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푸석해지는 피부와 불어나는 나잇살. 도리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과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호르몬 때문이었다면? 피부를 재생시키는 ‘성장호르몬’과 항산화 능력이 탁월한 ‘멜라토닌’, 노화의 신호를 알 수 있는 ‘인슐린’ 등 노화와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과 관리법을 살펴본다.
도움말 박민수 서울ND의원 원장
인간은 마흔을 기점으로 항상성 유지 능력이 떨어져 몸의 전반적인 기능이 약해지는데, 이때 체내에 분비되는 호르몬이 불균형할 경우 노화가 빨라지고 근육은 쉽게 힘을 잃는다. 반면 나이가 많아도 호르몬이 건강하다면 또래보다 젊어 보인다. 평소 생활습관만으로 동안 피부와 나잇살 없는 탄력적인 몸을 유지하고 싶다면 노화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성장호르몬과 멜라토닌, 인슐린을 잘 관리해야 한다.
자는 동안 다시 태어나는 피부 ‘성장호르몬’ & ‘멜라토닌’
성장호르몬은 성호르몬과 더불어 인간의 생체 기능을 크게 좌우하는 호르몬으로, 자는 동안 세포와 피부를 재생시켜 아이들뿐 아니라 피부 탄력이 부족한 시니어에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뇌 기능을 활성화해 기억력 감퇴를 막고, 근육과 관절 등을 강화해 뼈를 튼튼하게 하며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성 기능을 향상한다.
성장호르몬은 사춘기 시절에 가장 많이 분비되다가 20대부터 서서히 감소해 60대가 되면 20대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70대는 20% 이하로 줄어든다. 이에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약 3분의 1은 성장호르몬 결핍이 나타난다. 성장호르몬이 부족하면 피부 두께가 얇아져 주름이 생기고, 골밀도가 떨어지며 근육이 줄어든다. 정신적으로는 기억력이 나빠지고, 걱정이 많아지며 우울 증세도 자주 나타난다. 한마디로 빨리 늙는다.
한편 ‘수면호르몬’이라 알려진 멜라토닌도 일조량이 줄어든 밤사이에 분비되는데, 세포의 노화를 예방하고 피부의 탄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멜라토닌은 비타민C와 비타민E보다 2배 가까이 뛰어난 항산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 기미나 주근깨 등 피부를 검게 만드는 멜라닌의 기능을 억제해 색소 침착을 막는다.
이처럼 두 호르몬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주로 피부 재생의 ‘골든타임’인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분비된다. 실제로 하루 5시간 이하로 잠을 자거나 숙면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잠을 충분히 잔 이들에 비해 성장호르몬 분비가 적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멜라토닌도 수면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지만, 숙면을 취해야 제 기능을 더욱 발휘한다. 따라서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고 싶다면 수면의 양과 질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성장호르몬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올바른 수면 습관뿐 아니라 균형 잡힌 식단도 중요하다. 콜레스테롤을 우려해 극단적으로 육식을 기피하는 경우 호르몬 재료인 단백질이 부족해져 성장호르몬 분비가 줄어든다. 따라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비율이 4:4:2를 이루는 식단을 구성해야 하며 달걀·호박씨·견과류 등 아르기닌이 풍부한 식재료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 단, 과식을 할 경우 성장호르몬도 다량으로 소모되기 때문에 가급적 절식하고, 배가 부르기 전에 숟가락을 놓는 습관을 함께 들여야 한다.
‘인슐린’이 건강해야 나잇살을 피한다
시니어에게는 주름지고 푸석한 피부만큼이나 고민스러운 것이 바로 나잇살이다. 나이가 들면 성장호르몬 분비량과 기초대사량이 줄어 젊은 시절과 똑같은 양의 밥을 먹어도 배가 나오고 살이 찐다. 이때 체내에 내장지방이 많으면 세포가 포도당을 흡수하지 못하는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는데, 인슐린 저항성은 당뇨·비만 등 각종 질환의 발병률을 높여 우리 몸의 노화를 촉진한다. 따라서 노화를 늦추고 나잇살을 줄이려면 체내 지방을 없애고 근력을 키워 인슐린이 건강하게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허리둘레가 성인 남자 90cm(35.4인치), 성인 여자 85cm(33.5인치) 이상일 때 복부 비만으로 본다. 자신의 허리둘레 치수가 평균 이상이라면 운동을 통해 허벅지와 종아리 둘레를 합한 것보다 줄어들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 운동은 밥 먹고 30분 후 혈당이 가장 높아질 때 하는 것이 좋으며, 특히 스쿼트나 레그 프레스 등 허벅지 근력을 강화하는 운동이 효과적이다. 관절이 약한 시니어는 아쿠아워킹 등 물에서 하는 운동도 도움이 된다. 또 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피해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밥을 먹을 때는 현미와 찹쌀 등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정제되지 않은 곡물을 섞어 먹고, 간식은 당지수가 낮은 야채로 대신해야 한다. 체내에 수분이 부족하면 혈당 조절에 문제가 생기므로 소변 색으로 몸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물은 하루 2ℓ 정도 섭취한다. 1일 설탕 섭취량은 성인 10g, 아동 5g 이하로 제한한다.
인슐린이 좋아하는 ‘거꾸로 식사법’
식사를 할 때 밥을 먼저 먹고 그다음 고기, 채소 순으로 먹는 이가 많다. 이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 ‘채소 반찬→고기 or 생선→밥’ 순으로 반복해 먹는다면 자연스레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혈당을 낮출 수 있다.
성인 7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당뇨병은 국내 5대 사망 원인 중 하나다. 특히 당뇨는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겨울에는 신체의 혈액순환이 둔해져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소변에 당이 섞여 나온다는 의미에서 당뇨병으로 불린다. 당뇨병은 인슐린(insulin)의 분비량이 줄거나 인슐린이 정상적인 기능을 못해 혈액 속의 포도당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질환이다.
