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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말 나들이] 드립이 핵노잼이라 쉴드를 칠 수가 없다
- 하는 말마다 재미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정말 재미없는 말에 억지로 웃어주기 힘들 때가 있다. 소위 젊은이들 사이에 쉴드를 칠 수 없다고 한다. 무슨 의미일까? ◇ 드립 풀이 ‘드립’은 즉흥적으로 대사를 한다는 ‘애드립(애드리브의 준말)’에서 나온 말로, 젊은이들 사이에‘발언’ 또는‘이야기’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여기에 어이없는 발언이나 앞뒤가 안 맞아 누가 봐도 막 지어낸 듯한 발언을 가리켜‘개-(애)드립’이라 표현한 것으로부터 생겨났다. 활용법 ‘발언’이나 ‘이야기’라는 뜻으로 ‘드립’이라는 표현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접두사를 붙이기도 한다.‘어이없는 이야기’는‘개-’라는 접두사를 사용해‘개드립’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어떠한 이야기의 핵심 단어를 접두사처럼 붙여 ‘~드립’이라고 사용하기도 한다. 예문 1. 연예인들이 저렇게 막장드립을 치면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 (막장드립 : 자극적인 발언 또는 선정적인 발언) 2. 장동민이 인터넷 방송에서 한 삼풍백화점드립 같은 건 너무 심했지. 3. 미리 말해두는데 손주 봐달라는 드립 치지 마라. 나 네 아들 못 봐준다. ◇ 핵 풀이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강조 표현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접두사 ‘핵~’이다. ‘핵폭탄’에서 파생된 말로 그 모양이나 상태가 크거나 심한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그중에서도 ‘핵’은 ‘매우, 엄청’ 등의 최상급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활용법 말 그대로 과장할 때 사용하면 된다. 마이크 타이슨의 치아를‘핵이빨’이라고 부르듯이 그 상태와 모양이 폭발적으로 클 때 사용한다. 예문 1. 김구라의 드립은 가끔 돌직구를 넘어서 핵직구인 경우가 많아.(돌직구 : ‘직설적이다’라는 뜻) →‘핵직구’는 돌직구보다 더욱 직설적이라는 뜻이 된다. 2. 남자들은 꼭 여자 앞에서 쓸 데 없는 핵존심을 부리더라. (핵존심 : ‘핵+자존심’의 합성어) 3. 요즘 한화 경기 보면 끈적끈적한 게 아주 핵꿀잼이야. (핵꿀잼 : ‘핵+꿀재미’의 합성어로‘정말 재미있다’는 뜻) ◇ 쉴드를 치다 풀이 어떤 사람이 잘못한 점이 있어도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 행위를 옹호하거나 감싸주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서 ‘쉴드(Shield)’는 ‘방패, 보호물, 방어막, 보호자, 옹호자’라는 뜻의 영어 표현으로, 한국어의 ‘(방어막을)치다’라는 표현과 함께 쓰이게 됐다. 활용법 실수나 실패로 다른 사람에게 뭇매를 맞을 때가 있다. 그것을 겪은 당사자가 가장 힘든데 거기에 뭇매를 맞으니 불행은 두 배가 된다. 가장 힘들 때 힘이 돼 주는 사람이 가장 고맙다고 하지 않은가. 이럴 때 그를 위해 쉴드를 쳐줘보자. 편이 돼 주고, 뭇매를 맞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쳐주자. 예문 1. 김성민의 마약 사건은 도저히 쉴드를 칠 수 없는 일이야. 2. 내 아들 실수한 게 있어도 내가 쉴드 쳐줘야지 누가 쳐주겠어. 힘내 아들. 3. 진정한 팬이라면 스타의 잘못에 무조건 쉴드를 칠 게 아니고, 건강한 비판도 할 줄 알아야지. ◇ 노잼 / 꿀잼 풀이 ‘노잼’은 영어의 부정 표현인 ‘No’와 한국어 ‘재미’의 줄임말인 ‘잼’이 합쳐진 말로 ‘재미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반대로 ‘꿀잼’이라는 말도 있다. ‘꿀’은 달콤함의 대명사인데 이것이 긍정적인 의미로 변형돼 ‘재미있다’는 표현을 강조한다. ‘매우 재미있다’는 뜻이다. 활용법한마디로 ‘노’는 부정어 ‘No’, 꿀은 긍정어인 ‘Yes’라고 생각하면 된다.‘답이 없다’라는 ‘노답’이라는 표현도 있다. 꿀은 ‘꿀잼’,‘꿀벅지’ 등 긍정적인 표현으로 사용된다. 예문 1. 퇴직 후에 할 만한 일이 없어 노잼이야.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2. 요즘 골프 치는 것보다 자전거 하이킹이나 캠핑이 더 꿀잼이더라. 3. 진짜 요즘 애들 어른들 대하는 거 보면 노답이야, 노답.
- 2015-06-0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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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라이프]진한 연애를 꿈꾸는 진짜 남자 '조영남'
- 1970년대를 풍미했던 ‘쎄시봉’ 가수, 라디오 장기 DJ, 예능 프로그램에 감초 게스트, 그리고 독보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화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조영남. 올해 칠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조영남과의 인터뷰는 그가 지금까지 어떻게 현역으로 살아갈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그의 사고는 거침없었다. 하지만 그 거침없음으로 인해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수많은 대중의 호불호 속에서도 그가 지켜 가고자 하는 삶의 중심은 무엇일까?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짧고 굵다. 무뚝뚝하고 툭툭 던지는 듯한 조영남의 화법은 마치 묵직한 못을 박은 것처럼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답을 던진다. “재밌게 사는 방법에는 낚시, 바둑, 골프, 등산…. 그중 하나 골라서 하면 되는데 돈 안 드는 걸로는 그림 같은 게 있지. 딴 것들은 돈이 드니까 추천하기가 거북하네. 그런데 낚시하고 똑같아. 뭐든 낚싯줄 드리우듯이 시작하면 하게 되는 거지. 일단 경험을 해봐.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도 그림 시작할 때는 아마추어로 시작했지. 그런데 이걸 계속 30년 넘게 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프로 대접을 받더라고. 저절로 프로가 됐어.” 인생 후반전에 들어와 화가로서 이름을 세운 조영남. 그에게 인생 후반전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 길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봤을 때의 대답이다. 뿔테 안경 너머로 익살스러운 웃음과 함께 늙지 않는 청춘을 실제로 마주하니 더 진솔했다.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보라” 화가가 된 그에게 그림이 좋다 나쁘다의 평가 기준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돌아온 대답도 조영남다웠다. “내가 그리고 싶은 거 그리는데 남이 뭘 보고 느끼겠어. 그런 건 모르고. 낚시나 바둑 같은 것보다 그림 그릴 때가 단순히 좋을 뿐이야. 그래서 하는 거지.” 그러나 대화를 더 진행하니 단순히 좋아서는 아니었다. 조영남이 화투를 통해 미술을 선택한 이유는 미술만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음악은 내가 노래 잘하는 사람과 똑같이 하면 금방 인정받잖아? 그런데 내가 피카소와 똑같이 그리면 미술계에서 실력이 없다는 굴욕적인 평가를 받아. 음악과 미술은 그런 차이지. 그런데 화투를 아무도 안 그렸었더라고. 내가 그걸 알고서 처음 화투 그림을 시작한 거지. 딱지도 그린 사람이 없었어. 딱지가 우리에게 익숙한 추억의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이걸 소재로 그림을 그린 사람이 없더라고. 그래서 2년 전부터 그리고 있어. 미술은 100% 자유야. 화투를 그려도 되고 딱지를 그려도 되고 하다가 말아도 되고. 그런데 음악은 까다롭잖아. 음정, 박자를 맞춰야 하잖아. 내게 음악과 미술은 정반대야.” 그는 치열하고 골똘하게 연구해 독자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미술이라며 미술과 음악을 포함한 예술은 모순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실에 닿는 그림을 담아내고 있다. 징징 짜면 죄(罪)라는 생각 우리는 동창들을 만나면 “그 친구보다는 내가 괜찮았는데 잘 안 됐어” 식의 추억 이야기를 곧잘 하게 된다. 조영남에게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리고 그에게는 정말 안 어울리는 질문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내가 열등감 있게 보여? 나는 아무것도 없었어. 내가 얼마나 무감각한 남자냐 하면 어렸을 때 가난했잖아? 가난도 실감을 못 하는 정도였어. 어렸을 적에 가난했다고 한숨 푹푹 쉬는 친구들 있잖아. 난 학교 가는데 하늘이 노랄 때가 있었거든? 그럴 때는 ‘아! 내가 굶었구나’ 생각하고 친구들 접선해서 얻어먹으면서 견디고 그랬지. ‘가난하다’, ‘불행하다’, 그런 느낌을 안 가졌었어. 그러려니 싶었던 거지.” 조영남은 자신의 낙천적인 면모가 피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부모님 양쪽으로부터 받은 긍정의 피다. 혹시 그런 천성이 그가 젊게 사는 비법이 아닐까. 그는 세대 갈등을 느껴본 적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런 그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이 나이 돼서 늘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보다 몸이 더 불편하잖아. 그러면 ‘늙었구나’ 하고 생각하지. 하지만 한탄하지는 않아.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태반이잖아. 내가 징징 짜면 안 되지. 그러면 죄 받는다고 생각해.” 그는 현재 딸과 함께 사는 중이다. 딸의 나이도 20대 중반. 딸의 결혼에 관한 생각을 물어봤다. “그건 자기가 하는 거지 내가 하는 게 아니지. 나는 딸이 뭘 하든지 찬성하고, 간섭 안 해.” 딸과 함께 수다를 떠는 거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에게 문자를 보내도 외면당하는 요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조언을 물어봤더니 손사래를 쳤다. “자식 문제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할 주제가 아니야. 두 번 이혼했는걸. 해선 안 되는 거로 생각해. 현대인들이 문제를 푸는 걸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냐. 안 돼서 안 하는 거지.” “주된 관심사는 이성” ‘조영남’이라고 하면 스캔들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 이성에 대한 관심은 어떤지 물어봤다. 그러자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가장 빠르고 굳건한 목소리의 대답이 즉시 돌아왔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내 제일 주된 관심사지.” 조영남 하면 다들 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의 활력이 나이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그런 반응에는 일말의 부러움이 섞여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왜 철딱서니 없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나한테 데려와 봐. 