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0세대 대부분은 보릿고개가 있을 정도로 먹고살기 힘들던 지난날이 있었다. 청년들에게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을 들려주면 마치 임진왜란 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현재의 청년들이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면서 개개인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어른들이 굶주리며 일할 때 지금의 시니어들은 가사를 도와가며 열심히 공부했고 달려왔다. 책도 부족하고 TV나 라디오도 흔치 않았던 시대, 아이들의 정서 함양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친구와 싸웠을 때 어떻게 풀어야 할지, 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부모님께 꾸중 들으면 화가 나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기 힘들 때 아이들 옆에는 만화가 있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세상을 알려준 만화에 대한 기억들을 꺼내보자.
최초의 단행본 만화 작가 ‘코주부’ 김용환
코가 뭉뚝하고 키는 작달막하지만 다부진 모습의 ‘코주부’는 김용환 작가의 대표 캐릭터다. 때론 모자를 쓰고 점잖은 어른으로 나와 신문에서 당대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시사만화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코주부’가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1952년, 잡지에 연재된 를 통해서였다. 청소년 교양지였던 은 10만 부 가깝게 판매되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로 인기 잡지였다. 책이 부족했던 시절, 읽을거리가 풍부했던 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그곳에 빼어난 이야깃거리인 를 그림으로 만날 수 있었으니 당시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에 연재된 ‘코주부 삼국지’는 1955년 만화책 로 발행되면서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다.
김용환의 만화는 세련된 그림, 재미있는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갔다. 그는 를 발표하기 이전부터 이미 아동만화를 많이 발표한 작가였다. 최초의 단행본 만화를 발표한 작가도 김용환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발표된 만화는 1909년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의 만평이라고 소개하지만, 어린이에게 친숙한 만화책이 처음 나온 것은 해방 후였다. 바로 동화작가 마해송의 작품인 를 김용환이 만화로 각색해 1946년에 발표한 다. 이 작품은 해방 후 아동문화를 만들기 위해 을유문화사에서 만든 아협만화문고 시리즈 중 하나다. 한국 최초의 단행본 만화로 기록되었고 2013년, 등록문화재 제537호로 등록되었다.
김용환은 만화 발표 외에도 만화신문과 만화잡지를 직접 발행하고 기획하기도 했다. 1948년, 최초의 만화신문인 의 기획자, 작가로서 참여했고 도 직접 발행했다. 또 한국전쟁 후인 1956년엔 성인시사만화잡지인 를 통해 시사만화의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물론 각종 신문에도 시사만화를 발표했다. 이렇듯 김용환은 한국 만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방송인 만화가 신동우
가정에 TV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한 만화가가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즉석에서 슥슥슥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충격적이었다. 바로 신동우 작가였다. 그가 유명 방송인이 된 것은 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1967년 1월 7일 서울 대한극장을 비롯해 많은 극장에서 상영된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만화영화)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 작품의 탄생은 신동우 작품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은 1965년부터 1969년까지 에 연재된 후 단행본으로 출판된 작품인데, 이 연재만화를 대본으로 신동우 작가의 형인 신동헌 감독이 우리나라 최초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든 것이다. 홍길동에 관한 만화는 이전에도 많았고 이후에도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신동우 작가의 은 홍길동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시킬 정도였다. 이 작품은 허균의 에 대한 가슴 벅찬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홍길동’ 외의 주변 인물인 ‘호피’와 ‘차돌바위’, ‘곱단이’ 등의 캐릭터도 개성 있게 묘사되어 있어 매력적이다.
신동우는 1970년대에 유행했던 잡지의 만화 광고로도 유명하다. 오랫동안 진주햄소시지 제품을 일상 만화로 풀어냈는데,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었다.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 웹툰의 시조격이라 할 수 있다.
슬픔의 미학으로 전쟁의 상흔을 위로한 김종래
휘영청 밝은 달은 금준의 마음을 알듯 구름을 머금고 내려다본다. 나쁜 사또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중에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일하러 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자 엄마를 찾아 나선 금준은 괴나리봇짐을 지고 풍천노숙을 하며 전국을 떠돌다 지쳐 장승에 기대어 엄마를 불러본다. 김종래의 중 한 장면이다. 김종래는 한국전쟁 이후 많은 사람이 파괴된 삶과 가족과의 이별로 고통스러워할 때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감동 만화로 인기를 누린 작가다.
1956년에 발표한 은 한국전쟁 당시 충남 예산의 한 가족사를 다룬 만화다. 주인공 김일, 최도천, 향순이가 전쟁을 겪으면서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게 되는 내용으로, 전쟁 후유증을 겪던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김종래라는 이름을 독자들에게 알렸다. 특히 1958년 에 연재했던 는 당시 독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엄마를 찾아 길을 떠난 금준이 전국을 떠돌며 온갖 위기에 맞서 나가는 사이, 두만강 건너로 팔려간 엄마는 모진 수모를 겪으며 아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틴다. 이렇게 아들과 엄마가 만날 듯하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이야기 구조는 독자들의 마음을 온통 빼앗아버렸다. 구구절절한 사연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까지 그의 만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1962년에 발표된 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피란을 가던 한 가족이 엄마와 헤어져 무일푼으로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며 겪는 이야기다. 엄마 없이 힘겹게 살아가는 영진이네 가족 이야기이지만 전쟁 이후 사람들의 사나운 인심, 영진이 선생님 같은 선량한 사람들의 모습을 감동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김종래의 만화는 치밀한 구성과 감성적인 문장으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애잔하게 보여주며 사람들의 힘든 마음을 위로했다. 또한 길가의 돌부리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섬세한 필체가 특징이다. 25년간 4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그중 시리즈는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
소녀들의 판타지를 보여준 엄희자
1960년대 초반에는 예쁜 공주들이 만화책 속에 등장했다. 이전에도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가 다수 있었지만 엄희자 작가의 등장으로 순정만화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큰 눈 속에 들어가 있는 빛나는 별, 머리를 장식한 예쁜 리본,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주인공은 순식간에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주로 영화나 영미소설의 스토리를 각색한 작품이 많았는데, 현대적인 패션들을 한껏 뽐내며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최고 인기였다.
소설 을 만화로 만든 , 소설 을 각색한 등 서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장한 화려한 패션이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만화방에서 빌려온 엄희자의 만화책을 보면 찢긴 페이지가 많았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걸친 주인공의 모습이 소녀들의 소유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만화 주제는 권선징악이었고 순정만화는 그러한 교훈이 더 강했다. 만화 속에 나오는 악당은 착한 주인공을 질투, 음해하고 모함하지만 결국은 주인공의 선행으로 회개하고 반성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엄희자의 작품에 그려진 아름답고 순수하고 맑은 감성도 이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소년·소녀들의 명랑사회를 보여준 길창덕
1970년대는 ‘꺼벙이’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 속의 주인공들은 모범생이나 천재나 능력자가 많았다. 당시 사회가 요구하는 어린이상이 그러했던 것이다. 비록 아이일지라도 어른들의 몫을 나눠서 해냈어야 했다. 그러나 조금씩 먹고사는 것이 안정이 되던 1970년대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어른의 몫을 나누지 않아도 되었다. ‘개구장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광고카피가 등장할 정도로 아이들의 철부지 같은 모습이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런 시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길창덕의 다. 1970년에 에서 연재를 시작해 으로 옮겨 1977년에 완결된 작품으로 잡지뿐 아니라 단행본으로도 만들어져 1970년대를 풍미했다.
