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마이라이프 동년기자 2기 출범식에서 의례적인 선물처럼 건네받은 책이 바로 기시미 이치로가 쓴 라는 책이다. 바쁜 일상과 맞물려 책은 한동안 거실 한 귀퉁이에 처박혀 버렸고 잊을만한 시간에 ‘독후감’ 이라는 것을 써야 한다는 당부의 말이 떠올라 먼지를 뒤집어 쓰고 책상밑에 팽개쳐 졌던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첫장을 넘기면서 격한 공감과 함께 책 속으로 빠져들면서 단숨에 한 권을 통독해 버렸다.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나이 든 부모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직접 자기 삶에서 체득한 심리학적 고찰을 바탕으로 제시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나이 든 부모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화두는 개인을 넘어 사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저자인 기시미 이치로는 젊은 나이에 뇌경색을 앓아 재활 중에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를 목전에서 경험하고 삶의 궤도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를 지나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자신에게 인생이란 어떤 것인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어떤 것인지 사유(思惟)하는 계기를 경험한다.
부모님 두 분을 병수발 했던 저자이기에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사소한 부분을 언급할 때 크게 공감하게 된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부딪치게 되는 것은 항상 작고 사소한 것들임을 감안하더라도 경험담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저자는 어머니의 병수발과 아버지의 치매로 인해서 ‘나이든 부모’ 와 살며 그들을 이해하는 일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당부한다. 매우 뻔 한 소리 같지만 실제로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이라는 것을 조금만 읽어보면 알게 된다. 부모님도 몸이 아파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생활하는 것이 처음이고, 그런 부모님을 지켜보며 직, 간접적으로 간호해야 하는 자식들도 처음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일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우리 사회에서도 더 이상 병간호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만 지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픈 사람도 그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 누구도 죄인이 아니지만 사랑으로 시작한 일이 한 가정을 파탄 내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결국은 가족이라고는 하나 그것 또한 인간관계이다.
후회를 하지 않게 되게끔 ‘하루하루 이 사람과 사이좋게 생활하자’ 라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존경입니다.(P.104).
병이 든 상태가 가장 낮은 위치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P.117).
자식 눈에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모님의 현재가 불행한 것은 아니니까요.(P.127),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본의 철학자 기요카즈는 그의 저서 『끊을 수 없는 생각』에서 “무언가 하지 않고도 그저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우리 사회는 잊고 있다” 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말에 극히 공감이 가는 것은 나에게 있어 2년 전 10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어머님을 떠올리게 된다. 어머님은 90의 중반까지는 비교적 정신적으로 건강 하게 사셨으나 그 이후에는 오락가락하는 정신과 육체적인 피폐로 인해 병원과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셨다. 불완전한 모습의 어머니이지만 살아 계실 때에는 마음의 많은 위안이 되었고 형제, 자매들을 잇는 끈이 되어주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허탈함에 우울한 감정이 지속되기도 하였거니와 형제, 자매를 이어주던 끈도 끊어지고 말았다.
본문에서 아버지에게 “하루 종일 이렇게 주무시기만 하니 제가 안와도 되겠네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옆에 있으니까 안심하고 잠드는 거야”(P.147),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생산성으로만 가치를 측정하는 이 사회가 낳은 문제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후회’ 다. 언제나 더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드려야지 싶다가도 내 기분에 따라 행동은 확연히 달라진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화는 보통 지르고 난 뒤에 후련한 마음이 드는 경우가 있는데 반해, 부모님과의 갈등은 내가 화를 내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후회가 밀려온다는 것이다. 화를 낸 상대는 나지만 속이 후련하기 보다는 “조금만 더 참을걸. 하는 죄책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순간적으로 화가 끓어오르더라도 부모님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면 가능한 권력 싸움에서 물러나야 한다.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P.173).
누군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상대의 표면적인 말과 행동만 받아들이지 말고 좋은 의도를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P.180).
진지하되 심각해지지 말라
부모님을 간병하는 일은 진지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심각해 질 필요는 없다. 진지한 것과 심각한 것은 다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모님을 보살필 때에는 다치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서 배려할 필요가 있다. 간병이 힘들다고 미간에 주름잡고 한숨을 쉴 필요는 없다. 그런 심각한 표정을 짓는데 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간병하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부모님이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둘째는 다른 형제들이 간병의 고단함을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간병이 큰일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내색할 필요는 없다. 간병이 힘든 일이란 걸 다른 이에게 과시하기 시작하면 간병하는 사람은 진지해 지기 보다는 심각해지고 만다.
여건상 103세에 세상을 뜨신 어머니께서 생전에 계실 때는 나는 한참 사회활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 온종일 두서너 평의 작은방에서 보내셔야 했던 어머니는 가끔씩 전화를 하셨다. 대화 내용은 뻔했다. 어머니의 생각 속에 잠겨 있는 말들을 반복해서 하시곤 했는데, 한창 일처리에 바쁜 상황에서 계속해서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 드릴 수는 없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아들이 그리웠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은 수없이 했으나 현실은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얼버무리고 끊곤 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뒤늦게 후회가 참 많이 된다. 그 상황에서 어머니의 얘기를 들어드리는 일 말고 더 급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뒤늦은 반성을 해 보지만 어머니는 이미 안계시니 그립기 짝이 없다.
이제 어머니의 나이를 향해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 어차피 사람은 늙어 갈 수밖에 없고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라는 화두는 결국은 나의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사회는 물론 우리 모두가 자각하여야 할 듯하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젊은 시절부터 문학적 사유를 함께했던 오랜 벗을 그리워하며 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이자 소설가께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서종택 소설가ㆍ고려대 명예교수
한형,
‘부치지 못한 편지’를 써보려니 자네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줄을 서누만. 나의 기억력은 참으로 한심한 편인데도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60여 년 전의 자네 주소가 그대로 떠올랐네. 경기도 평택군 팽성면 본정리 산 12번지. 내가 자네에게 처음 쓴 편지의 지번이지. 우린 그때 중2였고 당시의 학생잡지 지에 다투어가며 소설(콩트)들을 발표했지. 그때 나는 자네의 인가 하는 작품을 읽고 긴 편지를 보냈고. 자네는 그보다 더 긴 장문의 답장을 보내왔고. 우리는 그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거나 무엇을 그리거나 끄적거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외롭고 허기에 찬 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었지.
한형,
나는 지금도 자네가 나에게 처음 소개해주었던 모차르트를 잊을 수 없네. 우리가 처음 만난 겨울이었지 아마. 나는 천안에서 내려오는 자네를 마중하기 위해 옆구리에 이보 안드리치의 (아마 그즈음 노벨상 수상작이었을 거야)를 끼고 광주역 플랫폼에 서 있었지. 최인훈의 에 흥분하고 방 한 칸을 찾아 밤길 헤매는 마렉 플라스코의 의 젊은 애인들을 가슴 아파하고, 그러나 이제는 이 아닌 이나 을 옆구리에 낀 채 담배를 넣고 다니던 오만방자한 고2의 겨울이었지. 진눈깨비 어지럽게 흩날리던 그해 겨울 역 광장에서 우리는 처음 수줍게 악수했고 악수가 끝나자마자 자네는 굵은 안경테를 밀어 올리며 광주엔 클래식 감상실이 있느냐고 물었어. 그리고 충장로의 그 지하다방에서 자네가 리퀘스트 곡으로 써낸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5번’을 그때 처음 알았지. 대학생이 되어 종로의 ‘르네상스’를 들락거리면서부터 나도 덩달아 고전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문득 모차르트와 하이든이 대책 없이 감미롭고 경쾌해지기 시작했고 베토벤이나 브람스가 대책 없이 무겁고 둔중하게 가슴을 울리기 시작했다네. 평생 이어폰을 끼고 지낸 나의 음악 사부인 한형의 후광이었지.
