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특별기획] 창간 2주년 기념 ‘액티브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설문 #3
- 현 시대를 살아가는 액티브 시니어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본지의 ‘대한민국 액티브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설문조사결과를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어떨까? 통계학에서 한 집단의 변화를 시차를 두고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좀 더 정확한 비교를 위해 19세 이상 성인 평균의 결과 비교도 함께 진행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지금의 액티브 시니어는 과거보다 능동적이며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표현해, 나이에 비해 ‘젊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흔히 표현되는 ‘뒷방 늙은이’ 같은 삶은 거부하고 있는 것. 또 폭넓은 사회활동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결과도 보이고, 적극적인 소비활동도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다. 전체 9가지 조사항목 중 가장 극적인 변화를 나타낸 것은 ‘패션 관련 기사나 잡지를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이 항목에 2006년에는 13.1%에 불과했던 액티브 시니어의 응답이 2016년에는 26.2%로 정확히 두 배 높아졌다. 반면 전체 성인 평균은 20.5%에서 19.8%로 감소했다. 이와 유사한 ‘화장품이나 개인적인 물품을 사기 위해 돈을 많이 쓰는 편이다’라는 항목에도 액티브 시니어는 12.3%에서 26.4%로 두 배 이상 증가한 응답률을 기록했지만, 전체 성인 평균은 14.6%에서 19.7%로 소폭 상승했다. 인터넷을 통해 친구를 사귄다는 응답은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10.1%에 불과했던 2006년 액티브 시니어의 응답은 2016년 28.3%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같은 해 성인 전체 평균(27.9%)보다도 높은 수치다. 이 결과들에 비춰보면 액티브 시니어들은 활발한 사회활동을 위해 본인을 꾸미는 데 적극적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고, 이런 태도들이 교우관계 확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유행에 대한 수용 태도 역시 달라졌다. 2006년에는 12.8%만 유행을 빨리 받아들인다고 답했던 액티브 시니어들이 2016년에는 28.8%의 응답률을 보였다. 반면에 전체 성인 평균은 16.6%에서 22.6%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광고를 잘 기억하는가?’라는 질문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2006년에는 전체 성인 평균(23.8%)에 비해 액티브 시니어의 응답이 더 낮았지만(19.8%), 2016년에는 액티브 시니어가 30.8%의 응답률을 보여 성인 전체 평균(28.4%)에 비해 높았다. 남의 평가에 대한 고민은 전체적으로 증가했다. 액티브 시니어는 16.8%에서 49.4%로 증가했고, 전체 성인 평균은 20.8%에서 42.5%로 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0년 전에 비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식한다는 의미다. 여가생활에 많은 돈을 쓴다는 응답이나 비싸더라도 분위기 있는 음식점을 선호한다는 응답 역시 10년간 대폭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 성인 전체 평균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이는 액티브 시니어의 의식에 많은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대간, 계층간 소득과 소비의 차이가 커진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되기도 한다. 숙명여자대학교 원격대학원 실버산업전공 김숙응 교수는 조사결과 확인할 수 있었던 액티브 시니어의 10년간 변화를 이렇게 분석했다. “외모 지향적이거나 패션 등 유행에 민감한 것은 시니어들이 독립된 소비주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친구를 사귀거나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을 쓰고, 제품 구매 시 조언을 참고하는 것은 교육수준 향상을 바탕으로 자주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타인에 대해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고요. 여가생활에 많은 돈을 쓰고 광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가처분소득의 증가에 따른 적극적인 소비태도로 보입니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에 따른 경제생활, 생활수준 향상에 의해 개인의 의식과 행동양식이 급변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 2017-01-06 14:48
-
- [김성회가 만난 CEO 스토리] 박시호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 "은퇴, 충격이 아닌 감격으로 맞이해라"
- 은퇴 이후 인생 2막을 삶의 황금기로 만들 것인가, 황혼기로 만들 것인가. 황혼기와 황금기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충분히 쓸 만큼 모아놓고 쟁여놓은’ 돈일까? 그보다 중요하고도 필요한 것은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는 은퇴 멘탈 갑, 즉 새로운 은퇴 마인드다. 과거 경력, 직장, 직책의 아우라를 들어내고, 자기의 진짜 정체성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외칠 수 있다. 100세 시대를 앞둔 요즘, 은퇴 이후의 시기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인생의 3분의 1을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그래서 우리는 은퇴를 충격이 아닌 감격으로 맞고 싶다. 끌끌 혀를 차며 밸이 배배 꼬인 채 훈수나 푼수를 떠는 뒷방 노인이 아닌 적극 참여하는 현장의 선수로 사는 롤모델 인생 선배를 만나고 싶다. 퇴직 5년 차가 아니라 진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취업 5년 차’라는 박시호(63)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인디언 핑크색 니트 상의에 옅은 브라운색 패딩 점퍼, 흰 바지 그리고 빨간색 운동화에 무스로 바짝 세운 밤톨머리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타난 그는 과거 CEO의 물이 쏙 빠진 사람처럼 보였다. 그에게선 인터뷰 약속 장소인 ‘신촌’의 청춘물결에서 한 치도 뒤처지지 않는 것을 넘어 자유인의 바람마저 느껴졌다. 2003년부터 행복과 관련한 앤솔러지를 사진에 담아 매일 아침 이메일로 배달하던 일은 이제 취미와 봉사에서 ‘주업’으로 승격됐다. 그 외 강연과 원고 쓰기, 사진 찍기 등등 요즘엔 여행기획가로서 행복을 오프(0ff)에서 실현하는 일에까지 관심사를 확장하고 있다. 그의 하루 24시간은 풍요롭다. 은퇴 괴담은 현실적으로 ‘밥’ 이야기로 시작하곤 합니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퇴직 가장의 현실을 표현한 단어 중에 ‘삼식이(집에서 삼시세끼를 먹는 가장)’란 호칭이 있는데요. 많은 퇴직 가장들이 “이러려고 지금까지 뼛골 빠지게 일했나”라며 피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감정계좌를 깡통계좌로 만들어놓고 만기일 됐다고 복리로 쳐서 가장 높게 대우해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집밥만 우기지 말고 칼국수집이든 냉면집이든 같이 맛집 순례라도 해보세요. 찜질방 같이 가서 놀자고 해보세요. 절로 삼식님이 될 겁니다(웃음). 가장이 건강해야 집안을 끌고 간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부인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집안이 유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편 혼자 행복하고 즐거우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퇴직 이후 집에서 대우받는 것은 남편 하기 나름이지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부부입니다.” 그는 “체력관리한다며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매일 등산 가던 친구가 있었다”며 부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석에 누운 후 그 친구가 “부인이 건강할 때 산에 같이 갈걸, 왜 나 혼자 갔을까” 하며 땅을 치고 후회하더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행복은 거창하고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작은 데, 평범한 일상에,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말하는 그는 여러 일정 중에서 부인과 맛집 순례 후 하는 공원산책이 그날의 하이라이트라고 덧붙였다. 신혼 때처럼 전기가 찌르르 통하지는 않지만 40년 이상 살아온 인생 동지와 함께하는 ‘침묵의 공유’야말로 가장 든든한 의지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현직에 계실 때보다 더 활기차고 멋져 보이십니다. 부부 금실에서 비롯된 에너지 말고 비결이 있습니까. “현직에 있을 때보다 몸무게를 10kg 정도 뺐어요. 회식이나 약속을 줄이고 운동을 하니 절로 빠지더군요. 제가 BMW족입니다. 버스(Bus)-지하철(Metro)-워킹(Walking),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많이 걷습니다. AMP 동기 부부동반 모임에 갔는데 집사람이 아무 정보 없이도 동기들 중 현직, 퇴직파를 족집게처럼 맞히더군요. 은퇴하면 현직 때의 아우라가 사라져 갈기털 빠진 사자처럼 되기 쉽습니다. 퇴직할수록 용모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퇴직하니 공식적 일 없다고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거나 등산복을 평상복으로 입고 다니면 안 됩니다. 오히려 더 산뜻하게,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어야 해요. 뚝배기보다 장맛이 아니라 겉볼안이 더 맞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 이미지 판단이 6초 만에 끝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예전엔 아우라가 우러났다면 이제는 만들어야 한다고나 할까요. 퇴직할수록 의관이 생명이란 게 제 지론입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탓하지 말고, 먼저 남이 알아주도록 갖춰 입을 필요가 있습니다.” 은퇴 준비에도 선행학습이 필요할까요? “일관된 인생 계획을 세워서 현직 시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은퇴의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합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즐기기 위해서라도. 은퇴 이후의 공부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쫓기는 공부가 아닙니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 뭐든 좋습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뛰어오던 트랙을 벗어나는 걸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을 없애야 합니다. 등산도 높은 산을 오르려면 동네 산부터 오르며 준비하지 않습니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은퇴 후 뭘 하면 좋을까 늘 염두에 두고 그 일을 조금씩 준비해둬야 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준을 향해 공부하십시오. ‘지금 이 나이에…’ 또는 ‘시간이 없다’ 말하지만 그것은 모두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싫어해서 하는 핑계일 뿐입니다. 취미든 기술이든 뭐든 배움은 운명까지도 바꿉니다. 공부를 하고 도전하다 보면 전문가 반열에 오르고, 그것이 새로운 세상의 지평을 열게 해줍니다.” 실제로 미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은퇴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대답한 은퇴자가 41%나 되고, 대부분 단조롭고 지겨운 일상과 목적 상실 및 지적 자극의 결여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은퇴에서 재정 설계 못지않게 필요한 것이 시간 설계, 즉 은퇴 후 동기 설계임을 보여주는 통계다. 행복이란 것이 요즘에야 흔한 담론입니다만. 행복편지를 시작한 2003년에는 요즘처럼 유행하는 화두가 아니었을 듯한데요. “저도 욕심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정치도 해보고 싶었고, 돈도 많이 벌어보고 싶었지요. 그런데 특별조사부장을 하며 정치인, 재벌 총수들의 영고성쇠한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지은 고충 건물에서 피고인으로 수사를 받아야 하는 기업 총수를 보며 권력, 금력의 무상함을 보았습니다. 또 부도가 나 자살을 한 금융인,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표변하는 인심의 허망함을 한꺼번에 압축해봤어요. 권력도 금력도 아닌 세상에서 진정으로 변치 않고 행복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지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저의 어렸을 때부터의 꿈인 그림그리기를 시작했지요. 그러다 점차 재능의 한계를 느껴 사진으로 바꾸게 된 것이고요.” 그는 사진을 공부하면서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쳇바퀴 같은 삶을 바쁘게 살던 그가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을 애써 찾으며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번 주엔 이 꽃을 이런저런 각도에서 찍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단다. 또 사진을 찍으면서부터는 ‘집에 꿀단지를 묻어놓은 것처럼’ 퇴근을 기다렸고, 주말 새벽마다 강남고속터미널에 가서 꽃을 사는 행복한 마음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단다. 지인들에게 꽃 사진 선물을 하고, 그들이 감사인사를 전해오고, 급기야 행복편지까지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지인 700명 정도를 엄선해 보내는 행복편지는 감동적인 내용으로 ‘작지만 강한’ 행복 공유의 플랫폼이 됐다. 직장 후배들에겐 멘토로 여전히 환영받는 ‘퇴직 상사’라는 말씀 들었습니다. 그 비결이 있습니까? 어떤 분은 퇴직하니 알던 사람들 중 절반은 모른 척하며 떨어져 나간다고 ‘동선하로(冬扇夏爐, 여름 난로와 겨울 부채라는 뜻으로 철에 맞지 않는 물건을 이르는 말)’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하시던데요. “하하. 