머리의 기계충 자국과 졸린 눈에 약간 모자란 듯하지만 착하고 여린 심성의 꺼벙이는 엉뚱한 생각과 행동을 많이 해서 항상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드는 명랑 어린이다. 시골에서 할아버지와 살다 상경한 여동생 꺼실이가 후에 등장하면서 그 재미는 한층 더 배가되었다. 뿐만 아니라 , , , 등 그의 작품 속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말썽을 부리고 엉뚱했다. 그러나 그 모든 사건 속에는 개인의 이기심이 아니라 가족들과 친구들,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잘 살자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가족의 희로애락 그려낸 이상무
가난하지만 명랑한 아이인 독고탁은 학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항상 대문에서 주저한다. 대문을 열면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직 어린아이인 독고탁의 키만큼 달려들기 때문이다. 개는 독고탁이 좋다고 달려들지만 그는 자기 몸집만큼 큰 개에 겁을 먹는다. 무서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항상 머리를 굴리며 대문을 들어서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다. 이상무의 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귀여운 모습과는 달리 희귀 성인 ‘독고’와 강한 이름인 ‘탁’이라 불리는 이 아이는 6남매의 막내로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그러나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엄마의 자리를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어서 슬프다. 아버지의 실직과 교통사고, 일찍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권투 유망주였던 형은 돈을 받고 경기를 하게 된다. 독고탁의 가족에게 벌어진 시련은 1970년대 여느 가정에서 겪었을 법한 일들이다. 독고탁은 누나들의 살뜰한 보살핌이 필요할 정도로 어렸지만 집 안의 어두운 분위기를 재빨리 눈치 채는 섬세한 아이였다. 또, 그런 독고탁을 통해 가족 드라마의 희로애락을 만화 속에 진하게 담아낸 작가가 이상무였다.
그의 작품에는 가족과 스포츠가 등장한다. 특히 같이 야구를 소재로 한 만화는 끝없는 경쟁을 해야 하는 스포츠 세계의 현실을 만화 속에서 시련을 극복하는 자기훈련과 노력들로 보여준다. 좌절의 순간에는 가족들의 응원이 있었고 무한 경쟁이 아닌 사람 간의 교류가 있었다. 이상무 작품의 인물들은 악인이라도 사람 냄새가 난다.
해피버스데이라는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해피버스데이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림수산식품 교육문화정보원(줄여서 농정원이라 부른다) 주관으로 도시와 농촌의 동행이라는 목표로 이루어지는 농촌 체험 브랜드를 말한다.
하늘색의 산뜻한 차에 귀여운 로고가 찍혀 있는 버스를 타고 떠나는 신나는 팸투어다. 농촌체험은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마지막 주 토요일에 농림축산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진다. 어른은 1만 원, 어린이는 5000원의 참가비를 내면 도시를 떠나 농업과 농촌의 소중함을 배우고 점심식사와 선물도 한아름 받을 수 있는 보람 있는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해피버스데이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화창한 6월의 마지막 주에 필자는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는 6차 산업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목적지는 6차 산업의 성공으로 마을 사람의 단합이 훌륭하다는 충남 당진의 백석 올미 매실한과 영농조합 마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당진의 유명인사인 심훈기념관에도 들린다니 학창 시절 심훈 작가의 소설 를 읽고 가슴 설레던 날이 생각나 기대되었다.
오전 9시 30분 양재동에서 집합하여 참석자 모두 빨간 글씨로 해피버스데이라는 로고가 찍힌 흰 티를 받아 갈아입으니 서로가 더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화기애애한 기분이 느껴졌다. 같이 떠난 잘생긴 스태프들의 유쾌하고 친절한 안내로 더욱 즐거운 체험이 되었는데 6차 산업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농촌에서 농산물을 생산하는 건 1차 산업이고 농산물 가공은 2차 산업이다. 그리고 체험과 관광 서비스인 3차 산업을 합쳐 6차 산업이라고 한단다.
두 시간쯤 달려 충남 당진 ‘할매들의 반란’으로 유명한 백석 올미 영농조합에 도착했다. 곳곳에 귀여운 할매 캐릭터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김금순 대표님의 인사와 한과 마을로 발전한 내력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남편의 고향인 이곳으로 귀농해서 동네 사람들과의 의기투합해 매실을 사용한 명품 한과를 만들어 판매하기까지의 어려웠던 과정과 성공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랑스럽게 소개해준 할매 사장님들의 수줍은 미소도 친근하게 다가왔고 80세인 할머니를 비롯해 모두 높은 연세인데도 행복해 보였다. 할 일이 있고 소득이 있어서일 것이다. 58명의 할머니 사장님들은 올해의 매실한과 매출 목표를 7억 원으로 잡고 있었다. 수익금으로는 백석 올미 힐링타운을 설립하는 게 꿈이라 하는데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한과 공장이 많은데 올미마을에서는 모든 재료를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농산물로만 만든다고 한다. 한과를 튀기는 기름도 하루만 사용한다니 그래서 맛으로나 영양 면으로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상품이 만들어질 것이다.
대표님의 올미마을 소개가 끝나고 즐거운 점심시간이 되었다. 할머니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밥과 반찬은 정말 맛있었다. 모두 근처에서 따온 가지와 호박 등 직접 키운 재료로 만들었고 고기만 사왔다고 한다. 점심을 마친 후에는 블루베리 수확 체험을 하러 나섰다. 토실하고 까맣게 익은 블루베리를 연신 따서 입에 넣기도 하고 나누어준 플라스틱 통에 열심히 담았다. 달콤한 블루베리를 한가득 따서 선물로 받으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다시 한과 체험장으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명품 매실한과 만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튀겨진 한과를 이곳에서 만든 조청에 넣어 밥풀을 묻혀 한과를 만들었다. 맛보고 남은 한과는 다들 나누어 가져왔다. 매실 원액도 한 병씩 선물로 받아드니 큰 횡재를 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이곳에는 따로 마련된 판매장에서는 조청이나 한과, 매실 제품 등 다양한 농산물을 팔았다. 많은 분이 진열된 상품을 구매했고 필자도 직접 만들었다는 조청을 샀다. 김 대표님과 할매 사장님들의 따뜻한 인사를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심훈기념관으로 떠나는 발걸음이 아쉬웠다.
일제 강점기에 농촌 계몽에 힘쓴 심훈 선생의 소설 를 감명 깊게 읽었던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채영신과 박동혁의 사랑 이야기로 기억되는 ,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읽으며 감회에 젖었다.
해피버스데이를 타고 블루베리 수확과 매실 한과 체험을 한 오늘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올미마을 할매들의 반란이 성공적으로 이어져 그분들이 바라는 일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팸투어를 마쳤다. 우리 시니어들에게도 추천한다. 가족과 함께, 손자 손녀를 데리고 다녀오면 즐거운 하루 나들이가 될 것이다.
‘글을 잘 쓰는 패션 디자이너’
필자의 후반생 꿈이다.
2012년 퇴직한 후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봤다. 패션 디자인, 패션 모델, 발레와 왈츠 그리고 탱고 배우기, 영어회화, 서유럽 여행하기, 좋은 수필 쓰기, 오페라와 발레 감상하기, 인문학 공부하기 등 많기도 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무엇이 중요할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필자는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선생님이 되어 30여 년을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일했다. 퇴직을 했어도 공무원 연금이 나와 최소한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은 정말 심각하단다. 절반이 빈곤층이라고 한다. 그래도 필자는 평생 원하던 일을 하고 퇴직 후에는 최소한의 생활까지 보장이 되니 이처럼 다행스런 일이 없다. 지금부터는 필자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인문학 공부는 주로 집에서 한국방송 통신대 강의를 통해 충족한다. 요일별로 국문학과 철학, 역사와 서유럽 문화기행,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창 자랄 때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의지만 있다면 TV와 인터넷 그리고 서울 각 구의 문화원에서 무료로 혹은 가성비 높은 비용으로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TV를 바보상자라면서 멀리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필자는 제자들에게 ‘정보의 바다’라고 표현했다. 인터넷에서 전복을 구하느냐 미역을 건져 올리느냐는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요즘엔 방송대 강의도 그렇고 교양 프로그램과 양질의 다큐멘터리 등 좋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방송대 강의가 너무 재밌어서 외출을 못할 때도 있을 정도다.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의욕에는 세월도 못 당한다. 필자는 퇴직 후 제일 먼저 강남 라사라 학원에 등록했다. 패션디자인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 선생님 다음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패션디자인이었다. 이곳에서 패션디자인 과정 초급 3개월, 중급 3개월을 마치고 서울시 창업스쿨에서 2개월간의 패션디자인 과정을 수료했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아마 평생 가지고 가게 될 것 같다. 발레는 어려서부터 필자의 로망이었기에 패션디자인 과정을 마친 후 바로 시작했다.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발레를 할 때마다 얼마나 큰 행복을 느끼는지 모른다. 발레가 어린 시절의 로망을 실현시켜주는 취미 정도라면 왈츠와 탱고는 능숙하게 아주 멋들어지게 추고 싶다. 운동할 때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왈츠와 탱고를 출 때는 어느새 끝나는 시간이 되곤 한다. 건강을 위해, 바른 자세를 위해, 힐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춤이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에서는 팔십이 넘은 노인들도 발레를 한다. 노인분들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인다.