한형,
그리고 그즈음 나와 함께 아파준 한형께 감사하네. 청파동의 어느 대학에 우리들의 ‘그녀’들이 있기도 했지만 우리는 무엇보다도 다른 누구와도 함께 기숙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하숙집을 함께 옮겨 다녔지. 한쪽이 각혈을 시작하자 의사의 휴학과 별거 권유를 무시한 채 우리는 국 따로 반찬 따로 먹기를 맹세했지만 이내 3개월 간격으로 결핵 감염을 확인했고 주사와 투약으로 병원을 함께 들락거렸지. 떨어져 지내는 것보다는 함께 지내는 게 편했노라고 자네는 훗날 그때를 회고했고, 문단 데뷔도 못한 주제에 식민지 시대 작가의 폐결핵 동기들 흉내만 냈노라고 우리는 함께 웃었지. 우리가 앓았던 결핵은 그대로 60년대의 절망과 우울의 상징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어. 억압과 감시, 수배와 투옥, 휴교와 계엄령으로 이어진 이 시기의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혼란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 문과대학의 실속 없는 문학청년의 꿈은 서서히 마모되고 스러지기 시작했지. 문청 시절의 자존심이 대학에서 구겨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비로소 문학은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문학은 더 이상 우리에게 약속의 땅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차리고 말았지.
한형,
창작을 접어두고 대학의 연구실이나 강단에서 우리가 보낸 세월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1970년을 전후해서 문단에 함께 데뷔했고 1980년을 전후해 함께 대학의 교수 자리는 얻을 수 있었지만, 그리고 논문에 각주를 달고 이론서를 꾸려내고 학생들에게 문학론을 강의했지만, 막을 수 없는 허허로움을 어떻게 삭이고 있었는지는 서로가 다 짐작하는 비밀이었지. 화려한 문청 시절은 추억으로 끝나고 동년배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서점가의 중심 코너를 차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다만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고 그 안타까움은 엉뚱하게도 강의실에서의 폭언으로 표출되기도 했어. 사실 어느 해 자네가 대학원 강의실에서 퍼부었다는 당시의 어떤 대하소설에 대한 폄하는 좀 심했었네. 자네는 그때 그 소설을 김승옥의 에 빗대면서 그 작품의 반만큼의 감동도 없는 지루한 다큐멘터리에 불과하다고 당시의 소설을 비난했다지.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열등감을 학생들에게 들키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네. 가령 어느 소설에 대한 평가를 질문받고는 나는 짐짓 ‘너무 길어서’ 읽지 못했노라고, 한 권으로 마칠 이야기를 열 권으로 써내는 일은 창작가들이 저주를 퍼부어야 마땅하다고, 언어의 감각이나 경제성이야말로 서사미학의 종점이라고 갈파(!)했지. 창작보다는 비평에 몰두해버린 우리들의 파행(?)은 그러나 상실감이나 공허감으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네. 자네가 펴낸 은 서사학계의 쾌거이자 성과였어. 이 책은 서사에 관련한 용어를 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개념이 형성된 배경과 이론의 전개 과정을 소논문 형식으로 서술함으로써 서사의 개념들과 그 쟁점들을 아울러 익히게 한 획기적인 책이었지. 이혼하지 못한 부부처럼 창작과 비평의 어색한 동거를 계속하면서 우리는 정년을 맞았고, 문학은 써내는 즐거움 못지않게 향유하는 즐거움도 있다고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었지.
한형,
자네가 보여준 그동안의 편식과 편애와 편파를 나는 존중하네. 그리고 자네의 폭력마저도. 그것은 자네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자 이념이었어. 도선불여악(徒善不如惡), 어쭙잖은 선은 차라리 악함만도 못하다 했던가. 자네는 기름기 있는 음식을 기피했고 과시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했으며 위선을 경멸했었지. 호불호가 분명했고 어떤 제자에 대한 편파적인 애정은 징그러웠고 그 반대 또한 무서울 정도였다니. 그래서 사람들은 자네를 성질 더러운 인간이라 했고 60년 지기인 또 하나의 우리의 친구 오탁번은 그러한 자네를 대책 없는 놈이라 말하곤 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연코 ‘개성’으로 결론지었다네. 이 편파적인 판정을 비난할 사람은 없을 거네. 왜냐면 우리보다 자네를 더 잘 아는 친구들은 없다고 자부하기 때문이지. 자네는 편식했지만 그 음식은 순정했고 편견은 심했지만 결백했으며 사람을 편애했지만 그들을 감식하지는 않았지. 폭력 교수로 몰아세우는 학생 대표를 폭력으로 제압했던 자네의 80년대식 무용담은 지금 들으면 자네는 운도 많이 따랐었지.
한형,
자네가 중환자실로 옮겨가기 하루 전, 자네는 나에게 “당분간은 죽을 기미가 안 보인다”고 껄껄 웃었고 나는 “그래, 우린 아직 갚아야 할 것이 있다” 어쩌고 지껄였지. 그것이 자네와 주고받은 마지막 대화였네. 자네는 그날 담당 간호사에게 생뚱맞게도 멘델스존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지. 잠깐 당황하던 간호사가 이내 그의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봄노래를 좋아하노라고 대답해 자네를 감동시켰고, 자네는 이런 병원이라면 편하게 입원할 수 있겠노라고 기뻐했다지.
한형,
아버지께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의 후유증만을 허락해달라는 아들 근이 녀석의 기도도 헛되이 자네는 의식을 잃은 지 2주일 만에 먼 길 떠나고 말았지. 삼우제를 준비하면서 근이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어. 짧은 묘비명이 필요하다고 했네. 나는 주저 없이 자네의 짧은 소설의 긴 제목을 그대로 옮겨 보냈네.
“이다음 우리는 누구의 가슴에 따뜻한 별빛으로 남을 수 있으랴.”
>>서종택
1944년 전남 강진 출생, 광주 사레지오고를 거쳐 고려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1969년 , 에 첫 소설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 , , , , 등의 창작집과 , , 등의 논저가 있다.
“100세 시대 브라보 시니어 라이프를 위해 어떠한 앙코르 커리어를 준비하고 계신가요?”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조수경 ㈜글로벌아너스 대표는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조 대표는 다년간 ‘Human Resource’ 회사를 경영하며 현재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항공대 중장년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CEO다. 그동안 수많은 시니어들을 만나고, 외국계 대기업 임원진 커리어 상담을 해온 그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앙코르 커리어’를 말하는 이유를 들었다.
앙코르 커리어의 시작은 ‘자기 이해’
“경력이 좋은 분들조차도 은퇴 후에 무엇을 할지 물으면 막연하게 대답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정년퇴직 연령이 연장된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오정’이라는 말이 일반화할 정도로 45세, 50세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 중 1위다. 하지만 100세 시대가 되면서 건강한 액티브 시니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진 상황이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른 나이에 일자리를 잃으면 삶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승승장구하던 인생이 저물었다는 기분은 남은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도 일하고 싶어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영향력도 여전히 발휘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해도 행복한 삶과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서는 보람된 일과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일은 필수적이죠.”
이는 조 대표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항공대와 중장년 아카데미를 만들어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앙코르 커리어 교육 과정을 진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은퇴 후 50년간 브라보 액티브 시니어 라이프를 위한 성공적인 앙코르 커리어 전략을 나눠야겠다는 액션을 취한 것이다.
조 대표는 앙코르 커리어의 시작은 ‘자기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보이는 성공을 추구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볼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러다 은퇴를 맞을 즈음이나 그 후에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인생 전반기 커리어에서는 학벌과 직장 경력이 중요하지만 앙코르 커리어에서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해요.”
인생 전반기에 성공과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았다면 앙코르 라이프에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기에게 잘 맞고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그래서 MBTI, 애니어그램, 디스크 등 다양한 인성·적성 검사 툴과 커리어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객관적으로 자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조 대표의 말이다. 취향, 적성, 능력들을 기술한 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찾는 과정에 참여하다 보면 자신이 누구이고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시니어의 새로운 삶 ‘창직’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좀 더 이해했다면, 이제 두 번째 단계인 앙코르 커리어 핵심인 ‘창직’을 고민해봐야 한다. 창직은 취업 및 창업과는 다른 개념이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세상에 없는 새로운 일자리나 직업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제가 여러 대학교 중장년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시니어 취업 및 창업 과정을 진행했지만 한국에서 시니어를 위한 일자리는 별로 없고, 양질의 일자리 찾기는 더더욱 힘들었어요. 그래서 수십 년간의 사회 경험이 있는 액티브 시니어들은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창직을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죠.”