저는 연락 안 해도, 거절당해도 고까워하지 않습니다. 또 조금도 불편하게 하지 않고요. 그러니 오히려 환영받네요. 잘해주면 고맙지만, 못 해주는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고까운 마음이 전혀 안 생깁니다. 상대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찾더라고요. 부하직원들이 초대하면 병권을 맡깁니다. 예컨대 동석할 사람을 상대에게 정하라고 선택권을 주는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정해 만나자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또 그 밥에 그 나물인 예전 사람들만 만나면 재미없는데 후배들이 새로운 사람 소개해주니 저도 좋지요. 폐쇄성을 나부터 없애야 합니다. 자기를 열고 세상에 맞추면 세상살이 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자기를 낮추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또 상대가 누구든 불편하지 않도록 마음을 더 내어 배려해주는 것이 존중받는 비결입니다.” 박 이사장께서는 퇴직 후 제일 먼저 할 일로 명함 만들기부터 권하신다면서요. “은퇴한 사람들이 모임에 나가면 제일 먼저 당황하는 게 명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명함이 없으면 몸을 꼬며 온갖 군말을 갖다 붙여요. ‘제가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안 돼서요’ 등등. 스스로도 초라하고 서로 당황하기 쉬워요. 명함을 만들려고 구차한 자리 부탁하기도 하거든요. 당당한 명함은 당당한 자기정체성과 통합니다. 이제 과거의 후광은 벗어던지고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명함을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하다못해 ○○를 연구하는 사람 ○○○라는 명함이면 어떻습니까. 말로 구구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자기정체성을 잘 드러내줄 수 있는 한 줄짜리 문장을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스스로 초라해질 필요 없습니다. 명함 주고받는 게 부담스럽고 부끄러워지면 대외활동은 끝나는 겁니다. 그만큼 중요해요. 아날로그 구세대에겐 직책과 직장이 필수이지만 젊은 디지털 세대는 그보다는 업, 좋아하는 일,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사진이면 사진, 서예이면 서예, ‘이것에 대해선 나한테 물어봐. 내가 설명해줄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전문 분야가 있다면 더 좋고요.” 박시호 이사장의 명함엔 사진가, 행복경영연구소 이사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연락처(전화번호와 이메일)가 간결하게 들어가 있다. 퇴직 후 부딪히게 되는 어려운 점 중엔 경조비 부담도 빠지지 않더군요. 국민연금 100만원 이상을 받는 사람들의 가계부에서 경조비 비중이 16%나 됩니다. 의료비보다 높은 비중입니다. “퇴직 상태에서 대소사가 한꺼번에 밀려들면 아무래도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요. 은퇴한 사람들의 고민이 ‘경조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이지요. 체면과 얽히고설킨 과거의 인연 때문이지요. 저는 기분, 체면보다 기준을 분명히 합니다. 과거의 주고받은 인연보다 1년간의 교류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아이들 결혼 때의 방명록도 그 자리에서 없애버렸습니다. 1년 동안 만나지 않은 사람은 교류가 없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연락이 와도 경조사에 가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한 사람만 부르고, 성의만큼 성의를 표하자. 허례허식은 없애자는 게 제 주의랍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다르지 않습니까? 동창회 단체 공지에 올랐다고, 안 하면 욕먹는다고 찜찜해하면서 자주 보지도 않는 사람의 경조사까지 챙겨야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욕을 먹기도 해요. 그러나 욕을 먹더라도 자신의 기준을 지켜나가는 맷집과 용기도 은퇴 멘탈 갑의 마인드 중 하나입니다.” 박시호 이사장은 은퇴지능개발의 핵심 키워드로 배움을 꼽았다. 기술이든 지식이든 뭐든 배우고, 남의 눈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없도록 하는 것. 그는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을 나눠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며 이 모든 것을 합친 것이 여행이라고 했다. 앞으로 여행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할 계획이라고. 지난 경험보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할 때 그는 더 설레면서 반짝였다. 은퇴 이후 새로운 삶의 설계와 도전도 마찬가지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 신세계에 도전할 수 있다. 마음속에서 불을 뿜는 두려움의 용을 처단하고…. 박시호 이사장이 말한 ‘배움’은 구태의연함을 처단하고, 마음속에서 불을 뿜는 용을 무찌르는 날카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 2017-01-06 14:47
-
- [특별기획] 창간 2주년 기념 ‘액티브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설문 #2
- 5070 시니어 매거진 는 최근 우리 사회의 중심축을 담당하며 주목받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고, 액티브 시니어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을 알아보기 위해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0대와 60대 32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이 중 본인 소득이 있고,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를 ‘액티브 시니어’로 정의했다. 여기에 액티브 시니어 중에서 연평균 가구소득이 1억원 이상, 즉 월 소득이 830만원 이상인 액티브 시니어들을 따로 구분했다. 이들을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라고 이름 붙이고 별도의 통계자료를 산출했다. 설문에 참여한 총 403명의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사고방식이나 구매패턴 그리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방법에서 50~60대 전체나 일반 액티브 시니어와는 많은 차이를 보였다. 활자 매체 활용에 익숙 이번 전체 조사에서 고소득 시니어층인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가 대조군과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났다. 즉 정보를 어떤 태도로 대하며, 어떤 방식으로 접하고 또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관한 조사였다. 만약 성공에 관한 교과서로 불리는 스티븐 코비의 이 국내에서 다시 쓰인다면 이 부분을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쉽게 예상할 수 있듯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모든 미디어를 접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일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주간지, IPTV, 인터넷 등 모든 분야에서 이용률이 높았다. 심지어 라디오 청취도 적극적이었다. 다만 뒤처진 분야를 꼽자면 바로 TV와 케이블TV였다. 이러한 조사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보편적으로 ‘바보상자’라고 이야기하는 TV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거부감이 있지만, 활자 매체와는 익숙한 세대. 그러면서 첨단 미디어에도 반드시 적응하고 마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성공의 잣대를 돈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해도, 조사결과를 분석해 보면 성공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거뜬히 소화 다른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영화 역시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84.8%가 최근 1년간 극장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반면, 50~60대는 56.2%에 그쳤다. 라디오 청취에 대해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49.7%가 응답해 27.4%가 응답한 성인 평균과 차이를 보였다. 인터넷 활용도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가 높았다. 50~60대는 64.0%에 그쳤지만,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88.0%에 달했다. 이 부분은 다른 조사에서도 반영이 됐는데, ‘인터넷은 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라고 답한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43.9%로 역시 50~60대 평균(23.2%)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인터넷과 따로 떼어 말할 수 없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활용도 마찬가지. 이들의 SNS 활용은 48.7%로 절반 정도는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일반 50~60대는 23.2%만이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어떤 SNS의 활용도가 높을까? 조사결과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가 가장 좋아하는 SNS로 네이버 밴드(68.1%)가 꼽혔다. 카카오스토리(59.6%), 페이스북(36.9%), 블로그(13.5%), 인스타그램(7.6%)은 그 뒤를 이었다. 네이버 밴드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네이버 밴드의 기반인 폐쇄적 동호회 활동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내가 아는 지인들로 한정지어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더 편안해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 젊은층이 선호하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활용도 눈에 띈다. 이는 해외 기반의 SNS에 거부감이 없고, 인적 관계를 국내에 한정짓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50~60대의 페이스북 이용률은 20.4%, 인스타그램의 이용률은 1.8%에 불과했다. 여가생활도 경제력 따라 차이 커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경제력과 직결되는 여가생활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소위 아직까지는 귀족 스포츠로 분류되는 골프가 대표적.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 중 10명 중 4명은(38.7%) 최근 1년 중 골프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이와 유사한 41.4%가 최근 1년간 골프웨어를 구입했다고 답했다. 연간 평균 라운딩 횟수는 16.49회였다. 또 해외 골프에 대한 경험 역시 15.6%로 적지 않았다. 뮤지컬이나 미술 전시회와 같은 문화생활에서의 차이는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최근 1년간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21.8%가 뮤지컬을 관람한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전체 50~60대 중에서는 2.9%만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숫자의 의미를 다시 계산하면 3299명 전체 50~60대 중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를 제외하면 뮤지컬을 경험한 시니어는 단 몇 명에 불과하다는 뜻이 된다. 엄청난 차이다. 시내 뮤지컬 극장에서 50~60대 시니어를 만난다면 그는 가구소득 1억 이상의 고소득자라고 단정지어도 거의 틀림이 없다고 간주할 수 있다. 다른 문화 분야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비슷하게 나타난다. 독서량도 차이가 난다.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의 절반 이상(50.9%)이 최근 1년간 도서 구입 경험이 있다고 했지만, 50~60대는 18.2%만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1년 평균 구입 권수 역시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8.9권이라고 했지만, 50~60대는 5.2권에 불과했다. 독서량 역시 차이가 나서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최근 1년간 10.5권을 읽었다고 답했지만, 50~60대는 6.3권을 읽었다고 답했다. 1인당 평균 여행 경비를 묻는 질문에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평균 343만원을 사용한다고 말한 반면, 50~60대 전체는 평균 201만원이라 답해 상대적으로 빠듯한 경비로 해외여행을 하고 있었다. 백화점에선 ‘귀한 손님’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의 소비 성향 역시 남달랐다. 물건을 구입할 때 인터넷의 정보를 많이 참고했고(40.8%), 모르는 정보가 있으면 검색해본다고 했다(52.5%). 또 신문이나 TV에서 본 제품을 검색해본다는 의견(42.3%)도 모든 대조군에 비해 가장 많았다. 즉 물건 구매를 하기 전에 충분히 정보를 확인하고 꼼꼼하게 검토한다는 의미다. 제품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확인하지만 구매는 직접 한다. 장소는 바로 백화점. 최근 3개월 이내 백화점에서의 구매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의 76.2%가 그렇다고 답했다. 50~60대 전체(35.2%)는 물론, 액티브 시니어(37.6%)보다도 두 배 이상 높았다. 월 1회 이상 백화점을 이용한다는 응답 역시 확연하게 높았다(52.9%). 50~60대 전체는 15.7%에 불과했다. 이런 구매 패턴은 곧 실적으로 나타나서, 백화점 주요 고객을 지칭하는 VIP 혹은 MVG에 해당하는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는 20.2%에 달했다. 백화점별, 지점별로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갤러리아 백화점 VIP는 연간 2000만원 이상 구매실적이 있어야 하고, 롯데백화점 MVG의 경우는 1500만원 이상(본점·잠실점 2000만원)이 되어야 한다. 이런 대우는 은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은행 VIP 고객인가를 묻는 질문에 프리미엄 액티브 시니어의 55.7%가 그렇다고 답했고, PB센터는 44.2%가 이용한다고 답했다.