누가 철이 있는지 없는지 알게 해줄게. 나처럼 철딱서니 없으면 여자들이 좋아하는데.” (웃음) 솔직히 생각해보자. 요즘 사람들은 인생관을 세워도 그 인생관대로 삶을 잘 운영하지 못한다. 자신의 삶을 주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조영남에게 철이 없다고 말하는 것에는 어폐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관대로 잘 안 되는 이유가 있어. 돈 쓰기를 싫어하니까. 손 안 대고 코 풀려고 하는데 되겠어? 그게 큰 원인이지. 그리고 사람들이 잔머리를 너무 써. 너나 할 것 없이. 그게 걸림돌이야. 그러다 보니 솔직하게 이야기를 못하지. 그런데 내가 그걸 솔직하게 말하니까 철딱서니 없다 하지. 진실을 얘기하니까. 진실은 항상 거북살스럽거든.” 진실을 직시하기 어렵다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진실의 표현에 대한 수위 조절 또한 참 어려운 일이다. 그 물음에 그 또한 선선히 어렵다고 동의했다. 자신에 대한 반감에 투덜대지 않는 이유 조영남이 자주 가는 본인만의 아지트가 있을까? 그는 그런 곳이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그 좋아하는 술도 줄였다고 한다. “난 독주가 좋아. 그런데 나이가 드니 술도 안 들어가. 맛도 없고, 흥도 안 나고.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에게 술이 들어갈 때 마음껏 먹어둬라, 나중에 후회한다. 그렇게 얘기하고 싶어. 클럽도 한 번 가봤는데, 정말 재미가 없더라고. 젊었을 때 갔어야지. 뭐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해.” 조영남의 삶의 궤적을 보면 다른 것들은 열정이 보이는 게 많은데 유독 돈을 버는 일에는 크게 애정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돈 버는 직업은 아니잖아. 그래서 내 이름으로 해서 망한 적도 없고. 그런 걸 하면 죄 짓는 거라 생각해. 나는 신이 노래만 불러도 먹고 살게끔 해줬는데, 다른 걸로 먹고 살려고 하는 건 신의 뜻에 어긋나고, 나 자신에게도 어긋난다고 생각해.” 확고한 신념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지만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연예인이다. “꼼꼼하다기보다는 와이즈(Wise)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거 같아. 나는 현명하려고 무지하게 노력했고 나름 성공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그는 유명인으로서 사람들이 자기를 몰라볼 때가 가장 섭섭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가 유명하니까 나에 대한 몰이해도 나오는 거로 생각해. 그래서 나에 대한 반감에 대해 투덜거리지 않아. 사람들이 날 모르는 척할 수도 있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세상 사람 전부가 다 날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오늘 같은 인터뷰를 통해 조영남이란 사람에 대해 알 수 있겠지. 해서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거고.” “없어지는 걸 생각 중…생텍쥐페리처럼” 그는 영화 ‘버킷리스트’를 좋아해서 네 번이나 봤다고 말했다. “보면서, 난 어떤 버킷리스트가 있을까…. 한 가지가 딱 생각났어. 내가 손목시계를 좋아해. 그래서 제네바에 가서 손목시계를 3박 4일 보고 오는 걸로 버킷리스트를 정했지. 그런데 그걸 하고 나니까 너무 싱거워. 너무 싱거워서 뭐 다른 건 없을까 생각했는데…. 지금도 없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했더라고.” 자신이 욕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하고 싶은 걸 다한 상태였다는 걸 깨달은, 억수로 운이 좋은 남자, 조영남의 정체다. “없어지는 걸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생텍쥐페리가 비행기를 몰고 구름 속으로 사라졌잖아. 그게 늘 부러워서 흉내 내려고 했는데 비행기를 배우려면 학원에 다녀야 하고 귀찮아. 그러니 버킷리스트가 없을 수밖에 없지.” 최근 그의 화투 그림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것 같아 인터뷰 막바지에 넌지시 가격이 많이 올라갔느냐고 물어봤다. “굉장히 비싸졌지.” 그리고 바로 무심하게 툭 던진다. “아, 그런데 그게 뭐 팔려야지.” 쎄시봉 큰형님으로 알려진 조영남은 이전까지 쎄시봉 콘서트와 별개로 개인 활동을 했지만 올해는 쎄시봉 전국투어 콘서트에 합류한다. 이번 콘서트에서는 영화 쎄시봉 OST에 등장한 신곡 백일몽 라이브 버전을 최초로 공개 할 예정이다. 다음은 2015 쎄시봉 친구들 콘서트 상반기 일정이다. 4월 4일 일산 고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 4월 11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 4월 12일 전주 전주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4월 18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 4월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hall D 5월 9일 대구 경북대학교 대강당 5월 23일 인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 2015-03-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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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T 1] 오래 사는 길 VS 제대로 사는 길
-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인생 오전’을 거쳐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저자 존 쿠퍼 포우어스는 노년에 어느 정도의 품위와 행복을 누리면서 살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철학이 절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인생 오후’에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냐를 찾는 것이 아니고 바람직한 모습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반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삶이었다면 후반의 삶은 거기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 후반전을 사는 어른들은 후배에게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며 조언을 한다. 그들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후반전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그분들의 삶은 그분들 자신뿐 아니라 젊은이들과 우리 사회에 영향과 축복이 되고 있다. 후배들에게 하는 보배로운(?) 행동이 힘이 되고 후배들은 근사하고 당당하게 여생(餘生)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마중물을 찾게 된다. 은퇴한 고등학교 교장이 정년퇴직한 다음 날부터 학교 청소원으로 나타난 경우가 있었다. 하루에 2시간씩 복도 청소, 쓰레기 줍기 등 청소를 해주는 봉사로 아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며 행복을 전해주는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일을 할 때, 열심히 할 때 그 일을 사회의 나눔과 봉사에 접목을 하면 더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을 알기에 남은 삶을 학생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 교장선생은 오래 사는 것보다 멋있게 늙어가는 것이 간절했기에 그리고 나눔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이기에 청소원으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여전히 배울 것이 남아 있다 후반전, 이제는 그냥 오래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오래 살면서 무언가 배우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여전히 배울 것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나누고 베풀면 배우게 됨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인생은 무위자연, 스스럼없이 살아가며 마음의 풍요로움을 얻는 것이 인생 후반부의 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우리는 나눔과 비움의 지혜를 배우며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보낼 수 있는 ‘인생의 오후’를 맞이하고 싶어 한다. “나눔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지만 마음, 웃음, 지식, 말, 손길 등 다양합니다. 나를 위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내가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즉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가진다면 나누는 길이 열릴 것이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감사와 나눔이 습관이 되면 행복해진다는 것을 깨달은 손욱 회장은 노후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자신이 알고 쌓아 온 것들을 나누고 기부하면 기쁨이 저절로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많습니다. 우선 나이가 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걸 확인하고 무리한 욕심을 안 부리고 만족할 줄을 알게 되죠.” 만족할 줄 알게 된다는 것, 백만기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은 나이 듦에 대해 그렇게 명쾌한 정의를 내렸다. ‘놀 줄 아는’ 멋진 어른이다? , “나이 든 분들이 기껏 한다는 게 모여서 골프 가거나 등산하거나, 고스톱 친다든가 하는 정도면…. 사실 우리나라의 현재 은퇴자 문화에는 여러 사람이 어울려서 하는 놀이가 별로 없어요. 경제적인 발전에 비추어 문화적인 면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백 교장은 은퇴 후 분당FM방송에서 동호인 클럽과 문화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4년 동안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경력에서 알 수 있듯 백 교장은 음악애호가로 시작하여 드럼, 피아노, 클라리넷, 콘트라베이스 등 직접 악기를 배우고 밴드를 만드는 것까지 시도한 적이 있었다. 적어도 놀지 못한다는 말은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성싶다. 악기는 ‘놀 줄 아는 멋있는 어른’,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예다. 은퇴자들이 제대로 노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백 교장은 설명했다. 