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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포럼] KCERN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 포럼’ 스케치 “시니어는 보호의 대상이 아닌 생산의 일각”
- 저출산과 수명연장,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초고속 고령화가 진행 중인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대거 은퇴는 한국 사회만의 특수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특단의 대책과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 9월 27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창조경제연구회(KCERN) 제29회 정기포럼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에 참여한 각계 분야 패널들의 조언을 담아봤다. 첫 주자로 나선 이남식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은 ‘고령화 위기 진단’이라는 주제를 발표하며 이번 포럼이 지니는 의미를 강조했다. 이 총장은 “디자인 분야에 있는 사람은 사용자(실제 고객)와의 공감을 중요시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니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고,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라며 “실질적이면서 훨씬 더 폼 나고 위엄 있게 노후를 디자인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토론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시니어 분야의 리더십을 발휘해 인류사회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이번 포럼의 주최 측인 창조경제연구회의 이민화 이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 이사장은 “지구온난화보다 더 심각한 것이 고령화”라고 언급하며 “속도는 빠르게, 질은 나쁘게 늙어가는 게 한국의 문제”라고 화두를 던졌다. 그는 KSM(KCERN Silver Model)을 제시해 고령화 현상 및 정책을 분석하며, 고령화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 선행돼야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공유경제와 긱(Gig) 이코노미의 등장도 눈여겨봐야 한다. 긱은 일종의 소규모 밴드로 인력 매칭 직업의 종말과 프리에이전트의 등장을 의미한다”며 “미국의 긱 플랫폼, 일본의 클라우드웍스 등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시니어 프리랜서와 사내 기업가 양성에 관심을 쏟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그는 끝으로 “초고령화 국가가 되기까지 10년 남았다. 만약 고령화가 선행된다면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에너지가 없을 것이다. O2O(Online to Offline)제도와 기술혁신 등으로 4차산업 완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두 발표자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김일섭 aSSIT 총장의 진행으로 패널 토론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운을 뗀 강시우 창업진흥원 원장은 “현실적으로 재취업이 어려운 은퇴자들은 대개 치킨집이나 편의점 등의 창업에 도전한다. 창업 경쟁이 과열되면 성공할 확률이 낮은데, 그보다는 기술창업 쪽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개인과 사회에 이롭다”고 제안했다. 그는 “현재 전국에 시니어창업기술센터가 23곳, 여기에 투입된 기업만 430여 개다. 이곳에서 중·장년들이 기술을 습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 사업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예산은 정부 보조금과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해 마련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시니어가 경제활동에 기여하고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소기업의 창업지원을 돕고 있는 박광회 르호봇 대표는 “시니어 세대와 주니어 세대의 협력을 통해 청년과 고령자 취업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협업 모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은 멘토 모델이다. 은퇴자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청년 세대와 공유하고,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배워나가는 등 세대 간 융합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민간의 지혜와 집단의 지성이 존중되는 형태로 그들을 돕기 위한 정책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 기획단 단장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며 은퇴자와 청년 세대 간 일자리 경쟁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단장은 “그동안 노인은 부양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지만, 고령화 사회에서는 경제의 주체가 돼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령자의 노동력을 저평가하는 연령 차별주의가 사라져야 하며, 시니어 스스로도 일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후의 경제력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유익한 삶에 대한 고민도 빼놓지 않았다. 노호성 웰니스IT협회&협동조합 부회장은 ‘맞춤형 행복 플레이팅 서비스’ 시장을 개척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노 부회장은 “시니어 인력 활용에 대해 논의할 때 그들의 건강과 체력은 기본”이라며 “시니어의 체력을 측정하는 기준은 젊은 세대와 차별화해야 한다. 가령 윗몸일으키기나 달리기 등은 그들의 신체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자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능력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시니어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제도와 서비스를 찾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구분해 각자의 형편에 맞게 노후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재 이투데이 대표 겸 한국SR전략연구소 소장은 고령화 문제를 바라보는 언론인의 관점을 언급했다. 이 대표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컨트롤타워가 분명하지 않아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오갈 뿐”이라며 “고령화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책임감 있게 해결해나갈 주체가 필요하다. 연구소나 언론 등 객체의 역할도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보람찬 노후를 위해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액티브 시니어가 많다. 그런 이들을 위해 언론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지, 사회의 큰 흐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함께 고민해나갈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 2016-10-2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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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노천카페 풍경.
- 우리 집에서 버스 세 정거장 아래에 전통 재래시장이 있다. 이 시장은 새로 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운동하러 갈 때 배낭을 메고 나가서 오는 길에 시장도 보고 올 수 있어 좋다. 아파트 뒤편으로 몇 년 전 새로 산책로가 생겼는데 우리 동네는 청계천 복원처럼 서울의 예전 개천을 정비하여 깨끗한 하천으로 바꾸는 사업이 끝나 참으로 깔끔하고 예쁜 산책길을 갖게 되었다.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부터 흘러내린 개천물을 따라 정릉 초입까지 2km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이제 무릎이 고장 나 산이 가까이 있음에도 올라갈 수 없는 시니어들에게 최적의 운동코스로 환영받고 있다. 왕복 4km면 시니어의 하루 운동량에 적합하다고 하여 필자도 열심히 걷는 중이다. 사계절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도 멋져서 고운 색의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가 자태를 자랑하는 봄철과 한여름엔 녹음이 싱그럽고 콸콸 웅장하게 쏟아져 내려가는 계곡물이 장관이어서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해 주기도 하고 차분한 갈색 세상으로 바뀌는 가을철, 새하얀 눈이 꽁꽁 언 계곡물 위로 살포시 쌓여 온통 순백의 세상이 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런데 낮에는 몰랐는데 어느 날 저녁 무렵 산책길을 따라 걷다가 시장쯤 오니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와 와글와글 사람들이 재미있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산책길 위쪽 시장통 거리에서 각각 음식점마다 자기 집 마당 쪽으로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노천카페 겸 식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치킨집, 주꾸미볶음집, 삼겹살집, 피자집 등 다양한 업종의 가게 앞에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노천카페라면 그림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멋있는 가게 앞 길가에 예쁜 공간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차를 마시거나 맥주와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우리 동네 노천카페는 그렇게 세련되지는 않지만 친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맥주잔을 부딪치는 모습을 보니 어느 멋진 노천카페 부럽지 않을 듯하다. 이웃집 가족들이 함께 나왔는지 산책로 아래에서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개울 속의 작은 물고기를 관찰하기도 하고 돌 징검다리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수풀 속 곤충을 탐색하기도 하며 놀고 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엄마아빠들 끼리는 시원한 맥주잔으로 건배도 하며 친목을 갖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인다. 남자들끼리 또는 여자들끼리 모여앉아 길가에서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는 그들의 소속감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필자는 살면서 한 번도 직장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나 실제로도 열심히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동료끼리 몰려가 회식을 하거나 모이는 장면은 부럽기만 한 일이었다. 어느 곳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마음이 든든할 것이다. 일부러 산책길에서 계단을 통해 올라와 무리지어 담소하는 그들을 지나쳤다. 산책로가 생기기 전 이곳은 더러운 하천으로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하천정비가 끝나고 조성된 산책로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나와 길가에서의 담소를 즐길 수도 있게 되었으니 매우 고맙고 만족스러운 풍경이다. 여기저기 자리 잡고 즐겁게 떠드는 무리를 지나면서 필자도 저 속에 끼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참으로 즐겁고 정겨워 보이는 노천카페 풍경이다.