시니어의 창직은 사회적으로 새로운 직업이나 직종을 창출하는 개념보다는, 시니어들이 자신의 직업 경험과 지식, 경륜을 활용해 잘할 수 있고 취향에 맞는 새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조 대표가 그동안 진행해온 중장년 아카데미도 이러한 시니어 창직을 위한 교육 과정이었다. 연세대 중장년 아카데미에서는 비영리 단체 전문가 양성 과정을 만들었다. 시니어들이 NGO, NPO,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과 같은 비영리 단체를 성공적으로 창직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한국항공대에서는 드론 활용 전문가 창업 과정을 만들었는데 미래 먹거리인 드론(Drone) 신산업과 연계해 시니어들이 창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국내 최초의 드론 창업 과정이었다. 이화여대에서는 국제회의, 국제기구 전문가 양성 과정을 만들었다. MICE 산업 및 국제기구와 연계해 시니어들이 창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많은 시니어 분이 다양한 분야로 창직을 했고 지금도 시니어들의 창직 과정은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새로운 일을 스스로 개척하는 일은 인생 2막을 아주 풍요롭게 해주는 큰 계기가 돼요.”
시니어 창직은 구체적으로 취미를 통한 창직, 봉사를 통한 창직, 창업을 통한 창직, 해외와 연계된 창직 등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취미, 봉사, 창업, 해외와 연계된 창직 전략을 더 많은 시니어들에게 알리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루어질 수 없는 첫사랑 그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를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보내주셨습니다.
글 이근후 이화여대 명예교수
누님. 이렇게 불러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이젠 누니~임 하고 소리 높여 불러도 대답 없을 당신에게 띄웁니다.
생각해보면 내가 참 바보 같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누님 앞에 서라면 아마도 그때 그 시절처럼 한없이 작아질 것입니다.
누님 결혼식 날, 축시를 읽어주기로 약속해놓고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축시를 읽어드리지 못했습니다. 기억나세요? 내가 막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 누님은 차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차 안에서 내게 손을 흔들어줬습니다. 그날 내가 왜 늦은 줄 아세요?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기억인데 이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날은 정말 누님이 미웠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내 여동생의 S 언니가 되면서입니다(그 시절엔 S 언니 동생이 유행이었습니다). 동생의 언니이니 당연히 나한테는 누님이 된 것입니다. 누님과 내 나이 차이는 딱 한 살입니다. 누님이 생겼으니 공연히 즐겁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습니다. 동생을 통해 말로만 듣던 누님을 만난 것은 훨씬 나중 일입니다. 마침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누님과 친척이었는데 조카뻘이었습니다. 그러니 동생으로 인해 누님을 얻고 누님으로 인해 조카를 하나 얻은 셈입니다.
어느 날 친구를 앞세워 누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갔으나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선 다음에 만나면 이런저런 말을 해야지 하면서도 그 말들을 지금까지 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시험에 낙방하고 실의에 빠져 외가 근처에 있던 직지사에 들어가 한 학기 동안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누님 꿈을 생전 처음으로 꾸었습니다. 글쎄요. 나 혼자 간직하고 싶었던 꿈이었지만 지금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누님이 나한테 키스를 해주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누님이 나한테 해주셨습니다. 그 황홀한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깨어보니 허망하게도 꿈이었습니다. 계속 그런 꿈을 꾸고 싶었습니다. 그날의 꿈이 아쉬워 그 꿈을 꾸었을 때의 환경에 맞춰 여러 번 잠을 자보기도 했습니다만 그 후로는 한 번도 그런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누님은 영문과를, 나는 의예과를 다니던 시절이라 만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참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못했습니다. 누님을 만나고 나면 즐거움만큼 아쉬움도 컸습니다. 꿈같은 대학 시절을 보내고 내가 모교 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입니다. 누님은 결혼을 한다며 내게 축시를 부탁했습니다. 나는 기꺼이 승낙했고 당일 낭송하기 위해 축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뭐라고 썼는지 지금은 기억에 없습니다. 시를 쓰고 그림도 그려 시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에 눈물이 떨어져 번져버렸습니다. 축시를 쓰면서 왜 눈물이 났을까요?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나 명쾌히 그 이유를 압니다.
내가 사랑한 누나를 다른 사람이 채갔기 때문입니다. 누나를 채간 사람에 대한 분함과 그 사람을 따라간 누님에 대한 서운함이 범벅이 되어 눈물로 떨어졌습니다(나이답지 않게 참 바보 같았네요). 예식시간에 맞춰 예식장에 충분히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우물쭈물하다 시간이 늦어버렸습니다. 핑곗거리는 충분했습니다. “환자가 많아서 그랬습니다”라는 핑계입니다. 그러나 기실 환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분노와 서운함이 밀려와 무의식적으로 시간을 맞추지 못한 것입니다. 그 분노와 서운함을 직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생각하면 그 뿌리는 깁니다.
내가 대학시험에 낙방해 직지사에서 한 학기 동안 칩거하면서 제일 많이 생각한 사람은 누님입니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누님을 상상하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냥 보고 싶다는 수준이 아니라 결혼까지 하고 싶을 만큼 많은 시간을 누님과 함께하는 상상 속에서 보냈습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항상 얼굴을 붉혔습니다.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면 언제나 얼굴을 붉혔습니다. 결혼을 할 수도 있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항상 나를 통제하는 나만의 도덕적 기준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기준이지만 그땐 정말 바보스러웠습니다. 그 기준은 누님하고 어떻게 결혼할 생각을 하느냐는 자문이었습니다. 죄의식이었습니다. 참 바보스러웠지요. 누님은 내 혈연적 누님이 아니잖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님과의 결혼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생각에 얽매였습니다. 누님하고의 결혼이라니…. 그런 불순한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해선 안 된다는 마음이 서로 상충하는 양가감정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한 학기 동안 가슴앓이만 하다 내려왔습니다. 이런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결혼식 날 예식장에 늦게 도착한 것이 꼭 환자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턴 과정을 마친 뒤 정신과 레지던트 과정 수련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내가 갓 결혼해 신혼생활을 시작했을 때입니다. 그 뒤 20여 년 동안 나는 누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첫아들이 개혼할 때 누님에게 청첩장을 보냈습니다. 아들 결혼식을 준비하다 불현듯 누님 생각이 났던 것입니다.
예식장에서 누님을 20여 년 만에 만났습니다. 반가워서 잡은 손을 한참 놓지 않았습니다. 그날 나는 누님 손을 처음 잡아봤습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습니다. 이젠 누님을 채간 분에 대한 분노도 누님에 대한 서운함도 내려놓은 지 오래돼서 그런지 그날은 그냥 미소를 짓게 하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날은 정말 반가웠습니다. 바보스러웠던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누님 손을 오래 잡고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또 세월이 많이 흘렀지요. 인편에 누님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옛날 생각이 밀려오면서 누님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전화를 드렸지요.
“누님 나 대구 갈 일이 있는데 누님 집에 들려도 돼요?”
“오지 마.”
내 기대와는 다른 답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누님은 아파서 누운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했습니다. 체중이 35kg밖에 안 나간다니 그 모습을 상상하기 싫었습니다.
“대신 전화 자주 해.”
나는 그래서 매일 전화를 했고 옛날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다가 네팔로 봉사를 떠났습니다. 네팔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누님이 돌아가시지나 않을까 내내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네팔 봉사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곧바로 누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벨이 한참을 울리는데도 누님은 받질 않았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곤 전화를 걸 용기가 나지 않아 한동안 걸지 않았습니다. 누님의 부음을 들은 것은 그 후 한참 지나서였습니다. 나는 또 바보짓을 했구나 싶었습니다. 두려워도 참고 전화를 걸어볼걸. 자책하고 또 자책했습니다. 전화를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지금도 내가 그런 바보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당뇨에 좋다는 음식이 왜 좋은지를 생태적으로 밝혀 개개인에게 적합한 음식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
양의학에서는 당뇨를 혈당, 당화혈색소, 인슐린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1형 당뇨병과 2형 당뇨병으로 구분한다. 이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의학에서 당뇨를 소갈(消渴)이라 부른다. 에서 소갈은 ‘내부에 열이 뭉쳐 진액을 말리는 것’이라고 표현돼 있다. 열로 인해 목이 마르고, 열로 인해 음식이 금방금방 소화되며, 열로 인해 땀과 소변 그리고 정액이 몰려 나가 몸의 진액이 마르는 것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소갈을 치료할 때 인체 내부의 열을 식히고, 땀과 소변과 정액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데 집중한다.