그리고 제대로 노는 법은 ‘어른다움’을 배우는 일환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일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은퇴를 하고 나면 어른의 길을 가느냐 노인의 길을 가느냐의 두 가지 선택 앞에 놓이게 됩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고 하잖아요?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이 돌아가신 이후 사회적 어른이 부재하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줄 아는 어른의 부재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의미 있는 일로 ‘인생의 오후’를 만끽하고 싶다 백 교장은 19세기 폴란드 시인 노르비트가 밝힌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세 가지 필요한 것들’의 균형에 대해 설명했다. 첫 번째는 먹고 살기 위한 수입, 두 번째는 재미있는 일, 세 번째는 의미 있는 일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가 부족하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되는 것이고 두 가지가 부족하면 비극이 된다는 것이다. 어른이 없다는 것은 먹고 사는 일과 재미있는 일은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걸 가르쳐주고 있다고 백 교장은 지적했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가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손 회장은 “노인은 자기만 아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죠. 반면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주위에 모으게 되죠”라고 최고의 노년을 보내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신이 좋아하는 건 뭔지를 물어 보세요. CNN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2%가 여가 시간에 TV만 본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모르기에 TV를 보게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라고 해서 다르지 않죠.” 악기를 배우는 것도, 저작물을 하나 남기는 것도 모두 일정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노인이 되지 않고 어른이 되는 길, 거기에는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부단한 의지가 필요한 것이라고 백 교장은 덧붙였다. 노인은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만 지나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가꾸고 노력해야 한다. 오래 사는 것과 제대로 사는 것,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이다. 눈부신 삶의 변곡점에 서ek 태어나 관계 맺고 살다 죽는 인간의 삶의 경로는 변치 않고 우리는 대체로 엇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살다 간다. 그래서 인지 생의 새로운 국면, 삶의 이정표 앞에서도 우리는 흔한 일상으로 당연시하며 무심히 넘기기 일쑤다. 성공적인 제2인생은 보다 평화롭고 안전하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기를 추구한다. 그러다가 눈부신 삶의 변곡점에 가다보면 보람, 나눔, 행복, 소통, 활동, 일, 공부, 참여, 관계, 건강, 취미, 문화, 배려, 승계, 후배교육, 인생 마무리 준비 등 지극히 평범했던 생의 순간들이 어느 새 ‘의미’있는 삶으로 변환되며 인생이 새로운 가치로 다가오게 된다. 이러한 제2인생을 맞이하려거든 보람, 열정, 관리, 여유, 준비라는 5대 키워드로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신중년의 행복은 건강과 취미에 달려 있다 해도 무방하다. 거기다 성찰과 관리를 잘하는 친구와 어울려야 활동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즉, 철저한 자기관리와 열정적인 마인드가 있으면 세상만사를 지긋이 바라보는 여유가 비움의 미학을 문화로 채우는 가치 있는 삶으로 발효되기 때문이다. 제2인생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소신이나 긍지를 갖는 것이다. 학생 때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좋은 학생이고,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의 결정이 옳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면 베스트 사원이었다. 그러나 정년 후에는 주위의 시선이나 평판보다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이 올바른 방향이라는 소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오후’는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생후반전이 낙원이라면 가치 있는 삶을 좇을 필요도, 성찰을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너무나도 불확실하고 혼란스럽다. 이러한 혼돈의 시기일수록 자기를 낮추고 공감하고 배려를 기울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공적인 제2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믿음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행복하고 멋진 제2인생이 찾아올 것이다.
- 2015-01-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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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 않은 길] 곤충의 매력?
- 손바닥만한 장수하늘소가 기자를 압도한다. 두 팔을 위엄 있게 치켜세우고 표독스러운 눈빛을 쏘아대는 사마귀는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칫거리게 한다. 영등포에 위치한 만천곤충박물관이자 곤충숍에는 이런 곤충이 ‘몇’만 종(種), ‘몇’ 백 만마리나 있다. 이곳의 관장인 김태완 씨는 곤충의 수를 모두 헤아릴 수 없어 ‘몇’이라고 표현한다. 왜 이렇게 많이 있냐고? 곤충의 무궁무진함. 끝을 알 수 없는 종류들 때문이다. 김 관장은 거기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 매년 수십억 원을 끌어 모았던 인쇄소 사장 김씨가 소년 시절 꿈꾸었던 곤충의 세계로 뛰어든 이유. 궁금해졌다. ◇ 기계화와 물장군 30년 전 인쇄소는 활자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찬 이들로 문전성시였다. 인쇄소 사장이었던 김씨의 주가도 덩달아 하늘을 찔렀다. 짭짤한 수입에 연신 웃음도 끊이질 않았다. 인쇄산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해도 사람이 하는 작업을 기계가 한다뿐이지 수입에 많은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인쇄소가 사람보다 기계의 손을 많이 탈 무렵. 김 씨의 손도 꽤 한가로워졌다. “인쇄소가 한가해지니 취미생활이 늘어나더라고요. 골프도 치러 다니고, 낚시도 아들과 함께 하러 다녔었죠. 그런데 어느 날은 낚시를 하는 데….” 김씨가 곤충의 세계에 정식적으로 발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를 회상했다. 멍하니 낚싯대만 쳐다보며 세월아 네월아를 외치던 그때! 잔잔한 물에 파도를 일으키는 것이 있었으니 물장군이었다. 김씨의 얼굴에 천친난만한 미소가 퍼졌다.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은 어린 시절 꼬마 곤충채집소년 김태완이었던 것이다. 김 씨는 그 순간 머릿속에 불꽃이 튀었다고 말했다. ‘아! 내가 이렇게 곤충을 좋아했었지?’ 이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김씨는 낚싯대를 곤충채집 망으로 바꿔버렸다. 바로 뒷산으로 올라가 보이 는 곤충을 모조리 잡았다. 그게 25년 전 이 세계로의 시작이었다. ◇ 아내는 힘들지만, 나는 안 힘든 직업 “제 아내는 곤충을 정리하고 상품화 시키는 것에는 국내 최고였어요. 하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곤충을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백기를 들고 나가버렸어요.” 만천곤충박물관은 살짝 어수선하긴 했다. 아마 너무 많은 곤충들 때문에 방치 아닌 방치를 해놓아서 그럴 터. 그래서 김 씨는 아내의 빈자리를 실감한다. 정리하는 일은 아내만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와는 달리 김씨는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이미 곤충의 마력에 중독 돼 버린 것 이다. “이 일을 하면서 직원이 말썽을 부린 적도 있고, 사기도 수없이 당했지만 이 일을 놓을 수 없었어요. 곤충의 매력 때문이에요. 저도 이제 마무리 좀 보고 싶거든요? 근데 이건 끝이 없어요. 새로움, 새로움, 새로움. 계속 새로운 것이 들어와요. 수십년간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지루할 만도 한데, 이건 지루할 틈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일이 힘든지 모르겠어요.” ◇ 인생을 바꾼 아들의 한마디 봄, 여름, 가을이 되면 곤충을 잡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겨울은 그저 표본 작업. 그래서 당시의 겨울은 김씨에게 따분한 것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있던 그의 아들이 무심코 한마디를 던진다. 김태완의 인생이 바뀐 한마디였다. “아빠 필리핀에는 겨울이 없잖아요.” 당시를 생각하니 어이없고, 웃겼는지 김씨는 ‘빵’ 터졌다. “아들 말을 듣고 그 해에 필리핀을 갔는데 이건 완전 신세계인 거예요. 예쁘고 신기한 곤충도 많고, 보지 못한 곤충들도 많고요. 그 이후에 매년 2번씩 곤충 잡으러 가고 있어요. 이제는 남미, 아프리카까지 안 가는 곳이 없죠.” 김씨는 이제 세계를 누비고 다닌다. 국내에서는 이미 국내·해외 곤충 하면 ‘만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미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에서도 ‘빅 바이어’로 소문이 나 있어, 세계의 곤충 채집가들이 새로운 것이 있으면 먼저 김씨에게 건낼 정도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곤충을 보유한 그는 더 큰 꿈을 품고 있다. “세계에서 곤충을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곤충에 대해 연구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곤충을 적극 지원해 주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도 하고 있지만요.” ◇ 장수말벌에 쏘이면? “해외로 채집을 하러 가면 위험을 감수해야 될 부분이 정말 많아요. 운전기사와 가이드만 데리고 채집을 하기 때문이죠. 거머리도 엄청 많은데 어떨 땐 피 한 바가지 빨리고 올 때도 있어요. 못 믿으시겠죠?” 아직도 그의 아내는 이 일에서 손을 놓기를 바란다. 김씨와 함께 10년 간 일을 해봤기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양의 곤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걱정은 따로 있다. 거머리뿐 만 아니라 독충, 뱀, 말라리아 등을 채집할 때 곳곳에 도사리 고 있는 위험 요소들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보기 만 해도 그 위압감에 손사래를 친다는 장수말벌 에도 수차례 쏘인 김씨를 본 아내는 속이 타들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위험 요소에 대해 말하는 김씨의 말도 가관이다. 사냥 본능을 숨길 수 없는 영락없는 50대 파브르였다. “장수말벌이요? 뭐 수도 없이 쏘였죠. 쏘이면 어떠냐고요? ‘따갑네?’ 이 정도예요. 별 느낌 없어요. 곤충 잡기 바쁜데 아플 시간이 어디 있어요.”
