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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투어] Part 1-2. 김현·조동현 부부의 '특별한 부부여행 코스 5선' ① 클린턴 코스 중국여행
- 김 현 (전 KBS 연구실장, 여행연출가) 12년간 출연했던 KBS-TV 여행 프로그램 를 비롯해 여러 라디오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 매스컴의 인정을 받게 되어, ‘대한민국 부부 배낭여행가 제1호’라는 별칭까지 갖게 되었다. 이때부터 아내와 나는 늘 우리 부부에게 따라 붙는 이 별칭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해 왔다. 일단 여행지가 정해지면 주마간산에 그치지 않도록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체계적으로 여행일정을 짰다. 이번에 소개하는 2016년 추천 여행지인 「클린턴 코스 중국여행」 「일본 규슈 기차여행」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일주」 「미국 서부 LA~샌프란시스코」 「캐나다 중부 그레이하운드 여행」도 여행 기간의 10배에 해당하는 준비기간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아내와 내가 역할을 분담하여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다. 물론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도 나름대로 유익한 여행이 될 수 있으나, 남들과는 조금 차별화된 여행을 가고 싶다면 한 가지 테마를 정해 여행지를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클린턴 코스 중국여행」은 코스 제목부터 시작하여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기획한 코스로서, 현재까지 시중에 나와 있지 않은 유일한 코스인 동시에 이곳만 둘러봐도 중국을 알 수 있게끔 핵심만 뽑아놓았기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김현·조동현 부부의 '특별한 부부여행 코스' 첫 번째 - 「클린턴 코스 중국여행」 일반적으로 ‘서양’ 하면 유럽과 미국이 떠오르고, ‘동양’ 하면 역시 중국이 떠오른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있긴 해도 크기나 역사·문화·풍광 등으로 보아 중국이 동양의 대표주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은 1년을 여행해도 다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광대한 영토와 뿌리 깊은 역사, 볼거리가 많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중국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여행하느냐가 중요한데, 아내와 나는 늘 중국 여행을 좀 더 알차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러던 차에 마침 중국과 미국의 수교가 이루어졌고, 1998년 미국의 전 대통령 클린턴이 중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중국 정부가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서 미국 대통령에게 보여줄 중국을 대표 도시 5개를 선정했다. 이것이 바로 북경 - 서안 - 계림 - 소주 - 상해였다. 우리 부부도 1999년 이 코스를 그대로 밟아서 가보았다. 중국의 역사·문화·환경을 통틀어 핵심만 여행할 수 있는 코스여서 무척 만족했다. 그래서 내가 클린턴의 이름을 따 ‘클린턴 코스 중국여행’이라 명칭을 붙였다. 현재까지 시중에서 상품화된 적이 없는 코스이기도 하다. 물론 그동안 북경이나 상해 등을 비롯해 중국에 여러 번 다녀왔다. 90년 초에는 한국 여행관계자들이 중국의 33번째 성(우리나라로 치면 도)이 된 해남도에 초청받았을 때, 취재 겸 한국 단장 자격으로 5번이나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늘 중국을 다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목말라 있었는데, 이 클린턴 코스로 인해 그 갈증이 말끔히 가신 것이다. 클린턴 코스의 첫 번째 도시는 북경이다. 엄청난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볼거리 또한 굉장하다. 중국 민주화의 상징인 천안문 광장부터 시작하여 1420년~1911년 까지 중국 황제가 거주하던 자금성, 북경의 최대 번화가이자 중국의 명동으로 불리는 왕부정 거리,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서커스, 그리고 그 유명한 만리장성과 서태후의 여름 별장인 이화원까지. 두 번째 도시 서안은 중국의 한가운데 위치한 3000년 고도이자, 대표적 중국 문화를 엿볼 수 있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그 발전성과가 눈부시다. 한 농부가 발견한 병마용갱(진시황이 말년에 황릉과 함께 건설한 지하궁전의 일부로 지금까지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음)을 비롯하여 유명 서예가들의 필체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비림, 서안의 인사동으로 불리는 문서거리, 당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눈 로맨스 장소로 유명한 화청지, 중국의 첫 황제인 진시황의 능묘인 진시황릉,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수상 가무쇼, 서안의 30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섬서 역사박물관, 아시아에서 제일 큰 음악분수 쇼를 볼 수 있는 대안탑, 소수민족 회족의 전통양식을 볼 수 있는 회족거리, 서안의 명동이라 불리는 종고루 광장 등은 꼭 보아야 할 것들이다. 세 번째 도시인 계림은 중국을 대표하는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계림의 산수는 천하제일이다(桂林山水甲天下).”라는 명성을 들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카르스트 지형에 속하는 계림은 지각변동에 의해서 바다가 솟아오른 것인데, 마치 물속에 산이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배를 타고 가다 보면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 꿈속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이곳에서는 중국 각 민족의 생활풍습과 수공예를 볼 수 있는 세외도화원, 중국과 서양이 만난 이국적인 서가 재래시장, 계림관광의 하이라이트인 장예모 감독의 연출작 공연 계림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북파산, 계림 산수갑 천하제일인 이강 유람(관암~양재), 각양각색의 기이한 종유석의 세계인 관암동굴 등이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네 번째 도시인 소주는 또 다른 역사의 도시이다. 수양제에 의해 건설된 대운하가 개통되면서 항주와 더불어 ‘천상천당 지하소항(天上天堂 地下蘇杭)’이라고 불릴 정도로 번영하였다. 운하가 무척 아름답고 옛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중국의 4대 정원이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졸정원부터 동양의 피사의 탑이라 불리는 호구탑, 그리고 동양의 베니스인 소주운하에서 배를 타고 유유히 소주만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빠질 수 없는 ‘클린턴 코스’만의 매력이다. 마지막 도시인 상해. 상해는 최근 들어 놀라운 번영을 하고 있는 중국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수도 북경이 정치의 중심이자 가장 역사적이고 남성적인 북방의 도시라고 한다면, 상해는 중국 경제의 중심지인 동시에 강남의 풍치와 함께 여성스런 남방의 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북경 사람은 상해 사람을 촌놈이라 하고, 상해 사람은 자기들이 최고라고 각각 주장한다고. 원래 늪지대였던 상해는 운하로 연결된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가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뜻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경제 중심 도시답게 상해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의 상징인 동방명주 타워가 유명하고, 프랑스 조계지였던 신천지, 예원 등의 옛 거리, 그리고 1919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 까지 사용된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가보아야 할 곳이다.
- 2016-02-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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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강남스타일은 나눔, 봉사, 참여로 살아가는 것!”