- 2016-10-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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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휴의 Smart Aging] 재능도 거래가 가능하다
- 글 유장휴 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 전략명함 코디네이터 사소한 재능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능력이다 재능기부란 말이 있다. 주변에서 많이 듣는 말이다. 재능기부는 내가 갖고 있는 재능 혹은 능력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을 말한다. 말 그대로 대가 없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재능기부가 아닌 재능을 사고파는 곳이 있다. 재능을 사고파는 게 아직은 낯설긴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비용을 받는 틈새시장이 있다. 거창한 재능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재능이라면 ‘재능마켓’에서 거래 할 수 있다. 타이핑 치는 간단한 것부터 번역이나 통역처럼 전문적인 재능도 있다. 내가 만약 컴퓨터로 타이핑하는 속도가 느리거나 펜으로 글을 쓰는 게 더 편하다면 종이에 글을 쓰고 타이핑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맡기면 된다. 비용도 생각보다 저렴하다. 타이핑 10장에 5000원 정도 한다. 비용이 저렴한 이유는 이곳에서 재능을 올리는 사람들은 기업이 아닌 일반 개인들이기 때문이다. 타이핑이 필요한 개인과 타이핑을 해주는 개인이 만났기 때문에 저렴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재능마켓은 새롭게 시작할 때 더 요긴하다 재능마켓은 일상적인 생활보다 사업을 할 때 더 요긴하다. 최근에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중·장년층이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다섯 명이 모이면 협동조합을 쉽게 만들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이후다. 협동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면 로고도 필요하고 명함도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단체를 알릴 수 있는 광고지나 홍보용 동영상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디자인 회사나 동영상을 만드는 회사에 의뢰하면 비용이 비싸다. 협동조합 하는 분들 말을 들어 보면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너무 큰돈은 쓰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일단 최소비용으로 단체라는 구색만 갖추고 싶은데 일반 회사는 생각보다 비용이 비싸서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그런데 재능마켓에서는 새롭게 시작하는 단체에게 필요한 명함, 로고와 같은 디자인을 저렴하게 만들어 준다. 더 나아가서 회사소개서, 자기소개서, 홍보문구 등 글을 매끄럽게 다듬어주는 재능도 있어 글쓰기가 어려운 분들은 글쓰기 재능을 도움 받기도 한다. 상상력과 표현할 만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재능마켓에는 다양한 재능들이 있다. 프로필 사진을 찍어 주거나 영상을 편집해 주는 재능도 있고 성우가 목소리를 녹음해 주는 재능도 있다. 무언가 표현할 게 있으면 재능마켓에 모인 재능인의 도움을 받아서 결과물로 완성된다. 이런 사례도 있다. 악보도 쓸 줄 모르고 악기도 다뤄 본 적이 없는 어떤 분이 자신의 행사 때 직접 음악을 만들어서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재능마켓을 검색해 봤더니 컴퓨터 작곡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만들어 주는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이분은 카페에서 재능인을 만나 곡을 만드는 도움을 받아서 직접 자신이 곡을 완성했다. 한 번쯤 음악을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직접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쓸 줄 몰라도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면 나만의 곡을 만들 수 있다. 시니어들이 갖고 있던 경험과 노하우가 표현하는 재능과 만나면 상상하지 못할 최고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재능이 필요한 분들은 재능마켓을 이용해보자. 재능마켓에서 삽화 그리는 재능 구매하기 1. 검색창에 ‘재능마켓’을 검색한다 ● 재능을 올리는 사람들은 여러 곳에 비슷한 재능을 올린다. ● 자신에게 필요한 재능이 있는 ‘재능마켓’을 이용하는 게 좋다. 2. 필요한 재능을 검색한다 ● 타이핑, 명함, 로고, 글쓰기, 편집, 출판 등 필요한 단어를 검색한다. 3. 마음에 드는 재능을 선택하고 구매를 한다 ● 기본 수량을 선택한다. ● 빠른 작업이나 추가 수정이 있을 경우 옵션을 선택하여 금액을 더 지불한다. 4. 결제를 하면 작업이 시작된다 ● 결제가 완료되면 재능인의 연락처가 공개된다. ● 일정, 요청사항 등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하며 결과물을 기다린다. ● 결과물을 받고 만족도를 평가한다.
- 2016-10-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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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부부 혹은 싱글로 사는 분들의 절약을 위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
- 나이든 부부 이미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부부나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거주하시는 댁 식당에 가서 2인분씩 주문해야 나오는 찌개종류 못먹고 난감하게 단품메뉴 맘에 안드는 것 주문하는 것처럼 마트에 가서 개수가 함께 묶어져 있거나 부피가 큰 제품 구입했다가 결국 유통기한 넘기고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좀 생각의 융통성을 가질 필요도 있다고 본다. 유난 떤다고 생각하고 그까이꺼 몇 년전유행어처럼여기다가는 본인만 손해라는 것 기억 해야한다. 경우에 따라 편의점이나 마트의 소포장가격이 대형마트나 재래시장보다 비싸다고 느껴도 그런 포장상태로 파는 것을 구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면 그렇게 구입한다. 경우에 따라 구입반찬도 사서 명절이나 특별한 날,혹은 평상시에도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마음을 먹는다.(반찬을 사서먹는 것,김치를 구입하는 것 있을수 없다고 마음을 묶어놓지 않는 것 아주 바람직하다) 필자도 이번 추석명절에 필자가 장만한 반찬은 세가지(숙주나물위에 제육볶음얹어서 내놓은 것, 쇠고기장조림, 된장찌개)외에 떡,전,나물,황태양념구이등을 딱 한접시거리로 구입했다. 그렇게 하고 며느리들 명절 당일에 오도록 하니 모두 행복한 분위기였다. 경우에 따라 집에서 필요한 모든 생활용품을 용도에 맞추어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대체할 수 있다면 대체하면서 사용한다. 에스프레소커피잔에 과일포크를 담아내놓거나 깔대기가 없다고 구입하지 말고 커피내리는 드리퍼에 콩이나 녹두등 곡물을 통에 내릴 때 깔대기로 쓰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면 여름모자보관통으로 자녀들이 다 떠나 많이 비어있는 깨끗한 냉장고용이나 김치냉장고용 밀폐용기 잘 닦아서 말려 그 속에 넣어두고 보관함으로 쓸수 있다. 있는 살림으로 이용하지 자꾸 사들이는 것을 자제한다. 경우에 따라 인스탄트제품을 주방에서 쓴다. 계란으로 찜을 할 때 파를 사놓은게 없다면 라면건스프를 풀어서 계란찜을 완성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자. 경우에 따라 돈을 버는 것 보다 나가는 돈을 절약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도 좋다. 물을 마실물만 주문하고 인터넷과 전화비와 vod무제한이나 전화서비스나도 모르는 서비스가 걸려있는 것이 있나 확인해본다. 인터넷사용도 직접 전화국에 가서 상담하면 친절히 안내해주고 절약하는 것도 바로 해준다. 물론 상담으로도 가능하였다. 영수증보고 리모콘으로 누르다 자신도 모르게 서비스비용내는 요금이 매달 나가고 있는 경우 많다. 에코마일리지도 전기 절약했다고 상품권수상대상자라고 문자가 두 번이나 왔다. 다음 달부터 벌써 몇 만원이상 나가는 비용을 절약하게 되었다. 덥다덥다하다가 이제 곧 찬바람이 불고 춥다춥다 할때가 온다. 건강잃지 않으면서 절약도 하는 겨울을 잘 나야한다.
- 2016-09-3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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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식이 만난 귀촌(귀티나는 촌사람)] 경남 하동, 지리산 기슭에 사는 조동진씨 부부 "노후 직업으로 농사보다 이상적인 게 다시 있으랴"
- 박원식 소설가 구불구불 휘며 아슬아슬 이어지는 가파른 비탈길의 끝, 된통 후미진 고샅에 준수한 한옥 한 채가 있다. 집 뒤편으로 세상의 어미로 통하는 지리산 준령이 출렁거리고, 시야의 전면 저 아래로는 너른 들이 굼실거린다. 경남 하동군의 곡창인 악양면 평사리 들판이다. 광활한 들 너머에선 섬진강의 푸른 물살이 생선처럼 퍼덕거린다. 호방하고 수려한 산수 풍광을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요지(要地)에 터를 잡은 셈이렷다. 증권사 지점장 출신인 조동진씨(58)가 동갑내기 아내 고미선씨를 대동하고 이곳 지리산 자락으로 귀촌을 한 건 9년 전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지리산을 애호한다. 지리산의 너그러운 품에 병아리처럼 포근하게 안겨 오순도순 오붓하게 살아갈 꿈을 꾸기도 한다. 조동진씨가 그랬다. 서울에서, 분당에서, 증권맨으로 뛰었던 그는 휴가철이면 매번 지리산을 찾았다. 그렇게 지리산과 교제를 하는 사이 담뿍 정이 들었다. 그 대상이 사람이건 자연이건, 정 들어 사무치게 그리우면 투신하게 마련이다. 나, 퇴직하면 지리산에 살래! 그는 그렇게 안으로 다지고 밖으로는 광고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마침내 일을 저질렀다. 인생의 항해를 결정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돛이다. 대양의 바람은 한 곳에서 불어오지만 돛의 향방에 따라 어떤 배는 동쪽으로 가고, 어떤 배는 서쪽으로 간다. 조동진은 의지의 돛, 지향의 눈을 돋워 지리산 산골을 겨누었던 것이다. 