당뇨를 이해하려면 먼저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혈당지수는 일정한 양의 시료식품 탄수화물을 섭취한 후의 혈당 상승 정도를 같은 양의 표준 탄수화물 식품을 섭취한 후의 혈당 상승 정도와 비교한 값(포도당 수치를 100으로 잡음)을 말하며, 이에 따라 혈당지수가 높은 식품과 낮은 식품으로 분류한다. 55 이하면 낮은 식품, 70 이상이면 높은 식품으로 분류한다.
메밀의 루틴 성분 혈관에 좋아
여주 열매는 쓴맛이 강해 ‘쓴 오이’라고도 부르는데 혈당지수는 24다. 한의학에서 고과(苦瓜)라고 부르며 성질이 쓰고 차갑다. 무더위를 잘 견디게 해주고 습열을 제거하는 능력이 강하다. 그러므로 몸에 열이 많고 음식을 잘 먹고 살집이 있는 사람의 당뇨에 적합하다. 위장이 약하고 차가워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또 여주는 여름철에 더 적합한 약초라 할 수 있다.
메밀의 원산지는 히말라야, 동북아시아, 바이칼 호 주변 등 추운 지방이다. 에서 메밀은 “위장의 찌꺼기와 막힌 것을 잘 제거한다. 설사, 이질, 복통, 상기 등의 증상이 있으면서 기가 성하고 습열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하다. 만약 비위가 차갑고 약한 사람이 먹으면 원기가 손상되어 수염과 눈썹이 빠지므로, 적합하지 않다”고 표현돼 있다. 그래서 살집이 있고 음식을 잘 먹고 열이 많은 당뇨 환자에게 좋다. 메밀에 들어 있는 루틴은 혈관벽을 튼튼하게 해줘 동맥경화, 고혈압, 뇌출혈 같은 질환에 도움이 되며, 생활습관형 만성질환 개선에도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돼지감자는 국화과 뚱딴지라는 식물의 덩이줄기인데, ‘이눌린(inulin)’이 많이 함유돼 있어 ‘천연 인슐린’으로 알려져 있다. 이눌린은 단맛을 내지만, 소화계를 통해 흡수되지 않은 채 그냥 빠져나가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금기시되는 단맛을 내는 데 쓰인다. 한의학적으로는 달면서 약간 쓰고 서늘한 성질이 있기 때문에 열을 식히는 음식으로 당뇨에 좋다. 돼지감자는 또한 소화를 도와주고 뼈를 단단하게 해준다. 그러나 빈속에 돼지감자를 너무 많이 먹으면 혈당이 과도하게 낮아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해조류, 성인병에 탁월
우뭇가사리, 미역, 김, 다시마, 파래, 톳 등 해조류의 혈당지수는 10~20 사이로 매우 낮다. 해조류는 물을 정화하는 힘이 있어 인체 내에서 피를 정화해준다. 또한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항산화 물질이 많아 LDL 콜레스테롤은 낮추고 HDL 콜레스테롤은 높여준다. 고혈압을 내리고 미네랄을 공급해주며 식이섬유도 많아 대변을 잘 보게 해 독소를 배출해준다. 심혈관계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도 좋다. 일본 오키나와와 전남 바닷가, 제주도가 장수마을로 유명한 것도 해조류의 영향이 크다. 해조류의 약한 짠맛은 정제염의 강한 짠맛과는 작용이 다르게 나타나므로, 해조류로 미네랄을 보충하는 것이 좋다. 해조류는 당뇨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크다. 성인병 환자(고혈압, 당뇨, 통풍 등), 육류를 많이 먹어서 피가 탁한 사람, 머리로 열이 치솟는 사람, 편도선·임파선·갑상선 질환 등 목이 잘 붓는 사람에게도 좋다. 고환 주위가 잘 붓는 사람, 관절에 염증이 잘 생기는 사람에게도 좋다. 특히 현대인들은 음식 과다 섭취로 성인병에 많이 노출돼 있기 때문에 해조류, 염생식물이 더욱 필요하다. 만성피로 역시 피가 맑지 못해서 생기는 증상이므로 해조류, 염생식물이 도움이 된다.
블루베리의 혈당지수는 34다. 블루베리는 진달래과 산앵도나무속 식물인데, 혈당 수치의 급상승을 막고 인슐린 분비를 높여 혈당치를 낮춰준다. 시큼하고 단맛이 있어서 땀, 소변, 정액으로 진액이 빠져나가는 것을 수렴시켜 소갈을 치료하며 뼈와 근육을 단단하게 해준다. 따라서 몸이 마르고 뼈와 근육이 약해지면서 시력이 나빠지고 설사가 잦은 당뇨 환자에게 좋다. 몸에 열이 많으면서 입이 마르면 생블루베리가 좋고, 몸이 건조해지면서 마르는 사람에게는 건블루베리가 좋다.
설사가 잦을 땐 달달한 식초를
시큼한 맛이 나는 음식은 당뇨에 좋다. 피클이나 식초, 레몬주스 등 신맛이 나는 음식은 혈당지수가 매우 낮은데, 레몬이나 식초를 드레싱 재료로 이용하거나 채소, 생선 위에 뿌려서 먹으면 혈당수치를 낮출 수 있다. 식초에는 끝 맛이 쓴 식초와 끝 맛이 달달한 식초가 있다. 육류를 많이 먹거나 열이 많은 당뇨 환자는 전통식초처럼 끝 맛이 쓴 식초가 좋다. 그러나 소화력이 약하고 몸이 마르고 땀, 설사가 많은 당뇨 환자는 흑초, 홍초처럼 끝 맛이 달달한 식초가 좋다. 오미자도 끝 맛이 달아 기침, 소변, 설사가 잦고 기가 약한 사람의 당뇨에 좋다. 다만 당 성분이 너무 많이 들어간 오미자청 등은 좋지 않고 생오미자로 만든 오미자즙이나 말린 오미자로 만든 오미자차 등이 당뇨 환자에게 좋다.
콩류는 당뇨병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신장기능 저하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당뇨병 환자의 뇨단백도 감소시킨다. 인산죽염을 만드는 인산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인 에서는 검고 작으며 반짝반짝 윤이 나고 속이 파란 쥐눈이콩이 당뇨에 좋다고 했다. 그런데 복용법이 좀 독특하다. 쥐눈이콩 생것을 소나무 바가지에 넣고 약수로 불린 후 소나무 절구통에서 소나무 주걱으로 짓찧어서 먹으라 했다. 콩을 짓이기면 비린내가 심해 먹기 어려운데, 소나무 절구통과 주걱을 사용하면 비린내는 제거하면서 콩의 약성은 그대로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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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당뇨병과 고혈압 같은 성인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당뇨 식이요법에 대해 개괄적으로 소개하겠다. 그리고 다음 호에서는 각각의 약초가 당뇨에 왜 좋은지 그 이유를 밝혀 독자들이 자신에게 맞는 약초를 올바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
먼저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에 대한 개념을 알아보기로 하자. 혈당지수는 일정한 양의 시료식품 탄수화물을 섭취한 후의 혈당 상승 정도를, 같은 양의 표준 탄수화물 식품 섭취 후의 혈당 상승 정도와 비교한 값(포도당 수치를 100으로 잡음)을 말하며, 이 지수에 따라 혈당지수가 높은 식품과 낮은 식품이 분류된다. 55 이하면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 70 이상이면 혈당지수가 높은 식품이다.
당뇨에 좋다는 음식이나 약재를 알게 되면 그 음식들에 이 개념을 적용시킬 수 있다. 우선 현미를 살펴보자. 당뇨에 현미가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을 것이다. 현미는 속껍질째 먹는 통곡(wholegrain)이기 때문에 당뇨에 좋은 식품이다. 여기서는 쌀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껍질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사과 껍질은 사과 속살의 영양분이 과잉으로 급속히 쌓이는 것을 막아준다. 배 껍질도 마찬가지다. 현미의 속껍질 역시 쌀알의 영양분이 과잉으로 급속히 흡수되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현미가 백미보다 혈당지수가 낮고, 껍질이 들어 있는 호밀 빵이 밀가루로만 만든 흰 빵보다 혈당지수가 낮은 것이다. 따라서 현미는 당뇨 환자에게 좋다.