서초문화원에서는 수필을 잘 쓰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으며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쓴 글이 96편이 될 정도로 글쓰기가 생활화되어 있다. 틈틈이 압구정역에 있는 무지크 바움에 가는 것도 잊지 않는다. 몇 해 전에는 강남시니어플라자의 모델워킹반에도 등록했다. 주 1회 모델워킹을 연습하고 있다. 2년 동안 패션쇼도 다섯 번 했다. 개성 강한 동료들의 기상천외한 옷차림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옷차림은 전략이고, 옷 입는 것도 일종의 예술 행위’다. 기왕이면 예쁘게 입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액세서리는 젊음이다. 젊은이들을 값싼 옷을 입어도 예쁘지만 나이 들면 옷차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물기 빠진 피부에 옷차림까지 추레하면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녹화가 있는 토요일은 될 수 있으면 여의도로 간다. 서포터즈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5포세대, 혼밥, 실업문제, 4차 산업혁명 등 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다루며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이다. 메인 브로드캐스터가 강연한 후 미래참여단 서포터즈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장에서 녹화에 참여하면 더 생생한 공부가 된다. 20대 젊은이에서 70대 시니어까지 다양한 세대와의 만남도 즐거움 중 하나다. 주 2회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주관하는 서울 둘레길 걷기에 참여한다. 둘레길 걷기는 주 3회 30분 이상 운동을 해야 하는 시니어들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다.
‘배움이 이어지면 기회가 이어진다’고들 한다. 지금 같아서는 지구촌에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식을 것 같지 않다.
이래도 되는 거야?
삶이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거냐고요!
어제는 너무 좋아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올해 4월부터 활동하게 된 온․오프라인 잡지 에 필자 글이 실렸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온라인에만 꾸준히 실렸는데 잡지사에서 정해준 주제 ‘으이구! 주책이야!’에 맞춰 쓴 글 ‘교재를 망가트려 죄송합니다’가 7월호에 실린 것이다. 제시한 주제에 맞춰 처음 써낸 글이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필자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다. 에서 주관한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필자와 함께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필자 스타일을 좋아하는 여성과 남성들이다. 모두들 성격이 활발하고 적극적인 분들이다. 하는 일도 인터넷 기자, 사회복지사, 공예가, 모델, 시인, 수필가, 교수 등 다양하다. 서초문화원 문화기행 프로그램에서 만난 분도 있고 동대문 제일평화시장 구두매장에서 필자 스타일에 필이 꽂혀 인연을 맺게 된 분도 있다.
평택여고에 재직할 때 필자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정성껏 대하라. 그 사람이 나와 어떤 인연으로 맺어질지 모른다.” 서둔야학 단톡방, 서민동 단톡방, 서울시 낭송회 시음 단톡방, 왈츠 단톡방, 명견만리 서포터즈 단톡방, 꿈방송 단톡방, 뉴시니어 리더스포럼21 단톡방, 강남시니어프라자 해피미디어단 단톡방, 모델워킹 단톡방, 서리풀 문학회 단톡방, 오페라 동호회 모임,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 친구들 등 단체회원 단톡방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인적 네트워크다. 살아보니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2년 전 메르스 사태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에서 녹화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하느라 고심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필자가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 모델워킹하는 동료들과 해피미디어단 회원들을 왕창 모시고 갔다. 담당 PD가 얼마나 고마워했는지 모른다.
필자는 바람잡이 역할을 즐긴다.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에서 행사를 할 때는 담당 PD를 초대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필자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각자의 재능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시니어 헬스 콘서트에 참석한 분들도 너무 재밌었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필자에게 말했다. 다음 행사에도 초대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아자아자! 이런 것이 바로 윈윈이다.
날개를 달아준 에 감사해하며 오늘도 필자는 저 푸른 하늘을 향해서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지금 필자의 삶은 글자 그대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 이런 삶이 수어지교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한 기쁨!
따봉, 원더풀!
온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목숨만 살려달라는 민들레의 간절한 외침을 하늘이 들어줘, 씨앗을 하늘 높이 날려 양지바른 언덕에 내려놓아 다시 그 삶을 잇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 ‘행복’이란다. ‘민들레트리오’, 그들의 밴드 이름에도 누군가와 함께 행복을 나누고 싶어 하는 의미가 있다. 민들레트리오의 멤버 이유진(56·리드기타), 이수정(56·리드보컬), 반보영(55·리듬기타)씨를 만나봤다.
‘노년반격(老年反擊)’. 꿈을 향한 뒤늦은 반항일까, 아니면 꿈을 위한 새로운 시도일까. 아마추어 시니어 뮤지션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프로젝트 ‘노년반격’이 올해 튜브앰프, 한국에자이, 부루다콘서트, 한국음악발전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우리마포복지관과 함께했다. 작년 ‘실버그래스’와 ‘바야흐로’를 발굴한 데 이어 올해는 여성 3인조 포크밴드인 ‘민들레트리오’를 선발했다. 이 행사를 통해 민들레트리오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 ‘외출하는 날’을 공개했고 5월에 콘서트를 열어 첫 데뷔 무대를 가졌다. 이후 민들레트리오는 꾸준히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늦은 시작이지만 괜찮아
압구정 의료기관과 함께하는 ‘해피바이러스봉사단’에서 만난 민들레트리오의 세 멤버는 5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꿈을 향해 질주 중이다. 서로의 장점을 물어봤을 때 ‘단점이 없다는 게 장점’이라며 한목소리를 낸 이들은 공통점이 많은 친구이자 음악을 사랑하는 한 가정의 엄마다. 젊은 시절 자식에게 헌신하느라 바빴던 이들이 하나둘씩 은퇴하면서 뒤늦게 자신의 삶을 찾았다.
음악감상실과 라디오에서만 머물던 포크송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지금은 모두 환갑을 넘긴 ‘쎄시봉 친구들’. 그들이 활동했던 시절의 청년문화는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제 추억 속의 기타는 청바지에 통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모습이 먼저 그려져요. 그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고 멋있어 보여 ‘통기타 한번 배워볼까?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기타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이유진씨의 기타 연주 실력은 가수 이한철이 “여성 기타리스트 중에서 이렇게 잘 다루는 사람은 드물다”라고 말할 만큼 수준급이다. 그의 음악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하모니카, 아코디언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만능 연주가다. 민들레트리오의 리더이자 리드기타를 담당하고 있는 이유진씨는 팀원을 직접 캐스팅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정, 반보영씨의 노래와 연주를 듣고 함께해야겠다고 결심했고 바로 두 멤버를 섭외했다고 한다.
메인보컬 이수정씨는 멤버 중 가장 늦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던 선생님. 퇴직 후 뭘 하면 좋을지 고민 끝에 기타를 선택했다.
“어디를 가도 노래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학창 시절엔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합창단을 선생님이 권유하실 정도였으니까요(웃음). 그 당시에는 집안 사정 등 모든 걸 생각해봤을 때 여유 있게 노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어쩔 수 없이 음악은 포기하고 공부에 몰두했어요. 후회? 후회는 없지만, 미련은 조금 남더라고요. 세월이 이렇게 빨리 흘러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은퇴를 코앞에 두고 ‘나만의 시간에 뭘 하면 좋을까?’ 하고 질문을 던지던 순간 저도 모르게 기타가 생각나더라고요. ‘내가 노래는 자신 있으니까 내 노래를 반주할 수 있을 만큼이라도 기타를 배워보자!’ 어쩌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작은 꿈을 이룬 거죠. 행복해요!”
팀의 막내이자 리듬기타를 담당하는 반보영씨는 20년 동안 금융업계에서 일하다 명예퇴직 후 기타를 배우며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고 있다.