포도당은 우리 몸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원을 만들고, 인슐린은 이 과정을 돕는 호르몬이다. 만약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작용을 잘 못하게 되면 포도당이 소변으로 배설되고, 이 때문에 많은 양의 소변을 보게 된다. 이로 인해 몸 안에 수분이 모자라 갈증이 심해지고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이 에너지로 이용되기 어려워 피로감을 쉽게 느끼고 공복감을 자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몸 안의 세포에서는 포도당을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체중은 오히려 줄고 점점 쇠약감을 느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30세 이상 당뇨병 유병률은 13.8%로 약 494만 명이 당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병 전 단계인 공복혈당장애를 포함하면 유병률은 26.9%까지 증가한다. 인구로 환산하면 1000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당뇨병의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모은영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이 무서운 것은 그 자체보다도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이 위험하기 때문이다”며 “족부괴사, 망막병증, 당뇨병성 신증, 뇌혈관질환, 관상동맥질환 등 당뇨 합병증은 전신에 나타날 수 있고 한 번 발생하면 돌이키기 힘들고 심지어 죽음까지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예방·치료, 식이요법+운동 중요… 겨울철엔 외부 노출 줄여야
당뇨병의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인 요인과 비만, 연령, 식생활, 운동부족, 호르몬 분비, 스트레스, 약물 복용 등의 환경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가 모두 당뇨병이면 자녀가 걸릴 확률은 30% 정도, 한 사람만 당뇨병이면 15% 정도다. 65세 이상 인구에서 당뇨병 환자 비율이 2배 정도 높아진다.
당뇨병은 기본적으로 혈당검사를 통해 진단한다. 8시간 이상 공복혈당 126㎎/㎗ 이상, 75g 경구당부하검사 후 2시간 혈당 200㎎/㎗ 이상, 당화혈색소(HbA1c) 6.5% 이상 또는 당뇨병의 전형적인 증상(다음, 다뇨, 다식, 원인을 알 수 없는 체중 감소)이 있고 마지막 음식 섭취와 무관하게 측정한 혈당이 200㎎/㎗인 경우 진단한다.
당뇨는 췌장에 문제가 생겨 인슐린이 분비되지 못하는 ‘제1형 당뇨병’, 인슐린은 분비되지만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인슐린이 제기능을 못하는 ‘제2형 당뇨병’으로 나뉜다.
제1형 당뇨병은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인슐린 주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주로 소아 환자가 많다. 제2형 당뇨병은 국내 당뇨병 환자의 약 97%를 차지하는 질환으로 식습관, 운동, 비만 등 생활습관과 관련이 많다. 고열량 음식을 피하고 지방 감소와 근육 강화를 위해 꾸준한 운동을 해야 한다. 혈당이 잘 조절되지 않으면 혈당강하제를 복용하거나 제1형 당뇨병처럼 인슐린 주사제로 치료한다.
모은영 교수는 “당뇨는 완치가 어렵고 합병증 발병 위험이 높은 질병이지만 사전에 예방하고 꾸준히 관리하면 발병 시기를 늦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처럼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체중 1㎏ 증가 시 당뇨병 위험 9% 늘어… 아침 식사 챙겨야
당뇨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식이요법은 물론 운동에도 신경 써야 한다. 운동을 하게 되면 말초 조직의 인슐린 사용이 높아져 인슐린 활동을 돕고, 이는 세포가 인슐린에 더욱 잘 반응하도록 해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새벽보다는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낮에 운동해 갑자기 추운 날씨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되도록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체조나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당뇨병의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은 비만이 많다. 체중이 1㎏ 증가하면 당뇨병이 생길 위험이 약 9% 증가한다.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은 당뇨병에 좋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반찬은 영양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3~4가지를 곁들여 먹도록 한다.
설탕이나 꿀 같은 단순당의 섭취에 주의하고 식이 섬유소를 적절히 섭취한다. 트랜스지방의 섭취를 최소한으로 하고, 포화 지방산(고기류, 버터, 치즈 등) 대신 불포화 지방산(식물성 기름, 연어 등 생선, 견과류)을 먹도록 한다. 나트륨 섭취는 1일 2g(소금 5g) 이내로 줄인다. 음주는 금하는 것이 좋다. 음주 시에는 저혈당에 주의한다.
모은영 교수는 “당뇨병은 완치의 개념이 아닌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다”며 “당뇨는 평생 지고 가야 하는 질병이라는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당뇨는 흔한 성인 질환으로 2030년경에는 세계적으로 5억50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초고령화가 가속화되면 당뇨 유병률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당뇨 합병증인 당뇨병성 말초신경병도 함께 가파른 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구에 따라 다양한 유병률을 보이지만 최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기관 연구에서 33.5%의 유병률을 보고했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 위험인자로는 연령, 당뇨병 유병기간, 혈당, 고혈압, 흡연, 이상지질혈증, 비만, 인슐린 분비기능 저하, 심혈관계 질환 등이 알려져 있다. 대체로 점진적인 진행 양상을 보여 임상에서 간과하기 쉬우나 증상 악화로 인해 환자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은 족부 궤양과 절단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까지 초래할 수 있어 정확히 진단하고 초기부터 적절히 치료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실제 임상에서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에 대한 관심이 심혈관 질환, 신장병, 망막병 등과 같은 다른 당뇨병성 합병증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 진단은 병력 청취, 임상적 양상, 신경학적 검사를 통한 신경계 결손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당뇨병성 신경병 환자의 30~40%는 신경병 증상을 호소한다고 보고되고 있다.
가장 흔한 증상은 사지 통증이며 밤에 악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그중 통증성 말초신경병은 국내 연구에 의하면 전체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의 43.1%에서 보고되었다. 전체적으로는 제1형 당뇨병 환자보다 제2형 당뇨병에서 유병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5.8%vs.17.9%). 전형적인 감각 이상은 사지 말단부로 갈수록 심해지는데, 상지보다 하지 말단부 침범이 더 흔하며 운동신경보다는 감각신경 이상을 주로 호소한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은 이상감각, 이질통, 통각과민, 저린감, 통증과 같은 양성 증상과 통각감퇴, 온도, 진동, 압력에 대한 감각저하, 반사저하, 무감각 같은 음성 증상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환자가 전형적인 증상을 호소하면 임상 증상만으로도 진단을 할 수 있으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자마다 증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신경병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전체 신경병 환자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므로 임상 증상에만 의존하면 진단을 놓칠 수 있다.
전문의와의 상담 꼭 필요
객관적인 검사는 모노필라멘트검사다. 발에 10g 정도의 압력을 줘 신경감각이 정상인지 알아볼 수 있다. 정량적 감각신경 검사법은 온도, 진동, 전기적 자극 등의 강도를 점차 올려가면서 환자가 어느 시점부터 감지하는지를 확인해 이상 여부를 진단하는 검사다. 신경전도검사는 진단에 가장 유용한 검사법으로, 말초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가하여 발생한 복합전위를 통해 신경기능의 이상 여부를 판단한다. 유발전위 검사는 팔이나 다리의 말초신경에 반복적으로 약한 전기 자극을 주면서 대뇌에 나타나는 미세한 전기적 파를 컴퓨터로 분석한다. 중요한 점은 증상이 없어도 말초신경 손상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제1형 당뇨병 환자는 진단 후 5년부터, 제2형 당뇨병 환자는 진단과 동시에 말초신경병 선별검사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 비슷한 증상을 유발하는 다른 질환도 많으므로 감별진단을 위해 전문의와의 상담과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 치료의 주요 목적은 통증 및 증상을 완화해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신경 퇴축을 막아 재생을 돕고, 사지 손상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을 막는 것이다.
