하며 도시기행을 하는 것이죠.”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인생을 담는 작업이기에 시니어들에게 더 없이 다 필요하다고 김재열 교수는 말했다. “시니어가 ‘고희연’ 같은 잔치 대신 전시회를 열었으면 합니다. 작년에 파킨슨병으로 더는 그림을 못 그리는 회원 한 분이 금혼식과 함께 전시회를 했어요. 도록을 만들면서 옛 사진도 넣어 만들었더니 좋아하더군요. 특히 전시회 도록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저도 장담 못해요. 언제 아플지 모르잖아요. 그림과 기록은 남잖아요. 잔치 대신 전시회! 이런 캠페인을 벌이고 싶은 게 제 마음입니다.” 화실에서 만난 수연회 사람들 김재열 교수의 화실에서는 매주 금요일에 5명의 제자들이 모여 그림을 그린다. 전시회에서 그림 관람을 하고 방문한 화실에는 수연회원 4명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시장에 인상적인 바게트 그림을 출품한 제과점 사장 조화익 씨,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박진주 씨, 극작가 진윤영 씨, 13년째 김재열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는 주부 이경자 씨가 넓은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올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3년째라는 조화익 씨는 서울 인사동과 안국동 근처에서 20년 넘게 제과점을 하면서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고 한다. 그분들이 그림을 그려주면 받기도 했는데 그때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을 조금씩 키워왔다. 마음속에 떨어져 있던 겨자씨가 어느새 자라 나무가 된 것이다. “젊었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지만 제과제빵 기술자로 일하느라 그림 그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올해 제가 일흔여덟 살인데 지금이 내 인생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시기인 것 같아요.” 박진주(37) 씨는 홈스쿨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면서 필라테스 사업을 하고 있다. ‘세월의 향기’라는 작품으로 2017 인천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한 박진주씨는 마무리가 있어서 수채화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유화는 계속 덧칠할 수 있어서 끊임없이 수정할 수 있어요. 끝이 없죠. 그런데 수채화는 끝이 있어요. 상쾌하고 맑아서 좋아요. 색감도 좋고요. ‘세월의 향기’라는 작품을 1년 8개월 동안 그렸어요. 그림을 그리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냥 덮고 가고 그랬는데 결국 해낸 거죠. 동기부여가 됐어요. 처음에는 이게 뭐냐 했는데 정말 열심히 그림을 팠어요. 수채화를 파고 푼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저는 풀지는 못하고 파기만 합니다. 교수님은 물로 물감 농도 조절해서 풀면서 그리시는데 저는 아직 멀었죠.” 이경자 씨는 20년 동안 그림을 그렸고 지금까지 상도 많이 받았다. 5년 정도 소묘를 하다가 수채화를 배우기 위해 김재열 교수를 만났다. 이창포를 그리기 위해 밑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녀는 마침 화실에 쌓아두었던 그림을 정리하다가 그림 한 점을 꺼내 보여줬다 “10년 넘게 묵혀놓았던 그림이에요. 2007년도 세계평화미술대전에서 특선을 받은 건데 제목은 ‘역주’입니다. 그때는 역동적인 그림만 그렸어요.” 꽃그림만 그릴 줄 알았는데 다양한 모델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찾아본다는 이경자 씨. “SNS에 가수 손담비가 동묘구제시장에서 옷을 사 입고 포즈를 취한 걸 봤는데 멋지더라고요. 드로잉하면 되겠다 싶어서 팔로잉하고 사진 캡처도 했습니다.” 진윤영 씨는 수채화를 그린 지 2년 됐다. 가끔 호랑이나 사자 그림을 그려 SNS에 올렸는데 사납거나 용맹스러워 보이지 않아 그림도 주인을 닮는구나 생각했다고. 그는 지인이 그려 달라던 강아지 두 마리 그림을 보여줬다. 맹수가 아니라 그런지 둥글둥글 귀여운 강아지 모습을 꽤 잘 그렸다. “교수님이 제 연극작품을 좋아해서 때마다 많은 분을 모시고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그림에 관심이 있다 했더니 화실로 당장 오라고 하셨어요. 처음부터 무조건 그렸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그림 그리는 시간이 좋습니다.” mini interview 운명 같은 그림, 제자들과 나눕니다 수연회 지도교수 김재열 재능에 칭찬을 더한 삶을 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방학숙제로 냈던 그림이 교실 뒤에 붙은 게 계기였죠.” 형이랑 같이 그려 방학숙제로 냈던 그림이 우수작에 뽑혔다. 그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김 교수는 입소문이 날 정도로 미술 영재로 성장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미화부장을 줄곧 맡았다고 했다. 경상북도 의성 출신인 김재열 교수는 산업인재 육성에 힘을 기울이던 시절 대구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공고라 대학 진학이 멀어지나 싶었는데 때마침 미술반이 생겼다. 고교시절에도 경북 도내에 미술과 관련한 상은 다 휩쓸었다. 그림이 좋았지만 예술을 하면 어렵게 살게 될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우려도 있었다. “그때 홍익대학교 건축미술과가 있다며 한 선배가 얘기해줬어요. 그림에 디자인도 배울 수 있다면서요.” 홍대에서 열렸던 미술 실기대회 입선 경력도 있고 그림에 자신 있었던 김 교수는 무리없이 미대 명문인 홍익대학교에 입학했다. “건축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ROTC 장교로 군에 있을 때도요. 사단 내에서 크리스마스트리 대회에서 1등을 해서 휴가도 나가고 진급도 빨랐죠. 군 제대 후에 보루네오가구에 입사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대규모 가구공장이 인천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때 평생의 그림 친구인 우에노 씨를 만났다. 첫 만남부터 평생 친구를 알아보다 “우에노 선생이 우리 가구공장에 견학을 왔어요. 1986년, 32년 전에요. 우에노 씨는 공장장이면서 디자이너였습니다. 저는 회사의 디자인개발 소장이었고요. 그때 제가 불고기 쌈밥을 좋아해서 식당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의 쌈 먹는 방법을 설명해줬습니다. 만났던 첫날 언젠가 함께 미술 전시를 하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16년 만에 그 약속을 서로 지켰죠.” 그림 공부를 하고 싶었던 우에노 씨는 51세에 회사를 관두고 다음해 영국 첼시로 유학을 떠났다. “우에노 씨가 영국에서 유학할 때 저도 그를 만나기 위해 영국에 갔습니다. 그때 같이 도시를 다니면서 스케치도 하고 말이죠. 1년 3개월 유학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 우에노 씨는 책도 내고 수채화를 가르치는 미술 아카데미를 개원했습니다. 저는 아직 회사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저도 정년퇴임하고 나서 그림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화실도 만들고 본격적으로 교류하고 말이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멘토입니다.” 드로잉북과 함께 떠나는 여행 취재를 마칠 즈음 꼭 보여줄 게 있다면서 노트를 꺼내 들고 방에서 나왔다.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과 비행기 티켓, 글귀 등이 담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드로잉북이었다. “기내에서 와인을 자주 사 마시는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입니다. 먹고 자고 관광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느낌은 담았으면 합니다.” 그는 기내 사무장이 준 감사편지도 잊지 않고 드로잉북에 붙여놓았다. 더 보고 싶어 방으로 따라 들어가니 크고 작은 드로잉북이 한가득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제자들과 함께하실 생각이냐고 물었다. “즐거우니까 싫어질 때까지? 죽을 때까지 붓 들고 있으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 라이프@이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동창회, 동호회 등이 있다면 bravo@etoday.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2018-11-14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