사연의 보따리를 헤쳐 볼까. “악양의 산자락에 있는 감나무 과수원 3306㎡(1000평)를 미리 사들이는 것으로 거사를 도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대충 다 컸겠다, 아내만 끌고 내려가면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집사람이 원래 도회적 성향이라서 시골살이에 아무런 매력을 느끼질 못했던 겁니다. 세뇌교육에 들어갔죠.(웃음) 그러던 중 아내가 원인 미상의 중한 폐질환에 걸렸습니다. 의사들이 말하길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라 하더군요. 그렇다면 이걸 어떡하나. 그래, 자연요법으로 고쳐보자. 이왕지사 땅도 사놨으니까 산골로 가자. 그렇게 아내와 합의를 보고 드디어 시골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던 겁니다.” “지리산의 그 무엇이 그렇게도 좋았을까?” “제가 실은 대학을 다닐 때부터 지리산에 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었는데요, 그 웅장한 풍경에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바닷가에 가면 힘이 쭉 빠지는 반면, 산에 가면, 특히나 지리산에 가면 힘이 난다는 걸 자주 느꼈어요. 체질적으로 기질적으로 잘 맞는 거겠죠.” “한옥이 매우 근사해요. 저토록 야무진 한옥을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겠죠?” “아내의 폐질환을 다스리기엔 한옥이 유리하다는 생각이었어요. 황토와 목재를 재료로 한 한옥은 숨 쉬는 집이라 하죠. 그러나 남들에겐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건축비가 너무 많이 들고, 공기(工期)도 길고, 관리도 힘드니까.” “저는 말이죠, 이왕에 산골의 자연과 야생을 벗 삼아 살 거라면 작고 소박한 집을 짓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 아니랴. 동감입니다. 그저 값싸고 편리한 현대식 집을 짓는 게 좋을 겁니다. 다만, 사랑채 정도는 제법 운치를 풍기는 작은 흙집을 짓는 것도 재미날 거예요.” 조동진씨의 거처 한편엔 나무로 골격을 세우고 흙으로 벽을 쌓아 지은 사랑채가 있다. 누각이 딸려 있는 소담한 별채로 조씨가 손수 설계해 지었다. 여자로 치면 음전하면서도 은근히 요염한 멋을 풍기는 가인을 닮은 집이다. 부부가 수시로 눈을 맞추며 단란하게 속닥이는 데에 사랑채의 용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멀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드는 벗들과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일에도 쓸모가 많겠지만 말이다. 농사일은 노동이 아니라 축제 조씨의 섬세한 조력과 자연의 협찬 덕분일 테지. 다행스럽게도 아내의 병증은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시골 생활이지만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에도 아무런 흠결이 없다고 한다. 감 농사도 순항이다. 한적한 산골에 입장했으니 그저 한가하게 노닥거리며 자연을 즐기면 그만일 성 싶지만, 조동진씨는 농사일이 오히려 구미에 맞다. 애초에 사들인 땅이 감 과수원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감 농사에 뛰어들 수 있었다. “노후의 직업으로 농사처럼 이상적인 게 없습니다. 정년퇴직 없지, 누가 간섭하지를 않지, 적당한 육체노동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지, 정직하게 땀 흘리는 농사일은 단순히 노동이 아닌 축제에 가까워요.” “세상에서 가장 못 믿을 직업이 농사라고들 해요. 벌이가 되질 않는다는 거죠.” “저도 경제적인 면에 관한 두려움이 많았지만 적절히 극복해 왔어요. 2314㎡(700평) 규모의 감 농사를 지어 곶감이나 감식초를 만들어 판매를 하는데 연간 1200만원에서 1500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립니다. 그 정도면 무난해요. 시골에선 말이죠, 골프 할 일 없지, 노래방에 가서 도우미를 부를 일 없지, 수입이 적더라도 지출을 줄일 수 있어 생각보다는 여유를 부릴 여지가 많습니다.” 흔히 귀촌과 귀농을 구분해서 선택을 하거나 판단을 한다. 조동진씨는 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성공한 귀농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농사에 목을 걸다시피 들입다 땅을 파는 인물은 아니다. 농사에 생활의 한 자락을 걸침으로써 한결 뿌듯한 실속과 실리를 구할 수 있다는 이치를 터득했을 뿐이다. 그의 시골살이 촉이 이렇게 살아 있다. “제 경우는 귀농을 가장한 귀촌인이라 봐야 정확할 겁니다. 그저 작은 텃밭을 일궈 소소한 먹거리를 거두는 귀촌 생활도 즐겁겠지만, 농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신나는 일입니다. 남자는 퇴직을 했더라도 명함이 있어야 해요. 992㎡(300평) 이상의 농사를 지을 경우엔 누구나 명함을 만들 수 있어요. 일테면 ‘지리산 농원 대표이사’라거나, 그런 식으로 떠억 명함을 새길 수 있는 거예요(웃음). 992㎡(300평) 정도의 농사만 지으면 농업인 등록을 할 수가 있으며, 온갖 지원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걸 왜 마다할까? 가급적 농업인 자격을 획득하라고 권장하고 싶습니다. 한 달에 하루만 일해도 폼 잡을 수 있는 게 농사에요. 시골에선 말이죠, 하는 일 없이 늘 술이나 마시고 돌아다니면 욕먹습니다. 그러나 농업인으로서 일을 할 경우엔 술을 퍼마셔도 욕먹을 일이 없어져요.” “사전에 열심히 귀농교육을 받고 입촌한 사람들마저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 아녜요?” “도시 인구를 분산하고, 실업을 해소하고, 도농격차 해결을 위해 정부에서 농촌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갖가지 지원 정책을 펼치지만, 사실 허점이 아주 많습니다. 귀농교육이랍시고 억대 수입이니, 특작물이나 유기농을 운운하며 과도하게 분위기를 띄우지만 사실 허황한 얘기들에 불과해요. 가령, 농사 경험이 없는 사람이 유기농에 도전하는 건 독립운동을 하는 것처럼이나 어렵고 위험합니다. 제가 힌트를 하나 드리죠. 특수작물이나 유기농을 요란하게 하려 하지 말고, 그 지역의 특산물을 하라는 것! 그래야 생산이나 유통의 이점을 누릴 수 있으며, 원주민들과의 소통도 빨라져요.” “빈손으로 귀촌할 경우엔 어떤 재주를 발휘해야 하죠?” “도시에서는 움직이면 돈이 나가지만 시골에선 움직일수록 돈이 들어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양육할 자녀가 없이 부부만 귀농할 경우, 빈손으로 시작해도 무방해요. 퇴직을 한 시니어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건강만 있다면, 자세를 낮출 수 있다면, 늘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일당 10만원짜리 일감을 찾는 건 일도 아니니까. 한 달에 열흘만 날품을 팔아도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는 겁니다. 문제는 겸손한 마음, 열린 태도이겠죠. 퇴직을 뜻하는 리타이어(retire)는 ‘타이어를 교체한다’는 의미 아니겠어요? 은퇴 뒤 시골에서 살고자 한다면 마음 자체를 싹 바꿔야 합니다. 돈보다는 마음의 행복과 즐거움을 구하는 쪽으로 삶의 잣대가 변해야 하는 거죠.” 시골에서 오히려 진정한 문화생활 누려 사람들은 흔히 시골의 문화적 환경이 열악할 것으로 믿는다. 갖가지 공연과 전시회 따위가 펼쳐지는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살다 보면, 그저 주야간에 앞산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칫 우울증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한다. 조동진씨에 따르면 이는 미신에 가깝다. “서울에서 공연 구경을 가는 건 어쩌다 한번 아닐까? 공연물이 많다지만 막상 향유하긴 어려운 게 도시살이에요. 요즘의 시골엔 지역축제나 산사음악회 같은 문화 행사가 잦습니다. 아이돌 가수에 밀린 7080 가수들까지 대거 참여해요. 저는 이곳 공연장에서 소찬휘라거나 김재동 같은 연예인들을 처음 봤어요. 게다가 관람료는 전적으로 무료에요. 뒤풀이엔 술과 음식이 푸짐하게 나오고요.” “풍부한 상상력으로 바라본다면 산야 자체가 뮤지엄이겠죠.” “제가 도시에 살며 열네 번이나 이사를 했어요. 이사 때마다 고려한 게 창밖으로 달을 볼 수 있느냐는 점이었어요. 여기 산골의 달밤은 얼마나 좋은지요. 사랑채 정자에 앉아 달빛 흥건한 마당을 바라보며 술 한 잔을 하는 일은 최상의 낙입니다. 달 없는 밤엔 별들이 허공에 모이죠. 때로 반딧불이가 공연을 하고, 빗소리가 악곡을 연주하고, 사시사철 모든 풍경이 장관입니다. 뒷산의 야생화들이 뿜는 향기의 잔치는 또 얼마나 행복한지요. 이 다양한 자연 현상들이 명약이자 보약입니다. 시골엔 의료시설이 빈약하다는 소리들이 있지만, 제 아내가 병을 다스린 걸 보면, 저 산야 자체가 하나의 병원이라는 실감을 할 수밖에 없어요.” “앗! 시골 예찬이 극에 달하셨다(웃음). 도대체 아무런 불만이 없는 거예요?” “제가 외환위기 때 쫄딱 망해 시장에서 전을 벌리고 옷을 팔기도 했어요. 박수를 치며, 싸요, 싸요! 외치면서요. 그런 고통의 시절을 겪은 게 인생의 디딤돌이었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나름 깨달았어요. 그러하니, 제가 원해서 들어온 산골에서 무슨 불만이 있겠어요? 이제 제가 해야 할 일 하나가 남았는데요, 귀촌을 희망하는 은퇴자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해서, 최근 지리산웰빙귀농학교라는 걸 세웠어요. 대차게 밀어붙일 참입니다(웃음).” 10년 가까이 흐른 시골 생활을 통해 조씨는 어언 선수에 이르렀나? 귀촌에 관한 낙관과 긍정에 경계가 없구나. >> 박원식 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 2016-09-2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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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인생 : 코이카 해외봉사단] 은퇴후 제2의 삶, 지구촌에서 봉사를