- 2017-01-05 14:34
-
- [특별기획] 창간 2주년 기념 ‘액티브 시니어 라이프스타일’ 설문 #1
- 5070 시니어 매거진 는 최근 우리 사회의 중심축을 담당하며 주목받고 있는 ‘액티브 시니어’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고, 액티브 시니어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을 알아보기 위해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0대와 60대 32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이 중 본인 소득이 있고,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한 응답자를 ‘액티브 시니어’로 정의했다. 조사에 참여한 액티브 시니어는 총 707명이었다. 한국리서치는 조사결과 분석 과정에서 더 다양한 결과 도출을 위해, 19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와 비교분석을 함께 진행했다. 10명 중 6명 “나는 행복한 사람” 답해 대한민국 액티브 시니어 그들은 누구인가. 한국리서치와 본지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자신감’과 ‘행복’. 지금까지의 삶을 통해 이뤄낸 인생의 결과물들에 만족하고, 그 과정에서 쏟아부운 본인의 노력을 인정하는 삶. 또 인생의 결과물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시기의 사람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 ‘사는 것이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50~60대 전체는 절반이 안 되는 43.5%만이 그렇다고 답했지만, 액티브 시니어들은 이를 훨씬 넘는 59.5%가 행복하다고 답했다. 라이프스타일을 묻는 질문에는 48.4%가 미래를 걱정하기에 앞서 현재의 삶을 즐긴다고 답했는데, 50~60대의 경우 성인 평균(40.2%)보다도 못 미치는 35.6%에 불과했다. 인생의 도전이나 변화,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응답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보통의 50~60대는 새로움의 추구에 소극적(38.7%)인 반면, 전체 성인 평균은 이보다 다소 높게(45.0%) 나타났다. 하지만 액티브 시니어는 변화 추구에 적극적인 태도(58.8%)를 보였다. 이렇게 행복한 삶을 즐길 수 있는 배경에는 나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할 수 있는 여유와 의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가생활에 많은 돈을 쓰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액티브 시니어의 36.8%가 그렇다고 답했다. 50~60대 평균이 22.2%에 불과한 것에 비해 대조적이다. 나에 대한 투자가 아깝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비슷하다. 50~60대(30.5%)에 비해 40.2%는 나에게 쓰는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가짐은 취미활동을 위한 동호회 활동으로 이어지는데, 실제로 ‘이러한 활동을 정기적으로 하는가?’라는 질문에 43.0%가 그렇다고 답했다. 역시 평균적인 50~60대(33.3%)에 비해 높았다. 비싸더라도 건강한 먹거리 선호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 대형마트나 할인매장 등 유통업계에서 유기농 제품이나 건강제품 매장의 비중을 높이려는 움직임은 괜한 수고가 아니었음이 증명됐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비싸더라도 유기농·친환경 제품을 사 먹고(26.9%), 몸에 안 좋은 음식은 먹지 않으며(39.0%), 건강을 위해 음식 성분을 따지며 가려먹는다(42.3%)고 답했다. 모든 항목에서 50~60대보다 더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성인 전체 평균과도 비교된다. 가격보다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다른 항목에서도 나타난다. 가격이 비싸도 유명상표 제품을 선택한다는 액티브 시니어는 32.9%로 50~60대 평균(23.1%)과 많은 차이를 보였다. 비싸더라도 분위기 있는 음식점을 선호한다는 응답도 마찬가지. 50~60대는 20.4%만이 그렇다고 했지만, 액티브 시니어의 응답률은 31.3%로 높았다. 최근 커피 업계가 커피값이 비싸도 내가 원하는 맛과 향의 커피를 골라 마시겠다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고가의 스페셜티 커피를 속속 출시하는 것과 일맥상통한 움직임이다. 즐겨 찾는 건강식품은 영양제와 인삼‧홍삼 설문결과 액티브 시니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건강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으로 내 건강을 챙기고 있다고 응답한 액티브 시니어는 무려 77.2%에 달했다. 거의 대부분 병원 문턱을 높게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있는지에 대한 문항도 마찬가지. 60.7%의 액티브 시니어가 내 몸을 위해 기능성 식품을 먹고 있었지만, 성인 전체에서 먹고 있는 사람은 절반이 되지 않았다(45.4%). 먹고 있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는데, 비타민·영양제를 언급한 액티브 시니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41.7%). 그 뒤를 인삼·홍삼제품(22.0%)과 생즙(5.4%), 한약·보약(5.1%)이 이었다. 한약·보약에 대한 응답이 낮은 것은 놀라웠다. 과거 한약과 보약이 호황을 누렸던 건강식품 시장을 각종 영양제들이 빠르게 대체해나가고 있는 상황임을 알 수 있게 했다. 건강에 대한 투자와 함께 외모에 대한 투자에서도 그 차이는 나타난다. 액티브 시니어의 40.5%가 다이어트 중이라고 답했고, 59.5%가 젊게 보이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형에 대한 거부감도 이제는 옛말이 돼서 아름다워지기 위해 성형해도 좋다고 말한 액티브 시니어는 37.9%에 달했다. ‘윤리적 소비’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 나를 위한 투자에 관심이 많고 나만을 위해 돈을 소비한다면, 이기적인 집단으로 봐야 할까? 결론부터 밝히자면 그렇지 않다. 액티브 시니어는 인생의 ‘전반전’을 살아오면서 형성한 부를 사회와 건전하게 나눌 수 있는 방법에도 관심이 많았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잘사는 문제에 관심이 많은가?’라는 질문에 절반 가까운 49.5%가 그렇다고 답했다. 19세 이상 전체 평균은 35.6%에 불과했다. ‘자원봉사나 기부에 참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단연 액티브 시니어의 응답률이 높았다. 36.7%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50~60대 평균은 28.6%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사회참여에 대한 관심은 제품 구매로도 이어졌다. 사회공헌을 많이 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려 한다는 응답 역시 액티브 시니어가 41.2%로 50~60대 평균(35.8%) 또는 성인 전체 평균(36.2%)에 비해 높았다. 결국 최근 사회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착한 소비’나 ‘윤리적 소비’를 이끌고 있는 세대 역시 액티브 시니어 세대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앞으로의 투자처는 역시 부동산 액티브 시니어는 남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다양한 분야의 상품들 중에 액티브 시니어의 화제에 오른 분야는 부동산(34.9%)과 금융서비스(30.4%), 화장품(29.1%)이 꼽혔다. 이런 관심은 액티브 시니어의 은퇴 준비나 자산관리와 관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의 경우는 앞에서 언급한 외모에 대한 투자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부동산이나 금융에 대한 높은 관심은 투자 방식이나 규모에서도 나타난다. 액티브 시니어 중 증권사를 이용하고 있는 비율은 약 10.4%로 성인 평균(7.7%)에 비해 높았고, 평균 투자금액은 훨씬 더 차이가 났다. 액티브 시니어는 평균 투자금액으로 약 3400만원이라고 답한 반면, 성인 평균 투자금액은 2600만원 선이었다. 신문에서 투자 관련 기사를 꼼꼼하게 읽는다는 비율도 30.3%로 19.0%가 응답한 50~60대 평균과는 차이가 있다. 투자와 관련해서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스스로에 대한 평가다. ‘자신이 돈을 운용하는 데 뛰어나다’라고 평가한 액티브 시니어는 총 27.4%로 50~60대 평균 16.0%와 큰 차이가 있었다. 투자처에 대한 응답으로는 은행(75.3%)을 가장 선호했고, 이어 연금·보험(40.1%), 부동산(18.6%), 주식(9.0%)이 뒤를 이었다. ‘여유자금이 생긴다면 어디다 투자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부동산의 순위가 상승했다. 물론 안정적인 은행(45.7%)을 가장 선호했지만, 그다음으로 꼽힌 투자처는 부동산(33.5%)이었다. 그리고 연금·보험(8.3%)과 주식(4.4%)이 그 뒤를 이었지만 부동산과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이런 차이는 결국 안정적 자산 형성과 투자 자금이라는 인식의 차이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울타리로서 그동안은 안정적 방식으로 자산을 운용해왔지만, 더 여유가 생기면 부동산에 투자할 용의가 많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보험에 대한 관심 역시 적지 않았는데, 자동차 보험(63.8%)과 손해보험(64.2%), 생명보험(76.6%) 모두 19세 이상 성인 그리고 50~60대 전체 평균에 비해 높은 가입률을 나타냈다.