- 자타가 공인하는 노인복지전문가 이호갑(李鎬甲, 59)씨는 이렇게 자기를 소개한다. “10년 삼성의료원 짓고, 10년 삼성 노블 카운티 짓고, 10년 운영했습니다.” 간단하지만 한 문장에 30년 노하우가 들어 있다. 그런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선택한 곳은 또 다른 노인복지의 실험장이 되는 강남시니어플라자다. 30여 년 노인복지전문가의 손길이 닿은 강남시니어플라자는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이호갑 관장과 강남시니어플라자의 인연은 7년 전, 강남구가 노인복지시설 건립을 위해 자문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관장은 삼성생명 공익재단 상무로 재직하고 있었다. “강남구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남은 모든 게 달라야 할 것이다. 다른 지역 노인복지관이 경로잔치를 열어주는 등 혜택만 주는 서비스를 해왔다면, 강남은 노인 나름대로 재능을 펼치고 활동적인 노후를 위해 즐길 수 있는 개념으로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자문역할을 해줬던 시설이 이 관장이 몸담은 강남시니어플라자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에 오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삼성생명 공익재단 상무 자리에서 물러나고 6개월 뒤인 2014년 8월 14일. 강남시니어플라자 관장으로 첫 출근했다. “처음 왔을 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제일 큰 문제가 타성에 빠져 있는 운영방식이었습니다.” 강남시니어플라자의 설립 목적은 노인이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활동적인 노후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인데 와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운영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출근 첫날 이 관장 눈에 보였던 것은 융통성 없는 사무실 배치였다고. “조그만 건물에 사무실이 세 개였습니다. 첫날 오자마자 벽을 부숴 사무실을 트고 세 개였던 사무실을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소통이 빨라졌죠. 회원들에게도 눈에 보이는 변화를 드린 겁니다.” “왜 난 자꾸 대기 번호에서 밀리는 거요?” 이 관장의 파격적인 행보는 부임 일주일 뒤에도 이어졌다. 바로 강남시니어플라자 회원들과 가진 간담회였다. “이곳에서는 회원이 즉 고객인데 고객의 소리를 종합적으로 들어본 적이 없더군요. 180개 강좌의 반장과 총무 등 60여 명이 모여 그간 필요했던 것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물리적으로 안 되는 것 빼고 웬만한 의견은 수용했다. 간담회 이후 이 관장의 집무실도 회원과 소통을 위해 개방했다. “회원들 얘기를 들어보니 수업 등록 대기자 관리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언젠가 다른 지역에서 온 노인이 ‘하모니카가 배우고 싶은데 세 번이나 밀려서 배우지 못했다’면서 삿대질을 하고 막 화를내시더라고요. 강남구민은 정회원, 다른 지역 구민은 준회원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비율이 각각 85퍼센트와 15퍼센트입니다. 정회원 우선으로 강좌를 들을 수 있게 하고 대기자 관리를 제대로 안 하다 보니 강좌 등록을 몇 번 해도 수강이 어려웠던 거죠. 그래서 대기자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비좁은 공간에 이용할 수 있는 교실이 부족한 것도 큰 문제였다. 생각보다 이 관장이 제시한 방법은 간단했다. 강남시니어플라자 주변 카페나 기타 공간들을 찾아 비어 있는 시간에 시니어들을 위한 교실로 이용했다. “회원들의 소리를 최대한으로 반영해 드렸어요. 그랬더니 회원들도 ‘뭔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구나’ 생각하시더라고요.” 두바이에서 찾아낸 ‘강남스타일 에이징’ 30여 년 노인복지전문가로 살아온 이호갑 관장. 삼성을 나온 이후에도 노인복지 관련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강남시니어플라자 취임 한 달 뒤인 2014년 9월, 아랍 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열린 메디컬시티 국제상업학술대회에 초대돼 ‘고령화 현상과 한국의 사례, 삼성 노블 카운티’에 관한 연설을 하게 됐다. “관장 취임 전에 초청됐고 발표자여서 꼭 가야 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40분 동안 영어로 발표했습니다. 영어가 늘 쓰는 언어도 아니고 말입니다. 발표하고 나서 바로 질문받기 전에 무대에서 나오려는데 한 사람이 ‘I have a question.(질문 있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터번을 두른 아랍사람이었다. 당황도 잠시, 그는 한국말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한 뒤 질문을 이어나갔다. “한국의 장기요양보험에 관해 물어봐서 답을 해줬더니, ‘감사합니다’라 말하고 앉는 겁니다.” 한국어로 질문했던 사람은 알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병원장이었다. 그는 한국인 수간호사 두 명과 함께 일하는 것도 모자라, 아침마다 한국어로 회의한다고 했다. “그때 나를 소개할 때 ‘나는 강남시니어플라자라는 노인시설 CEO고, 강남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는 강남에 살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학술대회 끝나고 나왔더니 나를 다 알아봐요. ‘강남 스타일’이라며 말입니다. ‘강남 스타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문득 ‘강남시니어플라자는 노인종합복지관의 선두주자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념을 ‘강남스타일 에이징’이라 부르고 이 안에는 ‘나눔, 봉사, 참여’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정의를 내린 것이다. 쉽게 말해 강남스타일로 늙어가려면 나누고, 봉사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강남시니어플라자에는 사회에서 득을 크게 본 사람들이 많아요. 자기가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었든지 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거죠. 나눔을 실천해야 그게 진정한 행복입니다.” ‘강남스타일 에이징’을 확립하고 강남시니어플라자 홍보를 시작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최근에 은퇴한 60대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복지관은 7, 80대들이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 60대 은퇴자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강남시니어플라자가 그 소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과 사랑, 사랑과 일 이 관장은 ‘관장님과 함께하는 문화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매월 회원들과 가깝게 만나고 있다. “지난번에는 회원 7명과 함께 영화 을 봤습니다. 영화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첫마디가 ‘Love and work, work and love. That's all there is’입니다. 은퇴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일입니다.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고, 여행하고, 자원봉사 다니는 겁니다. ‘일’은 활동을 하는 거죠. 이렇게 시니어들의 노후에는 그런 사랑과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영화 이 보여주더군요. 그게 바로 나눔, 봉사, 참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관장은 강남스타일에이징에 걸맞은 사업을 펼치기 위해 작년 3월 ‘강남스타일시니어봉사단’을 만들었다. “회원 수가 1만 명이 넘는데 봉사하는 인원은 100명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강남스타일시니어봉사단’입니다. 그리고 버스 두 대를 대여해서 음성 꽃동네 견학을 갔습니다. ‘자원봉사를 진짜 이런 마음에서 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음성 꽃동네 견학 이후 봉사단 배가운동을 펼쳐 지금은 봉사단원이 300명에 달한다. 또한 자원봉사단 규모를 1004명까지 늘리자는 의미에서 ‘1004 프로젝트’도 펼치고 있다. “물론 별 관심 없는 분들도 있고 관장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루아침에 될 문제가 아니고 서서히 의식을 바꿔드리는 작업을 하는 겁니다. 시니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확실한 역할을 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현재 봉사단을 300명으로 늘려놓기는 했는데 봉사할 곳을 개발해야 한다. 이곳 강좌에서 배운 능력으로 다른 곳에서 가르치는 것 또한 봉사다. 봉사의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요즘 큰 관심사라고 이 관장은 말했다. 롤모델은 언제나 아버지, 아버지 이 관장 주위에는 이렇게 노후에도 자원봉사와 꾸준한 사회 참여로 건강한 삶을 사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아버지다. 이 관장의 아버지 이형재(李衡在, 90)씨는 초등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은퇴한 이후에도 꾸준히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자원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교사 시절 좋아하던 술도 끊고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관장은 아버지께 용돈을 드려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들이 삼성 상무였는데 말이다. “언젠가 서울역 근처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데 방송인 송해씨와 아버지가 스쳐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도 BMW(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삶, B 버스, M 지하철, W 걷기)를 실천하며 사시잖아요. 매일 일하고 자원봉사하니까 90세가 되어도 정정하다는 걸 새삼 알았습니다. 노인이 돼서 일하고 자원봉사하는 게 건강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구나, 집에서 느끼는 거죠. 물론 내가 노인복지에 관한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 산 모델이고 그렇게 살아야겠다 생각합니다.” 이 관장은 강남시니어플라자 관장 자리에서 내려와서도 노인복지와 실버타운 전문가로 일하고 싶다고 한다. 실버타운 건설과 운영에 관한 전문 서적을 집필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분야가 노인복지 분야가 아닌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노인복지현장을 누빌 이호갑 관장의 미래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드리는 바이다.