고구마는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이라 당뇨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당연히 고구마를 먹을 때도 깨끗하게 씻어 껍질째 먹는 것이 당뇨에 더 좋다. 장을 청소해주고 배변을 도와주는 얄라핀(jalapin)도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고구마에 상처가 생기면 상처를 보호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카이아포(caiapo)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일본의 흰색 고구마 껍질은 2형 당뇨병 환자의 공복 혈당, 총 콜레스테롤,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는 끼니를 때우는 것이 중요했지만, 영양 과잉의 현대인들에게는 청소, 정화, 배설이 더 중요해졌다.
에도 고량진미를 먹으면 당뇨가 온다고 기록되어 있다. 곡물의 껍질은 쓴맛이 나지만 청소, 정화, 배설 기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는 통곡이 중요한 식품이 됐다. 껍질이 있는 식품을 먹으려면 제대로 길러진 안전한 먹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통 고구마는 혈당지수가 낮아 당뇨에 좋고, 감자는 혈당지수가 높아 당뇨에 나쁘다고 한다. 그러나 고구마를 먹는 방법에 따라 혈당지수가 달라진다. 2015년에 경희대에서 시행된 실험에서 군고구마의 혈당지수가 91, 찐고구마가 71로 나왔다. 2012년 미국에서 시행된 실험에서는 생고구마의 혈당지수가 32로 나왔다. 그리고 생고구마의 껍질은 19, 군고구마의 껍질은 34였다. 고구마를 찌거나 구우면 맥아당이 증가해서 맛이 달달해지고 더 찰지게 된다. 찐고구마나 군고구마를 뭉쳐 경단을 만들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찰진 음식은 몸을 보호한다. 그래서 찐고구마와 군고구마는 비위를 보하고, 기력을 더해주며, 추위를 이기게 하고, 얼굴색을 좋게 한다. 높은 고열에 구운 군고구마가 이런 특성이 더 강하다. 그래서 겨울철이 되면 군고구마를 즐겨 먹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보하는 특성 때문에 혈당이 높아져 당뇨병 환자의 간식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당뇨에 좋지 않다는 감자도 마찬가지다. 찐 감자가 생감자나 튀긴 감자보다 혈당지수가 높다. 그러므로 당뇨병 환자는 찰진 음식을 피하고 달지 않게 먹는 것이 좋다.
미국의 앤 위그모어 여사는 20세기 중반에 밀 새싹을 연구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하기와라 요시히데 박사는 보리 새싹을 연구했다. 새싹류는 땅을 뚫고 나오는 힘으로 체하거나 막힌 것을 뚫어준다. 그래서 체기에 맥아를 쓰는 것이고 밀 새싹, 보리 새싹도 막힌 혈관과 탁한 혈관을 뚫어준다. 현미에 싹이 나면 비타민, 아미노산, 효소, SOD(superoxide dismutase) 등 몸에 유용한 성분들이 많아진다. 이런 영양소들은 몸의 자연치유력을 높이고 성인병을 예방하며 몸의 독소를 씻어내는 해독 작용을 한다.
컴퓨터를 처음 샀을 때는 속도가 빠르지만, 이것저것 다운받다 보면 느려진다. 우리 몸 역시 마찬가지다. 다 소화시키지 못한 음식이나 소화가 안 되는 강력한 이물질 등은 독으로 변해 질병을 일으킨다. 곡물의 싹은 막힌 것을 뚫고 독소를 씻어내 우리 몸을 초기화(reset)시켜준다. 열이 많고 너무 잘 먹어서 몸에 찌꺼기가 많은 사람들의 당뇨에는 새싹류가 좋다. 새싹나물을 늘 반찬으로 먹기를 권한다.
메밀도 당뇨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특히 루틴(rutin)이라는 성분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루틴은 모세혈관을 강화하고 혈관 벽을 튼튼하게 해 동맥경화, 고혈압, 뇌출혈 등의 질환을 예방하고 당뇨병, 비만 등 생활습관형 만성질환 개선에도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혈관 벽을 튼튼하게 하면 혈액을 통해 수분과 산소 공급이 원활해지므로 피부가 좋아지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그런데 메밀도 루틴 함량이 많지만, 메밀순은 루틴 함량이 27배나 많다. 즉 새싹은 막힌 것을 뚫는 힘으로 혈액을 정화하기 때문에 메밀순이 당뇨에 더 좋다.
한의학에서 당뇨를 소갈(消渴)이라고 부른다. 에서는 소갈을 ‘내부에 열이 뭉쳐 진액을 말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열로 인해 목이 마르고, 음식을 금방 소화시키며, 땀·소변·정액이 몰려나가 진액을 말리는 것이다.
고구마, 현미, 호밀 등의 껍질은 당뇨의 원인인 열을 없애주고, 진액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당뇨병에 매우 유익하다. 그러므로 당뇨 환자는 이런 식품들을 섭취할 때 껍질째 먹는 것이 좋다. 혈관을 청소하고 소화를 돕는 새싹류도 마찬가지다. 한의학적으로 당뇨의 원인인 열을 식혀주는 작용도 하므로 당뇨 환자는 새싹류를 자주 먹어주는 것이 좋다. 찰지고 단 음식들은 내부의 열을 조장해 진액을 더 말리므로 주의해야 한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의 부치지 못한 편지가 지난해 연말 편집부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열어보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조환익 한국전력공사 사장
인간의 끝이 없는 탐욕의 수렁으로 인해 빚어지는 이승의 혼탁함 속에서도, 평생 맑게 살다 얼마 전 저 세상으로 떠난 대학 과동기인 제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친구는 어느 지방대학 교수이면서 북한학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던 국제정치학 교수였는데, 그간 정부로부터 여러 차례 오퍼를 받았지만 끝까지 강단과 연구실을 지켜온 천생 학자였습니다. 친구는 그의 어머니께서 노산으로 낳은 막내아들로 몸이 약했는데 평생 담배를 염소같이 많이 피더니 결국 60대 중반에 폐암을 얻었고, 힘들게 치료를 해 몇 년 지나 완치가 되었나 했더니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어서 병원에서 몇 달 있다가 한 열흘 전에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저와 몇 명 안 되는 과동기들은 천안의 공원묘지에 가서 그 친구를 전별했고 공원 입구에서 산 자들은 맛대가리 없는 육개장을 한 그릇씩 훌훌 먹고 그를 남겨둔 채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카톡을 통해 그 친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가 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우들에게
먼저 갑니다.
아직 책을 더 써야 하고 그 밖에도 못다 한 일들이 남은 것 같아 아쉬움도 있지만
게으른 천성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으로 자족해야 하겠습니다.
새는 죽음을 앞두고 우는 소리가 더욱 아름답고,
사람은 죽음을 맞이함에 그 마음씨가 선해진다고 합니다.
저 또한 보다 조용하고 겸허해지고 싶습니다.
귀거래혜(歸去來兮·도연명)에서 도연명은 국화꽃 피고 술 익는 고향의 전원으로 돌아갔다지요.
저는 아지랑이 피는 봄날,
장다리꽃 위로 노랑나비, 흰나비 날아드는
어릴 때 뛰어놀던 서울 근교의 밭길을 걷습니다.
그 옆으로 이어지는 숲길도 보입니다.
그 너머로 모든 미련이나 원망, 죄의식도 훌훌 털어버리고
가을처럼 높고 푸른 하늘을 지나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곳으로 표표히 떠납니다.
인생이 한 조각 뜬구름이라 했거니와, 제게는 또한
한 가닥 미풍과 같습니다.
- ○○○ 드림
날짜는 없었습니다. 사후 발송 같습니다. 아마 떠나기 며칠 전 혼수상태 이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썼든지 또는 혼미한 상태에서 구술한 것을 가족이 적어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간 후에 발송해달라고 가족에게 부탁한 것 같습니다.
저는 발송 경위를 알아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 친구가 하늘에서 보낸 것이라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 편지를 보고 울컥 먹먹해지며, 그 친구가 떠나면서 봤을 것 같은 장면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영화 의 주인공 막시무스 장군(러셀 크로우 배역)이 로마의 사악한 왕에게 비겁한 공격을 받고 죽어가면서 그가 보는 장면입니다. 어떤 좁은 문을 지나 고향의 들판과 아름다운 꽃, 그리고 가족들을 파노라마처럼 보는 것이지요. 아마 동양이나 서양이나 하늘로 떠나는 사람은 고향, 특히 어릴 적 놀던 그곳을 찾아가 보는 것 같습니다.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답장을 했습니다.