- 막연히 생각하는 은퇴 후 삶의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고, 이왕이면 내 경험을 살리고 싶다. 여기에 남을 돕는 보람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불가능할 것 같지만, 그런 기회는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세계인을 돕는 코이카가 그것. 세계에서 활약한 다양한 시니어를 만나, 코이카를 통해 어떻게 보람 있는 삶을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한국국제협력단은 일반적으로 영문명의 약자인 코이카(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91년 4월 정부출연기관으로 설립된 코이카는, 우리 정부의 대외무상원조 전담기관 역할을 담당해 왔다. 미국 정부가 1961년 설립한 평화봉사단(Peace Corps)과 일본의 일본국제협력기구(日本國際協力機構, JICA)가 이와 유사한 기관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미국의 평화봉사단을 모델로 1989년 설립한 한국청년봉사단이 코이카의 전신이다. 역할은 말 그대로 개발도상국 원조사업이다. 봉사단은 개발도상국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우리의 경험과 기술을 전수함으로써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지원하는 것이다. 코이카에서 운영하는 봉사단은 크게 3가지로, 마이스터 고등학교나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드림봉사단과 코이카 봉사단과 중장기 자문단이 있다. 드림봉사단을 제외하면, 자격조건에 ‘나이’라는 단어는 없다. 시니어 향한 문호 ‘활짝’ 열려 있어 하지만 구직난이 심해진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을 대비하기 위한 ‘스펙 쌓기’용으로, 때로는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 대책용으로 활용하면서 ‘청년들이 주인공인 사업’이란 색깔이 덧입혀졌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코이카는 시니어들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하고 있고, 실제로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단원 중 시니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적지 않다. 2015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파견인원 1350명 중에서 50대 이상이 365명으로 27%를 차지한다. 적지 않은 수치다. 여기에 40대 113명을 더하면 중·장년층이 35%까지 증가한다. 70대도 5명이나 활동 중이다. 이에 대해 코이카 월드프렌즈 모집팀의 송희수 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은퇴 후의 삶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코이카에서는 이런 분들의 도전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사회에서 쌓았던 지식과 경험을 개발도상국을 위해 베풀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이 될 테니까요. 각국에서 요청하는 대부분의 자원도 이런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인재들입니다.” 봉사단과 자문단 두 갈래 길 시니어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코이카 봉사단, 다른 하나는 코이카 자문단이다. 봉사단은 쉽게 말해 실질적인 기술전수의 성격이 짙다. 교육과 보건, 공공행정, 산업에너지, 농림수산 5개 분야에서 세부 직종을 모집해 현장에서 교육이나 이와 관련한 사업을 실시한다. 5개로 나눠진 분야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산업에너지 분야는 자동차 정비나 용접, 전기 설비가 포함되어 있고, 농림수산에는 농업과 어업 인력을 모집한다. 대부분 특정 분야의 기술직이다. 최근 현대자동차에선 직원들의 퇴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코이카와 협력 방안이 논의되고 있을 정도다. 대부분 전문직종이기 때문에 전문성 없이는 활동이 불가능해, 외국어 능력보다는 모집직종에 대한 전문성을 우선시한다. 기술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이 중 만 50세 이상, 해당 직종 10년 이상 경력자는 시니어 단원으로 분류돼 배우자와 동반도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코이카 봉사단은 혼자 가는 것이 원칙이다. 봉사단의 임기는 2년이 기본. 현지에 파견되면 최대 3년까지 연장이 가능하고, 귀국 후 재지원도 할 수 있다. 재지원의 경우 횟수 제한은 없지만, 심사 과정에서 가산점이 없어 다른 지원자들과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 코이카 자문단은 봉사단과는 조금 다르다. 교육과 보건, 공공행정, 산업에너지, 농림수산이라는 5개 분야는 같지만, 정책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코이카 봉사단이 조직의 말단, 그러니까 각 도시의 읍면 단위에서 실무를 처리하는 역할이라면, 코이카 자문단은 각 국가의 정책 결정자들이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자문하는 역할을 한다. 임기는 6개월에서 1년이다. 당연히 자격요건도 다르다. 해당 직종에서 10년 이상 실무 경력이 있고, 영어나 현지어로 강의나 보고서 작성이 가능해야 한다. 행정적인 업무가 대부분인 탓이다. 때문에 지원자들도 차이가 있다. 코이카 자문단의 경우 대학교수나 대기업 임원, 공공기관이나 정부부처의 고위공무원 출신들이 많다. 오세훈 前 서울시장이 시장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르완다와 페루에서 6개월씩 자문단으로 활동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봉사활동이라는 책임감 있어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경험자들은 코이카를 통해 다른 국가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국가를 대표하기 때문에 단순히 노후에 시간을 보낸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직업군인 출신으로 2013년부터 2년간 몽골에서 체육교육 활동과 지역개발 사업을 진행했던 류진현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노후의 삶을 계획하는 방안 중 하나로 코이카를 고려할 때는 봉사활동임을 확실히 인식해야 해요. 국민의 세금으로 활동하는 것인 만큼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노후를 해외에서 즐긴다는 생각으로 도전한다면 본인도 불행해지고, 예산도 낭비될 수 있어요.” 실제로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모집을 담당하는 코이카 월드프렌즈 모집팀의 김혜원씨는 많은 지원자들을 만나다 보면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고 한다. “코이카를 종교기관으로 착각하고 선교활동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이런 종교활동은 코이카에서 엄격하게 제한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또 이민의 개념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하려는 경우도 있는데 불가합니다.” 코이카 측에서 원하는 인재상도 류진현씨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문지식과 현지 적응력, 봉사정신 이 3가지를 가진 인물이 코이카가 바라는 인재의 모습이다. 해외체류 위한 생활비, 거주비 등 지원 코이카 봉사단이나 자문단의 파견은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에서 필요한 분야에 대해 한국 외교부로 요청이 들어오면, 코이카에서 원조 인원이나 범위를 결정해 파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언제 어느 국가에 수요가 발생할 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코이카 봉사단이 횟수를 정해 놓지 않고 수시로 모집하는 것도, 특별한 희망국가가 있다고 해도 그 바람이 이뤄지기 힘든 것도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자문단의 경우에는 1년에 두 차례 모집한다. 자세한 일정이나 모집분야, 자격을 알고 싶다면 홈페이지(kov.koica.go.kr)를 확인하는 것이 제일 확실하다. 경쟁률은 보통 3대1에서 5대1 수준. 그러나 봉사단에선 한국어 교육분야, 자문단에서 공공행정 중 경제분야는 10대1 이상을 기록하기도 한다. 농림수산 분야는 치열하지 않다. 이렇게 선발이 되면 한국과 현지에서 적응을 위한 별도의 교육을 받고, 전 세계 40여 개국으로 파견된다. 파견국은 주로 아시아 국가가 꾸준한 수요를 보였으나 최근에는 중남미나 아프리카에서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봉사단원이 받는 금전적 지원은 얼마나 될까? 일단 많은 금액은 아니다. 코이카 봉사단의 경우 현지 생활비, 주거비 등이 지원되는데 각 국가의 물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실무자들의 설명으로는 시니어 단원들에게 대략 한화로 월 150만~200만원이 지원된다고 한다. 여기에 2년간의 활동을 마치면 귀국하면 국내 정착지원금을 지원하는데, 월 50만원씩 총 1200만원이 지급된다. 봉사단의 시니어 단원은 일반 단원에 비해 생활비는 2배, 주거비는 1.5배 더 받고 있다. 코이카 자문단의 경우에는 별도의 정착지원금이 없다. 대신 현지 정착비, 생활비 명목으로 월 4000달러 정도가 지급된다. 인생의 후반기 돌아보는 기회 아무래도 해외생활에서 걱정하는 부분은 건강과 안전이다. 특히 시니어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는 코이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현지에서 활동을 해야 할 단원들이기 때문에 건강관리 부분은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 건강검진이나 의료비, 의료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최근 테러 위협이 증가하는 국가들이 많아지면서 문제가 되는 나라들은 아예 지원 대상 국가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한 현지에 파견되어 있는 코디네이터를 통해 단원들 안전관리를 위한 보호·철수 계획을 수립해 놓고 비상시를 대비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파견되는 국가는 기초적인 안전은 보장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코이카의 전신인 한국청년봉사단부터 각종 자문역할로 인연을 맺고 많은 봉사단을 만나 온 이태주 한성대 교수는 유의해야 할 점과 코이카 활동이 갖는 장점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특히 시니어들은 정신적인 건강관리도 중요해요. 한국 남성들, 시니어들은 혼자 서기 힘든 존재인 경우가 많아요. 그랬던 사람들이 현지에선 밥 먹는 거, 양말 빠는 것까지 혼자 해결해야 하니까요. 그 과정에서 겪는 고독이나 정신적인 건강을 주의해야 해요. 하지만 시니어들이 그 난관을 딛고 다녀오면 다른 인생이 열리는 경우가 많아요. 뒤늦게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고, 시각도 열리고 유연해져요. 국가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고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려는 시니어들을 보면 되레 제가 감동 받기도 해요.”
- 2016-09-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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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과 공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수기 어떻게 고를까?