- 2016-02-1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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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낙 그림 이야기] 파리지앵, 조선 분청자기서 피카소를 보다
- 2011년, 삼성 미술관 리움이 주관한 조선시대 분청사기(粉靑沙器)전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렸다. 전시된 59점의 분청사기가 뉴욕은 물론 전 세계 미술 애호가의 눈을 매료시켰다는 소식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자 감동보다는 덤덤하거나 의아해하는 분위기였다. (주해: 사기(沙器)보다는 자기(瓷器)라는 용어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이후 자기로 쓴다) 그만큼 조선시대의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 예술품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높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청자기가 외관상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그리고 조선 청화백자에서 느낄 수 있는 ‘고귀하거나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함과 대담함’에 현대미술에서 볼 수 있는 ‘추상미’까지 갖추고 있다 보니 많은 이에게 오히려 혼란스럽게 다가가는지도 모른다. 조선 분청자기와 관련한 우화 같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1962년 역사적인 ‘한국 고미술 5천년전’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그때 국립박물관(훗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감독관으로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 1916~1984) 선생이 파견되어 현장을 지켰다. 그런데 당시 그곳 파리에서 유학하던 한국 학생들이 전시장을 찾아왔다가 전시된 조선시대 분청자기를 보고 “저런 옹기그릇을 무슨 국보라고 전시 하느냐? 창피하게!”라고 내뱉고는 전시장을 나갔다고 한다. 당시 국내 최고의 미술 평론가로 이름난 혜곡 선생이 이런 막말을 들었을 때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짐작이 된다. 그런데 다음 날, 파리 일간지들이 우리 전시회를 소개하며 “한국에는 500년 전에 피카소가 있었다”며 극찬했다. 금불상, 조선 회화를 비롯해 고려자기, 조선백자 등 다양한 전시품이 많았는데 유독 조선 분청자기를 두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혜곡 선생은 이 기사를 보고 더없이 위로받았으며, 그 막말을 뱉은 한국 유학생들이 신문 기사를 읽고 반성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서독 프랑크푸르트 전시장에서 혜곡 선생이 필자를 만났을 때 들려준 에피소드이다. 혜곡 선생은 아마도 그 유학생들이 점토(clay)가 원료인 옹기(甕器)는 가마에서 800도에 이르면 힘없이 부스러지는 반면 자기(瓷器)는 1200도에서 더욱 경질화(硬質化)된다는 본질적 차이를 모른다는 사실에 더 속상해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전시장에서 본 분청자기에 묘사된 색채나 그림이 전혀 우아하지 않았기에 문화적 자긍심을 못 느낀 것이라고 유추해본다. 그런데 바로 그 격 없는 간결함과 엄격한 틀에서 벗어난 대범한 자유분방함이 현대미술과 직결되는 요추였다는 점에서 서양 미술계는 놀라워한 것이다. 이렇듯 16세기에 현대미술적 감각이 스며든 도자기는 물론, 회화 작품 그리고 동양권은 물론 서양 미술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 미감을 지닌 도자기가 바로 우리의 분청자기다. 곱지도 않고, 우아하지도 않은 분청자기를 마다하지 않고 생활 미술품으로 받아들인 당시 소비자 계급인 조선 양반들의 눈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위의 두 작품에서 어느 것이 더 해학적인가를 보면 왜 파리지앵이 조선시대의 분청자기에서 피카소를 보고 놀라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2016-02-1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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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사와 함께하는 북 人북] 경희대 전호근 교수, 시련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인생의 보물
- 청소년기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고 베토벤의 곡을 즐겨 들었다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전호근(田好根·54) 교수. 10년 전, 메이너드 솔로몬이 쓴 베토벤 평전 은 자연스레 그의 손에 들렸다. 처음 책을 접했을 당시에는 평전 글쓰기의 모범이라 생각할 만큼 저자의 분석력에 감탄하며 읽었다. 그때는 자료를 읽어내듯 눈으로 읽고 머리로 기억했는데, 그는 최근에 들어서야 같은 책을 마음으로 읽게 됐다. 지난해 여름, 국제학술대회 참가차 오스트리아 빈에 다녀오고부터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베토벤의 생가와 묘소를 둘러본 그는 한국에 돌아와 다시 을 꺼내 들었다. 과거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감성적으로 느끼며 읽게 된 것. 그러자 베토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고, 인간 베토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베토벤이 남긴 작품이 총 135곡이에요. 거의 모든 곡을 샅샅이 신물이 날 정도로 들었죠. 그렇게 익숙한 멜로디가 빈에 다녀오고 다시 이 책을 읽고 들으니 새롭게 들리는 거예요. 지식을 많이 알게 돼서 다르게 들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음악에 접근하는 감수성의 차이가 작용했던 것 같아요. 베토벤의 삶을 더 이해하게 되면서 음악도 좀 더 깊은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많은 사람이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하고 주목하지만, 전 교수는 베토벤의 인간적 면모에 관심을 기울였다. 1802년에 남긴 베토벤의 유서는 철학을 전공하는 그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었다. “유서를 보면 베토벤처럼 절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조차도 인간적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자신이 인격적으로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끊임없이 강조하죠. 나 같은 철학자는 부당한 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지고 갈 것인가, 자기 수양은 제대로 됐는가 등으로 평가를 하는데 그런 까다로운 기준을 굳이 베토벤 같은 예술가에게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베토벤의 유서를 읽고 생각을 바꿨어요. 아, 모든 사람은 인격적으로 인정받을 때 행복할 수 있구나. 아무리 권력과 부를 쌓아도 인격적으로 훌륭하다고 평가받지 못하면 불행한 거구나. 그게 인간의 보편적 욕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베토벤은 서른두 살에 유서를 썼지만, 18세기 당시 평균수명이 30대였던 것을 감안하면 중년이나 다름없다. 30세 무렵부터 귀가 먹기 시작했기에, 음악가로서 중년의 베토벤은 자살을 결심하고 유서를 남긴 것이다. 전 교수는 위기를 지나 더욱 뛰어난 작품을 남긴 베토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책을 소개한 이유를 말했다. “중·장년이 되면 기회도 오지만 어려움도 많이 찾아오잖아요. 베토벤은 작곡가인데 귀가 먹어가니 심적으로도 힘들었고, 통증도 심각했죠. 그러한 시련을 오히려 자신의 창작력을 불태우는 원동력으로 삼거든요. 구애가 실패로 돌아가도 걸작으로 나오고, 귀가 먹어가는 고통이 있어도 그런 어려움이 뛰어난 작품으로 생산하죠. 그런 걸 보면 고난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베토벤이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추천하게 됐어요.” 추운 계절의 소나무를 칭찬하는 까닭 전 교수는 공맹(孔孟) 유학과 조선 성리학을 전공하고, 16세기 조선 성리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원효부터 장일순까지 한국 지성인 35명의 철학을 담아낸 를 펴냈다. 그런 전 교수가 베토벤을 보면 떠오르는 한국의 역사적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단연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라 답했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뿐만 아니라 경학과 실학 등의 다양한 학문까지 아우르며 학예일치의 경지에 오른 추사, 절대적인 명성을 얻은 점 또한 베토벤과 유사했다. “베토벤이 몸에 병이 생기며 찾아온 내적 고통을 앓았다면, 추사는 역적으로 몰려 유배를 갔으니 외부에서 온 고난에 시달린 셈이죠. 베토벤이 고난을 이겨내고 위대한 곡들을 작곡했듯, 추사 역시 세한도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어요.” 전 교수는 그들의 삶을 통해 시련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추사는 시련을 겪으며 우정을 얻게 됐죠. 유배를 가서 정치적 생명이 다하고 나니 가까웠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연이 끊기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이라는 제자는 그를 이전과똑같이 대하고 더욱 살뜰히 챙기죠. 고난의 시절이 있었지만 그를 통해 우정과 이상적의 인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때 이상적의 우정에 감동해 추사가 남긴 작품이 ‘세한도’이다. 그는 세한도에 공자의 말을 덧붙여 마음을 전하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知松柏之後凋)’, 추운 계절이 오고 다른 나무들이 시든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에도 더함이 없고, 이후에도 덜함이 없다. 나의 곤경 이전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삶이 평온하면 그 사람의 진정한 인격을 발견하기 힘들죠. 인격이라는 것은 사람 사이의 신뢰이기도 한데, 역경이 없으면 서로 간에 그런 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소나무가 푸르렀음을 알게 해준 추운 계절처럼, 인간에게 고난의 시간은 깨달음을 주죠.” 