자네 말마따나 게으르고 느려터진 친구가 갈 때는 왜 그렇게 성미 급하게 떠났나?
지난 5월 어느 날인가 나도 암수술 후 6개월 정기검진 때 대기실에서 기다릴 때
자네가 마침 이런 문자를 보낸 것 기억하나?
“조 사장! 수술 후 회복 잘되고 있으리라 믿소.
나는 지난달에 신우암이 또 생겨 좌측 신장 절제를 했는데
3년 전 수술한 폐암과는 다른 종류인데 모두 담배가 유력한 원인이라네.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면서 한 번쯤 평생 담배 핀 것을 후회해볼까 생각하네.
우리 중고차 잘 유지 보수하며 삽시다.”
이런 내용을 보냈어. 내게 말이야….
그 후 9월까지 몇 번 문자를 주고받았는데 9월 이후 그렇게 급격히 악화될 줄 몰랐네.
그 성미에 아픈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만 결국 나는 자네 병문안도 못 가지 않았나? 어차피 우리들도 하나둘 자네 뒤를 따라갈 것이니 자리 잘 잡아놓게.
그때 가서 너무 고참 행세 하지 말고.
그는 천재였습니다. 제가 1969년에 서울대 문리대(지금은 사회대, 인문대, 이과대를 합친 단과대)를 차석으로 입학했는데
이 친구가 하필이면 같은 과에서 전체 단과대 수석 합격을 해서 나는 결국 수석도 못했고 등록금 면제 대상도 안 되게 만든 악연(?)이 있습니다.
그 당시 민주화 세대였던 우리는 극렬한 학생운동 대열에 들어가거나 일찌감치 고시공부를 해서 정부로 들어가는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민간기업에 취직할 기회도 적었지만 말썽꾸러기 데모꾼 정치학도를 받아줄 회사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제3의 길, 즉 드물게 학문을 하는 먼 길이 있었는데 그 천재는 그 먼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운이 없어서 박사학위도 매우 늦었습니다.
그는 그래도 늘 유쾌했고 잡학박사였고 잡담(농아리)의 대가로 이상파와 현실파가 다 좋아하는 뼈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 친구의 집은 늘 우리의 아지트였지요. 밥도 제일 많이 얻어먹었는데 어머니는 늦둥이 아들 친구라고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주었지요. 많은 추억거리가 있지만 그는 어떤 허세나 재주도 부리지 않고 올곧게 학자로만 일생을 살았고, 도대체 건강을 위한 운동이라고는 전혀 안 했고 담배만 열심히 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인간입니다.
언젠가 그가 속한 학회의 회장으로서 국제학술대회를 한국에서 주최하는데 한전에서 조금만 협찬을 해달랬는데, 명분이 약하다고 못 해준 것이 지금 저는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비슷하겠지만, 저는 매우 우울합니다. 어차피 티끌 같고 미풍 같은 짧은 인생인데, 왜 그렇게 절제 없는 욕망의 화차를 맹목적으로 몰다 온 나라의 전복을 걱정할 정도로 소용돌이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되어야 할 신뢰가 더욱 아쉬운 이때에, 쓸쓸한 만추의 어느 날 오후에, 주변머리 없이 제 가치를 지키다 맑고 아름답게 간
친구 이야기를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
부디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아직도 담배 피시는 분들, 이 글 읽고 한 번쯤 금연 시도해보시지요.
나이 듦은 원숙일까, 낡음일까. 누군가에겐 연륜으로 작용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고집불통의
외통수를 만들기도 한다. ‘불로초’를 찾아 헤매는 ‘영원한 젊음에 대한 집착’도 안쓰럽다. 또 ‘너희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로 나이를 계급장인 양 밀어붙이며 유세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여기 밥 잘 사고 젊은이들과 무람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덕체의 균형을 이루며 사는 진정한 ‘어른’이 있다. 바로 이길원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명예이사장이다. 영원한 현역으로 산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정보화 사회의 키워드인 사이버는 그리스어 ‘키베르니테스(kybernetes)’에서 유래했으며 ‘키’를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로가 젊은이와 다른 것은 인생에서 ‘가상의’ 키를 잡고 저어갈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길원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장(72)을 이 코너 인터뷰 대상자로 섭외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늘 젊은 친구가 모여들고, 일상을 놓지도 않고 꽉 움켜쥐지도 않은 채 여유롭게 ‘키를 제대로 잡고’ 지덕체의 균형을 이루며 사는 ‘어른’이라 생각해서였다. 처음 인터뷰 섭외를 청했을 때,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90까지는 활동해야 하는데 인생 은퇴가 어디 있느냐”며 “나는 영원한 현역이다. 단지 노는 물이 달라졌을 뿐이다”라고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박수칠 때 새로운 것을 시작하라는 것으로요. 옛날에는 인생을 2막으로 나누었지요. 30세까지의 준비기와 60세까지의 활동기로 양분했습니다. 이제는 90세까지 사는 세상. 저는 인생을 3막으로 구분합니다. 태어나서 20대 후반까지가 준비기, 그 이후부터 60대까지가 활동기 그리고 90대까지가 서드 에이지(third age)입니다. 서드 에이지 시기에도 마음먹기에 따라 하고 싶은 것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이길원 이사장은 장년기에는 성질이 불같아 아내와 티격태격 싸움도 자주 하고 밖으로 나돌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역시 배우자뿐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서로 등 긁어주는 배우자가 최고란 마음이 절로 들면서 부부금실도 좋아졌다고 털어놓는다. “건강이 최고로 중요하다”는 그는 아내에게 “아프면 범죄다.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아프지만 말라”며 오후 4시엔 무슨 일이 있어도 손잡고 꼭 헬스클럽엘 간다. 아내 역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절정기”라며 행복해한단다. 자녀들도 자립했고, 이제는 스스로의 삶에서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어 욕망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자유로워진다는 설명이었다.
회장님의 본업 내지 생업은 사업이십니다. 국제PEN클럽 이사장 등 활동을 활발히 하시면서도 시를 500편, 시집은 8권이나 발간하셨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제 본업은 시를 쓰는 일이고 생업이 사업이지요. 그런데 사업가와 시인은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사업이 인간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면, 시 쓰기는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입니다. 서로 통합니다. 제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쓰고 나면 짜릿한 쾌감을 느낀답니다. 시를 쓰면 사물이나 사람을 폭넓은 시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사업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국제PEN클럽 회장을 역임하셨지만 본래 특수인쇄업체인 스티커 회사 ‘태평양그랜드’를 창업, 38년간 운영해오셨지요. 오너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스스로 현직에서 물러나기 쉽지 않다는 말씀을 하시던데요.
“내가 죽고 난 후 회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결론이 간단하더군요. 책상을 빼는 것이 회사 간판을 내리는 것보다 낫다.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성공한 기업이란 나 아니면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 기업이라고 다시 정의를 내려봤어요. 저는 단계적으로 후계자 교육을 시켰습니다. 제 시대 땐 경영자 혼자 장군 멍군 다 일을 했는데, 아들에게 일을 시켜보니 팀워크로, 시스템으로 일을 처리해 나보다 더 잘해낼 것 같더라고요. 내가 며칠 걸려 조사한 일도 반나절에 해내는 걸 보고 물려줘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경영 승계 수업을 할 경우 아버지의 ‘질문’이 ‘심문’으로 변해 갈등을 빚는 경우도 종종 있던데요.
“묻고 기다려준 것이 내 나름의 비결입니다. 일찍부터 ‘너라면 이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 상대라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라는 질문을 습관적으로 했어요. 직원들에게나 고객들에게나 경영자로서 얼굴이 서려면 물려받아 얻은 게 아닌 나름의 업적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부담을 준 말의 전부일 겁니다. 실패를 했을 때도 ‘네가 그러면 그렇지’ 하며 못미덥다고 전권회수를 하기보다는 ‘내가 방풍벽으로 있을 때 실수를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실수도 경영 수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들들과는 편하게 술친구도 하지요.”
삼성 이병철 회장―이건희 회장―이재용 부회장은 3대에 걸쳐 사업 교훈으로 ‘경청’을 물려주었다고 하는데요. 자제분들에게 강조하신 것은 무엇인지요.