- 2017-01-04 09:44
-
- [브라보가 만난 사람] 황보환 메트라이프 보험설계사, 트로트 가수 ‘하진필’로 데뷔
- 은퇴가 다가오는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제2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새로운 나로 살 수 있다는 등 제2의 인생에 대한 말도 많다. 하지만 그 달콤쌉싸름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막상 도전하려고 하면 어렵다. 무슨 일이든 첫 시작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베테랑 보험설계사가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자신감 하나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황보환(黃寶煥·52) 메트라이프 보험설계사. 그는 얼마 전 트로트 가수 하진필이라는 이름으로 ‘난 당신 편이야’를 녹음했다. 보험설계사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경력을 가진 그가 트로트 가수라는 외도를 과감히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본명 황보환. 메트라이프의 베테랑 보험설계사로서 자신만의 탄탄한 영역을 갖고 있는 그는 최근 하진필이라는 이름을 달고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다. 그는 스스로 멋을 낼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과감한 선택을 위한 준비를 나름 충실히 하고 있다. ‘행사’를 뛸 준비를 신경 써서 갖출 정도로 말이다. “트로트 가수로 데뷔한 기념으로 교회에서 바자회를 한다고 해서 가죽 재킷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옷이 요새 패션과는 아주 동떨어져 있어요(웃음). 아는 사람들이 보더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걸 입냐고 타박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패션이 트로트 행사용으로는 어필할 수 있겠다 싶었죠.” 인연을 통해 이어진 트로트 가수로의 길 보험설계사가 갑자기 가수를 하겠다는 생각은 왜 하게 된 걸까? “10여 년 전부터는 CEO 위주로 보험설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워낙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CEO 과정에서 일 년 정도 성악을 배우게 됐어요. 거기서 작곡가 최왕국 교수님을 알게 됐는데 그분이 제게 가곡을 하나 선물해주셨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면’이라는 노래였어요. 그 후 최 교수님이 이번에는 트로트 곡을 작곡했다고, 저에게 맞을 것 같다며 주시더군요. 그러니까 트로트 가수를 해야겠다고 특별히 마음을 먹었던 게 아니고 급작스럽게 이뤄진 거죠(웃음). 그런데 저도 이게 제2의 인생이 될 수 있겠구나 싶어 조금씩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하진필씨는 아직 트로트를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데뷔를 위해 트로트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지만 아직 성악 톤을 완전히 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음악과 함께했던 인생 하씨의 도전이 마냥 뜬금없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인생을 보면 음악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는 청소년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다고 한다. 학력고사 세대인 그는 옥상에 올라가 자주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그러고 나면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싹 풀렸다고 한다. “제가 84학번인데 대학가요제를 나가서 1차 예선은 붙었지만 2차 예선에서 떨어졌어요. 갑작스럽게 출전 일주일 전에 후배 여대생을 소개받고 듀엣을 하게 됐죠. 300여 팀에서 50팀 뽑는데 통과가 되더라구요. 사실 너무 쉽게 통과한 거예요. 연습도 많이 안 했고. 그때 선배님이 작사 작곡을 해주셨는데, 사회운동을 많이 하던 때라서 가사가 사회 풍자적이었죠. 결국 본선에는 진출하지 못했지만 제게는 큰 추억이 됐습니다. 그때 대상을 유열씨가 탔어요. 이정석씨는 제 바로 앞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제가 299번, 이정석씨가 298번이었죠.” 그는 또 모교인 연세대학교 100주년을 기념해 연세글리클럽이 조직됐을 때 창단 멤버로도 활동했다. 봉사로 노래를 하고 합창단원으로 행사를 뛰는 등 노래와 함께한 그의 삶은 지금까지 쭉 이어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보험설계사로서의 삶은 어땠을까? “계속 억대 연봉이었죠. 보험 업계에서 19년 일하면 굉장히 오래한 겁니다. 저는 외국계 보험사에서 일한 1세대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 외국계 보험사는 90년대 초반에 들어왔거든요.” 그는 한국타이어에서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큰 거래처인 현대자동차를 6년 담당하며 9년동안 다니고 그후 푸르덴셜에 입사하여 영업을 하다 부지점장 업무를 맡으면서 8년을 다녔다. 당연히 사람 관리가 쉬울 리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럴 바에는 다시 영업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메트라이프로 옮긴지 12년 째다. 메트라이프에서는 중소기업 CEO 위주로 보험설계 업무를 맡고 있다. 한 달 만에 첫 트로트를 녹음하다 “최왕국 교수님과 통화하다 보니까 저를 위한 트로트 곡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보자 해서 다음 날 만났어요. 제목이 뭐냐고 물으니 ‘난 당신 편이야’래요. 그 제목이 마음에 확 와 닿았어요. 누구라도 끝까지 자기편이 돼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길 바라잖아요. 악보를 받아 가사를 보니 가사 내용도 너무 좋은 거예요. 멜로디도 너무 쉽고.” 확신이 들었다. 확신이 들자 트로트 가수를 해보자는 마음도 먹게 됐다. 그는 곧장 보컬 트레이너를 소개받아 트레이닝을 받고 불과 한 달 만에 노래 녹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런데 제가 기획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후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열악하죠(웃음). 그래서인지 믹싱 작업이 약간 잘못돼서 제 목소리가 작게 나왔어요. 조만간 수정할 예정입니다.” 트로트 가수로의 삶을 선언한 그에 대한 주변 반응은 다양하다. 의외라는 사람도 있고 ‘너에게 딱 맞는다’ 하는 사람도 있다. 두려움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어쨌든 시작된 일이다.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수로 데뷔했으니 앞으로 노래 부르는 게 경제적인 부분에도 도움이 되겠죠.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우면 좋겠습니다. 가수 데뷔 전에는 동기들하고 노래 봉사도 다녔어요. 생각해보니 봉사 때는 묘하게 트로트를 많이 불렀네요. 그리고 저 자신도 나이가 들면서 트로트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친구들도 네가 하니까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는 트로트를 배우게 되면서 트로트의 넓은 세계를 새삼 깨닫게 됐다. “진성씨의 ‘안동역에서’라는 노래는 모르는 노래였는데, 어느 날 친구가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작년부터 뜨는 노래라고 하더군요. 안동역에는 그 노래의 비석도 있다고 해요. 노래라는 게 그 정도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가지가 부족하지만 노래를 통해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가 베푸는 삶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신념과 경험에서 비롯된 듯 보인다. 인생에서 ‘큰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2014년 9월에 큰 수술을 받았어요. 종합검진을 하다가 우연히 췌장에서 종양을 발견한 거예요. 암일 확률이 굉장히 컸어요. 특히 췌장암은 생존율도 적고 암으로 진단받으면 일 년을 살기가 쉽지 않아요. 검사해보고 암이든 아니든 수술해야 한다 해서 9시간에 걸쳐 수술을 했죠. 그때 CEO 과정에서 성악했던 사람들이 병문안을 오고, 최왕국 교수님이 제 소식을 듣고 끝이 안 풀리던 가곡 ‘바람이 불어오면’을 마무리했다고 해요.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저는 그 노래를 부를 기회를 갖게 된 거죠.” 악보를 보자마자 확신이 든 노래, ‘난 당신 편이야’ 하씨가 트로트 가수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전문가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김영진 한국연예제작자협회 회장이 제 선배예요. 그래서 그분께 ‘이런 곡이 있는데 해도 되겠습니까?’ 하고 문의했죠. 당연히 말리셨죠(웃음). 그분이 워낙 연예계를 잘 아시니까 ‘네가 돈이 있냐, 젊길 하냐, 특출나게 잘생겼냐, 과연 시장에서 먹힐 거냐’ 하는 것들이 의문이었죠. 그런데 지인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면 반응은 굉장히 좋아요. 가사도 좋고 중독성도 있고. 사실 이건 좋은 쪽 얘기고, 나쁜 쪽으로는 확 부각되는 게 없다는 얘기가 있긴 했어요. 트로트라면 어떤 부분이 확 튀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 부분은 제가 잘 모르겠어요. 저는 확 느꼈거든요. 노래를 부르면서 가사도 와 닿았고.” 그는 자신의 음악을 하나로 정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가곡이든 발라드든 다 좋아했어요. 트로트는 관심이 없다가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트로트는 이렇다’라는 정형화된 스타일을 좇고 싶지는 않아요. 특히 너무 튀고 화려한 정형화된 이미지로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노래도 좋고 가사도 좋은 트로트 가수로 평가받고 싶어요.” 전형적인 트로트 가수 이미지에 국한되고 싶지 않아 하씨는 올해 중에 ‘난 당신 편이야’의 녹음을 새로 할 예정이다. 그리고 현재 유튜브에 노래를 올려놓은 상태다. 물론 이제 막 데뷔한 그가 앞으로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다. 요즘은 늦은 나이에 트로트 가수로 입문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업계에서 30여 년을 있다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마땅히 박수 받아도 될 일이다. 그는 현실을 냉정히 보면서도 자신의 도전이 앞으로의 삶에 즐거움과 희망과 꿈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중에 디너쇼까지 할 수 있는 경지가 된다면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해보고 싶어요. 트로트, 가곡, 발라드… 다만 댄스는 좀(웃음).”
- 2016-12-14 10:53
-
- [스포츠 인물열전] 홍수환 말보다 더 유명해진 말 "그래 수환아, 대한 국민 만세다!"