- 2012년 대한민국 전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가뭄은 농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인 ‘마실 물’의 부족이었다. 당시 가뭄과 극심한 더위로 팔당호와 북한강에 남조류가 대량 번식하면서, 이곳의 물을 수원으로 사용하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엔 ‘수돗물이 정말 안전할까?’하는 의문이 커져갔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이런 의문은 실제 숫자로도 증명된다.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수돗물을 끓이지 않은 채 마시는 서울시민의 비율은 4.9%에 불과했다. 그만큼 수돗물을 믿기 어렵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불안을 가라앉히려 2020년까지 개인·공동주택 37만 가구의 수도 노후관을 전량 교체하기로 했다. 다른 지자체들 역시 대안을 내놨다. 각 지자체에서는 경쟁적으로 정수장에 고도 정수처리 시설을 도입했고, 녹조가 발생해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치과의사를 중심으로 의료단체에서 추진 중인 수돗물 불소화사업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수돗물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는 역할만 하는 셈이 됐다. 불소가 함유된 물이 충치 발생을 막고, 건강에도 해가 없다는 것이 이들 단체의 주장이지만, 일부 환경단체에선 반대하고 있어 논란만 커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에선 불소 투입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이 논쟁은 수십 년 전 미국에서 점화된 역사 깊은 수돗물 관련 논쟁 중 하나다. 결국, 수돗물에 대한 의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이 물음표와 함께 성장한 것이 정수기 시장이다.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정수기 시장규모는 2014년에 1조9500억원에 달했고, 올해는 2조2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예상대로 성장이 이뤄진다면 2011년 1조7004억원에서 5년 만에 시장규모가 30%가량 성장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 지난 7월에 있었다. 국내 정수기 대여 1위 업체로 손꼽히는 코웨이의 얼음정수기에서 니켈 성분이 검출된 것. 코웨이 얼음정수기에서 은색 금속가루가 보인다는 소비자 불만이 잇따르자, 당시 코웨이는 시중에서 수거한 얼음정수기 29개 제품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벌였다. 검토 결과 일부 정수기 내부에서 얼음을 만드는 핵심 부품이 벗겨지면서 금속가루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로 인해 코웨이는 공식 사과 후 리콜과 피해 보상 등으로 분주했다. 제품군 다양해 선택의 폭 넓어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정수기들은 업소용 대형 제품을 제외하면 크게 네 가지이다. 가장 일반적인 제품은 널리 쓰이고 있는 냉온정수기다. 정수기 본체 안에 작은 물통이 있어, 정수된 물이 수조에 담기면, 이를 차갑게 하거나 뜨겁게 가열해 냉수와 온수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얼음을 얼리는 제빙기가 합쳐진 것이 가장 인기 있는 얼음정수기. 최근 중금속 논란이 있었던 모델이기도 하다. 이번 문제가 된 얼음정수기가 모두 가진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일부 초창기 제품들이 과냉각이 잦아 써선 안 될 곳에 도금 부품을 사용해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 문제로 확대되진 않으리라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검찰도 관련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일반 냉온정수기나 얼음정수기는 문제가 된 코웨이와 청호나이스가 전통적인 강자로 꼽힌다. 그만큼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최근 안마의자로 유명한 바디프랜드가 직수형 얼음정수기로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인기가 식을 줄 모르던 얼음정수기가 의외의 암초를 만나 휘청거리는 사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정수기들이 있다. 직수형 정수기다. 직수형 정수기는 자체에 수조 없이 순간적인 냉각이나 가열시스템으로 온도조절을 하기 때문에 수조에서 세균이 번식 가능한 일반 냉온정수기에 비해 안전하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동양매직이 사용하는 광고 문구 “이제 고인 물 말고 새물 드세요”에서도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구조도 비교적 단순해져, 크기가 작아진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직수형 정수기는 LG, 쿠쿠전자, 동양매직, 교원웰스와 같은 정수기 시장의 후발주자들이 강세를 나타내는 분야다. 이외에 언더싱크형 정수기도 일부 사용자들 사이에서 사랑받고 있다. 해외에서 직접 물건 구매를 즐기는 ‘직구족(族)’이나 설치 인테리어를 직접 하고자 하는 ‘DIY족’들이 주로 애용하는 형태다. 싱크대 밑에 설치해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 ‘공사’가 필요하고, 밸브 관리가 까다롭다. 온수와 냉수 기능 없이 오직 ‘정수’만 가능하다. 하지만 필터 용량이 커 필터 교체 주기가 길고, 싱크대 아래에 숨기 때문에 공간 활용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전기소모가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국내시장에선 주로 워터피아, 3M, 에버퓨어, 듀벨 등의 제품이 사랑받고 있고, 일부 다단계 기업의 인기 아이템이기도 하다. 상당수 사용자는 필터와 같은 소모품은 아마존과 같은 사이트에서 직구하는 경우가 많다. 샤오미 정수기도 직구족들에게 최근 주목받는 제품이다. 접 관리가 어렵다면 대여형 서비스가 간편 제품을 고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관리를 스스로 할 수 있는가이다. 내가 직접 정수기를 설명서대로 일부 부품을 꺼내 청소하거나, 필터 교체를 할 수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언더싱크형 정수기는 대부분 설치까지 소비자가 직접 해야 한다. 스스로 할 수 있다면 선택의 범위가 넓어지지만, 만사가 귀찮거나 정수기 관리가 어렵고 복잡하다면 대여형 서비스가 답이다. 정수기는 생명의 근원인 물을 다루는 제품인 만큼 세균 번식도 쉽고, 물을 걸러 내는 필터의 경우 제때 교체해 주지 않으면 되레 물을 더럽힐 수도 있다. 그만큼 정수기는 구매보다는 사후 관리가 중요한 품목이다. 대부분의 대여서비스의 경우 계약 기간 내 정기적으로 업체 직원이 방문해 청소나 필터 교체 등의 업무를 대신해 주기 때문에 특히 시니어에겐 유리하다. 일부 회사의 경우 필터 교체는 소비자에게 맡기는 대신 가격을 깎아 주기도 한다. 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 직수형 정수기가 월 3만~4만원 수준이고, 얼음정수기는 월 5만~6만원 정도에 대여가 가능하다. 일반 냉온정수기는 보통 월 2만원 이하 수준이다. 계약조건은 3년 혹은 4년 약정 계약에 사용 기간이 5년이 넘으면 소유권이 이전되는 형식이다. 소음과 전기 사용량도 따져 봐야 할 부분. 사시사철 시원한 얼음을 쉽게 먹을 수 있는 얼음정수기는 아무래도 전기사용량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지난여름 이상고온으로 에어컨 사용량이 사회적으로 전기요금 누진제가 화두가 되면서 정수기도 냉장고만큼 전기 먹는 제품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업계에선 냉장고와 비교할 정도는 결코 아니라고 항변한다. 의외로 소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용하지 않아도 자체 살균이나 청소 등의 과정에서 소음이 발생하는 제품이 일부 있어, 사용자들이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 구매 시 계약조건 잘 따져 봐야 마지막으로 따져 봐야 하는 부분은 대여서비스가 합리적인가 하는 부분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대여서비스 민원을 분석했는데, 전체 대여서비스 중 정수기 관련 불만이 50.7%를 차지했다. 그만큼 사용자도 많고, 불합리한 부분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민원 유형은 계약 내용 불이행이 44.9%를 차지했고, 품질 불만이 20.3%, 안내 고지 미흡이 14.3%를 차지했다. 정수기를 고르기 어렵다면 대여가격 비교 사이트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현재 10여 개가 넘는 대여가격 비교 사이트가 있는데, 여러 업체의 제품들의 가격이나 대여조건들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런 대여가격 비교 사이트들은 엄밀히 말하면 가격비교가 목적이 아니라, 사이트 스스로가 각 회사와 계약을 맺고 제품을 공급하는 양판점 형태의 대리점이라고 보면 된다. 일부 회사 제품의 경우 같은 제품도 계약조건이나 금액이 달라질 수 있는 유통구조를 갖고 있어 이들은 규모의 경제를 이용해 보다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사은품 역시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요소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해당 제품이나 제조회사뿐만 아니라 제품을 취급하는 대리점의 사용 후기, 회사 사업자번호를 확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정수기 대여는 3~4년의 장기 계약이고, 약속한 사은품 증정을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회사(대리점)인지 확인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 2016-09-0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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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문주현 MDM 회장의 돈의 철학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 놓은 것, 사회를 위한 나눔으로 거듭나야”
- “어느 언론사 기자가 문주장학재단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내가 환갑이 되기 전에 기금 200억 원 달성이 목표라고 마음대로 쓴 거야. 그래서 당신 때문에 200억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랬지. 그래서 달성해 버렸어(웃음).” 국내 디벨로퍼(부동산개발 업체) 1세대의 대표주자인 문주현(文州鉉·58) MDM 한국자산신탁 회장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서 비범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문 회장은 자신의 회사와 함께 문주장학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재단은 어느새 회사 자본금보다 더 큰 규모가 됐다. 이제 남부럽지 않은 경력과 성취를 이루게 된 그가 어째서 그토록 사회 환원을 추구하는 걸까? 문 회장이 갖고 있는 돈과 사회, 그리고 시니어로서의 삶에 대한 철학을 들어본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준호 기자 jhlee@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만 하는 ‘노예’처럼 살았던 그는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독하게 가난했다. 후배 집에 얹혀살면서 생활비를 벌어 겨우겨우 필요한 돈만 메꿨던 생활. 2015년 매출액 4193억원을 기록한 MDM의 회장이자 한국자산신탁 회장을 겸하고 있는 국내 디벨로퍼 1세대 성공 신화의 주인공 문주현 회장의 20대 시절 얘기다. 가난한 사람이 돈의 소중함을 안다 “그러던 시절, 대학교 3학년 때 모 독지가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그의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현재 200억 원가량의 기금으로 운용되는 문주장학재단을 갖고 있다. 2014년 기금 100억 원을 달성한 후 불과 2년 만에 그 두 배를 달성한 것이다. 재단은 2002년부터 초·중·고·대학생 175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2001년에 장학재단을 세우니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 일을 안 하려나 보다 하고 소문이 났어요. 그러나 사람은 자기만족이잖아요? 내가 약속한 거고 신세를 졌는데, 해야지.” 문주장학재단의 수혜 대상자는 무조건 형편이 어려운 사람으로 선정된다. 그 외 특별한 선정 기준은 없다. 요즘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공부도 더 잘하는 세상이다. 