“한마디로 신뢰입니다. ‘영업이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파는 것이다, 능력이 야 웬만한 사람들이 다 갖고 있지만 호감을 얻거나 신뢰를 받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사업의 기초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과 누가 사업 파트너가 되겠느냐, 사업의 핵심은 호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임기응변으로 얼렁뚱땅 넘기려 하지 말고 솔직해져라, 한 가지 거짓말을 덮기 위해서 백 가지 거짓말을 하게 되는 법이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지요. 사업을 한 지 10년쯤 되자, 아버지 말이 무슨 말인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겠다고 하더군요.”
2선으로 후퇴해 이른바 ‘뒷방 노인’이 되면 심리적으로 외롭다고들 하십니다. 한 퇴직 오너분은 실무 경영에 참여하고 싶어도 ‘(현직 사장인) 아들이 부르기 전엔 절대 집무실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피눈물 나는 맹세와 마음수련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허허, 저는 할 일이 많아서인지 더 즐겁던데요. 일주일에 한두 번 회사에 나가면 직원들이 모두 좋아해요. 제가 수전노처럼 굴지 않기 때문이에요. 경영 승계를 한 후 부자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아버지가 손을 놓지 못하고 간섭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은 오히려 아들이 ‘너무 회사에 무관심한 것 아니냐’고 제게 불평할 정도입니다. 저는 문단활동, 국제PEN클럽 활동, 망명 북한작가 돕기, 시창작 강의 등 할 일이 많습니다. 돈 문제도 내가 버는 만큼이 내 돈이 아니라, 내가 쓰는 만큼만이 내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마실 때 쓸 수 있을 정도면 되지, 뭘 더 바라겠습니까.”
흔히 나이든 분들은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그들이 어렵다며 피한다고 합니다. 젊은이들과 잘 어울리시는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나이를 먹으면 남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돼야 합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도 찾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기도 해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외로움을 즐길 줄 알아야 사교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즐거워야 남도 즐겁지요. 안 그러면 주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거나 피곤하게 만듭니다. 나이 많다고 거들먹거리며 대우나 받으려 하고 폼만 잡으면 꼰대로 소외당하지요.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저는 모임에 나가면 대우받으려 하기보다는 사람들과 잘 적응할 방법을 찾습니다. 나이 든 선배로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려고 하면 오히려 ‘식욕, 성욕 다 당신들 못지않다. 당신들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젊다’고 농담을 하며 벽을 허물곤 한답니다.”
밥 잘 사고 젊은이들과 무람없이 농담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그를 ‘세상모르는 팔자 좋은 금수저 출신 어르신’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이길원 이사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사업이 잘나갈 때는 있는 약속도 취소하면서 만나던 사람들이 사업이 어려워지자 없는 약속도 만들어 핑계를 대며 피했다. 이런 인간의 온갖 행태를 다 경험하고 목격했기에 그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보며, 조변석개의 인심을 겪으며, ‘사람은 누구나 제 입에 밥알 털어넣기 바쁘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터득했단다.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을수록 외로움을 덜 탄다. ‘자립심=사교심’이 그의 지론이다. 역설적이지만,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혼자서 버틸 줄 아는 내(耐) 고독력이 사교력과 모임적응력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플루트를 새로 배우신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지요.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과학자가 되라고 강권하셔서 화학과로 진로를 정했는데, 막상 가보니 적성에 안 맞지 뭡니까. 또 사업을 할 때는 바빠서 악기를 배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때 풀지 못한 원을 고희가 지난 지금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나이에 뭘 새로운 걸 배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날씬한 플루트 몸매는 내 손놀림에 따라 음계를 달리합니다. 낮은 음으로 속삭이다가 높은 비음으로 유혹하면 저절로 감성에 젖게 되지요. 게다가 휴대도 간편해 노후에 배울 악기로 딱 안성맞춤이라 생각합니다.”
이길원 이사장을 만나는 날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댔는데 그날도 플루트 레슨을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초보 수준이지만 프로 수준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연습할 생각”이라며 “손자들 앞에서 데뷔 음악회를 여는 게 향후 목표”라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인생 3막, 서드 에이지에 대해 쓴 시가 있는지 물어보자 그는 노년의 관조와 여유를 다룬 자작시를 나직하게 암송하기 시작했다. 때론 강한 목소리로, 때론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를 읽어나가는 그에게서 거친 파도와 싸우는 손마디 굵은 어부와 열정적으로 연기를 펼치는 배우의 모습이 느껴졌다. 낭만가객, 음유시인의 면모를 잃지 않고 고독하게 인생의 파도를 헤쳐 온 그에게 커튼콜의 힘찬 갈채를 보내고 싶어졌다. “브라보! 브라비시모, 유어 라이프!”
마침표 연습 2
이길원
내 연기(演技)가
비록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아이야
커튼콜하며 무대 비우는
배우에 갈채 보내듯 박수를 쳐라.
최선을 다한 나의 연기다
막이 내린다고 우는 사람 있더냐.
촘촘히 등 돌려 무대 내려오는 나는
박수를 받고 싶다.
내 서던 무대에 누군가 또 열정을 보일 것
이제는 너의 차례
신(神)이 누구에게나 한 번 주는 배역
비록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라
산다는 건
주어진 역할에 따르는
한 편의 연극 같은 것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중년에 많이 나타나는 고혈압, 당뇨, 뇌혈관 질환, 통풍 등 성인병은 비만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병이 있는 시니어는 다이어트를 적극적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강도 높은 운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은 다이어트를 위해 근육을 태우는 운동을 하는 것이 기본인데, 나이든 사람은 이러한 운동법이 오히려 신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음식 섭취도 칼로리를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시니어들에게는 자신에게 맞는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일반 다이어트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다이어트센터 오픈을 앞두고 있는 선한의원 김한수 원장을 만나 시니어 다이어트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글·사진 이학영 객원기자 mrm97@naver.com
시니어의 비만은 일반 비만과 뭐가 다른가요?
저희는 같은 비만 환자라도 시니어와 젊은 환자는 다르다고 인식해요. 유형도 다르고 다이어트 방법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연세가 있는 분들의 비만을 말할 때, ‘뚱뚱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내부에 노폐물이 많이 끼어 있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 편이죠. 즉 몸무게보다는 내장지방, 체지방 비율에 더 신경을 씁니다. 한의학적으로 몸 내부의 기력이 떨어져서 아랫배 쪽으로 지방이 집중적으로 누적되거나 몸이 무겁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시니어의 비만은 체중감량보다는 몸에 필요한 것들을 보충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다이어트를 할 때 조심해야 할 음식들은 무엇인가요?
오히려 뭐든 기분좋게 드시고, 스트레스 받지 않으면서 몸을 관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다이어트를 이어가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식욕억제보다는 어떤 원인 때문에 음식 조절이 안되는지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70세에 80kg 가까이 몸무게가 나가는 노인분에게는 어떤 조언이 필요한가요?
이 정도면 일반적인 다이어트가 아닌, 치료와 보약 개념이 포함된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근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테고 몸도 잘 붓고, 각종 관절의 불편 증상을 호소하실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약으로 떨어져 있는 기력을 회복시키는 한편 순환력을 증대시켜 몸은 가볍게, 살은 빠지는 방식으로 변화를 유도해야 합니다. 또한 평소 드시는 음식의 종류에 있어서도, 체질이나 증상에 따른 조정이 필요합니다.
시니어분들은 뿌리채소 등 성질이 너무 차갑지 않으면서 기력을 보충할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골다공증,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있다면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요?
이들 환자가 과도한 다이어트를 하면 비만치료 이전에 골다공증이 악화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고혈압과 당뇨병 등이 있는 시니어들이 비만을 치료하겠다고 음식 양을 줄이면 근육이 약해져 오히려 척추와 무릎관절 치료에 애를 먹을 수 있습니다.
시니어의 체중감량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나요?
무리한 운동보다는 평지 산책 수준의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해주시는 것이 더 좋고, 지방과 탄수화물보다는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면서 체력과 기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체중감량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다이어트 기준이 있나요?