- 2015-01-20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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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라이프] 천 억 자산가가 부러워하는 사나이
- ※ “아직 꿈에서 깨지 못했어요.” 인터뷰 1주일 전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을 마치고 돌아 온 그가 꺼낸 한마디다.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마취통증의학 교수, 삼성서울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임상교수. 지난해 8월까지 이병달 씨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화려했다. 엘리트 중 엘리트. 갑(甲) 중에서도 상갑(甲)이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를 내려놓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훌쩍 여행을 가버리거나, 달리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것이 좋다. 거기에 젊은이들과 보드카라도 한잔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봐야 하는 이 괴짜 의사는 지난해 8월부터 석 달간 다녀온 유라시아 횡단의 꿈에서 아직 깨지 못했다. 철인 3종 경기, 마라톤, 클라리넷 연주에서 유라시아 횡단까지 했으면서 아직까지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하고 싶다”며 멈춰있는 것이 죽어도 싫은 이 사람. 노후에 놀 거리가 무궁무진해서 천 억원 자산가도 부러워하는 이씨를 만났다. ◇14시간 57분 철푸덩. 철인이 되기 위한 여정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겁 없이 바다에 뛰어든 사나이는 호흡은커녕 바닷물 마시기에 여념이 없다. 바다와의 사투가 끝나고 뭍으로 올라와 소금기 가득한 몸으로 사이클에 앉는다. 시간이 지나자 호흡이 안정세로 돌아오나 싶더니 이내 오르막길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는 다시 안장에서 박차고 일어나 페달에 온몸을 싣는다. 그러나 허벅지는 이미 폭발 직전 더블 다이너마이트. 이쯤 되니 ‘철인’이라는 수식어가 이씨에게 조소를 퍼붓는다. ‘넌 안 돼! 그러니 이쯤 되면 돌아가’. 이씨의 귓가에 맴돌며 포기를 종용한다. 한 발 두 발 세 발…. 무거운 발걸음이 더해지자, 천 발, 구백구십구 발, 구백구십팔 발…. 목적지와의 발걸음이 줄어든다. 이씨의 몸놀림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성실하게 뛰다보니 어느새 깜깜한 밤이다. 어둡고 고요한 적막을 그의 거친 숨소리가 깨운다. 그 숨소리의 끝은 철인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이다. 10미터, 9미터…그리고 피니시 라인. 이곳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리며, 바닥에 널브러진다. ‘철인’이다. 바다에 뛰어든 지 장장 14시간 57분 만에 얻은 쾌거다. 사실 이씨는 자신이 처음 도전한 철인 3종 대회를 완주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몇 달을 철저히 준비했고, 틈만 나면 체력 훈련을 했어도 말이다. “대회 전 날은 두려움 반, 기대 반이었어요. 엄밀히 말하면 두려움이 더 컸지. 나 자신도 80% 이상은 중도 포기할 줄 알았으니까요. 근데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보니 피니시 라인이더라고요. 17시간 안에 완주를 해야 철인 등록증이 나오는데, 14시간 57분이라는 기록으로 완주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어요.” 생각보다 쉽게 결과를 얻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에도 4번이나 더 완주에 성공했던 그였지만, 첫 완주 후에는 허무함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클라리넷. 그러나 타고난 괴짜 철인 기질이 어디 가겠나. 결국 돌아온 곳은 트랙 위였다. “뛰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그 순간의 희열은 말로 표현 못하죠. 거기에 남들 하지 않는 것을 먼저 시작하니 성취감도 2배였습니다. 조물주가 움직이라고 사람 만들었지 가만히 있으라고 만들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 모두 저처럼 살아야 될 것 같아요. 땀 흘렸을 때 이렇게 행복한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걸까요?” ◇달리는 의사들과 팀 닥터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씨가 막 마라톤에 눈을 떴을 때 즈음. 의사들에게도 때아닌 마라톤 열풍이 불었다. 그때 이씨와 함께 춘천마라톤에 출전했던 이들이 뜻을 모아 의사 마라톤 클럽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 때만해도 단순 친목과 운동을 위한 모임이었지 이 후 뜻 깊은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하나 둘 대회에 참여하면서 ‘달리는 의사들’의 마음속엔 이미 눈에 거슬리기 시작하는 것이 스멀스멀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이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마라톤 마니아이기 전에 어쩔 수 없는 의사였다. 그 당시에 일반인 마라톤 붐이 일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주최측은 외형꾸미기에만 바빴지, 참가자들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땅에 떨어진 동전이 녹을듯한 여름 아스팔트를 달리는 레이스에서는 참가자들이 쓰러지기도 했고, 레이스 중간에 넘어져 다치는 사람도 비일비재 했지만 결승선을 밟을 때까지는 사실상 주자 자신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였다. 그래서 이씨와 달리는 의사들이 생각해 낸 것이 ‘레이스 패트롤’이었다. 2001년 동아마라톤에서 참가자들과 함께 달리며 응급 상황을 대처하는 봉사를 시행한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달리는 팀 닥터를 자처한 것이다. 레이스 패트롤에서 시작한 달리는 의사들의 활동은 ‘소아암 환우돕기 서울시민마라톤’으로 이어졌다. 행사에서 8년 동안 3억 원을 모아 소아암 환우들을 위해 기부를 하기도 했다. 이 씨의 팀 닥터 생활은 이 시기부터 시작 됐다. 레이스 패트롤 이 후 원정단, 청소년 극한 체험, 그리고 최근의 유라시아 횡단을 포함해 총 6번의 크고 작은 팀 닥터를 하며 여러 팀의 건강을 책임져왔다. 이 또한 생기 넘치는 활동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팀 닥터만 6번이면 의사 중에도 많이 없을 거예요. 뭐 이젠 팀 닥터에 특화된 의사라고 보면 되죠. 그 동안 노하우도 많이 쌓였고요. 팀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개인의 컨디션을 극대화시키는 일. 이게 팀 닥터의 매력이자 달리는 의사의 매력이죠.” ◇모두가 부러워하는 노후의 먹잇감 “친구 중에 천 억 넘게 재산을 가진 친구가 있어요. 나는 그 친구 보면 참 답답해. 40대부터 쳐온 골프를 아직까지 치고 있다니까? 나이가 먹으니까 타수도 줄지 않아서 스트레스만 늘어난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재미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그 친구는 저를 매우 부러워해요. 난 즐길 수 있는 먹잇감들이 아주 많거든.” 자신이 괴짜인지 모르고 친구들이 답답하다는 이씨다. 아무리 취미라도 결과가 재미있게 나와야 할 맛이 난다고 생각하는 그는 오랜 시간 골프만 쳐 온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보통의 50대, 60대라면 즐기는 스포츠인데도 말이다. 노후 즐길 거리를 ‘먹잇감’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노후 생활에 걱정이 없다. 활기찬 노후를 위한 먹잇감들이 다채롭게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에 재직할 당시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마라톤·자전거·수영 등 3개의 동호회와 철인 3종 경기를 하면서 끌고 온 철인클럽은 웃음으로 가득 찬 노후를 위한 포석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마라톤 대회를 열어 기부를 실천하는 ‘달리는 의사회’를 합쳐도 일주일이 모자랄 지경이다. 이렇게 이씨가 동호회에 쏟은 열정은 고스란히 자산으로 되돌아왔다. 삼성서울병원에서 테니스 동호회 창립회장으로 12년, 자전거 동호회 창립멤버와 수영 동호회의 멤버로서 빠짐없이 참여하자 후배 의사들은 그에게 “종신회원이니 퇴직한다고 안 나오면 섭섭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기도 했다. 후배 의사들도 이씨의 먹잇감을 챙겨주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한 셈이다. 놀거리, 즐길 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음에도 이씨는 새로운 먹잇감을 찾기에 분주하다. 이렇게 기발한 놀거리는 어디서 생각을 해냈는지 기자는 얘기를 듣는 내내 감탄하기 바빴다. 아마도 이 사람. 남들보다 먼저, 남들과는 다른 취미를 가지지 않으면 몸이 근질근질한 사람인 게 분명하다. “에이~. 마라톤, 자전거, 수영을 합친 철인 3종은 50대 초반에 한 것이고, 이제는 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처음 할 때는 50대는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50대 이상이 반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어요. 몸도 예전만큼 말을 듣지 않는 게 느껴지고 말이죠. 그래서 가족과 즐기는 것을 찾고 있어요. 앞으로의 먹잇감은 아마 트라이 사이클(Tricycle:삼륜 오토바이)가 아닐까 싶어요. 아내와도 즐길 수 있고 말이죠. 매의 눈으로 1~2년 정도 더 지켜볼 것입니다.”
- 2015-01-1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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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홀로 서서 함께 가자”