앞만 보고 달려온 중년, 이제는 나를 바라볼 시간 흔히들 요즘 중·장년들을 말할 때,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만큼 열심히, 진취적으로 살았다는 의미가 있지만, 전 교수는 이제 자신을 바라봐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앞만 보고 달린다는 것은 성취, 다른 말로 욕망입니다. 돌아볼 줄 모른다는 거니까요. 그렇게 되면 자기 내면과 대화할 기회가 적은 거죠. 나이가 들고 어떠한 상실감을 느꼈을 때,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 자각하면 자연히 겸손해지거든요. 잃어버린 게 많을수록 삶의 무게는 높아지고, 고통이 클수록 내면은 더 단단해지죠. 그러니 어느 순간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면 그나마 다행인 거예요. 자신을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까요.” 전 교수는 지난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을 돌볼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이상을 지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했다. “젊어서든 나이가 들어서든 근본적인 철학이 변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애초부터 철학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봐도 중요한 비중을 두고 기술되지 않은 사람들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지키는 데 실패한 사람들이죠. 권력이나 출세 등의 외압에도 끝까지 자기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지킨다고 하는 게 반드시 사회적 지위를 기준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젊은 시절에 가졌던 이상, 그 이상을 포기하거나 모독하지 않고 끝까지 유지하는 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을 바꾸고 변절시키려고 외부에서 강요를 하겠지만 어떻게 지키는가가 자기 수양이죠. 결국 그런 신념이나 이상을 잘 지키는 게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 2016-01-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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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재미 플로럴 아티스트 클레어 원 강, 플라워아트 손끝으로 완성하다
- 꽃과 더불어 사는 삶은 아름답다. 꽃은 피고 지고 나면 그뿐인 듯하다. 그런데 그 꽃은 씨앗을 남기고, 씨앗은 다시 꽃을 피운다. 미국서 활동하고 있는 클레어 원 강(Claire Won Kang AIFD, 한국명 이원영)은 금세 시드는 꽃의 아름다움을 시간의 굴레에서 끌어낸 플로럴 아티스트(Floral Artist)다. 그는 꽃이 가장 아름답게 핀 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꽃과 소품을 재창조한 콜라주로 플라워아트의 새 장르를 열었다. 남진우 뉴욕 주재기자 namjin@etoday.co.kr 세계 최고의 ‘필라델피아 국제플라워쇼’에서 ‘대상(Best in Show)’을 여러 차례 수상한 강 작가는 일생의 역작인 화집 를 출간, 플라워아트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꽃 앞에서는 인종 간의 차이도, 빈부의 차이도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플라워아트를 전수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플라워아트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클레어 원 강은 1968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미술아카데미(Pennsylvania Academy of Fine Art)에서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플라워디자인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강 작가는 당시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장학생이었던 강성권 박사(현 IBM 중앙연구소 연구과학자)와의 신혼생활 중에도 미술공부를 계속하며 필라델피아의 갤러리에 전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남편의 이직으로 뉴저지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 남편 직장 동료 부인의 소개로 플라워 숍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이것이 플라워아트와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클린턴, 록펠러 등 유명 가문이 단골고객 “플라워디자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해볼 만한 일이니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는 미술로 다져진 기초 위에 뛰어난 손재주가 더해지면서 플로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빠르게 갖추어 갔다. 1984년은 특별한 한 해였다. 뉴욕의 부촌인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의 채퍼쿼(chappaqua)에 아름다운 집을 마련했고 뛰어난 디자이너만 채용하는 그 지역 플라워 숍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지만 즐거웠습니다. 꽃에 완전히 빠졌던 거죠.” 플라워아트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객과 교감을 하다 보면 고객에게 어울리는 꽃과 디자인이 순간적으로 떠올려지기도 했고, 꽃들을 바라보면 그 꽃이 말하는 듯한 무아의 경지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의 신들린 듯한 플라워아트가 입소문으로 퍼지면서 클린턴, 록펠러 등 유명 가문들이 하나둘 단골고객이 되었다. 또 웨딩드레스로 유명한 ‘베라왕’ 매장의 화훼 디자인을 전담하기도 했다. 티파니, 블루밍데일, 노드스트롬 등 미국의 화려한 매장도 활동무대였다. 현대미술관(MOMA)을 자주 들러 다른 예술과 컬래버레이션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지키면서 꾸준히 노력하면 창의성과 자기만의 브랜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창의성을 유지하려면 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맨해튼의 현대미술관(MOMA)을 자주 들러 다른 예술작품을 꾸준히 접한 것이 디자인 감각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클레어 원 강은 2001년 미국플라워디자이너협회(AIFD)의 시카고전국대회에서 꽃 콜라주 페인팅을 성공적으로 소개하여 플라워아트의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2008년 이화여대 총동창회 창립 100주년 기념 플라워 쇼에서는 100개의 호접란이 단단한 그물을 뚫고 사이사이로 피어나는 디자인으로 ‘진선미 정신’을 표현하여 기념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는 미국, 영국 등지의 수많은 플라워 쇼에 초대되었다. 2014년 필라델피아 뮤지엄에서 열린 ‘조선왕조대전’에 전시된 ‘무신년진찬도’를 주제로 한 작품 ‘글로벌 댄스(Global Dance)’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태극과 오륜을 바탕으로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이 작품으로 그는 지난해 3월 세계 최대 규모, 최고 전통의 실내 플라워아트 경연장인 ‘필라델피아 국제플라워쇼’에서 대상을 수상해 더 뜻이 깊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처럼 죽음을 애도한 꽃장식 작품 클레어 원 강은 수많은 초대전에 참여하고 큰 상도 많이 받았지만 정작 가슴에 가장 깊이 남아 있는 작품은 죽음을 애도한 꽃장식이었다. 친구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작업한 장례식장의 플라워아트는 오 헨리의 를 연상케 했다. “남편 친구가 평소에 좋아했던 보석 색깔의 꽃으로 꾸민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은 망자가 천국으로 가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플로리스트에게는 최고의 찬사였다. “그 사람을 알고 그 사람에 맞는 디자인을 했을 때 가장 아름답고 큰 감동을 준다”는 강 작가는 “아름다운 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조그만 국화와 카네이션도 제자리에 꽂히면 아름답고, 잎의 앞면보다 뒷면이 더 어울릴 때가 있다는 것이다. 클레어 원 강의 삶은 자연과 예술에 교육이 어우러진 여정이었다. 1991년부터 20여 년간 뉴욕식물원(New York Botanical Garden)에서 플라워아트에 대해 강의해 2000명이 넘는 후배를 배출했다. 2005년에는 재직 교사 200명 가운데 학생들이 꼽은 최고의 강사로 선정돼 ‘올해의 우수 교사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 전역의 가든클럽과 특별강좌에 초빙되어 꽃과 인생을 강의했다. “이파리가 너무 무성하면 꽃이 피지 않는다. 중앙에 먼저 핀 꽃을 잘라내야 주변 꽃들이 잘 자라난다”는 강 작가는 “혼자만 잘 자라면 주변 꽃들이 피지 못해 조화로울 수 없으며, 꽃 자체로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없다”고도 했다. 꽃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것이 강의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화보집 발간하라는 어머니의 소원 지난해 5월 숙명여고 졸업 5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귀국한 강 작가를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구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는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었다. 항상 건강하시고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다. 갑작스런 수술과 별세는 강 작가에게 큰 충격이었지만 어머니는 평소 소망을 이룬 것이었다. 자녀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주무시는 듯 세상을 떠날 수 있기를, 미국의 딸이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면서 장례 꽃장식을 해주기를 간절히 빈 기도가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못다 이룬 어머니의 소원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강 작가가 40여 년간 디자인한 작품을 집대성하여 최고의 화집을 발간하라는 어머니의 소망이자 명령이었다. 