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종이 울리면 전쟁 같았다. 아침상을 차리며 자고 있는 아이들을 깨우고, 도시락을 싸고, 준비물을 점검하고, 늘 뭔가를 찾아대는 남편을 챙겨주고, 나도 출근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강아지까지 짖어대며 자기 좀 봐 달라던 아침. 이젠 까마득해진 시절의 아침 풍경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매일 아이 준비물을 미리 챙겨 현관에 놔두곤 했는데
(권)정생 형, 이렇게 이름을 부르니 사무치는 그리움이 온몸으로 밀려옵니다. 그리고 윤동주가 자주 쓰던 부끄러움이라는 어휘도 호출됩니다. 부끄럽다는 것은 치기 어린 나의 문학청년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문학청년의 객기만 있었지 형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형은 천방지축인 나와 우리 패거리들을 너그러이 대하셨지요. 그때는
이대로 일만 하다 죽을 순 없다고 기를 쓰고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이 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해서 놀러다니는 거야 탓할 일이 아니지만 아직은 일을 해야 할 형편인데도 내가 번 돈 다 쓰고 죽겠다고 한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게 죽는 날이다. 언제 죽을지 예상하고 돈을 펑펑 쓰다가 막상 오래 살게 되면 어쩔 것인가. 생각지도 않은 암 같은 큰 병에 걸려 병원
삶이 즐거운 건 살고 싶은 대로 살 때다. 그러나 살고 싶은 대로 살기 쉽지 않다.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그냥 대충 살기 십상이다. 이럴 때 삶이란 위태한 곡예에 가깝다. 곡예 역시 진땀을 흘려야 한다는 점에서 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이왕지사 한 번 태어난 인생, 심란한 곡예보다는 평온한 활보로 삶을 즐기는 게 낫겠지. 이 사람을 보라. 살
삶의 변화는 하나의 사건이 전환점 역할을 한다. 전 반생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한 계기가 인턴(Intern) 활동이었다. 3개월 일정이었으나 후반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4년에 우연한 계기로 한 사진관에서 사진 촬영 방법을 익히는 인턴 직원으로 일을 했다. 사진 재능을 이웃과 사회를 위해 기부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한 인생의 전환점이었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 전 중앙대학교 여교수 한 분이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잔소리 허락제'를 제안했다. 부부간 또는 자녀와 대화를 나눌 때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상대에게 잔소리 좀 하려고 하는데 지금 해도 괜찮은지 미
안마는 손으로 몸을 두드리거나 주물러서 피의 순환을 도와주는 행동이다. 남의 몸을 더듬는 성추행이 아니라면 부부간에 또는 가족이 사랑이 듬뿍 담긴 스킨십, 즉 안마를 서로 해주고 받으면 좋다. 손자 손녀가 앙증맞은 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어깨를 조근조근 주물러주면 시원하지 않아도 귀여워서 “아이 시원타! 아이 시원타!” 하며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다
히말라야 트레킹 때문에 네팔이라는 나라에 처음 갔다. 네팔은 한반도의 약 70% 정도 면적이며 인구는 대략 3000만 명이다. 인도, 중국, 부탄, 방글라데시에 둘러싸여 있는 내륙 국가다. 1인당 GDP가 2011년 기준으로 835달러에 불과한 빈국이기도 하다. 한국에 약 5만 명의 네팔 근로자가 와 있으며 한 해에 1만여 명이 입국을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내 길을 만들었다’고 자신의 생애를 요약하는 최현숙(崔賢淑·62).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모든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에 의심을 품었다. 가출을 반복하던 끝에 출가(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에는 천주교 사회운동을 시작으로 민주노동당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거치며 진보정당 활동을 이어갔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수십 년간의
요즘 먹방이 유행이다. TV 채널 어디를 돌려도 먹거리 방송이 빠지질 않는다. ‘맛집’으로 소문이라도 나면 줄이 길게 늘어서고 손님들이 몰려든다. 사람들이 먹거리에 대해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증거다. 유명한 맛집 골목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남산기슭 장충동 족발집이 유명하다 보니 저마다 ‘원조 할머니 족발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신당동에 가면 ‘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