- 신명철 스포티비뉴스 편집국장 전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서울 강남의 한 복싱 체육관이 건장한 중년 신사의 감격적인 포옹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복싱 올드 팬들이 추억의 일기장에서 꺼내들 만한, 그러나 얼굴은 많이 변한 두 복서가 또다시 만남의 기쁨을 함께했다. 주인공은 ‘4전 5기’ 신화 홍수환(66) 한국권투위원회 회장과 엑토르 카라스키야(56) 파나마 국회의원이다. 딱 10세 차이인 두 사람은 39년 전 링에서 맺은 인연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 한국인 첫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의 영광은 김기수가 차지했지만 그의 경기 장면을 TV로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당시 대부분의 스포츠 팬들은 김기수가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감는 장면을 ‘대한뉴스’ 화면으로만 봐야 했다. 1960년대에는 TV 보급률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흑백 TV 시절, 최고의 프로 복싱 스타는 단연 홍수환이다. 그의 복싱은 한마디로 스마트하면서 호쾌했다. 복싱 팬을 끌어들이는 마력도 있었다. 먼저 홍수환과 카라스키야의 인연부터 살펴보자. 두 사람은 1977년 11월 27일 WBA(세계복싱협회) 슈퍼 밴텀급 초대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다. 경기 장소가 파나마여서 홍수환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경기였다. 당시 홍수환은 27세의 베테랑 복서였고 카라스키야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11전 11KO승을 자랑하는 샛별 복서였다. 별명이 ‘지옥에서 온 악마’였으니 파나마 복싱 팬들이 그에게 건 기대는 미뤄 짐작할 만하다. 홍수환은 2라운드에서 네 번이나 다운되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섰고 마침내 3라운드에서 카라스키야를 KO로 눕히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다. 마침 이 무렵에는 1라운드 3회 다운이면 자동 KO가 되는 규칙이 아니고, 무제한 다운제가 시행되었다. ‘4전 5기’의 신화가 이뤄질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후 카라스키야는 1978년 황복수와의 경기를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뒤 38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당시에는 현역 복서였지만 이번에는 국회의원으로 한국에 왔다. 파나마 국회의 교통·통신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그 사이 두 사람은 1999년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파나마에서 만났고 17년 만에 한국에서 재회했다. “어머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일화와 관련된 내용도 재미있다. 홍수환은 1950년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태어났다. 당시 스포츠인으로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서울 토박이다. 어렸을 때부터 골목대장 노릇을 도맡아 했지만 주먹이 세서 그랬던 건 아니다. 복싱에는 큰 관심도 없었다. 복싱은 아버지가 좋아했는데 홍수환이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타계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복싱경기장을 다녔던 홍수환은 그때부터 복싱 경기 포스터만 봐도 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한다. 특별한 홍보 수단이 없던 시절, 서울 시내 동네 담벼락에는 영화, 프로 레슬링, 프로 복싱 광고 포스터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어머니의 반대가 있었지만 홍수환은 어렵게 글러브를 끼게 된다. 그러나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한 그는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고 이 결정은 그의 복싱 인생에서 ‘신의 한 수’가 됐다. 그리고 홍수환이라는 이름 석 자를 복싱 팬은 물론 거의 모든 국민이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74년 7월 3일, 당시에는 멀고 먼 나라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라디오로 중계방송된 홍수환의 승전보는 많은 복싱 팬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홍수환이 그곳에서 타이틀매치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골수 복싱 팬을 빼고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홍수환은 그날 더반에서 열린 WBA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를 전원 일치 판정으로 누르고 한국인 복서로는 김기수에 이어 두 번째로 프로 복싱 챔피언이 됐다. 프로 복싱에서 원정 온 도전자가 판정승을 한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홍수환은 그럴 만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경기 초반 아놀드 테일러를 3차례나 링에 쓰러뜨렸고 14회에서 승리에 쐐기를 박는 네 번째 다운을 빼앗았다. 세계 프로 복싱 관계자들은 아놀드 테일러가 마치 다른 복서처럼 경기를 했다고 평가했다. 거꾸로 보면 그만큼 홍수환이 뛰어난 복싱을 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당시 홍수환은 현역 사병이었다. 그 무렵 서울 주변의 주요 부대에는 프로 복서 몇 명이 군 복무를 하면서 기량을 연마하고 있었다. 특별한 신분이 아니면 여권은 꿈도 못 꿨고 여권을 받아도 단수였던 시절 현역 군인이 외국에 가서 타이틀매치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기수의 타이틀매치가 열린 장충체육관으로 직접 갔을 정도로 복싱을 좋아했다. 챔피언에게 줄 개런티(달러) 문제까지 해결한 박정희 대통령은 그 시절 프로 복서들에게는 최고의 후원자였다. 1974년 청년 홍수환이 ‘약속의 땅’인 더반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도쿄, 홍콩, 스리랑카, 요하네스버그 등을 거치는 험난한 여정이었다. 비행기를 여섯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그러나 홍수환은 이기겠다는 일념뿐이었고 결국 승리했다. 어떻게 경기를 치렀는지 제대로 되돌아볼 겨를도 없이 중계팀이 홍수환의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방송국 스튜디오에 나와 있던 어머니가 “수환아!”라고 부르는 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들려왔다. 이때 홍수환의 한마디가 오랜 기간 회자됐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런데 홍수환 말보다 더 유명해진 말이 있다. “그래 수환아, 대한 국민 만세다!” 홍수환의 어머니는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 국민’이라고 외쳤던 것이다.
- 2016-12-07 14:34
-
- [해외투어] 서서히 걷힌 안개 속에서 드러난 리기 산의 비경
- 스위스 중부의 호수 도시, 루체른. 로이스 강에는 14세기의 목조다리 카펠 교가 긴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강변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가옥들이 줄지어 있다. 밤이 되면 호수 물길 따라 흔들리는 야경이 더 멋지다. 스위스에서도 아름다운 도시로 소문난 곳. 1897년 여름, 이곳을 찾은 마크 트웨인은 “휴식과 안정을 취하기에 가장 매력적인 곳”이라고 격찬했다. 글·사진 이신화(의 저자, www.sinhwada.com) 루체른 호수의 또 다른 이름은 ‘월광소나타’ 루체른(Luzern, 해발 437m)은 취리히와 인터라켄의 중간쯤에 있다. 알프스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루체른의 아름다움은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리하르트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음악가는 물론 빅토르 위고, 괴테, 실러, 바이런 등 문학가들도 즐겨 찾았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이 월광소나타로 불리게 된 배경에도 루체른이 있다. 베를린 태생의 시인이자 저널리스트, 음악평론가인 루트비히 렐스타프(1799~1860)가 베토벤의 제1악장에 대해 “달빛이 비치는 루체른 호수 물결에 흔들리는 작은 배” 같다고 평했기 때문이다. 루체른이 외부에 알려진 시기는 8세기, 수도원이 세워지면서부터다. 도시 명은 켈트어와 로망스어가 혼합된 로체리나(Lozzerina, 늪의 거주지)에서 유래했다. 13세기에는 장크트 고트하르트 고개(2108m)가 개통되면서 알프스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고, 1332년에 합스부르크로부터 독립했다. 루체른에서 가장 먼저 반기는 곳은 로이스 강을 길게 잇는 목조다리 카펠(Chape, 204m) 교다. 1333년에 축조된 카펠 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 지붕이 있는 다리의 천장에는 축조 당시 새겨진 그림과 글씨가 이어진다. 다리 중간의 팔각형 석조물 바서투름(물의 탑)은 등대 겸 방위 탑이었다. 카펠 교 위쪽으로는 1408년에 세워진 슈프로이어 교(Spreuerbrucke)가 있다. 바그너가 결혼한 마테우스 교회와 빈사의 사자상 로이스 강과 루체른 호수를 가르는 다리를 건너면 구시가지(Altstadt) 골목이다. 곡물 시장, 와인 시장, 뮐렌 시장 등이 있는 그곳에 마테우스(matthaus) 교회가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와 코지마(1837~1930)가 결혼식(1870)을 한 곳이다. 리스트의 딸이었던 코지마는 당시 독일의 피아노 연주자 겸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의 부인이었다. 바그너와 24세나 나이 차이가 났던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기 전에 이미 바그너의 아이를 낳았다. 어쨌든 둘은 평생을 같이했다. 또 빙하공원으로 가면 ‘빈사의 사자상’(Lo ¨wendenkmal)이 있다. 작은 연못 위 바위 절벽 속에 들어앉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자상이다. 이 사자상에는 스위스의 슬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좁은 국토의 스위스는 농경지가 적은 산악지대인데다 지하자원도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젊은이들은 5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외국 부대 용병으로 참가해 돈을 벌어야 했다.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를 지키던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이 있었다. 다른 국가들의 용병들은 모두 도망갔지만, 스위스 용병들은 끝까지 남아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이 죽어간 이유는 단 하나. 후세들에게 용병자리를 물려주기 위함이었다. 선대의 처절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자상은 1820년, 덴마크의 조각가 토르 발센이 시작해 1821년 독일 출신인 카스아호른에 의해 완성되었다. 사자의 발아래에는 부르봉 왕가의 문장인 흰 백합의 방패와 스위스를 상징하는 방패가 조각되어 있다. 마크 트웨인은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묘사했다. 또 두 개의 뾰족한 첨탑이 눈길을 끄는 호프 교회(Hofkirche)가 있다. 735년, 이 도시에 처음 세워진 수도원이다. 17세기에 화재로 소실된 후 1645년에 후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1525년, 고딕 양식으로 세워진 두 개의 첨탑은 화재 때 피해를 입지 않아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 안에는 1640년에 4950개의 파이프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이 있고 건물 주변으로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묘석들이 남아 오랜 역사를 보여준다. 루체른 호수 따라 찾아가는 리기 산 루체른에는 멋진 리기(Rigi, 1797m) 산과 필라투스(Pilatus, 2132m) 산이 있다. 특히 ‘산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리기 산은 스위스 최대의 관광 휴양지. 루체른에서 유람선을 타고 비츠나우(Vitznau)까지 1시간 정도 가면 된다. 유람선 여행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스위스 풍치를 보여준다. 호반을 정원 삼은 300~400m의 언덕 위에 터전을 잡은, 아름다운 스위스 가옥들과 전원 풍경은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작은 도시, 비츠나우에 도착하면 산악열차 리기 쿨름(Rigi Kulm)이 눈앞에 있다. 리기 쿨름은 1871년 5월 21일에 개통한 유럽 최초의 산악열차. 리기 산 중턱 마을인 리기 칼트바트(Rigi Kaltbad, 1453m)를 거쳐 30분 정도 가면 정상에 이른다. 그곳에는 1861년, 스위스 최초로 산정에 세워진 호텔이 허허벌판에 우뚝 서 있다. 여러 갈래의 산책로(30km)를 따라 여름에는 하이킹을 즐기고 겨울에는 스키나 썰매를 탄다. 무엇보다 이곳에 오르는 이유는 멋진 풍치를 보기 위함이다. 미텔란트(Mittelland) 지방의 13개 호수와 켜켜이 이어지는 산들이 파도를 친다. 마치 ‘천국이 여기다’라고 생각하게 한다. 하산은 리기 칼트바트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베기스(Weggis)로 10여 분 내려오면 된다. 435m 고지에 위치한 휴양도시 베기스는 여행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Travel Tip! 현지 교통:루체른 선착장에서 비츠나우까지 매시간 유람선이 운행된다. 스위스 패스(www.swisstravelsystem.com)가 있으면 무료. 시내는 걸어 다니면 된다. 맛집과 숙박:호수 주변이나 구시가지에 레스토랑이 많다. 강변 옆의 라트하우스 양조장(Rathaus Brauerei)은 하우스 비어를 생산하는 곳으로 블론드 비어가 대표적이다. 또 뮐렌 광장에는 대형 쿱(coop) 마켓이 있다. 숙박은 루체른 시내를 이용하면 된다. 리기 산 중턱에 있는 리기 칼트바트 호텔(www.hotelrigikaltbad.ch)에서는 온천욕이 가능하다. 여행 포인트:필라투스 산을 가려면 알프나하슈타트(Alpnachstad) 역에서 등산 철도를 이용해 필라투스 역(2070m)까지 오르면 된다. 눈 덮인 필라투스 산 풍치가 매우 빼어나다. 문의 루체른 홈페이지:luzern.ch 유람선:lakelucerne.ch 스위스정부관광청:myswitzerland.com/ko