다이어트 기준을 결정하는 7가지 요소 중, 타고난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타고난 유전자입니다. 비만 관련 유전자에 대한 검사를 통해 이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비만 유형입니다. 체중이 증가하면서 주로 하체에만 살이 찐다거나, 상체에만 찐다거나, 유독 복부비만이 심하다거나 하는 등 사람마다 비만 유형이 다릅니다. 세 번째는 장내 세균입니다. 실제, 장내 세균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으냐에 따라 비만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신체주기입니다. 여자는 나이대별로 신체주기의 변화가 생기는데, 7세·14세·21세·28세 등 7년 단위로 신체 변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현재 어떤 주기인가에 따라 다이어트 기준이 달라집니다. 이 4가지 요소 외에도 식습관, 생활 패턴, 스트레스 상황 등 3가지 환경적 요소들도 다이어트 기준에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센터는 이런 연구를 기본으로 설립되는 건가요?
그렇죠. 한의학에 국한되지 않고, 유전자 등을 다루는 의학, 장내 세균을 다루는 미생물학, 생활관리를 위한 심리학까지 결합한 다이어트 프로그램입니다. 다이어트와 밀접하게 관련한 각 분야의 학문들이 총집합된 센터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일대일 관리를 해준다는 말씀이죠?
네, 맞습니다. 유전자에 따라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이 있고, 장내 세균 상태에 따라 살이 쉽게 찌거나 살이 찌지 않는 유형도 있습니다. 식습관, 생활패턴, 스트레스로 인해 살이 찌는 유형도 있는데 이런 원인들을 세밀하게 분석해 관리해줍니다.
센터의 주요 프로그램인 Q7은 무엇인가요?
Q7은 Question, 즉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7가지를 물어보고 따져본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비만을 결정하는 7가지 인자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체크하고, ‘몸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해 살이 찐 이유를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요소들을 진단, 분석하고 관리하기 위해 한의사, 의사, 미생물학 박사, 다이어트 매니저, 심리치료사 등 각 분야별 전문가들로 연구진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Q7 다이어트는 각 분야별 전문가를 통해 비만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 분석하고 그에 맞는 효율적인 솔루션을 제공해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가장 건강한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이어트를 고민하고 있는 시니어를 위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살을 빼면 당장은 체중이 줄어도 금세 살이 다시 찌는 요요현상을 겪게 됩니다. 특히 운동량이 부족한 시니어들은 살이 찐 정확한 원인을 찾아 치료하고 적절한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 꾸준히 실천해야 합니다. 시니어 다이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즐거운 다이어트’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시니어의 비만을 말할 때 ‘뚱뚱하다’고 표현하지 않고 ‘내부에 노폐물이 많이 끼어 있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몸의 기력이 떨어져 아랫배 쪽으로 지방이 집중적으로 누적되기 때문이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감격에 젖은 백전노장은 손을 번쩍 들어 객석과 무대를 향해 감사 인사를 했다. 정확히 27년 만의 커튼콜. 과천시민극장의 연극는 백발이 돼 돌아온 노배우의 재기와 시민들의 소망을 이루어준 ‘꿈의 무대’였다. 두려움을 떨치고 조명 앞에 당당하게 선 그들만의 이야기는 밤새도록 끊일 줄 몰랐다.
과천시민극장의 다섯 번째 연극
작년 12월 1일 과천시민회관 소극장. 공연을 이틀 앞둔 극장 안은 긴장감과 설렘이 감돌았다. 소품을 나르고 무대를 걷는 시민배우들의 모습에서 전문배우 못지않은 집중력마저 느껴졌다. 과천시민극장은 작년까지 5기수의 시민배우를 배출했다. 작년 9월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5기 시민배우 12명을 선발했고 출연자가 많은 의 특성상 시민배우 1기에서 4기까지 총출동해 공연을 완성했다. 시민극장이라 해서 수준 이하일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 극단 ‘모시는 사람들(모들)’의 전문배우들이 시민배우를 도와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백제예대 방송연예과 서민희 교수의 연출, 극단 모들 이재훤 배우의 연기 지도로 전문성을 한층 올렸다. 오랜 호흡을 맞춰온 과천시민극장의 음향과 조명, 무대 스태프 또한 꼼꼼하게 무대를 챙겼다. 과천시민극장의 드림팀은 직장인·주부·선생님·학생, 20대에서 60대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배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무대가 그리웠던 그가 돌아왔다, 연극배우 전한원
본지 지난해 11월호 ‘브라보가 만난 사람’에서 찾아뵀던 김정숙 연출가는 인터뷰 당시 시니어 연극을 이야기하다 과천시민극장에 참여하는 60대 배우를 언급한 바 있다. 젊은 시절 연극을 그만뒀던 김정숙 연출가의 극단 선배가 시민배우로 돌아왔다고 했다. “인생이라는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이제 진짜 배우가 될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가 바로 무대감독 역의 전한원(65)이다. 전한원은 1989년 연극 공연을 마지막으로 연극계를 떠났다. 이후 평범한 가장과 직장인으로 살아온 그는 은퇴 후 그렇게나 그리워했던 무대로 돌아왔다. 시민극장을 통해서다.
“연극을 그만둔 뒤 대학로를 지나갈 때면 고개를 돌리고 다녔습니다. 아예 그곳에서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어요. 집에서는 드라마도 안 봤습니다.”
이 작품에서 무대감독은 이 연극을 이끌어가는 주요 배역. 30년 가까이 무대를 떠났던 그에게 맡겨졌다.
“부담스러웠어요. 대본을 딱 읽어보고 이것은 내가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배역이 주어지고 나니까 두렵고 떨렸습니다. 배역 소화를 잘 할 수 있을까? 원래 제가 자신감 덩어리인데 말입니다(웃음). 연습 과정에서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고 또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옛날에 내가 배우였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조금 편해졌습니다.”
는 사람이 죽고 사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기에 삶의 깊이를 아는 배우가 필요했다. 무대감독은 전한원이 적역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노련했고 연기는 더욱 깊어졌다. 은퇴 뒤 넉넉한 웃음과 기품 또한 넘쳤다.
이제 연극이든 영화이든 무조건 도전할 겁니다
에서 의사 깁스 역의 권용각(57)씨는 충훈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잘생긴 이목구비에 나긋하고 지긋한 목소리에 정확한 발음까지. 배우가 아닌 교사가 본업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권용각씨도 한때 연극과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국어국문학이 전공이지만 대학교 때 연극을 했습니다. 졸업하면서 국립극단에 들어가 연출을 하다가 나왔어요. 과천여고에서는 연극부를 만들어 학생들이랑 연극도 했고요. 대본을 외워 아이들과 하는 독서모임에서 모노드라마 연기도 했습니다. 시민극단은 우연히 오디션 공고를 보고 들어오게 됐습니다.”
작년 2월 권용각씨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심근경색이었다.
“제가 수술을 한 다음 심근경색으로 죽은 사람을 세 명이나 봤습니다. 아플 때 생각한 것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보자’였습니다. 그래서 시민배우에 도전했어요. 지금 너무 행복해요. 무대 위에서 걸어 다니는 게 너무 좋아요. 저는 바로 시작할 겁니다. 안 되면 영화 엑스트라나 하고 다니지요 뭐.”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서 대기할 때 앉아 있었던 의자와 자신의 그림자를 카메라에 담던 권용각씨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덤덤하게 무대를 거닐던 모습. 이제 아이들의 선생님에서 만인의 배우로 거듭날 것이다. 과천시민극단에서 만난 시민배우들은 직업만큼이나 각자의 이야기 또한 다양했다. 배우의 꿈을 이루고 싶은 전업주부, 전직 연극배우였다가 아이를 다 키우고 다시 돌아온 여배우, 은퇴 후 배우가 되겠다는 직장인, 요가 선생, 방과 후 선생님,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 속에 농사를 짓다가 오디션에 참가한 배우 등 과천시민극장의
는 사연과 사연이 만나 아름다운 공연을 만들어냈다. 행복한 시민배우들의 공연, 올해 또 이어지기를 바란다.
☞연극
연극 는 미국 북동부 뉴햄프셔 주의 그로버즈 코너즈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1901년에서 1913년 사이에 일어난 평범한 일상을 의사인 깁스와 지방신문 편집장 웹의 집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연극이다. 극중 주인공인 조지 깁스와 에밀리 웹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죽음을 통해 담담하지만 소중한 하루하루를 일깨워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