문 회장은 가난한 이들은 돈을 소중하게 쓴다는 신념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세상에 증명한 사실이다. “장학 대상자는 웬만하면 바꾸지 말라고 해요. 다만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면 바꾸라고 하죠. 돈까지 대주는데 공부를 안 하는 건 기본이 안 된 거니까.” 돈이란 내 것이 아니다 문 회장은 장학재단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쑥스럽다고 말했다. 그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할 뿐이라는 말이었다. “장학재단을 하다 보니 나를 돈을 많이 벌었다고 소개를 안 해주고 좋은 일을 한다고 소개해줘요(웃음). 아 세상이 이렇구나 싶었죠. 물론 나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회사보다 자본금이 더 큰 장학재단을 갖고 있어서 그렇겠죠.” 문 회장의 사회를 향한 지원에는 장학재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의 모교에 씨름부를 만들고 공공버스도 운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덕분에 전국 우승도 다수 경험하는 강한 씨름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에 마련된 서울책방이 다시 문을 여는 데는 문 회장이 쾌척한 1억원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여자바둑대회에는 2억원을 내놨다. 모교인 경희대학교에도 매년 1억원 이상을 기부한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그가 갖고 있는 돈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돈이란 무엇인가? 내 것인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사회로부터 얻은 거고,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관리하라고 맡긴 겁니다. 이걸 갖고 자기 거라고 유세를 떠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그리고 이 돈이 내게 관리하라고 온 것은 일정 부분을 사회에 내놔야 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을 돕지 않으면 이 사회의 양극화가 해소될 방법이 없고 시장경제가 지탱할 수 없다. 문 회장의 ‘돈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그러한 진실을 우회해서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가 유독 젊은이들에게 기부의 타깃을 맞춘 것도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은 자기 탓이 아닙니다. 대신 정신이 올바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주장학재단은 예술계 쪽 지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아직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방향에서 검토하는 중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니 문화예술계 쪽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 사람을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능력 있고 자질 있는 사람을 골라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이상문학상’처럼 공모를 통해 권위가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아직 밑그림을 정확하게는 안 그렸지만 오페라, 소설, 악기 쪽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재생,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인생 목적 최근 문 회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도심재생 사업이다. 그에게 시기가 괜찮은지를 물어보자 확신처럼 ‘해야 할 시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시재생을 지금까지는 자기 지역, 구역 별로 민간에서 했는데 민간이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앞으로의 세계는 도시가 국가 브랜드입니다. 싱가포르, 홍콩, 도쿄, 뉴욕 등등을 봐요. 관광할 때 그 나라를 왜 가느냐는 겁니다. 관광은 자연관광과 도시관광으로 나눌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자연관광이 취약합니다. 그렇다면 도시관광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을 도시 관광 국가로 만들려면 도시재생이 이뤄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살 거주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공급이 부족했다. 그래서 신도시를 마구, 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출산, 저성장기가 도래했다. 더 이상 신도시는 안 만들어질 것이라고 문 회장은 진단했다. 그렇다면 오래된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도시재생이 중요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문 회장은 발 벗고 뛰는 적극적인 ‘전도사’였다. “공청회나 세미나를 하자, 우리나라의 발전 방향을 토론해보자. 하다못해 광화문, 테헤란로 등등으로 나눠 섹터 별로라도 하자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민간과 같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도시 부동산은 대개 개인 소유라.” 문 회장은 우리가 아이디어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관광을 대개 일본이나 홍콩, 싱가포르로 가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가서 보는 게, 결국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지어 놓은 걸 보는 거예요.” 실로 예리한 한마디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개발과 보존은 공존해야 합니다. 북촌이나 서촌 같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지역은 보존해야죠. 다만 재개발해야 하는 곳은 과감하게, 제대로 개발해야 합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성공하면서 흔히 강남스타일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막상 강남을 가면 갈 데가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밤이 되면 거리는 죽고 뒷골목만 살아난다. 문 회장의 주장대로 도로 옆에 문화공간을 배치하여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함으로써 진짜 ‘강남스타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건설회사는 도면대로 짓고, 도면이 없으면 한 삽을 못 떠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디벨로퍼는 지휘자고 소프트웨어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상상력을 실현하는 이들이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종합부동산 금융그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버타운, 도시와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야 “나이 들어 은퇴하면 인생에 낙이 없어요. 즐거움, 기쁨, 재미가 없어지죠. 젊었을 때는 뭐든 재미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손주에게 끌리는 거겠죠. 나도 늦둥이가 있어요. 지금 제주도에 있는데 ‘네가 아빠 희망이지’라고 말하곤 해요. 손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시니어이자 부동산 전문가로서 문 회장은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실버일수록 도심으로 들어오고자 합니다. 전철, 공원, 병원 옆으로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손주들을 못 보기 때문이에요. 실버가 되면 외롭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전철역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되는 거예요. 어느 성공한 시니어가 하는 말이, 자식들이 손주를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맡기고, 장을 보러 간다든지 하면 손주와 함께 있는 게 그렇게 즐겁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이 지방에 있으니 전화만 하고 안 와서 섭섭하다는 겁니다.” 문 회장은 실버타운을 짓는다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으로 기능적인 구분을 꼽았다. 몸이 불편하여 간병인 등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과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친구들과 취미 생활 등을 할 수 있는 시니어 타운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두 영역을 합친다 해도 중간에 병원을 두어 병원을 중심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둘 다 도심에 있어야 한다는 건 공통된 조건이다. “실버타운은 구성원의 특성상 죽음과 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젊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람들과, 도시와 섞여 살아야 해요. 구분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장은 굉장히 성장할 것이고,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산다 문 회장은 올해로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됐다. 그에게도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 있을까? “사실 후회를 좀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내 청춘이 가버렸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연애를 잘 해봤겠어요? 당구도 못 치지. 그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삶 자체가 옆을 볼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죠. 아내가 저에게 ‘음악을 알아?’, ‘그림을 알아?’ 하고 물어요. 그럼 저는 ‘몰라’라고 대답할 수밖에요. 저는 솔직한 얘기로 너무 안 해본 게 많고 모르는 게 많아요. 내 업무와 내가 하는 부분만 알지. 그래서 요즘은 정말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될 수 있으면 비행기로 6시간 이내로 끊어서 가려고 해요. 좀 더 많은 여행을 하는 것, 그게 제 인생을 위한 중요한 일이겠네요.” 문 회장은 아내가 자신을 보며 종종 불쌍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일밖에 모르니까. 그런데 그는 일이 없으면 공허해지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말하자면 문 회장은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 부분을 일로 채우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그게 쉽게 안 돼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비빔밥이에요. 비벼서 빨리 먹고 일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인 거죠. 그리고 비생산적인 데에는 투자를 안 하려고 해요. 와이프는 왜 남은 도와주면서 자기는 그렇게 안 하냐고 타박합니다. 그런데 남을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는 일이죠.” 힘들었던 어린 시절, 서른 살이 넘어 입사한 나산에서의 승승장구, IMF 한파로 인한 퇴직, 퇴직 후 MDM 설립과 한국자산신탁 회장이 되기까지. 고난과 성공을 오가며 쉼 없이 살았던 그가 살면서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주위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고 뭘 하든지간에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일을 우선했습니다. 이 일을 하면 참여자들이 만족하느냐, 소비자가 만족하느냐, 사회가 만족하느냐가 기준이었죠. 그래서 저는 디벨로퍼의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다고 했을 때, 이걸 짓다가 멈춰 서버리면 사회적 악이 돼요. 금융사, 시공사, 협력업체, 분양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흉물이 되잖아요. 그만큼 디벨로퍼란 정> 문주현 MDM 회장 1958년 전남 장흥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1978년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 1983년, 27세의 늦은 나이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입학·졸업했다. 1987년 나산실업에 입사, 부동산개발 사업에 발을 들였고, 7번의 특진을 통해 최연소 임원이 됐다. 하지만 나산그룹은 IMF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를 맞았다. 그는 재취업을 고민하다가 1998년 분양대행 업체인 MDM을 만들었다. 2007년 첫 시행사업에 나서기 전까지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 ‘분당 파크뷰’, ‘목동 현대 하이페리온’ 등 굵직한 주상복합 건물의 분양대행을 도맡았다. 2001년 재단법인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 출연금을 200억원까지 늘렸다.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으며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을 창립했다. 2013년부터 서울시탁구협회 회장, 2014년부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 2015년부터는 전국검정고시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 2016-08-1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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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자서전] 인생의 터닝 포인트