- 2016-12-06 15:06
-
- [올댓연금] 50대의 연금술
- 글 손성동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ssdks@naver.com 어느 택시기사에게서 엿본 50대의 자화상 온 나라가 최순실 게이트로 들끓던 어느 날 택시를 탔다. 갑자기 불편해진 다리와 피곤한 몸에 잠깐이나마 휴식을 주기 위해서였다. 푹신한 의자에 등과 목을 기대고 편히 쉬고 있는데 기사분이 말을 걸어왔다. 눈을 감고 건성으로 대답해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피곤한데다 슬슬 짜증지수가 올라왔지만 어느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연은 이렇다. “제가 퇴직을 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어 택시를 몰고 있는데, 하루 12시간 일해도 한 달에 100만원 벌기가 어려워요.” “그래요?” “3년 무사고면 개인택시를 신청할 수 있는데, 그걸 기다리며 참고 있습니다. 근데 그게 만만찮아요.” 동병상련인가. 기사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초보 택시기사라 해도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100만원 벌기가 힘들다니…. 일주일에 12시간 강의하고 한 달에 200만원 정도 버는 나는 그에 비하면 호사스런 퇴직자가 아닌가! 이번에는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하루에 몇 킬로미터 운전하세요?” “대략 230킬로미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교통지옥 같은 서울 시내에서 하루 230킬로미터씩 운전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정말 힘든 노동이다. 3년 무사고가 만만찮다는 것을 처음엔 수긍하지 못했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 달에 100만원 벌기도 힘든데 누구는 한 방에 10억, 20억, 100억을 해먹었다니 박탈감이 너무 커요.” 최순실 일당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마음의 상처가 큰 것 같았다. 3년 뒤 개인택시 신청할 날을 기다리며 힘든 나날을 참고 견뎌나가는 초보 택시기사에게 최순실 일당은 정말 못할 짓을 했구나. 저 마음의 상처는 누가 보듬어줘야 하나. 택시에서 내려 걷는 동안에도 초보 택시기사가 한 말이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무거운 발걸음 위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고군분투하는 50대들의 자화상이 슬그머니 내려앉았다. 지금 50대는 지독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창 공부할 자녀도 있는데,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자신들의 노후 준비도 불확실하고, 고령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급한 마음에 자영업에 뛰어들어보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은 경우가 허다하다. 100세 시대에 50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연령대다. 50대 10년을 잘 견뎌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노후는 크게 달라진다. 50대 10년을 잘 견뎌낸 사람은 국민연금을 기본으로 하고 부족분을 사적연금이나 다른 자산으로 보완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동안 쌓아온 노후 자산에 손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진퇴양난의 길에 내몰린 50대! 연금해지의 경제학 요즘 연금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순실 일당에겐 연금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겠지만, 일반 서민들에게 연금은 금과옥조 그 자체다. 기나긴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느냐, 불안에 떨며 보내느냐는 연금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과옥조 같은 연금을 깨트려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50대들이 많다. 필자의 이야기부터 해본다. 어느덧 1년 전의 이야기다. 갑작스레 닥친 퇴직은 나름 평온했던 필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렸다. 엄청난 대지진이었다. 이로 인해 지상의 평화로운 날들은 순식간에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고 필자의 일상도 완전히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정신은 혼미해졌고, 가슴은 불구덩이로 활활 타올랐고, 두 발은 갈 길을 잃고 방황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줄기 빛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연금이었다. 연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유지해야 하나, 해지해야 하나. 한 달 보름 정도의 고민 끝에 아내를 대동하고 해지의 길에 올랐다. 해지의 길에서 자괴감이 몰려왔다. “당신은 연금 전문가라면서 이렇게 해지를 해도 돼요?” 아내의 말에 뜨끔했다. “나만 믿어.” 그 당시 뭘 믿고 아내에게 그렇게 큰소리를 쳤을까? 당시 내게 남은 유일한 길은 ‘배수의 진’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으므로,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우선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배수의 진’을 친 장수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거운 갑옷으로 몸을 감싼다면 행동이 굼떠 적의 포로가 되거나 몇 발짝 나가지 못하고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입은 갑옷 때문에 오히려 위험에 빠지는 역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내 형편은 엄청난 무게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무거웠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안게 된 수억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빚을 안고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내 몸을 꽉 쪼이며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는 이 족쇄를 떼어내지 못하면 사즉생(死則生)의 ‘배수의 진’도 별무소용일 터! 그래서 선택한 길이 ‘연금을 죽임으로써 연금을 얻는 방법’이었다. 연금을 해지해 우선 몸을 가볍게 만든 후 난관을 돌파하고, 그 과정에서 획득한 수확물로 즉시연금을 구입한 셈이다. 나는 해지가 불가능한 국민연금을 제외한 모든 연금을 해지해버렸다. 그런데 필자와 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 문제다. 올 상반기에만 보험 해약 환급금이 사상 최대인 14.7조원을 넘어섰고, 작년 한 해의 연금저축 해지 금액은 2.5조원에 달한다. 대부분 손해를 감수하며 해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지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필자처럼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적연금을 해지해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부만 해지하면 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쳐 사적연금이라고 부른다. 개인연금에는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연금저축이 있고, 이런 혜택은 없지만 10년 이상 유지할 경우 발생한 이자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연금보험이 있다. 연금저축의 경우 5년 이상 유지하고 만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하면 3.3~5.5%의 연금소득세만 부담하면 되지만, 중도에 해지하면 16.5%의 기타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따라서 연금저축을 중도에 해지하면 납입 원금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연금보험은 다소 복잡하다. 연금보험을 중도에 해지하면 세제상 불이익을 보는 일은 거의 없지만 해지 환급금이 납입 원금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납입 원금 대비 해지 환급금의 비율을 의미하는 해지 환급률은 어느 보험사 상품이냐, 적용 이율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공시이율형 연금보험의 해지 환급률이 납입 원금의 100%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공시이율형 연금보험이 대략 7년, 최저이율보증형 연금보험이 10년 정도다. 퇴직연금은 근무기간과 최종 3개월간의 평균 임금에 의해 급여가 결정되는 확정급여형, 적립금의 운용 수익률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는 확정기여형, 이직할 때 적립금을 계속 쌓아가는 계정인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연금으로 인출할 경우에는 나이에 따라 3~5%의 연금소득세를 적용받지만, 일시금으로 인출할 경우에는 퇴직금에 해당하는 금액은 퇴직소득세를, 근로자 자신의 불입금이나 운용 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은 기타소득세(16.5%)를 적용받는다. 연분연승법이 적용되는 퇴직소득세는 계산이 복잡하지만 가입해 있는 퇴직연금사업자에게 문의하면 알 수 있다. 이처럼 각각의 연금은 세제가 다르고 세부 내용으로 들어가면 더욱 다르다. 따라서 개인 사정으로 연금 해지를 고려할 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 첫째,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민하자. 일분일초가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해지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 연금은 한 번 해지하면 해지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둘째, 해지가 아닌 다른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납입액이 부담스러워 해지를 결심한 경우라면 해지보다는 납입 중단을, 자금이 필요해 해지를 결심한 경우라면 중도인출 후 추가납입이나 담보대출 등의 방법을 먼저 생각해보자. 중도인출 후 추가납입은 연금보험 가입자가 자금 필요시 해약 환급금 범위 내에서 중도인출하고 나중에 추가납입으로 인출액을 보충할 수 있는 제도를, 담보대출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 셋째, 해지를 해야 할 경우에는 손해율을 따져보고 손해율이 적은 것부터 해지하자. 개인이 손해율을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각자 가입해 있는 금융회사에 문의하면 된다. 가교연금 만들기 지금까지 빚 때문에 고민이 많은 50대의 연금술에 대해 살펴봤다. 이른바 연금해지의 경제학이다. 인생 100세 시대의 50대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50대 10년의 강’을 무사히 잘 건너는 사람은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50대에 연금을 무턱대고 해지해버리면 노후에 가택연금당하기 십상이다. 50대 연금술의 핵심은 죽을 때까지 연금에서 소득이 창출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될까? 빚 규모가 미미하거나 없는 50대 중에 퇴직으로 인해 생활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자녀교육과 내 집 마련, 부모님 봉양 등으로 수중에 남은 돈이 별로 없는 50대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나올 때까지 생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일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소득이 적더라도 제2의 일자리를 찾고 가교연금을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는 가교연금에 대해서만 살펴보겠다. 먼저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나이를 확인하고, 지금부터 그 나이까지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가입해 있는 개인연금이 있다면 수령 방법으로 수급기간이 정해져 있는 확정연금형을 선택하면 된다. 이 방법으로도 생활비를 마련하기 힘들다면 퇴직할 때 받은 퇴직 급여를 활용해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할 수 있도록 확정연금형 즉시연금이나 인출형 예금상품, 월지급식 펀드 등에 가입한다.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즉시연금과 인출형 예금상품과 달리 월지급식 펀드는 수입이 일정하지 못하거나 예상보다 일찍 수입이 중단되는 일이 생길수도 있지만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높은 수익을 추구할 수 있으므로 각자의 위험 성향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적합한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가교연금을 구축하고도 남은 퇴직 급여가 있다면 국민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했을 때 종신지급형 즉시연금에 가입해 부족한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보완하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에는 개인형 퇴직연금에 넣어두고 계속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이때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낮은 수준의 이율에 만족하지 말고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적극적인 운용을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퇴직 급여를 가교연금 만들기에 다 써버린 50대라고 불안에 떨 필요는 없다. 집이 있다면 60세 이후에 주택연금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신연금 만들기 50대 중에는 생활비가 전혀 문제가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50대 후반의 A씨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내다 지금은 가교직업(bridge job) 형태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A씨의 고민은 자녀의 결혼이다. 최근 직장에 다니는 아들이 A씨의 재산 상태에 관심을 가지며 눈치를 살피기에, 결국 A씨는 두 자녀에게 결혼자금으로 거액을 떼어주기로 결심했다. 그러고 나니 A씨 부부의 노후생활 자금이 빠듯해질 것 같더란다. 더 이상의 재산을 자식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고 결심한 A씨는 비상자금을 제외한 금융자산은 모두 즉시연금으로, 집은 주택연금으로 활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 2016-12-02 09:24