“당시 명예퇴직금을 정말 많이 준다고 해서 퇴직을 선택했어요. 근데 막상 일을 안 하다 보니 다른 뭔가를 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제일 잘했지만 포기했던 게 뭐지?’ 하고 생각해보니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났어요. 학창 시절 음악 시험은 정말 식은 죽 먹기였어요. 다른 친구들이 계이름을 못 외우거나 못 맞추는 걸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어요(웃음).”
반보영씨는 그 시절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민들레트리오 멤버들은 “음악은 저희에게 피로회복제 같은 것이에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요. 또 남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어 좋아요”라며 현재 활동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드러내 보였다.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준 가족
지난 4월, 그들의 데뷔곡 ‘외출하는 날’이 공개됐다. 노년반격의 프로듀서인 가수 이한철이 작곡했고, 멤버가 함께 작사해 탄생한 곡이다. 가사는 평범한 일상에 익숙해진 삶을 살고 있지만, 예전부터 꿈꾸던 일들을 이루기 위해 다시 외출을 한다는 내용이다. 마치 민들레트리오 멤버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난 5월 홍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그들은 첫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노년반격 시즌1에서 뽑힌 ‘실버그래스’의 무대를 시작으로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민들레트리오가 이어갔다.
“가족에게 저희들 노래를 들려준 건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관중석에 있는 가족을 보자 이상하게 울컥해지더라고요. 사실은 콘서트에 오지 말라고 했어요. 생각해보니 그게 좀 마음에 걸려 더 열심히 연습한 뒤 초대했죠.”
이수정씨에게 울컥한 이유를 물어보니 “모르겠어요. 복잡한…? 엄마의 이런 모습…?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지 저도 모르게 그냥 그랬던 거 같아요”라고 답했다. 가족들 생각을 하면 괜히 서러워지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잘못하거나 미안한 일 한 적 없어도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 눈물이 나는 마음처럼 말이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늦게 음악을 시작하는 데 있어서 정말 큰 힘이 됐어요. 밴드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신랑은 제가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는 걸 아니까 ‘10년을 하겠어, 얼마나 하겠어~’ 하면서 응원해주고 있어요. 단 하나 요구하는 게 있다면 제발 악기는 더 이상 사지 말래요!”
이수정씨의 말에 모두가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맞아요! 아무래도 저희가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악기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기타는 벌써 3개나 있고 피아노에 아코디언에 집이 거의 악기상 수준이 되어버렸어요(웃음).”
즐기는 삶을 위하여!
민들레트리오가 함께 호흡을 맞춘 지 올해로 4년째다. 이제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게 취미 그 이상이 되어버렸다는 이들은 더 큰 목표를 세웠다.
“우리만 행복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면 어떨까 싶어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저희 노래를 듣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보면 기쁘더라고요. 저희를 필요로 하는 단체나 소외된 계층이 있으면 가서 즐겁게 노래하고 행복을 나누면서 지내는 게 목표예요. 가끔 ‘강원도 어디에서 무슨 축제를 한다더라! 여행 삼아 갔다가 버스킹하고 올까?’ 하고 말하곤 해요. 이번 ‘노년반격’을 계기로 저희들 곡이 하나 생겼는데 앞으로도 곡 작업을 본격화해 한 곡, 두 곡 차곡차곡 쌓아서 전국을 버스킹하며 함께 돌아다니는 게 꿈이에요. 그러다 보면 60대엔 또 다른 모습의 민들레트리오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시니어에게
민들레트리오 멤버들은 시니어 세대의 도전은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하나쯤은 잘하는 게 있어요. 영어를 잘하면 통역, 요리를 잘하면 요리사. 전문적인 능력이 없어도 괜찮아요. 사람은 나이 들수록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하잖아요. 사람 많은 곳에서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시작해보세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배운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더라고요. ‘노년반격’에 도전하면서 느낀 게, 20대가 되면 부모님이라는 울타리에서 나와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잖아요? 저희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결혼하고 정신없이 살다가 다시 사회로 나온 기분. 처음으로 노래를 발표하고 콘서트도 열고 마치 사회초년생 같은 기분이었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거 같아요.”
늦은 나이에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 번뿐인 인생,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꿈을 다시 펼쳐보는 건 어떨까?
뮤지컬 하면 관객들은 기본적으로 신나는 음악에 짜릿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완벽한 해피엔딩을 생각한다. 창작 뮤지컬 은 뮤지컬 상식을 깨고 실질적으로 관객의 의식 속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길에 버려지고, 이용당하고 또 주인이 잃어버린 유기견의 처절한 생활, 뮤지컬 속 노래와 대사를 통해 그들의 피할 수 없는 슬픈 삶의 끝을 조명해본다.
잔뜩 녹이 슬은 철창 안으로 꾸며진 무대. 이곳은 유기견 보호소다. 버려진 개의 종류도 다양하다. 여행가방 속에 버려졌던 푸들, 투견장 진돗개 ‘진’, 폐기 처분된 군견 셰퍼드 ‘중사’, 그리고 강아지공장 모견으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던 말티즈 ‘마티’까지. 다양한 학대와 이유로 들어온 유기견의 일상과 아픔이 공연 속에 펼쳐진다. 어두운 밤. 한 마리의 새 유기견이 들어오면 보호소에 있던 유기견 중 한 마리는 입양 보내진다. 유기견들은 보호소에 후원된 다양한 사료를 먹고 더욱더 예쁘게 돼 새 주인 만날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그 문이 도대체 어디로 통하는지는 오직 셰퍼드‘중사’만 알고 있다.
뮤지컬 은 SBS 프로그램 속 코너 ‘더 언더독: 개를 버리는 사람들’을 모티브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반향이 컸던 인기 프로그램이 소재였기에 계획 단계에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유기견의 안락사라는 충격적인 소재로 흥행 양극화가 분명한 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것은 말 그대로 모험. 절대 즐겁게 웃고 손뼉 칠 뮤지컬이 아니다. 극 초반 멋진 군무와 주연 배우의 솔로곡 열창으로 박수가 터지지만 극에 몰입하면서 손보다는 눈이 무대에 집중하게 된다. 모견으로 강아지공장에서 숱한 학대를 받아온 강아지가 노래를 부르는데 박수 치기가 미안할 정도. 뮤지컬이라는 매개로 극을 만들었지만 떠들썩하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게 사실에 근접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새끼 잃은 만신창이 엄마 말티즈 ‘마티’
말티즈의 실제 끔직한 모습은 TV 프로그램과 각종 포털사이트에 보도된 사진을 통해서 접했을 것이다. 동그란 슬픈 눈의 말티즈 배는 수십 번의 강제 임신·출산으로 해지고 뜯겨 있었다. 에서 하얀색 털 가운을 입고 힘없이 등장한 말티즈 ‘마티’가 바로 강아지공장에서 구조된 모견이다. 무대 뒤 영상은 강제적인 임신과 출산으로 최악의 삶을 사는 모견 ‘마티’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티는 살아갈 힘을 잃은 생명처럼 죽기를 바라고 아파하고 힘들어 신음한다. 실제로 불법 유통되는 강아지공장의 새끼는 어미와 35~40일도 같이 못 있고 경매장으로 팔려 나간다고. 공연 속 모견 ‘마티’는 강아지로 보이는 인형을 안고 다니며 애착을 보이고 분리불안증에 시달린다. 맹인견 늙은 골든리트리버는 눈이 멀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극 후반에 안락사되는 골든리트리버는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도 주인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주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맹인견은 다시 하늘로 가 주인과 만날 날을 꿈꾼다.
사설 보호소가 아니면 차갑고 딱딱한 그곳에 누워야 한다
유기견이 보호센터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은 10일에서 많게는 20일 전후다. 이들이 그곳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입양 혹은 안락사다. 극 초반, 신이 나서 한 유기견이 사람을 따라 보호소 밖으로 달려나간다. 다다르게 되는 곳은 알코올 냄새가 진동하는 차가운 스테인리스 탁자 위. 너무 기쁘게 유기견 보호소를 뛰어나왔지만 주인이 아닌 주삿 바늘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5분 뒤 신나게 달리던 몸은 생명을 잃는다. 몸이 늘어진 채 커다래진 동공 속으로 자신이 살았던 세상의 마지막 장면을 담아낼 뿐이다.