필라델피아 국제플라워쇼에서 대상을 탄 작품을 비롯하여,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을 선별해 재현하고 보관해 놓은 콜라주 작품을 하나하나 담았다. “올 6월 말 덴버에서 있었던 미국플라워디자이너협회 창립 50주년 기념총회에 이 화집을 출품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고, 이는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저를 도와주신 것입니다.” 강 작가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이제야 지켰네요. 어머니와 나의 평생의 소망이었던 화집 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됐습니다”면서 울먹였다. ‘일체(Oneness)’는 모두가 어우러져 하나 됨을 뜻한다. 여러 부분이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여 아름다운 전체를 만드는 것이다. 원네스(WONNESS)는 조화와 일체를 이루는 클레어 원 강의 예술세계다. 화려한 꽃과 눈에 잘 띄지 않는 수수한 꽃의 조화다. 절대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제자리에 맞는 아름다움이다. 강 작가는 화집을 발간하면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였던 인생의 순간들이 어느 시점에서는 모두 연결된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 가족, 동료, 친구, 후배, 제자, 이웃 등 이 모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란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한글과 영문으로 제작된 화집 는 이제 클레어 원 강의 화신이 되어 하버드대학, 옥스퍼드대학, 스미소니언 등 각지의 도서관에서 플라워아트를 전파하고 있다. 꽃 이야기로 마음을 치유하게 하다 강 작가의 목소리는 30~40대다. 타고난 맑은 목소리로 강의를 계속할 작정이다. 뉴욕식물원과 가든클럽에서 요청하는 강의를 힘닿는 데까지 맡을 생각이다. 봉사활동도 그의 일상생활이 되었다. 미국 내 한인 여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계아동기금(Global Children Foundation)’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기증 받거나 구입한 상품을 바자회를 통해 미국과 한국에서 판매하여 수익금 100%를 세계 각지의 굶주린 어린이를 위해 지원하고 있다. “젊을 때는 나, 내 자식, 내 작품 위주였는데, 이제는 남을 돕는 일이 훨씬 즐겁게 느껴집니다.” 강 작가는 죄수나 소외된 사람에게는 꽃 이야기로 마음을 치유하고,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 꽃꽂이 기술을 전수해 일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작정이다. 왕성한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몸 관리가 필수다. “화집을 만드느라 중단한 인도 요가인 비크람(Bikram)을 다시 시작할 계획입니다.” 강 작가는 5년 전 무릎이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아팠으나 비크람을 통해 극복했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사랑하는 손녀를 보면 저절로 낫는단다. “나이가 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간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음이 더 즐거워지는 느낌입니다.” 그는 미국의 주류사회에서 활동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한인 모임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
- 2016-01-05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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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철훈의 사진 이야기] 사진으로 누군가의 가난을 훔치지 마라
-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참 많은 나라들을 다녔다. 그 장소들을 정리할 일이 생겨 그 동안 다녔던 지역 이름을 적어 내려가다가 이름이 가물가물해 지역 지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내친김에 아예 지도를 펼쳐 연도에 맞춰 촬영지역을 시간 별로 한 점 한 지역 표시하다보니 가히 세계전도가 그려진다. 그런데 대부분 머문 지역은 유명한 큰 도시가 아니라 모두 변방 오지들이다. 그 지역들이 모두 내가 사진가로 빚을 진 곳들이다. 그러고 보니 특히 몽골에 진 빚이 크다. 이번엔 그 빚 얘기?막연한 빚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내가 빚을 진 상대의 얼굴까지 밝혀진 얘기다. “몽골의 가난하고 어려운 모습을 감동적으로 촬영해주십시오.” 몽골에 친선병원을 세우는 이들이 후원금 모집을 위한 사진 촬영을 의뢰해왔다. 내가 받은 촬영의 목적은 뚜렷했다. 내가 촬영한 사진으로 후원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현지에 도착한 나는 안내인을 통해 내가 받은 미션에 어울리는 장소를 섭외했다. 몽골의 살림은 어려웠고, 양로원과 아이들은 가난했다. 양로원에서 만난 한 분은 이미 수술로 제거된 다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전쟁 영웅이었다. 또 깡마른 한 늙은 여자 분은 자기가 죽으면 그 몸을 치워야 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그뿐 아니었다. 도시의 아이들은 몽골의 혹독한 추위에 얼어 죽지 않으려고 겨울 몇 개월 동안 하수도의 온기에 몸을 맡겨야 했다. 나는 도시의 하수도가 합쳐지는 공간에 모여 사는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또한 그곳의 아이들에게 자선단체들이 옷과 음식을 주는 사진과 그 아이들을 치료하는 치과의사, 또 양로원의 삶을 촬영했다. 결과를 발표하는 날 나는 주최 측 관계자들과 예비 후원자들 앞에서 사진과 함께 촬영 현장에서 미처 담아낼 수 없었던 작가의 마음을 전달했다. 일상적인 사진전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만한 후원금이 모였다.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몽골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으로, 가난한 그들의 모습보다 더 가난한 나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한 양로원을 방문했을 때 노인들이 찌그러진 그릇에 담긴 수프만으로 한 끼를 때우는 모습을 만났다. 그런데 그렇게 식사하는 그들의 얼굴엔 당당함이 있었다. 그 까닭을 사진 촬영을 다 마친 후에 알게 되었다. 이번 방문을 위해 양로원에 지원한 주최 측의 식비를 그들이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주최 측 당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를 위해 준비한 기금을 아이들에게 베풀어주세요. 우리는 얼마 살지 못합니다. 그저 살던 대로 살다가 죽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 달라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식비를 써주세요.” 그렇게 그들은 가난한 한 끼를 선택했고 그들이 양보한 돈은 유치원을 짓는 데 쓰였다. 그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들의 식탁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몽골의 앞날을 비추는 듯했다. 그 빛만으로도 그들은 넉넉했다. 그 사진을 촬영한 후 나의 시선은 바뀌었다. 함부로 누군가의 가난을 훔쳐선 안 된다는 사실을 그 양로원의 노인들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가난한 모습을 소개하려던 생각을 거두었다. 그들의 당당함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고 싶었다. 그때 촬영한 사진 가운데 한 장으로 나는 ‘NGO의 유엔총회’라 불리는 인터액션총회에서 NGO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도왔다는 명목으로 대상을 받았다. 내가 몽골의 가난한 양로원의 노인들에게서 배운 그분들의 고귀한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공감을 일으킨 증거일 것이다. 정작 대상을 받아야 할 주인공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가난 속에 머물러 있지만, 그들의 가난은 그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난 가난을 훔치진 않았지만 결국 본의 아니게 수혜자가 되었다. 2006년 5월 미국 워싱톤 디씨 INTERACTION 총회에서 EA부문 대상 수상 연설(InterAction Grand Prize acceptance speech) 중 연관된 부분에 대한 발췌이다. This photograph is simply of an old man filling his stomach, but there is something warm and majestic about this image. There is a reason they have but a single bowl as a meal. The people of the nursing home have cut their own meal budget. They felt that the money should be used, not for the elderly of Mongolia, but for the children, for the future of Mongolia. Old age tires the body and mind and as appetites diminish, it is instinctual to seek softer and tastier food. However, they decided to lean on each other and persevere together. We came to lighten their hunger, but we ended receiving an invaluable gift from them. We learned that people who are helping need to discuss and learn how to effectively help from those who receive the help. 그들은 가난한 한 끼를 선택했고 그들이 양보한 돈은 유치원을 짓는 데 쓰였다. 그들은 가난하지 않았다. 그들의 식탁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몽골의 앞날을 비추는 듯했다. 그 빛만으로도 그들은 넉넉했다. 그 사진을 촬영한 후 나의 시선은 바뀌었다.
