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여름밤, 진하해수욕장에서의 남녀 신입사원들을 위한 캠프파이어는 현란했다. 어둠 속에서 익명성이 확보된 100여 명의 격렬한 댄스파티는 젊음의 발산 그 자체였다. 그중 열정적이고 현란하게 춤을 추어대는 한 여직원의 실루엣이 너무 멋있어 끝까지 따라가서 얼굴을 확인해보니 순박하고 어려 보이기까지 했다. 익명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은퇴하면 고생은 끝나고 안락한 행복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인생 100세 시대를 어떻게 하면 더 보람 있게 살 수 있을까?’가 문제였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 한구석에 두고 실현하지 못한 글쓰기에 대한 꿈이 되살아났다. ‘문학소년의 꿈’이었다.
은퇴하자마자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이 관악 기자학교였다. 기사작성의
문학모임 단톡방에 올라온 나훈아 쇼를 보니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야성미 넘치는 그의 모습이 반갑다. 그는 완전 카리스마 쩌는 남자이다.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그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클리프 리차드는 70년대 미국의 팝가수이다. 그가 우리나라 이대 강당에서 공연할 때는 흥분한 이대생
미주 한인 사회에서 지식인의 멘토로 불렸던 노부부가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로 UC데이비스 의과대학에서 35년간 교수로 근무했던 故 김익창 박사와, 데이비스 고등학교에서 25년간 교사로 일했던 그레이스 김(한국명 전경자·86)씨다.
부부는 평생 소외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힘썼고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웠다. 53년을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최고의
아이디어 닥터, 트렌드 몬스터, 강연여행가, 브랜드 전문가…. 이장우 브랜드 마케팅 그룹 회장(62)의 여러 별칭이다.
이 별칭들엔 이장우 회장의 개인 브랜드 혁신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현재 전통제조업에서 IT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의 기업 7곳에서 고정·비고정의 급여를 받는다. 1년에 최소한 5~6회는 미래 유망 트렌드를 찾아보
한국영화에서 신성일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뺄 수 있을까?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10.12~ 21)에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독보적 아이콘, 신성일의 회고전이 ‘한국영화 회고전’을 통해 선보였다. , , , 등 신성일이 주인공을 맡은 500여 편의 영화 중 8편을 엄선해 영화제 기간 동안 상영했다. 최근 폐암 3기 판정을 받아 항암 치료 중인 신성일
일본문화를 논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이 아닐까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베네딕트는 한 번도 일본을 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전후 일본을 다스리게 된 미국 정부의 의뢰로 다양한 책과 문서를 분석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 책이 일본을 이해하는 데 고전이 된 것은 일본 문화의 핵심
평범한 문학관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에 위치한 이 작은 문학관은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안정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는 문학관과는 완전히 다르다. 소설가 이동희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농민문학기념관은 그의 소장품들과 사유물 그리고 농민문학에 관한 자료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번듯한 입구나 잘 차려 입은 안내인은 없지만 농민문학이 표
어느 날 인생 이모작을 잘 준비했다는 지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의견의 일치를 본 부분이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엔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또 죽을 때까지 공부를 멈추면 안 된다는 것. 하기 싫은 일이나 시험을 위해 하던 공부에서 해방되었으니 허락된 시간을 누리자는 생각이었다.
인문학 책을 함께 읽고 나눌
몇 해 전 소설 을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개인적으로 소설가 김훈을 좋아한다. 사물의 본질을 캐 들어가는 생각의 집요함에 몸서리가 나지만 그의 언어는 절제되고 담백하여 울림이 크다. 때로 그의 언어가 고답적이고 사변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산문집 을 읽으며 그 생각이 바뀌었다. 본질적으로 그의 언어는 머리가 아닌 몸의 언어다. 그가 ‘길’에 천착하는 이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