뮤지컬 은 유기견과 학대 받는 동물들의 이야기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처럼 박수갈채를 연발하고 신나서 소리 지르는 공연을 생각하고 공연장에 들어간다면 적잖이 당황할 수 있다. 대형 뮤지컬에 현실 상황을 적극 반영했다는 것만으로도 은 신선한 도전이다. 무엇보다 은 착한 공연으로 불리며 공연 외 유기견을 위한 다양한 봉사와 사회 계몽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공연장 로비에는 반려견을 맡겨놓고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반려견 돌봄 서비스를 운영한다. 또한, 유료 티켓 1매당 사료 100g이 자동으로 기부되는 ‘유기견 후원 프로젝트’ 등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웃고 즐기는 뮤지컬을 넘어 사회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볼 수 있는 공연의 등장이 반가울 따름이다. 물론 시니어에게도 뮤지컬 을 권할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유기견이 되는 순간 벌어질 끔찍한 일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공연은 2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한다.
강남시니어플라자의 시니어문화영상제작소 해피미디어단(이하 해피미디어단)에서 제작한 영화 발표 시사회가 지난 17일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해피미디어단은 문화체육관광부 후원, 한국문화원연합회 주최로 ‘지하철리사이틀’과 ‘남편이 달라졌어요’라는 2편의 독립영화를 제작했다. 이 두 작품은 시니어가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연기했기에 의미가 깊다. 시니어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회‧문화현상을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소통하는데 목적을 뒀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된 ‘지하철리사이틀’은 지공(지하철공짜손님인 시니어세대를 일컫는 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공들의 해방구역인 지하철 안에서 바람직한 노인의 처신, 지하철 이용 매너 등 여려가지 문제를 돌아보자는 내용이다. 영화연출은 해피미디어단 소속의 최은화 감독과 30여 명의 강남시니어플라자 회원들이 참여했다.
‘남편이 달라졌어요’는 평생을 허세로 살아온 은퇴를 한 이후에도 경제관념 없이 살아가는 남편 때문에 생활전선에 뛰어든 노년의 아내 이야기다. 이 영화 역시 해피미디어단의 시니어단원인 최종철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강남시니어플라자의 해피미디어단은 사진, 영상 등 인터넷 시대의 비주얼 미디어를 활용하여 새로운 노인문화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시니어 세대의 소통공간이다.
명품 조연배우 유해진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이고 개봉 한 달 만에7백만 관객수 돌파를 노린다고 해서 봤다.
어쩐지 짜임새가 일본 냄새가 난다 했더니 일본 영화 ‘열쇠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한 영화라고 한다. 일본식 코미디는 좀 황당하다. 말이 안 되는 줄거리를 이리저리 반전을 만들고 해피엔딩으로 끝낸다. 우리 영화 ‘7번방의 선물’도 사실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줄거리이다. 그러나 코미디는 가볍게 웃고 보는 재미가 있다. 출연하는 사람들도 코믹하게 연기하고 해피엔딩이라 영화관을 나서는 발길을 가볍게 만든다.
제목의 ‘럭키’는 Luck에 Key를 더해서 만든 합성어이다. 포스터에 열쇠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열쇠로 인한 행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계벽 감독 작품으로 유해진, 이준, 조윤희, 임지연 등이 출연했다. 필자도 유해진의 팬이다. 잘난 외모의 배우는 아니지만 정말 잘 어울리게 연기를 한다. 없던 일이 되어 버렸지만, 한 때 인기 여배우와의 결혼설이 나왔을 때 과연 유해진의 매력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었다. 오랜 배우 생활에서 배어나오는 진지한 연기가 좋다는 평이 있었다.
살인청부업자 형욱(유해진 분))은 목욕탕에 갔다가 비누를 밟고 넘어진다. 그 때문에 기억 상실증에 걸린다. 그 옆에서 목욕하던 재성(이준 분)이 형욱의 옷장 열쇠를 주워들고 자신의 열쇠와 바꾼다. 재성은 단역 배우가 직업이나 세상을 포기하고 죽기 전에 몸이나 깨끗이 씻자고 갔던 목욕탕이다.
형욱이 병원에서 퇴원하자 형욱을 호송했던 119 구조대의 리나(조윤희 분)가 형욱을 데려 가 어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에서 일을 시킨다. 형욱은 킬러 출신이므로 칼 다루는 솜씨가 좋아 식재료도 현란한 솜씨로 다루니 인기 폭발이다. 형욱은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재성으로 바뀐 자신이 단역배우였다는 것을 알고 촬영장에도 간다. 그래서 단역배우에서 점차 비중 있는 연기자로 성장한다. 재성은 형욱의 열쇠로 형욱의 비밀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된다. 고급 아파트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으며 킬러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윗층 여자를 살해하려는 미션도 알아낸다. 두 사람의 운명은 서로 바뀌어 전개된다. 결국 형욱은 기억을 되찾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본다는 상상은 재미있을 것 같다. 영화 ‘코블러’에서 구두 수선공이 그 구두를 신으면 그 구두의 주인으로 변신이 된다는 발상도 그래서 재미있게 봤다.
이 영화에서 형욱과 재성은 고급 아파트와 누추한 월세 방에 각각 사는 사람이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요즘처럼 청년 취업이 어렵고 앞이 안 보이는 입장이라면 그런 상상을 할 만하다. 그러나 시니어들은 좋은 세월을 보냈다. 젊을 때는 취업도 쉬웠고 열심히 일해서 기반도 닦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굳이 신분이 바뀌는 것이 럭키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이대로 건강하게 살다가 죽기를 바란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로 볼 때 순탄하게 단계를 밟아가며 산 사람들이므로 지금 자아실현의 5단계에 있는데 굳이 바뀌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 변화보다는 안정을 바란다. 운명이 바뀌는 그런 반전은 끔찍한 일로 본다.
77세 현역 극작가 윤대성의 신작 (이윤택 연출·연희단거리패)가 부산 초연에 이어 서울 공연도 성황리에 마쳤다. 이 연극은 치매요양병원에서 벌어지는 치매 노인들의 사랑이야기로,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연극이다. 이에 독자들을 대신해 동년기자단 11명이 서울 공연 첫날이던 지난달 7일 공연장을 찾았다. 연극 관람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치매 환자, 가족, 현실과 연극에서 느꼈던 치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녹취정리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동년기자단 김종억, 김진옥, 박혜경, 백외섭, 성경애, 양복희, 육미승, 이인숙, 장영희, 장원일, 조왕래
-연출가 이윤택이 말하는 연극
는 100% 하고 싶었던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이 극을 쓰신 윤대성 선생님은 지금 요양원에 계십니다. 공연 팸플릿에 쓴 ‘작가의 글’을 보면 ‘내가 지금 요양원에 있고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이든 노부부가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쓰신 글입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치매로 돌아가신 연극계 여성의 구술 증언과 윤대성 선생님이 보내주신 ‘제3병동’이라는 제목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입니다.
-고령화 사회, 시니어 세대에 접어들었지만 치매 소재 연극은 처음
저도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지만 부끄러운 게 이 소재를 가지고 공연해본 적이 없습니다. 막상 해보니까 이게 사실적으로 표현하면 정말 심각한 비극이 될 것 같더라고요. 사실적으로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나이 든 분들의 진실과 관련된 문제인데 또 가볍게 갈 수도 없었습니다. 굉장히 힘든 작품이었죠. 조심스럽게 사례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본 검증을 치매관련 기관에서 받았습니다.