- 1915년 5월 27일생이신 아버지와 1922년 11월 1일생이신 어머니 사이에서 1946년 1월 4일 8시께 1942년 8월 13일 누님에 이어 둘째로 태어났다. 2년 뒤 여동생, 4년 뒤 또 여동생이 태어났고 막내 남동생과는 9살 터울이다 어릴 적 기억은 4세 때 한국은행 돌계단을 오르면서 엄마 손 잡고 명동 가던 것뿐이다. 누나는 공부를 잘해 늘 전교 1등이었는데 그 동생은 말썽꾸러기라서 늘 창피하다며 야단을 쳤었다. 학교에서 누나에 거는 기대가 크면 클수록 필자는 야단을 적게 맞고 반대로 장난은 늘어만 갔다. 드디어 누나가 50년 개교 이래 처음으로 경기여중을 들어갔다. 누나 졸업과 동시에 필자는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무엇 조금만 잘못해도 엄청 꾸중을 들었다. 아마도 그동안 적립해 놓은 야단을 한꺼번에 듣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학교 주변은 피난민이 많이 살았는데 대개 남대문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자제였다. 학교 끝나고 오는 길에 그들 몇이 모여 한 아이를 끌고 가 여럿이 골목에서 때리는 것을 보았다. 말썽부리고 공부는 잘못 해도 남을 해치고 약자를 괴롭히지는 않았는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뛰어들었고 우릴 아는 애들이 뒤따라 들어와 패싸움이 되어 일이 엄청 커졌다. 다음날 부모가 들어왔는데 그악스런 이북말씨에 네 일도 아닌데 싸움판에 끼었다는 요즘 말로 하면 변호사법 위반으로 징계를 먹었다. 다행히 초등학교여서 퇴학이 없어 전학으로 결정됐다. 5학년 후반 남대문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런데 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과를 끝내고 집에 오려는데 왠지 많은 아이가 빨리빨리 교실을 빠져나가고 열 두어 명이 남더니 뒤에서 양동이를 머리에 씌우고 몰매를 놓는 것이었다. 학교 근처에 서울역 양동이라는 사창가가 있었는데 그곳 아이들이 뭉친 게 한패, 남대문 시장 뒤 고아원 아이들이 한패로 그들만의 리그가 볼만했다. 전학생이 왔는데 패싸움 때문에 전학 왔다니까 기선을 잡기 위해 선수를 친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망치를 하나 들고 갔다. 노는 시간에 하면 여러 명에게 당할 것 같아 공부시간 중간에 뒤에서부터 한 명씩 깼다. 당연히 학교가 난리 났다. 결국 3개월 만에 멀고도 먼 교동초등학교로 전학 갔다. 이곳은 맹모삼천지교란 말이 실감 나는 곳이었다. 한반이 72명인데 왜 이렇게 조용히 공부만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필자도 할 일이 없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두 달 후 6학년이 되었다. 72명이 어깨 맞대고 촘촘히 앉아 시험을 봤다. 그래도 두 달 공부 열심히 했다고 아는 문제가 많아 정말 신나게 시험 봤다. 일요일이 주일 후 시험성적표가 성적순으로 나와 뒷벽에 붙었다. 그런데 나름대로 시험도 잘 봤는데 팔저 이름이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 이름은 없는데요?” “그래? 번호는 몇 번까지 있니?” 72번이요.” “그럼 맞는데 어디 보자.” 갑자기 머리에 벼락이 떨어졌다. “야 임마 여기 있잖아. 너는 네 이름도 못 읽냐.” 아차 필자 번호 67번에 필자 이름이 있는 것이다 필자 생전 그렇게 재미있게 시험 본 경험이 없을 정도로 재밌게 봤는데 이상했다. 시험지 확인을 해보니 평균 82점인데 67등이었다. 그렇다면 점수 18점 안에 66명이 있다는 것 아닌가. 6년 내내 최고 점수 평균 91점 받아봤지만 등수에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중학교 입학해 공부 좀 하려는데 집에 큰일 생겼으니 빨리 가보라는 담임교사 말에 어리둥절해 가보니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갔다. 5남매 장남으로 7식구 돌보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우선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신문 배달뿐이었다. 대학도 안 가려는데 어머니가 앞으로는 대학 졸업장 없으면 행세를 못 하니 앞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나오더라도 졸업장은 반드시 가지라고 말했다. 공부 잘하는 누나 한 사람 대학 보내기도 쉽지 않은데 필자 덜컥 시험을 봐 경희대에 턱걸이로 합격하니 어머니는 얼마나 심란했을까. 그 시절은 생애 최고의 순간이기도 했고 불안의 나날이기도 해다. 필자는 누나가 결혼한 뒤 군대에 갔다. 훈련을 마쳐 각자 본대로 가는데 그 많은 훈련병 다 호명해 갔으나 마지막까지 혼자 남았다. 알고 보니 육군본부였다. 군대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필자 복에 육군본부라니 말도 안 됐지만 사실이었다. 근무 중 월남파병 백마부대에 차출되어 강원 화천 오음리서 훈련받았다. 만기 제대를 하고 도저히 경희대 주간을 다닐 형편이 되질 않아 건국대 야간대학으로 옮겨 낯에는 일하고 밤에 학교를 다녔다. 경희대 다니며 친구들과 만든 “포도원”이란 모임은 지금도 50년 넘게 만나고 있는데 이혼, 상처, 상부, 본인 사망한 친구가 없는 모임이다. 건국대 야간은 낙원동에 위치한 96%가 직장을 다니며 주경야독하는 백전용사들이다. 지금도 매월 첫 수요일 저녁은 그들과 함께하는데 시멘트에서도 싹 튼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는 지독한 독서광들인 친구들이다. 건국대 야간 경제과를 졸업하고 학사가 되었다. 어머니 말대로 앞으로 들어가 뒷문으로 나온 기분이었다. 그해 10월 아내와 결혼했다. 그리고 1973, 75, 78년 생 딸 2, 아들 하나 아이 셋을 낳았다. 그리고 큰애가 아들과 딸, 작은애가 딸 둘을 낳았다. 1998년 소마라는 개인회사를 만들었다. 특수방식의 사료 첨가제였다. IMF가 왔지만 사료비를 아끼려는 농가가 많아져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크기를 키워 주식회사로 만들고 상호도 (주)지니 바이오로 변경했다. 이후 회사는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사옥도 사고 직원도 늘리고 거의 수직 상승곡선이 그려졌다. 하루 운행 거리가 최고 762km. 평균 500km가 넘을 정도로 영업하고 다녔다. 그리고 영업을 위해 삼성 SM5를 샀다. 이 차는 세상에 차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내게 알려준 최초의 차였다. 차 뺀 지 2년 만에 35만km를 달렸지만 잔 고장 하나 없이 잘도 달려주었다. 그런데 2000년 구제역이 왔다, 매출이 100%에서 3%로 떨어졌다. 1년 후 재기를 노려 농가를 다니길 약 20일. 그러나 다시 구제역이 왔다. 사옥도 팔아가며 버티고 버티며 2011년까지 왔지만 역부족 결국 남에게 넘겼다. 그러는 사이 나라에서 지하철 공짜카드가 나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이가 벌써? 대한노인회에 이모작 준비에 관해 문의했다, 그런데 답이 “집에서 가까운 경로당에 가서 봉사하라”라고 하는 것 아닌가. . 잔버들 경로당에 가서 한 달을 버텼다. 경로당은 구립이라 지원금이 일 년에 360만원이 전부였다. 그래서 근처 절, 성당, 교회, 기업체를 다니며 ‘한 달에 한 번 어르신들께 점심 기부를 해 달라’며 다녔다. 많은 사람 앞에서 직접적인 필자 일도 아닌 금전적인 것을 부탁하러 다니다 보니 얼굴만 벌게 지며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40여년을 오로지 스피치 교육만 하고 있다는 ’한국언어문화원’을 찾아갔다. “지금처럼 서로 마주 보고 일대일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낚시법이라 한다면 저희는 일대 다중을 설득하는 투망법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하는 원장 말에 뿅 가서 그날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발성 연습을 하며 우리말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처음 알았다. 6개월 하고 나니 발성이 제대로 나오게 되었다. 얼마나 배웠는지, 남 앞에 제대로 설 수 있는지 알아보려 2012년 11월 3일 전남 광주시에서 열리는 제38회 박정희대통령기 쟁탈 전국웅변대회에 그 당시 한참 신문, 방송에 오르내리는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웅변했다 . 결과는 특등. 그 한 번의 경험으로 연단 공포증을 단숨에 없애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쉬지 않고 매주 월요일이면 스피치 공부하러 다니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언어문화원에서 교수진에 등록되어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특등으로는 성이 차질 않았다. 2015년 11월 7일 광주에서 열리는 제41회 박정희대통령기 쟁탈 전국웅변대회 주제는 그해 대단히 가물어 식수마저 끊기는 지역까지 있어 ‘환경은 생명이다’”라는 원고로 참가해 마침내 대상을 거머쥐게 되었다. 1년 후 조선에듀케이션과 유어스테이지(주) 시니어파트너즈에서 강사 과정이 있다기에 응시해 생애 재설계를 배웠다.건강, 인식, 관계, 경제, 직업, 주거, 여가, 계획과 실천, 교수법을 배웠다. 그렇게 죽을 만큼 공부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결과는 합격. 필자가 강사가 되다니 꿈만 같았고 그 길을 계속 가고 싶었다. 2013년 3월 11일 강사자격인증서를 받았고 3월 21일 드디어 강사위촉장을 받으며 강사생활이 시작됐다. 필자는 무엇이든 빠르지 않고, 재주부릴 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은 절대 뒤로 가지는 않는다. 필자는 강사 과정을 함께 공부했던 사람 중에 대단히 해박하고 아는 것이 많았다. 공부해 보니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회 각당복지재단에서 웰다잉을 공부하라 지도해 주셔 죽음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죽음의 의미를 알아보는 로고테라피 강의는 그 중에도 백미였다. 다모작포럼협동조합에서 “한(정수) 이사”의 준말인 ‘하니’란 애칭으로 교장 선생 일도 보람 있게 하고 있다. 필자에게 강사라는 꿈이 있었을까? 연단에서 누굴 가르친다는 게 가능했을까? 필자는 돈만으로 격을 따지는 세상에서 인성의 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동안 배운 모든 과정을 녹이고 녹여 재미있는 강의를 하다 보니 지금은 공무원연금공단 변화관리 전문강사로 활동하며 직접 겪은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전환 과정'을 중장년에게 전수해주려 하고 있다. 아울러 '다가치포럼 협동조합' 전무이사로 '중장년 미래전략 강사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정부 지도자 과정도 다음 달에 개설할 예정이다. 교육이 대세라는 생각은 팔저를 생각하면 당연한 길이다.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길이기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 2016-08-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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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정리수납 컨설팅 업체 ‘덤인’ 정경자 대표- “물건에 애정 그만 쏟고 좀 버리세요!”