- 서울 강남구 동부금융센터빌딩,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100세 시대’를 말하는 전 부총리이자 현 SA(Senior Achievement) 대표인 강경식 대표의 눈빛은 노련함과 친절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대화 내 상식을 파괴하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려는 자유로운 사고가 그의 넉넉한 아우라가 되어 빛났다. 그가 제창한 SA는 시니어들의 성공적 노후를 위해 마련된 사회운동으로,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자유롭고도 다양한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다. 100세시대 참여마당, SA를 창립하게 된 배경과 시니어들의 등대로 자리하는 그의 존재감을 확인해본다. 사진 장세영 기자 photothink@etoday.co.kr Q. 100세시대를 맞이하는 현재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사실 100세시대 이야기들은 많이 하는데 우리나라의 모든 시스템이나 정책에 대한 발상 자체는 옛날 ‘환갑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틀에서 100세시대를 생각한다는 점이 문제다. 소위 과거의 환갑시대 시스템은 인생을 초년, 중년, 노년의 삼분법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공부할 때가 따로 있고, 일할 때가 따로 있다는 게 아니다. 그런 구별이 없이 일생이 하나로 쭉 연결이 되면서 이 두 가지가 함께 융합된 생활을 해야 한다. 과거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94~95년도에 21세기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해서 부문별로 모아 공론사업을 벌였다. 연구하고, 추진해봤지만 그런 것들이 지나고 나니 대개 일회성으로 끝나고 지속성이 없더라. Q. SA의 시작은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1960년대 초반에는 평균수명이 50대 초반이었다. 지금은 80대 초반 정도다. 따지고 보면 30년 정도가 길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 실제로 과거보다 늘어난 수명 연장의 혜택을 받아 현실을 살아가는 노인들이 있는데 그들에 맞춘 시스템이 필요하다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을 한번 모아봐야 겠다 해서 1년 반 전부터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한 만 명 정도 모아서 대대적으로 하려 했으나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일단 시작했다. 차차 1주년, 2주년 행사를 하며 늘려갈 계획이다. 나는 2002년부터 아이들에게 경제교육을 하고 있다. 386들이 집권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어릴 적부터 시장경제교육 을시켜야겠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뉴욕에서 JA(Junior Achievement)를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경제 교육을 하는 매뉴얼이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JA 코리아를 만들었다. 당시 그렇게 ‘청소년의 성공이 우리 모두의 성공이다’라고 외쳤던 ‘주니어 어치브먼트(Junior Achievement)’를 응용하여 ‘시니어의 성공이 우리 모두의 성공이다’라는 ‘시니어 어치브먼트(Senior Achievement)’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Q. SA를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슬로건이라면?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다. “홀로서기, 그리고 함께 가자.” 각자가 자기 인생을 홀로 선다. 이제는 예전 대가족제 시대처럼 자식들한테 효도 받을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얼마 안 있으면 은퇴 노인 한 명당 일하는 인구는 둘도 안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결국은 ‘Alone!’ 각자 자기 인생을 홀로서기 해야 한다. 투게더는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사는 사회를 말한다. 오근재 전 홍익대교수가 쓴 이라는 책은 우리나라의 퇴직한 사람들이 마치 효용을 다한 쓰레기처럼 퇴적된 공간에 머문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년퇴직한 시니어는 지식과 경험을 고루 갖춘 우리 사회의 엄청난 리소스다. 그런 리소스를 활용하지 못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손해다. 이러한 인적자원을 활용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도움 되고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 자원을 어디에 투입해야 생산성을 발휘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Q. 구체적으로 실행하고자 하는 활동이라면 무엇이 있는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여러 가지 활동 중 하나가 있다. 같은 아파트 사는 시니어하고 같은 아파트 사는 아이하고 함께 베란다에 상자 등을 놓고 농작물을 심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본인과 아이에게 정서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농작물을 심고 관리하는 것은 시간도 할애해야 하고 손이 많이 간다. 이런 일을 시간이 비는 시니어들이 함께 하면 좋지 않겠나 하는 거다. 지역사회 발전에도 도움 되고, 자원으로서 은퇴 시니어들도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하게 되고, 이런 것이 ‘투게더’다. 이 활동을 실행한 날 참여한 사람이 250명 정도 있었는데, 다들 취지는 좋다고 한다. 그리고 이걸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이냐 하는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우리는 이익 단체가 아니다. 나는 SA에 대해서 보통 생각하는 단체의 콘셉트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다. 사실 SA에 모인 사람들 중 상당수도 무언가를 내걸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생각을 바꾸는 데도 오래 걸렸다. 1968년에 만들어진 해외의 어떤 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4살부터 19살까지 학년 구분이 없이 다닌다. 교과서, 커리큘럼, 교실도 없다. 전부 앉아서 논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친구에게서도 배울 수 있고 선배나 후배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 하고 싶은 것을 게시판에 적어내면 아이들이 사인을 해서 함께 클래스를 만들고, 아이들 한 표, 선생님도 한 표, 교장도 한 표 이런 식으로 규율도 만들고 한다. 짜여진 틀 대신 자기 하고 싶은 것에 대해 파고들 수 있어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에도 잘 간다. 그야말로 행복한 생을 사는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은 살아갈 때 문제가 생기면 엄마부터 찾는데, 그 아이들은 문제해결능력을 스스로 키웠다. 교육이라는 것은 지식을 전수 받는 것인데, 요즘은 지식을 얻기 위해선 웹서핑만 하면 가능한 시대다. 그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발적으로 찾아 몰입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해야 한다. SA도 똑같은 것이다. 회원들 각자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함께 여행도 가고, 국내 탐방도 가고,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하면 그것도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하고. 나는 성과가 천천히 나오더라도 계속 갈 생각이다. ‘Slow but Steady’. Q. SA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스마트폰 번호와 자기 이름만 있으면 가입이 된다. 이메일 주소는 옵션이다. 전화번호는 있어야 그래도 소통이 되니까. 그 정도의 최소한의 소통 창구만 있으면 된다. 다른 무엇도 필요치 않다. 우리는 주로 문자로 소통한다. NSI(국가경영전략연구원) 사이트를 빌려 쓰는데, 홈페이지는 따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나중에 독자적으로 운영될 정도가 되면 사단법인 같은 구조는 복잡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로 운영하고자 하는데 현재 고민 중이다. NPO와 같은 형태의 단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할수 있겠다. Q. SA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미국에는 연령제한금지법이 있다. 우리나라도 연령제한금지법을 만들고자 한다. 활동하고 싶은 사람에게 제도적으로 장애가 되는 것은 없어야 한다. 소위 평생 경력으로 사는 데 방해되는 요소를 차단하자는 의미다. ‘돈 달라고 안 한다. 취직시켜달라고 안 한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텐데 못하게 막지는 말아라’는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 사회이고 시장경제 사회다. 이런 데에 관심이 있고 참여 가능한 사람만 모아서가고자 한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다 설득하고 이끌어 갈 수는 없다. 그러니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 다. 단, 무언가를 숨기거나 패거리를 만들진 않는다. 열려 있다. 전화번호만 있으면. 그래서 ‘참여마당’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강압적으로, 동기 없이 참여만을 강요하는 단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는 오는 사람 안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 방식이다. 기존과는 다른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선은 익숙해지게 하는 것 자체가 목표다. 그런 방침이 받아들여지는 것 자체가 내가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다 흥미를 보이고 인연이 되면 이야기를 해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언론에 공개된 오비들도 일부 소식지에 알리는 정도다. 입소문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SA를 통해서 여러 가지 활동이 있을 수 있다. 함께 북카페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떠한 부조리에 대해 사진을 찍어 신고하는 활동을할 수도 있는 것이고, 동네에 독거노인들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이들을 돌보고 약간의 돈을 줄 수도 있고. 이렇게 하면 공무원을 채용하는 것보다 큰 부담 없이 사회에 필요한 일들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도움이 될 만한 걸 모아서 SA뉴스 이런 식으로 해서 몇 번 발행했다. 아직까지는 정보 위주였지만 앞으로는 활동 위주의 뉴스가 될 것이다. 그들의 활동을 알리고 그걸 보고 관심 있는 분들이 신청을 하는 것이다. 웹진도 활용할 계획이다. 운영 시스템은 준비돼 있으나 무엇이 올라 오느냐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 전달하고 쌍방향식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 Q. 삶의 성공 기준은 무엇인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한 지도 환갑이다. 동창들끼리 고졸 환갑잔치를 하려 한다. 내가 문집을 내면 어떠냐고 제안했는데 ‘고등학교 때의 강경식’에게 ‘지금의 강경식’이 편지를 쓰자는 콘셉트였다. 그걸 나중에 아이들에게 주면 좋지 않겠나 했는데, 반대가 심해 채택은 되지 않았다. 이런 것이 어찌 보면 과거로의 복귀다. 인생이라는 것은 한 번 살지 두 번 못 사니까 그렇게라도 복귀해보자 하는 것인데, 다들 복귀하기 싫단다.(웃음) 그 친구들이 봤을 땐 내가 인생을 다 이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있다. 우리 살 때는 가난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생각을 못 했다. 선택의 기준이 좁았다. 요새 아이들도 그런 좁은 선택의 기준을 강요받는 게 안타깝다. Q. 후배 시니어들에게 던지는 화두라면? 내가 골프를 가끔 치는데, 스코어를 안 본다. 잘 치고 기분 좋은 것만 기억한다. 애써 나쁜 것을 뭐 하러 알려고 하나.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을 되풀이하지 않는 선에서 끝내고 그 기억은 털어버린다. 그리고 사람마다 취향도, 롤모델도 다르다. 그러니 자신의 고정관념을 덮어씌우는 것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 나도 누군가 조언을 구할 때 그 사람이 아주 잘못된 길로 갔을 때만 지적하는 정도다. 그 사람의 선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말을 해줄 수도 없고, 그 사람 자신도 어떠한 선택을 했다고 후회할 수도 없는 법이다.