- 2015-12-1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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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빈의 문화공감] 춤으로 어울렸던 브라질의 라틴 댄서들
- 스페인음악은 전형적인 라틴음악이고 넓은 의미에서는 샹송이나 칸초네도 모두 라틴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음악에서 라틴음악이라고 하면 주로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중남미)음악을 말한다. 라틴음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음악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디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흑인의 음악이 다양하게 섞여 형성된 음악이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원주민이 너무 일찍 멸망했기 때문에 나머지 두 가지 요소만으로 만들어졌다. 룸바 맘보 차차차 볼레로 등의 리듬은 모두 쿠바에서 만들어져 다른 나라들로 퍼져나갔으나 막상 쿠바에는 남아 있지 않다. 삼바는 브라질의 흑인계 리듬이다. 이와 같이 라틴음악에는 스페인음악이 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스페인음악을 좋아하다 보면 라틴음악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고 곡목도 겹치는 것이 많다. 그러나 (물론 필자 개인의 경우지만) 같은 ‘질투’라는 곡을 스페인음악으로 들으면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정열적인 여자가 칼이라도 뽑아들고 달려들 것 같은 느낌이라면, 라틴음악의 경우 파도에 부서지는 달빛 어린 바닷가에서 가냘픈 여인이 훌쩍훌쩍 울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필자는 △사랑의 역사(Historia De Un Amor), 제비(La Golondrina),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등이 들어 있는 트리오 로스 판초스 △라 쿰파르시타, 달빛 어린 난초(Orchids In The Moonlight), 질투 등이 들어 있는 ‘남미의 허니문’ △맘보 5번, 라 밤바, 엘 콘도 파사, 커피룸바(Moliendo Cafe) 등이 들어 있는 맘보리듬의 창시자 페레츠 프라도 △아마폴라, 씨엘리토 린도(Cielito Lindo), 마리아 엘레나 등이 들어 있는 ‘라틴 칵테일 아우어’라는 판 등 라틴음악 역시 참 많이 들었다. 1982년 7월에 지하철 자료수집차 갔던 첫 번째 파리 방문 때 업무를 마치고 짧은 시간이나마 관광을 할 시간을 마련하였다. 센 강 유람선을 타고 에펠탑을 구경한 후 영화박물관 근처를 지나가는데 어디서 경쾌한 음악이 들려왔다. 가보니 남미에서 온 듯한 2인조가 라틴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다리도 쉴 겸 돌난간에 걸터앉아 음악을 듣고 있자니 몸이 저절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 남미에서 온 듯한 한 젊은 여인이 손을 내밀어 춤을 청했고 신 나게 한 곡을 추고 나니 박수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다 박수를 친 것이다. 1984년 10월에서 11월에 걸친 약 3주간 필자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열렸던 제10차 국제도로연맹(IRF) 세계도로회의에 한국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우리 일행이 묵던 호텔이 있는 코파카바나 해변의 뒷골목에는 수많은 기념품가게와 술집이 있었다. 그중 한 기념품가게에 들렀다가 괜찮은 술집을 물으니 알베르토(Alberto's) 피아노 바(Bar)를 소개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기념품가게 여종업원인 마리 양이 저녁 때는 그 바의 유일한 여종업원이기도 하였다. 아담한 크기에 주인 알베르토의 피아노연주가 일품인 이 바가 마음에 들어 거의 매일 저녁마다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그 바의 손님들은 대부분 이웃나라인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한국 사람이 처음이었으나 멀리 동양의 한 작은 나라에서 온 젊은 사람이 자기들 나라의 노래를 너무 많이 아는 것이 신기해서 쉽게 친해졌고, 또 서로 어우러져 돌아가며 같이 춤을 추기도 했다. 사실 당시 필자의 나이는 만 40이었으니 젊다고 하기에는 좀 그런 나이였지만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어 보였는지 절대로 25세 이상으로는 보지 않아 내기를 해서 술도 꽤 많이 얻어마셨다. 하루는 기념품가게 여주인과 마리 양이 아주 괜찮은 극장식 레스토랑이 있으니 가겠다면 자기들이 안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에게 물어보니 12명 정도가 가겠다고 해서 알베르토에게 양해를 구한 여자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갔다. 실내는 꽤 넓었고 여러 테이블에 손님들이 있었으나 우리 테이블이 가장 많았다. 쇼가 시작되자 사회를 보는 여자가 테이블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다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우리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면서 그날 밤은 ‘한국의 날’로 무대를 꾸미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에 우리 음악에 맞춰 쇼를 진행함으로써 우리를 놀라게 했다. 클라이맥스가 되자 사회자가 무대 위로 올라오라고 우리 테이블에 손짓을 했고, 모두들 일행 중에 가장 젊었던 필자를 밀어내 타의반 자의반으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아름다운 백 댄서들 사이에서 정말 풍만한 반나(半裸)의 두 히로인(heroine)과 평생 잊을 수 없는 즐거운 무대를 가질 수 있었다. 쇼가 끝나자 필자와 함께 춤을 추었던 두 여자가 옷을 갈아입고 우리 테이블에 와 일행과 같이 어울려 맥주를 마셨다. 그때서야 우리들의 의문이 풀릴 수 있었다. 그들은 워커힐 호텔의 극장식 레스토랑에서 6개월간 브라질 댄싱 팀으로 공연을 했고, 귀국 후에는 한국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오래간만에 한국 사람들을 만나 무척 반가웠다는 것이다. 한편 포르투갈의 민속음악인 파두(Fado)도 일부 라틴음악이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파두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에 방영된 차화연 주연의 TV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아마리아 호드리게스가 부른 ‘검은 돛배(Barco Negro)’가 주제음악으로 사용된 후부터였다.
- 2015-12-0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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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공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서 <위대한 캣츠비 리부트>의 배우 이병준 인터뷰
- 뮤지컬의 원작 웹툰 의 제목을 보면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가 떠오른다. 웹툰 작가 강도하는 “소설과는 무관한 내용”이라며 “이야기와 동물 의인화 설정을 마치고 고양이가 들어간 제목이 잘 떠오르지 않던 찰나, 욕실에 있는 갸스비(GATSBY) 스킨로션이 눈에 띄었다. 즉흥적으로 G를 C로 바꾸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타이틀을 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는 다르지만, 소설과 웹툰만큼 많은 이의 기억에 남을 뮤지컬이 되길 바란다는 배우 이병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eiw. 의 부르독 배우 이병준 극중 배역 ‘부르독’은 어떤 인물인지 성경에 나오는 고린도전서의 말씀처럼 오래 참고,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지도 교만하지도 않으며, 모든 걸 감싸주는 것이 참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르독은 페르수와의 만남을 통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에서 진실한 사랑으로 가고자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극의 전반부에서 부르독은 전처에 대한 미련을 간직한 채 사랑이 없는 부부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의심을 품습니다. 중반부터는 페르수를 알아가면서 사랑은 결국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아끼고 이해하며 모든 걸 감싸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갑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의 마음이 일치해야 함을 깨닫고 집착보다는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사랑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중년 남자 부르독!’ 이런 인물이 아닐까요? ‘부르독’을 연기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 순수한 사랑, 욕망에 얽힌 사랑, 이기적인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등 수많은 사랑 중 어떤 것이 부르독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그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첫 과제였습니다. 연습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그 답을 찾을 수 있었고, 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서 나왔습니다. 정답은 ‘진실’이었죠.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알게 해주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진실입니다. 답을 찾고부터는 진실하게 연기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염두에 두고 작품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부르독의 사랑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부르독과 닮은 점, 차이점 부르독과 이병준의 삶에서 닮은 점은 극의 중반부와 종반부에 나타나는 사랑에 대한 개념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사랑은 이해와 존중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사랑 그 자체는 당연한 거고요. 차이점은 결혼은 두 번이 아니라는 거죠. 기억에 남는 대사 2막에 나오는 “그 아기 내 아이로 키우겠소, 당신이 낳은 자식이면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요. 피한방울 섞이지 않아도 내겐 중요하지 않아”라는 대사와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부르독이 가장 고민하고 가장 아파하면서 내린 결정이기에 진정성이 보이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한 후배 연기자들과의 호흡 후배들의 열정에 먼저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많은 배우들과 작업해봤지만, 이번에 함께한 배우들은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정말 남달랐습니다. 명칭만 후배이지 제가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작품에 임하는 자세부터 열정까지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모습은 호흡과도 일치하겠죠. 정말 좋았습니다. 관람 후 얻어갈 수 있는 메시지 사랑입니다. 아마 이 작품을 보고 나갈 때, 사랑하는 사람끼리 왔다면 손을 꼭 잡고 나갈 겁니다. 공연 중에는 서로의 어깨를 살포시 붙일 겁니다. 아프지만, 예쁜 게 사랑이니까요.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관람하게 될 관객들은 2015년의 그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배우 이병준 뮤지컬 , 연극 , 영화 , 드라마 등 출연 △공연 소개 만화가 강도하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웹툰으로 연재한 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뮤지컬 는 원작의 주요 골격과 설정만을 남겨 두고 새로운 이야기를 펼친다는 의미에서 ‘리부트’라는 말을 사용했다. 뮤지컬에는 캣츠비, 하운두, 페르수, 선 등 4명의 청춘과 부르독, 몽부인 등 중년 남녀가 등장해 뜨겁고도 아픈 사랑을 노래한다. 공연 뮤지컬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일정 ~ 2016년 1월 31일 연출 변정주 출연 이병준, 정동화, 강기둥, 손동운, 이규형, 김영철 등
- 2015-12-0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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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중년을 노크하다 PART3] 남자와 여자, 여자의 적은 남자인가?