치료는 크게 신경병 원인에 대한 병인론적 치료와 환자의 통증을 치료하는 대증치료로 나뉜다. 병인론적 치료에는 혈당 조절 및 위험 요소를 관리하는 치료와 신경병의 발병 및 병리기전에 대한 치료가 있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을 치료할 때는 근본 원인인 혈당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미 여러 연구들에서 고혈당과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의 중증도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적극적인 혈당 조절이 치료에 중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혈당 조절 외에도 흡연, 심혈관 질환의 과거력,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과 같은 심혈관 위험인자도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에 중요하게 관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어 이와 같은 위험 요소의 관리도 중요하다.
대사증후군, 당뇨 전 단계 및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생활습관 개선은 당뇨병성 신경병 발생을 예방한다. 약물 치료제인 알파리포산은 산화스트레스에 의한 신경내막 혈관 손상을 저하시키는 약제다. 여러 임상 연구에서 매일 600mg의 알파리포산을 3주간 정맥 투여했을 때 특별한 부작용 없이 위약군에 비해 신경병의 주요 증상들을 호전시켰다.
마지막으로, 신경병 통증 치료에 임상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건 대증치료다. 신경병 통증은 수면장애, 우울증, 불안 등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하므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공통적으로 1차 치료제로 제시하는 약제는 듀록세틴과 프레가발린이다. 이외 삼환계 항우울제, 항경련제,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등의 경구약제가 사용될 수 있다. 초기 용량에서 서서히 늘려가며 증상 호전이 없으면 기전이 서로 다른 약물로 변경, 병합요법 또는 아편유사제를 추가할 수 있다. 조기에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합병증을 예방하는 길이다. 또 증상 개선을 통해 삶의 질도 개선할 수 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11년 10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잡스는 애플 컴퓨터와 매킨토시, 아이폰 등으로 사업가 이전에 세상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56세라는 나이에도 췌장암이라는 복병은 이겨내지 못했던 그다. 사망 당시 그의 재산은 83억 달러(9조 5400억 원)였다.
◇ 5년 생존율 12% 조기 발견 어렵고 예후 안 좋아
의학은 발전하고 있지만 췌장암의 생존율은 20년 넘게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국가암통계에 따르면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처음으로 12%를 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0%가 넘지 않았다.
췌장은 위 뒤쪽, 몸 속 깊은 곳에 위치한다. ‘이자(胰子)’라고도 부른다. 위 뒤쪽에 위치해 십이지장과 연결되고 비장과 인접해 있다. 췌장은 우리 몸에서 크게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췌장액을 분비한다. 췌장액은 십이지장에서 음식과 섞이면서 음식이 소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또 인슐린과 글루카곤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호르몬은 우리 몸의 혈당을 조절한다.
췌장암은 췌장에 생긴 암세포로 이뤄진 종괴를 말한다. 췌장은 조직학적으로 외분비샘과 내분비샘으로 나누는데 전체 췌장암의 85% 정도는 외분비샘인 췌관에서 생긴다. 곽봉준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 “췌장은 몸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장기로, 해부학적 특성상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아 발견이 쉽지 않고 예후도 좋지 않아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가족력有 발생률 18배↑ 증상 발현 시 복통·체중감소
췌장암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유전적 요인 중에는 K-Ras(케이라스)라는 유전자의 이상이 특히 중요하다. 췌장암의 90% 이상에서 이 유전자의 변형이 발견되고 있다. 췌장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발생률이 18배까지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다.
환경적 요인은 식습관, 흡연, 만성 췌장염, 나이, 음주 등이 꼽힌다. 육류나 기름기 많은 식습관의 경우 췌장암 발생 위험을 2배 정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흡연은 췌장암의 발생과 관련이 깊은 발암물질로 흡연자의 경우 췌장암의 상대 위험도가 2~3배 높다. 특히 만성 췌장염의 경우 15배 정도까지 췌장암 위험도가 올라간다.
남녀 비율을 1.5대 1 정도로 남성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50세 이상에서 발병률이 올라가기 시작해 70세가 되면 인구 1000명당 1명 정도의 유병률을 보인다.
췌장은 80%가 망가지기 전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증상이 나타날 때는 대부분의 췌장암 환자에게 복통과 체중감소가 나타난다. 췌장 머리 쪽에 발생한 경우에는 대부분 황달 증상을 보인다. 췌장의 몸통이나 꼬리 쪽에 암이 발생할 경우에는 초기에 증상이 거의 없어 시간이 꽤 지나서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1) 복부 통증
췌장암의 가장 중요한 증상은 통증이다. 명치 통증이 가장 흔하지만 복부 어느 쪽에도 나타날 수 있다. 통증이 나타날 때는 이미 췌장 주위로 암이 침윤했다는 신호인 경우가 많아 통증이 없는 경우보다 예후가 좋지 않다.
2) 황달
황달은 췌장암의 가장 흔한 증상 중 하나로 췌두부암(췌장 머리 쪽에 발생한 암)의 약 80%에서 나타난다. 종양 때문에 총담관이 십이지장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막혀 담즙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그에 따라 빌리루빈(bilirubin)이라는 물질이 제대로 배출되지 못해 황달로 나타나는 것이다. 황달이 발생하면 빨리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야 한다.
3) 체중 감소
뚜렷한 이유 없이 체중이 감소하는 것은 췌장암 환자에게 흔한 증상이다.
4) 소화 장애
종양이 자라면서 십이지장으로 흘러가는 소화액(췌액과 담즙)의 통로를 막아 지방 소화에 문제가 생긴다.
5) 당뇨병
췌장암이 발생한 경우 전에 없던 당뇨병이 나타나거나 기존의 당뇨병이 악화되기도 하며 췌장염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당뇨병은 췌장암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췌장암에 의해 이차적으로 췌장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 완치는 수술이 유일, 가족력 등 위험인자 있다면 정기검진 필수
췌장암이 의심될 경우 초음파검사, 복부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ERCP), 내시경 초음파검사(EUS), 양성자방출단층촬영(PET), 혈청 종양표지자검사, 복강경검사, 조직검사 등이 진행된다.