- 2015-01-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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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ER STORY-④] 불운이 앗아간 10년, 뜨거운 가슴으로 찾다
- 금융권 생활 20년, 돈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는 사람이 있다. 퇴직 후 10년, 불운의 연속으로 실패에 쓴 맛을 본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NGO단체 (사)러브 월드에서 삶의 보람을 찾고 있는 박근배 사무국장이다. 그는 자신을 한때 ‘잘 나갔던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표했했다. 그러나 전혀 거만하거나 거북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본 경험도, 바닥에서 헤메던 경험도 있던 사람의 여유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은행연합회에서의 20년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후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시절이 내 삶에서 가장 화려한 날이라고 표현 할 뿐이다. ◇ 잃어버린 10년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박씨의 퇴직 후 10년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지난 10년 간 3차례의 사업에서 실패해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낸 탓이다. 2003년 은행연합회에서 나온 후 그가 도전한 첫 사업은 골프연습장. 골프마니아다운 야심찬 행보였다. 그러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골프 프로 티칭 자격증까지 보유하고 있었지만, 경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골프 연습장은 얼마 되지 않아 폐업을 하게 된다. 씁쓸한 결과였다. 가장 운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두 번째 사업이다. 2007년 그가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수고기 수입 사업이었다. 소고기 수입 회사의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촛불시위가 확산됐다. 박씨에게는 악재였다. 대한민국 사람 그 누구도 수입 소고기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없었다. 2007년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나가던 박씨의 얼굴에 허탈한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에 기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태국 골프투어회사 경영은 불운의 마침표였다. 그가 태국에서 골프투어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태국은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시위는 과열양상을 보이나 싶더니 이윽고 유혈사태까지 벌어져 한국발 태국행 비행기는 파리만 날리게 됐다. 태국을 찾던 관광객들은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으로 발길을 돌렸다. 부푼 꿈을 안고 찾은 태국도 그에게 재기의 발판이 되지는 못했다. 그야말로 잃어버린 10년이었다. 은행연합회에 재직하면서 모은 돈도 모두 날려버렸다.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들이었다. 오직 신앙에 의존해 극복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수년이 흘렀다. 그때는 절망의 기운으로 몸서리쳤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값진 경험이 됐다. “‘아 이게 하느님의 뜻인가’하고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죠. 나이가 들고 이 세상을 뜨면 가지고 가지도 못할 돈. 이것을 쫓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 주는 것? 얻는 것이 더 많은 NGO 활동 박씨에게 3번의 쓰디쓴 실패 경험은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들어줬다. 그중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자문도 있었다. 그 심오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지난해 필리핀에서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찾은 그곳의 여름은 태풍 하이옌 피해로 아수라장이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얽히고설킨 집단 이재민 수용소는 처참함 그 자체였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고 다짐했다. 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미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박씨는 다짐을 실천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그 활동 범위 또한 국내·외를 넘나들었다. 국내에서도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족들이 한국어 교육과 건강 검진까지 받을 수 있는 토털 케어 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자원 봉사의 현장에서 봉사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이 활기를 찾고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볼 때 덩달아서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NGO 활동의 매력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박씨가 NGO 활동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베푸는 것만으로 보람을 느꼈다면 결코 이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봉사와 온정이 전해지는 현장에서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것. 살아가는 힘과 원동력을 얻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박씨가 손을 놓지 않는 이유다. 자신의 힘을 보태고자 날아간 필리핀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보탠 힘보다, 더 많은 힘을 얻어 돌아왔다고 말한다. “동남아 봉사활동을 가면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항상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 감사할 줄 알았던 저였는데 그것이 행복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남아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과 넉넉하진 않아도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모습. 이것을 보면서 진짜 행복함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배우게 됐습니다.” ◇ 영혼이 즐거워야 인생이 행복하죠 “제가 러브 월드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저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는 거예요. 이것으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저뿐만이 아니라는 것이죠. 또 나로 인해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은 후에는 영혼이 즐거워집니다. 이게 바로 행복한 인생인가 봅니다.” 박씨는 행복은 영혼의 즐거움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돈은 이제 전혀 보람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적어도 금융권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쌓여가는 통장의 잔액이 보람의 척도이자 행복의 척도였지만 말이다. 그가 영혼을 즐겁게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NGO 활동. 삶의 보람을 찾은 덕분인지 몇 년 전까지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인 사람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밝고 패기가 넘친다. 그가 보람 있는 인생 후반전을 살고자 하는 신중년들에게 하는 조언이 있다. 첫째,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 동안 가정을 위해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보람된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그에게는 NGO 활동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다. 둘째, 예전의 지위나 기억들을 내려놓는 것이다. 퇴직 이 후는 그야말로 인생 후반전이자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잘 나갔던’ 때를 기억하며 상대방이 그때의 지위로 생각해주고, 행동해 주길 바란다면 보람 있는 일을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거란 것이다. 인생 후반전을 행복하게 살고 있는 박씨. 그가 러브월드 활동을 하면서 생긴 철학이 있다. 항상 가슴과 머리에 새겨 놓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죽을 때 가져가는 것은 오로지 육신뿐. 보람 있는 삶을 살아 멋진 이름 남겨놓고 가자.’