-
- [박원식이 만난 귀촌(귀티나는 촌사람)] 참을 수 있는 고난, 참을 수 없는 흙 사랑
- 글 박원식 소설가 항구에 닻을 내린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그러자고 배를 만든 게 아니다. 항해에 나선 배라야 배답다. 거친 파랑을 헤치고, 멀거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배는 인생을 닮았다. 모험이나 도발이 없는 삶이란 수족관처럼 진부하지 않던가. 도시에서 회사원으로 살았던 이기순(52)씨가 남편 이병철(57)씨의 손을 잡아끌어 시골로 들어간 건 모험적 항진이었다. 하지만 애석하다. 이기순씨의 시골살이는 암초에 걸려 허우적거린다. 대해를 표류 중이다. 취재 섭외를 위해 통화를 할 때, 이기순씨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겸사(謙辭)였다. “남들은 그럴싸하게 바라보지만, 사실 속사정은 그게 아니에요. 아마도 저희 부부의 현실은 실패 사례로 더 어울릴 거예요. 그냥 차나 한 잔 드시고 간다는 기분으로 오세요.” 이기순씨는 오랫동안 암벽 등반을 즐겼다. 휴일이면 쪼르르 산으로 달려가 잔나비처럼 바위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추락사고를 당해 온몸에 부상을 입었다. 이후 그녀는 지금까지 진통제를 달고 산다. 이 불행한 사고는 용케도 시골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기 좋은 시골에 살며 건강을 돋우자는 착상을 했던 거다. 그즈음 중소기업 상무이사였던 남편 이기철씨는 명퇴의 강박감에 시달리며 전전긍긍 활로를 모색하던 중이었다. 이 역시 도시 탈출의 배경이 되었다. 말하자면 부부가 의기투합했던 것. 까짓것, 우리 시골로 가서 새로 시작합시다! 이기순씨가 앞장서 선창을 했다. 그래그래, 그러세! 남편이 후렴을 읊으며 선선히 뒤를 받쳤다. 그게 4년 전의 일이었다지. 시골 살림을 결단하며 꿈꾸고 그린 게 많았을 게다. 우선은 볕이 잘 드는 남향 터를 잡아야 할 테고, 폼 나게 수려한 전원주택을 지어야 하고, 철따라 꽃이 피어 요요하게 속삭일 정원을 꾸며야 하며, 달빛과 별빛이 비단처럼 흘러내리는 밤에 부부 둘이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일 만한 정자를 짓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생활이라는 게 흔히 돈이라는 요물의 농간에 휘둘리게 마련인데, 이들 부부도 자금이 넉넉하질 않아 두통을 앓았다. 그래서 소득을 흐벅지게 올릴 수 있는 방책을 찾았다. 그 결과로 시작한 게 오이농사였다. 이들이 사는 천안시 병천면은 오이의 최대 주산지. 재배 기술도, 유통 루트도 탄탄한 지역이다. 부부는 2000평에 달하는 농지에 오이를 재배하는 것으로 시골생활의 시동을 걸었다. 농토는 임대를 했다. 그 위에 설치된 시설 하우스는 매입을 했다. 거창한 시발이었다. ‘가브리엘 농장’이라는 팻말도 새겨 걸었다. 하지만 업무에 바쁜 행운의 여신은 그들에게 사소한 윙크조차 보내주질 않았다. 첫해는 물론 둘째 해, 셋째 해까지 내리 실패를 보고 말았다. 이기순씨의 얘기를 들어볼까. “농사라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어요. 안간힘을 다해 노력해도 매년 결과는 참담했어요. 기술력 부족으로 생산량이 저조해 낭패를 보기도 했고, 풍작일 경우에도 가격폭락으로 적자가 크게 났어요. 칼자루를 쥔 중도매인들의 횡포에 당하기도 했고요. 갖고 있던 돈을 모두 까먹었고, 빚이 늘어 파산지경에 몰렸어요. 그래도 쌀독에 쌀은 떨어지진 않았어요(웃음). 예산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친정엄마가 쌀을 보내주셔서….”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게 원예농업이죠. 미리 사전 교육을 받진 않았나요? 남의 농장에서 일단 실력을 길렀다거나….” “별다른 준비 없이 무작정 뛰어들다시피 했어요. 일단 일을 저지르자, 뭐 잘되겠지, 하는 기분으로.” “저런! 환상적인 귀농이었던 거예요?” “다분히 그런 면이 있었죠. 귀촌이나 귀농을 하려는 분들에게 요즘 제가 강조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낭만적인 생각으로 시골에 들어와서는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산이 좋다고 무작정 산골로 가고, 바다가 좋다고 해변으로 귀촌하는 식의 출발은 극히 위험해서죠. 사실 저희 부부가 단순한 환상으로 귀농을 할 만큼의 바보들은 아니에요. 충분치는 않았을망정 나름대로 사전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런데도 그게 농촌 현실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예상하지 못한 수많은 변수와 악재들이 들이닥치더라고요.” “차라리 초기에 발을 빼는 게 현명했을까?”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었기에 포기 같은 걸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어요. 내년엔 좋아지겠지, 차차 타산을 맞출 수 있겠지, 그런 희망으로 더욱 공을 들이고 땀을 쏟았어요. 농사에 어느 정도 물정이 트이면서 우환 중에도 희망이 솟구치곤 했죠. 내 손길을 통해 건강하게 잘 커가는 작물들을 바라보는 경이로움도 견딜 수 있는 힘이었어요. 폭염에 시들시들 말라가는 오이를 볼 때는, 마치 어린 자식이 병상에서 가쁜 숨을 내쉬는 것 같아 너무도 괴로웠지만, 그런 경험조차 농사에 애착을 갖게 하는 긍정적 체험이었어요. 정작 후회는 다른 문제에서 왔어요. 마을 원주민들과 어울리는 일이 참 힘들었거든요. 이른바 텃세라는 것 말예요. 이곳은 남편의 고향이지만 한동안 이방인 취급을 받았어요.” 마을 원주민들의 텃세를 견뎌내는 일이 농사보다 더 어려워 전통적으로 유목사회와 달리 농경사회 구성원들은 내 땅, 내 영토에 대한 질긴 집착을 가지고 살아왔다. 공동체 의식도 발달했다. 외지인들이 끼어드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여기에서 ‘텃세’ 문제가 야기되지만, 토박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전원생활자들의 무신경하고 비사교적인 위세가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무례를 범하지만 않으면 텃세에 걸려들 일이 없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이기순씨 내외가 겪은 텃세는 워낙 자심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시골 인심이 예전과 다르다는 항간의 논평을 몸으로 직접 체험해 확인한 모양이다. 삶이라는 생존의 들판치고 어딘들 전장(戰場) 아닌 곳이 있을까. 코피 터지는 경쟁의 난리 블루스, 그게 세태이지 않던가. 이기순씨는 시골의 텃세라는 걸, 허공에 미만한 공기처럼, 세상살이에 당연히 붙어 다닐 수밖에 없는 기본 조건으로 치부하기로 한 것 같다. “차라리 마을을 떠날까, 그런 궁리를 할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텃세에 부대꼈지만 그냥 감수하기로 했어요. 어차피 원주민들과 저희의 정서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서로 살갑게 어울려 지내는 게 힘들다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자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흙이나 작물들은 텃세를 부리는 법이 없죠?” “저나 남편이나 농사라는 건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흙이 지닌 생명력과 식물들의 정직한 성장에 곧바로 매료됐어요. 아아, 흙 냄새, 작물들의 숨결은 또 얼마나 좋은지…. 해마다 농사에 연패를 해 실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땅을 상대로 한 농사라는 게 신성한 직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이상해요. 당신은 지난해 천안시가 선정한 우수농민이지만 사실은 곤경에 처했다는 거!” “농촌의 현실을 보면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흔해요. 수억대 소득을 올리는 농가들이 매스컴에 등장하지만, 매출과 실소득은 크게 다르죠. 저희도 연간 매출이 1억쯤 되지만 갖가지 투자비용을 제하면 오히려 적자가 나더라고요. 적자가 해마다 거듭되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고, 이런 식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예요.” “어이하나?” “혹독한 공부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좌절도 많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어느덧 단련이 되고 나름의 내공도 생긴 거 같아요. 이젠 비로소 길이 보여요. 저비용 고효율 농업으로 가야 하는데, 대안이 보이고 있어요. 일단은 작물을 다양화할 예정이에요.” 기죽을 게 뭐람, 괜찮아, 괜찮다구! 이기순씨 내외는 오이 하우스 안에서 산다. 7평짜리 컨테이너에서 살림을 한다. 이 옹색한 정경을 목도한 친정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친구들이 쯧쯧 혀를 차지만, 그녀는 이마저도 오히려 복되지 아니한가, 하는 투로 담담하다. 애당초 근사한 집을 짓기 위해 대지 150평을 장만해두었으나 빚잔치 통에 순간에 날아갔다. 그 바람에 컨테이너에서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이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을 냉큼 받아들이기를 이미 오래전에 했다. 싱긋 웃는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시라. “‘난 말이야, 2000평 정원에 7평짜리 원룸에 살아. 이 정도면 나쁜 건 아니지 않니?’ 제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그래요. 남들에겐 철딱서니 없는 허세처럼 들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컨테이너에 산다고 해서 기죽을 게 뭐람. 괜찮아, 괜찮다구! 그렇게 제가 저에게 들려주며 용기를 잃지 않으려 노력해요. 지금의 형편에서 방바닥에 등 붙이고 부부가 함께 따뜻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도 큰 다행 아니겠어요?” “왜 아니겠어요? 참새는 옷 한 벌 입은 게 없이 나뭇가지 한 줌을 움켜쥐고 엄동의 밤을 무사히 지내죠. 최소한의 의식주만으로도 기꺼이 견딘다는 건 일종의 절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에 살 땐 제가 돈을 펑펑 썼어요. 해외여행이며 쇼핑이며,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해봤어요. 그래서 지금의 어려운 형편에 정신까지 약해지진 않아요. 남편 역시 강인하고 똑똑한 사람이라 끄떡없어요. 돈 때문에 허둥지둥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안쓰럽지만, 우리 부지런히 뛰어 멋지게 농장을 살려내자고 등 두들겨 격려하죠. 남편은 원래 영어와 일본어를 잘하는데요, 요즘도 잠들기 전에 꼭 외국어 공부를 해요. 나중에 외국인들이 우리 농장에 견학 올 것을 대비해서죠.” “산에서 당한 사고로 온몸을 다쳤다 했죠? 지금은 매우 건강해보여요. 그건 귀농 덕분일까요?”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땐 걸음새조차 나사 풀린 바퀴처럼 휘청거렸어요. 그러다가 농사일에 매달리는 사이 건강이 크게 좋아졌죠. 농사를 노동이 아니라 운동으로 여긴 덕분이겠죠. 정신은 더욱 건강하게 깨어난 것 같아요. 경제 면에서는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감성이나 정서는 더 밝고 풍부하게 성숙하는 기분? 그런 걸 느껴요. 하우스 안의 작물들, 바깥으로 펼쳐지는 자연 풍경이 자주 순수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요. 저의 어릴 적 꿈은 문학이었답니다. 요즘도 좋은 글을 찾아 읽거나, 뭔가 느낌이 떠오르면 즉시 메모장을 꺼내 글을 써요. 주로 시골생활에 관한 단상이지만, 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죠. 이 역시 귀농이 준 행복이라 여겨요. 이쯤이면 괜찮게 사는 거 아녜요(웃음)?” “사람이 농사를 통해 작물을 기르지만, 동시에 농사가 사람을 키우기도 하는 거예요?” “당연하지 않겠어요? 흔히들 돈에 사로잡혀 살지만, 남에게 돈 빌리지 않을 정도만 되면 잘사는 것일 테고, 더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선택한 일에 만족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텐데, 저는 농사에 만족해요. 흙에 뜨거운 애정을 느껴요. 비록 아직은 고전하고 있지만,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크는 나무가 있겠어요?” 가시밭길을 거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꽃길이 있나? 파도를 타넘지 않고서 바다를 건널 수 있던가? 이기순이라는 이름의 선박은 암초를 만나 표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잠정적인 조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박원식 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 2016-11-30 10:48