현재까지 췌장암을 완치할 치료법은 수술이 유일하다.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 이후 보조적 치료가 필요할 때는 항암 화학 요법, 방사선 요법 등을 시행한다. 치료방법은 암의 크기와 위치, 병기, 환자의 나이와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수술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중에서 선택한다.
췌장암의 60%는 췌장 머리 부분에 생기는데 이때는 십이지장, 담도, 담낭을 함께 절제하는 췌두십이지장절제술을 한다. 몸통과 꼬리 부분에 암이 생기면 비장을 자르는 췌장 절제술을 시행한다. 췌장암 진단 시 수술이 가능한 비율은 약 20%로 알려져 있다. 일부는 침윤된 주위 혈관을 절제하면서 수술하기도 하며, 필요에 따라 암세포 크기를 줄이는 항암치료 후 수술하기도 한다.
곽봉준 교수는 “췌장암은 다른 암에 비해 예후가 매우 좋지 않다. 따라서 췌장암 위험인자가 있는 분들, 즉 췌장암의 가족력이 있거나 고령, 흡연자, 당뇨, 만성 췌장염을 앓고 있는 경우 정기적으로 초음파, 복부 CT 같은 검진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며 “육류나 지방이 많은 식습관보다는 식이질이 풍부한 채소나 과일을 많이 섭취하고 금연과 함께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뇨는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인구 구조의 고령화로 해당 환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당뇨발’로 불리는 당뇨병성 족부질환을 겪는 환자는 여름철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는 슬리퍼나 샌들을 신고 다니다 상처가 나기 쉽고, 세균 번식도 활발해 증상이 악화될 수 있어서다.
당뇨발은 궤양, 감염, 신경 및 혈관질환 등 합병증으로 발에 생기는 모든 질환을 말한다. 원인은 당뇨로 인한 발의 감각, 운동, 자율신경의 손상이 가장 흔하다. 신경 손상으로 감각이 무뎌지면서 발에 상처가 나더라도 인식하지 못해 계속 압력을 가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상처가 방치되면 발의 피부나 점막조직이 헐어서 생기근 발 궤양이 발생하고, 염증이 급속도로 번져 골수염까지 갈 수도 있다. 심지어 증상이 심각할 경우 다리 일부를 절달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건국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정홍근 교수는 “당뇨병성 족부궤양은 당뇨 환자의 약 45%가 일생에 한 번 이상 겪는 합병증”이라며 “발병률도 높고, 심각한 경우 다리를 절단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족부궤양의 치료는 병변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기본적으로 혈당과 혈압 등을 조절하고, 감염되지 않은 얕은 궤양이라면 궤양 상처 치료와 외부 압력 해소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감염을 동반하고, 관절까지 노출된 상태라면 오염 조직을 수술로 잘라내고 상처 부위에서 이물질을 제거한 뒤 청결히 소독하고 가해지는 압력을 해소해야 한다.
증상이 심각한 경우 절단 또는 부분 절단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 다만 심한 허혈 상태에서는 혈관 재형성 수술이 선행된다. 정홍근 교수는 “당뇨 환자는 내과적 치료뿐만 아니라 발 관리에 대한 교육을 받은 후 일상생활에서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정홍근 교수는 “여름에도 발 보호를 위해 양말을 착용해야 하고 발을 압박하는 조이는 신발은 피해야 한다”며 “평소 발을 자주 씻고 상처 난 곳이 없는지 주기적으로 눈으로 확인해야 하며, 발에 상처나 물집이 생겼을 때는 바로 족부 전문의를 찾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잘 사는 법’, ‘잘 늙는 법’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신체건강과 직결되면서 ‘잘 먹는 법’, ‘즐겁게 먹는 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관련 기업과 학계의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최근 흥미로운 연구 논문 한 편이 발표됐다. 바로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 박종훈 교수와 고령식 개발 업체인 ‘(주)사랑과선행’이 6개월간 함께 진행한 ‘건강도시락-고령층 노화의 상관관계 연구’다.
좋은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해 영양 밸런스가 잡힌 건강도시락 섭취가 고령자의 근감소 및 심혈관 질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8주간 연구한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연구의 축이 되어준 ‘(주)사랑과선행’의 건강도시락은 고령인구 표준식단을 토대로 노인들의 식습관과 영양상태, 표준칼로리, 영양소 등을 세심하게 연구해 개발한 고령층 친화식이다. 한국에서 운영 중인 500여 개 요양원이 고객이다. 최근에는 개인이 신청하면 집으로 배달을 해주는 B2C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고령층이 잘 소화하면서 다양한 영양소를 고루 흡수할 수 있는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가자미구이 등의 제조 방법 특허도 냈다.
‘건강도시락’ 통한 고령층의 영양 섭취와 노화의 상관관계 연구
1 건강도시락을 통해 고령층의 건강과 노화 요인을 측정한 연구로는 국내외 최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건강도시락을 통한 영양 섭취를 통해 고령층의 심혈관 질환과 근감소 요인을 측정한 연구는 국내외에서 처음입니다. 그동안 고령자에게 간단한 보충제를 섭취하게 하거나, 운동을 접목해 노화에 관해 연구한 경우는 많았는데요. 영양 조사를 통해 고령자의 일반 식사에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 등의 영양소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부족한 영양소를 충분히 공급해줄 수 있는 건강도시락으로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2 건강도시락 섭취만으로 충분히 건강해질 수 있나요?
균형 잡힌 식사만으로도 건강의 많은 부분이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현대인의 식사는 너무 불완전하고 불균형합니다. 밀가루와 흰쌀밥, 지방과 단백질은 과다하게 먹지만 채소와 과일 섭취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지요. 인체에 정말 중요한 비타민, 미네랄 등이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영양소들이 충족되면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아지고 당뇨에서 심혈관 기능까지 눈에 띄게 개선됩니다. 여기에 운동까지 접목하면 그 효과는 배가 되고요.
3 ‘건강도시락’에 대해 간단히 소개 좀 해주세요.
이름 그대로 맛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영양만점 도시락입니다. 이제 대한민국도 본격적으로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는데요. 이번 연구의 중요한 매개가 되어준 ‘건강도시락’은, 영양 밸런스에 가성비까지 갖춘 고령식으로 ‘(주)사랑과선행’에서 개발했습니다. 현재 전국 요양원과 B2C 형태로 소비자들에게도 배달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운동영양학자로서 이 도시락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다양한 영양소에 주목했습니다. ‘과연 먹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겨 도시락을 제공받아 6개월간 건강도시락과 노화의 상관관계를 연구했습니다.
