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에서 중고교생 두발 자유화를 선언했다. 머리 길이 뿐 아니라 염색과 파마도 허용한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다. 단정한 학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온통 멋 부린 울긋불긋 패션을 보게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나는 약간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어서인지 학생은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좀 켕기는 구석이 있기도 하다.
“살면서 나를 케어해준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어요.”
소탈하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뼈가 있는 한마디였다. 아마 기자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의 업에 대해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확신을 가진 자유인이 아닐까 싶다. 싱어송라이터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불리는 김목경(60)이 바로 그 사람이다. 오롯이 홀로 서서 자신
오래전부터 학교에서, 사회에서 배워야 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우리 어머니들, 여성들의 출중한 운동 역사가 있다. 바로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이었던 ‘여권통문’이다. 늦었지만 이 순간 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시는 분들은 참 다행이다.
120년 전인 1898년 9월 1일, 북촌의 양반 여성들이 이소사, 김소사의 이름으로 ‘여학교설시통문(女學校設始通文)’
지리산 중턱, 해발 800m, 계곡 물소리 쿵쾅거리는 산중이다. 한때 도류(道流)의 은둔 숲이었던 청학동 구역이다. 이젠 관광지로 변해 차들이 물방개처럼 활개 치며 드나들지만, 특유의 깊고 외진 풍색은 여전하다. 영화감독 김행수는 이 심원한 골을 일찍부터 자주 찾아들었더란다. 2년 전부터는 아예 집을 짓고 눌러 산다.
우레처럼 요란히 소쿠라지는 개울
흔히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어떤 운명적인 순간들과 마주친다. 그럴 때마다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당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 선택들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작가 이언 매큐언은 자신의 소설 ‘체실 비치에서(On Chesil Beach)‘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50년 전쯤 편지를 주고받았던 짧은 인연에 기대어 그대에게 다시 편지를 씁니다. 그 사이 어떻게 지내셨나요?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 되어서 그대나 저나 서로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지만 밤잠을 설치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편지를 이어가던 까까머리 시절의 기억은 아직 저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답니다.
그때의 청소년들은 참 답답한 오
처음에는 “무슨 추모공연이냐” 반문하며 차갑게 돌아섰다. 공간예술을 하던 이를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추모한다는 말인가. 의미 없다며 외면하려던 찰나 불현듯 생각났다. “선배님이 이 연극에서 연기 참 잘했지.” 좋은 작품을 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 성격답게 세상과 쿨(?)하게 안녕하고 떠난 그녀를 대신해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조명이 켜진다. 카
연일 일자리 정책에 대한 뉴스가 쏟아진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700만 베이비붐 세대’까지 은퇴 후 유입되면서 취업 시장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경쟁이 심해졌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겐 더욱 일자리가 필요해졌다는 뜻.
정년 후 20~30년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시니어 입장에선 단 한 번의 실패도 극복하기 어렵기에, 제2직업에 대한 선택과 도전이
‘윽 그만 그만 너무 차가워’ 땀에 흥건히 젖어 목에 두른 수건을 비틀어 짜면 주르륵 흐를 정도로 더워도 그래도 금방 펌프로 퍼 올린 물을 한바가지만 등에 부어도 차가움을 넘어 추위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한꺼번에 많은 물을 붓지 말고 조금씩 부어 달라고 말해야 되지만 너무 차가와 말 못하고 비명만 질렀다. 우리 어렸을 때나 볼 수 있었던 정겨운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당연히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 규모도 매우 커졌다. 서울 대부분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0억 원이 넘는 상황에서 과거 부자의 상징이었던 백만장자는 지금의 관점에서는 부자 축에도 들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개인들의 재산 규모가 확대될수록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상속과 증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