- “오늘만 해도 태안군 안면도, 양평·가평을 갔다가 내일은 대구로 갑니다.”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질문을 건네자 덤인 정경자(鄭京子·50) 대표의 카랑카랑 애교 섞였던 목소리가 풀이 죽으며 답한다. 바빠서 달리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다. 집안일로만 여겼던 ‘정리하고 수납하는 일’을 전문 분야로 끌어올린 주인공 정경자 대표.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스며들 듯 부드러운 방법으로 시장을 넓혀갔다. 쇄도하는 강의 요청과 방송 출연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 취재가 있던 날에는 한 아파트의 광고 모델로 발탁돼 촬영을 마쳤다. 그렇다 쳐도 여전히 생소한 정리수납 컨설팅.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왜 필요한지 들어봤다. “저를 납득시켜 주세요, 정리수납에 왜 돈을 쓰죠?” 정경자 대표가 정리수납 컨설턴트를 알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캐나다 주재 한국 물류회사의 법인 대표로 일하고 있었다. “저는 캐나다에서 정리수납 전문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미 캐나다나 유럽에는 20~30년 전부터 있던 직업이더라고요. 자기 물건을 자기가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리해주기도 하는구나. 막연하게 나중에 한국에 가면 이걸 꼭 직업으로 만들어야지 했습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해보겠다는 것도 잠시. 회사에서 캐나다 법인의 철수 결정이 갑작스럽게 났고 2002년 한 달 만에 그곳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정경자 대표는 회사 대신 창업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물어보는 사람마다 직업으로는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어요. 어찌됐건 아무리 아이템이 좋아도 아직 우리나라에선 인식이 안 돼 있어 사업성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바로 정리수납으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를 교육하고 양성해서 파견하는 일을 했어요.” 당시 맞벌이 부부가 많아져 아이를 자기가 키우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던 때였다. 사업을 하면서도 정리수납에 관한 준비를 꾸준히 했다. “5년 정도 준비 끝에 정리수납 교재와 매뉴얼을 만들고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 교육을 할 때 가르쳤어요. 1대 1서비스를 잘 하기 위해서 정리수납교육을 한 거죠. 그런데 베이비시터가 아이 옷을 잘 정리하니까 고객들 반응이 좋았습니다. 가정관리사도 옷을 세탁하고 개는 것을 달리해주니까 고객 만족도도 좋고 일 하는 사람들 또한 좋아했습니다.” 2010년부터 방송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다 보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저런 거 배웠으면’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났다. 드디어 2011년 11월, 한국정리수납협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정리수납 컨설팅 활동을 시작했다. “협회를 만들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여성능력개발원에서 여성유망직종으로 정리수납 관리사를 선정했더라고요. 아이템 자체를 보고 한 것 같아요. 경력단절 여성 일자리 창출에서부터, 2015년에는 신직업지원 육성정책에도 정리수납이 들어갔습니다. 여성가족부, 노동부 등 정부기관이 육성한다고 하니 이와 관련한 일자리가 많이 늘어났어요. 사람들 관심도 높아졌고요. 저희만 봐도 정리수납 컨설팅을 교육받고 있는 회원이 전국에 3만9000명 정도입니다.” 정리수납, 한국 사람에게 절실하다 정리수납에 있어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심어지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베이비시터와 가정관리사 교육에 정리수납을 접목해 이용자들에게 미래 사업을 노출시켰다.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외국에서 이것을 매우 당연하다고 봤고, 우리나라에서 더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은 어렵게 살아온 시절이 있기 때문에 돈만 생기면 집이랑 차 넓히고 물건 사고 그래요. 자신이 어렸을 때 옷을 잘 사 입지 못해서 아이한테만큼은 옷을 잘 입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과 장난감도 그렇고요. 그런데 이제 한계가 왔고, 물건을 버릴 때도 돈을 지불하는 사회가 된 거죠.” 시니어, 정리습관을 기르자 정경자 대표의 말에 의하면 시니어들의 정리 습관은 참으로 심각하다. “지금 제가 잘 버리는지 엄마가 잘 버리는지를 비교하면 우리 엄마가 더 잘 못 버려요. 나이가 들수록 더 못 버리게 돼요.” 시니어 세대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정경자 대표는 ‘애정결핍’의 문제라고 했다. 젊었을 때는 관심 가질 것도, 행동할 것도 많아서 물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거는 어디서 산 거고, 누가 준 선물이며, 의미를 사람이나 관계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물건에서 찾으려 한다고. “나이가 들면 자식이 분가하거나 배우자가 죽을 수도 있죠. 결국 자기 혼자 남기도 해요. 자식들과 자주 만나 생활한다면 선물해준 것들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데 요즘은 혹시 온다 해도 아주 잠깐만 있다 가죠. 그러니 이거는 큰아이가 사준 거였고, 이건 누가 사준 거고 말입니다.” 버리는 습관과 정리하는 습관은 젊었을 때부터 길러야 한다. “80세에 갑자기 잘 버릴 수 있느냐?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가 85세신데 제가 뭘 버리라고 말하지 않아요. 어머니 집에 가서 저는 정리 안 해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있기 때문에 제가 하루아침에 바꿔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상처가 될 수 있어서 삶을 이해하려 하지 바꾸려고 들지는 않아요.” 시니어 고객에게 하는 조언은? “제가 시니어를 만났을 때 하는 얘기가 딱 그거예요. 만약에 여러분이 죽었을 때 가지고 있던 물건들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죽는 순간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다 버려지게 된다. 돈 혹은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아니면 다 버려진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물건을 정리하는 자식들은 무슨 얘기를 할까? “왜 엄마는 아직까지 이걸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냐고 합니다. 좋은 얘기 안 하죠. 물건을 보며 엄마를 추억하지 않아요. 내가 살아 있을 때 쓰레기들을 남에게 버리게 하는 수고로움은 덜어주고 가야죠. 그게 시니어가 돼가는 것이고 내 삶을 정리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정경자 대표는 시니어에게 정리수납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주방 싱크대 상부장 맨 위에 의자를 받치고 올라갔다가 떨어져 허리 다치고 병원에 입원하면 기력이 쇠하고 점점 더 빨리 늙는 것을 봐왔다는 것. “왜 거길 올라가는 거죠? 10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하면서요. 본인이 그렇게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시켜드려야 합니다.” 한국의 여성 CEO, 일하는 여성을 말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5년째. 여성 CEO로서의 고충을 물어보자 고충보다는 이 분야 선구자로서 할 일이 태산이라고 했다. 벤치마킹할 곳도 없고, 슬로건 교재도 만들어야 해서 바쁘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라고. “그리고 좋은 건 정리수납은 여자들의 섬세함이 필요하잖아요. 남자들이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나 할까요(웃음)?” 경력단절 여성들과 작업에 대해서도 흥미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전업주부들이 사회적응을 잘 못한다고들 하죠. 그런데 정리수납을 가르치고 기본 원칙을 알려줬더니 이만큼의 전문가가 없는 거예요. 생소한 분야가 아닌 거죠. 자기 삶의 가치가 바뀌었죠. 정리를 못하는 사람에서 정리 전문가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낍니다. 자신감이 생기니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도 내고요.” 바쁘게 사는 그녀, 복지관 예쁜이 할머니 꿈꾸다 올해 딱 50세가 된 정경자 대표. 그런데 누가 봐도 50대로 볼 수 없는 그녀는 지금 일이 아니면 뭘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일이 우선 많아요. 결혼도 연애도 시간이 없어서 못 했거든요. 20대 때부터 세계여행도 하고 뭐든 다해봐서 혹시 시간이 좀 생긴다면 운동을 해야겠어요. 얼마 전에 면역력 저하로 세균이 번식을 해서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반성을 많이 했죠. 그런데 퇴원하는 날 방송사 가서 10시간 촬영했어요. 책 읽는 것도 좋아했는데 도무지 시간이 안 나요.” 그리고 그녀에게는 원대한 꿈이 하나 있다. 복지관에서 인기 있는 예쁜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돈을 많이 벌어서 기회가 되면 지금 우리 직원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직원 전용 실버타운을 짓고 싶어요. 이분들이 나이 들어서 정리수납 강의도 하셔서 강사료도 받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100만원 정도의 수입만 있으면 시니어가 되어서도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여기서 나이 먹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리고 90세가 됐을 때 목표는 제가 다니는 복지관에서 가장 예쁜 할머니가 돼 있는 거예요. 그럼 거기서 내가 가장 인기 있는 할머니가 된다면 무척 바쁠 것 같아요. 밥 사준다는 할아버지들도 많을 거 같고요. 내가 아파 복지관 못 나가면 우리 가족이 나한테 전화해 주는 것이 아니라 복지관에 있는 분들이 어디 아프냐고 죽이라도 사가겠다고 하겠죠? 늘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거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함께 잘 살아가는 세상 꿈꾸는 정경자 대표의 멋진 미래가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복지관 퀸카 할머니가 꼭 되길 바란다.
- 2016-08-11 08:50