4 연구 과정이 궁금합니다.
연구 과제명은 ‘노쇠전단계(pre-frail)자에 대한 운동과 영양 처치가 근감소증 및 심혈관 위험인자에 미치는 영향’ 입니다.
먼저 좋은 탄수화물,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건강도시락을 준비했고요. 65세 이상의 노쇠 전 단계 대상자를 무작위로 구성해 네 부류의 비교 집단을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건강도시락도 운동도 적용하지 않은 통제 집단, 두 번째는 건강도시락만 적용한 영양 집단, 세 번째는 건강도시락과 유산소 운동을 적용한 집단, 네 번째는 건강도시락과 EMS 운동(스테핑 유산소 운동과 전기자극 근력 복합운동)을 적용한 집단입니다. 이들 집단을 8주간 측정한 결과 나타난 가장 놀라운 일이 뭐였을까요? 바로 두 번째 집단에서 일어났는데요. 건강도시락만 드신 그룹의 하체기능이 놀랍게 향상됐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체기능은 노화 연구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 노쇠에는 먼저 신체적 노쇠가 있다. 신체활동이 떨어지면서 대사능력이 감소되고 그만큼 음식도 못 먹게 되고 그러다 점점 눕게 되는 상황을 신체적 노쇠라고 한다. 노쇠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 몸을 점점 더 안 움직이게 돼서 힘이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노쇠는 신체 에너지 소비량과 근력 감소, 이 두 가지가 서로 악순환을 일으키는 과정이다. 노쇠의 판단 기준은 체중 감소, 피로감, 근육 허약, 보행 속도 감소, 신체활동 감소 등 5가지다. 이 중 3개 항목에 해당하면 노쇠(frail), 2개 항목이면 노쇠전단계(pre-frail)로 판단한다.
5 운동도 하지 않는데 건강도시락 섭취만으로 신체기능이 좋아질 수 있다는 건가요?
종합체력지표인 SPPB(Short Physical Performance Batter), 즉 평형감각, 5초간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서기, 4m 보행 속도를 테스트해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고령자는 단백질을 먹는 것만으로는 근감소가 개선되지 않습니다. 단백질이 근육에 쓰이려면 비타민, 미네랄 등의 영양소가 도와줘야 하고 이러한 영양소가 음식을 통해 잘 보충됐을 때 신체기능, 즉 하체기능이 좋아지거든요. 건강도시락 섭취를 통해 비타민, 미네랄, 단백질 등이 보충되면서 고령층의 하체기능도 향상되었다는 게 이번 연구 결과의 포인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6 건강도시락 섭취를 통한 하체기능 향상 외에 또 다른 성과도 있나요?
혈관을 청소해주고 동맥경화를 방지해주는 좋은 콜레스테롤, 즉 HDL-콜레스테롤 또한 8주간의 도시락 섭취에 의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건강도시락에 들어 있는 영양소가 HDL-콜레스테롤을 높이는 데 작용한 것이지요. 우리나라 노인들이 평소 워낙 흰쌀밥과 김치만 드시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드셔서는 좋은 콜레스테롤이 증가할 수 없지요. 또한 8주간의 도시락 섭취를 통해 체내 혈당이 올라갔다 내려가는 횟수가 다른 통제 집단에 비해 감소하는 결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고 도시락 섭취만으로 혈당조절장애가 개선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7 운동 병행이 노화 예방에 더 효과적인 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식사를 통해 영양을 제대로 보충해주고, 거기에 운동을 병행하면 심혈관 기능이 월등히 좋아집니다. 좋은 영양소를 보충하니 몸이 좋아지고, 몸이 좋아지니 움직일 힘이 생기고, 그로 인해 신체활동을 하게 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거지요.
이러한 구조는 굉장히 기본적이고 상식인 듯해도 실생활에서 지키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고령층에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8 건강도시락을 섭취하고 운동까지 병행했을 때 나타난 효과도 알고 싶어요.
앞서 언급한 종합체력지표 SPPB가 눈에 띄게 좋아진 건 물론이고요. EMS 운동까지 병행했을 경우 허리둘레가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동맥경직도도 건강도시락 섭취에 의해 낮아졌고요. 하지만 잘 먹지 못할 경우 신체활동이 감소하고, 그로 인해 대사 능력이 떨어지고, 그만큼 음식도 소화하지 못하게 되면서 결국 신체활동을 할 수 없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결국 잘 먹는 것이 건강의 제1원칙입니다. 먹는 것이 부실하면 결국 몸에 병이 오게 됩니다. 식생활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도 노인 건강 문제의 많은 부분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9 연구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요?
가장 유의미한 결과는 도시락만 섭취한 그룹의 하지(하체)기능 향상입니다. 하지기능 측정은 단지 근력만 하는 게 아니라 순발력, 보행 능력 등 다각도로 검사합니다. 하지기능은 노쇠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팩터(요소)입니다. 이 부분이 8주간의 도시락 섭취만으로 유의미하게 개선된 걸 확인했습니다. 운동영양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는 무척 놀라운 결과였는데요. 단백질과 비타민, 미네랄이 많이 보충되면서 하지기능이 좋아진 것이라고 저희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10 끝으로, 당부사항이 있다면요?
초고령 사회를 앞두고 본격적 대비가 필요합니다. 이번 연구가 고령인구에 따른 사회적 비용 경감 효과, 고령자에 대한 복지개발 및 서비스 개선에 시사한 바가 있다고 판단하고요. 연구 결과가 세간에 많이 알려져 식습관을 통한 고령층 건강 및 영양 문제가 조속히 좋은 쪽으로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고령자에 대한 다양한 맞춤형 식단 및 운동 프로그램이 성공적 노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후속 연구도 진행되기를 기대합니다.
박종훈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많이 알려져 국가에서도 고령층 영양 문제 해결에 힘쓰고 고령자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정책들도 빨리 나와주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이목을 끄는 음식이 있다. 바로 ‘달고나커피’다. 달고나커피란 인스턴트 커피, 설탕, 뜨거운 물을 각각 1:1:1로 넣고 수백 번 휘저어 만든 거품을 우유에 올려 먹는 음료다. 간단한 재료로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어 SNS 등지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매력적인 달고나커피,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자생한방병원 강만호 원장의 도움말로 달고나커피 속 재료들에 대해 한의학적인 시각으로 살펴봤다.
우선 커피의 경우, 널리 알려진 대로 주요 성분인 카페인이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대사를 활발히 시켜준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나친 카페인 섭취는 불면증, 두통 등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신경계를 교란시켜 불안이나 우울을 느끼게 한다.
