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망원동. 감성적인 카페와 맛집, 편집숍 등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동네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이곳을 ‘망리단길’(이태원의 경리단길 초창기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부른다. 그 소문만 듣고 찾아가 인근 홍대거리나 가로수길의 비주얼을 기대했다면 조금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망원동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망원시장’의 아우라가 무
1970년대 강남 부흥의 상징 같던 한 아파트는 2014년 재건축되면서 기억 속에서 잊혔다. 적은 돈으로 푸짐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친구들과 술잔 기울이던 피맛골 또한 개발이란 이름으로 영영 사라졌다. 도시의 지도가 바뀌고 변화한 거리. 뭐든 새것이 좋다지만 우리네 따뜻했던 옛 시절도 아름답지 않던가. 혹시 그때가 그립다면 서울역사박물관(서울 종로구 새
이태문 일본 통신원 gounsege@gmail.com
◇ 몸에게 묻는 것이 건강관리의 기본
마에다 비바리(前田美波里·영화배우, 1948년 가나가와 현 출생)
더위를 모르고 여름을 무척 좋아하는 마에다 비바리는 이전 주목받았던 화장품 광고 이래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젊고 탄력 있는 몸매와 촉촉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언제 어떤 역할이 올지
"또 언제 여행 가?" 요즘 필자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잠시 망설이게 된다. 필자도 언제, 어디로 떠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소소하게 돌아다니면서 제일 처음 알게 된 게 팸투어였다. 팸투어란 지자체 등이 바이럴 마케팅을 위해 블로거들을 모아 여행을 시켜주는 일종의 사전답사여행인데, 팸
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1973)는 ‘나의 자식들’이라 부르던 작품들만 덩그러니 남기고 52세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지 42년, ‘자식들’을 품은 곳이 강원도 춘천시 동면 월곡리에 문을 열었다.
권진규는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의 3대 거장으로 불리던 조각가다. 1922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춘천고
‘취업절벽, 창업절벽’으로 표현되는 오늘의 경제상황은 심각한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창업지원을 확충하고 있으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책자금’으로 통칭하는 정부자금 지원제도이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SBA 서울산업진흥원은 교육과 홍보를 하면서 이를 적극 활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연초
사주나 점을 믿지는 않지만, 매번 '무난’, ‘평탄’ 같은 단어가 튀어 나온다. 전반적으로 필자 삶을 돌아 볼 때 과연 맞는 말인 것 같다.
인생 전반의 삶
인생의 여러 중대사가 결정되는 1970년대가 필자 20대 나이였다. 그 시기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에 갔다 오고 취직해서 결혼했으니 말이다. 아들딸까지 낳았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운이 좋았는지
방송이나 잡지들이 꿈의 도시 제주에 자리 잡은 일반인과 연예인을 앞다투어 취재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수시로 걷는 사람, 특수과일농사로 일하면서 비용 창출하는 사람, 제주에 놀러 온 지인과 맛있는 제주특산물로 식사하며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든다. 특히 제주의 예쁜 바다 색깔을 보면 마음이 상당히 흔들릴 때도 있다. 사는 도시에서 뻔질나게 쏘
숲은 멀리 있었다. 찾아가야만 했고, 늘 ‘언젠가는 가야지’라는 말로 접어두던 곳. 언제부터인가 숲이 우리 곁에 다가왔다. 사람과의 교감을 허락하며 아름드리 서 있는 서울의 대표 숲을 찾아갔다.
글·사진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남녀노소 사랑받는 ‘어린이대공원’
1973년 5월 5일 개원한 어린이 대공원은 2006년 10월
바로 위 사진을 보라. 여기가 어디로 보이는가. 놀랍게도 서울 시내 한복판이다. 도시를 벗어나야만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 펼쳐진 이곳은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이다. 세련된 도시 이야기 대신 달래간장 만들어 콩나물밥 해먹을 궁리와 텃밭에서 막 자란 채소 이야기가 오간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기막힌 산뜻한 바람과 아카시아 향기가 어우러진 에어비앤비 ‘그김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