- 2014-11-2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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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shion is Passion 런웨이에 선 시니어
- 인생2막, 시니어들의 모델 진출이 활성화되고 있다. 광고에서 런웨이까지 시니어 모델들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고 그 수요도 늘어나는 시점이다. 꽃중년들이 일어날 시기가 찾아왔다. 물론 늦지 않았다. 주목해야 할 교육과정과 선발대회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시니어모델의 시작 ‘뉴시니어 라이프’ 2007년에 시니어 모델사업을 시작해 교육과정이나 인프라가 상당한 곳이다. 서울시설공단과 함께하는 청계천 패션쇼를 비롯해 독일, 연변 등 해외무대에서도 나름 지명도가 높다. 강남캠프, 일산캠프, 성북캠프 총 3개의 교육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3~4년차 수강생들이 많이 포진된 것이 특징이다. ‘행복한 패션기업’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구하주 디자이너가 설립한 이곳은 교육, 공연, 모델, 제품 사업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시니어 관련사업의 연령대를 낮추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60대 기준에서 50대로, 베이비부머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잡은 것. 뉴시니어라이프 구다원 국장은 “통상 시니어나 실버의 구분이 없이 관련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신중년세대들이 완벽히 적응할 만한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편하고 하기 쉬운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완성도를 높이는 교 육을 만들어 가는 데 주력할 시기”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관련 교육기관 중에 가장 역사가 오래된 만큼 모델 인프라나 활동 영역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시니어 모델 전문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다. 뉴시니어라이프에는 경력 3년차 3인방 모델이 유명하다. 이들은 50대, 60대, 70대로 구성됐으며 나이차와 관계없이 친구처럼 편한 모습을 보였다. 맏언니 이오영(70)씨는 지난 세월 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외교관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퇴직으로 한국에 다시 정착하게 되면서 느낀 외로움을 모델 워킹을 통해 극복했다고 한다. “손주들이 좋아해서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모델 워킹을 교육받으며 새로운 삶을 얻는 것 같다”는 그녀의 미소에서 넉넉함이 느껴졌다. 특히 “그동안 관절염으로 고생했는데 자세 교정을 통해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평범한 전업주부로 살아온 권혜영(62)씨는 모델수업을 통해 성격이 달라졌다. “그동안 자녀들 뒷바라지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선천적으로 내성적인 성향을 가졌었다”는 그녀는 “모델 워킹을 통해 활기찬 모습으로 바뀌어 놀랍다”고 언급했다.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무대의 긴장감이 있다”며 “이런 긴장감을 통해 에너지와 용기를 잃지 않아 신난다”라고 말했다. 김경순(54)씨는 3년 전 수강생으로 들어왔지만 이제는 보조강사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체형관리와 건강 관리, 순식간에 찾아오는 갱년기 우울증에 이만한 프로그램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보조강사로 도움을 줄 수 있어 그 행복은 배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큰언니와는 나이차가 많이 나지만 같은 관심사로 친구가 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녀는 지난 30여 년간 골프용품 사업에 매진하며 꾸준한 마라톤으로 몸매 관리를 해왔다고 한다. 뉴시니어라이프 패션쇼 교육은 기초, 전문, 워킹클래스 총 3개 파트로 나눠진다. 기초과정은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4개월(주1회 3시간)간 진행되는데 기본교육, 패션쇼 준비, 패션쇼 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수료 후에는 시니어패션쇼 공연활동에 참가 할 수 있다. 전문과정은 기초과정을 이수한 수료자를 대상으로 6주(주1회 5시간)동안 전문모델교육을 받게 된다. 전문과정을 마치면 본격적으로 시니어모델 활동(광고/사진/패션/미디어/이벤트) 및 시니어모델 워킹강사로 활동할 기회가 주어진다. 워킹클래스 역시 기초과정을 이수한 자를 대상으로 매주(주1회 3시간) 수업이 진행되며 준비훈련을 통해 시니어패션쇼에 올라서게 된다. 재충전의 다크호스 ‘강남시니어플라자(시니어모델워킹)’ “강남시니어플라자의 모델 워킹반이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나고 있다” 이 한마디를 듣고 찾아가봤다. 교육은 올해 시작돼 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열정 가득한 수업이 매력적인 곳이다. 강남권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시니어들도 주목하고 있어 분기별로 진행되는 수강신청을 빠르게 해야 한다. 수강생들에게 무대의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강사 채용에 신경을 쓴 흔적도 보인다. 지난 10년간 패션모델로 일했던 모델 워킹반 이나영 강사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모델 워킹수업은 현 시대가 요구하는 여러 측면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현재 대학 강단에 서고 차밍스쿨을 운영하고 있지만 시니어 모델 교육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그녀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나라 시니어들의 건강, 자신감 그리고 열정을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우선적으로 소통을 통해 새로움 아름다움을 찾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수강생들의 만족도는 어떠할까. 우선 모델 워킹반 수강생 대표를 맡고 있는 홍의정(66)씨는 “나이가 들면 걸음걸이로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여기서 배운 올바른 자세 교정으로 뒷모습은 아직도 아가씨 같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모델워킹을 하면서 10년은 젊어 진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생기가 돌았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워킹이나 모델 활동에 관심이 많았지만 잠시 꿈을 포기하고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인으로부터 모델 워킹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수강신청을 한 후 본격적으로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김쏙니(64)씨는 “40년간 강남에 거주하며 강남시니어들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모델워킹반의 시작과 함께해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모델 워킹반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돼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꾸준한 활동을 통해 긍정적인 자세로 나이도 몸도 늙지 않는 건강관리에 매진하겠다”며 건강과 미모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강윤순(64)씨는 “처음에는 습관이 되지 않아 어색했지만, 수업을 통해 건강한 습관으로 자리 잡게 되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외부 시니어패션쇼에도 용기내서 참여하니 보람차 고 톱 모델 못지않게 나도 멋진 여성이 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시니어 모델 워킹 클래스는 기초와 프로 2단계로 나눠지는데 각각 6개월씩 주1회 수업이 진행된다. 기초과정의 경우 초반 3개월은 자세교정과 기본 워킹을 중심으로 모델로서 가져야할 태도에 대해 교육받고 후반3개월은T자형무대,원형무대등모델워킹실습을받게된다. 프로과정은기초과정 수강한 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며 본격적으로 패션쇼에 참가하기 위한 전문적인 교육으로 구성된 상태다. 미즈실버코리아 2014 올해 시니어모델을 위한 유일한 선발대회는 미즈실버코리아뿐이다. 