한방에서도 커피를 비슷하게 해석한다. 한의학적으로 향이 강한 식재료는 기운이 정체된 상태를 개선해준다고 본다. 또한 쓴맛은 화와 열을 끌어내려 눈과 머리를 맑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쓴맛과 강한 향이 특징인 커피는 그만큼 기운을 돋우고 깨우는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필요 이상의 쓴맛은 장기에 부담을 주는 만큼 체질에 따라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설탕은 ‘건강의 적’이라는 인식이 퍼져 최근 멀리하는 사람이 많다. 설탕은 혈당을 올리고 비타민B, 칼슘의 흡수를 막아 당뇨, 비만, 골다공증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방에서도 과다한 설탕 복용은 내열(內熱)을 증가시켜 비만과 면역력 저하를 부르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렇다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적으로 단맛은 흥분과 긴장을 풀어주는 효능이 있다. 2013년 프랑스 보르도대학교 연구팀의 논문에서도 설탕 섭취는 일시적으로 기분을 고양시키고 만족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분 전환 목적으로 소량의 설탕 섭취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라 볼 수 있다.
마지막 재료인 우유는 원기회복과 함께 위장을 튼튼하게 해주는 식품이다. 영양학적으로 우유는 완전식품이라 불릴 정도로 지방, 단백질, 유당, 각종 미네랄, 비타민이 풍부하다. 예부터 우유와 쌀을 함께 넣어 만든 타락죽은 조선시대 왕족들만이 먹을 수 있는 보양식이었다.
그러나 우유를 많이 마시면 복통 및 설사 등 위장장애가 나타나기 쉽기 때문에 유당불내증 환자 비율이 높은 국내에서는 다량 섭취를 권장하기 어렵다.
종합적으로 달고나커피를 구성하는 재료들은 저마다 명확한 장점과 단점이 존재한다. 적당히 즐길 경우 생활에 활력을 주지만 지나치면 건강에 독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자생한방병원 강만호 원장은 “달고나 커피는 맛도 좋지만 직접 만드는 재미와 그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즐거움으로 더 유명해진 음식”이라며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많은 이들이 크고 작은 우울·불안 증상을 겪는 요즘과 같은 시기 가끔씩 간식으로 마셔주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한 방송을 통해 공개한 아침 식단이 화제가 됐다. 호박죽과 색색의 채소 한 줌, 찐 감자와 반숙 달걀 등 익숙한 식재료로 차려진 한 상이었다. 각종 TV 건강 프로그램과 SNS 등의 영향으로 독특한 식이요법이 주목받는 요즘, 김 교수의 소박한 식단은 더욱 특별하게 비쳤다. 그의 식단은 건강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와 더불어 세간에 떠도는 아침 식사에 대한 궁금증을 함께 풀어보자.
도움말 김순미 가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 100세 김형석 교수의 아침 식단
•호박죽 또는 야채수프 •다양한 색깔의 채소 •찐 감자 또는 빵 •반숙 달걀
100세의 나이에도 집필과 강연을 이어오며 그야말로 ‘건강백세’의 표본이 된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그의 아침 식단은 건강에 도움이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YES’. 그러나 ‘김형석’이라는 주어가 바뀌면 답은 ‘NO’가 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섭취하는 식재료의 영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순미 가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오랜 세월 이 식단을 유지해 100세까지 장수하셨다면, 그것이 김형석 교수에겐 최적의 식단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몸엔 세포 수보다 훨씬 많은 장내 세균이 존재하는데, 이는 생명의 질과 수명에 영향을 끼친다. 장내 세균은 유전형질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어떤 음식을 먹는지에 따라서도 변화한다.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잘 맞는 음식으로 꾸린 식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건강한 김형석 교수의 모습을 보면, 그의 아침 식단은 안성맞춤인 셈이다. 김순미 교수는 일반 시니어가 즐겨도 손색없을 정도로 영양 균형도 잘 맞는 음식들이라고 덧붙였다.
“영양학에서 균형 잡힌 식단의 기준이 되는 6가지 식품군은 곡류군, 어육류군(고기·생선·달걀·콩 등), 채소군, 과일군, 우유군, 지방군입니다. 이 중 과일과 우유는 굳이 아침에 먹지 않아도 되고, 지방군은 조리 과정에서 사용하길 권합니다. 위의 식단에서 호박죽, 야채수프를 만들 때 우유가 쓰였다면, 영양 밸런스가 잘 맞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양한 색깔의 채소로 각종 피토케미컬(phytochemical, 식물성 화학물질) 섭취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년기엔 소화기능이 떨어지는데 죽, 수프, 찐 감자 등 위장에 부담 없는 조리법도 좋습니다.”
◇ 77세 가미노가와 교수의 아침 식단
김형석 교수의 식단에서 부족한 것은 없을까? 김순미 교수는 식품면역학계의 권위자인 가미노가와 슈이치 전 동경대학교 교수의 식단을 예로 들었다.
•벌꿀 한 스푼을 넣은 요구르트 150g •빵 한 조각 혹은 밥 한 그릇 •볶은 검정콩 10개 •삶은 달걀 1개 •아몬드 3개 등의 견과류 •호박씨 30개 •소시지나 햄(때때로) •채소주스 200㎖(당근 반 개를 기본으로 제철 채소와 과일을 간 것)
“김형석 교수에겐 더할 나위 없는 식단이지만, 굳이 첨가할 것을 찾자면 가미노가와 교수의 식단을 기준으로 얘기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저서 ‘장이 편해야 인생이 편하다’에서 위의 식단을 ‘면역에 가장 좋은 아침 식단’으로 소개했습니다. 이를 참고했을 때, 김형석 교수의 식단에는 견과류와 과일, 벌꿀 등을 곁들인 요구르트가 추가됐으면 합니다. 다만, 한 번에 식사량이 많으면 위에 부담이 되니, 간식으로 섭취하시길 권합니다.”
◇ 아침식사, 이것이 궁금해! (답변 김순미 교수)
아침 꼭 먹어야 할까?
아침 식사에 대한 논란은 아마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저마다 처한 환경과 체질 등 개인차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회식 등 늦은 저녁을 먹은 다음 날 소화가 덜 된 상태라면 아침 식사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경우가 아니고 시간 여유가 있다면 굳이 아침을 거를 필요는 없다. 나이가 들면 당뇨 환자가 아니더라도 혈당 조절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공복이 길면 저혈당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간단하게라도 아침을 꼭 먹는 것이 좋다.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 시니어가 해도 괜찮을까?