“치매에 대한 예방책이 있을 거 아닙니까?”라고 했을 때 원래 대사는 “없다, 끝이다”였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 예방책을 얘기하지만 인간의 의지로서는 이겨낼 수 없는 것이 치매입니다. 그래서 “이제 남은 것은 투쟁이다. 투쟁!”으로 바꿨습니다. “없다”는 말을 “투쟁”으로요. 연극을 만드는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치매에 걸린 당사자들이 이 작품을 봤을 때 불쾌하거나 나쁜 기억을 가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것도 연극인데 너무 한 쪽만을 보여서 연극을 재미없게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현실과 연극, 양쪽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만든다는 게 힘든 작업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을 공연하자마자 전국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한 백화점에서는 작품도 보지 않고 전국 순회공연을 제안했습니다. 내용이 고령화 사회이고, 백화점에 오시는 분들이 연세가 있는 분들이 많고 또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죠. 많은 지원은 하지 못하겠지만 전국 순회공연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동년기자단도 오늘 단체 관람을 오셨지만 시니어들의 단체 관람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 이런 연극을 해야겠구나. 정말 시니어를 위한 연극이 없었구나! 문화가 없었구나! 시니어들에게 어떤 공연 문화가 필요할까’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해피앤딩 대신 따뜻한 이별
이 공연을 하면서 극단과 저의 전략은 ‘없는 희망을 가질 수는 없다. 해피앤드로 끝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극 중에서 어르신이 치매로 죽습니다. 죽더라도 아름답게 죽자.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할 말 없지요? 그냥 가세요.”라고 말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에게 삶의 의욕에 ‘사랑’이라고 하는 묘약을 던져서 기분 좋게 돌아가시도록 하는 정도가 목적이었습니다. 공연을 하면서 제일 두려웠던 것이 실제 시니어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극은 나이 드신 분이 보아야 할 게 아니라 치매 노인을 모시는 며느리나 아들, 손자가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연극은 창작극입니다. 그것도 77세 현역 극작가가 진짜 자신의 기억을 갉아 먹어가면서 쓰신 작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우리는 막을 올려야 했습니다. 좀 거칠지만 우리 창작극의 역사가 100년밖에 안 되지만 창작극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인 동기, 실제로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 창작극의 매력이 아닌가 하는 심정으로 작품을 올렸습니다. 오늘 저는 보통 서성거리지 않는데 자신이 없어서 문 뒤에 서서 연극을 본 게 아니고 관객을 봤습니다. 관객을 봤는데 모르겠어요. 고등학생에서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하게 오셨는데 어떻게 재미있게 볼 만 했습니까?
김진옥 치매라는 주제를 가지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다뤄주신 것 같아서 아주 좋았습니다.
이윤택 그렇게 보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장영희 이라는 단편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가 최고상을 받았다고 해서 본 적이 있는데 이 작품과 비슷하게 사랑이 찾아오는 내용이었어요. 저는 연극이 전달하는 의미가 훨씬 가슴이 와 닿았고요, 굉장히 좋았습니다. 선생님께 묻고 싶은 것은 극중 여주인공이 전혀 기억이 전혀 안 나다가 기억이 돌아온 것인가요?
이윤택 마지막에 긴 독백을 하지 않습니까? 그건 본인의 기억이에요. 그런데 그게 여주인공의 기억이기는 하지만 재창조한 거죠. 기억의 재구성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사실 이 작품이 쉬운 작품이 아닙니다. 구조적으로요. 이게 의식과 무의식을 왔다 갔다 하죠.특히 이 할머니 역할이 굉장히 어려운 역할입니다. 쓰러졌다 울다, 웃다를 반복하죠.할머니의 고향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기본이 되고 그 기억을 밑천으로 남자 주인공이 원하는 기억 속으로 재창조해서 들어간 것입니다. 상상력, 그러니까 창조죠. 그 장면이 이 연극의 압권입니다.
양복희 스토리가 사실은 아니잖아요. 치매 환자는 과거의 기억들을 영롱하게 기억할 수 없잖아요.
이윤택 보통 치매 환자들은 확인해 본 결과 현재 기억이나 현실적인 기억은 잊어버리는 대 신 기억 하는 패턴은 있어요. 그런데 너무나 명확하게 기억한다는 것이죠. 치매라는 것이 제 일 안타까운 것은 치매 환자들의 정신이 이중적으로 갈린다고 해요.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을 자신이 안답니다. 기억이 안 나는구나 하는 것을 본인이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 힘들어서 연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라고 하죠. 이성이 살아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르는 거죠. 이 이중적 거리 때문에 힘들다더라고요.
육미승 그 흥미를 위해서 현실적으로 기억을 되살린 것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치매 환자가 잠깐 알아볼 수는 있지만 그렇게 길게 알아보지는 못한다고 들었는데 극적인 흥미를 위해서 그렇게 표현하신 건가요?
이윤택 아까 잠깐 잠깐이라고 하셨는데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지금 치매입니다. 어머님이 이 연극을 보셨어요. 쉽게 말해서 어머님이 이 연극을 이해를 못하세요. 그런데 또 어떤 부분은 이해하세요. 인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연극이 아닙니다. 있어야 하는 현실, 우리가 좀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모델을 만든 것이 연극입니다. 대부분의 치매 환자들이 기억을 망각하고 뭘 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들에게 이런 꿈이 있다, 상상할 수 있고 창조할 수 있다는 가설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극이라는 거죠.
장영희 호스피스 병동 이야기를 다룬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면 평균 21일 안에 사람이 죽기 마련인데 어떤 사람이 살아서 나왔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초반에 나오다 왜 그 사람 이야기를 후반에 쓰지 않았냐고 영화감독에게 물었더니 “쓸데없는 희망을 갖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분을 배제했다”고 답했습니다. 선생님은 치매 환자를 몇 번씩 살리고 기억도 살리셨잖아요?
이윤택 두 가지 개입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는 것도 하나의 판단 선택일 수 있죠. 우리 연극에서 기적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우리는 기 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술의 기능이라는 게 어느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앞에서 말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아주 현실적인 사고겠죠? 나는 그래도 기적을 만들어내겠다는 상당히 낭만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사고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정원일 질문 하나하고 소감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까 뒤에서 보셨다고 했잖아요. 관객들의 반응에서 일치된 면과 가장 안 맞아 떨어진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이윤택 안 맞아 떨어진 것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관객들에게 원했던 것은 딴 것은 없고 집중력이었습니다. 관객들이 하품하거나 졸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중이란 면에서 확실했습니다. 그리고 더 알맞았던 점은 조금 웃어줘야 할 때 다 웃어주셨고 조 금 긴장해야할 때 다 긴장했고요. 저는 오늘 관객에 대해서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원일 소감을 말씀드리자면 남녀 주인공이 대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갈 때 가장 재밌었습니다. 다른 배우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장치를 안 해 놓으셔도 두 분이 치고받는 대사들이 집중력 있고 재밌었다.
조왕래 치매관련 연극이라기에 전철로 2시간 거리인 파주 월롱에서 왔습니다. 치매 전문 봉사자 활동을 5년째 하고 있는데 수많은 치매 환자들을 만나고 있어요. 주로 치매 환 자들 중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연극을 통해 일반인들이 치매라는 병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앞으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 늘어나게 되면 치 매 환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날 텐데 건강한 노인이 덜 건강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 어(老老Care)가 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합니다. 다음에 그런 내용을 연극에 넣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윤택 치매의 원인은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가족에서 온다는 게 있습니다. 연극에서 가족 이 재구성되잖아요. “이 사람이 네 아버지다”라고 하는데 실제 아버지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가족보다도 진짜 진실이 통할 수 있는 가족인 것이죠. ‘외로움이 치매의 원인이다, 치매를 사랑으로 극복해야 한다’가 애초의 주제였습니다.
성경애 많이 울었어요. 엄마가 생각나서요. 엄마가 그렇게 돌아가셨거든요. 너무 생각이 많이 나고 웃다가 울다가 배우 여러분 너무 감사하고요. 오늘 여기 오기를 너무 잘한 거 같아요. 그냥 저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나이거든요. 너무 애쓰셨습니다. 다 하 나하나 소중하게 다 잘해주셨습니다.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이윤택 오늘 주연 배우 두 명이 다 울었어요. 아까 김철영씨도 울었고 김미숙씨도 통곡을 하는데 연습할 때 평소 보지 못했는데 막 울더라고요. 오히려 울어야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진옥 그런데 실제 치매 환자는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이중인격처럼 극과 극을 치달아요.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도 치매가 되면 폭발을 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 이 되는 것을 많이 봤어요. 정말 인품 좋던 분이 정말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뀌는 것도 봤습니다. 너무 잔잔한 것 같은 느낌?