- 자료를 고르려 단골 서점에 들렀다가 교양서적 코너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분석하고 설명한 책들이 너무 많아서다. 어떤 책은 남자는 머물고 싶은데 여자는 떠나고 싶다고 하고, 어떤 책은 남자는 화성에서 왔는데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한다. 남자는 착각하고 여자는 고민한다는 책도 있고, 놀랍게도 남자는 발레하는데 여자는 권투한다는 책마저 꽂혀 있다. 심지어 그런 종류의 책들 숫자가 갈 때마다 늘어난다.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나 다른 존재였던가, 새삼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김유준 프리랜서 기자 dongbackproject@gmail.com 아닌 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은 많이 다르다. 그리고 그 대목에 관해서는 연구가 왕성하다. 인문학자들이 공을 들여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어디 학자들뿐이겠는가. 일반 사람들의 시선 또한 종종 그 지점을 향한다. 최근 술자리에서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남성과 달리 여성들이 왜 그토록 손톱 치장에 공을 들이는지에 관한 주장들이었다. 누군가 “요즘 손톱이 유난히 거칠어졌다”고 한마디 툭 던지면서 대화가 시작됐다. 다른 누군가가 “이집트 파라오의 미라에서도 발견됐을 만큼 역사적으로 본디 손톱 치장은 남녀 통틀어 부와 명예의 상징이었다”는 어쩐지 젠체하는 설명으로 그 말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옛날이라면 손톱 치장과 유지에 비용이 수월찮게 들었을 테니 지체 높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용도로 쓰였을 게 분명하다. 토론의 초점이 ‘근현대에 이르러 그러한 전통이 여성들에게만 전해진 이유’로 모여든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늦은 밤의 술자리에서 때 아닌 심리학, 인류학 토론이 벌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느 사회심리학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성이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성(異性)에게 잘 보이기보다 스스로 만족하려는 원인이 더 크다’는 게 정설. 손톱 치장은 그 화장 가운데에서도 해당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다. 거울 없이도 원할 때면 곧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은 누군가로부터 칭찬 듣기를 소망하는 존재. 아무도 자신을 칭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라도 해야 한다. 손톱이야말로 그때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부위다. 그것이 그가 주장하는 ‘여자만 손톱 치장에 열을 올리는 이유’였다. 홍보 전문가인 친구가 덧붙인 말도 그럴 듯했다. 한창때는 화장하지 않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꾸미지 않으면 스스로의 모습에 스스로가 실망하기 일쑤. 때문에 슬슬 화장이 진해지기 시작하고, 세월이 훌쩍 더 지나 화장만으로 목적 달성이 여의치 않아지면 반사적으로 손톱을 비롯해 팔이나 다리처럼 얼굴 아닌 부위에 집중하게 된다. 그가 내린 결론은 그러므로 보석이나 장신구, 사치품 따위를 선물해서 여성을 공략하려는 방법은 젊은 여성보다 나이 든 여성에게 더 효과적이라는 것. 보석은 손톱 치장과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란다. 남자는 파악과 대응의 파트너 중년 여성들은 이성을 꼭 끌어안고 가야 할 동반자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떻게 해야 더 잘 정복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해와 상생’보다는 ‘파악과 대응’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오른쪽 주먹을 내지르면 왼쪽으로 피하고 왼손으로 옆구리를 쳐서 굴복시켜라’ 하는 식의 책들이 과연 행복한 만남의 카운슬링으로 알맞을까. 그들에게 이성은 오랏줄을 던져 포박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뉴욕 타임스가 베스트셀러로 꼽았다는 같은 책들은 대표적인 예. 저자인 칼럼니스트 세린 야곱은 ‘남자는 어차피 특정적 인성의 여성을 좋아하게 돼 있는 존재’이므로 ‘엄마가 되기보다는 연인이 돼야’ 사랑받을 수 있으며 ‘슈퍼우먼은 강하지만 외롭다’고 못 박는다. 급기야는 ‘여자들이 매달릴 때 나타나는 열 가지 징후’까지 거론하며 결코 그처럼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가 주창하는 바는 곰보다는 여우가 돼야 한다는 것. 여우가 뭐가 나쁘냐면서. 물론 여우 같은 여자가 지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남자들에게 두루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여자들이 비난 받을 이유 또한 없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듣고 나면 그만 숨이 턱 막힌다. 삶을 군인이 작전 수행하듯 살아서 과연 행복할까 싶다. 먼저, 모든 여성이 여우처럼 살아야 남성을 쟁취할 수 있으며 그래야 행복해진다는 주장이 가당키나 한가? 예를 들어보자. 심리학적으로 남성은 ‘목표가 명확한 여성’일수록 더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배우자를 고르는 조건으로 막연히 ‘마음이 맞다’거나 ‘그저 끌린다’는 식보다는 ‘연봉이 바라는 수준이며 학벌도 커트라인 안에 든다’ 하는 식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성인 당신은 세상 모든 남자를 숫자로 평가할 것인가? 천성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여성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불행하지도 않다. 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해서 세상 남자들이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경마 정보지 못지않은 책들을 참고서 삼아서 타고난 성품까지 바꿔가며 획일적으로 살아야 남성의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면 남자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열이면 열 똑같은 상대만을 선호하는 천편일률, 초지일관의 고집불통인가? 남성은 여성의 적이 아니다 남성은 여성의 적이 아니다. 여성 역시 남성의 적이 아니다.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올 법한 말이라 다소 객쩍기는 하지만, 어쨌든 둘은 서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관계다. 서로 적대하지 않고 잘 살아갈 수만 있다면 이성만큼 사랑스러운 존재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연구해야 할 문제는 바로 그 ‘어떻게 해야 서로 잘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우가 돼야 한다거나 하는 식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아이큐를 높이는 방법’을 연구했다는 일본의 뇌 과학자 사와구치 도시유키(澤口俊之) 무사시노 가쿠인 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남자와 여자는 많이 다릅니다. 굳이 수치로 말하자면 약 80퍼센트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차이점이 많으니 이를 극복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제시돼 있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그 방법들을 모두 수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차이를 인정하고 내버려두는 편이 더 수월하고 또 바람직합니다.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덮어두는 것입니다. 찜찜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실은 대단히 유용합니다. ‘너는 그렇게 살아라, 나는 나대로 살겠다’고 하는 태도가 오히려 둘의 사이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표현대로라면 ‘쿨’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상대를 선택했을 때는 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무작정 끌려서일 수도 있고, 명확한 장점들이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상대를 믿고 인정해야 한다. 처세서에 기술된 자잘한 잔머리는 한때의 위기상황을 모면하거나 일시적으로 상대의 관심을 끄는 데 쓸모 있을지 몰라도 머나먼 여정을 함께 가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될 공산이 더 크다. 