아침을 굶고 간헐적 단식을 하면 체중 감량에는 효과가 있다. 공복이 길수록 몸의 비상연료인 체지방을 더 많이 태우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건 ‘체중 감량’과 ‘건강’을 동일시하는 현상이다. 시니어가 간헐적 단식을 하면 저혈당 위험뿐만 아니라 체지방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는 과량의 유리지방산이 혈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약간 과체중인 이들의 건강 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체중 감량이 시급하지 않다면 간헐적 단식은 피하는 게 좋다.
비타민과 영양제로 아침을 대체해도 될까?
어떤 연구도 보충제 형태의 영양제를 먹었을 때 시니어가 염려하는 질병(특히 암)에 효능이 있다는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영양소가 효과를 발휘하는 건 음식물로 섭취한 경우에 한해서다. 따라서 매일 꾸준한 아침 식사를 통해 골고루 필요한 영양분을 채우는 것이 좋다. 또 영양제 과량 복용 시의 부작용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명심하자.
토마토, 바나나, 고구마가 공복에 좋지 않다던데?
최근 온라인상에서 ‘아침에 안 좋은 음식’, ‘공복에 피할 음식’ 등의 정보가 퍼졌다. 아침에 즐기는 토마토, 바나나, 고구마 등이 꼽혔는데, 위장질환이나 가슴 통증 등이 부작용으로 언급돼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일말의 가능성으로 영양은 차치한 채 공복에 좋지 않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여태껏 아침에 먹고도 탈이 안 났다면 애써 거부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아침에 좋다는 음식이라도 자신에게 안 맞으면 이상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인터넷 정보에 현혹되기보다는 나에게 좋은 음식, 즉 먹고 이상이 없고 속이 편한 음식을 찾아야 한다.
아침에 육식은 피해야 할까?
시니어의 경우 육식을 심하게 기피하면 자칫 근감소증으로 일상 수행 능력이 떨어지거나 면역력 감소, 혈당 조절 장애, 삼킴 장애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매일 일정량의 단백질(어육류군)을 섭취해야 하는데, 이때 가급적 붉은 살코기는 피하고, 지방이 적은 부위를 택한다. 직화나 팬에 굽는 것보다 삶아서 쌈을 곁들여 먹는 것이 가장 건강한 육식 섭취 요령이다.
코코넛오일? 크릴오일? ‘우리’ 들기름!
코코넛오일, 크릴오일 등이 건강에 특효라는 기사가 쏟아졌었다. 이렇듯 국내에서 생소한 식재료를 칭송(?)하는 정보 대부분이 외신을 번역한 것인데, 우리 식생활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 주목받는 땅콩버터 역시 고지방 식사에 적응된 서양인에게는 알맞지만, 한국인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근래 일어나는 대사질환들은 서양 식단의 영향이 크다. 평생 접해보지도 못한 음식을 애써 찾아 먹기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건강 식재료를 애용하길 권한다. 크릴오일에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 오메가3는 우리 들기름 섭취로도 충분히 챙길 수 있다.
아침에 버터커피? ‘건강식품강박증’에서 벗어나자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이 유행하며 ‘버터커피’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블랙커피에 무염버터와 코코넛오일을 넣어 마시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포만감을 지속해 아침 식사 대용으로 좋다는 권고였다. 그러나 커피는 기호식품이다. 기호식품은 영양이나 건강보다는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커피 한 잔조차 건강과 효능을 따지며 마시려는 사람은 건강식품강박증(orthorexia)을 경계해야 한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커피마저 이렇듯 신경 쓰며 마시는 게 이로울지는 고민해볼 문제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올빼미족’이었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된 것은 가족들을 위해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뜨는 습관을 들이고 나니, 이전에 잠자느라 놓쳐버린 시간들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었다.
‘올빼미족’이었을 때는 새벽까지 책도 읽고, 옷수선도 하고, 뜨개질이나 레이스뜨기도 하고, 음악도 들으면서 나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시어머니, 시동생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아침 식사를 일찍 했고, 남편과 시동생은 출근이 일렀다. ‘맏며느리’라는 막중한 위치에 서게 된 나는 오전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렇게 생활에 떠밀려 억지로 ‘아침형 인간’이 되어갔다. 시집살이 3년쯤은 오전 6시에 일어나도 9시까지 비몽사몽이었다. 눈이 ‘반짝’ 떠지지 않아 집중력도 떨어졌다. 올빼미족이 아침형 인간이 되려면 오랜 습관을 들여야 가능한 일임을 알았다.
나는 지금도 아침 식사 준비 때문에 오전 6시에 일어난다. 아들은 6시 30분에, 남편은 7시 30분에 아침을 먹는다. 출근시간이 달라서다. 식사가 모두 끝나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8시 30분이 된다. 내가 집을 나서는 시간이다. 당뇨를 앓고 있어 식사 시작 한 시간이 되는 시점에 걷기 운동을 해서 혈당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노원구에는 중랑천, 당현천, 경춘선 숲길, 수락산 둘레길, 불암산 둘레길 등이 있다. 이 길을 걸으며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요즘은 미세먼지의 영향을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 나무가 많은 산으로 간다. 수락산 자락에는 산책길이 많다. 아주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비 올 때, 눈 올 때를 제외하고 일정이 없을 때는 그 길을 걷는다.
운동을 마치면 오전 10시쯤 된다. 이 시간에는 아파트 단지 앞 카페 앞에 도착한다. 대로변 코너에 위치한 통유리가 시원한 카페는 바깥 구경하기에 너무 좋다. 지하철역 앞이라 오가는 사람도 많다. 약속이 없는 날엔 거의 들른다. 이곳에서 파는 달달한 도너츠 한 개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피곤한 다리를 쉰다. 그리고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사람을 쬔다’. 사람을 쬔다는 말, 무슨 뜻일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시(詩) 중에 ‘사람을 쬐다’라는 작품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 의미를 잘 드러내준다.
…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이다
… 다 늙은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 바라보고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재미있다. 얼굴 표정,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카페에서 ‘사람을 쬐며’ 누리는 이 시간이 나는 참으로 소중하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나만의 온전한 아침이기 때문이다.
오전 11시가 되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잔잔한 행복을 가슴 가득 품은 채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집 안에 풀어놓는다. 이것으로 나의 아침은 끝을 맺는다. 나만의 시간을 향유하는 아침, 소박하지만 행복하다.