이윤택 그 부분에 대해서 예술적인 동기를 말씀드리면 치매에 대해 불편하게 갈 것인가 하 는 개념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개념에서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의 결핍에 대한 결핍을 채우는 쪽으로 갈 것이냐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오스트리아)로 갈 것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프로이트적인 것은 ‘치매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 파헤쳐서 환자가 그 원인을 알아야 낫는다’는 게 프로이트적인 심리치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원래 넌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알아버리면 안 된다는 거죠. 오히려 프로이트적인 심리치료가 문제가 있다는 게 드러 났어요. 롤랑 바르트의 방법은 환자들에게 아름다운 것, 환자들에게 결핍된 부분을 계속 이야기하는 거죠.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나쁜 점, 추악한 점은 모르게 해라, 계속 좋은 것만 이야기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결핍되고 나쁜 것들이 순화된다고 하는 게 롤랑 바르트의 이론이에요. 많은 분들이 치매 환자가 연극에서처럼 곱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정말 리얼하게 보여준다면 치매 환자들은 더 나빠진다는 것이죠. 저 희가 치매병원에 가서 이 공연을 해야 하는데 가서 우리가 이런 공연을 할 때 치매 환자들이 실제로는 막 이러는 사람들도 본인들도 얌전하게 볼 겁니다. 아까 말한 대 로 연극은 현실 그대로가 아닙니다. 연극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은 연극 만드는 사람들의 장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 저나 우리극단이의 입장은 너무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약간 조금은 버전 업 시키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박혜경 저는요 사실 크게 잘 모르고 왔어요. 굉장히 무거우면서도 슬프면서도 자신을 성찰 하는 시간이었어요. 저도 시니어 초년생인데 앞길에 대한 생각 자식 생각도 했어요. 어린아이들이 와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도 느꼈습니다. 의사선생님도 치매에 걸린 건가요?
이윤택 치매 사례 중에 ’오동추 목사’라는 것을 봤습니다. 의사가 치매 많이 걸립니다. 의사 가 치매 환자라는 설정, 정신과 의사들이 많이 정신병에 걸립니다. 현실을 정신병자 시각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아버님부터 치매로 죽었고, 실제로 ’오 주여’하다가 오동추가 튀어나고는 것이고. 실제 사례였습니다. 결국 치매는 하나님도 도울 수 없는 문 제라는 뜻이었습니다. 극 중에서 의사는 치매요양병원을 자가 운영하던 사람이고 60 대였고 또 딸은 50대였잖아요. 유전이 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관 객 마지막 장면에 의사나 딸 또한 치매에 걸리면서 끝나는데 젊은 사람들도 안전할 수 없다, 남의 일이 아니란 뜻을 보여준 건가요?
이윤택 작가 선생님이 마지막 장면을 중요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치매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하더군요. 서로를 이해하는 세대 간 소통 연극이 돼야 하지 않나. 고령화 사회와 아들 세대, 손자 세대 3세대가 봐야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치매협회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고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과 불쾌감 혐오를 가지시는 분들에게 이 연극을 통해서 ‘너무 그러지 마라. 불쾌하게 꺼리지 마라. 인간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라고 인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효과를 노리는 것이죠.
장영희 저는 웰 다잉 차원에서 아름다운 마무리, 마침표에 접근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에 “아 무 걱정 말고 가세요”하는 부분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좋은 말로 보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이윤택 이왕 죽는 데 “편하게 갑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외 동년 기단 의견
김종억 동년기자
대개의 사람들은 치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는 하고 있다. 연극 는 무거운 주제를 약간은 극적으로 구성해 무겁지 않게 했다. 실상 치매 환자가 극처럼 전개되지는 않는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가 없다. 실생활에서 한두 번쯤은 치매환자를 겪어보았거나, 현재진행형일 수 있기에 더욱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출자의 말대로 너무 무겁게 전개한다면, 현실적일 수 있으나 보는 이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보다는 너무 가혹한 현실을 인지시키는 일’ 일 수 있다. 는 조금은 밝게 터치해 나가면서 잔잔한 마음의 울림을 가져오기에 괜찮았다. 치매와 관련된 당사자나 가족들이 드러내 놓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소재는 아니기에 그 상황을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안으로 삭이면서 자신의 현상을 괴로워하고 속상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누구든지 나이가 들면, 올 수 있는 현상으로 자각하고 사회적으로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예방하고 관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백외섭 동년기자
좋은 주제로 열정적인 연기를 한 출연진과 공연준비를 한 제작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남달리 관심이 많은 것은 치매 10년차 노모가 노인요양원에 계시기 때문이다. 한 달에 2번 이상 문안드리면서 어머님을 비롯한 다른 환자의 발병 원인과 병증세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발병 원인은 연극에서처럼 유전도 있지만, 사고가 의외로 많다. 필자의 모친께서는 낙상에 따른 고관절 수술 후 치매가 천천히 진행되었다. 고령자는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조그만 사고가 치매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주위에서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고령이나 유전으로 치부하고 있다. 다양한 발병 원인을 연극에 가미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증상도 기억력 상실만이 아니다. 이상발작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어떤 때는 정상인보다 더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치매를 불치병으로 여기는 현재의 의료 환경에 가슴이 미어진다. 시니어는 부지불식간에 닥치는 낙상이나 상처를 특히 조심하는 등 치매예방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감독에 피터 첼섬, 출연에 헥터 역으로 영국의 코미디언 겸 배우 사이먼 페그, 헥터의 동거녀 클라라 역에 로자먼드 파이크가 나왔다. 사이먼 페그는 코미디언 배우라서 표정이 순수하고 밝다. 로자먼드 파이크도 성격 밝고 금발의 미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원제를 보면 ‘헥터와 행복 찾기’ 정도가 될 것이다. 정신과 의사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고 원작자의 실화라 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으니 내용의 수준에 대해서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정신과 의사 헥터는 별 탈 없이 클라라와 동거하며 의사 생활을 해오다가 어느 날 고객들의 다양한 행복 찾기 질문에 맞는 답변을 주기 위해 행복 찾기 여행을 떠난다. 고객들은 하나 같이 불행하다며 행복의 길을 찾는 방법을 묻는다. 헥터 또한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 어느 날 갑자기 행복 찾기 여행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첫 번째 여행지는 중국이었다. 경제가 한창 살아나는 중국의 무대는 사람들의 밝은 표정으로 보아서도 살맛나는 나라였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나 상대였던 젊은 중국여자와 그런대로 좋았는데 매춘녀로 밝혀지면서 동양의 이미지를 떨어뜨린 것은 좀 아쉽다. 눈 내린 산속의 스님에게 찾아가서도 행복은 어느 하나가 아닌 바람처럼 여러 가지가 섞이는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
두 번째 여행지는 아프리카였다. 의료 봉사하는 친구가 있어서 들러 보았고 비행기에서 알게 된 주민의 초대를 받아 행복한 그들의 삶을 보았다. 오다가 강도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현지에서 만난 사람인데 마약을 재배하는 거부의 덕분이었다. 마약을 팔아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고 주장해보지만, 그 사람 덕에 살았으니 살아 있다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것도 배운다.
세 번째 여행지는 로스앤젤레스였다. 옛 여자 친구가 살고 있는 곳이다. 12년 만에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났으나 이미 결혼해서 애가 둘이고 임신 중이다. 그동안 같이 찍은 사진을 고이 간직할 정도로 감정은 과거에 머물러 있으나 그녀로부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 포기한다.
문제는 행복 여행을 떠났다가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니 정작 동거하고 있던 여자 친구 클라라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인다. 결국 행복은 클라라였던 것이다. 결혼식을 치르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헥터가 새로 배운 행복의 요소들은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다만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행복은 돈이나 지위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늘 장래에 있을 거라며 기다릴 것도 아니다. 지금 현실이 행복이라는 것을 여러 번 일깨워준다. 심지어 ‘사랑은 귀 기울여 주는 것’이라는 대목이 와 닿는다. 시니어들일수록 아는 게 많고 그럴 자랑하고 싶거나 얘기해주고 싶어 말이 많아진다. 그러나 말하는 쪽보다는 들어주는 쪽이 행복하다는 교훈이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원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찾아 갈 것인지 고민한다. 그러나 행복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딱 떨어지게 이것이 행복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현재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행복의 요소이며 다 같이 바람처럼 섞여 내 주변에 있는 자체가 행복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복이 무엇일까 어디 있을까 찾는 중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손에 쥔 것은 소중한 줄 모르고 남이 가진 것만 탐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헥터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비행기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나름대로 행복하다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이나 요건은 서로 다르다. 처음엔 남이라 서로 꺼리지만, 그 사람의 관계로 인하여 행복 찾기 일이 전개되며 그 사람 덕에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관계는 행복의 중요한 요소이다.