시장이 좁기 때문에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 참가대상은 50세 이상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능하지만 태생적인 아름다움이나 시간을 거스르는 안티에이징이 관건은 아니다. 주최측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속에서 묻어나오는 경험과 연륜이 몸에서 절로 발현되는 아름다움을 미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심사 역시 수상자의 삶의 역사, 건강,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 사회봉사에 가장 큰 방점을 두고 있다. 지난 2002년 전주의 한 복지가가 소외된 노년층의 꿈과 미소를 되찾아주기 위해 만든 순수한 목적의 이벤트성 대회로 시작했지만 사단법인 세종문화원과 서울공연 예술센터가 주최하고 보건복지부와 문화예술계의 후원을 받는 큰 규모의 행사로 변모하게 됐다. 대회수상자들에게는 다양한 대외활동 기회가 주어진다. 우선적으로 수상자들은 한류 ‘뷰티 퀸’으로 데뷔하며 방송 MC와 쇼호스트, 연기 등의 분야로 나갈 수 있다. 시니어 뷰티 리더로서 사회봉사활동과 주부 모델, 미즈 모델, 실버 모델로 활동하며 각 단체 및 업체들과 연관된 평생 교육프로그램에도 지도자로서 발돋움할 수도 있다. “시니어 모델이 된다는 생각으로 무대에서 연습을 해보니 가슴이 벅찰 정도로 희열이 느껴진다. 이제는 프로 모델로 거듭나고 싶다.” 미즈실버코리아 참가자 김지영 (61)씨는 이 같은 포부를 갖고 있었다. 지난 세월동안 육아용품과 화장품 사업에 인생을 바쳤던 그녀는 이번 선발대회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고자 마음먹은 것. 그간 사업적인 영역에서 힘써왔다면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모델로서 성장하고 싶다는 말이다. “탄탄한 몸매를 가꾸기 위해 틈틈이 피트니스센터를 다녔고 화장품 관련업계에 종사했던 만큼 미를 가꾸는데 남다른 소질이 있죠.” 당당한 그녀의 말투에는 내달 진행될 선발대회의 승패와 관계없이 뚜렷한 목표가 보였다. 김지영 씨는 “우선적으로 시니어 모델로서 TV광고나 지면광고, 또 패션쇼 등에 참여하고 싶다”며 “저를 써주신다면 그에 합당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녀는 “모델 활동과 함께 제 인생의 장기적인 목표는 우리 시니어들을 위해 운동이나 화장법, 패션 등을 가르치는 강사로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2014-11-2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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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찬의 골프이야기⑥] 즐겁게 플레이 하는 방법 "과감히 실수해라, 화내지 마라, 마구 웃어라"
- “언니, 어떻게 칠까?” 알면서 물어보는 장난기(氣) 많은 김농담 씨의 말이다. 캐디가 걸작이다. “아~네, 티 꽂고 치세요.” 캐디의 농담에 골퍼가 질 리가 없다. 한 두 번 장사한 것도 아니고. 바로 나가는 질문. “어디보고 치지?” 착한 캐디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냥 볼보고 치세요”한다. 동반자들이 난리다. “언니가 이해해 줘라. ‘100돌이’라서 그래.” 김 씨는 훤칠한 키에 힘이 장사다. 티샷을 했는데 ㅎㅎ 쪼로. 뒤땅을 쳐서 파인 잔디가 더 날아갔다. 동반자들은 웃음바다. 캐디가 더 신바람이 났다. 그런데 걱정이 태산이다. “오늘은 이 손님을 어떻게 모시나?”하고. 두 번째 등장한 최장타 씨의 멘트가 신사다. "언니, 나는 캐디를 위해 골프를 하는 거야. 결코 나를 위해 골프를 하지 않지. 절대로” 어떤 의미일까. 캐디가 이 말을 들으면 그날 캐디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이다. 특히 첫 홀에서 티샷을 하기 전에 ‘이런 주문(呪文) 같은’ 말을 건네 보라. 아마도 그날 캐디는 기분이 짱이고 아군이 될 터. 이 친구는 ‘립싱크’를 제대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이버를 맛깔나게 갈겼다. “허걱~”. 300야드는 날아간 것 같다. 그것도 똑바로. 캐디가 ‘좋아라’ 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른다. 세 번째 등장한 이단타 씨는 말이 없다. 그런데 티샷 전에 ‘루틴’이 길다. 티를 꽂고 연습스윙을 다섯 번. 뒤로 가서 방향을 보고 나서 다시 연습스윙. 그리고 어드레스. 클럽 헤드를 볼 뒤의 잔디에 놓은 뒤 3분간 기도를 한다. 캐디는 “헐~”소리가 저절로 난다. 티샷은 그런대로 잘 갔다. 마지막 골퍼는 안조커 씨다. 동반자들에게 “언니 앞에서는 ‘질러’라는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캐디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질러는 노래방 기기 같은데. 다행이다. 캐디는 속뜻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남자는 없고 여자만 있는 것을. 그리고는 캐디에게 따귀를 맞은 이야기를 한다. 클럽마다 번호가 있다. 이 때문에 캐디는 골퍼에게 “몇 번 드릴까요?”하고 물어본다. 귀에 대고 “한번만 주지”했다가 캐디에게 혼났다. 자기를 뭘로 보냐며. 어라, 돌아온 답이 신기하다. “여러 번 달라면 몰라도.” 그냥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자 한 조크니 혹시 이글을 캐디가 본다면 오해가 없기를. 이렇게 해서 티샷을 마치고 4명의 전사들과 캐디는 라운드를 시작했다. 즐거운 일은 코스에서 늘 일어나게 마련. 결론부터 짓고 가자. 4명은 스코어가 고만 고만하다. 100타 안팎이다. 그래서 내기가 붙으면 재미가 있다. 티샷만 보면 최장타 씨가 유리하다. 그래서 티샷을 하고 나서 나머지 3명은 같은 생각을 한다. ‘핸디캡’을 받을 걸 그랬나. 여기서 핸디캡이란 조그만 내기를 할 때 타수 차이만큼 쩐(錢)을 줬다는 의미다. 하지만 세컨드 샷에 들어가면 핸디캡을 받지 않은 것 대해 전혀 후회가 없다. 속으로 “얼레, 핸디캡을 더 줄 걸 그랬나?” 하고 각자 속으로 낄낄 거리고 웃는다. 최장타 씨는 그린에 가까이 갈수록 결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 친구는 그린을 앞두고 100미터쯤에서 아이언을 여러 번 끊어 친다. KTX 타고 가다가 도착지 부근에 도달하면 완행열차처렴. 이 친구뿐 아니다. 3명도 비슷하다. 깃대를 앞에 두고 마치 볼이 깃대를 거부하듯 피해 다닌다. 뒤땅을 쳐서 볼을 1야드 정도 보낸다. 그리고 핀과 거리를 20야드 남겨두고 홀로 들어갈 볼이 벙커에 처박힌다. 어느 때는 이것도 부담스러운지(?) 토핑으로 그린을 훌쩍 넘겨 버린다. 스탠스하기가 불편한 곳으로. 그것도 아니면 나무 뒤에 볼이 숨어 버린다. 캐디가 최장타 씨에게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린을 싫어하십니까?”“ㅠㅠ. 절대로 싫어할 이유가 없지. 마음대로 안 되서 그렇지.” 장타를 날려 페어웨이 한가운데 보내 놓고 그 다음 샷을 퍽퍽 거려 보라. 아마도 뚜껑이 열리리라. 그런데 이 4명의 골퍼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그래서 캐디들이 좋아한다.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겠지만. 이것이 골프의 재미다. 돈 좀 잃었다고, 샷이 좀 망가졌다고, 퍼트가 좀 안된다고, 뒤땅 좀 쳤다고 지구가 멸망하겠는가. 5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 골프, 웃으면서 플레이해야 장수한다. 골프가 ‘브라보 마이 라이프’인 이유다. 글 안성찬 골프대기자/ 골프문화칼럼니스트
- 2014-09-0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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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찬의 포토레슨 ⑤]트러블 샷은 탈출이 우선이다
- 볼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때문에 스코어를 줄이려면 벙커, 러프, 해저드, 아웃 오브 바운스(OB) 등으로 날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18홀을 돌다 보면 언덕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잡목 사이에 들어가기도 한다. 특히 요즘처럼 잔디가 길면 샷이 쉽지가 않다. 스윙을 하기 어려운 곳에 빠지면 무조건 ‘탈출’에 목적을 둔다. 그런데 중하급자 아마추어 골퍼들은 목표방향으로 무조건 멀리 보내려고만 한다. 때로 볼은 앞으로 보내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뒤로도 보낼 줄 알아야 한다. 볼이 트러블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잘 빠져 나갈까 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볼이 놓여 있는 여건이 샷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결과를 미리 예측해 본다. 스윙을 가급적 작게 하고,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볼만 맞추는 데 집중하는 것이 위험지역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최상의 전략이다. 글 안성찬 골프대기자/ 골프문화칼럼니스트
- 2014-09-04 0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