때론 유명인사의 죽음이, 사인이 된 질환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최근 재조명되고 있는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나 스티브 잡스가 걸린 췌장암이 대표적이다. 콩팥병이나 혈액투석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 중장년들은 신부전증으로 유명을 달리한 가수 배호를 떠올린다. 비싼 병원비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사연이 전해지면서 이 병은 집 기둥뿌리 뽑아 병원비를 대야 할 만큼 치료비가 비싸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하지만 배호는 혈액투석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1966년 사망했는데, 국내에 인공신장기가 처음 도입된 시기는 1965년 수도육군병원에서였다. 일반인이 쉽게 혈액투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전문의들 또한 이런 선입견에 반기를 든다. 신장병은 치료비 부담이 크지 않고, 삶의 질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구로병원 신장내과 권영주(權映珠·57) 교수를 만나 만성콩팥병 치료에 대해 들어봤다.
“일본에선 혈액투석하며 30년 넘게 건강한 분도 많아요.”
만성콩팥병이 절망적인 병은 아니냐는 질문에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권 교수는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에서는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고 금전적으로 부담이 큰 병도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고혈압과 당뇨병이 주요 원인
신장병은 대부분 신장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사구체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 사구체는 혈액을 여과하는 모세혈관 덩어리다. 이곳에 염증이 발생하는 것이 사구체신염이다. 이 질환은 신장기능을 감소시키면서 만성콩팥병으로 이어진다. 신장기능 이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콩팥병이라고 부르며, 그 이전에 호전되면 급성으로 구분한다. 이 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또 있다.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고혈압과 당뇨병이라고 권 교수는 설명한다.
“신장이 아주 미세한 혈관으로 이뤄져 있다 보니 고혈압이 신장에 문제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또 반대로 사구체신염이 고혈압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거죠. 당뇨병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당뇨병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신장에 문제가 생기면서 단백뇨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당뇨병 환자가 가장 주의할 것 중 하나는 방심이라고 권 교수는 강조한다. 인슐린 투여나 약물 복용 등으로 혈당관리를 잘해도, 자각증상 없이 만성콩팥병으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장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복병은 바로 담배다. 혈관에 악영향을 주는 흡연은 손상되기 쉬운 미세혈관으로 구성된 신장에는 상극이다.
노화도 위험요인 중 하나다. 권 교수는 “40세 이상이 되면 신장질환이 없어도 기능이 매년 1%씩 감소하기 때문에 고령일수록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식이요법이 치료만큼 중요해
신장기능에 이상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 의료기관에선 크레아티닌이라는 성분을 측정한다. 혈중 크레아티닌 농도는 낮고, 요중 농도는 높아야 정상이다. 이 농도를 통해 신장기능의 정도를 5단계로 구분하는데, 3단계 이상을 만성신부전이라 부르며, 가장 심각한 5단계는 신장기능이 정상인에 비해 15% 이하 수준이다. 혈액투석이나 이식수술 등을 고려하는 단계는 5단계다.
권 교수는 “환자가 가장 주의해야 할 시기는 1~2단계”라고 강조한다.
“병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1~2단계에서는 유지가 가능해요. 식이요법을 제대로 따르고 복약을 잘하면 악화되지 않고, 안되어도 절반 정도는 투석이나 신장이식이 필요한 5단계까지 발전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어요.”
발병했을 때 자각증상은 밤에 소변이 보고 싶은 야간뇨로 나타난다. 신장기능이 저하되면 야간뇨농축기능이 감소해 요의가 자주 느껴지는 것이다.
만성신부전의 치료 과정에서 혈당이나 혈압 조절과 함께 의료진이 가장 주의를 주는 부분은 바로 ‘식이요법’이다.
“만성콩팥병의 정도에 따라 나뉘는데, 1~2단계에선 단백질과 소금을 제한해야 하고, 3단계에서는 칼륨 섭취를, 4단계부터는 인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렵더라도 만성콩팥병 치료에서 소금 조절은 심장상태에 따라 필수입니다.”
소금을 피해야 하는 이유를 권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혈액투석을 받던 환자가 사망하는 원인은 크게 감염과 심혈관 질환 두 가지입니다. 혈압이 높아 심혈관을 보호하기 위해 이뇨제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뇨제는 마치 젖은 수건을 짜듯 신장에 무리를 줘요. 그래서 이뇨제 투여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싱겁게 먹는 게 중요합니다.”
권 교수가 말하는 칼륨 피하는 방법은 이렇다. 야채는 데쳐먹고 줄기 채소는 줄인다. 생야채는 하루 열 잎 이내로 찬물에 오래 담갔다가 먹고, 사과, 호박은 껍질을 벗겨 먹는다. 바나나와 토마토는 피한다.
투석비용 많게는 월 30만 원 정도
신장기능이 정상의 10%로 이하로 떨어지거나 영양실조, 요독증상이 심해지면 병원에서는 신대체요법을 고려한다. 신대체요법이란 환자의 신장기능이 떨어져 신장 대신 혈액 속 노폐물을 배출하는 치료법을 말한다. 투석이나 신장이식이 여기에 속한다.
투석은 크게 두 가지, 집에서 환자 스스로 가능한 복막투석과 의료기관의 장비를 이용한 혈액투석이 있다. 복막투석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병원을 자주 찾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투석에 필요한 물품만 챙겨 가면 장기 해외여행도 가능하다. 그러나 투석 과정에서 잘못 조치하면 감염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반면에 혈액투석은 조치를 병원의 의료진이 해주기 때문에 환자의 부담은 적지만 대신 비용이 높다.
가장 중요한 비용 부분은 국민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되면서 환자의 부담이 많이 줄었다. 환자는 전체 치료비의 10% 정도만 내면 된다. 혈액투석 본인 부담금은 월 20만~30만 원 정도, 복막투석은 15만~20만 원 선이다.
신장이식은 가족 중 기증자가 없으면 뇌사자의 신장을 기증받는데, 국내 뇌사자 장기기증이 활발하지 않아 어렵다. 기증자가 나타나면 이식받을 환자 후보군을 등록 시점 등을 고려해 복수로 선정 한 뒤 최종 결정하는데, 처음 후보군에 오르기까지 4년에서 6년 정도 걸린다. 수술 비용은 1500만 원 내외다.
“그래도 심장, 간, 폐 등 주요 장기 중에 기능이 거의 멈춰도 대체 방법을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은 신장밖에 없어요. 환자 중엔 투석을 받으면서도 택배일 등 직장생활을 하는 환자도 있습니다. 대체요법을 고려할 정도로 신장기능이 악화되어도 희망을 버리면 안 돼요. 낙담하지 말고 힘을 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