한때 올림픽 선수가 되고 싶었던 신중년들이 그런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경기대회가 미국에서
열린다. 눈요기만 하는 관광보다는 세계 각지에서 온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우정을 나누고 풍물도 즐기고 싶은 신중년이라면 참가해 볼만한 대회다.
올해로 30회째를 맞이하는 ‘헌츠먼 세계 시니어 경기대회(The Huntsman World Senior Games)’. 미국 서부 유타주 세인트조지(St. George)에서 열리는 이 대회는 시니어 올림픽으로 자리를 잡았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보다는 ‘더 건강하게, 더 즐겁게, 더 친밀하게’를 지향하는 것이 올림픽과 다른 점이다. 물론 참가 자격 제한이 있다. 50세 이상이라야 참가가 가능하다. 그 대신 예선전은 없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경기에 참가하고 경기하다 보면 메달을 딸 수도 있다. 못 따면 또 어떤가? 연금을 받는 것도 아니니. 올림픽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은가? 선수로 뛰지 않고 그냥 응원단이나 관람객으로 참가해도 선수와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딕시주립대학의 한센스타디움에서 개최되는 개막식은 올림픽을 방불케 한다. 세계 20여개 국가와 미국 50개 주에서 온 선수들이 출신 국가와 지역의 특색을 살린 복장과 깃발을 들고 입장을 하면 세인트조지 시민들은 관중석에서 환영의 함성을 지른다. 성화 봉송과 점화, 선수 선서와 매스게임, 그리고 불꽃놀이로 이어지는 화려한 개막식의 분위기에 젖다보면 국가대표선수가 된 느낌이 들게 된다. 부부가 손잡고 함께 개막식에 참석하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흐뭇해진다.
개막식에 이은 연주회에서는 축제 분위기를 더욱 만끽할 수 있다. 지난해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브리티시 인베이션 트리뷰트 밴드와 더 몽키스 밴드의 공연은 압권이었다. 각국의 선수들과 동반자들은 가슴 깊숙이 숨겨 두었던 열정을 마음껏 분출하면서 몸을 흔들고 괴성을 질렀다. 경기 후 열리는 디너와 댄스파티도 잊을 수 없는 행사다. 각국 선수들과 어울려 춤을 추다보면 새로운 추억과 로맨스가 마음깊이 남게 된다.
10월 3일부터 15일까지 2주간 열리는 올해 경기는 모두 29개 종목. 대부분 연령대별(5세 간격)로 나뉘어 경기가 치러진다. 축구, 소프트볼, 배구 등 3개 종목은 팀경기로, 볼링 등 나머지 26개 종목은 개인경기로 진행된다.
팀경기는 팀원을 구성해 함께 등록해야 한다. 개인경기는 개별 등록 후 같이 뛰고 싶은 선수를 등록 리스트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일정만 맞으면 여러 종목 참가도 가능하다. 한 번 등록한 선수의 번호는 바뀌지 않고 매년 같은 번호가 부여된다. 그래서 다음해 같이 경기를 하고 싶은 선수가 있으면 지정하기도 편리하다.
골프는 사교 경기와 메달 경기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어 자신의 수준에 맞는 경기를 택할 수 있다. 메달 경기도 36홀의 연령대별 경기와 18홀의 핸디캡 경기로 나누어 치러진다. 특히 준프로급이 참여하는 연령대별 경기는 내년에 미국에서 열리는 내셔널시니어골프대회 예선전을 겸하고 있어 좋은 성적을 거두면 내셔널골프대회 출전자격도 덤으로 얻을 수도 있다.
유타주 세인트조지시는 선브룩나 딕시 레드힐스와 같은 유명 골프장이 주변에 즐비해 세계의 골프 마니아들이 연중 몰려드는 골프 휴양지다. 건조한 사막성 기후에 붉은 바위산을 끼고 양탄자 같은 잔디가 펼치진 링크코스는 골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도전적인 신중년들은 철인 3종 경기와 산악자전거 경기에서 세계의 베테랑 철인들과 한판 승부를 겨뤄 볼만하다.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선인장밖에 없는 황무지에서 진행되는 사이클링, 도로 달리기와 경보는 요즘 붐이 일고 있는 운동. 동우회의 회원들이 함께 참가하면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과는 달리 헌츠먼 시니어대회는 매년 열려 미국, 캐나다는 물론 세계 각지 스포츠 동우회의 연례 모임 장소로도 활용하고 있다.
네바다주 카슨시의 브렌다 블랙햄 여사는 35년 전 고등학교 배구팀 코치로 활약했다. 전국 대회를 휩쓸었던 추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동고동락했던 학생 선수들이 이제는 의사, 변호사, 교육자 등으로 미국 각지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으나 다 같이 한번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이 지천명(50세)의 나이를 넘긴 2014년, 이 대회에 배구팀으로 함께 참가하면서 소망했던 재회가 이루어졌다. 손발 한 번 맞추어볼 겨를도 없이 바로 경기에 참가했지만 그저 즐거웠고 경기를 거듭할수록 옛날 팀워크가 되살아나면서 더 즐거웠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10월의 대회기간에도 바쁜 일을 접어놓고 모두 모여 경기를 하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눌 계획이다.
독일 배구팀은 지난해 금메달의 한을 10년 만에 풀었다. 2006년부터 참가한 독일팀은 2013년에는 세계시니어배구챔피언십을 겸한 이 대회에서 캐나다 팀에 석패해 은메달에 그쳤다. 2년간 실력을 더 갈고 닦아 지난해 우승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올해 있을 독일과 캐나다 팀 간의 리턴매치는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심금을 울리는 러브스토리도 빠질 수 없다. 서울올림픽 때의 안재형과 자오즈민의 열애에 견줄만한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역 군인인 미국의 댄 크레이번스와 러시아의 마리나 안드리바는 2004년 탁구 경기에 출전했다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이제는 복식조로 함께 참가하고 있다. 신중년과 꽃중년이 뒤늦게 소울 메이트로 만나 적대적인 양국의 탁구계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중국 청소년들의 자원봉사활동도 화제다. 2010년 미국의 시니어배구팀이 중국 순회 경기를 갔을 때 친절하게 봉사한 중국 청소년들과 인연이 되어 그 후 해마다 중국 청소년 10여명이 이 대회 때 미국에 와서 한 달여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제법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발된 중국 청소년들은 현지 자원봉사를 통해 영어는 물론 국제 매너와 봉사정신을 익히게 된다.
헌츠먼 대회는 각계의 봉사자와 후원이 뒷받침되면서 참가 선수만 1만명이 훌쩍 넘는 국제대회로 성장했지만 출범은 단순했다. 1987년 존 모건 주니어 부부가 ‘운동과 체력단련이 일상이 되면 신중년의 황금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각지의 시니어가 함께 하는 대회를 구상하게 됐다.
여기에 홀인원을 5차례나 기록한 만능 스포츠맨이자 건강과학박사인 스티븐 워너 하이너 교수가 가세하고 세인트조지시도 적극 지원에 나서면서 대회를 출범시켰다. 출범 2년 뒤 헌츠먼코퍼레이션의 존 헌츠먼 회장과 부인이 본격적으로 후원하면서 세계적인 대회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 대회가 성황을 이루는 데는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자이언캐년 국립공원이 있고 브라이스캐니언, 그랜드캐니언, 라스베이거스, 솔트레이크시티 등 많은 관광 자원과 부대시설이 뒷받침하고 있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문화 행사와 박물관 투어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있고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등 세심한 서비스도 참가율을 높이는 요인이다.
모건 회장은 메시지를 통해 “봉사자, 후원자, 참가자 및 임직원의 헌신과 노력으로 대회가 놀랍게 발전했다”며 “30주년을 기념해 성대하게 진행될 올 대회에 세계의 신중년들이 적극 동참하여 건강을 증진하고 우정도 돈독히 하자”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