-
- [김성회가 만난 CEO 스토리] 은퇴교육 열정 전도사 윤만호 EY한영 회계법인 부회장
- 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브라보’는 ‘잘한다’, ‘좋다’, ‘신난다’ 등의 갈채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성공적으로 2막을 살고 있는’ 우리 사회 시니어들로부터 ‘인생 2막 설계의 지혜와 조언’을 들어보고자 한다. 리타이어(retire)는 타이어를 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타이어를 새로 바꿔 끼운다는 의미다. 단지 1막의 재현에 불과한 리플레이(replay)도 아니고, 1막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 맨땅에서 헤딩하는 리셋(reset)도 아닌, 새로운 재생의 르네상스(renaissance)를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라는 용어를 은퇴시키고’ 멋진 2막의 르네상스를 설계하기 위해 ‘이어야 할 것과 끊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본지를 통해 살아온 길의 여정에 담긴 ‘온기’뿐 아니라 살아갈 길의 이정표를 세우는 데 필요한 ‘용기’를 얻길 기대한다. 윤만호 언스트앤영 어드바이저리 부회장(62)은 한국산업은행 부행장, 산은금융지주 사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 ‘경제·금융 전문가’로 살아왔다. 이런 전문가로서의 이력을 넘어 주목되는 점은 열성적 은퇴교육 전도사라는 점. 그는 2011년 금융권 퇴직자들을 재교육, 창업자들에게 금융·입지권 조사 등 컨설팅을 해주는 사회공헌자 프로그램인 ‘시니어 브리지 센터’를 만드는 등 일찍이 퇴직자 재교육에 앞장서왔다. 최근까지도 서울시 50+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은퇴자들을 위한 제도적 교육과 일자리를 지원해왔다. 그가 설파하는 신(新)퇴직 또는 은퇴혁명 패러다임의 핵심은 ‘당하는 퇴직을 준비하는 퇴직으로 바꾸라’이다. 과거와 오늘날의 은퇴 의미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인간의 평균수명이 짧았던 과거에는 50이 넘도록 사회생활을 하면 웬만큼 살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즘은, 생애주기가 바뀌면서 앞으로는 살아온 만큼 더 살아야 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고령화 사회에서의 퇴직은 마지막 골라인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지요. 이제 일은 평생 하는 것입니다. 은퇴란 말을 은퇴시켜야 합니다. 평생 현역이 될 각오를 다져야지요.” 평생 현역은 오늘날 은퇴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인생의 반환점으로 보람찬 2막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미 고령화가 진행된 우리 사회에서는 80세부터를 본격적 노후 시작으로 볼 수 있습니다. 50~60대에 은퇴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적어도 80세까지 평생 현역으로 일하기 위한 키워드는 3가지입니다. 일, 배움, 나눔이지요. 책을 통해 더 많이 배우고, 사람도 더 만나고, 일을 통해 경험과 경륜을 더 나누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급변할수록 ‘과거의 경험, 인연, 경력’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일하면서 배우고 나누는 삶이 인생 2막의 패러다임입니다.” 영화 을 보면 대기업 부사장이 벤처기업의 인턴이 되어 젊은 여사장의 시중을 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갑에서 을로의 갑작스런 전락’이 2막 부적응의 이유가 될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시니어들이 퇴직 후 피부로 느끼는 것이 갑(甲)에서 을(乙)로의 입장 변화이지요. 이 변화를 약자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도와준다, 기여한다는 적극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시각 전환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퇴직 후 자신을 대하는 세태 변화에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잘나갈 때는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고 일정이 빡빡했는데, 퇴직하거나 작은 데로 옮기니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일정도 텅텅 빈다면서 우울해합니다. 이럴 때는 인심을 탓하기보다 ‘그동안은’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느라 선택당했는데 이제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선택해 만날 수 있으니 좋다’라고 시각 전환을 해야 합니다. 을(乙)적 사고야말로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것이라고 전향적으로 해석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인생 2막은 성공 마인드보다는 성숙-섬김마인드로 임해야 합니다.” 윤 부회장의 말을 들으니 시니어가 멀리 해야 할 한자로 단단할 ‘고(固)’ 자가 떠올랐다. 고(古)의 울타리[口]에 갇혀 고착돼 있으면 고루해진다는 의미가 떠올라서다. 인생 2막이 힘든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성장이 멈추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꼰대적 사고를 그쳐야 퇴직을 종착역이 아닌 간이역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보통 사람들이 퇴직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재정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먼저 현역에서의 퇴직 준비부터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현역, 퇴직 통틀어 지켜야 할 것은 ‘버는 범위 내에서 써야 한다’는 재정 원칙입니다. 현역 활동 때 현재의 수입을 모두 가처분소득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평생 내가 쓸 돈이 얼마나 되는지, 60세 이후 100세까지는 무슨 돈으로 살 것인지 꼼꼼히 계산해보십시오. 버는 것의 30%는 무조건 개인연금을 부어야 합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외에 개인연금을 들어 노후에 ‘3층 연금’의 단단한 방어벽을 준비해놔야 합니다. 특히 요즘은 저금리시대 아닙니까. 10억원을 버는 것도 힘들지만,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매달 100만원씩 나오게 하는 현금흐름을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비도 과잉투자해선 곤란합니다. 노후를 잘 대비해놔야 자식 앞에 부모가 바로 서고 자식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이미 퇴직한 분들은 지금이라도 대비해야 할 것들이 있는지요? “있는 범위 내에서 써야 한다는 원칙은 퇴직자도 같습니다. 막연히 불안해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나의 어셋’은 어떻게 되는지 점검하고 이에 따라 할 일을 리디자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퇴직 후 가능한 일자리 형태는 사회공헌형, 봉사형, 생계형, 전문가형 등이 있습니다. 어느 형태가 되든 평생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이때 연금을 들어놨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퇴직 후부터는 버는 것보다 나눔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저는 flowing-흘려보내기란 말을 좋아합니다. 퇴직 후에는 아등바등 살기보다는 ‘지금까지 나에게 위탁된 것을 잘 이용하고 남에게도 흘려보낸다’는 나눔의 사고가 필요합니다.” 인생 1막과 2막, 그 분수령을 전후해 삶의 정비사항, 중점사항도 달라져야 할 것 같은데요? “삶이 변하면 사람도 바뀌어야지요. 1막에선 급한 것에 휘둘려 살았다면 2막에선 정말 중요한 것에 따라 여러 가지를 성찰하고 재조정해야 합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사는 대로 생각’했다면 2막부터는 ‘생각하는 대로 살고 있는지’ 성찰해보고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인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에 따라 증진시킬 것은 증진시키고, 회복시킬 것은 회복시키는 등 삶의 우선순위를 재편, 재조정해야지요. 다시 말해 돈, 시간, 몸을 우선순위에 따라 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윤 부회장은 구체적 성찰 및 재정비의 대상을 관계, 시간, 재무, 건강(정신-육체), 웰다잉의 순서로 꼽았다. 그리고 이 5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의 리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하버드대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하버드대학 학생 268명의 인생을 72년간 종단연구하면서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가장 큰 조건이 무엇인지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성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적성, 즉 인간관계였으며, 65세에 잘살고 있는 사람의 93%는 형제·자매와 원만하게 지낸 사람들이었다. 많은 가장들이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바쁘게 일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막상 퇴직하고 나자 ‘찬밥 신세’라며 서러움을 호소하기도 하는데요. 윤 부회장께선 가족관계 경영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도 월화수목금금 일해야 하는 산업화 시대에 공직자로 살았으니 집사람,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갖진 못했습니다.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나가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지요. 하지만 ‘온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갖고 대화를 나누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명절 때면 온 가족이 모여 ‘가위바위보게임’을 하는 등 소소한 재미 디자인을 했지요. 매년 가족사진도 찍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가족들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가슴에 따뜻한 가족 램프를 걸어두며 사는 것, 그것 이상 삶의 성공,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선친은 고(故) 윤재건 전 제주체신청장이다. 윤 부회장은 “우편제도가 열악했던 시절, 지방이든 해외든 출장을 가면 ‘부인에 대한 사랑, 자녀에 대한 자상한 관심’을 담은 엽서부터 보내는 아버지를 보며 알게 모르게 가족사랑은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함을 배운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일, 재물도 그렇지만 가족관계 역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부친상을 당하셨는데요. “(눈시울이 붉어지며) 아버님은 건강하게 사시다가 간암 선고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답니다. 소천 전 일주일간 오 남매를 불러 각각 독대 면담을 하며 당부의 말씀을 일일이 남기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 지키고 계획한 대로 산 삶이었다는 점에서 웰리빙, 웰다잉의 표본이셨다고나 할까요. 선친께서는 늘 ‘요행을 기대하지 마라, 노력으로 거둔 보람만이 참된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말고 끝없이 사랑을 주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는데 제 삶의 피가 되고 살이 된 말씀이랍니다.” 선친이 그에게 남겨준 가보 제1호는 17세 때부터 61세 노년기까지 44년간 고이 모아온 우표책 한 질이다. 체신부(지금의 정보통신부)에서 한길을 걸어온 소신과 자부심의 표상을 아들에게 담아 물려준 것이다. 그 역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우표 수집을 이어가고 있다. 윤 부회장은 지난 1997년 부친의 고희 때 만든 가족 문집 를 가져와 필자에게 보여주었다. 문집에는 부부-부모자녀-손주 간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글, 사진 등 3대 가족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이 팔순이 될 때 이 같은 가족 문집이 더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회의실 8층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여의도공원의 늦가을 경치가 아름다웠다. 같은 낙엽이지만 ‘추풍낙엽’의 조락의 의미로도, ‘만산홍엽’의 서정적 의미로도 묘사된다. 이는 퇴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당신은 지금 미래의 계획 아래 ‘추일서정’의 퇴직을 준비하는가, 계획 없는 미래에 손 놓고 ‘추풍낙엽’의 조락을 당하고 있는가. >>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 2016-11-30 0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