윤용인이 쓴 에는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소개돼 있다. 아끼던 술을 아내가 버린 데 격분한 저자가 아내의 천연비누를 모조리 버렸더니 아내가 화들짝 놀라 금방 술을 사왔을 뿐 아니라 다시는 버리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뒤로 저자 역시 비누를 되찾아주었다고 한다. 난데없이 웬 부부싸움 이야기를 늘어놓았는지 의아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전문가의 의견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시인이며 심리학자인 김경미는 저서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심리학에 능통한 분들도 때론 자기 마음을 어쩌지 못하죠.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기 싸움을 벌이고 상대를 내 식대로 고치려 일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심리 전문가들이 부부 문제에 관해 이구동성으로 조언하는 제1항목은 ‘상대를 내 식으로 고치려 하지 마라, 상대를 인정하라’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남자나 만나서 ‘그대로 인정’하기만 하면 행복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남자도 남자 나름. 좋은 남자도 있고 나쁜 남자도 있다. 어느 개그우먼이 배우자의 파탄적 혐의 탓에 두 번째 결혼 생활까지 위기에 몰렸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새삼 남성이든 여성이든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리서치 결과를 지면 관계상 두 가지만 살펴보자. 모두 어떤 남자가 나쁜 남자인가를 가려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연구들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음에 기술되는 내용은 ‘그런 경향이 있다’는 정도일 뿐이라는 사실. 먼저 영국 신문 메트로 지(紙)의 기사 내용을 참고해보자. 영국 굴지의 만남 사이트에서 어떤 면에서는 흥미롭고, 어떤 면에서는 유별난 조사를 실시했다. 남자의 발 크기와 바람기와의 상관관계에 관한 리서치다. 언뜻 무슨 생각에서 그런 작업을 했을지 의아하기조차 한데 어쨌든 상당히 엉뚱한 결과가 도출됐다. 발 크기가 클수록 바람기가 많다는 것이다. 발 크기가 285밀리미터인 남성들은 260밀리미터인 남성들보다 세 배 더 바람을 피우며, 295밀리미터인 남성들은 250밀리미터인 남성들보다 다섯 배 더 바람을 많이 피운다는 결과다. 이 조사 결과를 두고 학자들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관계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체격이 좋고 목소리가 낮을수록, 다시 말해 남성 호르몬이 많을수록 바람기가 한눈을 더 잘 판다는 리서치 결과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 역시 그와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찾지 못했다. 두 번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 심리학과의 연구 결과다. 18세에서 40세 사이의 남성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는데, SNS에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을 많이 올려놓은 남성일수록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고, 거짓말을 자주 하며, 자기중심적인 남성일수록 SNS에 직접 찍은 자신의 사진을 많이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사진을 좀 더 좋게 보이도록 손질하는 사람에게서 그런 경향이 짙었으며, 심한 경우 사이코패스까지 있었다고 한다. 다시금 강조하건대, 발과 페이스북만 확인하고는 상대를 완전히 다 알아냈다고 속단해서는 곤란하다. 남성은 여성의 적인가. 여성은 남성의 적인가. 어느 쪽도 아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상생하며 조화를 이뤄야 할 존재들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빚어지는 남과 여의 대결 양상은 심히 우려스럽다. 이성은 당신의 적이 아니다. 평생 함께 가야 할 말 그대로의 동반자다. 채복기 목사는 이라는 책에서 배우자는 ‘또 하나의 반쪽’이며 ‘또 하나의 심장’이라고 말했다. 그런 상대를 적으로 돌려서야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 2015-11-2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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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s Pick] 북카페로 떠나는 가을 나들이
- 평범한 도서관이 지루해졌다면 여행 관련 도서가 있는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진선북카페’ 그리고 만화책이 가득한 편안한 쉼터 ‘놀숲’, ‘청춘문화싸롱’을 둘러보자.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 서가의 빈틈에서 발견하는 여행의 시작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일상에 영감을 주고(Inspiring),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Wide-ranging)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답해야 한다(Useful).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Thorough) 그 영향력을 인정받아(Influential) 시대를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며(Timeless) 아름다운 비주얼과 디자인을 갖춘(Aesthetic) 책이어야 한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도서 선정의 7원칙이다. 유명 미디어와 여행 전문 매체에서 실력을 쌓아온 글로벌 북 큐레이터들이 선정한 1만 5000여 권의 도서를 만나보자. 주소 서울 강남구 선릉로 152길 18 운영시간 (월~토요일) 12:00~21:00 (일요일) 11:00~18:00 / 월요일, 명절 연휴 휴관 문의 02-3485-5509 ◇ 두 바퀴 여행족을 위한 쉼터 '진선북카페' 자전거 관련 책자와 여행서가 주를 이루고 있는 북카페다. 인근 삼청동 거리를 둘러보고 시원한 음료와 함께 책 한 권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카페 주변에는 자전거를 세워 둘 수 있는 바가 설치돼 있어 바이커들이 이용하기 편리하다. 아늑한 실내도 좋지만 선선한 가을에는 야외 테라스석에 앉아 낙엽이 흩날리는 경복궁 돌담길을 바라보며 쉬어가는 이들이 많다. 카페 2층에 위치한 진선출판사의 신간 소개를 비롯해 책과 카페 음료를 할인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북세트’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주소 서울 종로구 삼청로 59 운영시간 10:00~21:00/ 월요일, 명절 당일 휴무 문의 02-737-5977 ◇ 남녀노소 함께 즐기는 쾌적한 카툰북카페, 노르웨이의 숲 ‘놀숲’ 카툰북카페 ‘놀숲’은 그 이름처럼 마치 만화의 숲에 들어온 듯 만화책으로 둘러싸인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칙칙하고 구석진 만화방이 아닌 아이들과 함께 와도 편안한 휴식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책 놀이터다. 놀숲에는 3만 여권의 만화책과 베스트셀러, 여행 에세이, 자기 계발서, 소설 등이 있다. 아이들도 머무는 공간이기 때문에 성인 만화책은 없다. 주소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541-1, 2층 운영시간 (평일) 오전 9시~ 새벽2시 (주말) 금요일, 토요일, 공휴일 전날 24시간 운영 이용요금 1시간 2000원, 정액요금제 A: 2시간+음료 6500원/B: 3시간+음료 8000원/ C: 온종일+음료 1만5000원/심야 정액제: 8시간+음료 1만원 ◇ 읽고 쉬고 먹고 즐기는 문화쉼터 '청춘문화싸롱' 2만 여권의 만화책과 잡지, 소설, 일반 서적을 보유한 ‘청춘문화싸롱’은 책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청춘 라듸-오’ 카운터에 듣고 싶은 음악 신청도 가능하다. 매주 수요일, 금요일 밤 9시에는 ‘밤과 음악 싸롱’이 진행돼 맥주와 함께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전화 예약 12팀만 입장) 주소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29바길 19 삼이빌딩 3층 운영시간 11:00~23:30 이용요금 1시간 3000원, 온종일 1만5000원(휴일 사용 불가) 문의 070-4106-4223 (10세 이하 어린이 출입 불가)
- 2015-10-26 0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